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ladimir Tikh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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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고 문뜩 생각이 난 것은, 같은 해에 만약 두 레즈비안이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이런 포퍼만스를 벌였다면 경찰의 반응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같은 권위주의 체제라 해도 러시아 같은 수준의 호모포비아를 중국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사만 봐도 1920-30년대에 예컨대 여성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동성애 이력을 공개하는 것은 그리 어렵거나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밑에서 <별건곤> 34호에서 1930년에 실린 아주 재미있는 기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기숙사 생황 경험이 있는 그 당시의 여성 지식인으로서는, 한 때의 레즈비언 사랑은 거의 보편적인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과거의 풍속도 등을 염두에 두면 호모포비아는 굉장히 부자연스럽습니다. 지금 그 주된 원천은 바로 일부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데, 그 사회적 영향력은 경향적으로 저하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상황이 많이 호전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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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流名士의 同性戀愛記
黃信德
여학생시대에 동성연애를 안해 본 사람은 별로 업스리다. 나도 그 축에 빠지지 안코 여러 차례의 경험도 업지는 안슴니다만은 나는 대개가 順路로 모다 친하엿기 때문에 자미잇는 일호는 별로 업슴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수은 일은 더러 잇지요. 이 때까지 니치지 안는 것은 崇義學校잇슬 때에 泰川서 온 동모하고 퍽 친하게 지낸 일이 잇슴니다. 그 동모는 부모도 업는 퍽 불상한 사람인더 처음의 동기는 아마 동정에서부터 이러낫든 모양이지요. 집에서 맛난 음식이 잇스면 반드시 기숙사에 잇는 그 동모를 데려내다가 가히 먹어야 마음이 편하고 아침에 학교에 갈 때는 그 동모의 얼골 볼 것을 생각하면 벌거롬이 빨너지며 아음이 깃버젓슴니다. 그러다가 겨울방학이 되어 동모가 고향으로 가게 되엿슬 때에 2주일 동안밧게 안이되건만 그동안 견딀 일이 란처하엿슴니다. 그래 어더케 서릅든지 정거장에서 막 붓잡고 두리서 울엇지요. 목소리가 놉하가는 것도 알지 못하고 한참 울다 나닛가 구경군이 쭉 둘너섯겟지요. 그 후 동모가 간 뒤로는 그러케 빠지지 안코 단니든 레배당에를 혼자가안즘에 넘우 서어해서 몃번이나 빠젓답니다. 이것이 나의 최초의 동성연애인가 봄니다. 그 후로도 만흔 동무를 친햇지마는 그 때적가티 순전한 감정으로만 사랑해 본적이 업슴니다.
許英肅
14, 5세때에 進明學校를 단니면서 동성연애를 만히 하엿슴니다. 별로 남에게 뒤지지 안케 만히 하엿슬걸요! 지금 中央高普 모선생의 부인 김경희씨가 培花女高에 잇슬 때에 자미잇게 지냇지요. 그이는 기숙사에 잇섯고, 우리 집은 바로 야주개에 잇섯지요. 학교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1주일에 한번 禮拜堂에 가서만 맛나보는데 이 7일간이 어떠케도 멀든지요. 기다리고 기다러서 가 맛나서는 넘우 반가워서 껴안고는 무슨 말이 그러케 만헛는지요. 그리고 헤여질 때에는 반드시다만 손수건 한 개라도 주고야 왓섯슴니다. 마츰 貞洞 禮拜堂에서 復興會가 열엿슬 때에 培花學校에서는 매일 열을 지여서 禮拜堂에를 갓섯슴니다. 그 때 나는 우리집 대문 뒤에 숨어서 내다보다가 인물잘나고 머리 조흔 내 사랑하는 김씨가 석겨가면 빨이 문을 열고 나섬니다. 그러면 그도 선생들의 눈을 속혀서 몰내 빠져 드러오면 이에서 더 깃뿐 일이 어대 잇겟슴닛가.
또 한사람은 가튼 進明學校의 상급생이엇는데 지금 新義州에 잇는 배영순씨임니다. 엇덧케 나를 귀해 주웟는지요. 그는 기숙사에 잇고 나는 통학을 하엿는대 그 언니의 겻히 넘우 떠나기가 슬허서 기숙사에 들여 달나고 부모님께 막 떼를 썻답니다. 그래도 집에서야 어듸 들어 주서야지요. 그러면 기숙사에서 몃츨식 유하면서 다리가 압허서 못간다고 집에는 핑계를 하지요. 하도 그랫드니 두달동안 入舍를 허락하여 드럿갓섯답니다. 그러케 사랑하든 언니가 다른 사람과 사랑한다는 말이 들니겟지요. 넘우 성이 나서 하로는 그 언니를 붓잡고 마음것 울고는 그 사람을 거절하지 안흐면 죽겟다고 그런 일이 잇섯지요. 좌우간 내가 싀기가 만헛든 모양이지요. 그 동무가 싀집을 갈 때는 퍽도 섭섭하야 무척 울엇답니다. 그 후 커서는 理智가 커가니까 안되드군요. 東京가서는 吉貞姬氏와 사이가 조왓스나 어렷슬 때의 그것과는 퍽 달넛지요. 길氏는 아직 재학 중이고, 나는 졸업하고 귀국할 때 길氏 떠러지는 것이 앀시 섭섭하며 긔차박휘가 구를 때마다 마음이 안조튼태요.
류O준
아이개-망측해라. 半八十이나 된 사람더러 동성연애해 본 이약이를 하라고요. 그러나 문제는 퍽 자미잇는 문제올시다. 여학생치고는 대개가 그런 사실이 잇는 것이닛가. 나인들 엇재 업섯겟슴닛가. 퍽 오랜 일이지만은 지금에 말슴을 하닛가 새삼스럽게 녯생각이 머리 우에 떠오름니다그려. 하하...하. 나는 원래 어러서부터 감정보다도 理智가 비교뎍 만코 또 냉정한 까닭에 학생시대에도 내가 남을 사랑하야 보지는 서로 못하얏스나 남에게 사랑을 바더는 보앗슴니다. 내가 츰으로 서울에 와서 貞信女學校를 다닐 때임니다. 지금가트면 여자가 15, 6세에 日本이나 西洋가튼데를 가도 심상하게 녁이지만은 그 때만 하야도 平壤에서 서울만 와도 퍽 먼 것 갓고 산과 물이 모도 슬고 人情風俗言語가 모도 스투른데다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니 더구나 고적하고 부모님과 시골의 동무들 생각이 나서 참으로 견듸지를 못하얏슴니다. 그리하야 날마다 학과를 맛치고 내방으로 도라만 오면 그저 울기만 하얏슴니다. 밤에 달이 밝어도 울고 뜰에 꼿된 것만 보와도 울엇슴니다. 엇던 날 밤에는 엇지나 울엇던지 자릿저고리가 다 젓다십피하고 눈에 퉁퉁 부엇슴니다. 여북해서 동모들이 울네라고 별명을 다 짓지 안엇겟슴니가. 그러케 날마다 하도 울고 떼를 쓰닛가 기숙사 사감이 위로의 말로 하는 말이 누구나 츰에 와서는 다 그러하다가 약 두어달만 지내면<121> 집생각이 다 업서지는 것이닛가 끔적하고 두어달만 참으라고 하얏슴니다. 그 때까지 천진스러운 나는 그의 말을 하눈님의 말슴가티 꼭 밋고 두어달이 지나가기만 고대하엿슴니다. 기숙사 안에서 밤 중에 혼자 울다가도 다시 두어달만 되면 그럿치 안으랴니하고 스사로 위안을 하며 손 을 꼬바서 두달이 차기를 고대하얏슴니다. 그 때에 그 두달되기를 기다리는 품은 맛치 감옥에 잇는 죄수가 만기일을 기다리는 것이라던지 또는 노처녀가 혼인날 기다리는 것보다도 더 간절하얏슴니다. 지금 생각하야도 참 우숩지요. 한달이나 두달이나 자기가 마음먹게 달인 것도 모르고 사감의 말과다티 두달만 되면 그저 무조건하고 저절로 집생각이 다 업서지는 줄만 알엇슴니다. 그리하야 울다가도 날자 가는 것을 생각하면 적이나 위안이 되엿슴니다. 그러자 그럭저럭 두달이 건진 다가고 겨우 사흘이 남엇슴니다. 나는 마음에 퍽이나 반가워서 사감에게 말하기를 선생임 말슴대로 하면 제가 여긔에 온 지가 벌서 두달재 겨우 사흘이 남엇는데 츰이나 조금도 달름이 업시 그양 집생각만 나서 설음만 나서 웬일이야요 하닛가 웬걸이요. 그 사감은 전처럼 위로를 하야주기는커녕 노기가 나서 내 빰을 탁 따리며 하는 말이 『네긔! 못생긴 년! 아모리 시골띄이기로 공부와서 두달이 다 되도록 집생각하너라고 울기만 하고 공부 안이하는 바보가 어듸잇니. 그럴터이면 공부도 다 그만두고 도로 네 고향으로 가럄으나...』함니다. 나는 할 수 업시 그양 빰을 맛고는 더욱 분해서 그저 울기만 하얏슴니다. 그날에는 저녁밥도 먹지 안코 밤새도록 울기만 하얏슴니다.
그런 소문이 기숙사 안으로 짠 퍼저 여러 사람들이 모도 알게 되엿슴니다. 그 때 그 이웃방에는 P라는 상급학생이 잇섯슴니다. 그는 바로 지금 樂園洞 모병원장 P의사의 妹氏엿슴니다. 그는 나의 그러한 광경을 보고는 얼마나 동정을 하얏던지 일부러 차저와서 여러 가지의 말로 위로를 하야주며 또 자기의 방으로 와서 가티 잇자고 하얏슴니다. 나는 아모에게도 마음을 붓칠 곳이 업다가 그가 그와 가티 친절하게 굴어주니 얼마나 고마웟는지 알 수 업섯슴니다. 그리하야 그는 나를 친동생가티 사랑하고 나는 그를 친형님가티 밋고 또 사랑하얏슴니다. 내가 몸이 압흐면 그가 친히 약을 지어다가 다려주고 출출한 때이면 떡이나 果實가튼 것을 사다주며 혹은 손수건 紙筆墨가튼 것도 사서 주엇슴니다. 그리고 나도 우리 고향에서 무슨 선물이 오던지 하면 나는 못 먹어도 꼭 그를 주엇슴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오늘에 소위 동성연애겟지요. 그러나 엇전 까닭인지 그는 나를 그럿케 사랑하야 주건만은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것 보다도 퍽 무서워하얏슴니다. 그의 얼골이라던지 몸모양이 그다지 밉게 생기지도 안코 나에게는 그 외 업는 사랑을 하야 주건만은 다만 그의 손이 엇지나 보기에 무섭고 징글징글하얏던지 밤에나 낮에나 그의 손만 보면 그만 몸살이가 나고 무서워서 도모지 견듸지를 못하얏슴니다. 밤에 가티 자다가도 그의 손이 갓차이만 오면 맛치 큰 구렁이가 덤비는 것 가튼 생각이 나서 징그럽고 무서워 불불 떠럿슴니다. 지금도 그이 이약이를 하면 먼저 그 손 생각이 남니다. 손발이 잘 못생겨서 내외간에 정업는 사람도 잇다더니 참으로 그런가바요. 아이구참 그의 손! 활동사진에 나오는 악귀의 손보다도 더 무서운 손. 나의 사늞이라 할지 무섬이라 할지!
李德耀
하하하! 나의 동성연애하던 이약이 말슴임닛가. 나의 동성연애하던 이약이야말로 참으로 복잡하고 문제거리가 만엇슴니다. 그만해도 벌서 10여년전 일이닛가. 지금은 긔억에 어렴풋할 뿐이지만은 한참 당년에는 정열에 띄운 청춘남녀간 연애보다도 몃층 이상으로 더 격렬하야 허다한 파란극절이 잇섯더람니다. 나의 사랑하던 상대자는 물론 여러 사람이엿지만은 그 중에 제일 나와 관계가 깁고 문제를 만히 이르키기는 東京留學時代에 李O卿이란 동무학생과 O子란 일본여학생이엿슴니다. 일본여자는 여긔에 話外로 하고 李O卿과의 이약이만 하야도 참 長篇의 소설 한권은 넉넉히 될만 함니다. 원래 나와 이氏새에 사랑의 실마리가 생기기는 京城某高等女學校에서 공부할 시대엿슴니다. 그 때에 나와 이氏는 서로 한 기숙사에 잇섯슬 뿐 안이라 서로 심지가 통하고 감정이 가튼 까닭에 不知中 피차에 남다른 사랑을 하게 되엿슴니다. 나도 물론 그 때에는 理智보다 感情이 압섯던 까닭에 그를 특별히 사랑하얏지만은 이氏로 말하면 원래가 다정다한한 여성인 까닭에 나를 한 번 친한 뒤로는 일신에 정열을 다하야 나의게 사랑을 주엇슴니다. 어듸를 가도 물론 가티가고 잠을 자도 한 이불 속에서 가티 자며 그외 모든 것을 다 한몸 한뜻과 가티 지내섯슴니다. 그리하야 그는 한평생 이성과 결혼도 안이하고 나와 가티 살겟다고 자기 부모에게까지 언명한 일이 잇섯슴니다. 그러나 재학 중 그 때에는 서로 한곳에 잇서서 따듯한 사랑의 품 속에서 자미 잇는 세월을 보내게 되엿스닛가. 무슨 큰 문제거리는 업섯지만은 그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東京으로 유학을 하게 되고, 그는 본국에 잇서서 慶南密陽郡 어느 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니 어제밤까지 한 비개 우에서 단꿈을 뀌던 원앙새는 一朝에 동서로 갈이게 되엿슴니다. 그 때에 피차간 섭섭하고 쓰라린 마음이야 엇지 형언할 수 잇겟슴닛가. 그러나 나는 원래에 남성처럼 대범한 편이 만코 또 공부에 열중한 까닭에 그를 생각할 때에는 생각하얏스나 그다지 견듸지 못하야 고민하는 정도에까지는 잇지 안엇지만은 이씨는 츰으로 시골에 가서 고적한 중에 또 나만 생각하게 되니 자연 엄식도 맛이 업고 잠도 잘자지 못하게 되엿다 함니다. 엇던 때에는 몃칠식 밥을 굼고 잠을 안이 자다가 몸이 약해저서 體操를 가르치다가 운동장에 그대로 昏倒한 일까지 잇섯다고 함니다. 그리고 하루에도 편지 안이하는 날이 업고 편지를 하면 그 속에는 별의별 말이 다 잇섯슴니다. 그러다가 그 해 녀름방학 때에 집으로 가는 길에 水原에 잇는 그의 집으로 들이니 그는 맛치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듯시 나를 반갑게 마저 줌니다. 그 때에 두사람의 사랑은 재학시대보다 더 일충 격렬하야 잠시도 서로 떠나지지 안엇슴니다. 나도 다른 시골에 여행하랴던 계획도 다 중지하고 그만 그와 가티 한해 여름을 그의 집에서 지내다 십히 하여슴니다.
그러자 그해 가을에 내가 다시 東京으로 가게 되니 그는 나를 떠러저서 살 수 업다하고 죽기를 맹서하고 나와 가티 가자고 하니 나 亦 정에 끌이워 그를 참아 띠이지 못하고 약간의 학비를 변통하야 가티 東京으로 가게 되엿슴니다. 그와 나는 물론 한 기숙사에 잇섯슴니다. (某高等女學校) 문제가 이와 가티 순조로만 나아간다면 큰 일이 업겟지만은 교제가 넓어지면 넓어지는 이만치 사랑도 또한 범워가 넓어저서 삼각사각 내지 다각으로 변하게 되니 피차간 질투 시긔 저주 등이 생기고 또 생겨서 평지에 풍파가 이러나게 되엿슴니다. 그 때 東京에 유학하는 여학생 중에 H란 여학생도 잇고 K란 여학생도 잇섯는데 H란 사람은 참 동성연애의 박사칭호를 드를만치 연애를 잘하야 우리 기숙사에 와 잇는 중에 P란 학생과 사랑이 격렬하면서도 나를 또 사랑하게 되고 K란 학생도 무조건하고 나를 조와하야 그들 두사람은 언제이나 맛치 꼿에 쌍나비 차저오던이 내 방을 차저왓슴니다. 고전까지도 내가 남을 사랑하던 사람이 도로혀 피동으로 남에게 사랑을 밧게 되니 한쪽으로 우습기도 하고 자미스럽기도 하얏슴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자기의 생명 이상으로 사랑하던 이씨야 엇지 안심하고 그대로 잇겟슴닛가. 나의 一言一動을 모도 감시하는 동시에 그네들과 내가 조금만 갓차이하는 기색이 뵈이면 당장에 시긔와 질투가 생겨서 큰 풍파를 다 이르컷슴니다. 그런데 우서운 일은 그 때에 나와 사랑한 이는 실상 H씨요, K씨는 건물만 켜고 다니엿는데 이씨가 오해하기는 내가 K씨와 사랑하는 줄만 알고 K가 오면 별반 주의를 다하엿지만은 H의 오는 것은 그양 심상치지하야 이씨의 모르는 중에 H와 자미스러운 사랑을 하얏슴니다. 이성간데도 남늪�르는 사랑이 더 자미가 잇다더니 동성간에도 본애인을 속여가며 하는 사랑이 더 자미잇슴듸다. 그런데 그들과 딴 방에만 잇서도 그다지 골난치는 안엇겟지만은 그 뒤에 서로 관계관계상 H와 P도 우리 방으로 오고 K도 또한 우리 방으로 오게 되니 우리 방은 참으로 삼각사각의 사랑싸흠하는 비극장이 되엿슴니다. 잠을 잘 때에는 이씨가 물론 내엽헤서 자지만은 내가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몸을 갓차이 하던지 손을 대일가바 이씨는 잠을 한잠도 안이 자고 나를 감시하얏슴니다. P씨는 또 H씨가 다른 사람과 갓차이 할가바 이씨와 맛찬가지로 H를 감시하얏슴니다. 그 중에 K는 여긔도 마음대로 못하고 저긔도 마음대로 못하닛가 것몸이 다러서 또 한잠을 못잣슴니다. 그러고 보니 피차에 공부는 엇지 되고 몸골은 엇지 되겟슴닛가. 참으로 형언할 수업는 폐해가 만엇슴니다. 나는 이씨의 그 질투하는 것이 너무도 괴로워서 겨울에도 손을 이불 속에다 늣치를 못하고 두 손을 머리 뒤에다 깍지를 끽고 잣슴니다.
그리하야 한해 겨울을 지내고 나니 두 손이 모도 꽁꽁 어러서 부어 터젓슴니다. 그 질투 만흔 이씨도 내가 그럿케까지 하는 때는 매양 感心하고 또 안심을 하얏슴니다. 그러나 그 싸흠이 원래에 속히 끗이 날 일도 못되고 그리하다가는 공부고 무엇이고 다 틀이겟기로 그만 그곳을 떠나 혼자 다른 하숙으로 가게 되엿슴니다.
이씨가 나를 그와 가티 사랑하는 터에 내가 그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니 소위 恩反爲*格으로 나를 여간 원망하며 저주하얏겟슴닛가. 그날부터 그는 사랑하던 몃배 이상으로 나를 미워하야 욕이란 욕은 할대로 다하고 험담이란 험담은 마음것 다하야 심지어 자기 잇는 방에다 나의 사진을 거러노코 그 밋헤는 「원숭이가튼년」무슨 년 무슨 년하고 별의별 욕을 다 써놋코 엇던 때에는 나를 죽이고 자긔도 죽는다고 칼까지 품에 품고 다넷슴니다. 그러나 나는 그양 냉정하게 지내닛가 그도 얼마 안이 잇다가 스사로 그 원망이 삭으러지고 다시 나를 차저 와서 자기의 잘못을 사하고 또 전과 가티 한집에 가서 잇기를 청하니 나 亦 다시 그 집으로 갓슴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다 꿈과 가터서 우섭기도 하고 그립기도 함니다. 그 뒤에도 만흔 풍파가 잇섯지마는 너무 지리하야 이만 말슴하겟슴니다.
Amour
dpsooStrneY8e50t28iae01633h776a9tsug 1:9t1acdr52c 409y649f99 ·
Lesbian Lovers Kissing In Tiananme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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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流名士의 同性戀愛記
黃信德
여학생시대에 동성연애를 안해 본 사람은 별로 업스리다. 나도 그 축에 빠지지 안코 여러 차례의 경험도 업지는 안슴니다만은 나는 대개가 順路로 모다 친하엿기 때문에 자미잇는 일호는 별로 업슴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수은 일은 더러 잇지요. 이 때까지 니치지 안는 것은 崇義學校잇슬 때에 泰川서 온 동모하고 퍽 친하게 지낸 일이 잇슴니다. 그 동모는 부모도 업는 퍽 불상한 사람인더 처음의 동기는 아마 동정에서부터 이러낫든 모양이지요. 집에서 맛난 음식이 잇스면 반드시 기숙사에 잇는 그 동모를 데려내다가 가히 먹어야 마음이 편하고 아침에 학교에 갈 때는 그 동모의 얼골 볼 것을 생각하면 벌거롬이 빨너지며 아음이 깃버젓슴니다. 그러다가 겨울방학이 되어 동모가 고향으로 가게 되엿슬 때에 2주일 동안밧게 안이되건만 그동안 견딀 일이 란처하엿슴니다. 그래 어더케 서릅든지 정거장에서 막 붓잡고 두리서 울엇지요. 목소리가 놉하가는 것도 알지 못하고 한참 울다 나닛가 구경군이 쭉 둘너섯겟지요. 그 후 동모가 간 뒤로는 그러케 빠지지 안코 단니든 레배당에를 혼자가안즘에 넘우 서어해서 몃번이나 빠젓답니다. 이것이 나의 최초의 동성연애인가 봄니다. 그 후로도 만흔 동무를 친햇지마는 그 때적가티 순전한 감정으로만 사랑해 본적이 업슴니다.
許英肅
14, 5세때에 進明學校를 단니면서 동성연애를 만히 하엿슴니다. 별로 남에게 뒤지지 안케 만히 하엿슬걸요! 지금 中央高普 모선생의 부인 김경희씨가 培花女高에 잇슬 때에 자미잇게 지냇지요. 그이는 기숙사에 잇섯고, 우리 집은 바로 야주개에 잇섯지요. 학교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1주일에 한번 禮拜堂에 가서만 맛나보는데 이 7일간이 어떠케도 멀든지요. 기다리고 기다러서 가 맛나서는 넘우 반가워서 껴안고는 무슨 말이 그러케 만헛는지요. 그리고 헤여질 때에는 반드시다만 손수건 한 개라도 주고야 왓섯슴니다. 마츰 貞洞 禮拜堂에서 復興會가 열엿슬 때에 培花學校에서는 매일 열을 지여서 禮拜堂에를 갓섯슴니다. 그 때 나는 우리집 대문 뒤에 숨어서 내다보다가 인물잘나고 머리 조흔 내 사랑하는 김씨가 석겨가면 빨이 문을 열고 나섬니다. 그러면 그도 선생들의 눈을 속혀서 몰내 빠져 드러오면 이에서 더 깃뿐 일이 어대 잇겟슴닛가.
또 한사람은 가튼 進明學校의 상급생이엇는데 지금 新義州에 잇는 배영순씨임니다. 엇덧케 나를 귀해 주웟는지요. 그는 기숙사에 잇고 나는 통학을 하엿는대 그 언니의 겻히 넘우 떠나기가 슬허서 기숙사에 들여 달나고 부모님께 막 떼를 썻답니다. 그래도 집에서야 어듸 들어 주서야지요. 그러면 기숙사에서 몃츨식 유하면서 다리가 압허서 못간다고 집에는 핑계를 하지요. 하도 그랫드니 두달동안 入舍를 허락하여 드럿갓섯답니다. 그러케 사랑하든 언니가 다른 사람과 사랑한다는 말이 들니겟지요. 넘우 성이 나서 하로는 그 언니를 붓잡고 마음것 울고는 그 사람을 거절하지 안흐면 죽겟다고 그런 일이 잇섯지요. 좌우간 내가 싀기가 만헛든 모양이지요. 그 동무가 싀집을 갈 때는 퍽도 섭섭하야 무척 울엇답니다. 그 후 커서는 理智가 커가니까 안되드군요. 東京가서는 吉貞姬氏와 사이가 조왓스나 어렷슬 때의 그것과는 퍽 달넛지요. 길氏는 아직 재학 중이고, 나는 졸업하고 귀국할 때 길氏 떠러지는 것이 앀시 섭섭하며 긔차박휘가 구를 때마다 마음이 안조튼태요.
류O준
아이개-망측해라. 半八十이나 된 사람더러 동성연애해 본 이약이를 하라고요. 그러나 문제는 퍽 자미잇는 문제올시다. 여학생치고는 대개가 그런 사실이 잇는 것이닛가. 나인들 엇재 업섯겟슴닛가. 퍽 오랜 일이지만은 지금에 말슴을 하닛가 새삼스럽게 녯생각이 머리 우에 떠오름니다그려. 하하...하. 나는 원래 어러서부터 감정보다도 理智가 비교뎍 만코 또 냉정한 까닭에 학생시대에도 내가 남을 사랑하야 보지는 서로 못하얏스나 남에게 사랑을 바더는 보앗슴니다. 내가 츰으로 서울에 와서 貞信女學校를 다닐 때임니다. 지금가트면 여자가 15, 6세에 日本이나 西洋가튼데를 가도 심상하게 녁이지만은 그 때만 하야도 平壤에서 서울만 와도 퍽 먼 것 갓고 산과 물이 모도 슬고 人情風俗言語가 모도 스투른데다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니 더구나 고적하고 부모님과 시골의 동무들 생각이 나서 참으로 견듸지를 못하얏슴니다. 그리하야 날마다 학과를 맛치고 내방으로 도라만 오면 그저 울기만 하얏슴니다. 밤에 달이 밝어도 울고 뜰에 꼿된 것만 보와도 울엇슴니다. 엇던 날 밤에는 엇지나 울엇던지 자릿저고리가 다 젓다십피하고 눈에 퉁퉁 부엇슴니다. 여북해서 동모들이 울네라고 별명을 다 짓지 안엇겟슴니가. 그러케 날마다 하도 울고 떼를 쓰닛가 기숙사 사감이 위로의 말로 하는 말이 누구나 츰에 와서는 다 그러하다가 약 두어달만 지내면<121> 집생각이 다 업서지는 것이닛가 끔적하고 두어달만 참으라고 하얏슴니다. 그 때까지 천진스러운 나는 그의 말을 하눈님의 말슴가티 꼭 밋고 두어달이 지나가기만 고대하엿슴니다. 기숙사 안에서 밤 중에 혼자 울다가도 다시 두어달만 되면 그럿치 안으랴니하고 스사로 위안을 하며 손 을 꼬바서 두달이 차기를 고대하얏슴니다. 그 때에 그 두달되기를 기다리는 품은 맛치 감옥에 잇는 죄수가 만기일을 기다리는 것이라던지 또는 노처녀가 혼인날 기다리는 것보다도 더 간절하얏슴니다. 지금 생각하야도 참 우숩지요. 한달이나 두달이나 자기가 마음먹게 달인 것도 모르고 사감의 말과다티 두달만 되면 그저 무조건하고 저절로 집생각이 다 업서지는 줄만 알엇슴니다. 그리하야 울다가도 날자 가는 것을 생각하면 적이나 위안이 되엿슴니다. 그러자 그럭저럭 두달이 건진 다가고 겨우 사흘이 남엇슴니다. 나는 마음에 퍽이나 반가워서 사감에게 말하기를 선생임 말슴대로 하면 제가 여긔에 온 지가 벌서 두달재 겨우 사흘이 남엇는데 츰이나 조금도 달름이 업시 그양 집생각만 나서 설음만 나서 웬일이야요 하닛가 웬걸이요. 그 사감은 전처럼 위로를 하야주기는커녕 노기가 나서 내 빰을 탁 따리며 하는 말이 『네긔! 못생긴 년! 아모리 시골띄이기로 공부와서 두달이 다 되도록 집생각하너라고 울기만 하고 공부 안이하는 바보가 어듸잇니. 그럴터이면 공부도 다 그만두고 도로 네 고향으로 가럄으나...』함니다. 나는 할 수 업시 그양 빰을 맛고는 더욱 분해서 그저 울기만 하얏슴니다. 그날에는 저녁밥도 먹지 안코 밤새도록 울기만 하얏슴니다.
그런 소문이 기숙사 안으로 짠 퍼저 여러 사람들이 모도 알게 되엿슴니다. 그 때 그 이웃방에는 P라는 상급학생이 잇섯슴니다. 그는 바로 지금 樂園洞 모병원장 P의사의 妹氏엿슴니다. 그는 나의 그러한 광경을 보고는 얼마나 동정을 하얏던지 일부러 차저와서 여러 가지의 말로 위로를 하야주며 또 자기의 방으로 와서 가티 잇자고 하얏슴니다. 나는 아모에게도 마음을 붓칠 곳이 업다가 그가 그와 가티 친절하게 굴어주니 얼마나 고마웟는지 알 수 업섯슴니다. 그리하야 그는 나를 친동생가티 사랑하고 나는 그를 친형님가티 밋고 또 사랑하얏슴니다. 내가 몸이 압흐면 그가 친히 약을 지어다가 다려주고 출출한 때이면 떡이나 果實가튼 것을 사다주며 혹은 손수건 紙筆墨가튼 것도 사서 주엇슴니다. 그리고 나도 우리 고향에서 무슨 선물이 오던지 하면 나는 못 먹어도 꼭 그를 주엇슴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오늘에 소위 동성연애겟지요. 그러나 엇전 까닭인지 그는 나를 그럿케 사랑하야 주건만은 나는 그를 사랑한다는 것 보다도 퍽 무서워하얏슴니다. 그의 얼골이라던지 몸모양이 그다지 밉게 생기지도 안코 나에게는 그 외 업는 사랑을 하야 주건만은 다만 그의 손이 엇지나 보기에 무섭고 징글징글하얏던지 밤에나 낮에나 그의 손만 보면 그만 몸살이가 나고 무서워서 도모지 견듸지를 못하얏슴니다. 밤에 가티 자다가도 그의 손이 갓차이만 오면 맛치 큰 구렁이가 덤비는 것 가튼 생각이 나서 징그럽고 무서워 불불 떠럿슴니다. 지금도 그이 이약이를 하면 먼저 그 손 생각이 남니다. 손발이 잘 못생겨서 내외간에 정업는 사람도 잇다더니 참으로 그런가바요. 아이구참 그의 손! 활동사진에 나오는 악귀의 손보다도 더 무서운 손. 나의 사늞이라 할지 무섬이라 할지!
李德耀
하하하! 나의 동성연애하던 이약이 말슴임닛가. 나의 동성연애하던 이약이야말로 참으로 복잡하고 문제거리가 만엇슴니다. 그만해도 벌서 10여년전 일이닛가. 지금은 긔억에 어렴풋할 뿐이지만은 한참 당년에는 정열에 띄운 청춘남녀간 연애보다도 몃층 이상으로 더 격렬하야 허다한 파란극절이 잇섯더람니다. 나의 사랑하던 상대자는 물론 여러 사람이엿지만은 그 중에 제일 나와 관계가 깁고 문제를 만히 이르키기는 東京留學時代에 李O卿이란 동무학생과 O子란 일본여학생이엿슴니다. 일본여자는 여긔에 話外로 하고 李O卿과의 이약이만 하야도 참 長篇의 소설 한권은 넉넉히 될만 함니다. 원래 나와 이氏새에 사랑의 실마리가 생기기는 京城某高等女學校에서 공부할 시대엿슴니다. 그 때에 나와 이氏는 서로 한 기숙사에 잇섯슬 뿐 안이라 서로 심지가 통하고 감정이 가튼 까닭에 不知中 피차에 남다른 사랑을 하게 되엿슴니다. 나도 물론 그 때에는 理智보다 感情이 압섯던 까닭에 그를 특별히 사랑하얏지만은 이氏로 말하면 원래가 다정다한한 여성인 까닭에 나를 한 번 친한 뒤로는 일신에 정열을 다하야 나의게 사랑을 주엇슴니다. 어듸를 가도 물론 가티가고 잠을 자도 한 이불 속에서 가티 자며 그외 모든 것을 다 한몸 한뜻과 가티 지내섯슴니다. 그리하야 그는 한평생 이성과 결혼도 안이하고 나와 가티 살겟다고 자기 부모에게까지 언명한 일이 잇섯슴니다. 그러나 재학 중 그 때에는 서로 한곳에 잇서서 따듯한 사랑의 품 속에서 자미 잇는 세월을 보내게 되엿스닛가. 무슨 큰 문제거리는 업섯지만은 그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東京으로 유학을 하게 되고, 그는 본국에 잇서서 慶南密陽郡 어느 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니 어제밤까지 한 비개 우에서 단꿈을 뀌던 원앙새는 一朝에 동서로 갈이게 되엿슴니다. 그 때에 피차간 섭섭하고 쓰라린 마음이야 엇지 형언할 수 잇겟슴닛가. 그러나 나는 원래에 남성처럼 대범한 편이 만코 또 공부에 열중한 까닭에 그를 생각할 때에는 생각하얏스나 그다지 견듸지 못하야 고민하는 정도에까지는 잇지 안엇지만은 이씨는 츰으로 시골에 가서 고적한 중에 또 나만 생각하게 되니 자연 엄식도 맛이 업고 잠도 잘자지 못하게 되엿다 함니다. 엇던 때에는 몃칠식 밥을 굼고 잠을 안이 자다가 몸이 약해저서 體操를 가르치다가 운동장에 그대로 昏倒한 일까지 잇섯다고 함니다. 그리고 하루에도 편지 안이하는 날이 업고 편지를 하면 그 속에는 별의별 말이 다 잇섯슴니다. 그러다가 그 해 녀름방학 때에 집으로 가는 길에 水原에 잇는 그의 집으로 들이니 그는 맛치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듯시 나를 반갑게 마저 줌니다. 그 때에 두사람의 사랑은 재학시대보다 더 일충 격렬하야 잠시도 서로 떠나지지 안엇슴니다. 나도 다른 시골에 여행하랴던 계획도 다 중지하고 그만 그와 가티 한해 여름을 그의 집에서 지내다 십히 하여슴니다.
그러자 그해 가을에 내가 다시 東京으로 가게 되니 그는 나를 떠러저서 살 수 업다하고 죽기를 맹서하고 나와 가티 가자고 하니 나 亦 정에 끌이워 그를 참아 띠이지 못하고 약간의 학비를 변통하야 가티 東京으로 가게 되엿슴니다. 그와 나는 물론 한 기숙사에 잇섯슴니다. (某高等女學校) 문제가 이와 가티 순조로만 나아간다면 큰 일이 업겟지만은 교제가 넓어지면 넓어지는 이만치 사랑도 또한 범워가 넓어저서 삼각사각 내지 다각으로 변하게 되니 피차간 질투 시긔 저주 등이 생기고 또 생겨서 평지에 풍파가 이러나게 되엿슴니다. 그 때 東京에 유학하는 여학생 중에 H란 여학생도 잇고 K란 여학생도 잇섯는데 H란 사람은 참 동성연애의 박사칭호를 드를만치 연애를 잘하야 우리 기숙사에 와 잇는 중에 P란 학생과 사랑이 격렬하면서도 나를 또 사랑하게 되고 K란 학생도 무조건하고 나를 조와하야 그들 두사람은 언제이나 맛치 꼿에 쌍나비 차저오던이 내 방을 차저왓슴니다. 고전까지도 내가 남을 사랑하던 사람이 도로혀 피동으로 남에게 사랑을 밧게 되니 한쪽으로 우습기도 하고 자미스럽기도 하얏슴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자기의 생명 이상으로 사랑하던 이씨야 엇지 안심하고 그대로 잇겟슴닛가. 나의 一言一動을 모도 감시하는 동시에 그네들과 내가 조금만 갓차이하는 기색이 뵈이면 당장에 시긔와 질투가 생겨서 큰 풍파를 다 이르컷슴니다. 그런데 우서운 일은 그 때에 나와 사랑한 이는 실상 H씨요, K씨는 건물만 켜고 다니엿는데 이씨가 오해하기는 내가 K씨와 사랑하는 줄만 알고 K가 오면 별반 주의를 다하엿지만은 H의 오는 것은 그양 심상치지하야 이씨의 모르는 중에 H와 자미스러운 사랑을 하얏슴니다. 이성간데도 남늪�르는 사랑이 더 자미가 잇다더니 동성간에도 본애인을 속여가며 하는 사랑이 더 자미잇슴듸다. 그런데 그들과 딴 방에만 잇서도 그다지 골난치는 안엇겟지만은 그 뒤에 서로 관계관계상 H와 P도 우리 방으로 오고 K도 또한 우리 방으로 오게 되니 우리 방은 참으로 삼각사각의 사랑싸흠하는 비극장이 되엿슴니다. 잠을 잘 때에는 이씨가 물론 내엽헤서 자지만은 내가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몸을 갓차이 하던지 손을 대일가바 이씨는 잠을 한잠도 안이 자고 나를 감시하얏슴니다. P씨는 또 H씨가 다른 사람과 갓차이 할가바 이씨와 맛찬가지로 H를 감시하얏슴니다. 그 중에 K는 여긔도 마음대로 못하고 저긔도 마음대로 못하닛가 것몸이 다러서 또 한잠을 못잣슴니다. 그러고 보니 피차에 공부는 엇지 되고 몸골은 엇지 되겟슴닛가. 참으로 형언할 수업는 폐해가 만엇슴니다. 나는 이씨의 그 질투하는 것이 너무도 괴로워서 겨울에도 손을 이불 속에다 늣치를 못하고 두 손을 머리 뒤에다 깍지를 끽고 잣슴니다.
그리하야 한해 겨울을 지내고 나니 두 손이 모도 꽁꽁 어러서 부어 터젓슴니다. 그 질투 만흔 이씨도 내가 그럿케까지 하는 때는 매양 感心하고 또 안심을 하얏슴니다. 그러나 그 싸흠이 원래에 속히 끗이 날 일도 못되고 그리하다가는 공부고 무엇이고 다 틀이겟기로 그만 그곳을 떠나 혼자 다른 하숙으로 가게 되엿슴니다.
이씨가 나를 그와 가티 사랑하는 터에 내가 그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니 소위 恩反爲*格으로 나를 여간 원망하며 저주하얏겟슴닛가. 그날부터 그는 사랑하던 몃배 이상으로 나를 미워하야 욕이란 욕은 할대로 다하고 험담이란 험담은 마음것 다하야 심지어 자기 잇는 방에다 나의 사진을 거러노코 그 밋헤는 「원숭이가튼년」무슨 년 무슨 년하고 별의별 욕을 다 써놋코 엇던 때에는 나를 죽이고 자긔도 죽는다고 칼까지 품에 품고 다넷슴니다. 그러나 나는 그양 냉정하게 지내닛가 그도 얼마 안이 잇다가 스사로 그 원망이 삭으러지고 다시 나를 차저 와서 자기의 잘못을 사하고 또 전과 가티 한집에 가서 잇기를 청하니 나 亦 다시 그 집으로 갓슴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다 꿈과 가터서 우섭기도 하고 그립기도 함니다. 그 뒤에도 만흔 풍파가 잇섯지마는 너무 지리하야 이만 말슴하겟슴니다.
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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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bian Lovers Kissing In Tiananme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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