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모다 쇼(石母田正)의 <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에 관한 몇개의 글을 읽어보았다. 일단, 기분이 나쁘다. 80여년 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이 책의 실증적 가치는 이미 많이 퇴색했으며, 일정 정도 사상사 연구의 소재로써만 다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 담겨 있는 '사상적 가치'를 좀더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기껏해야 천황제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국민'의 창출을 지향했던 저작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마르크스주의 저작을 다루면서도 어떻게 마르크스주의, 스탈린주의에 대해 이렇게까지 한마디 말들이 없을 수가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도대체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문헌을 다루면서도 마르크스주의와 연결시키지를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다는건가.
이런 식의 비평들은 대부분 이시모다 쇼(와 그가 포함된 전후 역사학 전체)를 "근대"라는 아주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틀에 넣어 파악하는 우를 범한다. 탈근대적 관점에서 전후 역사학이 지닌 근대주의적 측면을 비판하는 작업이 아주 의미는 없을 수 있겠지만 지금 와서도 그런 짓을 해야 할까? 1990년대 이후 30여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역사의 귀환'이 논해지고 있는 시점에서까지 그런 식으로 비평을 해야 되는지 의문스럽다.
그런 식의 비평은 최종적으로 사회주의적 근대(=소련의 국가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근대는 "근대"라는 차원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아무런 차이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회의주의, 허무주의로 귀결되어버리고 만다. 예컨대 최종길이 이시모다 쇼에 대해 비평하며 주장했던 바가 그런 거였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이시모다에 대한 비판도 비슷하다. 봉건제론을 전유한 유럽중심주의의 변종이었다는 것이다. 근대화론의 변주에 지나지 않았기에 일본의 전후 역사학, 전후 마르크스주의는 최종적으로 근대국가에 흡수되어버렸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과연 그러한가.
이런 식의 해석이 갖는 가장 큰 '해악'은 그 자체보다도 이시모다의 주장을 '너무나도' 뻔한 것으로 상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비판의 여지조차도 없애버린다는데에 있다. 마르크스주의도 제대로 모르는 이들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한계부터 먼저 배우는 시대의 비극이다. 이시모다에 대한 여러 '새로운(?)' 해석들이 기껏해야 이시모다에게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으로 설명되지 않은 이런저런 측면이 있다고 하거나, 그도 아니면 당대의 현실과 완전히 결합시켜서 운동사의 일환으로 해석해버리는 것밖에 없는 건 바로 이런 맥락이다. '근대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라고 규정을 해버리니 그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천황제에 기초한 '국민' 정체성을 비판하기 위해 새로운 "민족형성"을 논했다고만 하고 끝나버리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가 이런 식의 인식이 보여주는 어떤 지적 오만함이랄까, 그런 걸 납득할 수가 없다. 이시모다나 전후 역사학을 비웃는 이들이 행하고 논하는 정치적 "실천"이란, 정치적 "대안"이란 무엇인지, 얼마나 탈근대적 혹은 비근대적인지 궁금하다. 기껏해야 저 길바닥에 앉아서 응원봉이나 흔들어대는 말랑말랑한 애송이들을 높게 평가하는 정도 아닌가? 이건 근대가 아닌건가? 이런 애송이들 높게 평가하는 주제에 죽창을 깍고 총칼로 무장해서 국가를 전복시키고 천황의 목을 따버리겠다는 이시모다가 그렇게 우스운가? 이해할 수가 없다.
근대의 지양은 언제나 근대 자체의 완전한 실현으로부터 온다. 근대성 경쟁을 통한 부르주아 민족국가의 전복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좌파가 우파로부터 민족, 자유 등의 수많은 언어들을 탈취하여 부르주아지들을 고작해야 "개인"의 옹호자로, 개별화시키고 원자화시켰던 역사를 그렇게 간단하게 '근대주의'라 매도할 수 있는가. 1950~60년대 좌파가 민족을 외치고, 우파는 기껏해야 개인을 옹호하던 시대가 1970~1980년대부터 좌파가 개인을 논하고, 우파가 민족을 설파하는 시대로 전환되는 흐름을 왜 읽지 못하는건가.
이시모다의 <중세적 세계>가 당대의 상황에 대한 치밀한 인식에 기초하여 그 자체로 "사회주의"를 구현해내고자 하는,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던 정치적 의견의 표명으로 독해될 여지는 없는가. 그의 민족이론이 그 자체로 사회주의로의 도약을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는건가. 레닌-스탈린에게 있어 '민족문제'가 문제가 되는 건 동유럽이 서구제국주의와 마주했을 때였듯이, 이시모다 쇼에게 있어 고대가, 천황제가, 민족이 문제가 되었을 때는 미국의 점령이 이뤄졌을 때 아니었던가. 반복해서 출현하는 고대세계를 끝낸 게 내부가 아니라 "외부"라는 이시모다의 인식에서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형성이 완료된 서구가 창출하는 '식민지 문제'와 다민족제국의 '민족문제'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스탈린의 사회주의론과의 접점을 찾으려고 하면 안되는건가. 스탈린주의적인 사회주의가 역사적 파국으로 나타났으니 거기서 아무것도 끄집어내지 못한다는 말인가.
좀 다른 해석을 보고 싶다. 매번 계속해서 사회주의적 근대도 근대의 일종이라며 그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무시하거나 사회주의는 도외시하고 다른 부분에서 새로운 측면을 찾으려고 변죽만 울리는 해석이 아니라 그 자체에서 새롭고 참신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고 하는 해석이 보고 싶다. 없으면 내가 써야지 뭐.. 아,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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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ara Bae
본문에 동의하고 다만 저는 다른 의미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근대라는 동일한 축으로 환원했던거 같네요. 흔히 자본주의를 옹호하거나 반공주의를 내세우는 쪽에서 본문의 사회주의 근대를 자본주의 근대라는 정파에서 벗어난 사짜 근대라거나 아니면 일시적인 일탈 수준으로 격하하는걸 보니 "당신들이 격하하는 그것도 당신들이 자랑스럽게 근대로 내세우는 그것과 근본적으론 같습니다"라는 의미에서요.
47w
Reply
손민석
Basara Bae 그럴 수 있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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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세적 세계의 형성 |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시모다 쇼 (지은이),김현경 (옮긴이)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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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전자책 18,000원
책소개
10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일본 이가국 남부의 산간지역에 존재한 장원의 역사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인간이 살아가고 투쟁하며 그렇게 해서 역사를 형성해 나간 하나의 세계"로서 장원을 바라보며, 그 역사를 추적하면서 '중세적 세계의 형성'이라는 큰 역사의 조류를 탐색하고자 한다. 무사가 영주로서 재지(在地)를 지배한다는 '재지영주제론'으로 일본 역사학에 대단한 발자취를 남긴 이 고전은, 일본을 이해하는 또 다른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목차
머리말
개간 서문
초판 서문
제1장
후지와라노 사네토
제1절 소령의 성립
제2절 경영과 몰락
제3절 영주와 도다이지
제2장
도다이지
제1절 구로다장의 성립
제2절 고대적 논리
제3절 두 가지 법
제3장
미나모토노 도시카타
제1절 가계
제2절 무사단의 성립
제3절 중세의 패배
제4장
구로다 악당
제1절 고대의 재건
제2절 중세적 세계
제3절 종말
초판 발문
구로다장 간략 연표
《서평》 이시모다 씨의 『중세적 세계의 형성』 | 사토 신이치
문고판에 부쳐 | 이시모다 쇼
해설 | 이시이 스스무
역자 후기
이시모다 쇼 논문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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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시모다 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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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1986년. 일본의 역사학자. 1937년, 도쿄대학 문학부 국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아사히신문 기자를 거쳐 1947년부터 호세이대학 법학부 강사, 1948년에 호세이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981년에 정년퇴직하여 호세이대학 법학부 명예교수가 되었다. 또한 역사학연구회 간부를 역임하였다. 전공은 고대사, 중세사로 저작과 논문이 다수 있으며, 2차 대전 이후의 일본 역사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는 『고대 말기 정치사 서설』, 『일본사 개설 Ⅰ』(공저), 『역사와 민족의 발견』(정편, 속편), 『일본의 고대국가』, 『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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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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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역사학부 강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교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전공은 일본고중세사이며, 주로 헤이안시대(9~12세기)의 귀족사회와 신분질서를 연구했다.
논문으로 「일본 헤이안시대 중후기 家格의 형성」(『동양사학연구』 158, 2022), 「일본 고대사 연구의 '왕조(王朝)' 개념」(『한국고대사연구』 110, 2023) 등이 있으며, 공저로 『고대 동아시아의 수군과 해양활... 더보기
최근작 : <일본사 시민강좌> … 총 5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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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보안 엔지니어 입문 가이드>,<쿨한 두 사람은 겉보기완 달라 2>,<최약 테이머는 폐지 줍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5>등 총 1,088종
대표분야 : 만화작법/일러스트 2위 (브랜드 지수 116,212점), 요리만화 6위 (브랜드 지수 158,812점), 라이트 노벨 15위 (브랜드 지수 61,52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전환기 일본사의 큰 흐름
10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일본 이가국 남부의 산간지역에 존재한 구로다장이라는 한 장원의 역사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저자는 토지 소유를 기초로 하여 편성되는 봉건적인 계층의 체제로부터 중세가 성립된다고 보았다.
"인간이 살아가고 투쟁하며 그렇게 해서 역사를 형성해 나간 하나의 세계"로서 장원에 주목하고, 그 역사를 추적하면서 '중세적 세계의 형성'이라는 큰 역사의 조류를 탐색하고자 한다.
겉으로는 한 장원의 역사라는 서술 양식을 취하지만, 실은 고대국가에서 중세 사회로 넘어가는 사적(史的) 전개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사적 연구이며, 더 나아가 단순한 일본 중세사를 넘어선 세계사적 발전의 법칙도 시사하려고 한다. 저자는 '중세적 세계의 형성'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건을 일관된 입장에서 날카롭게 고찰하며 탁월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좁은 공간을 무대로 하는 인간 군상이 그보다 넓은 일본 사회의 역사 전개와 맞물리다가도 어긋나는 양상에 대해 보편과 특수를 배합시킴으로써 흥미롭게 서술한다.
무사가 영주로서 재지(在地)를 지배한다는 '재지영주제론'으로 일본 역사학에 대단한 발자취를 남긴 이 고전은, 일본을 이해하는 또 다른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접기
지금이라도 번역되어서 다행입니다.
ktf_ycraah 2024-12-19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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