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6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잉게 숄 | 알라딘

[전자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잉게 숄 | 알라딘


[eBook]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 숄 (지은이),송용구 (옮긴이)평단(평단문화사)2021
원제 : die Weiße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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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독재를 타파하려는 대학생 저항 단체 ‘백장미’의 활약상과 희생을 그린 실화소설이다. 소설가 잉게 숄은 백장미의 리더인 한스 숄의 누나이자 백장미의 일원인 소피 숄의 언니이다.

백장미단은 뮌헨대학교 학생들과 철학과 교수 쿠르트 후버가 주축을 이루는 저항 단체로, 나치의 독재와 유대인 학살,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는 전단을 6차례 배포했다. 특별한 정치 이념이나 위대한 목표를 추구한 게 아닌 그저 개인의 자유,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지켜내려는 목적이었고 철저히 비폭력으로 맞섰으나 모두 체포돼 단두대형을 받았다. 처형당한 학생들의 나이는 모두 20대였고, 소피 숄은 고작 22세였다.


목차


추천의 글_다니엘 린데만(독일 출신 방송연예인)
프롤로그
소설 본문

[부록]
- 백장미 전단(I~V)
- 독일 저항 운동의 선언문
- 토마스 만 영국 BBC 연설문
역자 해설


책속에서


P. 6 그들은 한 나라의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젊은 학생들의 용기. 부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용기, 그리고 이런 철듦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요구되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P. 20 아버지는 가끔 히틀러를 피리 소리로 아이들을 유혹해 죽음으로 몰고 가는 ‘하멜른의 쥐 몰이꾼’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건 우리가 아니라 허공의 바람이었습니다. 우리를 그 공동체에서 탈퇴시키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우리의 맹목적인 열정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P. 44~45 이런 이중적 생활을 한스는 견디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무겁고 암울하게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은 억압과 증오와 거짓이 당연시된 나라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유를 옭아매는 독재 권력의 족쇄가 점점 조여오면 그 누구도 견디기 어렵지 않을까요?
P. 62 그녀에게 이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오히려 합숙소의 단체생활이었습니다. 획일적인 일상생활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쉽게 꺾이지 않는 깊은 저항 정신 속에 접목된 소피의 신념이 없었더라면 그 생활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만과 증오와 억압의 토대 위에 세워진 한 국가에 동의하는 뜻으로 단 한 번이라도 ... 더보기
P. 81 만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미혼 여성과 부녀자들에 대해서도 비밀스럽고 음흉한 계획을 꾸몄습니다. 그들은 전쟁 후에 겪을 전무후무한 인명 손실을 막기 위해 후안무치한 인구 증가 정책을 짜냈습니다. 이미 관구 지휘관인 기슬러는 대규모 대학생 집회에서 여대생들에게 거침없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P. 101 한스는 수송 열차의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 여인들에게 걸어갔습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여인은 얼굴이 여위고 손이 가냘픈 아가씨였습니다. 얼굴에 짙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아름답고 지적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선물할 만한 게 없을까 하고 생각하던 한스의 머릿속에 양철로 된 ‘레이숀’ 상자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P. 124 팔크 하르나크는 1943년 2월 25일 신학자이자 목사인 디트리히 본회퍼와 그의 형제 클라우스 본회퍼, 한스와 알렉스를 데리고 베를린으로 가서 본격적인 저항 운동을 펼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스는 게슈타포에게 발각되어 베를린으로 떠나기 사흘 전에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때 알렉스는 어디론가 피신 중이었습니다.
P. 146 제3제국의 통치 기간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런 정치적 재판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그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헤아릴 것입니다. 죽음 혹은 수감 생활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져서 ‘나치’를 멸시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악마와 같은 판사들이 내릴 선고를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서 자신들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솔직한 생각을 철저히 숨기고 위장하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까요. 접기
P. 200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그 방법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혈혈단신으로 맞서는 개인적 투쟁이나 상처 깊은 망명객들의 싸움만으로는 이 ‘정부를 무너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굳은 신념과 강인한 근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일치단결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P. 224 부활절에 대강당에서 나치 지도층의 파렴치한 연설에 반대해 일어난 학생들의 반란, 손도끼(나치를 상징하는)에 의해 순교당한 젊은이들, 독일의 자유 정신을 수년간 더럽힌 문헌들을 알리는 지라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슬퍼했습니다. 독일 젊은이들(이제 막 젊은이가 된)의 감수성은 나치스트들의 거짓 혁명에 슬퍼했습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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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잉게 숄 (Inge Aicher-Scholl)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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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독일의 ‘잉거스하임-알텐뮌스터’에서 로베르트 숄의 맏딸로 태어났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폭압 정치에 맞서 저항 운동을 펼쳤던 대학생 저항 단체 ‘백장미’단의 리더 한스 숄의 누나이자 소피 숄의 언니이다. 뮌헨대학교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룬 ‘백장미’단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비인간적인 전쟁의 죄악상을 비판하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던 중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뮌헨의 ‘슈타델하임 형무소’로 이송되었고, 국민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형에 처해졌다. ‘국가반역죄’를 지은 자들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잉게 숄을 비롯한 남은 가족은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나 전쟁 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소설가, 교육가, 문화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잉게 숄은 20세기 후반을 ‘평화 운동’에 바쳤다. 1946~1978년 독일의 ‘울름 시민대학’의 교육을 주도했고, 1953년 남편 오틀 아이허와 막스 빌과 함께 ‘울름 디자인 대학’을 설립했다. 1998년 8월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백장미’단에 관한 수많은 책을 썼는데, 이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그 대표작이다. 접기

최근작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총 11종 (모두보기)

송용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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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독일시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월간 『시문학』에 시 <등나무꽃> 외에 4편을 추천받아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문학평론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9월 이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독일어권문화연구소 교수로서 독일문학, 철학, 역사학을 통섭하는 인문학 교육의 증진에 힘써왔고, <독일문학의 탐색> <서사극이론과 현대연극> <동서독분단시대의 문학> 등을 강의했다. 고려대학교 최우수 강의상을 뜻하는 ‘석탑강의상’을 2005년과 2014년에 수상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독일문학사> <독일문학이론> <문화학입문>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문학의 숲』 『기후변화에 대항하는 독일시와 한국시의 기상학적 의식』 『10대를 위한 인문학 강의』 『나무여, 너의 안부를 묻는다』 『지식과 교양』 『생태언어학의 렌즈로 바라본 현대시』 『인간의 길, 10대가 묻고 고전이 답하다』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인문학 편지』 『생태시와 생태사상』 『대중문화와 대중민주주의-독일편』 『독일의 생태시』 『독일 현대문학과 문화』 『느림과 기다림의 시학』 『현대시와 생태주의』 『생태시와 저항의식』 『에코토피아를 향한 생명시학』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원저: 백장미)』, 슈테판 츠바이크의 『모르는 여인의 편지』, 헤르만 헤세의 『연인에게 이르는 길』, 횔덜린의 『히페리온의 노래』, 미하엘 쾰마이어의 『소설로 읽는 성서』, 로버트 V. 다니엘스의 『인문학의 꽃, 역사를 배우다』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우리 주변의 불안과 공포>,<녹색 세입자>,<인문학의 숲> … 총 4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범국가라는 낙인에도,
독일은 왜 일본과는 다른 평가를 받는가?
메르켈 총리는 왜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매번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하는 걸까?

“독일의 자부심은 과거 반성 능력에서 나온다!”(수잔 폽,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교수)

모든 독일인이 나치주의자는 아님을 말해주는 저항 단체 ‘백장미’
히틀러와 나치의 폭압에 죽음으로 맞선 그들의 이야기,
실화소설 《백장미(Die Weiße Rose)》를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이며 독문학자의 정확한 번역으로 읽는다.

독일인의 자유 의지와 저항 정신이 이토록 뿌리 깊은 줄 몰랐다!!

※ 독일 출신 방송연예인 ‘다니엘 린데만’ 추천
※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마스 만 영국 BBC 연설문 수록

“한국 사람들에게 유관순 열사가 있다면 독일 사람들에게는 한스 숄과 소피 숄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동시에 유럽 대륙과 온 세상이 인류 역사상 제일 어두운 시대에 들어갔을 때 독일에서 너무 일찍 철든 ‘백장미’. 그들은 한 나라의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젊은 학생들의 용기. 부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용기, 그리고 이런 철듦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요구되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 다니엘 린데만 추천글 중에서

용감하고 찬란한 이들이여! 그대들은 죽은 것이 아니며 잊히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치는 독일에 더러운 망나니와 무자비한 킬러들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독일과 유럽에 어둠이 드리웠지만, 진정한 독일의 혁명이 그것들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그대들이 알고 선포했던 이름들을 영원히 세울 것입니다. “자유와 영예에 대한 새로운 믿음이 싹트고 있습니다.”
- 토마스 만 연설문 중에서

히틀러의 폭거 앞에 비폭력으로 저항하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꽃다운 20대 청춘들의 이야기!
오늘날 독일의 자부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독재를 타파하려는 대학생 저항 단체 ‘백장미’의 활약상과 희생을 그린 실화소설이다. 소설가 잉게 숄은 백장미의 리더인 한스 숄의 누나이자 백장미의 일원인 소피 숄의 언니이다.
백장미단은 뮌헨대학교 학생들과 철학과 교수 쿠르트 후버가 주축을 이루는 저항 단체로, 나치의 독재와 유대인 학살,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는 전단을 6차례 배포했다. 특별한 정치 이념이나 위대한 목표를 추구한 게 아닌 그저 개인의 자유,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지켜내려는 목적이었고 철저히 비폭력으로 맞섰으나 모두 체포돼 단두대형을 받았다. 처형당한 학생들의 나이는 모두 20대였고, 소피 숄은 고작 22세였다.

“어쩌면 이들의 위대함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생명까지 바쳤다는 데 있는지도 모릅니다. 들끓는 열광, 위대한 이상(理想), 숭고한 목표, 잘 짜인 조직, 선한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 이런 것들 없이 홀로 고독하게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청소년 시절, ‘히틀러 유겐트’라는 단원을 이끌 때부터 나치 정권에 환멸을 느낀 한스 숄. 그는 뮌헨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겪으며 독재 권력의 족쇄에 자유가 옭아 매이는 고통을 경험한다. 나치 당국과 비밀경찰은 무방비 상태의 국민들을 공격하고 재산을 약탈하고 의도적으로 생명을 앗아갔다. 언론마저 장악해 이를 보도하는 신문은 없었다. 이에 분노한 한스 숄은 저항 의지를 불태우던 중 뜻을 같이할 동료들을 만나는데… 알렉산더 슈모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빌리 그라프, 그리고 한스 숄의 의대 후배이기도 했던 여동생 소피, 철학과 교수 후버 등이 불의에 맞서 저항한다. 이들 개인의 삶과 사랑, 그리고 순수한 저항 정신이 그려진다. 1942년 결성된 백장미의 모든 단원은 1943년 처형되었고, 한스 숄은 마지막으로 “자유여 영원하라!”라는 말을 남겼다.
사랑하는 조국 독일이 전쟁에서 지기만을 바라야 했던 얄궂은 운명,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그들의 위태로운 상황, 그럼에도 옳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마음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정의가 소설 곳곳에서 물결친다. 이들이 배포했던 백장미 전단지들과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의 영국 BBC 라디오 연설문도 일부 수록했다.
숄 남매는 독일인이 여전히 존경하는 인물이다. ZDF 선정 가장 위대한 독일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들을 다룬 영화도 세 편이나 제작되었고 그중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2005)은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선 해마다 봄이 3·1절로 시작하듯 독일에선 꽃피는 철이 돌아오면 백장미를 떠올린다.”고 방송연예인 다니엘 린데만은 말한다(〈중앙일보〉 2015.3.5).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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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의 잘 알려진 만행 뒤에 독일 젊은이의 저항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실화 바탕의 소설이 가슴 저리지만 잊혀져서는 안되는 일들은 꼭 모두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달리는앨리스 2022-05-0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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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사람이 먼저다 2021-02-1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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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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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전쟁의 참혹함은 겪어보지 않은 세대는 느끼기 힘들겠지만 현실에 그대로 반영된 지금의 상황을 보면 두고두고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의 분단된 현실이 전쟁이 끝난후에도 아직까지 수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있는걸 보면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책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폭압정치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쳤던 대학생 저항단체 ‘백장미‘단의 리더 한스숄의 누나이자 소피숄의 언니인 잉게숄이 겪었던 과거의 아픔을 기록한 글이다.
히틀러의 독재를 막고자 수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서 평화를 수호하고자 목숨을 바치면서 지키고자 했던 자유, 진정한 자유를 위해 몸소 실천했던 전쟁의 참혹함 그래서 더욱더 자유를 향한 숭고한 희생은 고귀하고 위대해 보인다.
그들의 자유수호 의지가 훗날 히틀러를 죽음으로 몰고간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쯤이면 그날이 올까요? 평범하게 살아가는 수백만시민들의 작은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나라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요? 언제쯤이면 이 나라가 모든사람의 인생과 소박한 일상을 망각해버리는 이념들로부터해방될 수 있을까요? 눈에 띄진 않는다 해도 개인과 민족을위해 평화를 수호하려는 노력의 발걸음이 무력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임을 이 나라는 언제쯤 알게 될까요?
- P103



전쟁터와 야전병원에서 겪은 일들이 한스와 친구들을더욱 성숙하고 강인하게 바꿔놓았습니다. 그 체험은 두려운 파멸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 나라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더욱 절실하고 극명하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한스와 친구들은 전쟁터와 야전병원에서 사람의 생명이 장난감 취급을 받고 수없이 학살되고 버려지는것을 똑똑히 보있습니다. 사림의 생명이 이렇게 위협받는현실에 직면해 있다면 치리리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는 저불의不義에 맞서 생명을 걸고 싸우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이제 그들은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러시아로 떠나기 전날 저녁 그들이 뜻을 모았던 그 결심을 이제는 진지하게 실천할 때가 된 것입니다.
- 그들의 마음속에서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 옳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 홀로 외로이 서있다 해도 옳은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마음의 소리였습니다. 그런 시간에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으로 더듬으며 찾아왔던 하느님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에는 하느님이 그들의 특별하고 위대한 형제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죽음보다 더 가까



이에 있는 형제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되돌아가는 길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질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줄 수 있는 것만이 진리였고, 자유로 충만한 삶만이 진정한 삶이었습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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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21-02-17 공감(25)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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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전범 국가라는 낙인이 찍힌 국가를 생각하면 떠오는 나라, 독일과 일본이 있다.

이들 나라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이 역사의 진실이란 이름으로 기록되고 생존자들의 말과 글에서 우리들은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지만 이렇게 드러난 부분들이 있는가 하면 음지에서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나름대로 저항의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독일의 히틀러가 한창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무참히 실행했던 핍박 속에서 독일인으로서 히틀러에게 저항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남동생과 여동생을 잃었다.

그 기록을 생생히 남기고 독일, 히틀러, 나치의 폭압이 얼마나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고 죽음으로 남겨진 자들에게 고통을 안겼는지를 소설 형식으로 이끌어냈다.




한스 숄과 소피 숄은 저자 잉게 숄의 남동생, 여동생으로서 어린 시절 평화롭게 자라던 시절이 어느 순간 히틀러 유켄트에 입단하고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문학적인 생활이나 노래들을 부르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 당황하는 모습들을 비친다.





















더욱이 성장하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편으로는 의학도로, 한편으로는 징집당해 군인으로서 두 가지의 상반된 일들을 하는 지식인이자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고뇌들을 드러낸다.




뮌헨대학교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진 '백장미단'의 주동자로서 전단지 배포활동을 통해 잘못된 점들을 알리는 용기는 게슈타포의 감시를 피해 성공을 시켜야 했기에 그만큼 고도의 상황 파악과 성취를 이뤘을 때의 기분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과정들을 보인다.




어떤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함을 알고는 있다는 사실, 하지만 이를 올바르게 바로잡는 일을 하기 위해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한다.







독일의 히틀러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 모든 독일 국민들이 응원이나 호응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 속에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기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기에 자신의 젊음을 모두 바치면서까지 행한 이들 남매 및 뜻을 같이한 사람들의 여정이 더욱 가슴속에 와 닿는다.







*****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해.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p. 145







하지만 당시 여론들은 이들의 죽음이나 그 밖의 다른 일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한마디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언론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언론의 침묵은 알 권리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이는 대학생들과 지성인들의 노력이 있음으로 해서 조금씩 알려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같은 행보를 보인 국가라도 천지차이의 태도를 보인 독일과 일본에 대해 비교를 다시 해보게 된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오를 뉘우치고 지금도 꾸준히 그러한 행동을 보인 독일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알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시선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것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소설 형식이지만 읽는 느낌은 에세이 느낌이 나는 책, 과거를 모르는 세대들에겐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 출판사 도서 제공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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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노마드 2021-02-06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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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위대한 독일인의 이야기입니다.

책 표지 사진은 소피 숄(1921~1943)의 모습입니다. 저자 잉게 숄은 소피 숄의 언니이자 한스 숄의 누나입니다.

이 책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폭압 정치에 맞서 저항 운동을 펼쳤던 대학생 저항 단체 '백장미'단의 리더 한스 숄과 소피 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그리고 독일의 젊은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한국에 유관순 열사가 있다면 독일에는 한스 숄과 소피 숄이 있다고 말합니다.

1943년 독일 언론에서는 이 젊은이들을 모반자로 규정하면서 민족공동체에서 제거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거리 곳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붉은색 플래카드가 걸렸다고 합니다.




국가 모반죄로 사형을 선고함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24세

한스 숄, 25세

소피 숄, 22세

형은 이미 집행되었음

(8-9p)




언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백 명이 더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들을 조롱하고 모욕했던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이들이 한 일은 나치 정권이 앗아간 자유를 되찾고 국가를 바로 세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도 동료 수감자들, 성직자들, 간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게슈타포 요원들까지 그들의 담대한 정신과 고결한 행동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치 당과 정부의 고위 간부들은 상당한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답니다. 압제의 올무에 꽁꽁 묶여 무기력하게 침묵하던 자유가 감옥에서 소리 없는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스의 감방 하얀 벽면에는 괴테의 말이 적혀 있었답니다.

"모든 폭력에 굴하지 않고 의연히 기개를 세우리라." (137p)

한스는 자신을 만나러 온 아버지에게 철창 너머로 손을 내밀며, "저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 이 모든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까요." (149p)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너희는 역사의 일부분이 될 거야. 정의는 아직 살아 있단다."라고 말했답니다. 소피도 한스가 그랬던 것처럼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우리는 스스로 받아들인 거예요. 우리의 행동은 곳곳에 물결처럼 번져갈 거예요."라고 말했답니다. 아들과 딸의 죽음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했던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지, 차마 표현하기도 힘든 고통이었을 겁니다.

법정에서 선고를 받을 때 부모님이 참석했는데,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아직 정의는 죽지 않았다!" (145p)

형장에 도착한 한스는 단두대에 머리를 올려놓기 전에 온 감옥이 울리도록 외쳤다고 합니다. "자유여, 영원하라!" (153p)

크리스토프와 소피와 한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던 간수들은 그들의 태도를 보고 감동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죽음은 조국을 배반한 자들의 마땅한 형벌이 아니라 자유를 위한 저항이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므로. 결국 이들의 죽음은 소피의 말처럼 독일 곳곳으로 퍼져갔고, 여러 저항 조직들이 연합해 커다란 저항 단체를 출범시켰습니다. 훗날 '백장미 함부르크 지부'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저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정신은 수많은 독일인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현재 독일이 바로 설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사실 독일의 나치가 저지른 만행은 알고 있었지만 독일 젊은이들이 목숨 바쳐 저항 운동을 펼쳤다는 것은 잘 몰랐습니다. 어떤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독일의 미래와 자유를 지켜낸 영웅들의 죽음은 위대하고 숭고합니다.

이는 우리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꼭 기억해야 하는 저항 정신이기에 더욱 값진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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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즐 2021-02-1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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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자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너무 뻔하다. 히틀러 치하에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 넣어 다들 피도 눈물도 없이 전투를 벌인 걸로 말이다. 독일 사람들은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고 지금도 이를 반성하고 있다. 히틀러와 관련된 것은 금지어와 같다. 독일이라는 국가에서 벌인 짓은 끔찍하다. 이러다보니 전쟁을 벌인 당사자로 전범국의 이미지와 더불어 개인은 몰라도 국민은 전부 기계처럼 비인간적으로 전투했다는 생각이 강하다.

가끔 유럽 내부에서 독일군과 다른 국가와 전투 등에서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쁜 놈이라는 이미지다.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는데 독일 국민들이 다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절대로 그럴 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독일 내부에서 잘못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알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도 국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앞장선 사람도 있었고, 이를 반대하고 저항한 사람도 있었다. 독일을 나쁜 놈으로 몰아가기 위해 독일인이 전부 그런 식으로 묘사된 작품을 주로 봐서 그렇다. 책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독일이 벌인 짓에 대해 반대하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된다. 마음 속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를 겉으로 드러내면 그 즉시 형사들이 와서 가택수사를 하면서 압박을 한다.

뿐만 아니라 재판에 넘긴다. 재편은 어디까지나 요식행위로 대부분 형벌을 받게 된다. 심지어 신부님이 설교시간에 독일이 한 행태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설교를 하자 다음 날 곧장 잡혀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자신의 속마음을 제대로 발설할 수 있겠는가. 정말로 친하고 상대방을 믿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누구라도 독일과 히틀러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면 그 즉시 고발을 당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니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기도 힘들다.







자유가 억압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함부로 밖을 돌아다니기도 힘들다. 이런 현상을 한국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다. 이제는 최소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군가 억압하진 않는다. 그렇게 볼 때 한국 사회는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가 보장되었다. 책은 소설은 아니고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배경은 나치 독일의 거의 끝 무렵니다. 러시아와 전투를 하던 시대니 거의 막바지로 보인다. 이런 현상에 대해 백장미단이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만든 단체다.

뮌헨 대학교 학생들이 주축이었다. 책의 저자인 잉게 숄은 백장미 단의 리더인 한스 숄 누나이자 함께 활동한 쇼피 숄의 언니다. 이들을 비롯해서 아버지도 당시의 시대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아빠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잠시 정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해서 다음 말 곧장 형사들이 들이닥쳐 집을 수색하고 3개월 정도의 형벌을 받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잘못되었다는 걸 알리는 역할을 백장미단이 했다. 벽에 정부의 잘못된 점을 쓰기도 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적은 전단지를 만들어 거리에 뿌리기도 했다. 보통 이렇게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이면 무척이나 전투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한스 숄은 오히려 철학을 탐구하고 기독교에 집중했던 인물이었다. 나치 독일에서 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거추장한 존재라 눈에 가시였다. 또 한 명인 크리스토프 프롭스토는 두 아이의 아빠였지만 함께 독일의 잘못된 점에 대해 앞장서서 전단지를 만들고 뿌리는 역할을 했다.

책을 읽다보면 언제나처럼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것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걸 알게된다. 그저 별 생각없이 독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거의 최면처럼 나치독일을 추종하고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정부의 잘못을 끊임없이 밝히려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지금보다 더 인간을 무가치하게 여겼던 시대였으니 당시에는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목숨을 내 놓아야했다. 무척이나 두렵고 떨리는 상황에서도 자유를 위해 투쟁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될 수 있는 한 들키지 않고 끝까지 독일의 잘못을 밝혀 사람들에게 알리려했다.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알리려 했다.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발각되고 만다. 그들은 현행범으로 잡힌다. 끝까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고결하게 대한다. 현장에 있던 교도소 사람들도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당당하게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한 사람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은 잘 몰랐어도 독일에서는 전후에 재평가를 받으며 이렇게 책으로까지 밝혀진 듯하다.

증정 받아 읽었습니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이런 책에 감히.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억압을 자유로

함께 읽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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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팬더 2021-03-1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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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 숄(Inge Scholl)’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Die Weiße Rose)’은 나치에 저항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소설이다.

실화소설이란 말 그대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말한다. 보통의 소설 중에서도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모티브를 따온 것이야 많기는 하다만, 그런 것들과 달리 실화소설은 서술 방식이나 서술자의 첨언이 들어갈지언정 사실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책은 유명한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기에 더 그렇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담담하게 사실 위주로 기록했으며, 상상으로 덧붙인 부분은 가능한 최소화한 느낌이다. 그래서 소설을 보기보다는 일종의 역사 기록을 훑어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독일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것이지만 보다보면 의외로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 많다. 비록 그 상세는 조금 다를지언정 책 속에서 얘기하는 하나 하나의 사건이나 흐름 등은 한국 역사에서도 익숙하게 보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와 국가에 차이가 있는데도 놀랍도록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역사를 선례로서 답습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독재정권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 등은 그래서 쉽게 공감이 간다.

백장미로서 활동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간략한 활동 내용, 그리고 최후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만큼 이 책에서 소설로서의 재미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사상적인 부분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데, 지금은 비록 전시이거나 무력을 이용한 전제정치가 횡행하는 시대는 아니나, 자유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것이라던가 국가나 국민으로서의 정치 같은 것들은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 많아 볼만하다.

나름 유명한 책으로, 이 번역판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2차례에 걸쳐 번역서가 출간됐다고 한다. 하지만 잘못 번역된 부분이나 누락된 곳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들을 최대한 바로잡았다고 하니 이미 읽어본 사람도 다시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번역은 전체적으로 잘 되어있어 읽는데 걸림이 없다. 다만, 소설로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경어체를 사용한 점이 좀 특이하다. 처음엔 회고록같은 느낌을 살리려 한 것인가 싶기도 했으나, 딱히 그렇게 쓰인 것도 아니어서 굳이 필요했나 싶다. 제목을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다던) 기존 번역본의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좀 의문이다. 가져온 제목이 딱히 내용과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라서 더 그렇다. 이 역시 원제를 살려 그냥 ‘백장미’라 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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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 2021-02-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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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이 만든 사상 최악의 전쟁‘

하필 이 책을 읽을 때, 집으로 엄청난 양의 택배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전공하는 딸아이가 졸업 작품을 찍는데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이번 작업에서 PD로 참여한 딸아이는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원활한 진행을 맡아야 한다. 계획된 모든 것이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하고, 참여하는 스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책임이 있다. 적당한 시간에 세끼의 식사를 배달시켜야 하고, 간식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해 그들이 지치지 않게 해야 하며, 심지어 흡연자를 위한 담배 피우는 시간과 스텝들이 커피를 마시는 시간까지 일과표에 넣어야... + 더보기
페넬로페 2023-11-09 공감 (48)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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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네권,을 고를수 있다는것에 놀라고 있다. 잠시 ...

인생네권,을 고를수 있다는것에 놀라고 있다.잠시 고민해보고.사실 바람의 검심이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바람의 열두 방향 등등 바람으로 시작하는 책들도 있는데.결국 이벤트때문에 훅하고 올린 네 권은.인생 네권인지는 모르겠으나 읽고 또 읽고 추천하고. . .
chika 2024-04-23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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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공동생활˝을 고르는 팁

- "성도의 공동생활"은 CGNTV "복음책방, 신앙을 읽다"에서 다섯 번째로 다루어진 책입니다. 앞의 페이퍼에선 방송에서 처음으로 다루어진 "천로역정"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이번 페이퍼에서 세 권을 건너뛰고 다섯 번째로 다루어진 책에 대해 얘기하는 까닭은 두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 다루어진 책들은 저마다 하나의 출판사에서 펴낸 책만 팔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어 보시려면 뭘 골라야 할지 고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성도의 공동생활"은 독일의 '행동하는 양심'이라든지 '천재... + 더보기
Knoxian 2021-08-16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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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Die Weisse Rose) 독후감

2015. 6. 6. 6:15



https://blog.naver.com/ace/220381489071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작가잉게 숄
출판평단문화사발매2012.04.30

[독서후기]

ㅇ '15.6.5(P199) Die Weisse Rose

본 서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무렵, 유겐트 단원으로 소년 시절을 보낸 '한스'가 점차 독재 정권의 불의를 깨닫고 저항을 실천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저자 잉게 숄의 실명소설 '백장미'는 옳지 않은 정치 체제에 맞서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저항'이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 생활윤리임을 일깨워 준다.



역자는 가장 숭고한 '목적' 그 자체인 '인간'과 '인간'이 지닌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히틀러의 나차 체제에 '저항'해야만 한다는 '정언명령'에 의한 자발적 '저항'이여! 털끝만큼의 물리적 폭력도 행하지 않고 오직 '백장미' 전단의 '저항' 메세지만을 정의 실현의 매체로 삼았던 그들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성적 투쟁과 정열적 '저항'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한다.



'백장미'단의 저항 운동은 인간을 위한 '정의'와 인간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자유'와 '진리'를 옹호할 명분도 없다는 것을 영원한 정신적 유산으로 우리에게 물려주고 있다.



'이들이 원한 것은 여러분과 저 같은 사람들이 모두 인간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한스 숄이 하얀벽에 쓴 괴테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모든 폭력에 굴하지 않고 의연히 기개를 세우리라. 또한 형장에 도착하여 외친 말 '자유여, 영원하라!'는 불의에 맞서는 숭고한 인간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뮌헨의 슈타델하임 형무소. 한스 숄, 조피 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를 포함하여 '반 나치 저항 운동'을 편친 사람들이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한번 현장에 가보고 싶다.



우리의 세상이 존재하고 발전하는 것은 누군가의 치열하고 올곧은 신념때문이 아니겠는가? 독서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필독서다.



참고로 황지우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도 새겨야 할 시이다.



“어머니 오셨어요?”

“오냐, 잘 지냈니?”

“네.”








(사이……말없음)








“얘야, 내일이면, 네가 그 자리에 없겠구나.”









[밑줄치기]

ㅇ 본래 인간은 이 세상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존재인 까닭에 자신의 미래가 암울한 장벽처럼 막혀 있다고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약속에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란다. 그런 약속을 떠벌이는 사람이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말이다

ㅇ 사람이 옹호해야만 하는 것과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깨어 있는 정신에 의해 움직이는 독립적인 사람들,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ㅇ 독일 국민의 정신은 가장 깊은 근본에서부터 타락하고 무너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의 굽이마다 '합법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덮어놓고 쉽사리 믿어버리면서 인간만이 갖고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드높여 주는 그 숭고한 가치를, 즉 인간의 자유와 자유의지를 희생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사모음1]



돈만 쥐어주면 히틀러도 좋아? 난 자유롭게 죽는다!

[철학자의 서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윤지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2010.12.17 19:38:00

대학 시절 소위 '의식화 교육'의 일환으로 읽었던 잉에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유미영 옮김, 푸른나무 펴냄)을 다시 펼쳤다. 존경심과 두려움이 교차했던 질문, '나도 그들처럼 살 수 있을 있을까.' 죽음 앞에서 그렇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히틀러는 전두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고 목숨을 걸고라도 투쟁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잉에 숄은 히틀러에 저항하다가 1943년 2월 22일 처형당한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의 누나이자 언니이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 남아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한스와 조피의 일생을 기록했다. 책의 원래 제목은 '백장미(Die Weiße Rose)'로서 뮌헨 학생의 저항 조직 이름이다.

독일에 대한 좋은 인상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잉에 숄 지음, 유미영 옮김, 푸른나무 펴냄). ⓒ푸른나무

어렸을 때 나는 독일(서독) 사람을 부지런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이 그들을 부자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수년 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본 독일도 그러했다. 우리나라에 와서 부당하게 대우받는 이주 노동자와 1960~70년대에 간호사, 광부로 독일에 갔던 우리나라 사람을 비교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독일은 자신들이 필요해서 부른 간호사와 광부들을 독일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맞다, 독일에 간호사로 갔던 친척 한 분도 당시에 '상당한' 월급을 받았고 송금해온 돈은 가정 경제 전체를 책임지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히틀러를 존경ㄹ한다고 말했던 남자 아이들이 있었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 그리고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온 국민이 단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 그리고 이에 더하여 새 시대를 창조하자고 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 낳은 부작용 중 하나이리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히틀러 시대의 독일 사람들은 한국의 독재 정권이 요구했던 국민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지 않은가. 어쨌든 히틀러를 존경한다는 아이를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는 식의 놀란 눈으로 보지는 않았을 정도로 독일에 대한 나의 일반적인 감정은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었다.

히틀러와 독일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으면서 독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한 데에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용어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은 라인 강의 기적의 재현이라는 것. 초등학교 시절에는 독일 사람들이 전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전해주는 일화도 있었다. 세 명이 모여야 성냥 하나를 켰을 정도로 근검절약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국 근대화, 한강의 기적을 위해 독일 사람들을 닮아야 했다.

독일의 경제적 회생 뒤에는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한-미국을 비롯한-서방 세계의 지원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적 회생 뒤에는 한국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가끔씩 알려주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일본의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한 미국의 강력한 지원에 관해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국의 경제 성장 뒤에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전쟁 특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더욱이 그 전쟁을 명분 없는 더러운 전쟁이라고 정확하게 규정한 사람은 없었다.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 잘 먹고 잘살려면 우리도 독일 사람처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만 강조했지 독일이 나치 세력을 청산했다는 것을 강조한 선생님이나 어른도 거의 없었다. 그것을 강조하면 친일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득권층의 계산이 작용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과거 청산보다는 북한, 중국,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권과 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다 보니, 우리 역사에서 친일 세력 청산 문제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국민대단결'은 민족성이니 국민성이니 하는 용어를 유행시키면서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서는 외적 요인에 관해서는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개인은 국민 속에 묻혀버렸다. 그러다 보니 독일과 우리 간의 너무나 다른 역사, 즉 과거를 청산한 역사와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그 바람에 히틀러도 부지런한 독일 사람 중 하나가 돼버렸다. 독일 사람들은 대동단결하여 '한다 하면 하는' 대단한 사람들이란 것만 부각되었다.

깨어있는 자는 늘 있다

여느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한스와 조피 역시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하였고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고 "히틀러를 믿지 마라!"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들을 속이고 있어"라고 말했다. 처음에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훗날 나치에 대항하는 투사로 변모하는 데에는 그들 스스로의 자각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전쟁 물자를 만들고 군대를 늘리는 것으로 경제를 회복시켰던 나치의 실체에 관해 말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힘들어도 곧고 바르게 살 것, 평생 자유롭고 정직하게 살 것을 강조했다. 그들에게는 직장에서 히틀러를 '신이 내린 재앙'이라 욕하는 바람에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고 나중에는 감옥까지 가야 했던 아버지가 있었다.

또 그들은 1942년 봄, 뮌스터 주교들과 갈렌 주교가 설교문을 통해서 나치의 만행을 고발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보낸 사람을 쓰지 않은 편지 형식의 설교문은 우편함에서 발견되었다.

뮌헨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후버 교수도 훌륭한 스승이었다. 한스 일행은 후버 교수에게 '백장미단'의 활동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후버 교수는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캄캄한 암흑 속에 놓여있는 독일을 향해 진실을 분명하고도 똑똑하게 외치는 것!"을 가르쳤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정말로 저항 운동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래도 우리는 행동해야만 해!"라고 대답했다. 후버 교수는 한스와 조피가 처형된 지 약 5개월 후에 처형되었다.

아직 자아가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어린 시절의 세계관은 어른들에 의해서 결정되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어른은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있다. 부모든, 선생님이든, 기성세대든, 정치인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 버릇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존경받지 못하는 것을 한탄한다. 하지만 자신이 어른답게 행동하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제는 정보화 시대다. 젊은 세대는 어른들의 실수, 잘못, 무능, 부도덕함을 거의 모두 알고 있다.

농경 시대에는 어른들이 정보의 보고였다. 문자 기록을 통해 지식을 전수하기 어려운 때에는 더더욱 어른들이 존경받는다. 언제 어떻게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야 하는지를 매년 얘기해 주어야 한다. 한 번 얘기해준다고 해서 그걸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라디오가 처음 등장했던 시절, 할머니보다 낮은 적중률을 보이는 일기예보 때문에 라디오를 고치러 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어른은 정보의 보고요 존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농경 시대를 넘어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사회로 가고 있는 지금, 어른들은 존경받기가 어려워졌다.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이미 산업사회에서 소외되었다. 늙는다는 것은 현자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빼앗기는 것이다. 보부아르(1908~1986년)는 "늙는다는 것은 '문명의 좌절'"이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절규했다.

돈, 재산, 물질을 통해 존경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복종을 낳을 수는 있지만 존경을 낳지는 않는다. 어른들이 존경을 받으려면 현자, 지혜로운 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한스와 조피의 아버지처럼, 후버 교수처럼, 정의 편에 선 성직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것은 확실히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며 어쩌면 기득권까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출세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도구화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경제 살리기 신화

어른들은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것과 그 시대에는 경제가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것을 잘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빵과 직업을 주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면서도 독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이렇듯 먹고사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한 측면이 있다. 케인스 경제학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뉴딜 정책이나 루스벨트만을 떠올리는데, 히틀러는 케인스 경제학을 몰랐지만 사실상 케인스 정책의 효과를 본 셈이다.

히틀러를 독일 국민들이 영웅시한 이유는 역시 경제 회생 때문이다. 잘 먹고 잘살게 해주겠다는 논리가 먹혀들어갔다. 그는 집권 후에는 폭력을 휘둘렀지만 폭력을 통해 집권하지는 않았다. 아감벤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 우리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을 도구화하고 나아가 다른 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하게 만든다.

'히틀러 유겐트' 활동은 전체 속에 포함된 개인을 만족시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활동이었다. "우리는 조국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외침은 단원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전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안락하면서도 위험한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마구 잡아간다는 소문을 슬쩍 외면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 어떠한 파렴치한 전과라도 무마되는 시대, 거짓말이 나중에 가서야 탄로 나는 시대, 우리에게는 지혜로운 자가 많이 필요했다. 깨어있었던 자들이 한스와 조피 같은 '백장미단'을 만들지 않는가. 사형을 앞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너희들은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거란다. 거기에는 분명 정의가 살아있을 거야."

뮌헨 대학에 뿌려진 전단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시작하기를 기다린다면 그들의 만행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노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모든 게 지나가리. 모든 게 지나가리. 아돌프 히틀러도. 그리고 나치스도.

사형장으로 가기 전 조피는 감옥 벽에 "자유"를 새겨 넣었고, 한스는 "모든 폭력을 이겨내고 살아남아라!"라고 썼다.



윤지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기사모음2]


[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28> 조피 숄 -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여자의 죽음
기사입력 2009-08-24 02:42




조피 숄이 백장미 단원이었던 1942년 찍은 사진. 미국 워싱턴DC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불의는 가라" 히틀러 맞서 삐라 뿌려댄 소녀 영웅

오빠가 만든 반 나치단체 '백장미'서 활동하다 체포

"민중이 깨우쳤다면 후회 없어, 화창한 날 나는 간다"

언니가 쓴 책 '아무도…' 독재 겪은 한국서도 반향

30년쯤 전 대학 시절에 읽은 책 가운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者)의 죽음>(잉게 숄 지음ㆍ박종서 옮김)이라는 게 있었다. 원제가 '흰 장미'(Die Weisse Rose)인 이 책은 당시 한국 젊은이들에게 널리 읽혔다.

시대 탓이 컸을 것이다. 저자 잉게 숄이 제 여동생 조피 숄과 남동생 한스 숄의 반(反)나치 저항운동을 회고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박정희 유신체제의 폭압적 분위기와 맥놀이를 만들어내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새겼다.

'종신대통령' 박정희는 '총통' 히틀러와 포개졌고, 그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겁 많은 영혼들에게 부끄러움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가 책 전반부에서 회고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가족사와 '백장미' 그룹의 활동이다. '백장미'는 조피와 한스, 그리고 한스의 친구들이 뮌헨대학 교정과 시내에 뿌려댄 반파쇼 팜플렛의 '저자'다. 조피와 그 동료들의 공동 필명이었던 셈이다. 책의 후반부는 이들의 체포와 재판과 처형, 그리고 함부르크로 퍼져나간 '백장미' 조직, 백장미 팸플릿들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어찌 보면 조피와 그 동료들이 한 일이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무장해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반나치 운동 단체들과의 연대 속에서 나치 독일의 전투력을 손상시킨 것도 아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히틀러 체제에 반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삐라'를 뿌린 것뿐이었다. 조피는 이것을 '소극적 저항'이라고 인정했다. 그들의 저항은 철저히 비폭력적이었다. 그러나 나치 시절엔 그 '소극적 저항'마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어린 한스가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듯, 어린 조피도 독일 소녀단의 단원이었다. 뮌헨의과대 학생이었던 한스가 잠시 러시아 전선에 참전했듯, 뮌헨대학 철학도(哲學徒) 조피도 입학 전후로 여러 차례 '노력동원'을 겪어야 했다.

학생이면서 군인인, 또는 학생이면서 노동자인 생활을 하면서, 이들 오누이는 조국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 전선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나치의 만행을 목격한 한스는 더 이상 제 '야만스러운' 조국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과 백장미라는 저항그룹을 만들었다. 한스는 세 살 터울 누이동생 조피에게 이 일을 숨기고 그녀를 연루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함께 사는 오빠 일을 조피가 모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조피가 백장미의 일원이 된 다음, 그룹의 '모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녀는 열성적이었고, 지혜로웠다. 친위대의 눈길을 피하기에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나았다.

뮌헨의 백장미는 여섯 번째 '삐라'를 뿌린 뒤 모두 체포되었다. 그 삐라들은 침묵하며 나찌에 동조하던 독일인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고, 나라 바깥까지 퍼져 나갔다.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 조국의 패전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이 젊은이들의 고뇌가 그 삐라 속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조피는 제 '소극적 저항'의 질료를 믿음에서 찾았다. 그녀 일기의 한 부분은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시대를 종말의 시대로 믿고 있다. 이 모든 끔찍한 징조들이 그렇게 믿게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그리 중요한 의미가 없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한 번이라도 이 시대에 살았다면, 영원히 이 시대와 함께 묶여 생각될 사람으로서, 다음에는 어떤 시대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신에게 해명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내일도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폭탄 한 개가 우리 모두를 전멸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죽는다면 내 죄는 적잖이 클 것이다. 마치 죽으면서 이 땅덩어리도 함께 파괴한 것만큼이나 말이다. 나는 오늘날 경건한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자취를 좇아가는 인간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이 고작 칼부림과 같은 수치스런 행동이기 때문이다. 마치 신은 힘을 갖고 있지 못한 듯이… 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신의 손에 달려 있는지 알고 있다. 사람들은 단지 존재만을 위한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가 인간의 삶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 중에 조피가 한 말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다. "올바른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올바름 넘치는 세상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날씨는 화창한데 나는 간다.

그러나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가. 얼마나 젊고 희망에 찬 생명이… 만약 우리가 한 행동이 많은 사람을 깨우쳤다면, 지금 죽는다고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마지막 장을 이루는 '백장미의 편지'는 20대 청년들이 썼다고 보기엔 상당히 원숙하다. 고대 현인들의 문장을 인용해 그것을 당대 나치시대의 문맥에 끼워 넣으며, 역사와 철학의 이런저런 개념들로 직조해낸 그들의 선언문은 1980년대 한국 대학가에 난무했던 반-파쇼 선언문들과 비교해도 한결 격조 있다.

그것은 이 삐라들에 선동성이 부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히틀러 팸플릿의 선동성을 백장미는 이성과 합리성으로 중화시키며 막아내려 했던 걸까?

반면에 당시의 소위 '신문'이라는 것들은 오늘날의 파시스트들이 봐도 창피할 정도의 문장들을 담고 있었다. '저주는 우리의 기도요, 승리가 우리의 보수다',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해도 우리는 더 전진하리라', 이런 헤드라인 밑에는 굵고 시뻘건 밑줄이 그어져 마치 노여움에 부푼 핏줄 같이 보였다고 잉게 숄은 회상한다.

2003년 독일 텔레비전 ZDF는 전국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독일인 10명을 뽑게 했다. 조피 숄은 오빠 한스와 함께 4위에 올랐는데, 그것은 바흐, 괴테, 구텐베르크, 비스마르크, 빌리 브란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보다 앞자리였다. 40대 이하 젊은 시청자들의 의견만 취합했다면 숄 오누이가 1위에 올랐을 것이다.

숄 오누이의 명성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의 많은 학교와 거리와 공원에 숄 오누이의 이름이 붙었다. 그것은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 남매는 이데올로기가 갈라놓은 그들의 두 조국이 함께 경배할 수 있는 투사였다. 그들의 처형 10주기였던 1953년 2월22일에는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가 뮌헨과 베를린의 대학생들에게 추도사를 보냈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우리는 그 당시 이 독일 영혼의 절규가 역사를 통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메아리칠 것이며, 죽음마저도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 따라서 독일의 비극 속에 뛰어든 그들의 행동은 권력에 대한 무모한 반항이 아니라, 암흑의 시대를 밝히는 등불로서 파악되어야만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ZDF가 숄 오누이를 독일 역사상 네 번째로 중요한 독일인으로 뽑기 몇 해 전, 여성 잡지 브리기테 매거진은 조피 숄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뽑았다. 이 잡지의 주요 독자들이 젊고 진취적인 '아방가르드' 여성들이었는데도, 조피 숄은 전임 미국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가수 마돈나를 가볍게 제쳤다.

물론 저널리즘 편집자들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다시 말해 '인기투표')에 큰 뜻을 둘 것은 없겠으나, ZDF와 브리기테 매거진이 조피 숄에게 보낸 경의가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싸운 대상은 역사상 가장 괴물 같은 체제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들이 숄 남매와 백장미 그룹에 대해 씌어졌고, 2005년에는 그녀의 삶을 조명한 영화도 나왔다.

'조피 숄_그 마지막 나날들'(Sophie Scholl_Die letzten Tage)이 그것이다. 율리아 옌츠가 타이틀 롤을 맡은 이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로 노미네이트되었고, 율리아 옌츠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 여우상을 받았다.

백장미 그룹에서 숄 남매의 이름이 크게 부각된 것은 그들의 언니이자 누이인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덕이 크다. 그 책은 아무래도 동기를 향한 잉게 숄의 의초에 휘둘렸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뮌헨 백장미 사건으로 처형당한 또 다른 피고, 라기보다는, 자유의 투사들의 이름도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쿠르트 후버(그는 백장미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교수였다. 조피는 그에게 철학과 신학 강의를 들었다), 빌리 그라프, 흐리스토프 프롭스트, 알렉산더 슈모렐….

상투적 말이지만, 자유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모음3]



‘백장미’를 기억하던 그 많은 일본인은 어디로 갔나



등록 :2013-09-22 19:23

내 서재 속 고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 숄 지음, 송용구 옮김
평단문화사 펴냄

백장미는 지지 않는다-독일의 양심 숄 오누이
잉게 숄 지음, 우치가키 게이이치 옮김
미라이사 펴냄









며칠 전부터 독일 뮌헨에 머물고 있다. 양혜규씨의 초청으로 9월13일 이곳 하우스 데어 쿤스트(예술의 집)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서다. 하우스 데어 쿤스트는 1933년에 정권을 잡은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로 건설됐다. 대표적인 나치스 양식 건축물이다. 기공식은 히틀러가 참석한 가운데 1933년 10월15일 열렸다. 여기서 1937년 제1회 ‘대독일 예술전’이 열렸다. 즉 이 미술관은 나치스 독일의 예술적 국위 선양 상징이었다. 그 미술관에서 내가 ‘디아스포라의 삶’이라는 주제로 프리모 레비, 에드워드 사이드, 그리고 재일조선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청중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뮌헨에 도착한 다음날 나는 먼저 뮌헨대학에 갔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찾은 이 도시에 처음 온 것은 1984년이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 도시에 있는 알테 피나코테크(고전미술관)에서 뒤러와 크라나흐의 명작을 보는 것, 레엔바흐 미술관에서 칸딘스키를 보는 게 주요 방문 목적이었다. 이 도시 근교의 다하우에는 나치스가 처음 건설한 강제수용소가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으나,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때의 나는 그런 장소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한국은 광주 5·18의 기억이 생생한 가운데 군사정권 지배가 이어지고 있었고, 내 형 둘은 석방의 가망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 숨막히는 현실에서 한순간이나마 바깥세계의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멀리서 찾아왔는데 기껏 강제수용소나 보러 가다니….

곱게 정돈된 뮌헨 시가를 걷다가 대학 같은 건물 앞을 지나게 됐다. 도로 표지를 보니 ‘게슈비스터 숄 플라츠’(Geschwister-Scholl-Platz)라고 씌어 있었다. ‘숄 오누이 광장’이라는 의미다. 그것이 백장미 저항운동의 중심 멤버였던 한스와 조피를 가리킨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그들에 관한 기억을 오래 살려두기 위해 그들이 다닌 뮌헨대학 앞 광장에 그런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잊지 마라, 눈을 돌리지 마라” 지나가는 길손인 내게도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날 밤 뮌헨 중앙역 근처 허름한 호텔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다음날 아침 뭔가에 억지로 이끌리듯 다하우로 향했다. 그 뒤 10여년간 나는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여러 강제수용소 유적지들을 찾아다녔는데, 그게 그 시작이었다.







30년 전의 그 기억을 되살리듯 나는 또 이번 뮌헨 체류를 숄 오누이 광장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백장미 사건은 나치스 치하에서 일어났다. 백장미에 참가한 학생들은 프랑스 침공과 동부전선에 종군한 독일 육군 귀환병들이었다. 그들은 폴란드의 유대인 거주지구 상황이나 동부전선의 참상을 목격하고 반전의 결의를 다졌으며, 독일군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를 통해 패전을 예감했다. 그들은 1942년부터 1943년까지 6종의 삐라를 만들어 몰래 배포했다. 첫 삐라는 이랬다.







“무엇보다 문화민족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저항도 하지 않고, 무책임하고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힌 전제(독재)의 무리에게 ‘통치’를 맡긴 일이다. 지금 실상은, 성실한 독일인 모두가 자신들의 정부를 수치스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 삐라는 1943년 2월14일과 16일 밤 뮌헨 시내에 뿌려졌는데, 그러고도 남은 것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2월18일 오전 숄 오누이는 대학에 가서 아직 잠겨 있던 강의실 문 앞과 복도에 삐라들을 놓고 마지막 남은 것들을 갖고 3층으로 올라갔다. 조피가 통층으로 트인 홀에 그것을 뿌렸다. 그때 조피는 나치스 당원인 대학 직원에게 발각돼 붙잡혔다. 그 뒤 백장미 멤버들은 게슈타포에게 체포당했고 숄 오누이 외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빌리 그라프, 알렉산더 슈모렐 등 3명의 학생과 쿠르트 후버 교수 등 모두 5명이 처형당했다.







마지막 삐라가 뿌려진 넓은 홀에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생물학 관련 국제학회가 열리고 있었고 학생과 젊은 연구자들이 활기차게 오가고 있었다. 그곳 어딘가에 조피 숄을 기념하는 조각이 있을 텐데 그게 어딘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지나가는 이에게 물어보니 “모른다”며 미안한 듯 영어로 대답했다. “난 영국에서 왔으니까요”라고. 그러고 나서 몇 분 뒤 그 사람 좋아 보이는 인물이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시 내게 와서는 “저기요, 저기” 하고 가르쳐 주었다. 그가 가리킨 한쪽 벽에 조피 숄 흉상이 설치돼 있고 그 벽을 돌아가자 전시실도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잊지 마라, 눈을 돌리지 마라” 하고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백장미는 지지 않는다-독일의 양심 숄 오누이>(한국어판 제목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는 전쟁 뒤까지 살아남은 한스와 조피 숄 오누이의 누나이자 언니인 잉게가 쓴 회상기다. 일본의 독일문학자 우치가키 게이이치가 1953년에 우연히 독일에서 원서를 입수해 귀국한 뒤 번역한 책이다. 1955년에 초판, 1964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백장미 저항운동에 대해 일본에서는 오늘날까지 많은 문헌들이 간행됐지만 이 책이 처음이었다. 전후 일본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젊은이들에겐 필독서였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은 개정판 9쇄로, 1971년 판이다. 그것은 내가 대학 3학년이 된 해, 형들이 한국에서 체포·투옥당한 해다. 당시 나는 조국의 감옥에 갇혀 있던 형들과 다른 수많은 정치범들을 반나치 저항운동에 참여했다가 희생당한 독일 학생들과 겹쳐 함께 상상했다.

숄 오누이와 프롭스트는 롤란트 프라이슬러가 재판장이었던 인민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것을 굳이 ‘재판’이라고 부른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조피는 취조당한 뒤에도 잠을 잘 잤고, 인민재판소에서는 배심원들을 향해 “우리 머리는 오늘 떨어지겠지만 당신들 머리도 앞으로 계속 떨어질 거예요” 하고 말했다. 오빠인 한스는 방청하러 온 남동생 어깨에 손을 얹고 “정신 차려. (나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어”라고 했다. 그들의 아버지는 반히틀러적인 언동을 했다는 직장 여직원들의 밀고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그 아버지는 방청석에서 외쳤다. “아직도 다른 정의가 있어!”







숄 오누이와 프롭스트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는 삐라에서 전시에 무기생산을 사보타주하라고 촉구했고, 우리 민족의 국가사회주의적 생활을 타도하라며 패배주의를 선전했다. 우리 총통을 험하게 욕하고, 국가의 적을 이롭게 하는 짓을 했고, 우리 국방력을 약화시켰다. 이에 따라 사형을 선고한다.”









나치에 맞선 백장미의 한스와 조피
마지막 삐라가 뿌려진 홀의 벽에
조피 숄 흉상이 설치돼 있었다
“잊지 마라, 눈을 돌리지 마라”
아직도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아소가 ‘나치스의 수법’을 배워
헌법을 개정하자고 말하자
청중들은 낄낄대며 반겼다
이 야비함이 파시즘의 온상이다
백장미들을 ‘한없는 고독’으로
몰아간 공기도 이랬을 것이다









세 사람은 바로 그날 참수당했다. 처형을 앞두고 조피는 같은 방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는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의 행동이 몇천명의 사람들 마음을 흔들고 깨우칠 거야. 틀림없이 학생들 반란이 일어날거야.”







같은 방 여성은 이렇게 회상했다. “오, 조피. 너는 아직 몰라.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짐승인지를.” 사실 학생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세 사람 처형 사흘 뒤 대학 강당에 모인 학생중대는 ‘백장미’를 매도하는 학생 지도자 연설에 환호하며 숄 오누이를 게슈타포에게 넘긴 직원을 찬양했다.







일본 자민당은 지금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 초안의 뼈대는 자위대를 국군으로 바꾸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하며, 외국인의 인권을 명백히 부정하는 내용이다. 현행 헌법의 “고문 및 잔혹한 형벌은, 이를 절대로 금한다”는 조문에서 “절대로”를 삭제한 것이 이 개헌안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부총리 겸 재무상인 아소 다로는 얼마 전 강연에서 ‘나치스의 수법’을 배워 헌법을 개정하자고 말했다. 청중석의 정치가나 경제인들은 낄낄대고 웃으며 그 말을 반겼다. 이 야비함과 경박함이야말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파시즘의 온상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아소 발언을 문제 삼는 소리는 미약하다. 일찍이 이 책을 애독한 그 많은 일본인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틀림없이 그때도 이랬을 거야” 하고 나는 생각한다. 백장미 학생들이 살았던 시대, 그들을 “한없는 고독”으로 몰아간 공기도 틀림없이 이랬을 것이다.







“언제가 되면, 도대체 언제 국가는 그 최고의 임무가 그저 몇백만의 이름없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행복을 안겨 주는 것이라는 걸 인정할까? 그리고 언제, 국가는 평화를 향해 전혀 눈에 띄진 않지만 애쓰는 많은 발걸음들이야말로 개인에게도 여러 민족들에게도 전장에서의 대승리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 <백장미는 지지 않는다>의 한 구절이다. 정말, 도대체 언제?







번역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기사모음4]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카테고리 : 내가 본 영화들아 | 작성자 : harrison

2013-04-18 by harrison





타이틀 –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Sophie Scholl : Die letzten Tage, Sophie Scholl : The Final Days)

감독 – 마르크 로테문트

출연 – 줄리아 옌체, 파비안 힌리히스

제작국가 – 독일

개봉 – 2006년



1. 너희가 자랑스럽다.

곧 단두대 처형을 당할 여대생 소피 숄에게 짧기만 한 마지막 면회가 허용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면회실에 와 있습니다.

소피 숄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이 다시 생겨도 저는 같은 일을 할 거예요.

아버지 – 옳은 일을 했다. 너희가 자랑스럽다.

어머니 – (딸의 볼을 어루만지며) 오, 내 딸아….

소피 숄 – 엄마, 엄마가 계셔서 힘이 됐어요.

어머니- (떨리는 목소리로) 집에 다시는 오지 못하겠구나.

소피 숄 – 영원 속에서 만날 거예요.

어머니 – 잘 가거라. 소피아.

소피 숄 – 예, 엄마두요.

생사를 가르는 생이별 앞에서도 가족들 그 누구도 통곡하지 않습니다. 황지우 시인은 이들의 대화를 자신의 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서 그대로 살려냅니다. 젊은이의 당당한 죽음에 인위적 표현 하나 보태지 않고 맑디맑게 추모했습니다.



2. 지성과 휴머니즘이 침묵할 때

독일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실화을 바탕으로 마르크 로테문트 감독이 2005년에 영화화했습니다. 인류사 전대미문의 대학살이 벌어지던 2차 세계대전 말. 히틀러가 득세하던 독일은 게르만 민족우월주의를 내세운 나치의 깃발로 뒤덮였습니다. 양심에 따른 지성과 휴머니즘은 침묵 속에 숨죽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만 600여만 명이 집단학살 당했으며 사회주의자, 슬라브인들, 집시, 장애인 등 집단적 인명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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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독일 뮌헨대학교 철학과 학생 ‘소피 숄’의 이야기입니다. 게쉬타포에게 잡혀 처형당하기까지 생애 마지막 6일 간의 일을 담담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실화가 차분하게 재현됩니다. 소피 숄의 맑은 영혼이 빚어내는 신념은 독일사회를 구원한 한줄기 인간성의 승리였습니다. 영화는 2005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3.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소피 숄과 오빠 한스 숄의 이야기는 한국에는 1978년에 소개됐습니다. 국내 출판사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내놨습니다. 이 책이 태어난 독일에서의 원제목은 ‘백장미’(Die Weiβe Rose).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많이 읽혔습니다. 지은이 잉게 숄(Inge Scholl)은 이 책의 주인공들인 한스 숄(Hans Scholl, 의대생), 소피 숄(Sophie Scholl, 철학과 학생)과 같은 형제. 누나이자 맏언니인 잉게 숄은 두 동생들의 저항과 죽음을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히틀러의 전체주의적 광기에 맞서 뮌헨지역 대학생 저항조직을 만들어 나치 체제를 고발하다 사형에 처해진 동생들. 그 저항조직 이름이 ‘백장미단’입니다.



1차 세계대전서 패전한 독일은 정치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경제는 피폐해져 거리는 수백만의 실업자로 넘쳐납니다. 이런 혼돈을 틈타 1933년 히틀러는 수상으로 취임해, 독일 국민들에게 경제 부흥과 독일민족 지상주의를 약속합니다. 혼란기 독일국민들은 환상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떠오른 히틀러에 열광합니다.



유태인들을 절멸시켜야 한다는 배타적 인종주의도 먹힐 만큼 독일 사회는 전체주의적 분위기로 굳어갑니다. 군비를 증강하고 군수공업에 올인하는 나치정권의 눈속임 경제성장에 독일인은 환호합니다. 파시즘이 괴력을 발휘하며 독일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릴 즈음, “뭔가 이상하다, 이건 아니다”며 문제제기를 하는 청년들이 생겨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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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독일국민에게 고함

바로 독서클럽이자 비밀저항단체인 ‘백장미단’이 결성되고 밤새 타자기를 두드리고 등사기를 밀어 전단지를 만듭니다.대다수 사람들이 “아니요”라고 말할 용기를 갖지 못할 때, 마음속의 외침을 당당히 밖으로 표현하고 허위와 비양심을 고발하는 행위가 시작됩니다.

<뮌헨대학생 선언문 –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란 선언서를 썼습니다. 히틀러가 주창하고 나치체제가 떠받들면서, 조국 독일이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으며 인류사회에서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고발문입니다.



1943년 2월18일. 백장미단 조직원들은 뮌헨 대학 내부에 반 히틀러 유인물들을 과감하게 배포합니다. 숄 남매는 대담하게 학교 중심건물 맨 꼭대기 층에서 하얀 전단지를 눈꽃송이처럼 날립니다. 곧바로 게슈타포(히틀러 비밀경찰)가 출동해 그들을 체포합니다. 나치는 숄 남매를 포함한 대학생 3명을 처형함으로써 더 이상 히틀러총통 체제에 도전하려는 시민의 용기에 쐐기를 박고자 했습니다. 체포 구금 심문 재판 처형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5일 만인 2월 22일 단두대에 눕혀지고 처형당합니다. ,



소피 숄의 실제 사진입니다. 재즈를 좋아했던 청순한 여대생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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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2월 22일. 교도소 여성 간수가 상부 몰래 이 세 사람에게 서로 한군데서 얼굴을 볼 수 있게 허락해줍니다. 간수는 소피 숄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고 세 사람은 한 모금씩 생애 마지막 담배를 피웁니다. 한스 숄(당시 26세), 소피 숄(당시 22세) 또 다른 핵심단원 크리스토프 프롭스트(당시 24세)는 서로를 굳게 포옹합니다.

재판정에서 어린 소피 숄은 외칩니다. “누구든 결국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한 것일 뿐이다” 오빠 한스가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 외친 말은 “자유여, 영원하라!”였습니다. 나치는 1945년 5월 8일 패망합니다. 히틀러는 지하방공호에서 자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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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치를 무너뜨린 ‘내부의 가시’



이 땅에도 수십 년 전 독재 체제에 저항했던 푸르른 청춘들이 참 많았습니다. 숄 남매처럼 평범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감했던 청년들. 그들은 영웅이 아닙니다. 똑같은 학생이고 시민이었습니다. 양심에 충실한 것뿐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을 따라 “틀린 것을 틀리다”라고 표현하는 용기를 감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 많은 젊음이 불꽃으로 타오르다 스러졌습니다. 오늘의 자유와 평화는 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턱대고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질곡을 딛고 일어선, 참으로 소중한 하나하나의 열매였습니다.

백장미단의 저항은 나치를 무너뜨린 ‘내부의 가시’가 되었습니다. 꽃들이 펑펑 만발하고 신록을 내뿜는 시절, 붉은 장미 가시를 가만히 만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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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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