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친일 - 반일을 넘어 탈식민의 성찰로 검색
조형근 (지은이)역사비평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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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친일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아주 분명하고 명확한 이분법의 논리와 흑백논리에 익숙해져 있다. 고민의 여지가 별다르게 필요 없는 문제로 여겨졌다. ‘친일’은 오늘날 한국 사회 문제의 모든 기원이기에 ‘반일’의 기치로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 ‘친일’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단순히 악랄하고 비열하며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친일파)’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일제와 친일파가 모든 악의 근원이고 현대 한국 사회문제의 기원이라는 아주 익숙한 ‘반일’의 믿음을 넘어, 우리 속에 내재하고 습속화된 친일의 욕망과 구조를 비판한다. 그렇다고 제국과 식민지의 ‘공모’를 드러내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 보편적이고 절실한 ‘탈식민’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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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바람보다 빨리 눕는 풀의 고민에 대하여
1장. 민족주의, 제국의 욕망과 동행하다
가슴 벅차오르는 만주 벌판 / 『남방의 처녀』, 식민지인이 꾸는 제국의 개꿈? / 「붉은 산」: 제국의 국책과 조선인 민족주의의 잘못된 만남 / 팽창 욕망을 정당화한 식민사학, 만선사관과 반도적 성격론 / 황군 깃발 아래 백마 달리던 고구려 쌈터로 / 일본제국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조선인 / 진정한 친일 청산이 필요한 곳
2장 식민지근대화론 넘어서기
어쩌다 일베가 될까?: 일제시기의 쌀 ‘수출’ / 쌀 수출의 시장 메커니즘: 『탁류』의 사례 / 생산자 농민의 삶 / 식민지근대화라는 트라우마? / 식민지근대화론: 일제시기에 근대적 경제성장이 일어났다? / 식민지근대화론이 드러낸 한국 학계의 초상 /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 농지개혁 없이 근대화가 가능했을까? / 먼저 파이부터 키우자는 주장 / GDP 중심의 세계관을 넘어: 제헌헌법을 보라
3장 실력을 쌓아서 좋은 일 하자는 말
“힘을 키워서 세상을 바꿔라” / 식민지에서 의사로 산다는 것 / 조선인 의사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민족 차별 비판과 사회적 연대감의 계기를 이루다 / 의사들, 신지식의 대표이자 인격자가 되다 / 누가 악덕 의사였나? / 유상규의 격분과 조선인들의 ‘값싼 동족애’ / 식민지 의사들의 마지막은 / 식민지 전문가의 행복, 좁고 위태로운 길
4장. 프랑스와 독일의 과거사 청산: 역사에는 단판승부가 없다
과거사 청산을 잘한 프랑스와 독일? / 한국-일본과 프랑스-독일 관계를 비교해 보면 / 레지스탕스의 나라 프랑스라는 신화 / 비시 정부 불법화를 통해 숨기려 했던 것 / 다시 시작되는 과거사 논쟁: 클라우스 바르비의 경우 / 폴 투비에, 거짓에 기초한 단죄 / 르네 부스케, 교수형에 대한 밧줄의 협력? / 모리스 파퐁, 정계에서 출세하고 천수를 누리다 / 과거사 청산의 신화가 가린 감추고 싶은 진실 / 과거사 논쟁: 현재진행형의 정치 / 독일의 양심, 귄터 그라스의 나치 친위대 경력 / 나치 과거사 극복의 전개 과정 / 끝나지 않는 나치 과거사 : 정규군 범죄 / 타자에 대한 정죄와 자신에 대한 윤리적 성찰
5장 역사의 단죄와 성찰: 당신은 친일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아돌프 아이히만과 한나 아렌트 / 보통사람의 윤리적 책임: 창씨개명의 사례 / 창씨개명, 따르면서 비틀기 / 보통사람은 역사의 관객일까? /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패턴이나 법칙을 찾아내기? /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자기 삶의 무게를 달아보기
에필로그: 역사라는 공유재를 위하여
책속에서
P. 43 만주 벌판의 회복을 꿈꾸고 웅혼한 대륙적 기상의 회복을 촉구하는 한국 사회의 반일 민족주의는 어떨까? 거기에 일본제국의 수직성·폭력성을 극복하려는 담대한 성찰이 담겨 있을까? 단지 일본을 반대하고 증오하는 것일 뿐, 일본이 남겨놓은 수직의 폭력과 강한 것에 대한 열망은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 44 콤플렉스의 치유를 위해 필요한 것은 팽창주의적 서사와 욕망이 아니라, 그 서사와 욕망이 일으킨 비극에 대한 통찰이다. 한때 거기에 부화뇌동해서 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사실에 대한 냉정한 자기비판이다.
P. 57 일제시기의 쌀 ‘수출’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지주와 산지 매집상, 수입상, 판매상, 창고업자, 미두장의 투기꾼들이 제각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진술 속에는 막상 쌀을 생산하는 조선인 농민의 삶이 통째로 빠져 있다. 그들의 고된 노동, 고율의 소작료, 대부분 소작농이 전담하던 지세와 물세, 비료값 같은 이야기가 빠... 더보기
P. 63 식민지 조선의 지주-소작 관계 아래서 생산된 쌀은 자본주의적 유통기구를 거쳐 일본으로 수출됐다. 즉, 일제시기의 쌀 이동은 지주-소작 관계에서 자행되는 수탈과 자본주의적 수출이라는 양면이 결합된 과정이었다.
P. 84 한반도 농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준 것은 일본 대자본이 주도한 국소적인 공업화가 아니었다. 식민지공업화는 총생산을 늘렸을지언정 농민의 삶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농민의 처지가 개선된 것은 해방 이후의 농지개혁을 통해서였다. 정치가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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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조형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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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떠나 동네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회학자. 노동자로 일하다 영세 자영업자가 된 가족에서 자랐고, 오래도록 불안정한 지식인으로 살았다. 이 책을 번역하며 노동자계급과 구중간계급에서 신중간계급으로 이어진 자기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불평등과 민주주의, 제국과 식민지의 역사가 남긴 상처, 동네와 세상 사이의 관계 등의 주제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우리 안의 친일』,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사회적 가치와 사회혁신』(공저)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북토크]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조형근 작가 X 장일호 기자 북토크>,<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총 24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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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역사비평 153호>,<고려 문벌사회에서 조선 사대부사회로>,<냉전의 진영 너머로>등 총 298종
대표분야 : 역사 12위 (브랜드 지수 353,190점)
“독립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토착의 옛 폭력과 차별을 복원한 세상? 그건 아니지만 또 다른 종류의 폭력과 차별을 낳는 세상? 아니 모든 폭력과 차별의 폐지를 추구하는 세상? 앞의 두 입장에서 독립의 내용은 결국 ‘반일’로 수렴한다. 마지막 입장에서 독립은 단지 일본에 대한 반대를 넘어 식민주의가 수반한 온갖 폭력과 차별, 그것을 낳은 구조와 욕망에 대한 비판과 극복을 의미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욕망이 성찰되어야 할까? 강한 나라를 꿈꾸는 팽창주의, 경제성장이 우선이라는 성장제일주의,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내가 불평등한 세상의 윗자리에 올라가 좋은 일을 하겠다는 실력양성론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런 욕망은 심지어 반일과 친일 청산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 그러니까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을 수 있다.”
우리 안에 스며든 친일: 민족주의적 팽창 욕망
“남의 식민주의는 비판하면서 나의 팽창은 옹호할 수 없다”
친일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아주 분명하고 명확한 이분법의 논리와 흑백논리에 익숙해져 있다. 고민의 여지가 별다르게 필요 없는 문제로 여겨졌다. ‘친일’은 오늘날 한국 사회 문제의 모든 기원이기에 ‘반일’의 기치로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 ‘친일’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단순히 악랄하고 비열하며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친일파)’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일제와 친일파가 모든 악의 근원이고 현대 한국 사회문제의 기원이라는 아주 익숙한 ‘반일’의 믿음을 넘어, 우리 속에 내재하고 습속화된 친일의 욕망과 구조를 비판한다. 그렇다고 제국과 식민지의 ‘공모’를 드러내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 보편적이고 절실한 ‘탈식민’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이다.
그 첫 번째로 제국 일본의 팽창과 더불어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반중 민족주의와 영토 팽창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해방 후에 성찰하지 못한 이 팽창 욕망은 오늘날 인터넷을 타고 사람들을 자극하며 동조를 얻고, 급기야 학문으로 포장되기까지 한다. 한민족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팽창주의 역사에 대한 선망, 곧 유사역사학이다.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만주 벌판을 회복해야 할 땅으로 보는 생각은 일제시기에 형성되었고, 식민사학은 그 팽창 욕망을 정당화해주었다. 그 시기 문학작품과 영화, 대중가요는 만주 벌판을 개척하고 회복해야 할 고토로, 일본제국의 시선으로 그 점령지를 아름답게 노래했다. 반중 민족주의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은 만보산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화교배척 사건 때의 중국인 학살이었다. 『조선일보』의 오보로 인해 전국에서 반중 시위와 폭력·폭행이 일어났고 수많은 중국인이 학살당하고 집과 가옥이 파괴되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는 화교배척 사건 때의 학살을, 팽창주의적 욕망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우리 안에 스며든 친일: 성장제일주의
“먼저 파이부터 키우자”
일제시기 동안 한반도는 연평균 3% 후반의 성장률을 달성했는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장률에 속하고, 토지조사업을 통해 근대적 토지제도가 창출되었으며, 근대적 지식과 기술을 익혀 기업 경영과 국가 관리의 경험을 획득했고, 나아가 이 시기의 성장을 기반으로 196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식민지근대화론. 『조선총독부통계연보』의 통계를 바탕으로 주창한 식민지근대화론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식민지근대화론의 실증적 문제와 비판은 65~75쪽 참조)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일제시기 일본인과 조선인의 소득 격차를 포함한 불평등이 민족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경제성장 초기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불평등 확대이며, 경제성장이 충분히 진전되면 불평등이 줄어들고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분배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른바 파이를 키우려면 당장의 불평등 확대는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200년 이상에 걸친 각종 통계로 볼 때 경제성장이 자동적으로 불평등을 교정해주지 않았다. 20세기 전반의 불평등 감소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영향, 20세기 중반의 장기간 평등은 복지국가의 성장과 함께했다. 한반도 농민의 삶은 식민지공업화가 아닌 해방 이후의 농지개혁을 통해서였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본질적인 문제는 식민 지배를 미화한다는 차원을 넘어 분배와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는 GDP 중심의 성장제일주의에 있다. 독립의 참뜻은 단순히 지배자를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바꾸는 데 있지 않고, 민족 구성원이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데 있었다.
실력양성론 비판
“왜 선의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을까”
식민지 시기 최고 엘리트로 선망받는 의사직. 그들이라고 식민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직 의사 면허를 따기 전 의학전문대학을 다니던 청년 학도들도 3·1독립운동에 나섰다. 3·1운동으로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된 전문학교 재학생은 77명인데 그중 경성의전 학생이 32명이었다. 형을 살고 학업을 중단한 학생도 상당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비타협적 운동을 계속 이어간 경우는 많지 않았다.
불의하지만 거대하고 강력한 일제 식민 지배에 맞서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실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묻는다. 힘이 생긴다는 건 그 자신이 사회의 기득권이 된다는 말이기도 한데, 자신의 기득권만 그대로 둔 채 세상을 바꾸는 게 가능할까?
민족의 건강 증진이라는 직업적 소명 의식을 실현하고 사회적 지위와 명예도 갖춘 의사들은 평범한 양심을 지닌 범속한 다른 의사들에게 가치 있고 바람직한 삶을 산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의사 유상규의 삶은 바로 그러한 전형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는 개돼지 이하의 생활을 하면서도 비판적인 사상조차 생겨나지 않는 민중에 분노하고 절망하면서도 그 민중에 헌신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복잡한 양가감정은 식민지에서 실력양성의 길을 걸었던 의사나 그를 바라보는 보통의 민중이나 마찬가지였다. 식민지인 의사는 자기 민족 중 누구라도 이런 사람이 될 만한 능력이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지만, 동시에 그는 “주인님의 습관을 획득”한 자로서 더 이상 피지배 사회의 일부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의 죄, 개인의 책임
바람에 먼저 눕는 풀에도 사라지지 않는 윤리적 고민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취재하며 얻은 결론은, 유태인 학살을 자행했던 아이히만이 악의 화신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대학살을 했을 뿐이며, 남들도 다 하니까 자신도 했다는 상황 논리였다.
그렇다면 식민지 체제 안에서 살아가야 하고, 성공의 욕망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악에 연루될 수밖에 없는,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보통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힘없는 보통사람은 그냥 순응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순백이 아니면 어차피 더러운 것은 똑같다는 정치적 허무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는 권력의 압력 앞에서 보통 사람도 판단을 내려야 하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개인의 책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 자신도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자기비판을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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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구매자we******|2022.11.22|신고/차단
10
/도움돼요
역사의식이 필요하네요.
2답글 0
종이책ku***|2023.01.16|신고/차단
10
/쉬웠어요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주는 책이네요.
1답글 0
종이책hw********|2025.01.20|신고/차단
10
/도움돼요
몰랐던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이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앏지만 무게감이 상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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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집어든 책. 역사에 대한 성찰능력의 중요성, 개인의 욕망과 서사가 일으킨 비극과 냉정한 자기비판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함을 한권의 책으로 설득시키고 이해시킨다.
Midnight 2023-01-04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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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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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친일
우리는 친일을 말할 때 흔히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적극적으로 일본의 통치에 협력하고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한 인사들이 청산되지 않은 것에 분노하지요. 하지만 이 책은 좁고 강렬한 '반일'의 욕망을 넘어, 더 보편적이고 절실한 '탈식민'의 숙제를 고려하자고 요청합니다.
콤플렉스의 치유를 위해 필요한 것은 팽창주의적 서사와 욕망이 아니라, 그 서사와 욕망이 일으킨 비극에 대한 통찰입니다. 과거사 청산이 심화될수록 그 화살은 우리 자신의 어두운 내면으로 향합니다. 그래서 분노로는 충분하지 않고 나 자신의 어둠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들도 역사 앞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철저한 자기 성찰이 요구되지요. 친일청산은 한판승이 아니라 끝없는 논쟁의 장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친일청산은 계속해서 이야기되어야 할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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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2024-09-08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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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2023.11.3.
길, 메, 내 (2023.11.3.)
― 구례 〈봉서리책방〉
00시에 하루를 엽니다. 05시 30분에 택시를 불러 고흥읍으로 갑니다. 06시 20분 첫 시외버스로 여수로 건너가고, 09시부터 여수 어린배움터에서 글읽눈(문해력)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겉으로 적힌 글씨만 훑을 적에는 ‘읽기 아닌 훑기’입니다. 둘레에서는 그냥 일본말 ‘문해력’을 쓰지만,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글읽기’를 얘기해야 생각을 나눌 만하다고 느낍니다.
북중미 텃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면서 땅을 빼앗은 이들은 ‘북중미 텃사람 말’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숱한 글바치(작가·교사·기자)는 어린이 말을 배우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쳇바퀴에 갇힌 일본 한자말에 옮김말씨를 외우라고 닦달하는 얼거리입니다. 처음부터 어린이하고 푸름이 모두 못 알아들을 얄궂은 말을 쓰면서, 이 얄궂은 말을 억지로 외우라고 내모는 틀이 ‘문해력 교육’인 셈입니다.
순천을 거쳐 구례로 건너갑니다. 다시 택시를 탑니다. 택시 일꾼은 책집 앞까지 모시겠다고 자꾸 말씀하지만, 저는 책집을 둘러싼 마을을 걸을 마음이기에 “내려서 걸어갈 생각입니다!” 하고 몇 판이나 따지듯 말합니다. 내린 곳에서 부러 큰길로 돌아갑니다. 천천히 둘레를 헤아리면서 걷습니다. 냇물이 흐르면서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구름이 바람 따라 흐르는 결을 살피고, 어느 멧새가 나는지 지켜보고, 저 멀리 가르는 빠른길(고속도로)을 어림합니다.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하고 나란히 붙은 〈봉서리책방〉 앞에 서기까지 마을집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습니다. 꽤 큰 마을이고, 담하고 미닫이하고 나무하고 지붕마다 오랜 손길이 흐릅니다.
적잖은 글꾼이나 책꾼은 ‘작품’을 바라기에 그만 허울이나 겉멋에 사로잡힙니다. 그저 글을 쓰고 그림(회화·사진·영상)을 담으면 되어요. 살림빛을 바라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찍을 만하고, 바라볼 만하고, 남길 만하고, 나눌 만합니다.
크거나 작은 일(사고)은 따로 없어요. 여러 일을 거치면서 무엇을 배우며 살아가는 하루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잘 걷고 잘 쉬면 되어요. 저는 1991년부터 돌봄터(병원)를 안 쳐다보았습니다. 갈 마음도 없고, 몸을 맡길 마음도 없습니다. 보금자리가 돌봄자리이면 되는걸요. 비록 이웃님이 쓴 글과 책을 읽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이야기를 여미어서 쓰려고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내는 길이요 걷는 삶이며 짓는 사랑입니다. 즐겁게 앓으면 즐겁게 낫고, 즐겁게 쓰면 즐겁게 읽습니다. 즐겁게 있기에 즐겁게 이을 수 있어요.
ㅅㄴㄹ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리베드 로비엑스키/작은 우주 옮김, 달팽이, 2004.7.21.)
#AldoLeopold #AFierceGreenFire #MarybethLorbiecki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재키 아주아 크레이머 글·신디 더비 그림/박소연 옮김, 달리, 2020.10.20.)
#TheBoyandTheGorilia #JackieAzia Kramer
《제시의 일기》(양우조·최선화 글, 김현주 엮음, 우리나비, 2019.2.28.첫/2020.2.28.2벌)
《우리 안의 친일》(조형근, 역사비평사,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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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3-11-29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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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24.1.18. 우리 안의 친일 새창으로 보기
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4.1.18.
《우리 안의 친일》
조형근 글, 역사비평사, 2022.10.31.
비오는 하루이다. 읍내로 가볍게 저잣마실을 다녀온다. 큰아이하고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추스르면서 하루를 보낸다. 끙끙거리던 몸은 풀렸다. 천천히 기스락숲을 거닐고, 찬찬히 구름무늬를 본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에 1971년판 〈윌리 웡카〉를 함께 본다. 2005년에 나온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잘 찍었다고 여기지만, 1971년판은 아름답구나. 1971년판이 있기에 2005년판은 군말이요, 2024년판 〈웡카〉는 아주 뜬금없구나 싶다. 로알드 달 님이 아이어른한테 함께 들려주려고 하는 속빛을 잊은 채 반짝이는 그림을 꾸미기만 한다면, 오히려 사람들을 홀려 벼랑으로 내모는 셈이다. 《우리 안의 친일》을 읽었다. 못 쓴 책은 아니되, 목소리만 앞서간다. “반일을 넘어 탈식민의 성찰로”처럼 작은이름을 붙이는데, ‘탈식민의 성찰’이 일본말씨인 줄 모르는구나 싶다. 요새 일본말씨나 일본 한자말 없이 어떻게 글을 쓰느냐고 따지는 분도 많지만, 생각조차 안 하니 우리말씨로 제 뜻을 실어서 펴는 길을 안 찾는다고 여겨야 맞다. 익숙하다고 여겨 그저 길들기에 일본바라기로 뒹굴었고, 일본이 물러갔어도 찌끄러기가 단단히 들러붙고 말았다. 언제쯤 이 찌끄러기를 씻고 털어서 새길을 열 셈인가? 우린 아직 마음씻이를 한 적이 없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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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4-02-11 공감 (2) 댓글 (0)
박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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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우리 안의 친일
조형근 Hyung Keun Cho
역사비평사
2023년 6월 16일
몇 년 전, 한창 친일파 척결이니 반일이니 시끄러웠을 때 모든 게 마뜩잖았다. 친일이 그리 칼로 무 베듯 나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칠십을 넘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지금 따져서 뭐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마 고등학교 다닐 때였을 것이다. 친구 하나가 친일파를 정리하지 못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해서, 내가 그때 태어났으면 아마 나도 그중 하나였을지 모르겠다고 하니 날 더러 아마 너는 그랬을 거라고 했다.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날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건 아니어서 그런가 하고 넘겼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가끔 그 말이 생각난다. 내 어떤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러면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 어린 나이에도 친일이니 반일이 그리 선명하게 나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살아가기 바빠서, 사회적인 구조가 그렇게 생겨 먹어서, 누군가에 떠밀려서?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고미술품 수집가인 어느 한 분은 조선 후기 작품에 대해 감정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 미술계 인사에 대한 정보가 누구보다 넓고 깊다. 그분이 가장 한탄하며 올리는 글이 바로 친일 미술가에 관한 것이다. 근거 없이, 때로는 사실무근인 데도 친일 미술가로 낙인찍은 일이 허다하고, 정작 친일 활동의 증거가 명백한 데도 오히려 추앙을 받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글에는 충분히 동의할 만한 근거가 함께 따른다.
반일의 선봉에 섰던 이가 알고 보니 선대가 오히려 친일에 앞장섰더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걸 감추기 위해 더 과잉 행동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미처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뻔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친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남들도 다 하는 정도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논쟁에 신물 났다면서도 <우리 안의 친일>이라는 제목에 시선을 빼앗긴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정확히 내가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을 짚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친일 반일을 가르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자기주장을 차근차근 논증해나간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크게 공감한 건 우리 상황이 아니라 뉴요커 특파원 자격으로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 관한 부분이었다.
“아렌트는 숙고 끝에 아이히만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히만은 출세욕이 조금 강했을 뿐 평범하기 짝이 없는 관료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에 대해 광적인 증오심을 갖거나 광신적인 반유태주의가 아니라 그냥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 따름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아렌트는 유대인 자신의 책임까지 물었다. 유대인 평의회 조직이 나치를 대신해 유대인을 억압하고 심지어 유대인 학살을 돕거나 직접 실행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유대인의 자발적인 협력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아렌트는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의 단순하고 선명한 이분법 구도를 해체했다.”
이는 아이히만이라는 전쟁범죄자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에 관한 평가이다. 나는 이보다는 다음과 같은 일반 대중에 관한 저자의 해석에 더욱 크게 공감하였다.
“많은 독일인은 홀로코스트는 일군의 사악한 인간들이 치밀한 선전 선동을 통해 집단 광기를 불러일으켰고, 거기에 순진한 대중이 속아 넘어갔다는 선명하고 단순한 구도에 기초하고 있었다. 독일인도, 세계인도, 이는 명백히 가해자를 가릴 수 있는 범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그 사악한 범죄가 확실히 잘못을 저지른 어떤 주체를 지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난 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관료사회의 위계질서, 다양한 기구와 개인 사이의 경쟁, 사회 구조에 대한 복종과 순응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상황이 겹치면서 초래된 비극이라면,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누구를 처벌해야 하는가?”
아마 내가 스스로 친일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이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사형을 반대한 건 아니다. 아렌트가 강조한 건 유대인 학살이라는 범죄행위를 반유대주의라는 맥락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유대인 아렌트는 이로 인해 유대인 사회의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유대인 공동체에서 고립됐다.
이 글을 읽다 보니 최근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떠오른다. 몇 년 전, 이 문제에 꽂혀서 책은 물론 소송 서류 전체를 하나하나 훑어가며 논란의 전말을 살핀 일이 있었다. 그리고 소송을 제기한 측의 주장은 궤변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저자는 위안부를 차출해간 일본제국주의에 면죄부를 준 게 아니라 그런 상황을 허용한 우리 안에 내재한 봉건주의 가부장주의라는 구조적 결함을 지적한 것이었는데, 십 년 넘는 세월에 걸쳐 그 모진 수모를 견뎌야 했다.
또 하나 관심을 끈 건은 똑같이 일본과 독일에 고통을 당한 우리와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왜 그렇게 다른가 하는 저자의 해석이었다.
“한국과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친일파 처벌이 거의 전무했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독일에 대한 협력자 처벌이 철저히 진행되었다(는 신화가 있다). 프랑스는 독일의 지배가 4년에 불과했지만,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십 년 가까이 받아오면서 어디까지가 일상 행위이고 어디부터가 친일 협력 행위인지 불분명했다. 프랑스는 4년에 불과해 독일에 협력한 사람을 제거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은 일제에 협력한 사람을 배제하면 국가 운영에 큰 공백이 생길 형편이었다.”
나는 이중 특히 “한국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사십 년 가까이 받아오면서 ‘어디까지가 일상 행위이고 어디부터가 친일 협력 행위인지 불분명’했다”는 저자의 분석에 공감한다. 이것 또한 내가 그 상황이었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판단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과거사 청산이 국가의 주도 아래 이루어지는 건 필연적으로 정쟁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는 국가의 역사 개입이 최소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결코 하나의 진실로 왜소화되어서는 안 된다. 불편한 주장, 때로는 적대적인 주장까지 난무할 수 있는 논쟁의 장이 될 때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타자를 이해할 수 있고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사 개입은 절대로 불가능한가? 그렇지는 않다. 국가는 자기 역사에 대해 윤리적 정치적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국가에 의한 폭력, 국가에 의한 범죄에 즉각 개입하고 책임져야 한다. 시민사회는 국가 폭력을 조사하고 처벌할 법적 권한이 없다. 수많은 과거사 위원회가 법률에 따라 조직되고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국가의 역사 개입은 이처럼 불가피한 영역에서조차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에 만들어진 수많은 과거사 위원회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구성원들이 대통령과 정당 추천 몫이 되다 보니 역사적 규명이 필요한 과제들이 손쉽게 정쟁의 대상으로 전화했다.”
과거사 처리 방식에 대해 내내 못마땅했으면서도 그 이유를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저자는 2장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허구였다고 말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은 식민지 시대에 세계에서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지만, 그것부터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1911년에서 1940년까지 30년 동안 식민지 조선의 인구와 1인당 생산량이 꾸준히 늘었다고 본다. 쿠즈네츠가 말하는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 시가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간에 인구와 인당 생산이 동시에 해마다 연속적으로 증가한 것은 1911~1918년, 1932~1937년 사이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1920년대의 통계는 신뢰도가 낮다. 결국 이 두 현상의 동시 성장세 부합하는 기간은 1932~1937년뿐이다. 적어도 30~40년 이상 꾸준히 인구와 1인당 생산이 동시에 증가할 때 근대적 경제성장이라고 보는 쿠즈네츠의 기준에는 꽤 부족하다.”
지금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려운데, 명지대 김두얼 교수의 <한국 경제사의 재해석> 제1부 ‘식민지기’서 저자가 식민지기에 근대적 경제성장이 있었다고 평가한 것으로 기억한다. 공교롭게 써놓은 리뷰에는 60년대 고도성장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나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니 서울에 돌아가면 두 책을 비교하며 읽어봐야겠다.
경제에 문외한이니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만큼 아는 게 없기는 하지만, 비록 수탈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는 해도 당시 일본이 벌여놓은 각종 개발이 근대적 경제성장으로 이어졌거나 최소한 그 바탕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저자는 근대적 경제성장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나마 근대적 경제성장의 바탕이 될만한 시설은 모두 북한에 몰려있다고 말한다.
불과 이백 쪽 조금 넘는 이 책을 일주일 넘게 붙들고 씨름했다. 빠짐없이 읽기도 했고, 읽다가 궁금한 것도 확인해 가면서, 가끔 앞뒤로 오가기도 하고 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이번이 저자의 책을 세 권째 읽은 것인데, 찾아보니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가 남았다.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온 차별금지법에 대한 글도 있고,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관한 글도 적지 않다. 전자책이 없으니 휴가를 기다려야 하겠다.
박인식
https://brunch.co.kr/@ispark1955/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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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oggun.tistory.com/842
우리 안의 친일 (조형근, 역사비평사, 2022.)
Dog君 2022. 12. 19.
이 책은 식민지기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식민주의를 극복[脫]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억압과 착취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고 식민주의가 우리 안에 남겨둔 '생각의 방식'과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친일'이라고 도발적으
로 제목을 지은 것도, 친일을 비판하는 우리 자신 역시 식민주의가 남긴 '생각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임을 지
적하기 위함이겠지요. 그런데 이러한 관점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꼭 식민지에 국한된 것도 아니구요.
지금 이 시점에서 박정희시대를 조망한다는 것은, 승하한 군주의 공과를 따지는 이조시대 사관의 임무
가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를 만든 그 생체권력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깊이 각인해놓은 '바이오코드'를 찾
아내어 청산하는 치유적(therapeutic)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중권, 「죽은 독재자의 사회」, 『개발
독재와 박정희 시대』, 창비, 2003, 342쪽.)
탕수육 역시 틈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역사'란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나는 또 어떤 사람인지 비춰볼 수 있는 거
울 같은 것이라구요. 특정한 한두 사람의 공과를 따지기보다는 '왜',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고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이해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래야 자기자신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구요. (이렇게 자꾸 들여다보고 성찰하려고만 해서 제 자
존감이 이렇게 낮은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만 ㅠㅠ) 탕수육은 그래서 이 책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적극 추천하기도 했던 겁니
다. 역사학 연구자가 많은 제 타임라인에도 이 책에 대한 상찬이 종종 올라오는 것을 보면 다른 연구자들 역시 생각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넘어서야 할 것은 전통적인 이분법만이 아닙니다. 이미 이분법적으로 양분된 한국 사회의 논의 구조를 해체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 책 같은 근본적 성찰이 결과적으로 기존의 권력을 강화하기만 할 뿐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 책은
답해야 합니다. (방송에서 말씀드린 "그래서 결국 조선일보만 좋아하지 않았냐"는 말이 대략 그 맥락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서는 그에 대한 언급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최종욱)에 따르면, '포스트' 담론은 서양의 철학에서 '주체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형식을 통해 표
출되었고, 그 결과 윤리와 책임의 문제가 실종되었으며, '진리의 포기'와 '저항의 부정'이라는 결말로 이
어졌다. 이것이 한국에서 수용되었을 때 폐해는 더욱 더 큰 것이어서, 포스트주의 자체가 보수적 이데올
로기로 바뀌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해체주의는 "수구/진보, 독재/민주, 외세/반외세로 양극화
된 우리의 왜곡된 현실 자체를 실천에 의해 해체시키지 못하면서, 말로만 해체를 외치는 행위란 결국 허
Dog君 Blues...
Dog君
공을 향해 고함지르는 것처럼 공허하다"는 관점에서, 포스트주의는 결국 쾌락주의와 소비문화만을 부채
질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조한욱,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
2000, 118쪽. 큰따옴표 안은 최종욱, 「포스트주의는 무엇을 포스트했는가?」, 『열린지성』 창간호,
1997.)
물론 '이분법적인 논의와 이분법적인 현실이 서로를 계속 강화시키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런 논의를 통해 그런 순환에 균열
을 내야 한다'고 반론할 수도 있겠습니만, 그러면 또 이야기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논리적 미궁으로 빨려들어
가지요. (이런 얘기를 술자리에서 하기 시작하면 밤샘각...) 라조기가 적절하게 지적한 것처럼, 독자로서는 결국 이 책에게 '현
실적 효용성'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에 관해 시원한 답을 얻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탕수육에게 이 책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시작되는 책입니다. (어느 영화평론가가 '좋은 영화는 영화관을 나오는 순
간부터 시작된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 책에 크게 공감했기에, 이 책에 만족하는 것으로 머무르지 말고 현실적으로 더
유효하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올 방법이 무엇인지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뭐 그게 탕수육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더 많은 독자와 만나고 싶은 역사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이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해야겠죠.
만주 벌판의 회복을 꿈꾸고 웅혼한 대륙적 기상의 회복을 촉구하는 한국 사회의 반일 민족주의는 어떨
까? 거기에 일본제국의 수직성·폭력성을 극복하려는 담대한 성찰이 담겨 있을까? 단지 일본을 반대하
고 증오하는 것이 뿐, 일본이 남겨놓은 수직의 폭력과 강한 것에 대한 열망은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3쪽.)
사실은 한국 학계 쪽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보는 쪽이 솔직하지 않을까? 해방 이후 오랫동안 한국의 역
사학계는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것은 물론 꼭 필요한 과업이었다. 하지
만 민족적 치욕의 치유 과정에서 역사 서술의 객관성이 적잖이 훼손된 것도 사실이다. 토지조사사업 당
시에 일제가 조선인 토지의 40%를 수탈했다는 수십 년간의 교과서 서술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실증
적 근거가 박약한 이 주장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 '수탈과 개발론' 또는 '식민지공업화론'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경제사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에는 완고한 민족주의 사관이 낳은 편향을 극복해야 한다
는 진지함이 있었다. 공업화라는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그 나름의 치열함이 있었
다. 개발과 수탈이라는 양면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문적 진전의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연
구자들은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비판자들의 경멸스런 명명을 한사코 거부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한
국 하계의 논의 수준은 한 단계 도약했다. (70~71쪽.)
다시 한번 독립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당대 사람들에게 독립은 그저 지배자를 일본인
에서 조선인으로, 지주를 일본인에서 조선인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탈이나 착취가 아니라 민족
의 구성원들이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데 독립의 참뜻이 있었다. 바로 그랬기에 좌익이 제거된 의
회에서조차 저토록 공공의 이익, 공동의 삶을 지향하는 헌법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현대의 평균적 한국인 중 몇 명쯤이나 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까. 적폐 청산, 토착왜구
척결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 중에 저 비슷하게나마 총체적인 공공의 비전을 제시한 이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목소리 높여 친일 청산 외치며 비판하기 좋은 악질 친일파의 죄상을 드러내는 일도 누군가에
겐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친일 청산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는지 오늘에 되새기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 역사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건 이런 의미일 것이다. (89~90쪽.)
Dog君 Blues...
Dog君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과거사 청산이 쉽지 않았다면서 과거사 청산 자체에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각은 반대다. 두 나라의 사례는 과거사 청산이 결코 한 번에 끝날 수 없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야 할 현
재진행형의 과제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과거사 청산은 한쪽이 완승하는 흑백논리의 게임일 수도 없지만,
모든 것이 회색이라는 허무주의로 귀결되어서도 안 된다. 흑과 백이 모두 잘못이라고 회색으로 얼버무
려서는 안 된다. 복잡한 명암과 콘트라스트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과거사 청산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청산의 과제가 나타난다. 청산의 대상은 공인된
극소수 매국노부터 우리 자신이 당연시해온 구조들, 혹은 우리 속에 잠재해 있는 욕망과 습성까지로 확
장될 수 있다. 과거사 청산이 심화될수록 그 화살은 우리 자신의 어두운 내면으로 향한다. 그래서 분노로
는 충분하지 않다. 나 자신의 어둠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 (136~137쪽.)
(...) 미안하다고 사죄했지만,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속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규군으로
서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전후 오랫동안 독일의 과거사 청산이 지닌
특징이었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은 1990년대 이후에야 시작됐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방 직후에 이루어진 단호한 과거사 청산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앙리
루소가 지적하듯 그들은 조국을 배신한 죄로 처벌받았을 뿐 파시스트나 반유태주의자였기 때문에 처벌
받은 것은 아니다. 과거사 청산이 심화되면서 밝혀진 것은 로버트 팩스턴의 말처럼 파시즘과 반유태주
의가 나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프랑스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독일 모두에서 소
수의 나쁜 파시스트와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구도는 무너졌다. 물론 흑백의 이분
법 대신 모두 회색이라며 얼버무려서도 안 된다. 둘 다 잘못된 태도다. 단순한 결론 대신 계속 사유하고
논쟁해야 할 이유다. (178~179쪽.)
(...) 한국 사회에서 친일 과거사 문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집중되는 관심은 대개 일제시기에 사회의 상
층부를 차지한 사람들, 기득권자들의 친일 행적이다. 보통사람들의 친일 문제는 단지 보수 세력의 물타
기 소재로서만 등장한다. "일제시기에 세금 낸 보통사람들도 체제에 협력했다는 점에서는 다 친일"이라
는 소설가 복거일 식의 논리가 전형이다. 이런 억지 논리는 반감만 불러일으킨다.
이런 물타기와 분명히 선을 그으면서, 나는 보통사람의 친일이라는 주제를 우리가 진지하게 대면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강조하지만 일제시기에 보통사람들이 친일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통사람
또한 윤리적 판단이라는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친일파 옹호 세력이
보통사람도 다 친일했다며 물타기 주장을 할 때, 그에 대해서 힘없는 보통사람은 그냥 순응해야지 어쩔
수 있었겠냐고 말한다면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보통사람이라고 해서 윤리적 판단의 의
무를 면제해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하는 권력의 압력 앞에서 보통사람도 판단을 내려야 하
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책임도 생긴다. (189~190쪽.)
독립투사에 대한 존경이나 역사적 조망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점을 옮기자는 이야기다. 이
들을 숭고한 메시아적 영웅으로 만들지 말고, "나처럼 평범한 사람인데 어떻게 자기 껍질을 깨고 나왔을
까"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도 영웅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
이런 식의 사고 경로는 친일파에 대한 태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친일파는 왜 친일파가 되었
는가? 그들이 출세욕이 강했다거나 용기가 부족했다는 등의 이유로 친일파가 되었다는 식의 접근으로
는 친일파도, 우리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친일파가 된 이유는 처음부터 그럴 만했기 때문이라는, 원
래 나쁜 놈이기 때문에 나쁜 짓을 했다는 동어반복이 될 뿐이다. 사고의 흐름이 이렇다면 배울 것도, 성찰
할 것도 없다.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친일파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우리를 성찰하
게 하고 나아가게 한다. (201~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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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친일(조형근)
권기일 변호사
좋은 책, 빛나는 문장
・ 2026. 1. 13. 8:00 URL 복사 이웃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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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친일 | 조형근 - 교보문고
우리 안의 친일 | 우리 안에 스며든 친일: 민족주의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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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산 사건과 화교배척 사건은 일본제국주의
만보산 사건과 화교배척 사건은 일본제국주의가
중국 대륙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발판 노릇을 했다.
식민지인의 민족주의적 열정은 통치하는 제국에게는 매우 심각한 위협 요소다.
만주라는 새로운 공간은 식민지 조선인의 민족주의적 열정과
제국일본의 국책이 충돌하지 않고 동행할 수 있는 뜻밖의 여지를 제공했다.
중국인에게는 침략당한 땅인 괴뢰정권 만주국이
조선인에게는 설움을 풀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되었다.
일본식 교육을 받고 자유롭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일부 조선인들은
만주국에서 '지도 민족' 일본인에 이은 '2등 국민'의 자리를 노릴 수 있었다.
조선에서는 차별받는 식민지 주민이었지만,
만주국에서는 다섯 개 종족 중 2등이 가능한 상황처럼 보였다.
만주국에서 조선인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았으며
1940년 이후에는 식량 배급에서도 우선권을 얻었다.
경성제국대학은 조선 유일의 대학이었지만,
조선인은 20년 넘는 역사 동안 띄엄띄엄 네 명이 임용된 게 전부다.
네 사람의 재임 기간을 합쳐도 2년이 못 된다.
조선학 분야 교수도 도쿄제국대학 출신의 일본인 연구자들이 도맡았다.
최남선은 제 나름 조선학을 개척하던 조선의 대표 지식인이었음에도 그 자리에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만주국의 제국대학 격이던 건국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박정희는 장교가 되어 칼 차고 호령하고 싶었지만 일본 육사에 갈 수는 없었다.
만주군관학교가 설립되자 교사 노릇을 그만두고 군인이 될 수 있었다.
그 경로가 생긴 덕에 이후 일본 육사에도 입학할 수 있었고,
졸업 후에는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다.
마찬가지로 천 년도 훨씬 전에 남의 땅이 된 만주를 향한 팽창 욕망 역시
그렇게 갑자기 툭 튀어나올 수는 없었다. 먼 옛날 우리 땅이었을뿐만 아니라
이제라도 다시 찾는 게 옳다는 논리와 확신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만주를 향한 조선인들의 팽창 욕망에 정당화 논리를 제공한 것은
일본제국의 식민사학이었다. 만주와 조선이 역사적으로 하나라는 사관,
바로 만선사관(滿鮮史觀)이다.
만선사관은 이미 한반도를 차지한 일제가 한 발 더 나아가
만주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논리였다.
만주와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한 덩어리이니 일제가 한반도를 차지한 이상
이제 만주까지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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