2021-06-03

“한국 정치, ‘80%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 - 경향신문

“한국 정치, ‘80%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 - 경향신문

지방, 공론장

“한국 정치, ‘80%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


전문가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은 한국 정치가 ‘80%의 삶’을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화두였던 공정 담론도 서울 소재 대학 입시나 대기업 및 공기업 입사를 둘러싼 상위 20% 간의 경쟁을 다뤘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는 복지 등을 논하면서 그나마 다뤄지지만, 지방 청년, 중소기업 취직자 등 평범한 다수는 공론장에서 소외된다고 말했다.

하 소장은 기성언론의 역할도 강조했다. 기성언론의 품질은 뉴미디어보다 떨어지지 않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기성언론이 변화에 적응해 사회적 공통 감각의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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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서울 강남구 세텍에서 열린 '고졸 성공 취업 대박람회'를 찾은 학생과 군인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2021년 한국 사회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의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하위 80%의 ‘삶의 질’을 다뤄야 한다. 예를 들어, 중학교 한 학급에 평균 30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1등에서 5등은 특목고나 자사고에, 25등에서 30등은 실업계에 간다. 그 사이인 6등에서 25등은 일반고에 간다. 이들은 서울소재 4년제 대학교엔 못 갈 가능성이 높지만 지방 4년제 대학교에는 입학한다. 그 이후 한국 사회의 대부분을 채우는 중소기업에 취직한다. 한국사회의 80%를 차지하는 이들이다.

정치권과 담론은 1~5등으로 진입하는 관문에 대한 룰과 공정성에 대해 논하고, 25~30등의 복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하지만 6~25등 구간에 있을 사람들의 교육, 노동,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논의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에 우수한 인재가 가야한다는 말은 나오지만 중소기업의 노동 관련 제도에 대해선 논의하는 일이 별로 없다.

교육 분야에서 다루는 이슈도 마찬가지다. 정시나 학종은 결국 학급에서 1~5등의 학생들, 수능 1~2등급 나오는 학생들 사이 경쟁의 룰에 한정된다. 사회 대부분인 6~25등이 중등교육과 대학교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배움을 얻어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면 어떨까. 교육 혁신의 출발이 될 수 있고, 이들이 직무역량을 쌓을 수 있으면 중소기업도 혁신될 것이다. 사회와 직장이 이들을 제대로 대접한다면 노동인권의 진보다.”


실질적인 중요성에 비해 사회적으로 과도하게 논의되는 의제가 있다고 보나.


“진영논리에 함몰되는 의제들만 과하게 논의된다. 특정 의제가 과도하게 논의되는 게 아니라, 어느 진영에서 의제를 꺼냈느냐에 따라 소음이 생긴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하고 모든 의제들이 진영논리의 구심력 안에서 다뤄진다.

추미애 장관 아들이 군복무 시절 특혜를 받았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몸이 아파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병가로는 모자라서 휴가를 좀 더 연장했고, 이 과정에서 추 장관의 보좌관이 전화를 했다는 내용이다. 그냥 그렇게 말을 하면 되는데, 이를 진영논리의 틀 안에서 다루니 한 쪽에선 마치 엄청난 비리처럼 다루고 한 쪽에서는 엄청난 정치적 매도처럼 여겼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이 나오고, 모든 이슈가 그 논란에 빨려 들어갔다.

몸이 아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장관 아들이 아니라도 치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군에 있어야 한다. 이런 논의는 사라지고, 엉뚱하게 진영대결이 되고 공정 이슈로만 번졌다. 다른 해야 할 논의도 못했다.”


‘조국 사태’ 이후 기존의 보수, 진보가 더욱 양분화됐다는 지적이 있다. 진보 진영 내부도 입장에 따라 분열이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


“현재 각 진영은 원심력 보다 구심력이 더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정치의 본령은 합의고 통합인데, 바깥으로 뻗어나가기보다 각 진영의 구심력에 끌려들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정치가 앞장서서 통합의 어젠더를 앞장서서 던지고 원심력을 작동시켜야 하지만,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진영의 구심력에 매몰되면서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문화가 지속되는 게 현 시점 상황이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진단에 동의하나.


“민주주의 위기라고는 보지 않는다. 부당한 권력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주권자의 힘으로 탄핵시키고 다시 정권을 창출했다. 민주주의 자체는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양 진영에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고, 이로 인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듯해서 우려가 된다. 그 결과 상대에 대한 증오가 증폭되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는데, 이런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결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형식적 절차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합의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사회적 합의는 등한시하고 형식적인 절차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더 강한 힘을 획득해 상대를 찍어 누르려는 문화로 치닫게 되고 공동체 의식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의견 양극화 속에 사회적 합의, 혹은 공통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견 양극화의 원인은 다양하다. 정치권이 합의의 정치를 하지 않고 각자의 진영만을 바라보는 정치를 하는 게 일단 문제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영향을 미친다. 둘은 연동돼 있다. 객관적 사실과 올바른 정보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신념과 잘 맞는 주장을 더 많이 찾아보는 경향이 생겼다.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통해 그렇게 한다. 각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뉴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를 심화시킨다. 정치권은 지지자들의 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객관적 정보나 공통 감각 보다 진영에 복무하는 논리들을 펴는 경우가 많다.

이를 견제하려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한다. 문제는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기성언론이 뉴미디어 채널 등에 신뢰도와 소구력을 포함한 영향력이 전반적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흔히 뉴미디어에 밀리는 현상의 원인으로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도 하고 정치적 양극화의 결과라고도 하는데, 내 의견은 다르다. 기성언론에 문제가 많다고 해도, 뉴미디어에 떠도는 가짜뉴스들보다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언론의 문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것이었다.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와 언론의 실패에 따른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매체 변화에 언론이 적응해야 의견 양극화를 극복하고 공통 감각을 회복할 길이 열린다. 사람들이 올바른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토대로, 정치권은 자기 진영이 아닌 공론을 기준으로 정치행위를 해야한다.”


유튜브 이미지컷


소셜미디어, 카카오톡, 유튜브 등에서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사회적 의제들이 논의되는 현상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성장한 채널을 관찰해보면, 채널과 구독자를 이어지는 매개가 ‘정보’에서 ‘관계’로 이전되는 현상이 보인다. SNS도 마찬가지다. 듣고 싶어 하는 이슈를 구독자, 팔로워들이 더 적극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과격한 이야기들을 한다. 다만 최근 들어 플랫폼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SNS상에서 유통되는 혐오 표현이나 가짜뉴스에 대한 문제제기도 적잖이 이뤄지는 추세다. 시행착오를 많이 거쳐야겠지만 점차 해소될 문제라고 본다.”


최근 대통령 혹은 유력 정치인의 팬덤이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로 부상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나.


“현상 자체는 지속되겠지만 균형을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력 정치인 팬덤의 영향력은 뉴미디어 때문에 과잉대표 되는 경향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의견들도 많다. 소셜미디어에서 갑론을박 하는 사람보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여론조사나 선거 때가 돼서야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일례로 지난 총선에서 당시 자유한국당은 우파 유튜버들에게 끌려다녔는데, 이들은 선거에선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대통령 및 청와대의 영향력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타당한 분석이라 보나.


“의회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와 달리 선거에 이긴 대통령과 청와대가 모든 것을 가질 만큼 권한이 크다. 때문에 선거가 끝나면 여당은 정권을 지키고 재창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야당은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야당 입장에선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국정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정부 여당이 하는 일에 반대하거나 부분적인 동의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현 구조는 의회 내의 합의를 방해하여 국정 운영을 발목잡는다. 청와대가 열쇠를 쥐고 개혁을 추진하더라도 결국 입법이 뒷받침 되어야 할 때는 야당의 동의가 필요하다. 야당은 현 정부가 성공하면 자신들이 정권을 창출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기 때문에 현 정부가 성공하길 원하지 않는다. 결국 합의과 개혁을 위한 정치는 실종하고 정쟁만 남는다.

하지만 이 구조를 바꿔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문화가 정치 자체를 후진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민주주의 자체에 크게 부정적인지 잘 모르겠다. 정부 여당의 힘이 큰 만큼 져야할 책임도 크다. 최근 20여년간 10년 단위로 정권이 바뀐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제도 하나를 두고 한국 민주주의가 수준이 낮다거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식의 관습적 분석을 해선 곤란하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성숙한 지금의 한국 사회에는 걸맞지 않은 태도 같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효용은 있다고 본다. 국정운영의 주체가 국민 여론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여론조사에 주체적으로 의견을 반영할 수 없는 약자들과 소수자들이 있다. 청원 게시판을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의견들을 사회에 환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들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한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은 따로 있다. 국회다. 주권자가 제 손으로 선출한 대의기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통치기관에게 읍소하듯 청하기만 하는 문화는 경계해야 한다.

사실 청원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없다. 국민의 의견을 의회에 밀어 넣고, 그 안에서 논쟁과 협상을 통해 사회적 합의로 나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시급히 논의되어야 하지만, 정치권이나 여론의 장에서 외면받는 의제가 있다고 보는가.


“지방 청년이다. 한국의 사회 담론은 대개 서울, 수도권 중심으로 맞춰져 있다. 매년 언론에서 발표되는 일자리에 관한 의제도 결국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 나온 청년들에 초점을 맞춘다. 대기업 공채, 공기업, 공사, 공무원 채용을 통해 청년 취업문제를 읽고 기사를 쓴다. 스펙 쌓기에 골몰해있다는 대학생들의 자기계발 논의도 잘 보면 지방청년들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에도 인재가 있고 청년들이 있다. 인프라가 부족해서 부득불 서울에 올라와 저임금 노동이라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마저도 자신이 없어 제도와 프로세스가 미비한 중소기업에 들어가 평생 부당함을 안고 살며, 제 목소리를 못내는 청년들이 있다. 정치권도 언론도 잘 하지 않는 이야기인데, 사실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방 청년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과거엔 주목받지 못했으나 최근 논란이 된, 혹은 중요도가 커진 이슈가 있다면.


“계층 사다리가 끊어진 현상이다. 하층 청년의 상승을 가로막는 구조적 부조리가 많이 논의됐다. 과거의 불공정은 비리의 형태로 드러난 경우가 많다. 최순실과 정유라 사례처럼 권력형 비리였다. 제도와 체제가 허용하지 않는 범죄를 저질러 이익을 착복하는 행태다.

하지만 최근에는 꼭 불법이 아니더라도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가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권력을 동원한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도, 이미 갖고 있던 기득권과 방대한 네트워크 등의 자원을 활용해 법과 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사람과 상황이 문제로 드러났다.

권력형 비리나 불법과는 다른 구조적 부조리다. ‘공정’ 이슈로도 많이 논의됐는데, 제도에 내장되어있는 불평등 체제로 재생산되는 불공정이기에 논의에 더 날이 서는 것 같다.”


"2020년 7월 53개 청년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 관련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 노조가 강조하는 공개경쟁을 통한 채용절차는 자신들이 뚫었던 극심한 경쟁을 거치지 않으면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라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을 단순히 고용안정성의 차이가 아니라, 시험에 의한 신분제로 보겠다는 주장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 권도현 기자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입 등의 문제를 두고 ‘공정’이 화두였다. 공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한국 사회가 공정하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공정하지 않기에 화두가 됐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공정은 계층과 젠더에 따라 기준이 제각각이다. 이 기준을 새로 정리하고 합의해야한다. 나아가 이 기준에 따라 과실이 나눠지더라도,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를 양산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된다. 상위 계층의 기득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보편다수가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공정하게 누릴 수 있는 룰을 어떻게 만들지도 논의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룰을 지키는 게 공정이라고 한다. 대입과 공채로 대표되는 감각이다. 각자 노력해서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그 시험 결과에 따라 과실을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공부를 위한 노력도 기본적으로 환경이 뒷받침돼야 할 수 있다. 따라서 좀 더 폭넓은 문맥에서 바라본다면, 불공정한 환경을 개선한 뒤에야 공정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공정 담론은 ‘계층 사다리로 오르는 관문을 어떻게 짤 것인가’ 논의에만 초점을 맞춘다. 상위 20%가 되는 관문을 어떻게 짜야 하고, 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냐는 것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관문을 어떻게 짜든 계층은 생긴다. 20%가 있으면 80%가 생길 수밖에 없다. 20%로 진입하는 관문이 얼마나 공정한가를 떠나, 20%의 승자와 기득권을 남기고 80%는 패배자가 된다면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노력해서 계층 사다리에 오른 20%가 과실을 더 가져가더라도, 그렇지 않은 평범한 80%의 삶도 대우는 받을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며, 그 사람들의 삶의 질이 대한민국의 삶의 질이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특수학교 설립 추진 설명회에서 한 참석자가 반대 의견을 이야기하자 다른 참석자가 귀를 막고 있다. 이날 설명회 내내 일부 주민들의 고성과 야유가 이어졌다. /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혹은 목소리를 내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발휘되지 않는 집단은 누구라고 보나.


“장애인들이다. 서울에 있는 건물만 가 봐도, 장애인 화장실은 자주 굳게 잠겨있다. 휠체어가 지나갈 통로를 만들어 두지 않은 건물도 흔하다. 이런 차별을 받는 존재로서 장애인의 인권은 시혜적인 시선으로 논의된다. 동시에 권리를 가장 손쉽게 무시당하는 집단이다.

불과 3년 전 강서구에서 장애인 특수학교 짓는 문제로 논쟁이 있었다. 당시 강서구에는 200여명의 장애 학생이 있었는데, 그 중 120명이 두 시간씩 걸리는 다른 동네로 통학해야 했다고 한다. 학생은 많고 학교는 부족하다면 학교를 지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학교를 지을지 말지 토론이 이뤄졌다. 15년 간 서울에 만들어진 특수학교는 단 1곳, 1만2000명에 달하는 특수교육 대상자 중 35%만 특수학교에 다니는 상황이었다.

지금이라고 사정이 나아졌을까. 장애인들은 목소리를 내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덜 발휘된다. 애초에 장애인들이 직접 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 자체가 협소하다. 최근에야 유튜브 등을 통해 당자들의 목소리를 조금씩 직접 접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에 접어드는 한국사회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사안은 무엇이라 보나.


“사람을 중심에 둔 첨단 기술 구축이다. 미증유의 재난이었던 만큼, 국가가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임은 명백했다. 다만 지원 방식을 선별적으로 할 것인지 보편적으로 할 것인지 다툼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받는 타격은 계층마다 다르다. 저처럼 재난지원금이 절실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처지가 더 어려운 사람에게 지원이 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별 과정에서 드는 비용이 더 크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그렇게 되지 못했다. 아무도 이런 재앙이 닥쳐올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탓이 큰데, 요즘은 빅데이터, AI, 4차 산업혁명등을 논하는 시대다.

데이터청 같은 기관을 설립해서 평소에 정비를 해두었다면, 선별하는 데 드는 돈을 최소화하면서 더 효과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복지를 이념과 정책의 영역에서만 생각할게 아니라 어떤 첨단 기술과 접목하여 평소에 탄탄하게 준비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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