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2

Hyewon Hong 나를 힘들게 하는 것 Africanist community

(3) Facebook

사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연구나 티칭 자체가 아니다.
지금 내가 감당하는 연구, 글쓰기, 시험, 행정 같은 일들은 대부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고, 그 안에서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데 비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이나 피드백은 거의 없다. 이런 환경에서 티칭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내가 세계와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통로에 가깝다. 강의실에서는 실제 사람들의 표정과 대화, 반응이 있고, 내가 던진 질문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 있으며, 학생들이 무언가를 깨닫는 얼굴을 보면서 비로소 내 사고와 감각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 짧은 순간들이 오히려 내게 에너지를 주고, 고립된 일상 속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회복시켜준다.
사람마다 살아 있다고 느끼는 방식이 다를텐데, 내 경우에는 지적 교류와 관계성, 즉각적인 반응, 누군가와 생각이 부딪히면서 생기는 흐름에서 그런 감각을 느낀다. 그런데 그런 순간들은 지금으로서는 오직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에서만 가능하다. 오랫동안 나 자신을 반추해본 끝에, 나는 대화 기반의 사회적 연구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내 곁에는 그런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갈 지적 커뮤니티가 부재하고, 그 빈자리를 오직 강의실만이 임시로 채우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우리 학교나 학과에 지적 커뮤니티가 부재하거나, 혹은 내가 그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지 못했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작년에 Africanist community를 직접 만들어보려고 시도했지만 각자가 자신의 과업과 일정에 파묻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특히 모두가 버거운 속도로 살아가는 대학원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공동체가 한 번 실패했다는 데 있지 않다. 학문적 커뮤니티라는 것이 실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에너지 투입과 정서적 헌신, 시간의 우선순위화, 일상의 리듬 속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연결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은 모두가 여유롭지 않은 환경에서는 거의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나는 공동체를 원하면서도, 그 공동체를 형성할 기반 자체가 부서진 상태에 있다는 걸 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고립감은 단순히 ‘혼자 공부해서 외롭다’의 수준을 넘어서, 함께 사고를 움직일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만 서로의 시간대와 감정대, 일의 밀도가 맞지 않아 지속적인 공동성을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 고립에 가깝다. 이건 개인의 성향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 환경에서 누구라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다.
그리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만큼, 티칭이 내가 유일하게 살아 있는 감각을 가져다주는 이유도 더 선명해진다. 교실에서는 공동체가 ‘가능한 형태’로 순간적으로 나타난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만큼은 지적 관계가 살아 움직이고, 반응과 상호작용이 쌓여 흐름이 생기고,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복구된다. 그러니 지금의 고립된 환경에서, 나는 그 순간에 더 기댈 수밖에 없다.
결국 나 같은 연구자가 잘 지낼 수 있는 연구 환경은 매일 짧은 대화가 있고, 가벼운 체크인이 가능하며, 아이디어를 말해볼 기회가 생기고, 피드백이 빠르게 오고, 1–2명의 안정적인 협업자가 있고,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순간 사고가 활성화되는 구조, 그리고 정서적 연결감이 살아 있는 커뮤니티일 것 같다. 지금은 그 모든 요소가 거의 부재한 환경에서 혼자 버티고 있지만, 언젠가 그런 지적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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