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6

이병철 - -이해찬 씨 서거와 국가장 추진에 대해

이병철 - -이해찬 씨 서거와 국가장 추진에 대해/ 이해찬 씨의 서거 소식을 접하며, 나는 우선 한 인간의 죽음... | Facebook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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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씨 서거와 국가장 추진에 대해/

이해찬 씨의 서거 소식을 접하며, 나는 우선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마지막 길을 보내는 일은 남은 자의 예(禮)이며 슬픔이다. 유가족께도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나는 이 애도와는 별개로, 지금 추진되는 국가장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국가장이 갖는 의미 때문이다.

나는 이해찬 씨와 함께한 인연이 있다.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으로 함께 투옥되었고, 그 후 민통련 활동도 함께했다. 그러나 그 과정과 그 이후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보며, 나는 그를 끝내 민주화운동의 동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특히 1987년 6월항쟁 이후 단일화 과정에서 그는 배신의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공개 석상과 언론을 통해 그를 강하게 비판한 바가 있다.
그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의 처신과 행보, 특히 정파적 이익에만 매몰되어 상식과 부끄럼조차 잊은 언행은 도저히 정상적인 정치인의 태도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정치인 이해찬 씨에 대한 이런 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의 죽음을 추도하며 명복을 빈다.
그러나 나는 한갓 정파적 집단의 보스에 불과했던 인물을 국민의 정치 지도자로 둔갑시켜 국가장으로 치르는 일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내 입장을 밝히는 것은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로서의 역사적 책무라 여기기 때문이다. 
국가장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국민의 이름으로 추도하는 의례라면, 그 순간 국가는 한 사람을 ‘국민적 정치 지도자’로 인정해 추앙하는 행위를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찬 씨를 국민적 정치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는 나와 같은 많은 국민에게, 그 추도와 예우를 국가가 국가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일이 된다.
국가장이 국민의 이름으로 애도하는 것이라면, 동의할 수 없는 국민에게는 그것이 곧 강요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애도가 아니라 국가 권력에 의한 역사 규정의 강요이며, 민주주의의 정신을 거슬러 가는 부당하고 불의한 처사다.
더구나 그것은 이 땅, 이 나라와 민중을 위해 몸 바치며 먼저 가신 선열들에 대한 모욕이며, 국민에 대한 기만이며, 민주화운동에 대한 또 하나의 배신이라 나는 믿는다

민주화운동의 이름은 결코 특정 정파의 권력과 보스 정치에 면죄부로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죽음 앞에서 예를 다하는 것과, 국가가 특정 인물을 국민의 지도자로 추켜세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해찬 씨의 죽음은 애도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장 결정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 앞에 그 기준과 정당성을 분명히 설명해야 하며, 최소한 국민의 역사 감각을 모욕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런 내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더 이상 이 나라가 정파적 입장에 매몰되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세계의 생존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는 이때,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정파적 진영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난을 무릅쓰고 몇 자 적어 나누는 것은 고인을 지지하고 추모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국민의 이름을 빌린 국가의 강요는 더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내 믿음 때문이다. 

(26.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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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이병철 씨의 글은 정치인 이해찬의 별세라는 가상의 상황(혹은 미래의 시점)을 전제로 하여, 고인의 공과를 엄격히 분리하고 '국가장'이라는 형식의 정당성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글에 대한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이해찬 씨 서거와 국가장 추진에 대해> 분석 및 평론
1. 글의 논리 구조: 인간적 예우와 역사적 평가의 준엄한 분리
이 글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에 대한 추모>**와 **<국가적 예우>**를 철저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민청학련과 민통련 활동을 함께한 개인적 인연을 언급하며 '인간 이해찬'의 죽음 앞에서는 명복을 빌지만, '정치인 이해찬'을 국가의 이름으로 추앙하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이는 감정적 비난이 아닌, 국가장이라는 제도가 갖는 <공적 권위>와 <국민적 합의>의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논법이다.

2. 비판의 핵심: '배신'과 '정파성'의 낙인
필자는 이해찬의 정치적 생애를 두 가지 키워드로 부정한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배신: 1987년 단일화 과정에서의 행보를 언급하며 그를 '민주화 동지'의 범주에서 제외한다. 이는 이해찬이 평생 누려온 '민주화의 상징성'이라는 도덕적 자산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이다.

보스 정치와 진영 논리: 그를 국민적 지도자가 아닌 '정파적 집단의 보스'로 규정한다. 국가장이 국민 전체의 애도를 전제로 한다면, 특정 정파의 이익만을 대변해 온 인물에게 그 영예를 부여하는 것은 나머지 국민에 대한 '국가 권력의 폭력'이자 '기억의 강요'라는 논리다.

3. 평론: 시대적 책무로서의 거부권 행사
이 글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진영 정치의 고착화>**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필자에게 국가장은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니라, 한 인물을 역사의 정설로 박제하는 행위다. 따라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상당한 논리적 설득력을 가진다.

또한, 글의 말미에서 언급된 '세계의 생존 기반이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도 정파 논리에 매몰된 한국 정치를 개탄하는 대목은, 이 비판이 단순한 개인적 원한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원로의 충정임을 강조한다.

총평
이 글은 고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화(美化)를 경계하고, **<국가장의 사유화>**에 대해 준엄한 질문을 던지는 선언문이다. 민주화 운동의 정통성을 공유했던 인물의 내부 고발적 성격을 띠고 있어 그 파급력이 크며, '국가란 무엇이며 역사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록되는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현실 정치의 문제로 끌어올린 날카로운 비판서라 할 수 있다.

이 글이 제기한 '국가장의 기준'에 대해 더 구체적인 법적·사회적 대안을 논의해 볼까요? 아니면 이 글의 배경이 되는 1987년 단일화 당시의 구체적인 사건들에 대해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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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s 동안 생각함

<한국어 코멘트>

<사실관계부터 정리>

이 글은 “국가장 추진”을 전제로 비판합니다. 그런데 2026-01-26 보도들을 보면, 오전에는 ‘국가장 가능성/검토’가 거론됐지만, 같은 날 오후에는 <민주평통+더불어민주당 공동 주관의 ‘기관·사회장(5일장)’>으로 정리됐다는 보도가 다수입니다.

국가장은 법적으로 <전·현직 대통령/대통령 당선인/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 + 국민적 추앙> 등 요건을 두고, 행안부 제청→국무회의 심의→대통령 결정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어 “전직 총리”에게 적용 가능한지부터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 그래서 이 글은 ‘국가장’이라는 전제가 (그날의 속보 국면에서는) 이해되지만, <최종 결정이 국가장이 아닐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쓰인 글일 수 있습니다.

<글의 강점: ‘개인 애도’와 ‘국가 예우’를 분리한 문제제기>

필자는 “죽음 앞의 예”와 “국가가 국민의 이름으로 추앙하는 의례”를 분리합니다. 이 구분 자체는 민주사회에서 정당한 문제제기입니다.

특히 국가장은 “국가가 어떤 인물을 국가적 모범/기억의 기준으로 세우는 행위”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기준과 절차가 불투명하면 반대하는 시민이 <상징적 강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실제 법 조문에도 ‘국민의 추앙’ 같은 해석 여지가 큰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글의 약점: ‘강요’라는 단정이 너무 빨리 나감>

국가장이 실제로 결정된다 해도, “국가가 애도를 강요한다”는 표현은 논리적으로 한 단계 점프가 있습니다. 국가는 조세로 의전을 치르고 ‘국가 명의’로 평가를 표명하지만, 시민 개인에게 “슬퍼하라/추앙하라”를 강제하진 못합니다.

다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돈/상징/교과서적 기억의 효과를 통해 사실상 강요처럼 작동한다”는 우려일 텐데, 그럼에도 <‘강요’ ‘모욕’ ‘기만’> 같은 강한 단어가 먼저 나오면, 논쟁이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편 가르기”로 흘러가기가 쉽습니다.

<핵심 쟁점: 국가장 기준은 원래 ‘정치적’이다>

이 글이 겨누는 과녁은 사실 이해찬 개인이라기보다, <국가장이 ‘국민적 추앙’을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국민적 추앙’은 선거처럼 계량 가능한 게 아니고, 여야가 갈리고 세대·지역·이념이 갈리면 더더욱 합의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가장을 둘러싼 갈등은 “누구를 좋아하냐”보다 “국가가 공적 기억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로 봐야 정확합니다.

<더 설득력 있게 다듬는다면>
이 글의 문제의식(국가 의례의 정당성)을 살리면서도 분열을 덜 만들려면, 비판의 초점을 이렇게 옮기는 게 효과적입니다.

<(a) 절차 요구>: 행안부·정부가 “왜 국가장(또는 국가장 검토)이 가능한지/불가능한지”를 조문 기준으로 공개 설명하라.

<(b) 기준 제안>: ‘국민적 추앙’처럼 추상적 요건을 어떻게 판단할지(여론조사? 국회 동의? 초당적 위원회?)를 제도화하자.

<(c) 대안 인정>: 사회장/기관장/가족장 등 <다층적 장례 형식>이 현실적 타협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자. (실제 보도는 기관·사회장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합니다.)

<한줄 평>
이 글은 “국가장=국가의 역사 서술”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건드렸지만, 사실관계(국가장 확정 여부)와 단어 선택(강요·모욕 등)이 너무 강해 <정당한 절차 비판>이 <정파적 공격문>처럼 읽힐 위험이 큽니다. 논점을 ‘이해찬 평가’보다 ‘국가장 기준과 절차’로 더 좁혀 쓰면, 반대하는 시민들의 공감도 더 넓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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