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공화국의 종말 -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
김덕영 (지은이)인물과사상사200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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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카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게오르그 짐멜 선집'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김덕영 교수가 한국의 입시 교육을 비판하고 있는 책. 지금의 무한 '입시' 경쟁이 유일한 방법인지, 누가 '인재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아이들을 무자비한 입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총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에서는 감옥에서 감시와 처벌 속에 길러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2장은 '고교 등급제'을, 3장은 한국의 과열된 교육열과 공교육의 자리를 빼앗은 사교육을 4장은 우리 대학이 세계적인 명문 대학이 되지 못하는지를 마지막 5장에서는 정답을 찾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있다.
목차
머리말
‘입시 공화국’의 종말을 생각하며_4
1장 인재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01. 감옥에서 인간을 기르다_15
02. ‘쉼 없이 뛰는 조그만 선수들’을 기르는 교육_32
03. 공교육 체벌과 사교육 체벌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_47
04. 바칼로레아, 아비투어 그리고 한국의 논술_60
2장 왜 그들은 명문고에 집착하는가
05.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불평등_85
06. 명문고 부활에 얽힌 숨은 뜻_95
07. 이것이 진정한 고교 등급제이다_104
3장 본말이 뒤바뀐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08.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한국 교육_119
09. 초?중?고등학교는 대학의 식민지인가_131
10. 사교육은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_145
11. 전도된 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_159
4장 세계적인 명문 대학의 탄생은 불가능한가
12. 국제 경쟁력을 외치는 한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_187
13. 교육과 시험이 잠재적 표절자를 키운다_205
14. 아주 낯선 대학 수업 풍경_215
5장 인재와 시험에 대한 생각을 바꾸자
15. 왜 한국의 엘리트는 허약한가_227
16.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로막는 교육_254
17. 정답 없는 문제가 인재를 키운다_263
맺음말
‘인재’를 기르려면 ‘인재 이데올로기’를 버려라_288
주_294
접기
책속에서
한국의 경제적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던 교육이 어느덧 지속적인 근대화의 ‘덫’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덫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교육이 주체적 인격체로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행위능력을 소유한 개인들을 길러내는 데에 있다. 즉 이제 교육은 주체적 자아의 형성,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객체적 자아에서 주체적 자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p46 중에서
현재 한국 ‘이너서클’의 대물림은 외국어고를 통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너서클의 일부 자녀들은 외국어고 유학반에서 ‘편법’으로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가고, 그들은 다시 한국을 짊어질 ‘엘리트’로 금의환향한다. 또한 그들에게 외국어고는 미국 대학으로 향하는 완벽한 디딤돌이며 더불어 명문고 인맥을 쌓는 네트워크 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순환체계 속에서 교육의 가치는 실종된다.-p261 중에서 접기
주어진 문제를 틀리지 않고 정답을 골라야 하는 자아의 정신과 의식은 완전히 해체되어 문제를 출제하는 외부자의 일부분, 아니 외부자의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몰 주체화 과정이자 몰 개성화 과정이다. 즉 개인의 주체성과 개성을 부정하고 말살해버리는 과정이다. 이처럼 대학 입시에 점령당한, 대학 입시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한국의 교육은 근대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인간 유형을 양산하고 있다. 근대사회는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개인들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위에 존립한다.-38-39쪽 접기
사실 체벌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몸은 더 이상 규율과 통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은 정신과 더불어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나의 인격은 너의 인격과 마찬가지로 존엄하고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거기에는 그 어떠한 물리적이 강제력이나 폭력도 가해서는 안된다. 체벌은 다른 사람의 인격에 강제력과 폭력을 행사해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꼴이다. 따라서 교육이나 훈육이 필요하다면 체벌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
(밑줄그은이 주 :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간혹 발생한다. 명백히 누가 봐도 - 잘못을 저지른 본인을 포함 - 잘못인 것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을 경우, 다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통하지 않는다면, 해당 학생을 포기해버리거나 신체에 폭력을 가하더라도 잘못을 뉘우치도록 하는 두 가지 길 밖에 남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으니 후자를 택할 밖에)-50쪽 접기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일선 교사들이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한다. 가르친 사람이 그 결과를 평가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유기적이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가르치는 사람 따로 있고, 평가하는 사람 따로 있다. 후자는 전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전자가 소유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문화자본'을 가지고 전자가 가르친 학생들을 시험한다. 마치 자신의 지적 수준이 얼마나 높은가를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한국의 대학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비유기적으로 분리시키고 괴리시키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사회집단이다.-68-69쪽 접기
그러나 민사고에서 10등은 어디까지나 10등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일반고의 1등은 어디까지나 1등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신이란 학생들이 동일한 환경과 여건에서 경쟁을 해서 나타난 결과를 점수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신은 학생들이 주어진 조건에서 얼마만큼 학업을 성취했는가를 따지는 제도인 관계로 서로 조건이 다른 고등학교의 내신을 비교해서는 안된다. 민사고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어디까지나 다른 민사고 학생들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의미를 지닌다. 특목고의 경우도 그렇고 일반고의 경우도 그렇다. 서로 다른 학교의 내신은 상호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된다. 바로 이러한 근거로 일반고에서 1등은 민사고나 특목고에서 1등과 동일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108-109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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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덕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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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사회학 마기스터(Magister)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카셀 대학에서 게오르그 짐멜과 막스 베버에 대한 비교연구 논문과 사회학 및 철학에 대한 강의를 바탕으로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현재 카셀 대학에서 사회학 이론을 가르치면서 저술과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의 현상학: 게오르그 짐멜 연구』(나남, 1999), 『주체, 의미, 문화: 문화의 철학과 사회학』(나남, 2001), 『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한울, 2003... 더보기
최근작 : <에리식톤 콤플렉스>,<에밀 뒤르케임 : 사회실재론>,<루터와 종교개혁> … 총 38종 (모두보기)
김덕영(지은이)의 말
이 책에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교육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내가 사회과학과 철학을 공부하며 그리고 외국과 비교하며 교육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과정에서 체험했고, 고민했고, 좌절했으며 또한 통탄했던 다양한 현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나의 고백이자 기도이다. ‘입시 공화국의 종말’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입시 공화국’은 이제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염원이 첫 번째 의미이고, 한국 사회가 여전히 ‘입시 공화국’으로 남기를 고집한다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종말을 고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두 번째 의미이다.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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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범생 공화국, 대만>,<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등 총 420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5위 (브랜드 지수 136,848점), 역사 14위 (브랜드 지수 235,26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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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일상의 거푸집이다
한국 역사상, 교육은 ‘서당’에서 이루어졌다. 서당에서는 훈장이 먼저 읽으면 학동들이 따라 읽거나, 훈장이 혼자 떠들거나 그렇게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런 교육환경을 가진 땅에 ‘학교’ 아니 ‘대학’이라는 낯선 교육환경이 들어와서 이제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서양식 학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낯선 교육방식은 훈장이 혼자 떠드는 ‘독백’이 아니라 선생과 학생의 ‘대화’와 학생과 학생간의 ‘토론’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한국의 ‘학교’에서는 이 ‘대화’식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아직도 서당식 ‘독백’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대화라는 건 상대와 내가 대등하다는 인식이 작용할 때 자유로운 의사교환이 이루어지고, 소통이 이루어진다. 서열과 권력과 장유유서 정신이 고질적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대화식 교육이 불가능하긴 하다.
한국 교육의 실수라면, 서당식 교육에 대학 교육을 접합시킨 것부터 문제였다. 아니, 서당식 교육과 학교 교육의 이런 차이를 주목하지 못해 서당식 교육을 그대로 둔 채 거기에 학교 교육을 덮어씌웠다는 데에 문제가 있겠다. 형태는 학교이지만 교육방식에서는 여전히 서당을 고수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상호작용, 상호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 서당식 교육을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앞으로의 한국 교육을 좌우할 것 같다.
어찌 보면 ‘최고대학’, ‘일류대학’만이 살 길이라는 체면에 걸려버린 현실도 우리 조상들이 과거시험을 치르던 데에서도 연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이 서울대에 목매는 현실은 그 옛날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모습과 유사하다. 시대는 21세기이건만, 우리는 아직도 과거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거기다, 이땅에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들어온 지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 미국이 역사가 길지 않다는 열등감을 자동차의 크기, 건물의 높이 같은 규모로 표출하듯이 한국도 대학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열등감을 세계 몇위 대학에서 찾으려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 대학에 진정한 학문의 길이 열리려면 아직도 더 많은 세월을 거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하나보다.
교육 문제를 성토하는 책 치고 다른 나라의 예를 끌어오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예를 든 나라에서는 왜 그런 교육이 가능하고, 한국에서는 왜 가능하지 않은지 그 차이를 주목한 걸 본 기억이 불행히도 없다. 이 책도 그렇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그런 교육이 가능한데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 그 차이를 주목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도 입시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시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수능같은 시험제도를 뜯어고쳐서는 교육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어차피 그런 건 전체적인 맥락에서 흐름을 보지 못하고, 문제의 부분을 보는 시각이다. 내가 정말 답답한 건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이 교육을 얘기하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교육분야만 뚝 떼어내어 그것도 제도적인 시각에서만 문제를 바라본다는 거다. 물론, 가장 단순하게 제도적인 시각부터 보자면,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학 등록금을 부모가 댈 게 아니라 학생 자신에게 부담을 지우면 된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다니든 국가에서 융자를 받고 졸업 후에 갚든 그 부담을 학생 자신이 떠안으면 공부 하기 싫은데 미쳤다고 대학에 가려고 발버둥을 치겠는가. 등록금을 어차피 자식이 해결해야 되는데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그렇게 지독하게 개입해서 자식의 인생을 들었다놨다 할까? 학생과 부모 사이에 등록금 즉 경제적인 문제가 질서가 자리잡히면 이런 입시지옥은 저절로 해결된다. 내가 정작 문제를 삼고 싶은 건 이런 제도적인 차원도 분명 이유가 되긴 하겠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유난히 한국 사람들이 서울대라는 일류대를 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적인 이유, 배경이 뭐냐다. 자꾸 시험 제도만 언급하는 교육자들의 수박 겉핥기 푸념은 이제 지겹다. 교육이라는 게 어차피 일상과 따로 노는 국밥이 아니고 보면 학교를 주목할 게 아니라 일상에 주목해야 한다. 가정이 제대로 돌아가고, 직장이 제대로 돌아가는데 학교만 이렇게 문제가 심각할 수 있을까? 한국의 교육문제는 학교 문제가 아니라 일상의 문제다. 본질을 건드리자면 한국인의 정신을 거슬러 올라가 그 근본을 건드릴 수 있는 심리학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아... 이제 걸음마 수준인 심리학계를 어떻게 깨울고.
저자는 성적이라는 건 학생 자신의 문제이지 그걸 수치로 객관화해서 상대비교를 하고 줄을 세우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물론, 백번 맞는 말이다. 내가 의문인 건 우리네 일상이 ‘줄 세우기’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한 데 왜 학교 시험에만 이런 엄격함을 부여하는가이다. 가정에서부터 ‘나’가 ‘나’가 되지 못하고, 태어난 순서에 입각해 ‘형’, ‘누나’, ‘언니’, ‘오빠’/‘동생’ 이런 호칭에 매여 위 아래를 철저히 구분해서 사람을 줄 세우고, 직장에서도 나이나 입사시기를 참고해 부여된 직급이 반영된 호칭으로 직원을 군대처럼 줄 세우는 데 학교에서는 ‘개인’에 입각한 교육을 하란다. 한국말을 손보지 않는 바에야 ‘개인’이라는 구호는 그야말로 ‘구호’에 그칠 뿐이다. 나와 상대가 대등하게 만날 수 없는 한국말은 개인을 노래하는 21세기형 언어가 아니지 않은가! 저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교육현실이 토론식 수업으로 가야한다고 누누이 말하지만, 한국말부터가 서열과 권력과 장유유서 정신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교육이 이런 언어적 현실을 무시하고 토론식 수업만 외친다고 그게 이루어질까?
- 접기
사고뭉치 2007-08-24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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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공화국의 종말' 밑줄긋기
마늘빵 2007-07-17 공감(1)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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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바라보는 대한민국 교육문제
교육부의 유아기적 사고방식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항상 '문제'라는 단어의 수식을 받는다. 교육은 항상 문제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화법으로 문제를 지적했고, 그만큼 많은 해법이 쏟아졌다. 해법이라는 것은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고 할 때 제시가 가능하다. 문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죄다 '헛발질'일 뿐이다. 문제를 모를 때는 차라리 방치하는 게 낫다. 헛발질을 자꾸 하다 보면 실타래가 자꾸 엉켜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바로 무수히 엉킨 실타래와 같다. 최근 이 실타래에 한 줄이 더 엉키는 일이 발생했는데, 교육부가 천명한 이른바 ‘기초학력 미달 제로플랜’이다. 교육부는 진단평가를 정례화하고 뒤처지는 학생과 학교를 지원해 지역·학교·학생별 학력차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올해 10월 초6·중3·고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초등 3학년을 대상으로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실시한다. 매년 3월에는 초4~중3학년을 대상으로 교과학습 진단평가가 시행되니 초6·중3학년은 1년에 두 번 시험을 치르는 꼴이 된다. 교육부의 관점에서 보면 '학력'은 '성적'과 동의어다. 일제고사를 실시해서 성적이 처지는 녀석들이나 그런 학교는 '학교 끝나고 남으라'는 식인데, 이보다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를 한줄로 세워서 관리하기 편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대개 어떤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은 두 가지 경우로 반응한다. '문제'를 중시하는 경우와 '해법'을 중시하는 경우이다. '해법'을 중시하는 경우는 한 가지 문제만을 연상하는 1:1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만 해법을 제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초중고등학교의 객관식 풀이 능력을 잘 모르니까 이번 기회에 통제하기 쉽게 1등부터 100등까지 '해쳐모여'를 시키려는 교육부의 처사가 그것이다. 반면 '문제'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다발'이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이들은 교육부의 '기초학력 미달 제로플랜'과 '일제고사'는 오히려 정부보다 보습학원이 절실히 원했던 자료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즉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입시공화국의 종말>(인물과사상사)의 저자인 김덕영 씨는 객관식을 유아기 시절에 뗐어야 할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유아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배우듯이, 정답과 오답이라는 흑백논리를 강요해 사고를 단순화시킨다는 것이다. (272쪽) 나이가 들면 서서히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면서 주관적인 세계관을 정립하는 단계, 즉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교육부 역시 유아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력'이라는 것은 단지 '객관식'을 틀렸다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바라본다는 것
교육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에서 교육문제와 관계 있는 사람들 역시 '해법'과 '문제'라는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정치인이나 정부는 당연히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교육 전문가나 학자들은 '문제'적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본다.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교육 관련 서적들은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철수와영희, 2008.3월)와 <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포럼, 2008.2월), 그리고 <입시공화국의 종말>(인물과사상사, 2007.6월)이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들은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관점으로 보면 아직은 대한민국에서 '교육 해법'은 너무나 먼 이야기인 듯하다.
<입시공화국의 종말>은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교육의 문제점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차별성이 있다.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 씨는 어느 해인가 4ㆍ3 강연에서 "제주도 안에서는 제주를 쓸 수 없다. 그래서 도망쳤다"고 말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그것이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란 독일의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cal anthropology)과 사회학의 대가인 헬무트 플레스너가 사용한 개념이라고 하는데, 그는 바로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독일을 보니까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잘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단지 밖에 가 있다고 해서 '다른 눈(other eye)'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성찰하고 지치도록 고민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끝내 '끊어진 고리'를 찾았을 때 쓰는 말로 해석된다. 단지 밖에서 배운 것에 불과하다면 미국의 경제학(주로 한물 간 시카고 학파)을 배우고 와서 신자유주의 이론만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수많은 학자들의 눈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실제로 저자약력을 살펴보면 김덕영은 독일에서 사회학·철학·역사·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공부하였는데 독일의 학풍과 교육 시스템에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독일의 위대한 학자들의 저서를 원서로 읽으며 자신만만했던 김덕영은 그러나 입학하는 순간부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부했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저자약력)
본문에서는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일화가 소개되는데, 단지 세 줄에 지나지 않는 칸트의 사상에 대해서 한 학기 동안 리포트를 준비해서 교수와 직접 토론을 하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독일은 담당 교수가 학생과 과제를 가지고 직접 토론을 하며 면밀히 검토한 끝에 세심히 코멘트를 달아주고 원고를 돌려주는 방식이다) 글쓴이에게 잊지 못할 가르침이 되었던 담당교수의 코멘트 전문을 싣는다.
"칸트 윤리학의 기본적인 의도와 논리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난 후에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면 된다. 대학의 기초적인 지적 훈련 과정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221쪽)
이런 이유로 독일의 대학에서는 학문의 엄밀성과 명증성을 유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학의 모습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교수는 공천장을 받아들고 끝내 강의를 제끼고 말았으며, 대학생들은 시시콜콜한 연예담을 예사로 늘어놓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칸트며 플라톤, 게오르그 짐멜을 거론하던 고등학생의 기억은 온데간데 없다.
역시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더욱 명쾌하게 보이나 보다. 서문부터 던지는 질문이 거침없다. "한국이 세계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을 십분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교육은 앞으로도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왜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마을은 출산율 저하로 또는 이농으로 걱정하면서,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놀이터는 걱정하지 않는가?", "왜 한국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당연시하는 대학의 서열화를 외국인들은, 그것도 이른바 선진국의 국민들이 모르고 있을까?" 서두에서 던진 질문들은 본문에서 세세히 다뤄진다. 그러나 이 질문들이 귀결되는 지점은 한 가지이다. 바로 '인간 존중 교육'이다.
'인간 존중 교육'을 위하여
글쓴이가 '인간 존중 교육'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교육의 밑바탕을 이루어야 하며, 서로 부딪힐 때는 당연히 인간 존중을 교육의 위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은 책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존중 교육'이라는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교육은 '반 인간 교육이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글쓴이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축구 선진국에선 정장기에 있는 유소년 선수들의 경우 훈련 시간이 많아야 하루 2~3시간인데 반해, 한국에선-2002년 일산백병원이 축구 선수 1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최대 7시간, 평균 4.57시간이나 된다. 한국의 축구는 한마디로 성적 지상주의를 추구하는 학원 축구인 셈이다."
(동아일보 2004.6.15일자 "'축구 꿈나무'의 눈물", 34쪽에서 재인용)
어디 학원축구뿐이랴. 개성적이며 아름다운 몸을 가꾸는 복장은 청소년들의 성장하는 정신과 함께 몸의 논리를 구현할진대 군대나 감옥, 수도원, 공장에서나 어울릴 법한 '유니폼'은 다름아닌 감시의 의미일 뿐이다. (30쪽) 지난 2002년에 "나도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자살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은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 30분 공부하고 20시간 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 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절규했다. 학원은 학생의 일상생활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데 기숙학원이나 자물쇠반에서 이루어지는 행태들은 산업혁명 당시 중노동을 견디다 버려지는 유럽의 애띤 소년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만약 교육의 현장에서 '인간의 얼굴'이 조금씩 회복된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즉 한국 사회는 이제 '국가(사회)의 개인들'에서 '개인들의 국가(사회)'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역량이 생기는 것이지, 지금처럼 한줄로 늘어놓고 훈시를 하듯 일방적으로 정책을 주입시키는 것은 '글로벌한 자살한위'나 다름없다.
대체로 신선한 관점이며 타당한 주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다른 눈으로(with other eye's)' 바라본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현지의 입장'에 대해서 너무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스쿨의 전면적인 지방대 배분이라든가 논술시험을 담당교사가 출제하는 방법, 객관식의 폐지, 모든 시험을 토론과 논술로 치르자는 결론적 주장은 장기적 과제는 될 수 있지만, 당장 밟을 수 있는 땅은 아니다. 예컨대 담당교사의 시험 출제라든지 모든 시험을 토론이나 논술로 출제하자는 주장은 출제 이전에 담당교사의 역량이나 교사 교육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대목에서 학자와 정치인의 커다란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나는 무척이나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이 지점에서부터 끊어진 고리는 분명히 적임자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다. 당연히 정치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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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8-04-0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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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위기, 위기의 교육
<입시공화국의 종말>은 현재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리치고 있는 김덕명 교수가 한국의 교육문제를 비판한 책이다. 사회학자답게 그는 한국 교육 문제, 그 중에서도 입시와 관련된 대학서열화와 인재선발 방식의 후진성, 몰개성성을 주로 비판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의 입시 문제는 단순히 입시제도의 개선을 통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입시제도는 일부 명문대학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대학의 서열을 유지, 고착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서열화를 단순명쾌하게 이룰 수 있는 것은 객관식 시험을 통한 점수와 석차에 의한 학생선발이다. 심지어 그러한 객관식 시험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논술의 채점에 있어서도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수량화하는 것 역시 서열화, 즉 줄세우기에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객관식 시험의 문제는 단순히 교육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는 공부는 애초부터 자신의 생각이나 창의성은 기대할 수 없다. 모든 해답은 외부(학교 교사, 학원 강사, 교과서)에서 주어지는 지식과 정보에 있으니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암기하고 기억하면 된다. 이러한 교육은 어려서부터 획일성과 외부의 권위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노예교육이다. 이런 풍토에서 자신의 독립성, 창의성에 기초한 자율적인 인간이 길러질리 만무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 교육은 전(前)근대적이거나 비(非)근대적이다.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전 세계 어느 선진국 아이들보다 뛰어난 학력을 가진 학생들이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업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일어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나라. 초중고 교육의 유일한 목적이 대학입학이기에 대학 입학과 동시에 공부해야 할 목적과 의미를 상실해 버리는 학생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공부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여가를 즐겨야 할 시기에 죽어라 공부만 하고, 정작 자신의 전문 분야를 열심히 파고들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때 오히려 다양한 경험과 여가에 빠져 버리는 이상한 현실.
저자는 이러한 입시와 대학 서열화 문제를 위한 해결책으로 대학을 평준화, 다원화하고 입시를 대학이 아닌 고등학교에서 담당하게 함으로써 대학의 연구 기능과 교육의 질을 높이도록 할 것, 그리고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고 토론과 논술 위주의 교육과 평가를 통해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식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의 적합성과 현실성 여부를 떠나 우리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이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어느새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교육제도와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각성을 이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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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지 2010-01-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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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나만이 홀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지,,,,
bildung 2009-02-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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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공화국의 종말을 기다리며...
세상에 완전한 인간의 이론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럴수록 다양한 주장이 수용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양성은 창의성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 다양성이 죽은 사회는 북한처럼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입시 제도는 다양성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그것은 창의성을 죽이는 길이기도 하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문제와 똑같은 답을 원하는 사회가 창조적일 리가 없다. 한국의 초중등학교는 대학입시의 노예라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참으로 서글프고 답답한 심정을 느겼다. 창의성 없는 엘리트가 나라를 이끌고, 창의성 없는 서울대가 한국의 입시지도를 조정하고 있다. 우선 급한대로 서울대의 학부를 없애자. 대학원만 남기자. 로스쿨은 저자의 주장과는 반대의 결론으로 가고 말았다. 교육관료들은 현장을 모르고 날뛰고 있다. 교육개혁은 교육관료의 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개혁이 이야기 되어야 한다. 정작 필요한 현장은 잠자코 있고 바깥에서 더 야단이다. 이것도 주객의 뒤바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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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2008-12-2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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