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일제시대에 대한 추억 철학 관련 글 etc / 자유로운 상념들
2013. 1. 1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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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제가 중 1 때 돌아가셨는데... 어렸을 때 댓살과 창호지로 직접 연도 만들어주시고 나무를 깎아 팽이도 만들어주시고 같이 살면서 할머니와 같이 절 키워주신 분이죠.
1909년 생이신데 당시 풍습대로 18세에 조혼하셨습니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의 가라골이란 동네가 고향인데, 대대로 농사짓고 사는 상민 집의 셋째 아들이었는데 제법 먹고 살만했던 모양입니다. 증조할배는 씨름대회 나가 우승해서 황소도 타고 동네에선 장사로 소문난 분이었다는데 암튼 먹고 사는 건 괜찮았던 모양입니다.
증조할아버지는 셋째 아들인 우리 할배를 서울의 고종황제 어의 출신이라는(진짜인지는 모르나) 어느 한의사 밑에 도제로 보냈답니다.
근데 이 한의사가 허준에 나오는 것처럼 가르쳐주는 건 하나도 없고 1년 내내 작두로 약초 썰기만 시켜서 열받아서 도망쳐 고향으로 내려와, 1년 연상인 할매를 델고 일본으로 돈벌러 고고씽 하셨답니다.
할매는 상민은 아니고 아마도 잔반으로 추정되는 집안인데 그 동네에서 서당 훈장을 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더군요. 외증조할배는 태황제폐하 돌아가셨을 때 서울로 나귀타고 올라가서 상을 치르고 내려왔다는 것으로 보아 비록 상민 집안에 딸을 준 잔반이지만 나름 격식을 차렸던 분인 모양입니다.
이미 일제가 소학교를 보내는 것을 장려하던 때라 외증조할배가 할매를 소학교에 보냈는데 남자애들하고 손잡고 포크따안~스를 추는 것을 보고 기겁하여 바로 집으로 델고 와서 신식 학문은 하나도 못 배웠다더군요. 할배도 서당에서 한학을 몇년 배운 것이 학력의 전부였는데 한자는 그래도 다 쓰고 읽을 줄 아셨습니다.
암튼 그래서 우리 할배 할매가 간 곳이 시모노세키인데 이미 돌아가셔서 년도를 상고할 길은 없으나 대략 1928년 경으로 생각되는군요.
이 시모노세키에서 생선공장 노동자로 취업했는데, 할아버지가 그때 키가 180센치로 당시 사람들 중에선 월등한 장신이고 힘이 세셨다는군요. 증조할아버지도 씨름대회에서 소도 탄 장사 출신이었으니...
암튼 할배가 성실하고 나름 노동자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있었는지 일본인 사장이 계속 승진을 시켜 나중에는 부공장장(?)인가가 되어 휘하에 일본인 직원만도 수백명 거느리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시모노세키 생선가공공장이 당시 일본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공장이었다더군요.
태평양 전쟁 당시에도 동네 일본인들은 먹을 게 없어서 쫄쫄 굶는데 나름 생선공장 간부 정도 되어서 할배네는 먹을 것이 아주 풍요로왔답니다. 2층집으로 번듯한 양옥도 구입하여 살았고. 그래서 동네 일본인들이 먹을 것 얻으러 와서 알랑방구도 많이 뀌었다고 하더군요. 조선에서 징용 피해 일본으로 건너온 친척들도 자주 들락거렸고...
암튼 그렇게 일본에서 3남 5녀 낳고 나름 유복하게 살았는데, 태평양 전쟁 때는 제일 맏이인 큰고모를 히로시마 여학교에 진학시킨 상태였다는군요. 원래 원자탄을 맞고 요단강 건너가실 운명이었을 수도 있으나 다행히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동안 원자탄이 떨어져서 살았다고 합니다.
일본이 패망했을 당시에 할아버지는 일궈놓은 재산이나 지위가 아까워 일본에 눌러살고 싶어했으나, 할머니가 여기 있다가 어찌될지 모른다고 강권하여 집을 거의 똥값에 처분하고 조선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담에 대구에서 방직공장, 양계장 등을 했으나 재수가 없으셨는지 다 실패하여 돈을 다 까먹어버리셨다고 합니다. 박정희 군사정부가 갑자기 화폐개혁을 하는 바람에 어디 천장 속에 할매 몰래 돈을 감춰뒀던 것을 다 날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같은 거리에서 방직공장 했던 라이벌들 중에는 큰 갑부가 된 자들도 여럿 있었다더군요. 암튼 그래서 결국 8남매 중에서 대학 공부한 것은 장남인 우리 아버지 뿐이었지요.
제가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할아버지는 일본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많았고, 입버릇처럼 '일본 놈들이 정치는 잘했는데...' 뭐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참 법없이도 살 착한 분이었는데...
상민 출신에 맨몸으로 일본 건너가 태평양 전쟁 전까지는 나름 저팬 드림을 이루셨던 분이라 아무래도 기억이 미화되기는 했을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 위인전기 읽으면서 일제 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차별은 많이 안 했냐고 물어보면 "그런 게 없지는 않았으나 그렇게 심하지도 않았다."라고 하시더군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달리 일본에 살면서도 일본말 안 배우고 살림만 하셨는데, 가끔 고모들 데리고 목욕탕에 가면 일본 아낙들이 쳐다보면서 손가락질을 하며 '조센징이 어쩌고" 히히덕 거릴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벽력같이 호통을 치면 일본 아낙들이 기가 죽어 도망갔다고 하더구만요.
희한한 것이 상민 출신인 할아버지는 반일 감정이 없으셨는데 잔반 출신인 할머니는 일본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장수하셨는데 제가 대학교 때 일본어 공부 좀 해보려고 교재를 들다보고 있으면 "일본말을 뭐하러 배우냐"고 잔소리를 하시기도 하셨죠.
사실 나이드신 평범한 노인분들 중에 의외로 일제 시대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분들도 많더군요. 이게 개인마다 일제 시대에 겪은 경험이 달라 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 할배처럼 일제 시대에 대해 나름 나쁘지 않은 기억을 가진 소시민들도 하나 둘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야 뭐 드러내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잘 모르지만 말이죠. 박정희 시절을 겪어 본 사람은 어쩌구 안 겪어본 자들은 또 어쩌구 뭐 그런 이야기를 보고 문득 떠올라서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
아.... 우리 할배 할매 그립네요.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릴 것을 ㅠㅠ 할배 할매가 살아계신 분들은 많이 어깨도 주물러드리고 그러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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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느 노인의 일제시대에 대한 추억|작성자 다만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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