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소작농과 구한말 소작농의 평균적 생활 수준
비이성적 반일감정 관련 글들
2014. 1. 20. 22:53
https://blog.naver.com/athina/40204995899허수열 교수의 이 논문을 참고하면 구한말 소작농과 일제시대 소작농의 생활수준을 짐작하는데 약간의 도움이 될 듯 하다.
http://www.kehs.or.kr/xe/796 (일제하 조선에 있어서 일본인 토지소유규모 추계. 경제사학회 vol. :46 저자 :허수열 발행연월 :2009-06 )
허수열 교수의 이 논문은 2005년 출판된 '개발없는 개발(허수열 저)'에서 본인이 일제시대의 쌀 생산량의 절반 혹은 때에 따라 50% 이상을 일본인들이 점유하고 있었다고 통계치를 제시한 것에 대해, 김낙년 교수가 허수열 교수는 통계치를 완전히 오독하여 일본인 소유 토지가 조선인 소유 토지에 비해 4-5배의 생산성을 보였다는 식의 엉뚱한 결론을 낸 것이라고 서평을 통해 반박한 것에 대답한 연구이다(김낙년 교수의 지적 내용은 아래 링크 참조).
http://www.kehs.or.kr/xe/2243 [서평] 허수열 저, 『개발 없는 개발: 일제하 조선경제 개발의 현상과 본질』경제사학회 vol. :38 저자 :김낙년 발행연월 :2005-06
간단히 요약하면 허수열 교수는 김낙년 교수의 해당 지적을 이 논문에서 인정하였으며, 일본인 소유 토지의 쌀 생산량은 '개발없는 개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선 전체 생산량의 절반이 아니라 1931년에 20%였고 피크에 도달했을 때에도 25.4% 수준이었을 것으로 본인이 애초에 계산한 수치를 대폭 하향하였다(각론적인 계산법에서는 김낙년 교수와 의견을 달리하였다). 또한 '개발없는 개발'의 2011년 개정판에서 김낙년 교수에게 지적받은 오류를 수정하였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806180 (개발 없는 개발 - 허수열 : 일제하 조선경제 개발의 현상과 본질)
[이 책은 그동안 허수열 교수 이론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토지생산성을 고려한 일본인 소유의 논면적 추계’ 부분을 수정, 보충한 개정증보판이다. 이로써 초판본에서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경지면적이 부풀려진 오류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식민지적 개발은 조선인의 진정한 개발을 저해한 개발 없는 개발이었다’는 전체적인 기조는 변함없다. 일본 식민 지배기 동안 급속히 근대화되었다는 농업, 공업,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민족별 극심한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했으며, 그러한 식민지 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조선인들의 삶의 질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개선될 전망도 없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개발의 허구성을 논증한다.]
위의 책 소개를 보면 허수열 교수는 수량통계적 방법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소위 말하는 '식근론'과는 전혀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일제시대를 해석하는 성향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허수열 교수의 '개발없는 개발'은 식근론을 반박하기 위해 "일제시대에 근대화가 있기는 했으나 조선인들의 삶의 질에는 향상이 없었고 그나마 남은 유산도 해방 후에 폭삭 사라져버려 거의 의미가 없었다"는 주장을 하는 쪽의 좋은 참고자료로 이용되곤 한다.
그런데 허수열 교수는 위의 논문을 쓰면서, 일제 시대의 소작료율이 낮은 등급의 논에서는 더 낮고, 높은 등급 논에서는 더 높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최빈값은 50%에 수렴하고 있음을 여러 가지 자료들을 통하여 주장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김낙년 교수는 '개발없는 개발'에 대한 서평에서 소작인 1인이 가져가는 쌀의 양은 크게 차이가 없어 생산량이 증가하면 소작료도 올라갈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어째 두 학자가 서로의 성향과는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튼 일제시대 농민의 삶의 질에 '향상'이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계산법을 둘러싼 두 학자의 논쟁점과 관련이 있는 부분인 모양이다.
그러한 쟁점이야 어찌되었든 이 논문에서의 허수열 교수의 주장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면, 일제시대 소작료는 생산량과 거의 무관하게 거의 50% 수준에서 고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일제시대 동안 단위 농지당 쌀 수확량이 두 배까지 점진적으로 증가하였다는 사실과 결합하면 결국 일제시대에 조선인 소작농이 소작료를 내고 가져가는 쌀의 양은 구한말에 비해 두 배로 증가한다는 뜻이 아닌가? 조선시대의 소작료나 소작비율은 일제시대와 대동소이한 수준이었다.
아래 링크(도쿄대 농학생명과학연구과) 홈페이지에서는 조선총독부의 통계치를 통해 일제시대 조선, 대만, 일본의 쌀생산량과 단위면적당 수확고 변화를 보여준다.
http://park.itc.u-tokyo.ac.jp/iee/


일제시대 동안 쌀 수확량은 2배 이상으로 점진적으로 늘어났고, 단위 면적당 쌀 생산량도 최대 2배까지 늘어났다. 허수열 교수의 2009년 논문에 따르면 이중에서 일본인이 소유한 땅에서 생산된 양이 20%에서 최대 25%가량이라니 이를 전적으로 인정한다해도, 조선인이 소유한 토지에서 생산된 쌀의 양만도 구한말보다는 훨씬 더 많아진 것이다. 또한 허수열 교수에 따르면 소작료율은 50%에서 거의 고정되었다고 하니 일본인 지주의 땅에서 생산된 쌀의 절반은 조선인 소작인이 가져가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조선 쌀 생산량에서 일본인 지주의 최종적인 몫은 10%에서 최대 12.5%였던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일제시대 동안의 쌀 수확량의 90% 가량은 최종적으로 조선인의 몫이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조선인 농부에게 쌀은 소중한 환금작물이라 함부로 먹을 수 없으니 이를 내다팔고 주식은 값싼 만주산의 좁쌀과 콩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때문에 농업인구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서라면 구한말의 소작농에 비해 일제시대의 소작농의 생활수준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물론 일제시대 동안 조선은 일본 본토의 인구증가율을 두 배 가까이 상회하는 폭발적 인구 증가(1500만, 1600만 수준에서 2700만명 수준으로)를 보였으니 이러한 인구증가로 인해 농업생산성의 증가가 매우 큰 부분 잠식되는 맬서스적 상황에 빠졌을 수 있다. 김낙년 교수와 허수열 교수의 논쟁은 이 부분도 다루고 있다. 사실 경제성장률이 제한적인 상태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수록 1인당 생활수준은 단기적으로는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인구의 급증은 한편으로는 식민지 조선의 상태가 적어도 마구 증가하는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동안 조선 전체의 농업생산성이 급증하였음에도 인구의 급증이 이를 상쇄하여 생활수준의 향상이 미비했을 수 있다는 점은 일본의 에도시대의 인구급증을 떠올리게 하는 듯도 하다. 이러한 질곡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해방 후 이루어진 진정한 산업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래는 허수열 교수의 해당 논문에서 소작료 관련 부분들의 이미지들이다(전문은 맨 위의 링크에서 다운받으면 됨).
태그#일제시대#소작농#자작농#생활수준#일본인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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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롭일제시대때 소작농들은 구한말 소작농의 생활수준보다 확실히 나아졌다고 봐야하는군요
2014.1.21. 15:31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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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버블로그주인일제시대 동안 조선인의 평균신장이 2cm 커졌다고 하니, 생활수준의 향상이 비록 충분하지는 않았으나 일정 수준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에게 다 수탈당해서 굶고 살았다는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2014.1.21. 16:51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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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일제시대 소작농과 구한말 소작농의 평균적 생활 수준|작성자 다만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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