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 1970년 베트남, 한 여의사의 일기
당 투이 쩜 (지은이),안경환 (옮긴이)자음과모음(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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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4살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전에 뛰어든 한 여의사의 일기가 35년 만에 공개되어 베트남을 술렁이게 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당 투이 쩜이다. 그녀의 일기는 1970년에 그녀가 미군에 의해 사살된 후 한 미군정보장교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가,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기록이 담고 있는 것은 책임감이 투철하고,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모든 이를사랑했던 한 여인의 초상과 생명의 존엄성이다.
1966년 하노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당 투이 쩜은, 1967년 3월 남부 깊숙한 적진인 꽝 응아이 성 득포 현 야전 진료소의 책임을 맡게 된다. 1970년 6월 22일 그녀는 고립된 부상병과 동료를 구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바떠 산에서 평야지대로 내려가는 길에 미군의 매복에 걸려 희생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 불과 28세였고, 의사로 근무한 지 3년 만이었다.
1968년과 1970년 사이에 쓰여진 그녀의 일기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사랑, 전쟁에 대한 증오, 달콤했던 고교시절에 대한 그리움, 조국에 충성을 다하기 위한 몸부림 등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정적이고 젊은이 특유의 발랄했던 감성의 목소리는 점차 끊임없는 전쟁의 광포함에 직면하여 자신의 소양을 초월할 정도의 기품과 동정심 그리고 도전 정신을 웅변한다.
목차
사진앨범
1부 1968~1969년
2부 1970년
주석
지도
연표
영문판 서문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1970년 6월 2일
예기치 않은 사고가 (전쟁 중에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진료소에서 발생했다. 진료소에 포탄이 연속적으로 떨어져 병실에 있던 환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죽었다. 불과 일 분 만에 우리가 이룩했던 모든 것이 화염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포탄이 터지고 정적만 남았다. 무서울 정도의 정적이었다. 모두가 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몇 분이 지나자 라인 언니가, '짜인 아저씨 방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어요!' 라고 외쳤다. 우리는 모두 밖으로 뛰어나갔다. 지독한 참화였다. 나무들은 제멋대로 쓰러져 있고, 찢어진 옷 조각들이 날아올라 나뭇가지마다 붙어 있고, 몇몇 집들은 기우뚱하게 쓰러져 있다. 흙더미를 헤치고 니엔과 브어이를 구해내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어제 창자 절제 수술을 받은 타인은 환부가 덧나 집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타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우리를 한 명 한 명 보더니 '살아남아 내 대신 싸워줘, 난 더는 못살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 용감한 동지. 너의 마지막 말은 우리의 맹세였다. 죽은 사람들의 복수를 위해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싸워야 한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당 투이 쩜 (Dang Thuy Tram)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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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네 살의 나이에 당 투이 쩜은 꽝 응아이 성에 있는 조국해방전선(베트콩) 야전병원에 의사로 근무하기로 자원하였다. 2년 뒤 그녀는 자신이 근무하던 곳으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미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최근작 : <지난밤 나는 평화를 꿈꾸었네> … 총 5종 (모두보기)
안경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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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충북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베트남어를 전공했으며, 베트남의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어문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종합상사에서 근무했고, 영산대학교와 조선대학교 교수로 정년 퇴직 후에는 하노이와 호찌민시 소재 초·중·고교 과정의 KGS 국제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하노이 소재 응우옌짜이대학교 대외 담당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한-베 수교가 이뤄지기 3년 전인 1989년에 “상사맨”으로 베트남과 첫 인연을 맺었다. 2014년부터 6년간 한국베트남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베트남 정부로부터 친선문화진흥공로 휘장과 평화 우호 휘장을, 호찌민시로부터 휘호, 응에안성으로부터 호찌민 휘호를 받았고, 베트남문학회로부터 외국인 최초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 하노이시가 추대한 전 세계 12명의 ‘수도 하노이 명예시민’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이다. 2017년에는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의 ‘자랑스러운 동문 6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으며, 2018년에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우호 훈장을 수훈하였다.
저서로는 《생활 베트남어회화》, 《행복한 한-베 다문화가정을 위한 길잡이》, 역서로는 호찌민의 《옥중일기》, 《쭈옌끼에우》 등이 있으며, 《몽실 언니》를 베트남어로 번역했다. 접기
최근작 : <6가지 키워드로 읽는 오늘의 베트남>,<무역 베트남어> … 총 1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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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부여 찾아 90000리>,<빈민을 위해 헌신한 마더 테레사>,<새로운 세상을 꿈꾼 해월 최시형>등 총 198종
대표분야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19위 (브랜드 지수 190,747점), 추리/미스터리소설 31위 (브랜드 지수 24,55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희망과 절망으로 점철된 베트남 전쟁일기
35년 만에 되살아난 베트남 전쟁일기
24살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전에 뛰어든 한 여의사의 일기가 35년 만에 공개되어 베트남을 술렁이게 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당 투이 쩜이다.
당 투이 쩜의 일기는 1970년에 그녀가 미군에 의해 사살된 후 미군정보장교인 프레데릭 화이트허스트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가 35년 만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당 투이 쩜은 하노이의 학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1966년 하노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67년 3월 남부 깊숙한 적진인 꽝 응아이 성 득포 현 야전 진료소의 책임을 맡았다. 1970년 6월 22일 그녀는 고립된 부상병과 동료를 구하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바떠 산에서 평야지대로 내려가는 길에 미군의 매복에 걸려 희생되었다. 이때 그녀의 나이 불과 28세였고, 의사로 근무한 지 3년 만이었다. 그녀의 시신은 지역 주민들이 수습해서 그녀가 쓰러졌던 곳에 안장했다가, 1975년 통일이 되어서야 유가족들과 그녀와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동료들에 의해 포 끄엉 면 열사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1990년 유가족들은 하노이 뜨 리엠 현, 쑤언 프엉 면에 있는 열사 묘역으로 그녀를 다시 이장해, 지금 그녀는 생전에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족들 가까이에 편히 잠들어 있다.
전쟁터에서 기록된 당 투이 쩜의 일기 두 권도 묘한 운명을 갖고 있었는지, 미국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있다가, 베트남 통일 30주년 기념일인 2005년 4월 30일에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35년간이나 떠돌아다니다 온 것이다. 마치 투이 쩜의 영혼이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토록 그리워했던 북부 하노이의 엄마 품에 날아든 것처럼. 현재 일기의 원본은 미국 텍사스 루벅에 있는 베트남 자료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베트남을 울린 당 투이 쩜 일기
그녀의 일기는 신문에 연재되었다가 베트남에서 책으로 출간되어 세상에 나왔다. 베트남 전역에서 투이의 열기가 불어 30만부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보통 2000부 이상 팔리면 성공이라고 여기는 베트남에서 출간되자마자 순식간에 30만부가 팔린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결국 전쟁을 겪은 세대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후 세대들에게 그녀의 치열한 삶과 역경이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자하는 투지를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일기 속의 그녀는 투철한 책임의식이 있었고, 환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감정이 상했을 때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해, 자신의 본보기로 삼았다. 타고난 열정으로 내적인 삶을 살찌웠고, 의사임에도 총을 들고 일어나 부상병을 위해 싸우다가 병사처럼 쓰러졌다.
그녀는 그 위치에 있으면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을 일기에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항상 죽음이 존재하고 있었다.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도 일기를 썼다는 것에, 한 인간의 고상함이 있다.
이 일기를 통해 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되돌아보면서 생명의 존엄성과, 약 40년 전에 성스럽고 순수한 삶을 살았던 한 베트남 여성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일기는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접기
M*A*S*H*
1968년 월남 대통령 티우는 신년 기자회견을 병영에서 시작하였다. 탄약상자 위에 앉아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조만간 월남전쟁은 종결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달이 지난 뒤에 북베트남은 남부의 베트콩과 연계하여 舊正攻勢-월남어로는 테트-로 알려진 반격을 시작하였다. 이 시점이 바로 월남전의 분수령이었다. 당시 미국은 무려 50만의 병력을 월남에 파병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숫적 우위를 통해 월남전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티우 대통령은 승리를 장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호언장담을 미국은 물론 전세계도 믿고 있었다. 하지만 북부 월남의 대반격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미국에서는 반전운동이 불붙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에서는 학생운동이 일어나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하버마스를 비롯한 진보좌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왜 프랑스가 베트남이란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렸는지를 알게되었고 결코 자신들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판단은 결국 베트남에 대한 초토화작전으로 이어지게 되고 월남은 북부와 남부 가리지 않고 B-52 폭격기의 폭탄 웅덩이에 뭍혀버리게 된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는 이런 상황이었다. 베트콩 자신들은 세계를 놀라게하는 반격을 가했음에도 정글의 어둠 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들이 승리하였음에도 승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실감할 수 없었다. 밤낮으로 미군의 헬리콥터 공습과 미군 정찰대와의 교전 속에서 그들은 언제나 패배자였고 도피자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불 같은 혁명의 의지만이 이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일기 사이 사이에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라는 소설이 자주 인용된다. 오스트로프스키는 붉은 불과 푸른 물을 통해 의지가 단련된다고 했던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강철은 불에 달굴수록 강해진다고 하였다. 어찌보면 이들 혁명가들의 본질은 종교인의 심성과 유사성을 띠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금욕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자비, 그리고 적-이단-에 대한 불꽃같은 증오심의 표출은 아주 유사하다. 그러기에 이 일기의 주인공은 자신이 외롭게 고립되어 있을 때에도 자기 확신과 본능 사이에서 방황한다. 하지만 그 방황도 잠시뿐 그녀는 순교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순교자가 된다. 그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혁명을 위해...
개인의 일기를 읽어 간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런 작업이다. 한 인간의 내밀함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기록하는 공포와 기쁨, 슬픔은 온전히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의 한 부분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당 투이 쩐의 일기 역시 읽어 가는데 이런 어려움이 있다. 뿌띠 부르주아 출신인 저자는 당원이 되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지만 당은 그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를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당성이 약한 인간으로 판단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는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처럼 단련되기 위해 헌신하고 또 헌신한다. 그녀는 당원이 되기 위한 열망으로 헌신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강철이 되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바로 그 순간 당은 강철에 합당한 지위를 그녀에게 부여한다. 이는 마치 당이란 거대한 유기체가 인간의 운명을 가지고 노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일기에 보이는 여성의 섬세함과 의사로서의 절망감 그리고 혁명의 승리를 갈구하는 전사의 모습이 사랑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약해지는 주인공과 겹쳐진다. 이런 모습 때문에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인간임을 또 사랑에 번민하는 한 여성임을 결코 잊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만약 그녀가 혁명 만세라든가 또는 어설픈 구호를 외치고 죽었다면 일기 속의 내면은 빛 바랜 종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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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yosae 2008-01-2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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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꿈꾼 여의사
평화를 꿈꾼다. 그래서 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총을 들어야 한다. 평화가 없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역설이 아닐수 없다. 냉전이 끝나기 전까지, 그리고 아직도 세상의 곳곳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며 더 나은 곳을 향하여 눈길을 돌리고 있는 중에도 그런 현실은 존재하고, 그런 현실에서 하루 하루를 격정과 아픔과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록이 간간히 우리들에게 알려지기도 한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으로 복무했던 한 젊은 여의사의 기록이다. 그녀는 결국 죽었다. 그녀가 치료하던 환자에게 줄 식량을 찾아 나섰던 길에서. 우리에게는 체 게바라의 티셔쳐가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지금은 혁명도 파는 세상이다. 게바라를 죽게 했던 볼리비아는 게바라의 죽음을 상품으로 팔아 큰 돈을 벌고 있다. 미국도 게바라를 상품화 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이름도 명성도 알려지지도 않은 곳에서, 조국과 민족과 이웃을 위해 기꺼히 희생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사람의 여리고 약한 내면이 잘 나타나 있다. 영웅이 아니라 가늘고 여리지만, 행동에 나서지 않을수 없는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상황과 부딛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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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08-01-2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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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한국에서 이 책이 베트남이나 미국에서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지난밤 나는 평화로운 꿈을 꾸었다>가 한국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유
1.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 사회의 특수한 위치
한국은 베트남 전쟁의 제3자가 아니라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당사국>이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참전 용사의 시선: 파병의 정당성이나 안보 논리가 강하게 작동하는 상황에서, 적군이었던 북베트남군 의사의 일기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심리적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죄책감과 회피: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이슈 등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 혹은 적측의 고통스러운 기록을 직면하는 것을 피하려는 사회적 무의식이 존재할 수 있다.
2. 한국적 <분단 트라우마>와 이데올로기 장벽
이 책의 주인공인 당 투이 쩜은 열렬한 공산주의자이며 혁명 전사이다.
한국 사회는 오랜 분단국가로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기에, 북베트남의 <혁명 정신>이나 <공산주의적 수사>가 담긴 글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갖는 독자층이 두텁다.
베트남과 미국에서는 이 책이 <인간애>로 읽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념의 틀> 안에서 해석될 여지가 많아 대중적인 확산에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3. 국내 출판 시장의 관심도와 마케팅의 부재
한국 독서 시장에서 해외의 <전쟁 수기>나 <다큐멘터리적 기록물>은 소설이나 자기계발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주류 장르에 속한다.
미국에서는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이나 주요 일간지의 대대적인 서평을 통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강력한 촉매제가 부족했다.
당시 한국의 독자들은 베트남 전쟁 자체보다 당대의 한국 사회 문제나 영미권의 대중 문학에 더 큰 관심을 두었던 경향이 있다.
4. 이미 존재하는 <빨치산 서사>와의 유사성
한국 독자들에게는 이미 <태백산맥>이나 <지리산> 같은 방대한 규모의 좌익 전사 서사가 익숙하다.
전쟁터에서의 고립, 혁명과 인간적 감정 사이의 갈등이라는 테마는 한국 문학에서 이미 깊이 있게 다뤄진 주제이다. 따라서 베트남 의사의 일기가 주는 신선함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낮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있다.
평론: 닫힌 마음을 여는 기록의 힘
한국 사회가 이 책을 널리 읽지 않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여전히 베트남 전쟁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 투이 쩜이 꿈꿨던 <평화>는 적군이었던 미군 장교의 마음은 움직였지만, 참전국이었던 한국의 마음까지 닿기에는 여전히 <분단>과 <과거사>라는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이 한국에서 재조명받는 시점이 온다면, 그것은 한국 사회가 베트남 전쟁의 기억과 진정으로 화해하는 때가 될 것이다.
세진님, 호주에 거주하시면서 이 책을 접하셨을 때 느끼신 감회와 한국 내의 반응 차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추가로 더 논의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는 < >를 절대로 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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