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6

10. 문학의 발전











기독교 초기선교사들에 의해 한글이 재발견 되었다는 것은 이미 전편에서 밝혔다.1885년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는 천대받던 한글을 재발견,대중화시키고 이를 토대로 민중의 삶과 문화속에 녹아들어가면서 문학의 발전을 가져온다.즉 성서의 한글번역이 한글의 재발견과 보급으로 이어지고 순한글문화를 형성하면서 기독교토양에서 성장한 인물들에 의해 문학이 눈을 뜨게 된다.

1882년 중국에서 존로스 맥킨타이어 서상륜 등이 번역한 ‘예수셩교젼서’ 이후 계속된 성경의 한글번역은 한국근대문학사에 충격적인 성과를 거뒀다.이제껏 천민과 규방용으로만 천시되어 오던 언문이 민족어로,토속어에서 문화어로,문화어에서 문학어로 발전하는 토대를 성경번역이 만들어 낸 것이다.

성경의 한글역은 한국 근대산문문체도 개척했다.초기 기독교인이었던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순한글로 채택한 것이나 한국 최초의 번역소설인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산문문체의 개발에 자극을 제공했다.

1890년에 나온 찬미가 찬양가 찬성시 등 찬송가는 한국 신시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다.교회와 미션계 학교에서 불려지기 시작한 찬송가가 애국창가 학도가로 확대되어 신체시의 형성기틀을 만든 것이다.

교회에서 신문화를 배우고 익힌 기독인들이 문학에 진출하면서 한국의 현대문학은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현대문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이인직 안국선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소설분야에서는 이광수 염상섭 전영택 황순원 임용빈 등이 나타났으며 이종환 이범선 임옥인 백도기 오승재 등으로 이어진다.시분야에서는 주요한 김동명 장정심 오신혜 윤동주 등이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김현승 황금찬 박두진 박근영 전재동 김원식 조남기 이성교 김태규 등으로 기독교문학의 맥을 이어갔다.최초의 동인지 ‘창조’를 주재한 김동인은 장로의 아들이며,최초의 근대시 ‘불놀이’를 쓴 주요한이 목사의 아들이다.이들과 함께 ‘창조’동인으로 활약한 전영택이 청산학원 신학부를 나와 목사가 되었으며 오상순도 전도사였다.변영로가 YMCA 영어반 출신이며 대부분의 문학인들이 교회와 교회가 설립한 미션스쿨에서 수학한 인물이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소설문학에서 최초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쓴 작품이다.

이광수의 ‘흙’ ‘무정’은 상황설정이나 소재 모두가 기독교사상을 담고 있다.1918년 발표된 최초의 장편소설 ‘무정’은 기독교인으로 등장하는 김장로는 당시 개화인의 상징적인 인물이다.김장로와 그의 딸이 보여주는 것은 서구문화에 일찍 눈을 뜨고 서구교육에 대해 지지하며 특히 자유연애와 반봉건적인 윤리체계 등 일련의 새로운 윤리관과 행동을 만들어 냈다.

당시 이광수는 기독교와 한국에 들어온 서구문물을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이광수는 후에 도산 안창호를 곁에서 모시는 등 기독교의 사상을 끝까지 견지해 간다.

염상섭의 ‘삼대’ ‘덕대’ 김동인의 ‘무녀도’ 등은 모두 기독교의 토양에서 만들어진 것이다.‘삼대’와 ‘무녀도’는 기독교를 정면으로 다루어 본질적인 소재를 수용한 최초의 작품들로 평가받고 있다.

김동리의 무녀도는 무당과 교회전도사간의 신유의 체험을 다루는 지극히 기독교적 작품이고 해방후에 내놓은 ‘사반의 십자가’는 소재 자체가 기독교의 것이다.

‘소나기’의 작가로 유명한 황순원의 ‘그’는 완전히 기독교 작품이다.아버지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근무한 것 때문에 어릴때 부터 기독교적 토양에서 자란 황순원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충격과 감동을 ‘그’란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전영택은 일본 유학시절 2·8독립선언에 참여했고 1922년에는 서울감리교신학교 교수로 부임했으며 아현교회 담임,미국 퍼시픽신학교 유학,기독교 잡지 ‘새사람’등을 출간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그의 작품 ‘화수분’은 주인공 화수분 일가의 가난한 생활을 그린 것으로 기독교의 사랑과 인간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에서는 정지용이 가톨릭이었지만 윤동주 김현승 박두진은 독실한 개신교신자였다.

윤동주는 할아버지(윤하현)가 장로였으며 외삼촌 김약연이 목사인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증조부가 함경북도 종성에서 북간도 자동으로 이주했고 이어 명동으로 옮겼다.윤동주는 용정의 은진중학교를 나온뒤 평양 숭실고등학교를 졸업했다.은진 중학교 2학년때 ‘삶과 죽음’ ‘초 한대’라는 시를 발표했는데 ‘초 한대’에서 그는 예수의 탄생을 생각하며 예수를 위대한 향내를 남기며 심지까지 타들어가는 깨끗한 재물이라고 표현했다.어릴때부터 기독교신앙에서 자란 그는 후에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표하면서 민족시인으로 우뚝섰다.

대표적인 기독교 시인인 김현승은 ‘가을의 기도’ ‘아침‘ ‘황혼’ ‘내일’ ‘동면’ ‘플라타너스’ ‘내가 가난할 때’ ‘새벽에’ ‘크리스마스와 우리집’ 등을 남겼다.전남 광주에서 김창국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숭실전문때부터 기독교 사상이 담긴 시를 써 기독교 문단에 큰 영향을 남겼다.

이처럼 기독교의 문학적 공헌에 대해 이광수는 “아마 조선글과 조선말이 진정한 의미로 고상한 사상을 담는 그릇이 됨은 성경의 번역이 시초일 것이요,만일 후일에 조선문학이 건설된다면 그 문학사의 제1면에는 신구약의 번역이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갑오경장이후 홍수처럼 밀려들어온 서구문물은 기독교 토양의 문물이었기에 한국근대사에 기독교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초기 기독교가 진리와 자유와 평화,섬김과 나눔,영혼구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기에 민중을 변화시키고 민족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문학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승한 shlee@kukminilbo.co.kr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