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연지因緣地 일본에서 길을 만들어갑니다. < 길,그리고 길 < 인물/인터뷰 < 기사본문 - 월간원광
나의 인연지因緣地 일본에서 길을 만들어갑니다.
기자명 조예현
입력 2023.02.23
김법조 일본교구장
취재. 조예현 기자
역사적, 정치적 이슈에 따라 가까운 나라가 되기도 하고, 한 없이 먼 나라가 되기도 하는 일본. 김법조 일본교구장은 교역생활 중 24년이라는 세월 동안 일본 개척교화를 하며, 교법의 씨앗을 뿌려왔다. 그러나 무엇이든 조심스러움이 많은 일본인들과 대부분 생업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에게 원불교 교법으로 다가가는 교화란 참으로 길고 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제 일본교화의 큰 전환점이 될 동경교당이 새로운 곳에서 봉불식(3월 19일)을 거행한다. 큰 불사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는 늘 “스승님들, 출·재가 동지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그 공을 돌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가는 김법조 일본교구장의 출가이야기와 눈물과 보람의 일본개척교화이야기, 희망찬 일본교화 비전을 이메일 인터뷰로 진행했다.
● 3월 19일 봉불식 축하드립니다.
“오랜 시간 일본교화를 걱정해주시고 합력해주신 스승님과 재가·출가 교도님들의 정성에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이번 봉불을 맞이하며 해외에 교당 하나 내는 일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가를 공부했어요. 종교시설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물을 교도들과 함께 찾으며 모두가 ‘우리 교당’을 찾는 이 일이 원불교 회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어요. 그 마음들이 하나로 모여서 2021년 12월에 현 건물을 찾았고, 전 교도의 찬성으로 매입을 결정했죠. 무엇보다 전 교도의 찬성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가장 기뻤습니다.”
● 동경교당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동경교당은 가나가와법인(요코하마교당)소속으로서 동경지역 교화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동안 교도들은 요코하마교당에서 법회를 보면서, 노후 된 시설과 재해 위험으로 이전을 해야 되는 상황에 있었죠.” 불안정한 상황 속, 동경이라는 대도시에서 종교법인 설립을 위한 건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3년간 도쿄 23구 내에서 70여 개의 건물을 살펴보았고 현 건물을 찾게 되었다.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동경교당은 18년 된 3층 건물로 대지 46평, 연건평 74평으로 1층은 대각전, 2~3층은 생활관으로 설계했다. 특히 공기순환식 냉난방시설을 하여 시설비, 운영비, 에너지 절약에 신경을 썼고, 법당 천정 중심부분을 원형으로 하여 더 높게 보이도록 했다. “1층 법당은 교도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되도록 했어요.” 드디어 염원하던 법당에서 공부하는 교도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고.
● 24년간 일본교화를 해오셨는데요. 어려움도, 보람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오사카교당은 1935년에 창설된 해외교화의 효시인 곳이에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일제강점기에 재일동포들과 일본인을 제도하려 하셨던 대자대비심에서 시작된 교당이죠. 이런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살고 있어요.” 일본은 한국과 늘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때론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하는 곳. 불편한 이슈가 있을 땐 일본에 사는 그는 물론 재일동포들도 긴장 속에 살아간다. “이러한 변화 속에 내 마음도 챙기지만, 주위에 사는 재일동포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주고 싶었어요.” 오사카교당에 부임한 원기 84년부터 그는 한방무료진료, 전통민속놀이, 한글교실, 일본어교실, 어린이 공부방, 다도회, 한국명절 알리기, 전통결혼식, 김치담그기, 한국테마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재일동포들과 일본현지인들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일본인들은 성실하고 예의를 매우 중시해요. 오랫동안 지켜본 후에 믿음이 생기면 다가오거든요. 그래서 그 만남의 기쁨과 보람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기다림의 시간 만큼 주인이 되어서 만나게 되니, 그 기다림의 시간도 행복했습니다.”
● 일본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더 소중할 것 같은데요.
“하나의 일이라도 꾸준히 하다 보니 조금씩 다가오는 인연들이 있어서 보람이 있죠. 또 그 인연들로 인해 합력해오는 기관들도 있고요.” 특히 코리아타운 한방무료진료를 10년간 진행하며 인연이 된 김희선 교도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원불교를 홍보해 교당으로 인연들을 이끌었다. “일본인 원 보 교도는 한국 테마여행과 교당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다 17년 만에 입교하셨어요. 모친이 열반 후 가족들의 동의를 구해서 원불교 의식으로 장례를 치렀죠.” 김성인 교도는 오사카교당 이안 봉불에 1억을 희사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5년 동안 하루 17시간씩을 일을 해서 월급을 모아 그 서원을 이루었다. “어떤 경계 속에서도 마음공부하며 나날이 진급하는 교도님들 덕분에 해외교화의 큰 보람을 느껴요.”
● 일본교구와 동경교당의 미래 계획은 무엇인가요?
“현재 일본교구에는 동경교당, 오사카교당, 교토선교소가 있습니다. 동경교당은 유연교도와 잠자는 교도 찾기를 시작으로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활동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특히 요코하마교당 법인사무소를 동경교당 주소로 이전하는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일본교구 내 전 재가·출가 교도들은 다시금 개척정신으로 어려운 만큼 마음의 힘을 키워나가고, 절실한 만큼 정성으로 공부·교화하고자 합니다. 특히 사실적인 법인관리 운영과 각 지역 특성에 맞는 교화로 일본 교화의 미래를 열어가는데 마음을 모을 것입니다.”
● 공부의 표준은 어디에 두시나요?
“저는 늘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미리 준비하는 데에 정성을 많이 들이죠. 제 스스로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땐 안심이 되고, 일을 당했을 땐 그 마음으로 처리해요. 그 일 그 일에 정성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대산종사의 세 가지 되어지는 진리인 ‘끝까지 구하라, 얻어지나니라. 진심으로 원하라, 이루어지나니라. 정성껏 힘쓰라, 되나니라’를 교화표준으로 삼고 ‘끝까지, 진심으로, 정성으로 일본교화가 되도록까지 할 뿐’이라는 자세로 교역생활을 하고 있다.
● 출가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저는 고향이 제주도이고, 출가 전 12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늘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이 있었죠. ‘이렇게 살다간 평생 욕심의 종으로 살겠구나’라는 자각이 들어서 가족들 몰래 출가를 준비했어요. 출근하던 차림으로 핸드백을 메고 영산선학대로 향했던 그 길이 아직도 생생해요. 돌고 돌아 늦게나마 찾은 길이지만, 이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많은 길 가운데 출가의 길을 가게 된 것에 다행함을 느껴요.”
● 해외교화에 서원은 언제부터 가지고 계셨나요?
“특별히 해외교화에 서원을 갖진 않았어요. 그런데 출가 전에 오사카를 여행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당시 교무님인 이수진 교무님께서 오사카교당 전화번호를 가지고 제주공항까지 나오셨어요. 신입 교도가 해외여행가는데 공항까지 나오신 그 정성에 감동되어 오사카교당을 물어물어 찾아갔지요. 그때 본 교당은 너무 좁고 어두웠어요. 교무님도 너무 고생하시는 것처럼 보였고요. 그런데 그 여행을 하고 딱 10년 후에 교무로 오사카교당에 부임했어요. 제주 출신으로서 제주인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교당에 온 것이 저의 ‘인연지’였던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국의 발전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재일동포들을 보면서 보은하는 교화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그. 해외교화를 준비하는 후진들에게는 “우리는 공부인이고, 인연지에 보은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환경에 구애되지 않고 자신 공부하고 교화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보람이죠.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개척하며 이루어가는 기쁨으로 살면 좋겠어요”라는 당부의 말도 전했다.
● 출·재가 교도들에게 남기고 싶으신 말씀은요.
“아직 일본은 한 걸음 한걸음 길을 만들며 가야하는 개척의 역사입니다. 스승님들께서 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셨기에 일이 수월하게 이루어졌고, 교도님들이 합력해주셨기에 오늘의 불사를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교화는 ‘셈을 잊고 되도록 까지, 끝까지 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겠습니다. 일본교화! 화이또!”
키워드#김법조 #일본교구장 #동경교당 #일본 #일본교화
조예현 webmaster@m-wonkwang.org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