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회고록...민주화운동이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거였구나!
2022.10.01
아무리 경험과 지식이 많아도, 나이 들어 죽을 때가 되어도 역사와 현실에 대한 통찰은 안 생기는구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이해찬 회고록을 읽었습니다. 발간 일자가 9월 21일이니, 9월초 서점에 깔린 것 같습니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았지만, 한국 정치사에서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아마 가장 정치적 족적이 큰 인물이자, 저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 이해찬의 회고록이라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09년 9월 초 제가 낸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의 뒷표지에 추천사가 있는데, 거기에 이해찬의 추천사가 있습니다. "참여정부를 평가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보아야 할 책중의 한 권이다(이해찬 전 국무총리)"
2009년은 이해찬이 그야말로 야인으로, 재단법인 광장의 이사장으로 있던 시절인데, 우리(사회디자인연구소)와 동지적 유대감과 동병상련의 감정을 갖고 이런저런 교류와 협력을 제법 할 때입니다.
이해찬은 196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권이 낳은 인물 중에서 가장 역할이 큰 사람입니다. ‘이해찬의 한계’가 바로 ‘민주화운동권의 한계’라 봐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겁니다. 7선의원(출마한 선거는 다 당선), 당대표, 책임총리, 장관‥.대선, 총선, 인수위, 정당, 재야운동판에서는 항상 ‘기획’ ‘전략’ ‘정책’을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지략가 역할을 했습니다.
그가 한 주요한 행위와 결정들은 근 40년 이상 저 같은 사람의 운명을 큰 틀에서 흔들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가 기획해서 발간한 책들(해방전후사의 인식 등)과 광장서점을 열어 유통시킨 책들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비판적 지지, 평민당, 김대중/노무현정부, 민주통합당, 2020년 총선(당시 민주당 대표)과 이재명의 민주당까지‥.
길게 쓰려면 몇 십쪽이 넘을 것 같아 짧게 촌평만 하렵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만 마음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민주화운동이 결국 이것밖에 안 되는 거였구나! 자기 성찰이 없으니, 아무리 경험과 지식이 많아도, 나이 들어 죽을 때가 되어도 역사와 현실에 대한 통찰은 안 생기는구나!
책에서 몇 번이나 자신의 꿈이 "대한민국 민주화"와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이라면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든 성과를 얘기합니다. 당원 저변의 변화, 지지층의 확대, 공정 경선 제도의 안착 등‥. 그런데 그 결과가 희대의 말바꾸기 달인 이재명 후보·대표요, 정치훌리건 ‘개딸들’이 주도하는 민주당이요, 검수완박, 박진 해임건의 통과 등 다수결의 폭거입니다. 이해찬은 민주정과 폭민정, 중우정이 너무나 가깝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큰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그가 대결한 주적이 무엇이었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면 됩니다. 이해찬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로 대표되는 정치세력과 권력을 놓고 싸웠고, 3번 이겨서 정권을 만들었습니다. 본인은 민주화를 위해, 민주적 국민정당을 만들기 위해 싸웠다고 자부하는데, 실은 저쪽을 권좌에서 쫓아내기 위해 싸웠을 뿐입니다.
책은 무려 567쪽인데 1998년 2월~1999년 5월까지 교육부 장관 시절의 얘기를 무려 41쪽이나 할애하고 있습니다. 2010년 전후하여 그와 오찬을 할 때도, 교육부장관 시절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의아해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때가 자기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존망을 위협하는 인구구조(초저출산)와 공적연금•건강보험•국가재정•주력산업•교육실상•지역균형(지방소멸)•정신문화 퇴락 등 다방면의 치명적인 위기에 대한 성찰이나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위기의 뿌리가 자신이 큰 힘을 행사한 정치와 정부가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통합할 능력을 상실한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자신이 큰 책임이 있는 정당과 정치리더십의 저열화와 정치갈등의 저질화 현상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책 뒷표지에 보니 백낙청과 유시민이 추천사(?)를 썼습니다.
백낙청은 "그가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에 골몰했다면 나는 촛불혁명을 기억하고 진전시키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민주적 국민정당의 처참한 몰골에 대한 성찰이 없는 자가 촛불혁명을 진전시키는 일을 한다고?
유시민은 발문을 썼는데, 그 제목이 ‘어느 공적인 초상입니다’ 입니다. 유시민 스스로는 철저히 이기적으로 살다 보니(이건 유시민을 아는 사람은 다 인정할겁니다. 이를 자유주의로 포장했지요), 이해찬의 비이기적인 모습, 진영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나 봅니다. 사실 이해찬은 유시민이나 수많은 586운동권 선수들이 가지지 못한 덕성이 바로 진영의 대의에 비교적 충실히 복무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공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해찬의 공(public)은 진영이지 국민, 국가공동체가 아닙니다. 이해찬의 힘도, 그의 패악도 다 여기서 발원합니다.
큰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그가 남긴 것이 뭔지 봐야 합니다. 이념이나 이론, 큰 아젠다나 프레임, 건강한 정치조직(정파나 정당), 훌륭한 정치인 등‥. 냉정하게 보면 이해찬에게는 거의 없습니다. 소소한 정책적 성과는 좀 있습니다. bk21사업, 교원정년 62세 단축, 학교 촌지 추방 등.
이념, 이론, 아젠다는 남긴 것이 없고(적폐 궤멸과 20년 집권론?), 남긴 인물은 요즈음 이재명과 더불어 이름을 떨치는 이화영(쌍방울 뇌물로 구속된 이해찬 보좌관 출신)일까요. 유시민과도 각별한 인연이고! 그가 중요한 부하들과 동지들을 보면 그 ‘본체’를 압니다.
그래도 이해찬 같은 사람이, 이런 회고록을 써 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은 한국 지식사회와 정치사회에 꽤 의미있는 책으로 보입니다. 정치인의 책은 대부분 출마용으로 자화자찬 일색인데, 이 책은 다릅니다. 이 책 하나로, 저는 이해찬이 그동안 저지른 역사적 패악의 50%는 감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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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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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의 유명한 지략가요, 탁월한 수완가 이해찬이 갔다.
2022년 여름 겨우 70세에 회고록을 내는 것을 보고, 또 종종 TV화면에 비치는 얼굴을 보고 얼마 못가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때이른 회고록을 출간하던 시절에는 (건강도 시원치 않아) 스스로 인생을 정리하는 모드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인가 기력이 좋아지셨는지 전세계를 돌아다닐 일이 특히 많은 민주평통수석부회장을 맡더니, 그만......
우리 같은 86운동권들에게 1940년대생 장기표(작고), 김근태(작고), 이부영이 장군이라면, 이해찬은 1급 작전참모 같은 존재였다. 나야 최말단 소총수나 기껏해야 분대장 같은 존재고. 그런 점에서 1970~80년대 민주화에 대한 '공헌'은 나 같은 사람의 백배 천배는 될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할 지, 즉 위치 방향 감각 부실 내지 역사와 민주화에 대한 성찰 통찰에 게으르다보니, 40대 이후 죽기까지 30여년은 청년시절의 공을 압도할만큼 '과오'가 너무나 커 보인다.
이해찬의 숱한 언행을 종합해 볼 때, 이해찬과 운동권 다수파가 생각하는 민주화의 완성은 아마 친일, 독재, 냉전, 기회주의 세력의 후예인 국힘과 보수를 내란세력으로 규정하여, 완전 퇴출, 박멸한 후, 민주진보의 전일적 지배체제(일당 독재)를 최소 몇 십년 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해찬의 말과 글(책)과 행위를 보면, 그의 역사관, 세계관, 피아관과 노선은 7080년대 운동권 화석의 전형이다. 그래서 이런 추측을 하는 것이다.
2008~10년에는 이해찬의 재단법인 광장과 사단법인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제법 친한 관계였다. 사실 그 때는 한국미래발전연구원과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와도 그랬다. 노무현 자살(2009년 5월 23일) 이전까지는 친노로 찍한 정치인들은 이른바 폐족 내지 정치건달 신세였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으로 내가 2009년에 출간한 <노무현 이후>의 책 뒷표지에는 이해찬의 추천사가 있다.
그 때 우리 연구소 멤버들과 이해찬 이사장이 식사를 길게 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얘기가 (그가 총리를 한 참여정부 시절이 아니라) 그가 교육부장관을 한 김대중 정부 시절이라서 약간 놀랐다. 국가와 정책에 대한 고민 수준이 너무 얕아서도 놀랐다.
2009년 전후해서 재)광장과 사)사디연은 다양한 교류와 협력 사업이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이해찬이 거의 매일,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드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보고 오래지 않아 이해찬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화면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도!
<이해찬 회고록>은 두어번 정독을 했다. 민주화운동과 민주당에서 그 위상이 대단히 높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서평을 자유일보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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