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6

미국 남장로교의 한국(특히 전라도) 선교 - 최은수-옥성득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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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쟁의 개요

이 논쟁은 옥성득 교수가 학술지 <한국기독교와 역사>에 기고한 논문 「미국 남장로회 한국 선교의 시작 재구성, 1891-1894」에 대해, 최은수 교수가 <교회와신앙>에 5회에 걸쳐 강력한 비판(반론)을 게재하고, 이에 대해 옥성득 교수가 재반론을 펼치면서 발생했다. 핵심 쟁점은 미국 남장로교의 한국(특히 호남/전라도) 선교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누구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차이이다.

2. 양측의 핵심 주장 요약

가. 최은수 교수의 주장 (공격)

최은수 교수는 옥성득 교수의 논문이 '역사 왜곡'이며 '소설'에 가깝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원사료 및 선행연구 무시: 옥 교수가 '현장 원사료(묘비, 현지 답사 등)'를 무시하고, 편향된 서구(영어) 문헌에만 의존했다. 또한 최 교수 자신이 리니 데이비스 등에 대해 연구한 선행 자료를 인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표절 의혹이 있거나 학문적 도의를 저버린 것이다.

  • 윤치호의 절대적 역할 강조: 미 남장로교 선교의 시작은 언더우드(북장로교)나 마펫의 영향이 아니라, 당시 미국 남부에서 순회 강연을 하며 '조선 선교의 돌풍'을 일으킨 <윤치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윤치호의 강연이 테이트 등 선교사들의 자원을 이끌어냈다.

  • 언더우드/마펫 역할 축소: 옥 교수가 북장로교 소속인 언더우드와 마펫을 남장로교 선교의 주역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이며, 그들의 재정적 기여나 영향력은 미미했다. 이는 남장로교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 전라도사관(史觀): 서구 중심이 아닌 주체적인 '전라도사관'에 입각해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 옥 교수의 서술은 포스트모더니즘에 편승하여 정통 교회사관을 파괴하는 행위다.

나. 옥성득 교수의 반론 (방어)

옥성득 교수는 최 교수의 비판이 비학술적이며 감정적인 비난이라고 일축하며 조목조목 반박한다.

  • 사료의 적절성: 자신은 방대한 미국 지역 신문과 선교 본부 회의록 등 1차 문헌을 충분히 검토했다. 최 교수의 글은 학술적 검증(각주 등)이 부족한 에세이 형식이기에 필수 인용 대상이 아니며, 인용한 부분에서도 오류(이름 오기, 팩트 오류 등)가 있어 지적했을 뿐이다.

  • 행정적/재정적 결정권자로서의 언더우드: 윤치호가 분위기를 조성한 공로는 인정하나, 실제 선교부의 정책 결정과 재정 지원, 선교사 초청의 실질적 설립자는 언더우드였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자 1차 사료(남장로교 총회 보고서 등)의 증언이다.

  • 교파 간 협력의 역사: 초기 한국 선교는 북장로교(언더우드, 마펫)와 남장로교가 긴밀히 협력하고 서울 지부를 공유하며 시작된 역사이다. 이를 부정하고 '전라도만의 독자성'을 고집하는 것은 편협한 지역주의다.

  • 전라도사관 및 윤치호 비판: '전라도사관'이라는 용어는 학문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지역감정 조장 용어다. 또한 남장로교(칼뱅주의)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감리교도인 윤치호(웨슬리안)를 유일한 기초로 삼는 것은 신학적 모순(혼합주의)이다.


3. 평론 (Critique)

이 논쟁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 관계의 확인을 넘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Methodology)과 태도(Attitude)의 충돌을 보여준다.

가. 사료 해석과 역사 서술의 방법론

  • 최은수(향토사학적 열정과 배타성): 최 교수는 '현장성'과 '숨겨진 인물(윤치호, 리니 데이비스)' 발굴에 큰 강점을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연구 성과(현장 원사료)만을 절대시하고, 문헌 사료(총회 기록, 편지)에 기반한 옥 교수의 연구를 '파괴'나 '왜곡'으로 매도하는 것은 학문적 포용력이 부족해 보인다. 특히 <전라도사관>이라는 프레임은 자칫 역사적 사실을 지역주의적 자부심을 고취하는 도구로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 옥성득(실증사학적 엄밀함과 보편성): 옥 교수는 1차 문헌(Documentary Evidence)에 기반하여 남장로교 선교가 북장로교와의 협력 및 언더우드의 구체적인 행정적 노력으로 시작되었음을 입증한다. 이는 한국 교회가 초기부터 교파를 초월한 연합(Ecumenical) 성격을 띠었음을 보여주는 균형 잡힌 시각이다. 다만, 재야 사학자나 현장 중심 연구자가 느낄 수 있는 '학문적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을 자극한 측면도 없지 않다.

나. 논쟁의 핵심 인물: 윤치호 vs 언더우드

  • 윤치호의 위치: 최 교수의 주장대로 윤치호가 미국 남부에서 조선 선교의 필요성을 알린 '스피커'로서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러나 옥 교수의 지적처럼, 선교 본부의 예산을 집행하고 정책을 결정하게 만든 '행정적 설립자'로서의 언더우드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무리다. 최 교수가 윤치호를 강조하기 위해 언더우드를 깎아내린 것(조족지혈 등)은 과도한 비약으로 보인다.

  • 신학적 정합성: 옥 교수가 지적한 '남장로교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감리교인 윤치호를 절대화하는 모순' 은 최 교수의 논리가 가진 가장 뼈아픈 약점이다. 이는 최 교수의 주장이 신학적 엄밀성보다는 '호남 소외론'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서적 동기에서 출발했음을 시사한다.

다. 학문적 태도와 윤리

  • 최 교수의 글은 학술적 비평이라기보다는 감정 섞인 비난에 가깝다. '표절', '곡학아세', '왜자간희' 등의 원색적인 용어 사용은 건강한 학문적 토론을 방해한다.

  • 반면 옥 교수는 감정적인 불쾌감을 표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료와 논리로 반박하며 학술적 품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다만, 상대방의 글을 '에세이'로 규정하며 학술적 가치를 낮게 평가한 태도는 상대방을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4. 결론

이 논쟁에서 역사적 정합성과 사료적 근거의 우위는 옥성득 교수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남장로교 선교는 언더우드의 주도적인 노력(북장로교)과 윤치호의 분위기 조성(남감리교 배경), 그리고 미 남장로교 내부의 호응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산물이다.

최은수 교수는 '전라도'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윤치호를 영웅화하고 타 교단의 영향을 배제하려는 <배타적 역사관>을 보인 반면, 옥성득 교수는 사료에 기반하여 한국 교회의 <연합과 협력의 역사>를 복원하려 했다.

결국 이 논쟁은 **'지역적 특수성과 자부심을 강조하는 역사 서술(최은수)'**과 '보편적이고 실증적인 역사 서술(옥성득)' 간의 충돌이며, 한국 교회사 연구가 지역주의를 넘어 객관적 사실 위에서 통합적 관점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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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요약·평론은 두 문서(최은수의 연재 비판문 + 옥성득의 반론문)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한국어> 요약

1) 논쟁의 핵심 쟁점(무엇을 두고 다투나)

이 논쟁은 <미 남장로교(PCUS) 한국선교의 ‘출발 서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를 두고,
(1) 누가 ‘결정적 동인’이었는가(윤치호 vs 언더우드·마펫·북장로교 협력),
(2) ‘최초’(첫 내한 선교사/선교 시작의 기준)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카메론 존슨·리니 데이비스 등),
(3) 사료·인용 규범과 학술 윤리(선행연구 인용, ‘표절’ 언급의 정당성),
(4) ‘전라도 사관’/‘정통성’ 같은 틀의 정당성
으로 갈라집니다.

2) 최은수(비판) 쪽 주장 요지

  • <사료·방법론 비판>: 옥성득의 서술은 ‘원사료(기록된 원사료 + 현장 원사료)’가 부족하고, 제한적인 기록 원사료 및 편향된 1·2차 자료에 치우쳐 객관성 문제가 생겼으며, ‘재구성’이라는 이름으로 전라도 교회사를 ‘파괴’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합니다.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 <인물/동인 재배치>: 남장로교 전라도 교회사에서 윤치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언더우드·마펫·북장로교를 끌어오는 것은 ‘역사왜곡’ 혹은 ‘소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 <카메론 존슨·리니 데이비스 관련>: 옥성득이 (카메론 존슨이 데이비스에게 선교 헌신을 권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교차검증 없이 인용했다고 비판합니다.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3) 옥성득(반론) 쪽 주장 요지

  • <사실관계/해석 반박>: 최은수의 “윤치호 절대/언더우드·북장로교 언급은 소설”류의 단정은 사료적 근거가 약한 ‘주관적 확신’이며, 남장로교 선교위원회 결정 과정과 잡지 기록 등을 보면 언더우드의 글·강연·재정지원이 한국선교 결정에 크게 작용했고, 남·북 장로교 선교사들의 협력이 실재했다고 반박합니다.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 <‘최초’ 기준과 ‘성인담’(hagiography) 비판>: 최은수가 카메론 존슨을 어떤 지위로 보든, 부산에 먼저 도착한 사실 등을 외면하고 ‘데이비스만’ 고집하는 태도는 사료 취사선택·우상화(성인담)의 함정일 수 있다고 역공합니다.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 <‘전라도 사관’ 비판>: 지역 프레임을 학술 개념처럼 쓰는 것 자체가 비학문적이며, 장로교 형성의 ‘연합/보편’ 역사를 거꾸로 가는 분열적 정통성 논리라고 비판합니다.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 <윤치호 ‘절대적 기초석’의 신학적 문제 제기>: 윤치호는 남감리회(웨슬리언) 배경에서 ‘남감리회 선교의 기초’에도 해당하는데, 그를 남장로교의 ‘유일 기초’로 세우면 남장로교의 정체성(정통 칼뱅주의)을 오히려 흔드는 혼합주의적 해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 <“윤치호를 전혀 언급 안 했다”는 주장 반박>: 본인 논문에서 윤치호를 정리·소개했고(1892년 선교대회 연설 등), ‘미언급’ 주장은 허위라고 반박합니다.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 <인용·표절 공방>: (최은수가) ‘표절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은 명예를 훼손하는 무책임한 비난이며, 학술지 논문이 아닌 신문 연재 에세이를 “반드시” 인용해야 할 의무는 없고, 1차 사료 재판독/오역 교정은 독자 성과라고 설명합니다.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한국어> 평론(핵심 평가)

1) 생산적인 쟁점 vs 비생산적인 쟁점

  • <생산적인 쟁점>은 (a) ‘선교 시작’의 정의(선교지부 station의 시작을 “정착 순간”으로 볼지, 특정 지역 선교 개시로 볼지), (b) ‘최초’ 판정 기준(도착일·파송 주체·실제 활동 기간·공식 선교체계 편입 여부), (c) 특정 1차 사료의 판독·번역·맥락화의 정확성입니다. 여기서라면 공개 검증이 가능합니다.

  • <비생산적인 쟁점>은 “파괴”, “소설”, “정통성”, “열등감” 같은 동기 추정·낙인형 언어가 앞서는 부분입니다. 이 언어는 상대가 어떤 자료를 내도 ‘선의’가 아니라 ‘의도’로 해석하게 만들어 논쟁을 학술에서 정치/감정으로 끌고 갑니다(양쪽 모두 그런 위험이 드러납니다).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2) 최은수 비판의 강점과 한계

  • <강점>은 “사료의 층위(기록 vs 현장), 서구/영문 기록 편향, 교차검증 필요”를 전면에 둔 문제제기 자체입니다. 실제로 한국 기독교사에서 ‘미션 보고서 중심 서술’의 한계는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고, 지역 현장 자료·한국어 자료의 발굴은 의미가 큽니다.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 <한계>는 그 방법론 비판이 곧바로 “윤치호 절대/언더우드·마펫·북장로교 언급은 소설” 같은 단정으로 연결되는 순간, 논증의 설득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A의 비중을 키운다’와 ‘B의 언급 자체가 왜곡이다’는 다른 주장인데, 후자는 반증 가능한 반대 사료가 하나만 나와도 무너집니다.

3) 옥성득 반론의 강점과 한계

  • <강점>은 (a) 최은수의 핵심 단정을 “사료 근거 부족”으로 되돌려 세우고, (b) 남장로교 선교위원회·잡지 기록 등으로 언더우드/협력의 동인을 설명하려는 점, (c) “윤치호 미언급” 같은 사실관계 공격을 반박하는 점입니다.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 <한계>는 (a) 반론이 ‘최은수의 지역주의/정통론’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확장되면서, 원래의 실증 쟁점이 흐려질 위험, (b) ‘성인담’ 같은 표현이 최은수의 “우상화”를 지적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역시 감정선을 건드려 논쟁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4) 이 논쟁을 “학술적으로” 끝내는 현실적 방법

  • <쟁점 3개로 축소>

    1. “선교의 시작” 정의(정동 7인 선발대 ‘정착’ vs 전라도 현장 선교 개시)

    2. “최초” 기준(도착/파송/활동/제도 편입의 가중치 합의)

    3. 윤치호의 ‘영향’ 측정 방식(신문 보도·강연·네트워크가 위원회 결정을 얼마나 ‘직접’ 매개했는지)

  • <공개 사료 묶음 만들기>
    핵심 1차 사료(선교위원회 기록, The Missionary 관련 대목, 윤치호 일기 해당 날짜, 데이비스·존슨 관련 문서)를 ‘원문-번역-주석’ 형태로 공동 공개하면, 논쟁은 인신/동기 싸움에서 사실 검증으로 이동합니다.


<English> Summary + Commentary

Summary

This dispute is about how to narrate the <origins of the U.S. Southern Presbyterian (PCUS) mission in Korea>—especially:

  1. who should be treated as the decisive driver (Yun Chi-ho vs Underwood/Moffett and Northern–Southern Presbyterian cooperation),

  2. what counts as the “first” (first arrival, first official missionary, first station, etc.),

  3. evidentiary standards and citation ethics (what must be cited, and whether “plagiarism” language is warranted),

  4. whether framing the story through a “Jeolla-centered historiography/orthodoxy” is academically legitimate.

Choi argues that Ok’s narrative suffers from insufficient “primary sources” (including what Choi calls “field primary sources”), relies on limited written records and biased materials, and thereby “distorts” or even “destroys” Jeolla church history under the banner of “reconstruction.”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Choi further claims Yun Chi-ho’s influence was “absolute,” and that invoking Underwood/Moffett/Northern Presbyterians amounts to distortion or “fiction.”

옥성득 교수,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서술의 근본적인 …

Ok counters that these are categorical claims with weak evidentiary grounding, and that committee records and mission publications indicate Underwood’s writings, speaking tours, and fundraising mattered greatly in the PCUS decision—and that cooperation with Northern Presbyterian missionaries is historically attested.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Ok also rejects the “Jeolla historiography” frame as academically dubious and socially divisive, arguing for a broader, ecumenical account.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On ethics, Ok criticizes Choi’s escalation to “plagiarism” insinuations as irresponsible and reputationally damaging, and denies any obligation to cite every non-peer-reviewed newspaper series in an academic article.

최은수 박사의 논평에 대한 옥성득 교수의 반론

Commentary

The most <productive> parts of the debate are definitional and evidentiary: how to define “mission begins,” how to operationalize “first,” and how to weigh different categories of sources. The least productive parts are motive-laden labels (“destroying,” “fiction,” “orthodoxy,” etc.), which pull the exchange away from verifiable claims.

A practical way forward is to <reduce the dispute to a small set of testable questions> and publish a shared dossier of the key primary texts (original + translation + annotation). That would force the conversation to move from identity/legitimacy battles to replicable historical verification.


원하시면, 제가 <쟁점 3개(시작/최초/윤치호 영향)>로만 다시 재정리해서, 각 쟁점마다 “합의 가능한 판정 기준”과 “필요 사료 체크리스트”를 1쪽짜리로 만들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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