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31

송두율 - 위키백과

송두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송두율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송두율
Song Du-yul
출생1944년 10월 12일(81세)
일본 제국 도쿄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독일
학문적 배경
학력서울대학교
지도 교수위르겐 하버마스
학문적 활동
분야사회학철학

송두율(宋斗律, 독일어: Song Du-yul1944년 10월 12일~)은 한국계 독일인 사회학자, 철학자로, 독일 뮌스터 대학교의 사회학, 철학 교수였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생애

1944년 10월 12일 일본 도쿄 아라카와구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제주도 출신이다. 아버지 송계범은 일본 도쿄 물리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직전 경성제국대학 물리학부에서 근무하였다. 송계범이 한국 전쟁 이후 전남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송두율은 1950년부터 1960년까지 광주에 거주하며 광주 중앙초등학교와 서중학교를 졸업했다. 1960년 서울로 이주해, 경기고등학교 입시에 도전했지만 낙방하고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중동고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훗날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된 최재석이었다. 교사 송찬식(후에 국민대 사학과교수)의 권유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1963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65년 한일회담 반대 운동을 하면서 대학 시절 59학번이던 시인 김지하와 알게 된다.

1967년 독일로 유학해 1972년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2년 뮌스터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로 채용되어 정치경제학, 사회학방법론, 후진국사회학을 강의했으며, 뮌스터에서 정정희와 결혼하여 준과 린 두 아들을 낳았다. 1973년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했고,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였다.[1] 그는 이후 총 18회 북한을 방문하였다. 독일에서 대한민국 학술원을 운영하며 북한에서 지원금을 받았다. 1974년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조직하여 의장을 맡았으며, 본에서 벌어진 유신 독재 반대 시위에 적극 참가하였다. 1977년 베를린 자유대학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1981년 공산주의에 대해 내재적 방법으로 비판적인 분석을 한 논문 '소련과 중국'을 발표하였고, 1982년 1월 사회학 교수자격 논문을 마무리하여 교수자격을 받았다. 1988년과 1989년에는 미국 롱아일랜드대학 철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였다. 1991년에는 북한 사회과학원 초청으로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강의하였으며 김일성과 대면하였다. 1994년부터 베를린 훔볼트 대학 교수로 채용되었다. 1997년에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며, 김일성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하여 북한을 방문하였다.

2003년 대한민국에 귀국했으나,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지방법원 최완주 부장판사는 2003년 10월 22일 "범죄사실이 소명되나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고 높은 처단형이 예상돼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아 기소되었다.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재판장 이대경 부장판사)는 7년의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그는 심문 과정에서 '김일성 주석은 살아온 과정 등을 볼 때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나도 존경한다'고 진술하였다.[2] 2004년 7월 21일 2심 재판부(서울고법, 재판장 김용균 부장판사)는 기소된 사건 내용중 방북 사실을 제외한 간첩 혐의 등 대부분을 무죄로 판정하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3] 그날로 송 교수는 구속 9개월 만에 석방됐고, 2004년 8월 초에 부인과 함께 독일로 출국했다.

2004년 7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송두율은 "2003년 10월 24일 ~ 11월 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포승줄과 수갑에 묶인 채 검찰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등 부당한 계구 사용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는 등의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2단독 최지수 판사는 2005년 1월 7일 "당시 정황상 송두율이 도주하거나 폭행할 우려가 없었는데도 계구를 사용한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국가는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의자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계구 사용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한해 최소범위에서 허용돼야 한다 무리한 계구 사용은 피의자의 심리를 위축시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이유로 "국가는 송두율에게 1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4]

서울중앙지법 민사 88단독 김래니 판사는 조사과정의 변호인 입회를 불허한 검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구속상태에 처한 피의자에게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은 인권보장과 방어준비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권리이다"라고 하면서“국가는 500만 원, 관련 검사 4명은 각각 100만 원씩 모두 9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송두율 측 변호인단은 2003년 10월 송두율이 구속수감된 이후 검찰이 보안을 이유로 변호인 입회를 허용하지 않자 "입회불허 결정을 취소하라"는 준항고를 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변호인 입회불허 취소를 결정했다.

2008년 4월 17일 상고심(2004도4899)에서 외국인이 외국에 거주하다가 북한에 간 것은 국가보안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로 일부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2008년 8월 24일 서울고법은 확정 판결을 내렸다.

2009년 여름 학기를 끝으로 뮌스터 대학교에서 퇴임했다.[5]

사회 운동

1960년대 독일 유학 중 박정희 정권이 시도한 유신 체제 개헌 반대 운동을 주도하여,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혔다. 이후 독일에 머물며, 남한과 북한 사회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며 일련의 저서를 썼다. 그 안에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내재적 접근론을 내세우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5년부터 베이징에서 남북의 학자들이 만나 학술적인 교류를 갖는 남한/북한 학술 회의를 주도했다.

수상

저서 및 논문

논문

  • 1972년 철학 박사 학위 논문 〈Aufklärung und Emanzipation : Die Bedeutung der asiatischen Welt bei Hegel, Marx und M. Weber〉, Berlin:X-Press, 1987 : 논문의 지도교수는 위르겐 하버마스이다.

저서

  • 계몽과 해방-헤겔과 마르크스와 베버의 동양세계관/ 한길사, - 1988 (236쪽)-원문을 번역하고 ‘1985년 추고’를 덧붙임
  • 계몽과 해방, 당대, 1996 (264쪽) : 위 번역본에다 2편의 논문을 덧붙인 개정증보판으로 한국어판 ‘정본’
  • 1980, (송두율 편) Wachstum, Diktatur und Ideologie in Korea (대한민국 내 성장, 독재 그리고 이데올로기)
  • 1982, 사회학 ‘교수 자격(venia legendi)’ 획득: 교수 자격 논문(Habilitation-Schrift), 1981년 제출 - Sowjetunion und China : Egalisierung und Differenzierung im Sozialismus (소련과 중국-사회주의내에서 평등화와 차등화), Frankfurt am Main:Campus, 1984
  • 윤도현, 이성백 옮김, 소련과 중국-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자·농민·지식인/ 한길사, 1990 (302쪽)
  • 1990, Metamorphosen der Moderne : Betrachtungen eines Grenzgängers Asien und Europa (근대의 변형-아시아와 유럽사이에서 한 경계인의 고찰), Münster:Wulf-Verlag
  • 1990, 현대와 사상-사회주의·(탈)현대·민족/ 한길사 (324쪽)
  • 1991,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 한길사 (228쪽)
  • 1995, Korea-Kaleidoskop : Aktuelle Kontexte zur Wiedervereingung (한국이라는 거울 : 통일에 관한 현실적 맥락), Osnabrück
  • 1995, 역사는 끝났는가/ 당대 (378쪽): 현대와 사상”에서 5편,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에서 3편을 재수록
  • 1995,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한겨레신문사
  • 1998, 21세기와의 대화/ 한겨레신문사 (271쪽)
  • 2000,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사 (309쪽):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의 개정판 준비하려다가 새 책 집필
  • (송두율 편) Südkorea : Kein Land für friedliche Spiele (남한 : 평화로운 놀이가 없는 땅 )
  • 2002, Schattierungen der Moderne : Ost-West-Dialoge in Philosophie, Soziologie und Politik (현대의 명암 : 철학, 사회학 그리고 정치학에서 동-서 대화),
  • 2002, 경계인의 사색/ 한겨레신문사 (295쪽) - 위 독일어 저서에서 5편의 글을 뽑아 이 책의 ‘4부’에 실었다.
  • 2007,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후마니타스
  • (출간예정) Konstitution der Moderne (현대성의 구성)
  • 2012, 境界人の眼から見たカントの世界市民主義 in: カント研究会 編、石川求・寺田俊郎 編著, 世界市民の哲学* (現代カント研究12), 晃洋書房(京都), pp. 137-163
  • 2012. Korea - von der Kolonie zum geteilten Land (코리아-식민지에서 분단국으로), Wien (Rainer Wernig 공저)
  • 2017, 불타는 얼음.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 후마니타스 (396쪽)

각주

  1. 김하영 기자 (2004년 5월 20일). 송두율 "국보법으로 유지되는 민주주의는 문제"프레시안.
  2. 전진배 기자 (2003년 11월 19일). 송두율씨 "김일성을 존경한다"중앙일보.
  3. "송두율 씨 정치국 후보위원 인정 안돼"<법원>(종합)연합뉴스. 2004년 7월 21일.
  4. 김지성 기자 (2005년 1월 8일). 송두율씨 인권침해 손배소 승소/ "포승·수갑으로 정신적 피해 100만원 국가 배상"한국일보.
  5.  보관됨 2015-02-20 - 웨이백 머신, Wiener Zeitung, 2012년 7월 8일, Stefan Kraft: Du-Yul Song: „Koreas Teilung ist der Grund allen Übels“

외부 링크


==

Song Du-yul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Song Du-yul
Hangul
송두율
Hanja
宋斗律
RRSong Duyul
MRSong Tuyul

Song Du-yul (Korean송두율, born 12 October 1944) is a German philosopher and sociologist of Korean descent. A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MünsterGermany, he has been a political exile from his native South Korea for over 40 years. Educated in South Korea, he left that country for Germany in 1967 to pursue higher education. He visited North Korea a total of 18 times while living in Germany, but did not return to the South until 2003. During his visit to the South that year, he was arrested, charged, and convicted of spying for the North under the South's National Security Act in a controversial court case; in the end, he was given a suspended sentence, and returned to Germany in August 2004.[1]

Early life

Song was born in TokyoJapan, to Korean parents. He underwent primary and secondary education in Gwangju before moving to Seoul to enter Seoul National University's Department of Philosophy. In 1967, he moved to West Germany, where he entered into a graduate programme at Heidelberg University. He later studied at Frankfurt University, where he wrote his thesis on The Understanding of Asia in Hegel, Marx, and WeberJürgen Habermas acted as his thesis advisor; he was also heavily influenced by the ideas of Peter Christian Ludz [de]. He completed his doctoral studies in 1972, following which he took up a teaching post at the University of Münster, where he also completed in 1982 his Habilitation (German professorship) for sociology.[1]

Contact with North Korea

Song made his first visit to North Korea in 1973. His desire to see the North first-hand was heavily driven the political environment at the time in West Germany, where Ostpolitik, the official policy of engagement with East Germany, was gaining traction. According to his own statements, he became a member of the North's ruling party, the Workers' Party of Korea, at that time; he claimed that this was a requirement for entering North Korea in those days. He would visit North Korea 18 more times in the following years. Though he did not travel to the South at all during this time, he continued to pay attention to political events in his homeland; he organised large-scale protests in Berlin in 1980 over the violent suppression of the 1980 Gwangju Uprising, which culminated in a 1500-person march down the Kurfürstendamm, a main avenue in Berlin. In 1982, he began teaching at the University of Münster. He met Kim Il Sung personally in 1991; in 1994, he was the only South Korean to attend Kim's funeral (though he had already taken up German citizenship the previous year).[1][2] He organized a total of six conferences for Korea's reunification in Beijing (1995–1999) and in Pyongyang (2003), attended by scientists from both parts of the divided county and from abroad.[citation needed]

Song attempted to make arrangements to travel to South Korea in May 2000 to attend memorial events commemorating the 20th anniversary of the Gwangju uprising. According to the North Korean-affiliated Zainichi Korean newspaper Choson Sinbo, he refused conditions placed on him by the South Korean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which included a demand that he make a written pledge to respect South Korean law; as a result, his plans to attend the memorial collapsed.[3] In 2001, North Korean defector Hwang Jang-yop asserted that Song was actually a member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s Politburo under the alias Kim Chol-su. In response, Song initiated a lawsuit against Hwang in the Seoul 16th District Court, alleging that Hwang's statements constituted libel. Song did not return to the South for this case; his lawyer An Sang-un appeared in court on his behalf. A court ruling in August 2001 recognised that Hwang's statement had no basis in fact, but denied Song's request for payment of damages; the following month, Song announced that he would not appeal the ruling, as he was satisfied with the court's affirmation that he was not Kim Chol-su.[4]

Return to South Korea and trial

Song finally returned to South Korea in September 2003 for the first time in 37 years at the invitation of the Korea Democracy Foundation; his itinerary was to include a meeting with then-President Roh Moo-hyun.[1] However, upon his arrival,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immediately picked him up for interrogation; they accused him of being a spy for North Korea, pointing to Hwang's claim that he was actually Kim Chol-su as justification.[2] The South Korean police arrested Song on 22 October; he was indicted on 15 November on charges of membership in an anti-state organisation, fleeing to a region under control of an anti-state organisation, aiding an anti-state organisation, and attempted fraud in relation to his libel suit against Hwang.[1] At his trial, the witnesses against him included a number of South Korean scholars in Germany whom he had allegedly influenced to engage in pro-North activism, including Oh Kil-nam, who had defected to North Korea but then returned to the South.[5]

Pyongyang initially refrained from comment on the trial, sparking speculation that Song had cut his ties with the North; however, the official Korean Central News Agency eventually came out with harsh criticisms of the trial in 2004, calling the Grand National Party "traitors to the nation" for taking the lead in the legal action against Song and accusing the South of violating the June 15th Joint Declaration by charging him under the National Security Act.[6][7] He was convicted on 30 March 2004 and sentenced to seven years' imprisonment in a ruling which drew criticism from Amnesty International.[8] Song appealed the sentence; the appeal court ruling on 21 July upheld two of the five initial counts, those for spying and fraud; his sentence was suspended for five years, and he was permitted to leave the country. After a visit to Gwangju and Jeju, he departed for Germany on 5 August 2004.[1]

Works

  • Song, Du-Yul; Wernig, Rainer (2012). Korea: von der Kolonie zum geteilten Land (in German). Wien ProMedia. ISBN 978-3-85371-340-2.
  • Song, Du-yul; Choe, Hyonduk; Wernig, Rainer (2004). Wohin steuert Nordkorea? Soziale Verhältnisse — Entwicklungstendenzen — Perspektiven (in German). Papyrossa Verlagsges. ISBN 3-89438-309-7.
  • Song, Du-yul (2002). Schattierungen der Moderne (in German). Köln: Papyrossa Verlagsges. ISBN 3-89438-255-4.
  • Song, Du-yul (1995). Korea-Kaleidoskop (in German). Osnabrück: Secolo. ISBN 3-929979-19-5.
  • Song, Du-yul (1993). "Wiedervereinigungsfragen Koreas in internationalen Umfeld und unter regionalen Aspekten". In Moltmann, B.; Wernig, R. (eds.). Deutschland und Korea. Begegnung in der Teilung. Kommunikation ohne Unterwerfung (in German). Hannover: Arnoldshainer Protokolle No. 2. pp. 59–71. OCLC 33475353.
  • Song, Du-yul; Rainer, Werning (1990). Kapitalismus, soziale Bewegungen und Gesellschaftsformation in Südkorea (in German). Eilinghoff: Norbert. ISBN 3-923881-41-X.
  • Song, Du-yul (1990). Metamorphosen der Moderne (in German). Münster: Wurf. ISBN 3-923881-36-3.
  • Song, Du-yul (1988). Zur Archäologie der Postmoderne : Begegnung zwischen Orient und Okzident (in German). Berlin: East Asian Institute, Free University of BerlinOCLC 75347443.
  • Song, Du-yul (1988). Aufklärung und Emanzipation : die Bedeutung der asiatischen Welt bei Hegel, Marx und Max Weber (in German). Berlin: Express. ISBN 9783885484264. — a revised version of Song's dissertation (Song 1972)
  • Song, Du-yul (1985). Ist Japan ein Modell für Deutschland? (in German). Berlin: Schiller. ISBN 3-925067-51-5.
  • Song, Du-yul (1985). Politik und Gesellschaft in der Republik Korea (in German). Offenbach/Main: Korea Forschungsgemeinschaft. OCLC 46021243.
  • Song, Du-yul (1984). Südkorea: auf den Spuren der Japaner? (in German). Offenbach/Main: Korea Forschungsgemeinschaft. OCLC 8462959.
  • Song, Du-yul (1984). Sowjetunion und China (in German). Frankfurt/Main: Campus-Verlag. ISBN 3-593-33351-1.
  • Song, Du-yul. "Is the Japanese Model an Alternative?". Telos52 (Summer). ISSN 0090-6514.
  • Song, Du-yul; Cho, M. Y. (1980). Wachstum, Diktatur und Ideologie in Korea (in German). Bochum: Studienverlag Brockmeyer. ISBN 9783883391038.
  • Dissertation: Song, Du-yul (1972). Die Bedeutung der asiatischen Welt bei Hegel, Marx und Max Weber (in German). Frankfurt/Main: Frankfurt University. OCLC 1012781.

See also

References

  1.  Kajimura, Tai'ichiro (2004-12-10). "Democracy and National Security in South Korea: The Song Du Yol Affair"Japan FocusISSN 1557-4660.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7-06-02. Retrieved 2007-07-13.
  2.  MacIntyre, Donald (2003-09-29). "The Man with Two Names"Time.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July 12, 2007. Retrieved 2007-07-13.
  3.  "무산된 33년만의 귀국" [Chance to return home after 33 years vanishes]. Choson Sinbo (in Korean). 2000-07-12.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3-09-12. Retrieved 2007-07-12.
  4.  "송두율교수, 황장엽씨 상대 항소포기" [Professor Song Du-yul will not pursue suit against Hwang Jang-yop]. The Chosun Ilbo (in Korean). 2001-09-19.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6-01-21. Retrieved 2007-07-16.
  5.  "검찰, 오길남씨 참고인 조사"JoongAng Ilbo (in Korean). 2003-10-07.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13-01-26. Retrieved 2010-02-25.
  6.  "S. Korean Prosecution Proposes 15-Year Prison Term for Korean-German Scholar on Spying for North"The People's Korea. 2004-03-27.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7-09-27. Retrieved 2007-07-13.
  7.  Foster-Carter, Aidan (2003-10-09). "Pyongyang Watch: Freedom fighter or traitor"Asia Time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2004-04-04. Retrieved 2007-07-13.
  8.  Khan, Irene (2004-04-30). "Open letter to Acting President Goh Kun — Continued use of the draconian National Security Law: Amnesty International's concerns about Professor Song Du-yul's case". Amnesty International. Retrieved 2007-07-13.
==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99338

최종 업데이트 04.07.21
[인물파일] 송두율 교수는 누구인가

장윤선(sunnijang)



송두율 교수는 4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57년 2월 광주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60년 광주 서중학교, 63년 서울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63년부터 67년까지 서울대 문리대학 철학과를 다녔으며, 72년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와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 경제학, 경제사를 전공하였다.

송 교수는 7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82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82년 이후에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베를린자유대, 미국 롱아일랜드대 등에서 철학, 사회학, 사회철학 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94년 독일 홈볼트대 한국학 초빙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98년 이후로는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35년만의 귀향 이후 구속 수감됐다.

송 교수는 2000년 '늦봄통일상'을 수상했고, 그의 삶을 담은 기록영화인 <경계도시 The Border City>가 2000년 제작됐다. 이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장편부분 '우수상'과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제53회 베를린영화제의 초청작으로 'Young Forum'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송 교수는 지난 3월 첫 번째 <안중근평화상> 수상자가 됐다.


AD
"나는 가볍게 책을 추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송두율 박사의 <역사는 끝났는가>를 읽어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인식적 오류 속에 살고 있(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송 박사는 이 책을 통해 넓은 철학적 시야와 수준높은 지적 모색의 과정을 통해 신선한 '통일철학'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나 자신은 송 박사의 이 책 속의 철학과 지식을 통해 시대사상과 세계인식의 한 단계 높은 수평에 서게 된 것을 고백해둔다."

리영희 교수가 송두율 교수의 대표적 저서 <역사는 끝났는가>에 대해 쓴 추천사 중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이다.

송두율 교수의 학문세계에 대해서는 그간 재판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특히 송두율교수대책위(이하 대책위) 사이트에는 송 교수의 학문세계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소개돼있다.

송두율 교수는 지금까지 철학 및 사회과학 분야에서 8권의 독일어 저서와 수십 편의 독일어 및 영어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말로도 9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글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학문활동을 해왔다.

송 교수는 지난 15년간 우리말로 <계몽과 해방: 헤겔과 마르크스와 베버의 동양세계관>, <소련과 중국>, <현대와 사상>, <전환기의 세계와 민족지성>,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 <역사는 끝났는가>, <21세기와의 대화>,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경계인의 사색> 등 9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송두율 교수는 그간 한반도 통일에 관한 연구를 통해 6가지 철학적 관점에서 한반도 통일철학을 정리한 바 있다. 송 교수가 정리한 6가지 철학적 관점은 이렇다.

첫째, "통일은 실체적 개념이 아니라 상생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둘째, "전쟁도 평화도 아닌 휴전 상태를 상생의 평화 체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셋째, "통일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어야 한다."
넷째, "통일문제를 <민족과 탈민족>, <세계화와 주체화>, 그리고 <동시성과 비동시성>의 긴장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다섯째, "한반도 통일은 인류 화해를 지향하는 아름다움의 표현이어야 한다."
여섯째, "통일은 <과거의 고향>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미래의 고향>을 전체 민족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송 교수의 학문적 성과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독일 학계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송 교수는 독일 학계에서 하버마스 비판철학의 방법론적 전통 내에서 모더니즘 논쟁, 사회주의와 제3세계 문제, 한반도 통일문제 등의 분석을 통해 독창적인 이론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도 송 교수의 학문적 방법론과 철학은 특히 한반도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학문적 논의의 장에서 적지 않게 언급되어 왔다.

특히 송 교수가 한반도 민족문제를 풀기 위해 원용한 내재적-비판적 방법론은 서양 철학자 칸트(I. Kant)의 <순수이성비판>과 세계적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의 <부분과 전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미셀 세르(M. Serres)의 이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송 교수가 내재적-비판적인 철학 방법론을 한반도 민족문제라는 구체적 현실에 적용한 것은 민족분단의 객관적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문제 해결의 대안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대책위는 송 교수의 내재적-비판적 철학 방법론에 대해 "이 방법론이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충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지만, 그 이론이 북한을 옹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고안된 것은 아니고 학문의 유구한 역사에서 추출한 대안적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송 교수의 학문적 탐구 영역은 서양 사상가들의 동양관에서부터 사회주의 사상과 현실 사회주의 문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민족 문제와 제3세계 문제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다"며 "여기에 생태계의 위기, 시민생활, 여성의 지위와 권리 등까지도 그의 관심의 촉수가 뻗어있다"고 소개한다.

또한 대책위는 "송 교수의 스승 하버마스의 철학은 보편성과 다원성을 화해시키고, 이를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으로 집약될 수 있다"며 "따라서 송 교수의 이와 같은 지적 작업은 하버마스의 접근방식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


==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