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3

한국 경제가 마주한 일본 경제式 장기 침체 : 월간조선

[특집 / 위기의 한국 경제] 한국 경제가 마주한 일본 경제式 장기 침체 : 월간조선

[특집 / 위기의 한국 경제] 한국 경제가 마주한 일본 경제式 장기 침체
삼성·현대차·SK하이닉스만 쳐다보는 한국 경제의 ‘경쟁력 유지’ 착각

글 : 권혁욱 니혼대 경제학부 교수


⊙ 미·중 무역갈등, 트럼프의 대규모 대미 투자 요구로 한국 경제 위기 확대될 위험 있어
⊙ 한국의 경제위기는 1979년 제2차 석유파동, 1997년 외환·금융위기, 세 번째 진행형 위기는 장기 침체
⊙ 청년 실업률·노인 빈곤율 높고, 한계기업 비중은 확대, 기업부채·가계부채는 통제 불능 상태
⊙ 재정지출 확대, 단기적 소비 진작 대신 인공지능, 로봇공학 등 기술 변화에 부합하는 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 한국에서 ‘창조적 파괴’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영역은 노동 시장과 학교 교육
⊙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 재정 확대와 건설 경기 활성화에 의존할 경우 네 번째 위기 찾아와

權赫旭
일본 히토쓰바시대 경제학 박사 / 서울대 경제연구소 방문교수, 일본 경제산업성 ‘경제산업연구소’ 자문교수, 일본 문부과학성 ‘과학기술·학술정책국책연구소’ 방문연구원 역임. 現 니혼대 경제학부 교수

2024년 7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 걸려 있는 삼성 깃발의 모습. 한국 경제는 삼성과 현대차, SK하이닉스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사진=조선DB

경제위기란 일반적으로 실질 GDP 성장률이 연간 3~5% 감소하거나, 실업률이 단기간에 2~3%포인트 상승하여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세계 경제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 대공황을 비롯해, 1973년 제1차 석유파동과 1979년 제2차 석유파동,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글로벌 경제위기를 들 수 있다.

1929년 대공황은 기존의 자유방임적 경제관이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과 총수요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였다. 케인스 경제학은 이후 거시경제학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석유파동은 물가 상승과 실업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초래하였고, 당시 주류였던 케인스 경제학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경제위기로 생긴 거시경제학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거시경제학의 주류는 점차 시장의 자율성과 합리적 선택을 강조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이동하였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총리는 이러한 이론적 흐름을 바탕으로 ‘큰 정부’에서 ‘작은 정부’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며, 규제 완화와 민영화, 감세 정책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시장의 자율성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를 계기로 케인스 경제학이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이처럼 대규모 경제위기는 단순히 실제 경제 활동에 충격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학의 패러다임과 정책적 사고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해 왔다. 경제학 이론의 변화와 함께 새롭게 도입된 경제 정책들은 각 시대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교훈으로 남아 있다.

한국 경제가 경험한 본격적인 경제위기는 1979년 제2차 석유파동과 1997~1998년 외환·금융위기로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 경제위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정치 불안과 제2차 석유파동이 겹치면서 발생했으며, 고도성장을 지속해 오던 한국 경제가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1979년에 나타났다. 1973년부터 추진된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대규모 조세 감면과 재정지출 확대를 중심으로 확장적 거시경제 정책을 동반하였고, 이 결과 재정적자 확대와 물가 상승률 급등을 초래했다. 또한 낮은 금리의 정책 금융을 제공받은 재벌기업들은 수익률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과도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이는 부실채권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러한 국내 경제의 모순에 더해 제2차 석유파동이라는 세계적 경제 충격이 결합되면서, 결국 경제위기의 발생은 불가피한 결과가 되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케인스 경제학이 아닌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처방을 따른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부는 기존의 정부 주도 산업 정책을 중단하고, 물가 안정을 목표로 긴축 재정 정책을 시행하였다. 또한 경제 운영의 중심을 계획에서 시장 기능에 맡기는 자유화 기조로 정책 방향을 수정하였다. 이러한 비교적 적절한 대응의 결과, 1980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의 1인당 GDP는 연평균 7.4%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과거 한국의 경제위기와 극복 체험

두 번째 경제위기는 다시 찾아온 고도성장에 도취된 가운데 진행된 경제 자유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이 시기 은행은 민영화되고 금리는 자유화되었으나, 기업들은 은행 차입에 의존하여 이윤보다는 외형적 성장을 우선시하는 투자를 지속하였고, 은행 역시 이러한 기업 형태를 사실상 방조하였다. 이 결과 1979년 이후 한국 기업의 자기자본수익률이 차입금평균이자율보다 낮은 비정상적인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 속에서 1997년 말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강타하면서, 1998년 실질 GDP성장률이 -6.7%까지 하락하였다. 이 위기의 충격으로 당시 4대 그룹 중 하나였던 대우그룹을 포함해 11개 재벌그룹이 해체되었으며, 동화은행, 동남은행, 대동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 등이 퇴출되었고, 종합금융사도 많이 도산하는 등 한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정부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IMF의 지도하에 금융 시장 개혁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구조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재벌기업의 무분별한 차입 경영, 문어발식 확장, 그리고 부실한 재무구조에서 찾고, 부채비율 200% 제한, 사외이사제 의무화, 소액주주의 소송권 및 장부열람권, 계열사 간 채무보증 전면 금지, 부당내부거래규제, 적대적 M&A 허용, 재벌 간 사업을 교환하는 빅딜 등을 기업 구조개혁 정책으로 실시하였다. 이와 같은 대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요 선진국들이 경기 회복을 위해 확장적 재정·금융 정책을 신속히 실시한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한국은 총수요 확대 정책이 아닌, 국내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는 구조개혁에 집중함으로써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한국은 두 번의 경제위기 모두에서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기반한 정책 대응을 통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버블 경제의 붕괴


일본 경제는 대공황을 비롯해 두 차례의 석유파동, 아시아 금융위기, 세계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적 충격은 물론 코로나19 팬데믹과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위기도 겪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케인스 경제학에 근거한 총수요 확대 정책을 통해 이러한 경제위기들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본 경제를 결정지은 가장 중대한 경제위기는 바로 버블 경제의 붕괴였다. 〈그림1〉에서 보듯이,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었음에도 뚜렷한 회복을 이루지 못한 채 기록적인 저성장이 지속되는 장기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장기 침체는 산업혁명 이후 시장경제 체제의 국가 중에서 일본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새로운 유형의 경제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외부 충격에 의해 발생한 경제위기는 비교적 단기간에 극복될 수 있는 반면, 내부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는 그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거 일본의 성공을 뒷받침했던 종신고용제와 연공임금제, 기업별 노조로 구성된 고용 시스템, 기업 간 수직 계열화로 대표되는 생산 시스템, 그리고 주거래은행 제도와 같은 자원배분 시스템은 ICT 혁명과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의 디지털화로 인해 유효성을 상실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부합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도입되지 못하면서, 일본 경제의 내부적 모순은 오히려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기술의 디지털화에 대응하여 벤처 캐피털과 수평적 분업 구조가 결합되면서, 기존의 대기업에 소속된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기업을 비교적 쉽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이후에도 Amazon, Google, Facebook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새로운 부와 고용을 창출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기존의 고용 시스템, 생산 시스템과 자원배분 시스템을 고수함으로써 대기업에 속한 엔지니어들이 기업 내부의 틀 안에서만 개선, 개량 중심의 공정기술 개발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결과, 미국과 같은 수준의 부와 고용창출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내부 모순의 결과로 나타난 기록적인 저성장은 국제 비교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림2〉는 한·미·일의 1990년과 2025년의 1인당 GDP를 비교한 것이다. 1990년에는 세 나라 가운데 일본이 가장 높은 소득 수준을 기록했으나, 현재는 오히려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같은 기간 한국과 미국의 1인당 GDP가 각각 450%와 276% 증가한 반면, 일본의 증가율은 32%에 그쳤다. 이러한 수치는 일본 경제가 장기간 저성장에 머물러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의 국제경쟁력의 저하와 노동자 임금 하락, 그리고 경제성장률 둔화 사이에는 상호적인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장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약화되고,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 또한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표1〉은 1989년과 2025년의 세계 기업 시가총액 상위 10위를 비교한 것이다. 버블경제 붕괴 이전인 1989년에는 일본 기업이 세계 10대 기업 가운데 8개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2025년에는 단 한 곳도 포함되지 못한 반면 미국 기업이 8곳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일본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그림3〉은 일본의 명목·실질임금 지수의 추이를 나타낸다. 명목임금은 1996년에, 실질임금은 1997년에 각각 정점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임금 하락은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가 노동 시장 전반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출산율 저하, 자살자 증가

장기 침체는 경제변수에만 국한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출산율이나 자살자 수와 같은 사회적 지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경우, 버블경제 붕괴 이후인 1993년에 합계출산율이 1.50 이하로 하락한 뒤, 이른바 잃어버린 30년 동안 회복되지 못한 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결과 일본 사회의 고령화는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었다.

자살자 수도 1990년 이후에 2010년 까지 급격히 증가하여, 그 규모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넘어설 정도에 이르렀다. 이후 이른바 2차원의 금융 정책을 통해 경기 회복이 일부 이루어지면서 자살자 수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여전히 2만 명을 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경제 상황의 장기적인 부진이 국민의 생명과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장기적인 경제 침체는 그동안 경험해 온 경제위기와는 달리, 위기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아 경제와 사회 전반에 매우 큰 타격을 초래하는 새로운 유형의 경제위기라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장기 침체를 마주한 한국 경제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명예교수가 〈한국 경제: 성장위기와 구조개혁〉 (2016년)이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997~98년 외환 금융위기 이후 약 5년 주기로 1%씩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법칙을 제시했다. 이러한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25년에 이르러 마침내 1%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경제성장률이 2% 수준으로 하락한 박근혜 정부 출범 시점인 2013년을 기점으로 한국 경제는 장기 침체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이 과거에 경험했던 두 차례의 경제위기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과도한 투자가 지속되면서 자기자본수익률이 차입금평균이자율을 하회하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누적된 결과였다. 이로 인해 부실채권이 증가했고, 외환위기는 금융위기로, 나아가 전반적인 경제위기로 확대된 것이었다. 두 차례의 경제위기는 한국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재정·금융의 확장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구조개혁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공통적으로 V자형 회복을 달성했다.


추세적인 경제성장률 둔화라는 장기 침체형 경제위기에 직면한 한국 정부는 과거의 위기 대응 경험에서 교훈을 도출하기보다 단기적인 경기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반복했다. 정권과 관계없이 재정 확대, 저금리 기조를 비롯해 건설 경기 부양, 대규모 토목사업, 기업투자 유인을 위한 규제 완화 등 가능한 모든 경기부양 수단이 동원되었으나, 이럼에도 한국 경제의 장기성장률의 하락 추세는 반전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왜 분명한 경제성장률의 둔화를 체감하지 못한 채, 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인식하며 대응하고 있을까? 그 가장 큰 이유는 과거의 경제위기와 달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포스코, 현대중공업, 네이버, 카카오 등 일부 대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어 한국 경제가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역시 장기 침체 가운데서도 자국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오판에 근거해 경제의 체질 개선보다는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기부양에 집착했고, 그래서 장기 침체를 더욱 길고 깊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기업만 바라보는 한국 경제의 착각과 오판

2020년 1월 22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공단로 위치한 폐업한 공장 모습. 현재 한국 경제는 한계기업의 비중이 확대되고,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는 통제 불능에 가까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사진=조선DB
우리의 인식과 달리 각종 경제·사회지표는 한국의 경제 시스템이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장기 침체 국면에 진입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높고, 노인의 빈곤율 역시 국제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며, 한계기업의 비중은 확대되고 있다. 기업부채와 가계부채의 증가는 통제 불능에 가까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반면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지표들을 종합하면 한국 경제와 사회가 내부적으로 서서히 내려앉아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구조적 위기 위에서 범용 기술 분야에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전례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바이오 산업과 의료 기술, 나노 기술, 3D프린트, 사물인터넷 등 과거에 없던 기술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 변화에 부합하는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실패할 경우, 한국은 선진국 지위를 상실하고 개발도상국으로 후퇴할 수 있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 내부의 구조적 모순으로 이미 장기 침체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과 미국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압박 수단으로 한국에 요구한 대규모 대미 투자로 인해 중대한 경제위기로 확대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극적 재정 정책을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소비쿠폰 등으로 단기적인 소비 진작에 나서는 경기부양책은 한국 경제에 득보다는 실이 클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대한 경제위기를 촉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이 위기를 계기로 기득권 구조를 과감히 재편하고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한다면, 한국 경제는 장기성장률 하락의 함정에서 벗어나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 앞에 놓인 두 갈림길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반복될 것인지 아니면 위기가 기회로 전환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창조적 파괴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1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시기에는 기존 기술에 기반한 기업들이 퇴출되고,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업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위대한 경제학자 슘페터는 이러한 과정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고 명명했다.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2025년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기온 교수 역시 분명하게 밝혔다. 한국에서 창조적 파괴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영역은 노동 시장과 학교 교육이다. 노동자에 대한 해고가 지나치게 경직된 사회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비용을 감수하며 도입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을 도입하려면,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인력은 감축하고 대체하기 어려운 인력은 새롭게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에서는 인공지능 도입 자체도, 그에 따른 새로운 고용 창출도 모두 제약을 받게 된다.

교육도 암기 중심, 시험 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창의적인 사고력과 사회적인 관계 형성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시험 경쟁을 통한 기존의 인적자본 육성 방식에서, 보다 높은 차원의 인적자본을 양성하는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공정한 시장 경쟁 기능을 강화하여 한계기업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비효율적 기업이 자연스럽게 퇴출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이고 성장잠재력이 높은 기업들이 활발히 진입할 수 있는, 이른바 경제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창업가가 기업을 자유롭게 설립하고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되는 생태계가 자리 잡으면, 한국은 국내외에서 기업 하기 좋은 국가로 인식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외 기업의 직접 투자가 늘고, 국내에서도 창업 열기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이 잇따라 등장하게 된다.


네 번째 맞이할 큰 경제위기는…

이러한 신생 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유연한 노동 시장, 창의적인 교육 체계와 맞물려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추진된 기업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했듯이, 교육·노동·기업 전반에 대한 구조개혁은 한국 경제를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경제로 도약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 단기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확대와 건설 경기 활성화에 의존할 경우, 한국 경제는 세 번째 현재진행형 경제위기인 장기 침체를 극복하기는커녕 보다 심각한 경제위기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네 번째 맞이할 큰 경제위기는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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