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2

황대권 - 헌사 고맙습니다, 이재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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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 
헌사
고맙습니다, 이재명님.

저는 이번 선거에 당신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뛰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만 생각했다면 몸을 열 개로 쪼개서라도 뛰었겠지만
당신이 타고 있는 민주당이란 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에 대한 저의 비판은 그저 신문방송이나 듣고 키워온 관념이 아닙니다.
저는 원전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3년, 문재인 5년을 그야말로 
생계조차 내팽개치고 매달렸습니다.

저는 당신 같은 탁월한 싸움꾼은 아닙니다.
다만 문제해결을 위해 적이든 아군이든 다 만납니다.
그 덕에 청와대가, 민주당이, 공무원들이, 한수원 직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경주에 맥스터 추가건설이 확정되는 날
제 페북을 통해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철회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대선이 윤석렬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어찌하여 그토록 하자가 많은 인물에게 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겪은 한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경주 맥스터(고준위핵폐기물 임시 저장 시설)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인 노무현 정권 시절 법적으로 아무런 지위도 없고 법적 규정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동의 없이 그야말로 ‘불법적으로’ 지어진 시설입니다. 당장에 고준위핵쓰레기를 어딘가에 쌓아놓아야 하는데 급한대로 그리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2020년에 그 시설마저 포화상태에 이르자 ‘탈핵대통령’ 문재인은 주민의사를 무시하고 맥스터 추가건설에 나섰습니다. “경주 원전부지에 원전 관련시설을 추가로 짓지 않겠다”는 <중저준위방폐장에 관한 특별법 제18조>에 위배된다고 주민들이 항의하자 산자부는 “맥스터는 ‘관련시설’이 아니고 ‘관계시설’이라 괜찮다”며 추가건설을 강행했습니다. 말장난이나 다름없는 정부의 해명을 보며 이를 갈았지만 마침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가 진행 중이라 인내심을 갖고 줄기차게 정부와 민주당을 상대로 대화를 했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간단했습니다.
“급하다고 원칙을 저버리고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편법을 쓰다 보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공론화 기간이 길어져 원전이 잠시 중단되더라도 원칙을 바로 세워서 기본법을 만들자” 

그러나 공론화는 맥스터 추가건설을 위한 면죄부성 행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에 관한 기본법> 논의가 시작된지 30년이 넘었는데도 계속 땜빵으로 일관하고 있어 탈핵대통령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권에서만큼은 제대로된 공론화를 통해 기본법을 확정하고 싶었습니다. 고준위핵폐기물은 무려 10만년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위험한 물건이라 처음부터 원칙을 세워 제대로 ‘공론화’하자고 그렇게 얘기를 했건만 결국 앞에서 쓴 편법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제 방에는 지난 8년 동안 정부와 대화하느라 준비한 서류와 자료 등이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저는 조만간 이 자료들을 다 그러 모아 불태워버릴 것입니다. 

박근혜가 졸속으로 만든 고준위법을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과 머리를 맞대고 대체 법안까지 만들었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고준위 문제를 백지부터 다시 논의하여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말을 믿고 5년의 세월을 보냈으나 나이만 헛되이 먹고 말았습니다. 그간 있었던 일을 다 말하려면 책을 한 권 써야 하나 한 가지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탈핵 시민들은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민주당이 제출한 고준위법을 철회하라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직전에 민주당의 책임있는 국회의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이런 식으로 일하면 다음 대선에 탈핵 시민으로부터 외면받아 최소한 20만 표는 잃을 것이다.”

저는 핵문제에 매몰되어 있어 다른 분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다른 분야의 사회운동 활동가들 얘기를 들으면서 저와 다르지 않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입니다. 원칙을 세워서 굽은 것을 펴고 막힌 곳을 뚫는 것이 아니라, 말로만 그럴듯하게 큰소리쳐놓고는 보수진영의 눈치만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사안이 다 끝난 월성1호기 폐쇄 결정을 뒤집기 위해 검찰총장 윤석렬과 감사원장 최재형이 ‘항명성’ 시비를 걸어 당시에 일했던 공무원을 감옥에 보내는데도 묵묵히 바라만 보던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저도 잘 아는 그 공무원은 정권 초기에 비교적 충실하게 대통령의 탈핵의지를 실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후로 어떤 공무원도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는 공무원을 보질 못했습니다. 그냥 박근혜때 공무원으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제 제가 왜 민주당 때문에 투표하기 싫었는지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민심은 결국 민주당을 심판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에서 숱한 번민 끝에 기호 1번을 찍기는 했습니다. 자칫 민주당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겠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정말 너무도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5년 전 민주당 당내경선 때에도 당신을 지지했었지요. 광주출정식장에 일부러 찾아가서 후원금 5만원을 현장에서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는 당신이 어떤 분인지 잘 모릅니다. 여기저기 귀동냥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한 뛰어난 정치인이라는 ‘느낌’만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대통령이 될 충분한 자질이 있는 분이지만 민주당의 한계로 인해 실패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실패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실패로 인해 당신은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봅니다. 민주당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의 대통령이 되는 기회를 말입니다. 
저는 오늘부터 이재명을 공부하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을 우리의 대통령이 되게 할 수 있는지도 연구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영원한 들사람입니다. 스무살 때 박정희 치하에서 함석헌옹의 연설을 듣고 죽을 때까지 들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을 한 뒤 지금까지 들사람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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