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학교 - 한 사회학자의 한국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한 지적 성찰
김덕영 (지은이)인물과사상사200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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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사회의 근대성에 대해 고민해온 사회학자가 쓴 한국 교육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 형식적으로 서구 근대교육 제도를 취하고 있지만, 서구 교육의 중심을 이루는 근대적 인간관, 즉 개인주의적 인간관이 부재하다는 점을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한다. 그래서 제목도 근대성으로 '위장된 학교'.
한국과 독일에서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하며, 대학 서열화와 과열된 입시경쟁,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학생을 훈육 대상으로 보고 집단주의적 규범을 주입시키는 교육 등 한국의 지적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점들을 제기한다.
목차
머리말 ㅣ 한국적 그라이아이의 반전을 위해
1부 패러다임의 대전환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대학 서열화
공교육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
'가장 위대한 한국의 철학자 이퇴계'에 담긴 뜻은?
세계적인 대학은 과연 가능한가
초등학생도 국가 경쟁력 제고에 동참할지어다!
피터팬과 신데렐라의 사회
정말 대학 교수는 일류, 고등학교 교사는 이류인가?
기존의 스승과 제자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논쟁이 없는 대학은 공동묘지이다
노벨상을 향한 민족의 대행군
2부 '배움'의 또 다른 정의
한국 학교의 개인주의 혐오증은 정당한가
도덕적인 학교, 비도덕적인 사회는 어떻게 공존하는가
'근대'를 부정하는 잡화상 교육
규율사회의 요람, 학교
스키너 상자 속에 갇힌 학생들더보기
책속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서구에서 발달한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집단주의를 인간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 개인주의(자)는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큰 욕이자 비난이다. 왜냐하면 개인주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태도인 이기주의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개인은 가족.기업 또는 국가를 위...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덕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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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사회학 마기스터(Magister)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카셀 대학에서 게오르그 짐멜과 막스 베버에 대한 비교연구 논문과 사회학 및 철학에 대한 강의를 바탕으로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현재 카셀 대학에서 사회학 이론을 가르치면서 저술과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의 현상학: 게오르그 짐멜 연구』(나남, 1999), 『주체, 의미, 문화: 문화의 철학과 사회학』(나남, 2001), 『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한울, 2003... 더보기
최근작 : <에리식톤 콤플렉스>,<에밀 뒤르케임 : 사회실재론>,<루터와 종교개혁> … 총 38종 (모두보기)
김덕영(지은이)의 말
한국에서의 배움과 가르침의 의미, 학교를 통해 진정한 근대성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나의 작업은 평소 내가 전문적인 철학적.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해 추구했던 주제와도 통한다. 한국 사회는 과연 진정으로 근대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늘 나의 가장 큰 지적 고민이다.
출판사 소개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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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범생 공화국, 대만>,<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등 총 420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5위 (브랜드 지수 136,848점), 역사 14위 (브랜드 지수 235,268점)
별 한개도 아깝소
이 땅의 한국인이 다 그렇겠지만, 교육은 내 관심분야다. 하지만 교육에 관련된 책이라고 다 사는 건 아니다. 내가 김덕영이 쓴 <위장된 학교>를 산 이유는 그 책이 내가 선호하는 출판사인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는 도끼도 가끔 발등을 찍는지라, 난 이 책을 매우 재미없게 읽었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차분히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지레 흥분해 장광설을 늘어놓다 끝을 내고 만다. 이 책이 갖는 많은 단점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같은 말의 반복이다. 대표적인 것만 예를 들어보자.
1) “학문, 즉 유교의 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은 시.서.화 또는 악과 같이 전인격적인 삶과 행위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유교는 보편인을 추구한다(105쪽)
-사실 학문은 고전의 공부 이이(오자다)에도 시.서.화 또는 악과 같이 전인격적인 삶과 행위를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유교는 보편인을 추구한다(119쪽)
-사실 학문은 고전 공부 이이에도(역시 오자) 시.서.화 또는 악과 같이 전인격적인 삶과 행위를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유교는 보편인을 추구한다(134쪽)
--> 지금 개그하나? 아무튼 이런 정도의 반복은 이 책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2) “사실 우리의 전근대 사회에서는 아동기나 청소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개인들이 가능하면 빨리...성인의 세계로 편입되어 노동과 생산에 종사하는 것이었다”(88쪽)
-사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아동기나 청소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개인들이 가능하면 빨리...성인의 세계로 편입되어서(‘서’가 있다는 게 틀리긴 하다) 노동과 생산에 종사하는 것이었다‘(199쪽)--> 멀리 띄어놓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았지?
3) “한국 사회에서는...박사를 만물박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100쪽)
-많은 한국인들은 박사에 대해 박학다식한 만물박사라는 표상을 지니고 있다(103쪽)
--> 문장이 조금 다르긴 해도, 뜻은 매우 비슷하지 않는가. 그 다음에 나오는 부연 설명 역시 대동소이하다.
4) “서울대가 세계 100위 대학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요즈음은 꽤 여러 대학들이 세계 100위 대학 운운하고 있는 실정”(63쪽)
-서울대가 세계 100대 대학이 되느냐 아니냐를 놓고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더니 요즈음은 한국의 이름 있다는 대학들이 조만간 세계 100위권 진입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기도 한다(76쪽)
--> ‘이야기’와 ‘설전을 벌이다’는 어떻게 다른 걸까.
5) “아무튼 우리 한국인들은 매사에 극단적이고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특성이 있다...한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이퇴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 세종대왕...(51쪽)”
-한구인의 일상적 대화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너무 흔하게 등장한다.... 한국사에서 가장 뛰어난 임금, 조선조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76쪽)
--> 다른 건 모르겠고, 이 책의 저자는 매사에 극단적으로 반복을 많이 했다.
6) 이웃하는 문장에서의 중복; “지금 한국에는 지나치게 대학이 많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에 비해 가장 대학이 많은 국가라고 말한다”(197쪽)--> 이 두 문장 중 하나가 없다면 이해가 잘 안되나보지?
그밖의 단점.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 수학한 독일의 교육제도가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독일에 사는 한국 어린이가 쓴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 분량이 매우 충격적이다. ‘이집트-파라오들의 나라’라는 제목의 리포트는 237쪽부터 시작해 253쪽에서 끝난다. 그러니까 무려 17페이지를 초등학생이 쓴 보고서로 우려먹은 건데, 정말이지 대단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해석이 충격적인 대목; 저자는 초등학생만 돼도 다 아는 황희정승의 일화-니말도 옳고 쟤 말도 옳다-를 여덟줄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 뒤 이렇게 얘기한다. “위의 일화에서 황희는 계집종들의 싸움에 자신이 굳이 개입할 하등의 가치가 없기 때문에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한 입장을 보인 것에 불과하다. 그 정도는...같은 무리들 사이에서 해결할 성질의 문제라는 뜻이었다(129쪽)”
아무튼,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뭐 하나 건진 게 없다. 30페이지 쯤부터 지루해졌고, 그때부턴 비판할 건덕지가 없을까 눈에 불을 켜고 읽었다. 그런 재미라도 없었다면 진작에 내팽개쳤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도 건진 것 축에 들지 모르겠지만, 너무 출판사만 믿고 책을 사는 것도 위험한 것 같다. 같은 말이 그렇게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편집의 선에서 걸러지지 않는 출판사라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전혀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며, 정 교육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학교종이 땡땡땡>이나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를 읽으시길 권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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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1-19 공감(2) 댓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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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이 위장인가?
이 책을 한참 읽다보면, 왜 이렇게 다 아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열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자가 우리 국민을 교육의 전문가로 인정하면서 그 전문가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나열하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저자는 현실에 대한 비판에 따른 문제제기도 하나의 해결의 의의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전혀 없다.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현상의 원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부정적 측면의 나열에 치중한 듯한 느낌이다. 그냥 이정도는 교양 강의 정도에서 써먹지 왜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준식의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라는 책을 보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의 원인을 홉스테드의 이론에 기대어 분석하고 있다. 문제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드러난다. 그에 비해 이 책은 학자로서 원인에 대한 고민이 별로 보이지 않아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학교 교육의 문제점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시시콜콜히 나열하고 있다.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서열화를 꼽고 있다. 입시를 통해 대학이 서열화됨에 따라 공교육이 부실화되며, 그로 인해 파벌이 확대 재생산되어 우리 나나라는 서울대의 나라가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외국의 대학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전문화, 특성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비교하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로 상하구조를 들고 있다. 이 상하구조가 학교의 서열화와 상호보완되어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서열화와 상하구조는 개인적 자율성 성취를 가로막고 있어서 집단주의적이고 다른 이의 눈치만 보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창의적인 사고의 틀을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 지적은 일견 정당하게 보인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뭐가 위장되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위장이라는 것은 아닌 것을 그런 것 처럼 가리는 것을 의미하는 데, 도대체 이 학교가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은데, 단순 나열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은 아주 다양하다. 단지 그 다양성에 한 권을 더한다는 정도의 의미밖에는 찾을 수 없다. 최소한 학자라면 그러한 문제가 파생된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진단이 필수적인 요소가 아닐까? 최소한 원인을 진단해 줘야 책을 읽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될 일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칠까가 아니라 무엇을 가르칠까를 고민해야 된다. 현재 고민의 부재 시대에 현실에 안주하고 매몰되어 있는 현실에서 근본적인 교육의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며, 개인적인 자율성이 확대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에서 평가의 잣대가 다양화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교육의 관점에서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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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anam 2005-06-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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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된 학교
인물과 사상사에서 나온 책은 색깔이 너무 분명해 간혹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이 책도 흥미있는 제목과는 달리 주관적인 견해나 감정 과잉이 많아 초반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고 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진중권의 책에서도 느낀 바지만 일명 진보주의자들이 추종하는 이념은 다름 아닌 개인주의임을 느낀다
저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개인주의라고 하면 이기주의를 연상시키는데, 그만큼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에 경도되어 있다는 의미도 된다
서구 시민 혁명의 전통이 없는 한국에서 비록 그들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아 들였으나 그 밑바탕이 되는 개인주의나 사회적 연대감이 약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 같다
저자는 독일에서 유학한 후 그들의 교육 방식이나 사회를 모델로 삼았다
선진국과의 비교는 때로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보다 잘 살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의 제도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문제 없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또 그 사회만의 특수성이라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지적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교육 문제는 저자의 표현처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입 전형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는가?
수험생을 둔 학부모라면 대입 정책에 비상한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사교육의 왕국 아닌가?
강남 엄마의 반대는 그냥 엄마라는 말도 있다
고액 과외가 판치고 오직 명문대 입학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질주하는 게 대한민국 학생들의 현실이다
분명히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제일 문제시 되는 것이 주입식 교육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또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주로 조선일보 같은 보수 언론에서 하는 얘기다
미국 공교육의 학력 저하를 예로 들면서, 일정 지식은 주입식 교육으로 집중해서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주입식 교육으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토론하고 연구하는 방식을 배운 적이 없으니, 학생들에게 알아서 공부하라는 말은 어찌 보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현대 사회의 교육 목표란 저자의 말처럼 주체성을 가지고 사회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근대적인 목표, 즉 사회가 원하는 노동력 제공에 매달려 있다
짧은 기간의 경제적 근대화를 이룬 대신,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문화의 특징은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란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개인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에 있는데 전체주의와 아주 상극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시민의 책에서도 읽는 것이지만, 제발 국론 분열 걱정 좀 하지 말자고 한다
다양한 의견을 내 놓고 하나의 합일점을 찾아 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인데, 우리 사회는 언제나 일사분란 하게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전체주의를 원한다
그야말로 조국 근대화에 온 국민이 매진해야 하는 박정희 시대의 정신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는 얘기다
한 사회를 선진국으로 규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성장 외에도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적 성숙도 포함되지 않을까?
개성과 주체성을 가진 개인들이 보여 사회적 연대를 이루는 사회, 이것이 바로 현대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일지 모른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또 들자면 대학의 서열화다
이건 정말 고질적인 문제라 새롭지도 않다
그래도 요즘은 대학이 늘어나고 가치관이 다양화 되면서 대학보다 과가 중요시 되고, 선망하는 직업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서울대가 주는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강준만이 서울대 망국론을 들고 나오면 서울대 못 나온 놈의 학벌 컴플렉스라고 들을 생각조차 안 한다
서울대라는 엘리트 교육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를 위해 돌진하는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이다
왜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서울대 컴플렉스를 느껴야 하는가?
차라리 프랑스처럼 정말 소수가 들어가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만들어 국가를 이끌 싱크 탱크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지금처럼 비대해진 대학에서 쏟아져 나온 졸업생들이 특권층을 형성하는 구도는 문제가 많다
더구나 서울대는 모든 과가 다 한국 최고다
저자는 이런 예를 든다
한국 외대의 러시아학과가 전통을 자랑하며 최고의 권위를 가졌더라도 어느 날 서울대에 러시아학과가 개설되면 그 때부터 외대는 무조건 2등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무조건 서울대가 만들면 최고다
서울대의 엘리트 교육이 문제가 아니다
최고라는 자부심이 학구열을 높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서울대를 선두로 하여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된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아이비 리그라고 해서 여러 개의 명문 대학이 생기면 좀 더 나을 것 같다
그래야 서로 경쟁하며 더 발전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대학의 바람직한 목표를 전문화와 특성화로 잡는다
사실 그래야 대학의 존재 이유가 생긴다
모든 대학이 서열화 되면 저자이 표현처럼 연세대는 서울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죽었다 깨나도 절대 1등 대학이 될 수 없다
사실 대학 교수 집단이 폐쇄성도 문제가 많다
같은 대학 같은 과 출신만 뽑는 관행에 대해, 저자는 동종교배와 근친상간이라고 일갈을 가한다
정말 딱 맞는 얘기다
근친상간은 유전적 결함이 많고 다양성이 상실되서 열등한 생물을 낳는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사회에 무슨 발전 가능성이 있겠는가?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집단이 더욱 배타적인 법이다
책에서 배운 가치를 현실에서는 절대 써 먹지 않는 지성인 집단의 모순이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교수로 채용되는 일이 심심치 않은데, 그 나라라고 해서 편견이나 배타성이 없을 리 없다
다만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인 태도로 학문의 다양성을 위해 아무 빽 없는 유색인종도 채용해 주는 것이리라
요즘 한창 문제가 되는 교실의 붕괴도 교육하는 쪽의 책임이 크다
학생들은 점점 다원화 되고 개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나가는데, 학교는 여전히 감시와 처벌을 통해 근대적인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
사실 체벌이야 말로 당장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한다
때려서 교육시킬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는 중고교 교실의 붕괴보다 대학 강의실의 붕괴가 먼저였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대학생 수가 적고 교수의 권위도 높아서 강의 시간에 졸 망정 떠들거나 휴대폰 통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대출이나 딴 짓 등 수업 참여율이 현저히 낮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요즘은 대학생 수가 늘고 교수의 권위도 예전 같지 않으므로 대놓고 떠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수의 권위는 누가 세워야 하는가?
학문의 연구를 통해 교수 자신이 세워야 한다
더 이상 교수라는 직책이 주는 위압감이나 권력만으로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교사가 커뮤니케이션을 지도한다고 한다
즉 세미나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주제를 준 후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면 교사는 그 과정을 원활하게 조정해 주는 것이다
또 숙제를 낸 후 부모가 아이 학습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학부모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독일 교사들은 이 커뮤니케이션을 잘 지도할 때 교사의 권위가 생긴다고 말한다
저자도 인정한 바지만 세미나 형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학생들의 수준이 제각각인데 일정 지식을 먼저 암기해 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을 하기 힘들 것이다
나도 해 봐서 알지만 이런 세미나 형식은 능동적인 대신 효율성이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암기해야 할 지식들이 많은 상태에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 정도는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는 토론 문화의 부재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학 교양이 테마 중심이어여 한다고 주장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중고교는 그렇다 쳐도 적어도 대학이라면 일단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상태이므로 더 이상 단순 나열식의 교육은 도움이 안 된다
테마를 잡아 보다 깊이 있게 파고 들고 또 각자의 견해를 제시하는 세미나 형식의 수업이 훨씬 유용할 것 같다
전공은 몰라도 교양은 테마 중심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지나친 도덕주의에 있다
사유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도덕적인 인간을 만드려고 한다
하긴 그렇게 도덕 강조하면 왜 이렇게 부정부패가 많은가?
도덕 자체를 스스로 내면화 시킨 것이 아니라 집단의 규율로써 받아 들이므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아주 마음에 드는 대목이 있다
철학이란 인간교육을 시키는 지적 수단이 아니라 문화, 우주, 세계, 존재, 자연, 윤리 등의 주제에 대하여 엄밀하고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유하는 지적, 정신적 능력을 배양하는 학과목이라는 것이다
엄밀한 과학으로서의 철학이라!!
흔히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윤리 과목일 것 같은데 인성 교육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가 윤리적 인간 양성을 포기하고 지적이고 학문적인 전문인 양성에 뜻을 둔다면 보다 합리적인 교육이 이루어질까?
하긴 사회도 구성원들을 윤리적으로 교육시키려는데 학교는 오죽하겠는가?
제발 개인의 도덕성은 개인에게 맡겨 두면 좋겠다
외제 승용차 타고 다닌다고 부유층 도덕성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기사도 그만 나오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한가로이 인문학 서적이나 붙잡고 있어도 될까, 문득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잠자는 시간을 쪼개 가면서 굳이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한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책에서 얻는 지식과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을 보다 가치롭고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책에서 얻은 것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가?
자신이 없다
그저 한 번 읽고 감동하고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프카의 말처럼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책을 읽는다는 말인가!!
다원화 사회에 절대 가치란 없다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나도 주체성을 가진 개인으로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싶다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내 개성을 드러내며 신념에 따라 사회적 연대를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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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4-11-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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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의 반전을 기대해본다.
우리민족은 유대민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다라고 배워왔다. 많은 한국인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청소년들이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서 거둔 좋은 성적들, 기능 올림픽에서의 1등(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각종 음악회에서의 1등에다 요즘은 유럽의 영화제에서까지 1등을 하고 있다.(1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학문적인 분야에서는 아직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했다. 노벨상만 획득했어도 각 민족마다 노벨상 몇 개인지를 산출해 1등, 2등을 갈랐을텐데 말이다. 물론 요즘은 황우석교수로 인해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우리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줄 아주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물론 우리만의 생각이겠지만)
서열문화, 민족마저도 1등, 2등으로 가르는 문화는 우리 교육이 낳은 가장 큰 폐단이 아닐까? 독일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그런 의문에서 부터 우리 교육문화의 문제점에 접근한다. 서울대가 1등, 연대 혹은 고대가 2등,3등으로 쭈욱 순서 매김을 외국 대학에 대해서도 거리낌없이 해대는 모습에서 저자는 우리 교육의 폐단을 읽어낸다. 각 대학마다 특성이 있고, 같은 학문이라고 하더라도... 학문에 중심을 두는 대학도 있고, 실용적인 면에 중심을 두는 대학이 있음에도 무조건 1등, 2등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이는 대학의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까지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 우리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사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각 민족들을 1등, 2등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결과이다.
'위장된 학교'는 크게 세부분에서 교육의 문제에 접근한다. 첫째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서열문화이다. 결국 교육의 문제는 서열문제를 푸는 것이 핵심이다. 서열문제를 풀지 못하는 교육개혁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서열문화가 점점 확대재생산 되는데 있다. 예전과는 달리 대학 입학 후 일류대학 진학을 위해 휴학 후 다시 수능시험에 도전한다던지,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학벌이 미치는 영향은 이미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둘째, 교육의 전근대성이다. 현대교육이 등장한 100여년 전부터 교육의 형식은 현대적이 되었다. 현대적인 교육이 되었다 함은 개인을 객채화시켰던 전근대적인 교육이 아니라 자아를 하나의 주체성있는 개인으로 교육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교육은 겉으로는 현대적인 교육의 방법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끊임없이 감시하고 처벌하는 규율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셋째, 경쟁력없는 대학의 문제이다. 교수와 학생의 사이가 위계질서로 잡혀져 있고, 각 교수들간에도 사제관계 혹은 선후배 관계로 묶여 있어 생산적인 논쟁은 ?을 수 없고 주례사 비평 수준의 토론만 있을 뿐이다.
비판의 소재들이 명확하고, 저자의 전공인 사회학이나 철학적인 측면에서 잘 짚어내고는 있지만, 사례를 적용하는 부분에서는 지나쳐 보인다. 때론 지나침의 본래 비판의 의미를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점은 이 책의 분명한 약점이다.
저자의 서열문화에 대한 비판이나, 교육의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교육문제의 핵심을 잘 짚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치열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은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짚어내는 문제는 이미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 지적되었더 왔던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의미를 갖는것은 교육문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제시는 줄기차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문제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똑같은 비판만 계속해 온다고 생각하면서, 한국사회의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그 때야 말로 한국 교육에 희망이 없는 때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교육의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일지는 몰라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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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05-06-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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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만 바라는 교육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바뀌고 교육에 관한 정책이 새로 나올 때나, 언론이 교육개혁 좀 하자고 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때나 거기에 귀가 솔직해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입시제도만 이리 뜯어고쳤다 저리 뜯어고쳤다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제목에 홀려 목록을 살펴보았으나 내 기대에 부응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나라 교육 제도는 어떻게 돌아가는 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책속에서’란에 소개된 ‘개인주의’에 관한 언급에서 약간의 희망을 갖고, 주문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 교육이 살 수 있는 길은 '개인주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개인주의를 어떻게 실현시켜야 되는가에 대한 얘기는 없다. 이 책은 하나하나의 사실을 놓고 볼 때는 알찬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개인주의 교육이라는 대안제시에 비해 그 실현과정에 대한 고찰이 깊지 못해 아쉽다. 개인주의는 우리 스스로 얻어낸 개념이기보다 서구 나라들을 들여다보면서 힌트를 얻은 정답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개인주의를 어떻게 정착시켰는 지 그 과정까지 고찰해봐야 하는데 우리는 개인주의라는 ‘결과’만 얘기하고 개인주의를 정착시켜간 그 ‘정신’, ‘과정’까지는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에 더 시행착오를 겪는 건 아닐까? 지금쯤은 ‘개인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개인주의를 어떻게 실현시켜야할까’ 이런 얘기가 나와야할 때다. 어차피 이 책에서도 다른나라들 교육방식이 개인주의라는 얘기만 있고 그 나라들은 어떻게 개인주의 교육제도를 이루어냈냐는 얘기까지는 없으니, 우리는 왜 개인주의가 구현되지 못하고 가족주의에 집착하는 지 그걸 진단해 가는 과정이 해결책에 다가가는 일이 될 수 있겠다.
한국의 학교에서 개인주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입시제도나 교육과정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등록금’ 문제다. 거기다 가정이 아빠는 밥벌이, 엄마는 살림 이런 구조이다 보니 일상에서 개인주의가 자랄 환경이 못 되었다. 이런 걸 간과한 채 교육에 관해서만 개인주의를 얘기하는 게 설득력이 있을까? 등록금 부담 문제와 이런 삶의 형태를 살펴보는 게 한국의 교육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아니, 이 사회에 개인주의가 정착되게 할 수 있는 열쇠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언제나 입시제도만 뜯어고친다. 얘기가 길어지니까 여기선 등록금 문제만 언급하고 싶다. 후자(아빠는 밥벌이, 엄마는 살림하는 가정 구조)에 대해서는 ‘현대 가족 이야기’라는 책 서평 참고요망. 다시 화제로 돌아가서,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은 국가가 학생에게 등록금을 대출해 주고 졸업후 갚아나가는 방식이거나 거의 전액을 국가가 부담해주는 형태다. 대학은 그 나라의 앞날을 이끌어갈 인재를 키워내는 곳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공적비용이 개입돼 있지 않고 부모 손에만 등록금을 의존한다. 이게 지금의 지독한 입시교육의 병폐를 낳는다. 이게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의 실현을 발목잡고 있는 주인공이다. 이게 부모의 인생도 없고 자식의 인생도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공생 관계를 낳는 거고, 부모가 꾸준히 자식의 교육을 간섭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거다. 이게 사교육에 집착하게 만드는 원인이고, 평생 자식의 인생을 자신의 손안에 움켜쥐려는 부모를 낳는 거다. 이게 공부를 잘하나 못하나 돈으로 대학에 밀어넣으려는 부모를 낳는 거고,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교육이 차이가 나게 하는 거다. 등록금이 부모 손에서 나와야되니까 노후복지문제도 개떡같은 나라 현실에서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을 자식교육비에 투자해야한다. 그러니 결국은 자신의 노후보험을 자식한테 드는 셈이 된다. 이게 자신들은 책 한 줄 안 읽으면서도 자식한테는 공부, 공부, 공부를 주문할 수 있는 부모들의 뻔뻔함을 낳는다.
내 등록금이 부모한테서 나오는데 내가 부모에게 대등한 존재로 보여질까? 더구나 장유유서가 강조되는 나라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가 강조되는 나라에서. 부모한테서조차 독립된 존재로 존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인데 학교에서는 가능할까?
한국 현실에서 국가가 대학등록금을 전액부담하는 현실은 불가능할 것 같고, 미국처럼 국가가 등록금을 대출해주어서 등록금을 부모가 아닌 학생 자신이 부담을 떠안고 다니게 만든다면 지금의 병폐를 낳고 있는 모든 입시제도의 문제는 해결된다. 국가 예산이 딸려 이것도 어렵다면, 학생이 등록금을 벌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던가. 어떻게든 등록금이 부모손에서 나오는 걸 학생 자신한테로 부담을 옮겨야 한다. 등록금을 자신이 감당하는데 공부하기 싫은 학생이 대학에 가려고 할까? 가진 부모나 못가진 부모나 등록금은 부모의 부담이 아니라 학생의 몫이라는 인식이 있다면 정작 교육의 주인공들인 청소년의 생각을 배제한 채 사교육에 열올릴까? 등록금이 학생 자신 부담이면 부모가 얼마나 잘 사는 사람이냐에 따라 교육받는 수준이 차이가 날까?
한 인간의 인생을 좌우하는 데 있어 경제문제,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경제개념은 결정적이다. 경제개념이라는 건 입시 공부하듯이 책에 있는 걸 외운다고 생기는 개념이 아니다. 선진국 학생들이 방과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기 용돈을 벌어쓰는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용돈을 벌어가며 자기가 사고 싶은 것들,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자기 스스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가며 해결해 보는 과정에서 몸으로 터득해야 생기는 개념이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들은 그런 시간을 ‘입시’라는 이름으로 박탈당한다. 지금의 입시교육은 이런 관점에서만 얘기해도 엄청나게 청소년들에게 억울한 형태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자식들한테 특별히 경제개념을 심어주는 것도 아니다. 한국 부모들의 용돈은 자식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스스로 용돈을 벌어쓰며 훗날 독립된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미리부터 하는 선진국 청소년들에 비하면 한국의 청소년들은 스스로 용돈을 벌어 손에 든 예산에 맞게 계획을 세워 자신의 꿈을 실현해보는 중요한 인생과정을 압수당한 채 부모의 말에 복종해야하는 기계로 전락해 간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건너뛴 시행착오를 다 큰 어른이 되어 보상받는다. 해외 나가서 싹쓸이 쇼핑하고, 카드빚에 인생 망치고, 유명상품 추종하는 형태로. 공부만 강요시킨 후유증이 이렇게 나타나는 거라는 걸 한국 사회는 무시한다. 이런 걸 인식한 사회가 입시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밤늦게까지 학교에 가두어 놓을 수 있을까?
이밖에, 개인주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다. 개인이 존중되는 민주주의와 장유유서가 존중되는 유교는 공존이 힘든 관계다. 개인주의를 정착시키려거든 유교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노래해야하는데, 한국사회는 장유유서를 노래하면서 개인주의를 노래하기 때문에 진도가 더 느린 것 아닐까? 또, 이미 한국말이 개인규정을 흐리멍텅하게 만들고 있는데 한국말을 건드리지 않고 개인주의를 얘기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책을 몇권씩 읽어야하는 치열한 수업도 아니고, 부모가 등록금과 용돈을 지원해주어서 공부할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는데 정작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한국 대학생들은 왜 그렇게 공부를 안 할까? 이건 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인데 한국사회는 여기에 별 개념이 없다. 국가가 교육에 대한 비젼이 있다면 이런 일을 방치할까? 국가의 교육비젼없음을 입시제도에만 집착하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교육철학없음을 학교에만 투덜대는 현실에서 개인주의라는 말이 먹히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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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4-10-3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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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서열화는 한낱 착각이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봤던 문제, 그러나 한국인들이 간과하기 쉽거나 정작 말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란 머리말의 한 구절처럼 그동안 술자리에서 주고받으며 흘려보냈던 교육에 대한 분개들이 ‘근대’란 글쓴이의 분석틀에 의해 되살려 있다는 느낌이다.
책의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자.
우선 “우리 식의 대학 서열은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따라서 한국인들의 표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종의 허구적이고 공상적이며 상상적인 개념”으로, 외국인들에게 대학 서열을 묻는 것은 그들에게 전혀 알아들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곧, “한국인들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대학의 서열화는 한낱 착각이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교육 전문가라고 하는 모든 국민들이 가장 커다란 관심을 갖는 것은 결코 사교육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사교육비 경감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또는 내 자녀가 더 좋은 대학의 더 좋은 학과에 입학하는 것이다(p. 35).” 이에 한국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말하는 공교육 부실의 참뜻은 “교육 자체의 질이 아니라 남과 다른 교육을 받느냐의 문제”, 곧 좋은 대학과 좋은 학과에 입학하기 위한 “교육의 차이, 기회의 차이”를 자신이 속한 공교육기관에서 얼마나 체감하느냐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공통적으로 제공되는 공교육은 부실할 수밖에 없고, 제아무리 고등학교 교육이 개선되더라도 공교육은 영원히 부실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p. 39).” 결국, 대학 서열 구조를 깨지 않는 상황에서 내놓는 무수한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공교육개선안은 일종의 눈속임일 뿐이다.
셋째, “한꺼번에 수많은 사람을 테스트하고 채점해서, 그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정확하게 양적으로 배열”하기 위해 실시하는 선다형(혹은 객관식) 시험은 언제나 깊은 사고보다는 눈치껏 정답 고르는 데만 온힘을 기울이게 한다.
넷째, “서구의 근대 교육이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명제는, 근대적 교육의 일차적인 이념이 개인을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개성을 지닌 인격체로 육성함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생들이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특성을 키우면서,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표현하고 남의 입장과 비판을 수용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인격체로 길러내는 교육문화를 지향하고 있다(p. 154)” 그런데, 우리는 이를 이기주의를 지향하는 것으로 비난하곤 한다. 또한, “근대인들이 일정한 경계를 지니는 서로 다른 삶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타자의 존재와 의미를 부정하지 않은 채, 자아의 입장에 서서 타자를 비판하고 타자와 논쟁을 벌일 수 있는 토대가 되(p. 131)”는데, 우리는 아직 전근대적인 집단주의(혹은 국가주의적 사회윤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근대인들로 길러지지도 못했기에 학교에서, 대학에서, 지식인 사회에서 토론과 논쟁 문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고 개인주의를 함양하는 근대적인 계몽에 눈을 돌려야 한다.”
다섯째, “근대경제는 단순히 규율화된 유순하고 복종적이며 생산적인 인간과 그의 노동력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며 합리적인 행위의 의지와 능력을 갖춘 경제주체의 존재를 절대로 필요”로 하는데, 한국의 교육은 “학교라는 감옥과 교실이라는 스키너 상자에 갇힌 채 철저히 규율화되어 감으로써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과 사고 그리고 행위유형을 생산하지 못하”는 반쪽의 근대화에 머물러있다.
여섯째, 대학가에(지식인 사회 포함) 만연된 “동종교배와 근친상간의 결과 패거리 문화, 연고주의, 파벌주의가 한국대학을 점령하게 되었다.” 이는 대학과 과학(학문)을 전근대적인 동일성과 획일성의 원리로 후퇴시키는 것이다. 아울러, 교수들의 박사학위가 미국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어, 소수에 지나지 않는 다른 외국 박사 출신들이 그들(미국 학위자들)을 비판하거나 도전하지 못하게 통제한다. 이는 우리 사회를 “서울대의 나라이자 미국 대학의 나라라고” 부르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오랜 복종과 규율화 및 굴종의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시간강사에서 교수가 되는 순간에, 다시 말하자면 일용잡급직에서 사회지도층으로 비상하는 순간에,......그는...과학과 교육이 시작되어야 할 바로 그 시점에 과학이 끝나고 교육이 끝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의 과학과 교육이 지니는 구조적 모순과 한계가 있다(p. 300).” 아울러, “대학의 연구소는 연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서 존립하”며, “연구소의 연구원 자리는 연구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아직 교수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교수가 되기를 기다리며 머무는 자리이다. 연구소는 대학 교수직의 보충중대인 셈이다(p. 304)”
이상 위 책에서 기억나는 대목들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평소 이런 문제의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상의 내용은 신선감이 좀 떨어질 것이며, 익숙한 비판들의 반복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간과하기 쉽거나 정작 말을 해줘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는것에 이 책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순간순간 가슴속 어딘가에 일침을 놓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의문 하나를 적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글쓴이의 말처럼 우리사회가 전근대적인 집단의식에서 벗어나 주체적, 개체적, 자율적인 근대적 개인들의 공동체(개인주의자들의 공동체 혹은 조직화된 개인주의)가 된다면, 그리고 학교가 규율화로 점철된 반쪽 근대화에서 벗어나 그러한 근대적 개인을 길러내는 근대적 공간이 된다면, 그가 비판하는 문제들이 과연 하나씩 풀릴 수 있을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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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dung 2004-11-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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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부분에는 공감은 가지만,
사실, 처음에는 즐겁게 읽고 있었다. 현 교육의 문제점은 다 위의 높으신 분들의 잘못이라니, 이 얼마나 마음편한 이야기인가. 언제나 공교육 부실의 이야기에 가슴 뜨끔했던 나로서는, 비난의 화살을 튕겨버릴만한 말을 알려줬으니,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앞의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는데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옆에 괄호쳐진 부분, '(독어독문학 부전공)'이었다. 그 다음 문장에서 내가 왜 이 독어독문학 부전공이 걸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독일 괴팅겐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사회학, 사회심리학, 철학, 과학사'를 공부했단다. 나는 이 중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하는 것조차 불가능할텐데, 공부한 학문이 다섯 개나 되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근대 세계를 디자인한 대사상가들과 조우'했다고 한단다. 아, 이 부분은 본문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와서 미국의 이론과 교육체계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도입시킨 현재 주류 교육학자들과,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서울대 출신과 미국 유학 편중에 대해 비난을 퍼부으면서 독일 이야기만 계속하는 저자와의 차이점이 나는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에 축구에 관해서까지 뭐라 중얼거리는데, 저자도 어쩔 수 없는 한국 남자이다. 뭐, 대한민국 남자들 대부분 축구에 대해서 할말이 참 많은 '전문가'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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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hir 2005-02-0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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