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5

松山 - 《가즈오 일가족 살해사건》 일제시대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들 가운데에는 가해자도 있었지만, 동시에 조선 사회... | Facebook

松山 - 《가즈오 일가족 살해사건》 일제시대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들 가운데에는 가해자도 있었지만, 동시에 조선 사회... | Facebook

《가즈오 일가족 살해사건》
일제시대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들 가운데에는 가해자도 있었지만, 동시에 조선 사회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며 인간적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도 존재했다.
가즈오는 경상도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 지주였다. 흔히 상상되는 착취형 지주와 달리, 그는 소작료를 수확량의 10분의 1만 받았고, 법이 허용하는 최소치조차 넘지 않았다.
생계가 어려운 소작인에게는 식량을 나누어주었고, 마을에 상을 당한 집이 있으면 일본인이라는 신분을 숨기지도 않은 채 가장 먼저 달려가 함께 울고 함께 일을 도왔다. 그는 통치자가 아니라 이웃으로 살았다.
그의 선행은 일회적 자선이 아니었다. 갈 곳 없는 조선인 고아들을 거두어 들였고, 숫자가 늘어나 1945년 무렵에는 사실상 사설 고아원 수준이 되었다.
가즈오 부부는 이 아이들에게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하지 않고 부모 역할을 자처했고, 아이들 역시 그들을 아버지, 어머니라 불렀다. 이 가운데 한 명은 동경제국대학까지 유학을 보낼 정도였다.
그럼에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상황은 완전히 뒤집힌다. 국가 권력이 사라진 공백 속에서, 그가 길러낸 조선인 청년들이 흉기를 들고 그의 집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가즈오를 ‘적’으로 규정했고, 이전의 관계와 은혜는 단숨에 말살되었다.
가즈오는 끝까지 항변하지 않았다. 자신이 일본인임을 부정하지도, 조선의 광복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쁨을 함께 나누자고 말했다. 돌아가라면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집단 폭력으로 살해되었고, 그 폭력은 개인의 분노가 아니라 집단의 선택이었다.
이어 벌어진 일은 더 참혹하다. 그의 아내는 집단 강간을 당한 끝에 사망했고, 시신은 모욕당했다. 이는 전쟁도, 투쟁도, 저항도 아니다. 명백한 살인과 강간, 약탈이었다. 피해자가 일본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였다.
남겨진 어린 딸 히미코는 보호받지 못했다. 며칠을 울다 굶주림 속에서 방치되었고, 결국 다리 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마을은 침묵했다.
이 사건이 특별한 예외였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1945년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남한 지역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 북한에는 소련군이 즉각 진주했지만, 남한에는 미군정이 들어오기까지 한 달의 공백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인과 그 재산은 보호받지 못했고, 폭력은 통제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 폭력이 한국 사회에서 체계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가한 살해, 강간, 약탈은 연구 대상이 되지 않았고, 기록되지 않았으며, 교육되지 않았다.
대신 조선인의 ‘피해’만이 반복되었다. 피해의 서사는 도덕적 면죄부가 되었고, 가해의 기억은 집단적으로 삭제되었다.
조선은 일본 통치 아래에서 농업사회에서 자본주의 공업사회로 급속히 이동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현실을 부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 통치가 끝나는 순간, 많은 조선인들은 패전국 일본의 일부로 남는 것을 거부했고, 그 선택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문제는 그 전략이 폭력과 약탈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일본인의 재산은 ‘적산’이라는 이름으로 몰수되었고, 남북한 정권은 이를 아무런 도덕적 문제의식 없이 분배했다.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국가의 승인으로 정당화된 약탈이었다.
만약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혹은 휴전이라도 했다면 조선 사회, 조선인들의 태도는 같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충성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태도는 원칙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바뀌었다.
이 글의 불편함은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는 피해자일 때만 도덕을 말하고, 가해자가 되는 순간 침묵한다. 이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한, 역사는 성찰이 아니라 반복된 자기연민에 머물 수밖에 없다.
※ 13원의 기적 기프트 보내기는 글쓰기에 큰 힘이 됩니다 ㅅㅗㅇ













Park Yuha
북한도 소련군이 진주하긴 했어도 전혀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남한보다 훨씬 참혹했죠. 물론 도와준 조선인도 많았습니다. 그 양쪽을 봐야 하지만 가해자의 피해에 대한 주목이 우선 필요하겠지요.
(얼굴을 보여주셨네요. 성함도 밝혀 주시면 더 좋을 듯 합니다.)
김종재
저의 부친은 1920년 생 이었고 모친은 1923년생 이었읍니다.저의 부모님은 각각 19세 16세때 혼인하여 12남매를 생산하였지만 3명은 유아시절 사망하고 9남매가 성장했지요.
저가 59년생 열번째이므로 거의 막내 수준이었지요.
어린시절 엄마또래의 지난 얘기들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그중 일본시절의 이야기가 많았읍니다.
한마디로 일본사람들은 예의와 경우가 바르고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배신하지 않는다고 들었읍니다.
어린시절 그런얘기를 듣고 자라서 그런지 그 이야기는 저의 삶의 인생관이 되었읍니다.
이경희 
저희 아버님도 일본에서 일했는데 임금 제대로 잘 받고 일했다고 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불편해지는 이 상황
사실에 기반한 역사가 아니라 떼법에 의한 역사관...
불편해도 우리 역사인데...
기사백
약한자에게는 강하고 강한자에게 약한 한국인의 특성을 알았더라면.....
오성권
허~
너무 가슴아픈 사건이네요
일본 이라는 국가가 미운거지 일본인이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군요
하긴 사람은 사람이지요
너무 가슴 아픈 사건 이었네요~
매트로남
‘적산가옥’
Heung Gap Park
글 잘 읽었습니다. 위에 적시한 내용의 출처가 궁금합니다.
Author
松山
Heung Gap Park 제가 전해받은 책에 있는 내용입니다
책 제목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Heung Gap Park
松山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글들 고마운 마음으로 잘 읽고 있습니다.
Author
松山
Heung Gap Park 네 선생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ost relevant" is selected, so some replies may have been filtered out.
Sung Hoon Kim
유전자속에 흐르는 '왕따문화'와 herd mentality!,경험으로 "내재적 이해",를 하게됨
Ryan Roh
그런일이 있었다니.
Author
松山
Ryan Roh 많았다고 합니다
Kyu Flo
한가지 일례를 가지고 조선인의 도덕성을 성찰해 보자고 한다. 그래서 성찰하면? 이런 말장난으로 진정 하고싶은말은 뭔가? 성찰의 끝은 뭐 high moral utopia인가?
Sang Hyup Lee 
그랬을 개연성이 많지요
Jeong Il Kwon
이런일은 한국사람이 내가 볼때 집단 최면 주의에 빠지면 누구를 포인트로 잡아 공격하는 일이 예전 부터 내려왔습니다 요즘은 이런 풍습이랄까 습관이랄까 좌우지간 서구 사고가 들어오고 사라졌죠
Star sender
Jae Young Shin
한국인의 DNA는 정말....
Star sender
최경현
10 sent
강대종
도덕을 말하지만 자기 자신은 예외로 한다. 남탓 ,남흉보기에 익숙한 조선인 유전자는 지속되고 있음.
Jongkwan Kim
정말 의미있는 글을 쓰셨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피해의식이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지 못하고 객관화하지 못하는 모순속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Sk Kang
입이 있지만 말을 잇지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도 일본에 대한 증오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요
김기현
역시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과 대변보는 사람의 입장차이 같네요 급해서 동동거릴땐 뒤에사람 생각해서 급하게 볼일을 볼것처럼 생각했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앉으면 제볼일부터 생각하는 안일함 같은거요 ᆢ
창연한
기적의 논리네 수많은 조선인이 전쟁터에서 죽어나가고 탄광에서 뼈빠지게 일하다 죽었는데 일본놈 몇 명 죽였다고 일본 두둔하냐 오늘날에 친일파로다
Jack K Yang
창연한 역시 즐라도

9h


Reply





창연한

Jack K Yang You must not go to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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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 13:50ㅣ최종 업데이트 20.06.02 13:50
일제강점기 소설가 '지하련' 주택, 철거냐 보존이냐
창원시 경관심의위 '이전 보존' ... 마산YMCA "현지 보존하라" 촉구
윤성효(cjnews)




▲일제강점기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지어진 소설가 지하련의 주택. ⓒ 경남도민일보관련사진보기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6월 2일 창원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설가 지하련 주택 보존을 촉구했다. ⓒ 윤성효관련사진보기
 
일제강점기 소설가 지하련(池河蓮, 1912~?, 본명 이숙희, 필명 이현욱)이 살았던 창원마산 주택을 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창원 마산합포구에 있는 '지하련 주택'은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창원시 경관심의위원회가 이전 보존을 결정한 것이다.

이 주택은 상남산호지구재개발 정비사업에 포함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지하련 주택'은 일본식 시멘트 기와를 얹은 2층 목조 양옥이다.

지하련은 1930년에 동경 소화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고, 1935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임화(林和)와 결혼하였고, 1940년에 결핵 요양차 마산으로 왔다.

그는 1940년 12월에 단편소설 <결별(訣別)>이 평론가 백철(白鐵)에 의해 <문장>에 추천되어 등단했고, 1945년 8.15 해방 직후 남편 임화와 함께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다가 1948년 임화와 함께 월북하였고, 아직 행적을 알 수 없다.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2일 창원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창원시가 주택을 매입해 현지 보전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창원시가 과거와는 달리 근대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인식과 의지를 높이고 있지만 '지하련 주택'은 재개발로 인한 철거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허물 수 있다"고 했다.

마산YMCA는 "창원시 경관심의위원회가 '지하련 주택'에 대해 이전 보존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문화재를 보전하면서도 사유지인 재산권을 모두 감안해 재개발 정비사업 조합의 의견을 존중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용마산 산호공원 기슭의 2층 집은 고향을 잃고, 실향민처럼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어딘가로 이주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하련 주택'에 대해, 이들은 "계단 손잡이와 붙박이장, 천정까지 섬세하게 장식을 하는 등 당시엔 마산 최대, 최고의 저택 중의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마산YMCA는 "독립운동까지 했던 지하련 오빠들까지 월북을 하며, 집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며 "주택은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세월을 못 이겨 손상된 부분이 많고, 2015년엔 큰 화재까지 발생해 내부시설이 크게 파손돼 문학적, 건축적, 역사적 의미가 큰 창원의 문화자산이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창원시는 올 가을 90여 개의 근대건조물 전수조사를 통해 향후 보존대책을 세울 계획으로 '지하련 주택'은 보존 가치가 높게 평가된 것으로 안다"면서 "창원시와 창원시의회의 신속하고, 주도적인 조치를 바란다"고 했다.

#지하련#창원시#근대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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