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자본주의 혁명의 무기'가 되려면
이명재 에디터promes65@gmail.com다른 기사 보기
수정 2025.12.14
양춘승 『ESG 자본주의』가 던지는 '출사표'
체제의 도덕적 외피 역할, '자기기만' 될 수 있어
"도구에서 규칙으로, 조용하나 결연한 투쟁 나서자"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5C 상승해 관측 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1970년 이후 야생 척추동물 개체수는 73% 감소했으며, 전 세계 상위 10%가 전체 부의 76%를 소유하는 극심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인류는 9가지 ‘행성의 한계’ 중 7가지를 이미 초과한 상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의 현주소다.
기후 위기와 불평등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금,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기업과 자본시장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이 ESG 보고서를 발간하고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현실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ESG는 정말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필요한 상황이다. 『ESG 자본주의: 지속가능한 세상을 찾아서』는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 ESG는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가, 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렬한 답변을 담은 책이다.
ESG에 대한 책은 넘쳐나지만 ESG에 대해 이렇게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책은 거의 없을 듯하다.
저자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담론은 넘쳐나지만, 담론의 과잉에 비해 실행은 빈곤하다고 진단한다. 그 과잉과 빈곤의 불균형 속에서 길을 잃은 ESG의 미래를 묻고, 'ESG 자본주의'라는 대담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저자는 현재의 ESG가 공시는 정교해지고 데이터는 넘쳐나지만, 정작 자본의 흐름과 기업의 핵심 의사결정은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가 단순히 몇몇 기업의 '그린워싱(Greenwashing)'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딛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모순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다섯 가지 신화를 해체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자본의 무한 대체 가능성', '절대적 탈동조화', '시장 가격 만능주의', '기술 만능주의', 'GDP=복지'가 그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믿어온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전례 없는 풍요를 가져다준 진보의 동력이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외부효과의 전가, 불평등 심화, 무한성장 압력이라는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같은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서 제시된 것이 ESG지만 현재의 ESG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체제의 도덕적 외피 역할을 하며 현실을 안주하게 만드는 '자기기만'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ESG가 단순한 공시 '도구(Tool)'나 리스크 관리 기법에 머무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명료하다. ESG는 이제 '도구'가 아닌, 시장 참여자 모두가 따라야 하는 '규칙(Rule)'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ESG를 툴(Tool)에서 룰로'라는 명확하고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자면 ESG가 자본 배분, 거버넌스, 가격, 계약, 회계 등 시장의 핵심 작동원리 자체를 바꾸는 언어로 번역되고 내재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사회적 가치가 기업의 자본 조달 비용, 제품 가격, 공급망 계약, 경영진 보상에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시스템, 즉 'ESG 자본주의'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 책은 IPCC, World Bank, OECD 등 국제기구의 최신 데이터와 세계적 석학들의 연구도 풍부하게 인용하며 주장의 신뢰성과 학술적 깊이를 확보했다. 동시에 현장의 실무적 통찰을 결합해 이론과 실천의 균형을 이룬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의 진보적 역할도 균형 있게 인정한다. ESG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시키려는 건설적 태도를 견지한다. ESG의 현실에 대한 단순한 비판을 넘어, 지속가능성의 역사적 진화 과정과 다양한 이론적 배경을 짚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 경제 모델까지 폭넓게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공시 제도 도입 촉구 헌법소원 제출에 앞서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9.20 연합뉴스이 책은 ESG의 미래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권할 만하다.
기업의 경영자 및 ESG 실무자에게는 보고서 너머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전략적 통찰을 제공한다. 금융기관의 투자자 및 애널리스트에게는 ESG를 자본 배분 결정에 통합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정부 및 국제기구의 정책 입안자에게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효과적인 제도 설계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미래의 대안을 고민하는 학생과 시민에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이해하고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지적 무기'를 선사한다.
ESG를 공시의 언어에 갇힌 자기기만이 아닌 자본배분과 거버넌스의 언어로 내재화한 ‘자가치유책’으로 삼자는 저자에게 이 책은 하나의 '출사표'가 되고 있는 듯하다. 지속가능성을 구호가 아닌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자는 ‘조용하지만 결연한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출사표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의 위기,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내재된 자기모순의 결과를 극복할 무기”를 독자들에게, 시민들에게 제시하며 저자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행동 지침’을, 시장과 민주주의를 다시 접속시키는 규칙을 다시 쓰자고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결연한 출사표는 170여 년 전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는 저 유명한 <선언>을 연상케 한다. 그 선언의 필자의 이름 칼(Karl)을 자신의 영문 이름으로 쓰는 저자는 <선언>이 전망한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의 사회체제로의 혁명 대신 자본주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구할 ‘자본주의 혁명’에 대한 모색을 집약해 낸 것이다. 학창 시절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를 주동,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이래 50년간의 운동가로서의 삶의 한 결산이기도 하다.
"우리의 목적은 크고도 단호하다"고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저자는 'ESG 자본주의'로써, 말이 아니라 돈과 규칙과 행동으로써, 지속가능성의 길을 넓히는 일을 우리가 함께 감당하자고 조용하나 결연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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