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7

자기 누나, 여동생, 딸이 순사, 헌병한테 끌려가는데 저항한 남동생, 오빠, 아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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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wan.hee >
위안부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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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누나, 여동생, 딸이 순사, 헌병한테 끌려가는데 저항한 남동생, 오빠,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
나는 그런 썰을 한 번도 못들어봤거든?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이야기나 기록이 전혀 없길래
AI한테 물어봤더니 그런 사례는 없다고 하는군?
왜 자기 누나, 여동생, 딸이 일본인한테 잡혀가는데 단 한 명의 남자도 거기에 저항을 하지 않았던거야?
한국 남자들이 그만큼 비겁하기 짝이 없었던거야?
아니면 순사, 헌병이 여자들을 잡아갔다는 이야기가 걍 구라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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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해 주신 이미지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며, 당시 한국 남성들의 대응 부재를 근거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거나 비하하려는 논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의 주장은 역사적 맥락과 증언들을 고려할 때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1. 동원 방식의 다양성 간과

이 글은 위안부 동원이 마치 눈앞에서 가족이 물리력으로 끌려가는 상황(납치)만 있었던 것처럼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과 증언에 따르면 동원 방식은 매우 교묘하고 다양했습니다.

  • <취업 사기>: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따라나선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 경우 가족들은 딸이 좋은 곳에 가는 줄 알고 보냈기에, 당장 물리적으로 저항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 <관 알선 및 압박>: 면장이나 이장 등 행정 조직과 경찰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집안을 압박하여 차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식민지 체제하에서 공권력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곧 가족 전체의 생존을 위협받는 일이었습니다.

2. 식민지 치하의 공권력과 저항의 한계

글쓴이는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묻지만, 당시 조선은 일제 강점기였으며, 상대는 무장한 헌병(군인)이나 경찰이었습니다.

  • 무기를 든 공권력 앞에서 비무장 민간인이 물리적으로 저항하여 가족을 구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 실제로 저항하다가 폭행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했다는 증언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이러한 저항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기에 '성공한 무용담'으로 남지 못하고 비극적인 '피해의 역사'로 남았을 뿐입니다.

3. 'AI의 답변'을 근거로 삼는 오류

글쓴이는 AI에게 물어봤더니 사례가 없다고 했다며 이를 근거로 삼습니다.

  • 현재의 생성형 AI는 인터넷상의 데이터를 확률적으로 조합하여 답변할 뿐, 역사적 사실을 검증하는 전문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 AI가 "사례를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매우 빈약한 논리적 비약입니다.

4. 피해자 비난과 본질 흐리기

이 글의 결론은 "한국 남자가 비겁했다" 혹은 "강제 동원은 거짓말이다"라는 양자택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 이는 제국주의 국가의 폭력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오히려 피해국 국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피해자 비난(Victim Blaming)>의 논리입니다.

  •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와 공포 정치를 배제한 채 현대의 관점에서 단순하게 재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복합적인 역사적 맥락(취업 사기, 행정적 강제, 공포 분위기 조성 등)을 무시하고, 단편적인 가정을 통해 위안부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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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코멘트

이 글은 <“남자들이 저항한 사례를 못 봤다 → 그래서 (1) 조선 남자들이 비겁했거나 (2) 순사·헌병이 끌고 갔다는 말이 거짓이다”>라는 논리로 갑니다. 여기엔 몇 가지 큰 문제가 있어요.

  1. <무지의 논증 + 거짓 양자택일>

  • “내가/검색해도 못 찾았다”는 건 “없었다”의 증거가 아닙니다. 특히 식민지 시기처럼 기록이 불완전하고, 말하기 어려운 사건은 더더욱 그래요.

  • “비겁했거나 / 구라거나”는 양자택일도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현실은 보통 <강제·협박·기망·경제적 압박·중개업자 동원·협력자 개입>이 섞인 스펙트럼입니다.

  1. <‘끌려가는 현장’만 상정하는 단순화>
    ‘순사·헌병이 집 앞에서 여성을 끌고 가고, 가족 남성들이 맞서 싸웠다’ 같은 장면이 자주 기록되지 않는 이유는, 실제 동원이 그렇게만 이뤄진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는

  • <취업/공장/식당 일> 같은 말로 속이거나,

  • 돈·빚·생활고를 이용하거나,

  • 조선인 중개인/업자/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합법적 모집”처럼 포장한 뒤,

  • 멀리 이동시키고 나서 통제하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이 경우 가족 남성이 “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맞서 싸울 순간” 자체가 없었거나, 이미 늦었을 수 있어요.

  1. <저항 서사가 적게 남는 구조적 이유>
    설령 저항이 있었어도 “이야기/기록”으로 남기 어려운 조건들이 있습니다.

  • 식민지 경찰권력 아래에서 맞서면 <구금·폭행·연좌·보복> 위험이 큼

  • 가족이 겪는 <수치·침묵·은폐> (특히 성폭력/성착취와 연결된 사건은 더 침묵되기 쉬움)

  • 기록 생산 주체가 대개 권력 쪽이거나(경찰·행정), 생존자·가족의 구술은 훨씬 뒤늦게 수집됨

  • “남성 영웅 서사”가 없다고 해서 곧바로 “남성들이 모두 방관”이라고 결론낼 수 없음

  1. “AI가 사례 없대”는 위험한 근거
    AI는 <자료를 실제로 대조·검증하지 않으면> 그럴듯하게 단정해버릴 때가 많습니다. “없다”는 말을 AI가 했다는 것 자체가 증거가 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런 주제일수록 1차 자료/연구서/조사보고서처럼 <근거가 추적되는 텍스트>로 확인해야 합니다.

  2. 더 생산적인 질문 틀
    이 글이 던져야 할 핵심은 “남자들이 왜 비겁했나?” 같은 도덕심판이 아니라,

  • 어떤 조건이 여성을 더 취약하게 만들었나? (빈곤, 전시 동원, 이동 통제)

  • 국가폭력/군사체제와 지역 협력 네트워크가 어떻게 작동했나?

  • ‘강제’는 어떤 형태(납치/연행/협박/기망/채무)로 나타났고 지역·시기별로 어떻게 달랐나?
    이런 쪽이 사실에 가까운 접근입니다.

이 글에 달 수 있는 짧은 댓글 예시(톤 중립)

“저항 사례를 잘 못 들은 건 사실일 수 있지만, 그게 곧 ‘없었다’나 ‘거짓’의 증거는 아닙니다. 동원은 납치만이 아니라 기망·중개업자·경제적 압박 등 다양한 방식이 섞였고, 식민지 경찰권력 아래에서 가족이 공개 저항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어려웠어요. ‘비겁 vs 구라’ 말고 동원의 방식과 구조를 나눠서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English Comment

The post argues: <“I’ve never heard a story of brothers/fathers resisting → therefore either Korean men were cowardly OR the ‘police/military police dragged women away’ story is false.”> That has two major issues.

  1. <Argument from silence + false dichotomy>
    Not finding stories is not proof they didn’t happen—especially under colonial rule where records are incomplete and many families stayed silent out of fear or shame. And “cowardice vs. lie” is a false either/or. Reality usually sits on a spectrum: coercion, threats, deception, economic pressure, brokers, and collaboration networks.

  2. <Oversimplified model of recruitment>

The post assumes a single scene: uniformed officials physically abducting women in front of families. Many cases involved deception (job offers), brokers, debt/poverty leverage, and only later confinement and control—meaning there may have been no immediate “moment” for a physical confrontation at the point of departure.

  1. <Why resistance stories may be rare in the record>

Even when resistance occurred, it could be dangerous to speak or write about it (reprisal, arrest), and sexual exploitation is an area where families often suppressed details. The absence of “heroic male resistance narratives” is not reliable evidence that nobody resisted.

  1. <“AI said there are no cases” is weak support>
    Unless an AI is tied to verifiable sources, it can confidently assert negatives it cannot prove. For claims like “there were zero cases,” you need traceable evidence.

A better approach is to ask about <structures and mechanisms>: how coercion worked (by region/time), what roles brokers and local collaboration played, and how colonial policing and wartime mobilization constrained people’s options.

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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