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4

100년 전 모던 뉘우스 각계 명사 암찰록(暗察錄)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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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호

100년 전 모던 뉘우스

각계 명사 암찰록(暗察錄)

“이런 말씀을 막 해서 괜찮을까요?”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1926년 창간된 잡지 《별건곤》… 가십 기사로 유명인사의 시시콜콜한 사생활 들춰
⊙ “아무리 봐도 시골서 갓 올라오신 선비 같았다”(조만식)
⊙ “… 엉엉… 내가 길러내듯 한 아무개 놈이 나를 배반하였단 말이야”(송진우)

[편집자 주]
《별건곤》 1933년 4월호 표지.
근대 한국의 신문·잡지는 개화와 계몽, 국권수호의 사명을 안고 탄생했으나 그 속에는 정보의 욕구 또한 담겨 있었다. 그 욕구는 간혹 가십(gossip)의 형태로 나타났다. ‘남을 헐뜯는 가십은 살인보다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때로 감추고 싶은 뒷얘기나 근거 없는 억측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잡지 《별건곤(別乾坤)》은 1926년 11월 창간돼 1934년 8월 종간됐다. 일제 탄압으로 폐간된 잡지 《개벽》의 후신이다. 《개벽》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대중의 흥밋거리와 가십을 주로 실었다. 《별건곤》은 서울의 불특정 지역을 탐방하는 〈암야탐사기〉로 인기를 끌었고 노숙자, 거지, 땅꾼 등을 등장시켜 대도시 경성(京城)의 이면을 추적하는 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별건곤》 1933년 4월호의 〈우리가 본 그이들-각계 명사 암찰록(暗察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여학생, 바(BAR) 보이와 요릿집 보이, 선술집 주모, 카페 여급, 목욕탕 주인, 기생 등을 등장시켜 이들이 본 유명인사의 민낯을 들춘다. 이 기사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계급과 계층의 분화, 지식인의 위선을 그리려 한 것 같은데 기사는 의도성을 가진 일방적인 주장이어서 객관성과 신뢰도가 떨어진다. 다음은 〈우리가 본 그이들〉을 원문은 살리되 정도는 현대어 맞춤법 표기에 따라 수정한 전문이다.
《별건곤》 1933년 4월호에 실린 르포 기사 〈우리가 본 그이들-각계 명사 암찰록〉
  
여학생이 본 박희도(朴熙道)씨
  姜貞○

  서대문행 전차 속에서….
 
  동성(同性)끼리도 무엇한데 더구나 모르는 남성이 유심히 이쪽을 노리고 보는 데는 죄없이 머리가 숙여지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입니다. 콧잔등에 밥풀이나 한 알 붙지 않았나 하고 새끼손가락으로 얼굴을 갉작갉작하는 체하다가 얼굴을 옆으로 돌려 슬쩍 쓰다듬어 보았으나 손바닥에 걸리는 것조차 없었습니다.
 
  “이상스러운 영감 다 보겠네. 왜 남의 여자의 얼굴을 뚫어지라고 볼까?”
 
  속마음으로 이렇게 의심나는 생각이 나서 옆에 앉은 동무 애를 꾹 찔러 보았습니다.
 
  “얘 너 모르니? 중앙보육교장 박희도씨 아니냐!”
 
  “응… 난 몰랐지.”
 
  비로소 가다가씨를 알아보니 옆구리에 주먹 맞은 소리처럼 “응!”이 나왔지 그렇지 않았던들 내 성미에 실례의 말로 무슨 욕이 끌어 나왔을 것입니다.
 
  ×
 
  흠모하고 존경하는 뜻으로 저는 고개를 돌려 선생의 중절모 끝에서부터 구두코까지 유심히 보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선생을 생전 처음으로 대면한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코끼리’라는 별명을 들으시는 만큼 체격이 거대하시고 얼굴의 면적도 상당히 광막하셔서 정치가의 타입으로 되신 듯하였습니다. 더욱이 불룩하신 배는 나폴레옹의 배에 지지 않게 책략에 가득차신 것 같았습니다. 검은 안경 속으로 색색(色色)의 세상을 굴려 보시는 눈, 인중에 닿을 듯 말 듯 입술 모도가 선생의 비범한 인내력과 정력의 소유자심을 가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체 골상의 조화는 거대한 동물-코끼리, 하마, 소-처럼 순하고 다정하신 성격으로 보였습니다. 오직 한 가지 옥의 티라고 할까! 선생의 체격에 비하여 음성이 너무나 센티멘털하게 가냘프신 것이었습니다.
 
  아차! 노리까에가 바빠 그만두고 내릴 테예요. 나머지는 요다음에….
 
  (박희도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3·1운동 때 그리스도교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편집자 주)
 
 
바(BAR) 보이가 본 서춘(徐椿)씨
  C童

  싫습니다, 괜히. 그런 말씀을 했다가 나중에 야단이나 맞으면 어떡해요. 그 선생님 약주 취하시면 참 무서워요. 그럼 나중에 경(?)은 대신 쳐 주십시오.
 
  그 선생님 참 알방구지요. 키는 조그맣고 얼굴은 까무잡잡하신 선생님이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것 같은 분이 참 다부지시지요. 그런데다 약주가 취해놓으시면 아닌 게 아니라 벌벌 떨려요. 가끔 오시게 되면 대개는 약주 가만히 취해오십니다. 그러니까 오셔서는 별로 약주를 더 안 잡숫지요. 아마 취하신 김에 히야까시 기분으로 오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만약 저희만 있다면 안 오실 것입니다. 밉건 곱건 마담이 있으니까 그 때문에 오시겠지요. 취해서 오시고 더구나 그래서 오셨는데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계실 리가 있나요? 그 거친 목소리로 수틀리면 욕만 하시면서 왔다갔다하십니다. 그런 때일수록 더 무서워서 감히 말씀을 못 붙여 봅니다.… 그럼요. 마담도 겁을 내지요. 어떤 때는 안으로 피하는 걸요. 그럼 이년이 피한다고 욕을 소나기처럼 들어부으면서 야단야단을 하십니다. 그러신 데다 약주를 더 잡숫는 날이면 큰 야단나지요. 그러니까 그런 때는 잘 달래야지(?) 건드리거나 반대를 하면 큰일이 납니다. 어지간히 역찬 마담이니까 그렇지 좀 서투른 사람은 견디다 못해서 울고 맙니다. 이렇게 한바탕 야단을 하신 뒤에 가시기만 하면 오시는 것보다 더 반갑습니다. 가시려는 눈치만 보이면 얼른 가서 문을 열고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걸어가시는 뒤로 보면 큰길이 좁다고 이쪽으로 왔다 저쪽으로 갔다 건너만 다니시니 그렇게 걸어서 언제나 댁으로 가실지 걱정이나 가신 것만치 시원합니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면 그야말로 폭풍이 그친 뒤 같습니다. 마담도 한숨 저이도 한숨-약주만 안 취하시면 잘 오시지도 않고 얌전도 하시는데 하여간 술이 나쁜 음식이야요. 이런 말 했다가 “이놈아 왜 거짓말해서”하고 양떡이나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지가 그랬단 말은 마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이놈 내가 가는 것도 반가우냐. 하….”
 
  (서춘은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언론인. 2·8독립선언 조선유학생 대표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편집자 주)
 
 
선술집 술청에서 본 권덕규(權悳奎)씨
  黃乭○

  참 약주 좋아하시지요. 꼭 오후에 댁으로 가시는 길에는 의례히 들러 가시니까요. 그러니까 어쩌다 들르시는 날이 있으면 도리어 저희가 궁금할 만하니까요. 오시면 두 분 아니면 세 분 친구나 함께 오시지 더 많이 여러분이 같이 오시는 적이 별로 적습니다.
 
  술을 잡수시되 격 있게 잡수십니다. 척척 이야기를 해가면서 잡숫지 아무리 취해서도 연거푸 폭배로는 안 잡수십니다. 이렇게 한 잔 두 잔 다섯 잔쯤이 넘어서부터 그때는 그 작은 키를 돋움질해 가며 농담·재담·괴담이 한데 엉켜서 잔 수를 따라서 상술집 안주 나오듯 합니다. 그도 그렇거니와 같이 오신 손님 중에서 내시는 술이면 여간해서 가실 생각도 안 하시지만 가시자는 말씀도 안 하십니다. 그러기에 그 선생이 어느 때고 혼자 오시는 날이면 가슴이 성큼 합니다. 왜요? 혼자 오시면 몇 잔 안 잡숫고 가시니 말이지요. 가다가 어느 때는 단 한 잔만 잡숫고 가시는 때도 있으니까요. 그때는 어떻게 하시냐고요?
 
  그런 때도 역시 댁으로 가시는 길이니까 저녁때 더구나 술꾼으로 출출한 김에 한 잔 생각이 무럭무럭 날 때이지요. 이랬던저랬던 하여간 들르시니까요. 쓱 들어서시면서 곧 술청 앞으로 오십니다. 이렇다저렇다 말씀 없고 “큰 거로 한 잔 부~” 큰 것이라니 막걸리 말이지요. 벌써 알아차리고 한 사발 듬뿍 드립니다. 그러면 놓기가 무섭게 쭉 마시시고는 김치쪽 한 점을 집으신 뒤에 “콩 한 잔 주~”하고는 손을 내밀고 일변 왼손을 펴시면 사발 속으로 땡그랑 오전 한 푼이 나자빠집니다. 일변 안주로 받은 콩 한 잔 안주는 주머니로 들어가며 선생의 한 발은 문밖을 내디디십니다. 그 밖에 또 무슨 이야깃거리요? 이런 때가 있지요. 어느 때 혹 딴 손님과 두 분이 오셔서 같이 오신 그 손이 내십니다. 그러다가 마침 다른 측 아시는 손님이 들어오시면 그때는 또 그편 손님들이 한 잔 두 잔 권하십니다. 그런 때에는 같이 온 손님은 한구석에서 적적하게 계십니다. 이런 경우에 만약 먼저 같이 오신 손님보다 나중 오신 편 손님이 아시는 분이 많고 술잔이나 먹을 만치 나갈 손님이면 미안 여부없이 먼저 같이 오신 손님께는 “인제 고만 먹읍시다”하면 그 손님은 자미가 없어서도 셈을 하십니다. 그러면 뒤미쳐서 “나는 이분들과 할 말이 있어 실례합니다”하고 젓가락은 잡은 채 계시니 그 손은 가지 별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말씀을 막 해서 괜찮을까요?
 
  (권덕규는 국어학자. 《조선어큰사전》 편찬에 참여했고 1932년 12월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원안을 작성한 인물이다.-편집자 주)
 
 
여급(女給)이 본 차상찬(車相璨)
  RS子

  …차 선생님이요 어디 그 선생님이 좀처럼 오셔야지요. 다른 카페는 자주 가시는지 몰라도 저희에게는 잘 아니 오시니까 흉이고 칭찬이고 말씀할 거리가 없는걸요. 하긴 그 선생님-어쩌다가 친구 바람에 오시기만 하면 벌써 어디선지 먼저 취하실 만큼 취해서 오시니까 오셔서는 별로 약주는 안 잡수시고 저 애들 데리고 별별 기기묘묘하고 귀청(耳膜)이 따끔따끔할 만치 야릇하고 숭측(흉측-편집자 주)스런 농담에 자미스럽기도 하고 어느 때는 망측도 스러워요. 사실 그분이 이름난 차상찬씨라고 알고 존경하고 보니까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가다가 별 숭칙스러운 농담이나 하시고 여간 점잖은 손님으로는 손대지 못할 여자의 몸…에다 슬그머니 손을 내밀 때는 몸소름이 다 쳐요. 같이 오신 손님이 권하시는 술잔도 받으려 하지 않고 “카페 와서 이런 장난도 못하면 뭐 하러 와” 저희가 좀 싫어하는 기색이 있으면 당장에 “빌어먹을 년”하고 욕을 하십니다 그려. 그러고 하시는 말씀 좀 들어 보시오. “암만해도 일본 계집이 자미가 있어서 조선 계집들은 멋이 없어”하고 일본 여급을 불러다 옆에 앉히고 무어라 무어라 한동안 이야기를 하다가는 또 의례히 “이야나히도 데쿠세가와루이와”하고는 달아납니다. 너무 맘 놓고 말씀했다 나중에 큰 변이나 당하면 어쩝니까.… 네 네 참 한 가지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어느 때인가 서너 분이 오셨다가 맥주를 잡숫는데 겨우 두 병을 잡숫더니 무엇이 마음에 맞지 않으시던지 “가이게이(會計)”하고 퉁명스럽게 말씀을 하시더니 지갑을 들고 계시다가 1원95전 간조(회계)에 2원을 내던지고 휘 나가시더군요. 그러니 제게 주시는 팁이 5전 아니야요. 그래도 생각하시고 주신 것이니 영원히 기념하려고 지금도 쓰지 않고 꼭 넣어두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보자시면 오전짜리 한푼 내여 봬드리지요.…하하하하.
 
  (차상찬은 수필가·시인·언론인. 《개벽》을 비롯하여 《별건곤》 《신여성》 《농민》 《학생》 등 잡지의 주간 또는 기자로서 활약했다.-편집자 주)
 
 
목욕탕 주인이 본 윤치호(尹致昊)
  朴壽○

  윤치호씨! 특별히 정해놓고 우리 탕을 찾아오시는 윤치호씨는 다른 손님과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언제나 탕에를 오시려면 어린 아들 따님을 데리고 오시는데 이런 것쯤은 다른 이도 자녀 간에 같이 오시는 분이 많으니까 별로 특별할 것까지야 없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 꼭 다른 이와 다른 점이 있으니 그것은 조끼를 입고 다니시면서 주머니 세간을 기다란 끈에다 꿰매어 가지고 다니시는 것입니다.
 
  주머니칼 손수건 수첩…시계 만년필 열쇠 꾸러미…돈지갑 기타 주머니 세간을 모조리 청어장수의 비웃 엮듯이 죽 꿰어 가지고 이것을 또 주머니 속에다 넣고 다니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에 오시면 먼저 그 주렁주렁 달린 꾸러미부터 내어 맡기시는데 이곳에 오셔서 또 두 가지 더 첨가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안경과 황금반지입니다.
 
  하여간 조밀하신 편으로 좋은 성격이시나 실례의 말씀으로 만약 못된 스리란 놈한테 걸리시면 한꺼번에 잃어 버리실까 봐 그것이 걱정 대걱정입니다.
 
 
기생이 본 조병옥(趙炳玉)씨
  李○紅

  조선일보사 영업국장으로 계시던 조병옥씨! 그분을 대하기는 요 근자에 주로 신문사 일로 해서 요릿집에 모이시는 회합 때부터입니다.
 
  미국까지 가셔서 어느 대학을 마치시고 박사의 학위까지 가지고 계신 어른이라는 말씀을 들은 법한데 비로소 최근 몇 번 그 얼굴을 뵙게 된 것을 보면 아마 박사이신 만치 공부를 많이 하시노라고 도무지 요릿집 같은 곳에는 발 안 들여놓으셨던 모양입니다.
 
  처음 뵈었을 때에는 그야말로 얼굴 모습이 실례의 말씀이나 몹시 무섭게 보여서 앞에도 가기 싫을 만치 정이 떨어졌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세 번 차차 낯이 익어가고 또 약주를 많이는 못하시나 다소 잡숫든지 하면 생기신 얼굴과는 딴판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다정하게 굴어주시고 또 같이 오신 여러분의 기분을 어떻게 잘 맞춰주시는지 정말 탄복하였습니다.
 
  나는 여기서 사람이란 결코 얼굴 생긴 것만 보고는 참말 그 성격이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을 비로소 느꼈습니다. 비상히 엄격하신 듯하면서도 무한 유화한 그 점이 처음 사귀는 우리에게 적지 아니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요릿집 보이가 본 송진우(宋鎭禹)씨
  金X同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 선생! 선생은 가끔 우리 요릿집에를 오시는데 어느 때는 큰 모임, 또 어느 때는 개인으로 몇몇 친구와 놀러 오십니다.
 
  대단히 점잖으신 어른이요 사회의 명망가시라 어떠한 모임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별로 이렇다 할 흠절이 없으신 분이나 간혹 약주가 과하시든지 하면 그 크신 목소리로 말씀이 좀 많으신 편입니다. 그러나 술 잡숫고 잔소리하시는 거야 어데 선생 한 분뿐이 아니니까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 어느 때인가 꼭 한 번 이러한 일을 뵌 일이 있습니다.
 
  어느 때 몇몇 분이 놀러 오셨을 때인데 시간도 엔간히 길었고 또 약주도 꽤 많이 들어갔을 때인데 갑자기 송 선생 계신 방에서 흑흑 흐느껴 우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서 곧 뛰어들어가려다 혹시 큰 꾸중이나 듣지 않을까 하여 밖에서 머뭇하며 가만히 엿들으니까 송 선생이 약주가 잔뜩 취하신 모양이신데 어떤 사원 하나를 붙잡고 우시면서,
 
  “… 엉엉… 내가 길러내듯 한 아무개 놈이 나를 배반하였단 말이야.… 흐…흐흐… 그놈이”하시는 겁니다. 그때 나는 혹시 다른 방 손님이 이 소리를 듣고 그분이 송 선생인 줄 알든지 하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어찌나 송구하였는지 모릅니다.
 
  아마 선생은 평소에 가장 신뢰하던 어떤 분이 선생을 배반한 것이 뼈에 사무쳐서 원한이 되었던 모양이지요. 그러기에 약주 잡수신 후 그 울분이 터져 나오셔서 주위와 환경을 모두 잊으시고 서러워하심인 줄 알았습니다.
 
 
급사가 본 조만식(曹晩植)씨
  ○○童

  조선일보 사장 조만식 선생! 나는 이번 새로 속간되는 혜택에 처음으로 뽑혀 들어간 풋내기 급사인데 처음에 선생님을 생각할 때에는 얼굴도 퍽 위엄이 있고 또 옷도 좋은 양복을 입으시고 또 금테 안경을 쓰시고 금 시곗줄을 늘이시고 번쩍번쩍하는 칠피 구두를 신으시고 또 상아로 만든 단장을 들고 다니시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입사하던 날 정작 사장 선생님을 뵙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장실에를 들어가 보니까 웬 헙수룩한 어른 한 분이 앉아 계신데 암만 보아도 시골서 갓 올라오신 선비 같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마 사장 선생님을 찾아 뵈러 온 손님인 게다’ 생각하고 머뭇머뭇하고 있으려니까,
 
  “왜 무슨 일이 있는가?”
 
  하고 물으시는 고로
 
  “네… 네… 저… 저… 사장 선생님을 뵈려고요.”
 
  하고 우물쭈물 대답하였습니다.
 
  “그럼 얼른 말을 하지 왜 그리 섰어….”
 
  그제야 나는 이 어른이 사장 선생님인 줄 알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머리도 아무렇게 깎으시고 수염도 안 깎으신 데다 조선 수목 두루마기 더구나 무릎까지 올라오는 짤따란 것-그리고 더욱 놀란 것은 버선에다 고무신을 신으신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모든 점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수그려졌습니다.
 
  선생님의 이 놀랍게 검소하신 데 대하여 진정으로 탄복하였던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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