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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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자기가 실패자라는 얘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본인이 추구했던 어떤 경지가 있는데 당신의 글쓰기 실력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 판단한 거다. 고바야시 히데오, 에토 준 등의 "1급"의 비평가들, 비평 자체가 예술이자 사상의 경지에 이른 그런 비평가가 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어떤 열등감, 패배감 등이 그의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게 얼마나 절절한 마음인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어떤 간극이 존재한다. 그게 얼마나 사람 속을 썩게 만드는지, 이 온몸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분노와 증오가 휘몰아치는 그 감정이 얼마나 사람 속을 썩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저렇게 말로 묘사해도 표현되지 않는 그 어떤 경지가 있다. 글 자체가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되면서도 동시에 그 글이 시대를 주조하고 인간을 형성할 수 있는 어떤 힘을 지닌.. 그런 경지.. 우리가 어느 시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글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시에 그 글은 그러한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되는.. 글로 시대를 속박하고, 글로 시대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없는 글쟁이란 글쟁이로서 살 자격도 가치도 없는 버러지다. 김윤식은 그런 경지를 추구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의 글 사이사이에는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가 흘린 피눈물이 묻어 있고, 그의 책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나도 그렇다. 문체를 바꾸지를 못한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어떤 기준에 미달할 때, 독자들의 반응이 내가 원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 때.. 안되는 건가 싶어 좌절하게 된다. 언제나 이런 고민을 안 할 수가 있을지.. 문예적인 재능이 없는 이의 슬픔이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일종의 기도와 같은 것이다.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아무리 절규하고 비명을 질러도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그런 깨진 믿음과 흔들리는 기도에 신은 응답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계속 글쓰기라는 기도를 해보는 수밖에.. 한번은 닿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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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미묘한 흔들림이 있죠. 에토 준이나 고바야시 히데오처럼은 못 되니, 그럼 헤겔을 전유해서 나만의 비평 세계를 가지겠다, 이 길을 갈 수 있는데 사실 그 길에는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사람이...... 사실 동경의 길은 자기가 갈 수 있는 길도 아니고 가고 싶은 길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루카치로부터 받은 영감에 더 충실하셨어야 했는데 그 지점 혹은 그 노선에서 가라타니에게도 못 미친다는 게 더 아픈 지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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