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ラスカ物語
『アラスカ物語』(アラスカものがたり)は、新田次郎の長編小説。新潮社から刊行され、のち新潮文庫に収録された。日系1世フランク安田の半生を描く。
あらすじ
明治時代の初め、日本を離れアラスカにたどり着き、現地の女性と結婚した男がいた。その男は飢餓に苦しむエスキモーのために新天地を築き、「ジャパニーズ・モーゼ」と呼ばれた[1]。
主人公とアラスカ住民とのふれあい、夢と挑戦の生涯を描く。
映画
この映画で、主演の北大路欣也は、第1回日本アカデミー賞主演男優賞にノミネートされた。1977年1月22日公開。
キャスト
- フランク安田(恭輔) - 北大路欣也
- タカブック - 丹波義隆
- ジョージ大島 - 宍戸錠
- ネビロ - 三林京子
- リッキーナ - 宮下順子
- タッチャンガ - 夏八木勲
- ナトック - 川口節子
- 祈祷師モリサック - 小松英三郎
- アマオーカ - 岡田英次
- トム・カーター - ウイリアム・ロス
- チャールス・ブロワー - ダン・ケニー
- ニルシーナ - 記平佳枝
- ベアー号船長 - デェイブ・フリードマン
- ベア号船員A - ディック・ネイビアス
- ベア号船員B - デンス・ファーレル
- ベア号船員C - ブライアン・ビンブガム
- ビル・ワーレス - タム・ガレインジ
- ジム・ハートン - ジム・バワーズ
- アラシュック大酋長 - 丹波哲郎
スタッフ
脚注
関連項目
フランク安田
フランク安田または安田恭輔(Frank Yasuda、1868年 - 1958年1月12日)は、アメリカ合衆国アラスカ州で村人を導いて新しい村をつくった日系アメリカ人一世。その活躍から「ジャパニーズモーゼ」あるいは「アラスカのサンタクロース」などとも呼ばれている。
家族には、妻でイヌイットのネビロ安田。娘は、ハナ安田。孫は、ヒュー・デブリン。
生涯
1868年宮城県石巻市に生まれた。五人兄弟の三番目で、他に兄二人と妹、弟がいる。両親は医師で15歳の時に亡くなっている。生計を立てる為、三菱社の船積みで働き、太平洋を横断もし、22歳の時にアメリカのカリフォルニア州に渡った。1891年アメリカ沿岸警備船「ベアー号」の乗り組み員となる為、フランク・ハーレイ船長に頼み、ベアー号の雑用係になった。
イヌイットの出会い
1893年ベアー号がアラスカで寒波に巻き込まれて身動きができなくなる。救助を求めて、フランク安田はイヌピアット・イヌイットが多く住むバロー村に行くが、その途中で意識が朦朧として倒れてしまう。その時、イヌイットに助けられ、バロー村にたどり着く。バローで捕鯨会社の交易所を経営するチャールズ・ブロワー所長と出会う。それ以来、その村で暮らす事となる。イヌイットの指導にあたるブロワーの元で、フランク安田は鯨の狩猟やイヌイット語などを学びながら、イヌイットと共に生活して良好な関係を築き、ポイント・バロー(バロー岬)の捕鯨のリーダーであるアマオーカとも交流し、イヌイットの一員として受け入れられた。アマオカのロッジを訪れた時、アマオカの16歳の1人娘である、ネビロと運命的な出会いをし、すぐにネビロと交際結婚をした。そしてフランク安田はイヌイットの捕鯨の指導者ともなっていた。
しかし、麻疹の流行で多くのイヌイットの村人が病死(フランク安田、ネビロ夫妻の1人娘キョウコも死んでいる)し、さらに鯨の不漁で食料危機に苦しんだ。その時、フランク安田はブロワーの紹介でアラスカで砂金を掘りにバローにやって来た、鉱山師トーマス・カーターと出会った。そして、フランク安田はカーターと、そして妻ネビロの他、助手として、数人のエスキモーも含めた一行は状況を見に行くため、ポイント・バローから出発した。イヌイットが住む村々は麻疹の影響で壊滅的だった。旅の途中、ジョージ大島と言う日本人と出会うが、後にフランク安田の前から去っていった。アナクトブック村に着いたフランク安田一行は、フランク安田を幕ってノームからポイント・バローに来てアナクトブック村に着いたイヌイットの一団が来る。その中にエスキモーの妻を連れた日本人ジェームス・ミナノと出会う。そして、カーターと金鉱探しの手伝いもしながら、イヌイットの為の新たな土地探しの為、フランク安田と妻ネビロ、カーター、ジェームス・ミナノと妻クナーナ、2人のイヌイットのセニックとカタブックの7人はアナクトブック村からブルックス山脈を越え、南下し出発した。旅の途中で鉱山で栄えるワイズマンと言う町に辿り着いた。フランク安田達は町周辺の森にあったロッジに落ち着いた。しかし、ワイズマンの鉱山監督局の出張所に寄った時、役人から新しい金鉱はもうないと告げられた。さらに、旅の資金がいよいよ底を突き、解散しなければならない事をカーターに告げられると、フランク安田は資金調達の為、ワイズマンのレストランで、コックとしてミナノと共に働く。カーターはフランク安田を信頼し、2人のイヌイットのセニックとカタブックを連れ、再び金鉱探しの旅に出かけた。フランクとミナノがレストランで働いている最中、フランクとミナノの妻たち(ネビロとクナーナ)はロッジで留守番をしていたが、ネビロはそこで1人娘を産んだ。フランク安田は幼い頃死んだ、実の妹のサダの名を娘に名付けた。そして1905年、旅に必要な資金が出来、ミナノ夫妻はワイズマンにそのまま留まり、フランクはカーターにその資金を渡し、再び一緒に金鉱探しの旅に出かけた。ワイズマンから東に移動し、シャンダラー川に向かった。その場所はバローから南へ600キロ、ユーコン川沿いにあり、フランクは辿り着いた。
ある日、赤ん坊の娘サダを背負ったネビロがシャンダラー川で偶然、砂金を見つける。フランク安田は砂金が見つかった事をカーターに報告した。カーターはその地域で金の取引ポストを始めるべく開発に注ぎ、その付近に村を造れば良いと言われたフランクは、その場所に壊滅的なバローのイヌイット達の村造りを決意する。しかし、その場所はイヌイットと対立する、アサバスカ族のインディアンのテリトリー内にあったため、安田はインディアンに詳しいジョージ大島を仲介に、インディアンの酋長と交渉を始めた。難航が予測されていたが、酋長との交渉は成功した。そして土地への入植を認められた。バローから出発してこの土地を見つるまで、2年の歳月が経っていた。その後、フランク安田がリーダーとなり、3年を費やして200人余りのイヌイットをバローから南下させ、ブルックス山脈を越え、その土地に連れて行きビーバー村を作った。交易所、学校、教会、郵便局、船着場を設置した。好戦的なアサバスカ・インディアンが住む地域に、インディアンと仲が悪いイヌイットの村が出来た事は白人の間でも話題になっていたが、インディアンとは仲良くやっていた。インディアン仲介にあたったジョージ大島に、フランク安田は一緒に村に住もうと誘うが、彼は村付近の森の湖がある場所にロッジを建てて一人で暮らした。1910年に娘のサダが、猛吹雪の中フォートユーコンまで無茶して犬ぞりで飛ばした為、急性肺炎で病死してしまう悲劇に見舞われる。しかし、同年にバーニス、1914年にハナの、2人の娘に恵まれた。
1930年代の大恐慌でもフランク安田が始めたビーバーの毛皮で村の経済は盤石だった。フランク安田は妻ネビロを連れ、毛皮取引の為、シアトル、ロサンゼルス、ニューヨークなどに何回も行き、積極的に毛皮商との取引もしていた。1935年ビーバー村の毛皮が3千枚以上取引されたが、毛皮の元であるビーバーが激減し、かつて壊滅的になったバロー村の二の舞になるのを予測して、フランク安田はミンクの飼育も始めた。しかし原因不明の病気でミンクは全滅し失敗してしまった。その後、大農場を開き、フェアバンクスに野菜を輸出しようと、農業にも取り組もうとする。アラスカは殆ど、不毛の地な為、農業に不向きとされているが、フランク安田は村の教会の隣の墓地で村民を埋葬する時、永久凍結層に掘り当たらなかった事をヒントにその台地を大農場に変えようとした。これは成功し、大麦、ジャガイモ、キャベツなどの野菜は育った。しかし、消費地のフェアバンクスに向けて野菜を輸送しようにも、唯一の輸送方法はユーコン川から野菜専用の運搬船で運ばなくてはならず、ビーバー村にはその運搬船も無く、また莫大な投資してまで失敗してしまったミンクの飼育の事もあってか、運搬船を買う金もなかった。結局、ビーバー村を大農場にする計画は断念してしまう。
1942年から終戦の1945年までは日系人捕虜強制収容に収容された。まず、フェアバンクスの警察の監獄に容れられた。フランク安田の事を知っているフェアバンクス在住のアメリカ人達(学者や宗教家など)が、フランク安田の偉大さを説いてフランク安田を釈放してやって欲しいと警察に頼んでいたが、釈放されなかった。そして、アンカレッジの強制収容に移され、さらに、本土のワシントン州、テキサス州、ニューメキシコ州などの強制収容に転々と移された。ジョージ大島とは強制収容に収容されてからも一緒に行動していたが、ニューメキシコ州の強制収容の病院で病死している。
戦後
戦後、フランク安田はビーバー村に帰還した。ビーバー村はフランク安田が強制収容に収容されてから、村を統治する指導者が居なくなってしまったので、若者などを中心に村から出て行き、村はネビロや老人、子供だけとなり、寂れてしまっていた。結婚している娘のハナも夫と共に父の為に、ビーバー村に居たが、フランク安田が強制収容に行ってから出て行ってしまっていた。フランク安田は日本には、二度と帰国せず1958年1月に没した。
没後の顕彰
1989年5月8日に功績が認められアラスカ州より表彰を受ける。
アラスカ州のブルックス山脈(北極圏の扉国立公園の一部)の山名の一つに「ヤスダマウンテン」と名付けられた。
ビーバー村ではフランク安田の故郷宮城県石巻市と交流があり、ビーバー村の学校の子供や教師らを石巻市に招待したり、2008年にフランク安田没後50周年を偲び「メモリアルポトラッチ」も行われた際も石巻市から何人かが参加している。
2011年3月11日に東日本大震災でフランク安田の故郷石巻市が津波に襲われた。石巻市でトモダチ作戦を行っていた、アメリカ軍が石巻市立湊小学校付近で泥塗れの、大理石で造られたフランク安田の記念碑を発見した[1]。記念碑は津波によって、土台から落ちて多少の破損はしていたものの、ほぼ壊れずに助かった。この記念碑は、2008年に行われたフランク安田没後50周年の時、ビーバー村のクルックシャンク学校の子供や教師らが石巻市を訪れた際に、石巻市立湊小学校の生徒達との交流の記念によって造られたものである。記念碑を発見したアメリカ海兵隊のクレイグ・コゼニスキー大佐は、好奇心から記念碑のフランク安田の名に付いて調べて、ウェブサイトからフェアバンクスにあるアラスカ鉱業殿堂宛てに震災で発見した、フランク安田の記念碑やビーバー村に付いて尋ねようと電子メールを送っている。それを見た、アラスカ鉱業殿堂のCEOであるトム・バンゼンがフランク安田に詳しい歴史家ロン・イノウエに連絡を取り、イノウエを通してビーバー村のクルックシャンク学校の教師チャーリー・フィッシャーに連絡された。クルックシャンク学校の教師フィッシャーや生徒の子供達は友達として見なす湊小学校の生徒達に向けて励ましや支援のメッセージを送った。
新田次郎
作家新田次郎の代表作に、伝記小説『アラスカ物語』(現:新潮文庫)がある。1977年に映画化された。安田を演じたのは北大路欣也。 同じく1970年代に『アラスカ物語』に忠実なラジオドラマとして作成され、放送された。 なお新田は、(当時日本では無名だった)フランク安田を没する寸前に、短編「北極光」(『火山群』に初所収、新潮社、1957年)で扱った。のちに映画化の話は度々あったが断り、現地取材調査した上で長編を書き上げたいと、1974年に「アラスカ物語」を書き上げた。
参考文献
- 『世界を股にかけた凄い日本人がいた!』(編集) 博学こだわり倶楽部
脚注
関連項目
- 日系人
- ビーバー村、アラスカにあるフランク安田が作った村。
- エスキモー
- アラスカの歴史
- アラスカ州
- モーセ
- 『アラスカの星』 2004年6月21日テレビ朝日系列のKHB東日本放送にて放送された、中村雅俊がフランク安田の足跡を辿ってアラスカを旅した番組。
外部リンク
프랭크 야스다
프랭크 야스다 또는 야스다 쿄스케 (Frank Yasuda, 1868년 -1958 년 1월 12일 )는, 미국 알래스카주 에서 마을 사람을 이끌어 새로운 마을을 만든 일본계 미국인 1세. 그 활약으로부터 「재패니즈 모제」혹은 「알래스카의 산타 클로스」등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가족에게는, 아내로 이누잇의 네비로 야스다. 딸은 하나 야스다. 손자는 휴 데블린.
평생
1868년 미야기현 이시 노마키시 에서 태어났다. 다섯 명 형제의 세 번째로, 그 밖에 형 두 명과 여동생, 동생이 있다. 부모는 의사로 15세 때 사망하고 있다. 생계를 세우기 위해, 미쓰비시사의 선적에서 일해, 태평양을 횡단해, 22세 때에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에 건넜다. 1891년 미국 연안 경비선 '베어호'의 승무원이 되기 때문에 프랭크 할리 선장에게 부탁해 베어호의 잡용계가 되었다.
이누잇의 만남
1893년 베어호가 알래스카에서 한파에 휘말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구조를 요구해, 프랭크 야스다는 이누피아트 · 이누이트 가 많이 사는 배로우 마을에 가지만, 그 도중에 의식이 몽롱하게 쓰러져 버린다. 그때 이누이트에게 도움을 받아 배로우 마을에 도착한다. 바로로 포경회사의 교역소를 경영하는 찰스 블로어 소장과 만난다. 그 이후, 그 마을에서 살게 된다. 이누이트의 지도에 해당하는 블로어의 근원으로, 프랭크 야스다는 고래 사냥이나 이누이트어 등을 배우면서, 이누이트와 함께 생활해 양호한 관계를 구축해, 포인트 버로우 (버로우 곶)의 포경의 리더인 아마오카와도 교류해, 이누이트의 일원. 아마오카의 롯지를 방문했을 때, 아마오카의 16세의 1인 딸인 네비로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고, 곧 네비로와 교제 결혼을 했다. 그리고 프랭크 야스다는 이누잇의 포경의 지도자로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홍역 의 유행으로 많은 이누이트의 마을 사람이 병사(프랭크 야스다, 네비로 부부의 1인 딸 쿄코도 죽고 있다), 한층 더 고래 의 불어로 식량 위기에 시달렸다. 그 때, 프랭크 야스다는 블로어 소개로 알래스카에서 사금을 파고 바로로 온 광산사 토마스 카터를 만났다. 그리고, 프랭크 야스다는 카터와, 그리고 아내 네비로 외, 조수로서, 몇명의 에스키모도 포함한 일행은 상황을 보러 가기 위해, 포인트 버로우로부터 출발했다. 이누이트가 사는 마을들은 홍역의 영향으로 괴멸적이었다. 여행 도중, 조지 오시마 라고 하는 일본인을 만나지만, 후에 프랭크 야스다의 앞에서 떠나갔다. 애널트북 마을에 도착한 프랭크 야스다 일행은 프랭크 야스다를 막고 놈 으로부터 포인트 버로우에 와서 아낙트북 마을에 도착한 이누잇의 일단이 온다. 그 중에 에스키모의 아내를 데리고 온 일본인 제임스 미나노 를 만난다. 그리고 카터와 금광 찾기를 도우면서 이누이트를 위한 새로운 토지 찾기를 위해 프랭크 야스다와 아내 네비로, 카터, 제임스 미나노와 아내 쿠나나, 2명의 이누이트의 세닉과 카타부크의 7명은 아낙트북 마을에서 브룩스 산맥 을 넘어 남하 출발했다. 여행 도중 광산에서 번성하는 와이즈맨 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프랭크 야스다들은 마을 주변의 숲에 있던 롯지에 침착했다. 그러나 와이즈맨의 광산감독국 출장소에 들렀을 때, 장교로부터 새로운 금광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게다가 여행의 자금이 드디어 바닥을 찌르고 해산해야 하는 일을 카터에게 알려지면, 프랭크 야스다는 자금조달을 위해, 와이즈만의 레스토랑에서, 콕으로서 미나노와 함께 일한다. 카터는 프랭크 야스다를 신뢰하고, 2명의 이누잇의 세닉과 카타부쿠를 데리고, 다시 금광 찾기의 여행에 나갔다. 프랭크와 미나노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가운데, 프랭크와 미나노의 아내들(네비로와 쿠나나)은 롯지에서 자동 응답을 하고 있었지만, 네비로는 거기서 혼자 딸을 낳았다. 프랭크 야스다는 어렸을 때 죽은, 진짜 여동생의 사다의 이름을 딸에게 명명했다. 그리고 1905년 , 여행에 필요한 자금이 생겼고, 미나노 부부는 와이즈맨에 그대로 머물렀고, 프랭크는 카터에게 그 자금을 건네, 다시 함께 금광 찾기의 여행에 나갔다. 와이즈맨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샹들러 강 으로 향했다. 그 장소는 바로에서 남쪽으로 600km, 유콘 강을 따라, 프랭크는 도착했다.
어느 날 아기의 딸 사다를 짊어진 네비로가 샹들러 강에서 우연히 사금을 찾는다. 프랭크 야스다는 사금이 발견된 것을 카터에 보고했다. 카터는 그 지역에서 금 거래 포스트를 시작하기 위해 개발에 부어 그 부근에 마을을 만들면 좋다고 말한 프랭크는, 그 장소에 괴멸적인 바로의 이누잇트들의 마을 만들기를 결의한다. 그러나, 그 장소는 이누이트와 대립하는, 아사바스카족 의 인디언 의 테리토리 내에 있었기 때문에, 야스다는 인디언에 익숙한 조지 오시마를 중개해, 인디언의 추장과 협상을 시작했다. 난항이 예측되었지만 추장과의 협상은 성공했다. 그리고 토지에의 이식을 인정받았다. 바로에서 출발하여 이 땅을 볼 때까지 2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후, 프랭크 야스다가 리더가 되어, 3년을 들여 200여명의 이누이트를 배로우로부터 남하시켜, 브룩스 산맥 을 넘어, 그 토지에 데려가 비버 마을을 만들었다. 교역소, 학교, 교회, 우체국, 선착장을 설치했다. 호전적인 아사바스카·인디언이 사는 지역에, 인디언과 사이가 나쁜 이누이트의 마을이 생긴 것은 백인의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었지만, 인디언과는 사이좋게 하고 있었다. 인디언 중개에 해당하는 조지 오시마에, 프랭크 야스다는 함께 마을에 살려고 초대하지만, 그는 마을 부근의 숲의 호수가 있는 장소에 롯지를 세워 혼자 살았다. 1910년 에 딸 사다가 맹렬한 눈 속 포트 유콘 까지 무자비하게 개 썰매로 날렸기 때문에 급성 폐렴으로 병사해 버리는 비극에 휩쓸린다. 그러나 같은 해에 버니스, 1914년 하나의 두 딸에게 축복을 받았다.
1930년대 대공황 에서도 프랭크 야스다가 시작한 비버 의 모피로 마을의 경제는 반석이었다. 프랭크 야스다는 아내 네비로를 데리고 모피 거래를 위해 시애틀 , 로스앤젤레스 , 뉴욕 등에 여러 번 가서 적극적으로 모피상과의 거래도 하고 있었다. 1935년 비버 마을의 모피가 3천장 이상 거래되었지만, 모피의 원래인 비버가 격감하고, 한때 괴멸적으로 된 배로우 마을의 두 춤이 될 것을 예측하고, 프랭크 야스다는 밍크 의 사육도 시작했다. 그러나 원인 불명의 질병으로 밍크는 전멸해 실패해 버렸다. 그 후 대농장을 열고 페어뱅크스 에 야채를 수출하려고 농업에도 임하려고 한다. 알래스카는 대부분 불모의 땅이기 때문에 농업에 적합하지 않지만, 프랭크 야스다는 마을 교회 옆의 묘지에서 촌민을 매장할 때 영구 동결층에 파고들지 않았던 것을 힌트로 그 대지를 대농장으로 바꾸려고 했다. 이것은 성공했고 보리, 감자, 양배추 등의 야채는 자랐다. 그러나, 소비지의 페어뱅크스를 향해 야채를 수송하려 해도, 유일한 수송 방법은 유콘 강으로부터 야채 전용의 운반선으로 옮겨야 하고, 비버 마을에는 그 운반선도 없고, 또 막대한 투자해까지 실패해 버린 밍크의 사육의 일도 있었는지, 운반선을 사는 돈도 없었다. 결국 비버 마을을 대농장으로 만들 계획은 포기한다.
1942년 부터 종전인 1945년 까지는 일본계 포로 강제 수용 에 수용되었다. 우선 페어뱅크스 경찰 감옥에 참을 수 있었다. 프랭크 야스다의 일을 알고 있는 페어뱅크스 거주의 미국인들(학자나 종교가 등)이, 프랭크 야스다의 위대함을 말해 프랭크 야스다를 석방해 주었으면 한다고 경찰에 부탁하고 있었지만, 석방되지 않았다. 그리고 앵커리지 의 강제수용으로 옮겨졌고, 또한 본토의 워싱턴주 , 텍사스주 , 뉴멕시코주 등의 강제수용으로 전전 옮겨졌다. 조지 오시마와는 강제수용에 수용된 이후에도 함께 행동하고 있었지만 뉴멕시코주의 강제수용 병원에서 병사하고 있다.
전후
전후, 프랭크 야스다는 비버 마을에 귀환했다. 비버 마을은 프랭크 야스다가 강제 수용에 수용되고 나서, 마을을 통치하는 지도자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젊은이 등을 중심으로 마을에서 나가, 마을은 네비로나 노인, 아이만이 되어, 외로워 버리고 있었다. 결혼하고 있는 딸 하나도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위해 비버 마을에 있었지만, 프랭크 야스다가 강제 수용에 갔다가 나와 버렸다. 프랭크 야스다는 일본에는 다시 귀국하지 않고 1958년 1월에 몰렸다.
몰후의 현창
1989년 5월 8일 공적이 인정되어 알래스카주에서 표창을 받는다.
알래스카주의 브룩스 산맥( 북극권의 문 국립공원 의 일부)의 산명 중 하나로 ' 야스다 마운틴 '이라 명명되었다.
비버 마을에서는 프랭크 야스다의 고향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와 교류가 있어, 비버 마을의 학교의 아이나 교사들을 이시노마키시에 초대하거나, 2008년 에 프랭크 야스다 몰후 50주년을 추격해 「메모리알포 트러치」도 행해졌을 때도 이시노마키시로부터 몇몇이 참가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에 동일본 대지진 으로 프랭크 야스다의 고향 이시노마키시가 쓰나미 에 습격당했다. 이시노마키시에서 토모다치 작전을 실시하고 있던, 미군이 이시노마키 시립 미나토 초등학교 부근에서 진흙 칠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프랭크 야스다의 기념비를 발견했다 [ 1 ] . 기념비는 쓰나미에 의해, 토대로부터 떨어지고 다소의 파손은 하고 있었지만, 거의 망가지지 않고 살아났다. 이 기념비는, 2008년에 행해진 프랭크 야스다 몰후 50주년 때, 비버 마을의 크룩샨크 학교의 아이나 교사들이 이시노마키시를 방문했을 때, 이시노마키 시립 미나토 초등학교의 학생들과의 교류의 기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념비를 발견한 미국 해병대의 크레이그 코제니스키 대령은 호기심에서 기념비의 프랭크 야스다의 이름을 알아보고 웹사이트에서 페어뱅크스에 있는 알래스카 광업 전당 앞으로 지진으로 발견한 프랭크 야스다의 기념비와 비버 마을에 묻고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그것을 본 알래스카 광업 전당의 CEO인 톰 반젠이 프랭크 야스다에 익숙한 역사가 론 이노우에 연락을 취해, 이노우를 통해 비버 마을의 크룩 생크 학교의 교사 찰리 피셔에게 연락되었다. 크룩샨크 학교의 교사 피셔와 학생의 아이들은 친구로 간주하는 미나토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격려와 지원 메시지를 보냈다.
닛타 지로
작가 닛타 지로 의 대표작에 전기 소설 ' 알래스카 이야기 '(현 : 신시오 분고 )가 있다. 1977년에 영화화되었다. 야스다를 연기한 것은 키타오지 야야 .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 ' 알래스카 이야기 '에 충실한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송됐다. 덧붙여 닛타는, (당시 일본에서는 무명이었다) 프랭크 야스다를 몰기 직전에, 단편 「북극광」(『화산군』에 초소수, 신시오샤 , 1957년)으로 취급했다. 나중에 영화화의 이야기는 종종 있었지만 거절하고 현지 취재 조사한 후 장편을 쓰고 싶다고 1974년에 '알래스카 이야기'를 썼다.
참고문헌
- "세계를 가랑이에 걸친 굉장한 일본인이 있었다!"(편집) 박학 집념 클럽
각주
관련 항목
- 일본계인
- 비버 마을, 알래스카에 있는 프랭크 야스다가 만든 마을.
- 에스키모
- 알래스카의 역사
- 알래스카 주
- 모세
- 『알래스카의 별』 2004년 6월 21일 텔레비전 아사히 계열의 KHB 동일본 방송 에서 방송된 나카무라 마사토시 가 프랭크 야스다의 발자취를 따라 알래스카를 여행한 프로그램.
외부 링크
Beaver, Alaska
Beaver Ts'aahudaaneekk'onh Denh | |
|---|---|
A house in Beaver, February 2016 | |
Location of Beaver, Alaska | |
| Coordinates: 66°21′35″N 147°23′51″W | |
| Country | United States |
| State | Alaska |
| Census Area | Yukon-Koyukuk |
| Government | |
| • State senator | Click Bishop (R) |
| • State rep. | Mike Cronk (R) |
| Area | |
• Total | 21.05 sq mi (54.51 km2) |
| • Land | 20.52 sq mi (53.14 km2) |
| • Water | 0.53 sq mi (1.36 km2) |
| Population | |
• Total | 48 |
| • Density | 2.3/sq mi (0.9/km2) |
| Time zone | UTC-9 (Alaska (AKST)) |
| • Summer (DST) | UTC-8 (AKDT) |
| ZIP code | 99724 |
| Area code | 907 |
| FIPS code | 02-05750 |

Beaver (Ts'aahudaaneekk'onh Denh in Koyukon) is a census-designated place (CDP) in Yukon-Koyukuk Census Area, Alaska, United States. At the time of the 2010 census the population was 84, unchanged from 2000, however the 2020 census reported a total population of 48.[3]
Geography
Beaver is located at 66°21′35″N 147°23′51″W.[4]
According to the United States Census Bureau, the CDP has a total area of 21.6 square miles (56 km2), of which, 20.5 square miles (53 km2) of it is land and 1.1 square miles (2.8 km2) of it (5.05%) is water.
Demographics
| Census | Pop. | %± | |
|---|---|---|---|
| 1930 | 103 | — | |
| 1940 | 88 | −14.6% | |
| 1950 | 101 | 14.8% | |
| 1960 | 101 | 0.0% | |
| 1970 | 101 | 0.0% | |
| 1980 | 66 | −34.7% | |
| 1990 | 103 | 56.1% | |
| 2000 | 84 | −18.4% | |
| 2010 | 84 | 0.0% | |
| 2020 | 48 | [citation needed] | −42.9% |
| U.S. Decennial Census[5][failed verification] | |||
This section needs to be updated. The reason given is: Newer information is available from the 2010 and 2020 census reports. (May 2023) |
Beaver first appeared on the 1930 U.S. Census as an unincorporated village.[6] It is unusual for having had just three different population figures on 7 out of 9 censuses (103 in 1930 & 1990; 101 in 1950-70 & 84 in 2000–10) and an identical (unchanged) population on 5 different censuses (101 in 1950, 1960 & 1970 and 84 in 2000 and 2010). Beaver became a census-designated place (CDP) in 1980.[7]
2020 Census
As of the 2020 Census,[3] there were a reported 48 inhabitants across 41 households and 57 housing units within the CDP. The population density was 2.34 inhabitants per square mile (0.90 inhabitants/km2). The racial makeup was 95.83% Native American, 2.08% White, and 2.08% Hispanic or Latino.
The median household income was $36,964 and the median incomes for families was $46,250, both of which remained far below the Alaska median household income of $88,121. The poverty rate was 26.2%, including 61.1% of people under 18 years old and 24.4% of those aged 18 to 64 years.
The employment rate was 72.7%, with 70.8% of workers being in local, state, or federal employees, 22.9% being employees of private companies, and 6.3% being employed by private not-for-profits. As for transportation, 100% of workers 16 years old and over walked to work, with the average commute time being 5.6 minutes.
2000 Census
As of the census[8] of 2000, there were 84 people, 31 households, and 19 families residing in the CDP. The population density was 4.1 inhabitants per square mile (1.6/km2). There were 54 housing units at an average density of 2.6 units per square mile (1.0 units/km2). The racial makeup of the CDP was 4.76% White, 85.71% Native American, and 9.52% from two or more races.
There were 31 households, out of which 41.9% had children under the age of 18 living with them, 12.9% were married couples living together, 32.3% had a female householder with no husband present, and 38.7% were non-families. 29.0% of all households were made up of individuals, and 6.5% had someone living alone who was 65 years of age or older. The average household size was 2.71 and the average family size was 3.42.
In the CDP, the population was spread out, with 40.5% under the age of 18, 4.8% from 18 to 24, 32.1% from 25 to 44, 15.5% from 45 to 64, and 7.1% who were 65 years of age or older. The median age was 29 years. For every 100 females, there were 154.5 males. For every 100 females age 18 and over, there were 163.2 males.
The median income for a household in the CDP was $28,750, and the median income for a family was $29,792. Males had a median income of $26,667 versus $16,875 for females. The per capita income for the CDP was $8,441. There were no families and 11.1% of the population living below the poverty line, including no under eighteens and none of those over 64.
Education
Yukon Flats School District operates the Cruikshank School.[9]
Health
Sale, importation and possession of alcohol are banned in the village.[10]
See also
References
- "2020 U.S. Gazetteer Files". United States Census Bureau. Retrieved October 29, 2021.
- "Beaver CDP, Alaska - Census Bureau Profile". data.census.gov. Retrieved September 8, 2024.
- "Explore Census Data". data.census.gov. Retrieved April 6, 2024.
- "US Gazetteer files: 2010, 2000, and 1990". United States Census Bureau. February 12, 2011. Retrieved April 23, 2011.
- "U.S. Decennial Census". Census.gov. Retrieved June 6, 2013.
- Alaska
- Number of Inhabitants. Alaska
- "U.S. Census website". United States Census Bureau. Retrieved January 31, 2008.
- "Mailing Addresses and Contact Information Archived 2016-12-20 at the Wayback Machine." Yukon Flats School District. Retrieved on December 4, 2016.
- "Schedule of Local Option Communities" (PDF). Alcoholic Beverage Control Board. Retrieved May 3, 2023.
External links
Media related to Beaver, Alaska at Wikimedia Commons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