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7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이정훈 | 알라딘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이정훈 | 알라딘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북한(조선) 바로 알기 1번 주체사상을 논하다
이정훈 (지은이)사람과사상2018





































책소개

오랜 기간 금기시 되었던 주체사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다. 주체사상을 정부 관변서의 관점과 시각이 아니라, 1987년 6월 항쟁 세대의 사상철학 경험 속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사색하며 관찰한 소감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감옥에서 섰다. 맑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과 사람중심의 주체사상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정치이데올로기로 매우 딱딱할 수 있는 주체사상의 철학, 주체사관, 주체 정치경제학, 주체의 문예이론과 방법론 등 방대한 내용을 다이제스트 식으로 핵심 내용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서술했다.

목차


1장 인생과 철학 사상
2장 사람의 마음, 의식세계
3장 정치와 철학 사상
4장 경제정책과 철학사상
5장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한국 경제
6장 민족문제와 다른 나라 혁명
7장 문화와 철학 사상
8장 사업 방법론과 사상


책속에서


첫문장
사람들은 흔히 "나에게 사상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흔히 학벌이 높은 사람은 지식이 많고, 지식이 많으면 사상수준도 높고 풍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역시도 착시현상입니다. 지식수준과 사상수준은 서로 연관은 있으되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외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지요. 맑스주의와는 다르게 주체사상은 지식과 사상 또는 사상의식을 구별하여 강조하는데 대단히 새롭고 흥미롭습니다. 또 이런 견해가 주체사상의 독특한 ‘사상론’으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맑스주의의 북한(조선)판 또는 맑스-레닌주의의 변종이거나 모택동 사상, 심지어 스탈린주의의 아류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이런 주장들이 틀리다는 걸 금방 확인합니다. 주체사상은 맑스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을 철저히 계승했지만 또 맑스주의가 가진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발전시킨 독창적 현대 유물론 사상입니다.” 접기
“맑스주의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한 계급성, 당파성 개념을 이해하는 게 핵심이듯, 주체사상에서 자주성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면 주체사상의 핵심원리를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사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인간에 대한 거대한 개념 규정을 몇 마디로 쉽게 설명하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이 개념을 이해하는 게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차이를 이해하는 핵심 출발점인 건 분명합니다.” 접기
“주체사상이 내린 자유에 대한 정의가 흥미로운 건 엥겔스의 개념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나간 겁니다. 엥겔스가 사적 유물론에기초해 밝힌 ‘자유와 필연’에다 핵심 내용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발현되는 사람중심의 사회법칙에 관한 겁니다. 즉 세계에서 가장 고급한 물질인 사람의 운동이 갖는 필연성을 규명한 거지요.” 접기
“기독교사상이나 맑스주의, 주체사상에서 얘기하는 최고의 가치는 사실 모두 비슷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구현되는 사회입니다. 다만 그를구현하는 방법에 차이가 날 뿐입니다. 기독교는 선행과 기도가, 맑스주의는 계급투쟁이, 그리고 주체사상은 자주성 실현을 위한 노력과 투쟁이 사회를 구원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 말합니다.”
‘정치가 경제를 규정한다’는 정의는 고전 맑스주의의 ‘경제가 정치를 규정한다’는 정의와 상반돼 보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걸까요?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적 정치관을 근대 유물론이 갖는 시대적한계라고 봅니다. 맑스주의가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관념론과 투쟁하면서 의식이 물질의 반영이고, 물질이 1차적이라는 진리를 입증하는데 집중한 것처럼, 사적 유물론과 정치경제학에선 토대인 경제의 반영으로서 정치와 이데올로기 등 상부구조를 설명하는데 집중하느라 정작 정치의 본질과 역할을 바르게 해명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접기
“주체사상에서는 정치를 ‘계급 혹은 사회의 공동이익에 맞게 사람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회적 기능’이라고 정의입니다. 그 의미는 사회 구성원들(계급사회의 경우는 지배계급)의 지향과 요구를 실현하는데서 사람들의 활동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결정적 기능을 바로 정치가 맡는다는 겁니다.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정치는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사람들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사회적 기능’입니다. 즉 사람들의 자주적 활동과 창조적 활동을 조직, 지휘하는 사회 기능입니다.” 접기


추천글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사이에 평화의 길이 열렸다. 이제 우리도 북맹을 벗어나 북쪽 사회와 북쪽 사람들의 사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간 국가보안법의 철벽 때문에 북쪽의 사상은 신비화되거나 고립되었다. 이 책은 그런 신비화와 고립을 깨기 위해 북쪽의 사상을 마르크스의 사상과 비교하면서 토론과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다. 또한 간략하며 쉽고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으니, 앞으로 남북의 협력을 모색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필수적인 저서가 아닐까 기대된다.”
- 이병창 (동아대학교 인문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8년 9월 7일 학술.지성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이정훈 (지은이)

서울출생/1985년 고려대 삼민투 위원장/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대표/ 오산노동자회관 부대표/ 영국 런던대 아시아태평양 지역학 석사/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통합진보당 중앙당 교육위원/ 민플러스 편집기획위원/ 통일시대연구원 부원장/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최근작 : <북 인문학의 새 지평>,<세상을 바꾸는 1박 2일 사상여행>,<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87년 6월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
“북한(조선) 바로 알기 1번 주체사상을 논하다”

이 책은 오랜 기간 금기시 되었던 주체사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다. 주체사상을 정부 관변서의 관점과 시각이 아니라, 1987년 6월 항쟁 세대의 사상철학 경험 속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사색하며 관찰한 소감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감옥에서 섰다. 맑스주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상과 사람중심의 주체사상을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정치이데올로기로 매우 딱딱할 수 있는 주체사상의 철학, 주체사관, 주체 정치경제학, 주체의 문예이론과 방법론 등 방대한 내용을 다이제스트 식으로 핵심 내용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서술했다.

저자는 청년시절 고려대학교 삼민투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대표로 구속된 경험이 있다. 전형적인 민주화세대의 일원이다. 이 책은 저자가 국가보안법 사건(일심회)에 연루돼 옥중에서 썼던 노트(2008년)를 최근 다시 정리한 것이다. 필자의 간첩혐의는 최종 무죄로 판결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주체사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검사들에게,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사상의 자유와 이른바 이적표현물에 대한 그들의 기준과 판단을 반박하기 위해 작성한 항소이유서와 기타 자료 글을 3년여의 감옥생활 동안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상탄압 정책으로 우리사회에서 주체사상의 실내용에 대해 학계와 언론은 물론, 진보진영조차 충분히 이해하고 토론할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수구언론의 악의적인 보도와는 다르게 실제 맑스주의나 주체사상 등의 사상문제를 깊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진보진영에조차 그리 많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체사상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안보와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고, 실제 지금도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 죄’로 처벌당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성경을 본 모두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불경을 읽는다고 모두 불교신자가 되는 게 아니듯 주체사상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모두 주체주의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또 음식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아 선택하듯 사상과 견해 역시, 음식처럼 먹어보고 맛을 평가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음식 자체도 보여주지 않은 채 ‘맛도 없고,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고 겁주는 방식으로 사상 문제를 대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탄압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필자는 주체사상이 혁명사상일뿐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응용할 분야가 많은 인문사회학의 가치 있는 연구대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상이든 그 장점을 활용할 줄 아는 게 진짜 실용·실질주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접기



주체 사상 찬양하는 책..이정훈씨는 그냥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같아요 2017년 4웡 일본계 페루 국적으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4차례 만나 자신의 활동 상황과 국내 진보 진영 동향 등을 보고하고..암호화된 지령뮨 송수신 방법을 교육까지 받은 혐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람
조이엄마 2021-06-2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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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아야 한다!
theclick 2022-10-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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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이 요구되는가?(1)
기자명 박기민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승인 2018.09.13

이정훈 저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2018, 사람과사상사)

주체사상의 전반적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는 이 책을 소개하는데 단순히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이런저런 책이다 식으로 짧게 소개하는 것이 적절치 않고, 책의 주요 내용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이 한국 진보의 사상운동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주요한 핵심 내용을 소개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려 합니다.[저자]
 


<주체사상 에세이>라는 책이 나왔다. 주체사상, 실로 오래 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이 책은 ‘남한 금기사상 1호’인 주체사상을 관변서적이 아니라 한국 진보의 입장에서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4.27판문점선언 이후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1980년대, 분단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 우리민족과 미국의 모순이 주요모순이라 생각하며 고민하고 실천하던 시민, 청년, 학생들에게는 주체사상이란 익숙한 말이었다. 그러던 주체사상이 1990년경 동유럽과 소련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가 후퇴하면서 한 시대를 상징하던 주체사상이란 말도 함께 사라졌다.

같은 사회주의 나라라도 이북조선, 쿠바, 중국, 베트남 사회주의는 미국과 서구 자본의 공격 앞에서 내성을 키우며 자기식 사회주의 체제를 견고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시기 동유럽, 소련의 사회주의와 이북조선과 쿠바, 중국 사회주의의 차이는 무엇이기에 강한 생명력을 갖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세계에는 수많은 형태의 자본주의가 있듯 수많은 형태의 사회주의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데 대한 질문과 의문들을 자기 경험과 사유를 통하여 ‘사상문제’로 접근하며 친절하게 풀어나가는 책이 오늘 소개하는 <주체사상 에세이>이다.

이 책을 쓴 저자 이정훈은 1985년 고려대학교 삼민투위원장으로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으로 구속되었고 런던대학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학을 공부했으며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활동을 하다가 2006년 40대 초반, 국가보안법 사건(일심회)으로 구속되었다. 그의 간첩죄는 무죄로 판결되었다. 그런 그가 옥중에서 판검사들과 법정투쟁하며 쓴 항소이유서와 3년의 영어생활 동안 사상문제를 고민하며 쓴 기록을 정리해 낸 책이 <주체사상 에세이>다.

이 책의 구성을 보자.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나눠져 있는데 주체사상에 대한 선전이 아니라 냉정한 성찰 속에서 자주사상 전반에 대해서 자신이 판단한 경험적 방식으로 주체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 정상이 만나고 조미 종전선언과 조미간 평화협정이 맺어지려는 4.27판문점선언 시대에 주체사상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진지한 학술적 토론을 해보자는 의도에서 쓰인 책이라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학술서적식으로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니고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쓰인 책으로 주체사상에 대한 총론격의 자기성찰적 책이 되겠다. 이 책은 상당히 어려운 철학사상의 내용을 비교적 쉬운 예로 설명하고 있다. 1장 <인생과 철학사상>에서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사상이 무엇인지 모르며 평생 남을 위한 사상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남의 알을 품어 키우는 ‘십자매 사상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보통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은 지배자들이 널리 유포하는 사상이며 이런 사상을 유포하는데 복무하는 집단은 지식인집단이라고 비판하며 자기계급에 맞는 지식의 당파성, 사상의 당파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주체사상은 기본적으로 맑스-레닌주의를 계승한다는 전제, 그런 토대에서 현대에 제기되는 새로운 문제와 요구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사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맑스주의 경제적 유물론과 비교하여 주체사상을 ‘사람중심의 유물론’이라고 평가하며 유물론과의 계승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선 맑스-레닌주의 유물변증법의 기본법칙부터 먼저 개괄적으로 간단히 소개한다.

맑스-레닌주의 유물변증법의 기본법칙이라면 물질세계 상호연관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양질전화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되겠다.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 발전한다는 사상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저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물질운동의 최고단계가 인간이며, 인간의 의식현상이라고 한다.

저자는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모순의 법칙)을 설명한다. 저자는 자연과 사회, 사람인생의 모든 과정이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생물학적으로 산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과 통일되어있고,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통일되어있다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안에 이미 사회주의가 대립자로 자라고 있고, 사회주의는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디어가 아니라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듯 자본주의가 만든 필연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유물변증법의 ‘양질전화 법칙’, 이것은 점진적인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도약을 이룬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쉬운 예로 물이 99도를 넘으면 새로운 질인 수증기로 증발하는 현상이다. 사회에서 예를 들자면 사회혁명의 시기이다. 사회적 모순이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면 물이 수증기가 되듯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단계의 사회로 발전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등은 대표적인 사회적 양질전화의 사례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있겠다. 부정의 부정의 법칙은 질적 이행에 있어서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에로의 이행에는 단절방식이 아니라 낡은 것 속에 포함되어 있는 적극성은 유지 보존, 계승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절대적 부정은 파괴이나, 변증법적 부정은 긍정을 내포한 생산적 부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것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할 때 자본주의 생산력과 기술과 자본주의의 좋은 측면은 모두 그대로 유지 계승 발전시키며,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소유관계)은 제거하는 부정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근본적으로 제거한 것이 사회주의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계속적 질적 변신이 사회주의이며 공산주의라는 것이다. 이것이 부정의 부정의 법칙 례가 되겠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45쪽 앞까지, 즉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분기점’까지의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였다. 이와 같이 저자가 쓴 <주체사상 에세이>는 45쪽까지만 읽어도 맑스-레닌주의 대한 기본 개념이 잡히는 대중서적이다. 여기까지가 대략 주체사상을 설명하기 위한 서론으로 보인다. 다음 회에는 이 책의 본론으로 들어가 ‘맑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분기점’에 대해서 저자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궁금증을 풀어 보겠다.(계속) 

==[서평]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이 요구되는가?(2)
기자명 박기민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승인 2018.10.06 15: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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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저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2018, 사람과사상사)

이정훈 저 <주체사상 에세이>는 사실상 주체사상 전반을 다루고 있다. <주체사상 에세이> 1장 6에서는 철학에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로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분기점’을 다루고 있다.

철학의 근본문제를 존재와 사유, 즉 ‘물질과 의식’ 문제로 다룬 것은 엥겔스의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1888)이 되겠다. 이런 식으로 철학의 근본문제를 다룬 것은 <공산당 선언> 발표를 전후한 1848년, 맑스주의 철학이 성립한 지 근 40년 만의 일이다.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 전에는 맑스와 엥겔스가 유물론 입장에서 관념론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는 그 이전부터 철학의 근본문제를 물질-의식 문제로 다루었으나, 책으로 정식화한 것이 엥겔스의 <포이에르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든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으로 분류되겠다. 그래서 철학의 근본문제는 ‘물질이 먼저냐? 의식이 먼저냐?’의 문제가 된다. 물질과 의식문제는 철학에서만 대립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내에서 대립하는 두 계급간의 투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세상이 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물질적 조건이 변하는 것을 원할 것이고, 기득권자들은 특권을 누리는 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즉 물질의 조건이 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물질의 선차성을 주장하는 유물론 입장에 설 것이고 세상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고통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식으로 의식의 선차성이나 유심론을 주장할 것이다. 그래서 철학적 세계관은 계급적이고 당파적인 성격을 갖는다 하겠다. 즉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사회 계급투쟁의 반영이 된다. 인간의 사유와 인식은 자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절대자에 대한 관념론이 사라지면서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주관론에서 객관론으로, 유심론에서 유물론으로 진화 발전하여왔다고 한다.

철학의 근본문제가 제국주의 이전시대, 즉 자본주의 축적시기에는 자연과학의 발달로 중세 신학을 비판하는데 역점을 두며 사상싸움의 대상이 중세신학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의 <주체사상 에세이> 에 의하면 마르크스 당시 철학의 근본문제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후, 자본주의 최후단계라는 제국주의 이후, 사람들의 근본문제는 어떻게 제국주의를 타도하느냐? 특히 제3세계 식민지 민족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제국주의 압제에서 해방돼 민족해방을 쟁취하고 계급해방, 즉 민족해방과 노동해방 두 가지 문제라는 근본적 인간해방 문제를 떠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싸움에서는 철학의 근본문제도 중세신학과의 대결이 아니라, 즉 세계관에서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이 아니라, 당연히 제국주의와의 싸움에서 실천과 주체 문제가 제기된다 하겠다. 즉 철학에서 실천의 문제가 중시되며 ‘누가 실천하느냐?’ 주체의 문제가 논의되며, 실천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실천주체가 사람문제로 되기에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는 사람의 본질에 대해 논쟁을 하게 되며, 사람의 본질에 대한 논쟁에서, 그 결론은 사람은 자주적 존재며 창조적 존재며 목적의식적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사유와 인식은 자연과학의 발달로 신학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변해왔듯, 미‧영‧프 서구 제국주의 압제를 받는 피억압 민족들의 조건을 반영하여 철학사상의 근본문제가 관념론과 유물론의 쟁투가 아니라, 제3세계 식민지 인민들이라는 ‘사람’ 주체와 제국주의 제 세력이라는 ‘세계’와의 싸움문제가 철학의 근본문제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정리 요약하면, 제국주의 이전시대 철학의 근본문제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싸움이며, 제국주의 시대 이후의 철학싸움의 문제는 식민지 ‘사람’들과 제국주의 ‘세계’와의 싸움으로 철학사상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즉 이런 세계사적 조건으로 하여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근본문제는 ‘물질과 의식’ 문제에서 ‘사람주체와 세계’의 문제로 된다는 것이다. 

철학의 근본문제에 있어서 ‘사람주체와 세계’ 문제로의 전환은 철학발전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서, ‘물질–의식’ 문제에서 물질의 선차성이라는 유물론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철학의 근본문제를 ‘사람과 세계’의 문제로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시대가 변하면 철학의 사유인식도 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제국주의 약탈전쟁 시대에는 제국주의 해방에 맞는 시대의 철학적 요구에 응답하여 철학도 변할 것이다.


북의 주장에 의하면, 철학의 근본문제가 ‘물질-의식’ 문제에서 ‘사람-세계’ 문제로의 전환배경은 인민대중의 대중적 진출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1, 2차 제국주의전쟁 이후, 전세계적 규모에서 제3세계 인민들이 민족해방의 주체로 나서는 시대이기에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제국주의 시대에 혁명 주인으로서 세계인민, 즉 사람이 주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철학의 근본문제가 질적으로 발전 전환하였다는 것이다.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면 ‘세계’를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주체는 누구인가?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질-의식’ 문제에서 사람‘주체’와 ‘세계’해방 문제를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소련, 동구, 중국에서도 철학논쟁이 ‘사람과 세계’ 문제로 지속되어왔다고 한다. 소련에서는 1950~60년대 토대-상부구조 논쟁에서 상부구조에 인간의 의식문제를 집어넣으면서 고르바초프 시대까지 역사실천 주체로서 사람의 문제를 논쟁해오던 중 소련사회주의는 막을 내렸다. 동구 역시 마찬가지로, 동독의 자이델은 ‘물질-의식’ 문제에서 자연변증법 요소를 소거하고 물질-의식 문제를 ‘객체-주체’ 변증법으로 환원하면서, 물질 대신에 실천이 철학의 중심이라며 목적의식적 주관주의로 빠졌다고 한다. 유물론에서 물질이 빠지면 유물변증법이 아닌 것이 되고, 실천 문제를 집어넣으면 인간의식과 실천문제만 남기에 자연변증법 문제가 소거되는 것이다. 반면 코징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사회적 실천과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며, 철학은 실천적으로 해답을 주어야 한다면서 ‘물질-의식’ 문제를 ‘물질-의식-실천’ 3자의 문제로 나열하며 절충적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논의를 통하여 동구 철학계에서도 철학의 근본문제로 인간의 지위와 역할 문제가 맑스주의 철학의 근본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에서도 이런 논쟁은 있었다. 북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에서 차지하는 사람의 지위와 역할 문제에 대하여, 즉 사람-객관세계의 관계문제가 주체사상에서 철학의 근본문제로 정식화된 것은 1930년 김일성이 카륜에서 행한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사람주체 문제를 주체사상의 지도원칙으로 처음 제기하면서였다고 한다. 당시 항일투쟁의 역사적 상황은 항일 민족주의세력간의 파벌싸움과 사회주의 좌파세력들간의 파벌싸움에 대한 비판으로써, 새세대 사회주의자들은 ‘반제항일 반봉건’ 조선혁명의 진로에서 사람을 내세우는 주체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42년 뒤인 1972년 김일성은 <우리당의 주체사상과 공화국정부의 대내외정책에 대하여> 소논문에서 철학의 근본원리로 ‘사람-세계’ 문제를 최초 정식화했다고 한다. 즉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기초”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74년 김정일은 <주체철학 이해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소논문에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로서 철학의 근본문제가 최초로 정식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주체사상은 철학대회 논쟁과 논문 발표를 통하여 맑스-레닌주의 철학의 ‘물질-의식’ 문제가 민족해방과 인간해방을 쟁취해야 하는 세계 민중의 요구를 반영하여 ‘사람-세계’ 문제로 전환되었다고, 저자는 <주체사상 에세이>에서 설명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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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이 요구되는가?(3)
기자명 박기민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  승인 2018.10.16
이정훈 저 <87, 6월 세대의 주체사상 에세이>(2018, 사람과사상사)


이정훈 저 <주체사상 에세이> 1장 7에서는 사람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의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둘러싼 ‘세계란 무엇인가?’ 설명되어야하겠다. 지난번 <주체사상 에세이> 1장 6에서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분기점’을 다루었는데, 20세기 들어오면서 철학의 근본문제가 ‘물질과 의식’에서 ‘세계와 사람’의 문제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철학의 근본문제가 ‘물질과 의식’에서 ‘사람과 세계’와의 문제로 달라졌다고 하니, 여전히 모르겠다는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이란 무엇인가?’ 문제에 들어가기 전, ‘물질과 의식’에서 ‘세계와 사람’의 문제로 전환된 사상사를 요약정리하면 이렇다. 


노동계급의 철학인 마르크스사상 이전에는 사람을 정신적 존재로 보는 관념론과 물질적 존재로 보는 유물론적 견해, 그리고 정신과 물질의 결합으로 보는 절충적 견해 등이 혼재되어 있었다. 사람을 유가(儒家)식으로 사단이 있는 존재, 불가(佛家)식으로 여래장을 갖춘 존재, 스피노자식으로 자기보존 욕망 존재, 프로이드식으로 리비도적 존재, 니체식으로 권력 의지가 있는 존재, 하이데거식으로 불안하게 흔들리는 죽음으로의 기투 존재, 신에 기도하고 의존하는 나약한 신학적 존재, 정치적 동물, 경제이기적 동물……. 수다한 견해들이 있겠다. 이런 견해들은 사람의 수많은 속성 가운데 한 가지 속성을 일반화한 견해에 불과하겠다. 이런 다양한 견해에는 언제나 지배집단의 세계관인가? 지배당하는 인민의 세계관인가? 하는 계급적 관점이 들어가 있겠다. 이런 다양한 견해들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사람에게 물질적 생산과 사회경제관계에 결정적 의의를 부여하며 유물론으로 접근하여 사람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설명하였다.

반복 정리하면,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유물론적 견해며 세계가 정신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관념론 견해겠다. 세계가 자체의 내적 원인으로 변화한다는 생각이 변증법적 견해라면 세계에 어떤 절대자나 신이 있어서 고정불변한다는 생각이 형이상학적 견해겠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달과 더불어 중세 형이상학 신학의 허구를 폭파시키고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유물론 입장과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는 변증법 입장을 마르크스가 제시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이전시대에서는 관념론과 유물론, 형이상학과 변증법 투쟁의 역사였으며 마르크스사상은 이러한 이론쟁투에서 관념론과 형이상학에 대한 유물론과 변증법의 승리로 되겠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물론과 변증법을 결합시켜 ‘세계의 물질성’과 ‘물질세계의 운동변화법칙’을 만들었고 이를 스탈린 시대에 와서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이라 정초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 중심의 철학이라는 주체사상은 어디까지 나아갔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가?

인류사에서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은 성공했으나 프롤레타리아혁명은 좌절했고, 러시아혁명은 노동동맹을 통하여 일국사회주의 국가는 건설했으나 사람문제를 등한시하여 실패한 경험이 있다. 중국혁명은 농민을 중심으로 하여 통일전선론 차원에서 국민당과 연대하며 일제를 몰아내고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했으나 사람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모험주의적 경향을 노출하며 미영, 서구 자본주의 진영에 둘러싸인 조건에서 생산력중심으로 나아갔다. 반면 조선은 사람을 귀중하게 여기며 사람을 중심에 놓고 통일전선을 확대하여 사람 희생이 없는 혁명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혁명사 발전과정은 곧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사의 발전과정이며 통일전선론의 세련화 과정으로서 사람을 광범위하게 끌어안아야하는 심화 발전과정이기에, 장차 변혁과 변혁사상에서는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모시는 사람중심의 철학을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겠다.

우선 주체사상은 사람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사상을 받아들인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사람은 물질적 존재이며 사회적 관계의 총체인 것은 맞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히 물질적 존재만이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가장 발전한 물질적 존재로서 자연에 순응하는 존재와 달리 자기에게 맞게 자연과 역사와 사회를 개조해 나가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즉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개조시켜나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동물에게 없는, 자연과 사회와 역사를 개조하고 예속에 반대하는 ‘자주적 존재’며,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맞게 개변시키는 ‘창조적 존재’며 자기활동을 의식적으로 규제하는 ‘의식적 존재’라는 것이다.

<주체사상 에세이> 1장 7(50-55쪽)에서 사람이란 무엇인가?의 주체사상 설명에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자주성과 창조성과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꽤나 선언적, 종교적, 관념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사람을 정신적 존재로만 생각했던 관념론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관념론으로 들리기도 하겠다. 그런데 사람을 최고의 물질적 존재라고 생각해온 유물론자들에게는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문제는 유물론적 견해로 들린다 하겠다. 즉 사람에게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있다는 주장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최고의 물질적 존재인 사람에 대한 철학적 해명이기에 유물변증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겠다.

마르크시즘은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세계의 본질을 유물론적으로 해명하였다. 그러나, 그래서, 세계가 어쨌다는 말인가? 그 세계를 무엇이, 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세계를 움직이는 주체는 누구인가? 자연이 움직이는가? 아니다. 자연도 우연히 개입하지만 결정적으로는 세계와 역사는 사람이 움직여나간다. 그렇다면 사람에 대한 입장을 밝혀내야만 하는 철학적 과제가 제기된다 하겠는데, 주체사상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사람의 문제를 해명했다고 <주체사상 에세이> 1장 7에서 밝히고 있다.

주체사상은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졌고 물질운동에 의하여 발전한다는 것이 밝혀진 조건에서, 자연과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은 누구며, 그것을 개조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하는 문제에 답을 함으로써 ‘사람과 세계’에 대한 견해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즉 세계는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과 세계의 조화’가 전제되므로 주체사상은 21세기의 생태주의와 가이아적 세계관을 당연히 포함한다 하겠다. 세계는 저절로 사람에게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자주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창조적 활동을 의식적으로 전개하면서 세계와 역사가 사람에게 이롭도록 사람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을 구체적으로 해명해야한다는 것이다.

지난 인류사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은 역사적 조건에 따라서 변해왔다는 것이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로, 중세에는 농노로, 자본주의 시대에는 시간제 노예인 임금노예로 사람의 지위와 역할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예종상태에서 해방되는 사회주의체제에서 비로소 사람은 세계의 주인으로 사람의 지위와 역할이 부여된다는 것이다. 즉 세계는 사람의 적극적 활동에 의해서만 사람을 위한 세계로 개조된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사람을 단순히 최고의 물질적 존재며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유물변증법의 설명을 넘어서서, 사람이 세계를 자주적으로 창조하고 의식적으로 개변시켜나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해명 지점에서, 사람을 섬기고 모시는 철학인 주체사상의 ‘사람과 세계’의 문제와 마르크스사상의 ‘물질과 의식’ 문제에서 변곡점이 발생한다고 하겠다.

모든 사람에게 최고 가치를 부여하고 모든 사람을 최고 존자로 섬기고 모든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주체사상에서는, 이런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본다는 것이다.

<주체사상 에세이> 1장 7에서는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1) 사람의 본질인 자주성은 무엇인가? 사람의 자주성은 자연세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과 역사의 운명도 스스로 개척하고 모든 예종 예속상태에서도 벗어나는 것이며 이런 자주성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2) 그럼 사람의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해나가고 자기운명을 개척하는데 있어서 창조적으로 낡은 것을 변혁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고 자연과 사회를 자기에게 이로운 것으로 개변해나간다는 것이다.

3) 그럼 의식성은 무엇인가? 사람에게는 세계와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해 모든 활동을 의식적으로 규제하는 속성이 있는데 이를 인간의 의식성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식성 때문에 사람은 역사의 합법칙성을 파악하며 자연과 사회를 자기요구에 맞게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사람만이 가지는 속성으로서 생물학적 속성이 발전된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의 ‘사회적 속성’이며 사람이 후천적으로 개발하는 사회적 속성이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사람만이 예속상태에서 자주적으로, 자기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그리고 목적의식적으로 자연과 역사를 변화시켜나가는 존재이기에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을 가장 귀한 존재로 보며 사람을 모시고 사람을 내세우고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회변혁 방법론도 사람이 사회변혁과 자기해방의 주인이니까 누구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자기조건 자기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목적의식적으로 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체사상에서는 이런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은 우리나라의 전통 사상인 ‘제세이화 홍익인간사상’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과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는 ‘이민위천 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것인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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