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6

"정말 백제관음상일까" 논란재연


[법륭사 목불] "정말 백제관음상일까" 논란재연
기사 북마크 기사 공유 글꼴 크기
입력 1997.01.08 18:08

<신형준기자>
『만일 일본열도가 침몰할 때 일본에서 단 하나의 물건만을 가지고
나올 수 있다면, 나는 백제관음상을 갖고 나가겠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
답고 오래됐다는 호류지(법륭사)에 백제관음상이 없었다면 호류지의 가

치는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다.』(소설가 앙드레말로).

『이번에 서양의 대표적 조각이 왔듯이, 다음에는 동양의 대표적인
백제관음상이 파리에서 전시되기를 바란다.』(일본에서 「미로의 비너스」
전시회가 열렸을 때 퐁피두 전프랑스대통령이 개막인사에서 한 말)나라
호류지(나량 법륭사) 대보장전에 모신 「백제 목조 관음상」에대해 프랑스
의 대표적 지성들은 이렇게 격찬했다.

올해 프랑스에서 열릴 「일본의 해」 기념행사에 맞춰 프랑스와 일본
양국 관계자들이 백제관음상을 에서 전시키로 합의했다고 최
근 보도되면서 다시금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백제관음상」. 높이 209㎝
에 녹나무로 만든 백제관음상은 일본에서도 자국문화를 대표하는 국보로
꼽힌다.

백제라는 나라는 몰라도, 국보 백제관음상을 모르는 일본인은 없다
고 할 정도. 인체의 실제 비례미를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분명 기형적
으로 가느다랗다. 그러나 불균형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전체적으
로 부드러운 곡선처리는 한껏 안정감을 준다.

도톰한 볼, 인자한 눈매, 잔잔한 미소, 여인처럼 부드럽게 흘러내
린 팔, 한눈에도 도드라져 보이는 아랫배…. 세세한 부분을 살펴보면
이처럼 풍만하다는 느낌마저도 주는 명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언제
누가 이 관음상을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 작품에 대한 명문 등이
전혀 없는 탓이다.

다만 서기 7세기에 제작됐으며, 당시 일본의 아스카(비조)문화의
조각품과는 다른 이국적인 맛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백제에서 만들어 일
본에 전해졌거나, 일본으로 건너온 백제인이 만들었다는게 통설이다.

반면 이 작품이 백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강우방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우리나라에서 나무로 불상
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통일신라 때까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목불제작
기법이 약한 한반도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본다』고 주장했다.

강실장은 『백제관음상에 대한 국내전문가들의 연구가 전무한 것도
이같은 이유때문』이라며 『일본의 미술사학자들도 이같은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백제관음상에서 이국적인 기법으로 손꼽는 「길고 가느다란 미」
는 중국 수나라의 양식이 변형된 것으로 보이며, 목불은 중국이나 일본
에서 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일본에도 현재로선 진실을 밝힐만한
어떤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