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3

<소녀상과 『제국의 위안부』> 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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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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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과 『제국의 위안부』>
내가 5월 17일 오전 2시 38분에 쓴 글 <정의연 안성 평화와 치유의 집 관련한 생각>에는 '소녀상'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 글이 이미 며칠 된 글이에서 타임라인에서 아래로 내려갔고, 여러 번 공유되었기에 별도의 새 글에서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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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5월 17일에 쓴 글 중 일부
"7. 위안부 소녀상이 피해자의 연약하고 가녀린 면모를 부각시키는 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여성 차별일 수도 있다. 그 분들을 '투사'로 만드는 것이 폭력이었을 수도 있다. 소녀가 아닌 위안부, 과부인 위안부, 어떤 일인지 정확히 모르고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간 위안부, 당당한 위안부, 세월이 흘러 행복을 찾은 위안부, 수요집회 안 나가고 가족이랑 있고 싶은 위안부, 웃는 위안부, 보상금 받아 편안히 지내고 싶은 위안부, 일본에 적대감이 조금 덜한 위안부, 소녀상을 보면 과거가 떠올라 소녀상을 보고 싶지 않은 위안부, 다 있을 수 있는데, 소녀상이 보여주는 건 '슬프고 억울하고 한 맺힌 순수한 소녀', '일본에 의해 짓밟힌 처녀' 이미지뿐이다. 그 이미지에 위안부가 갇히는 것은 옳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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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5월 17일에 이 글을 쓸 때에도, 어디서 많이 본 내용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쓰기는 했다. 그러다 오늘 시간이 나서 몇 해 전에 읽었던 『제국의 위안부』를 다시 부분적으로 검토해보았다.
『제국의 위안부』 2판(34곳 삭제판), 204쪽에서 209쪽에는 '소녀상'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글의 전체적인 체계를 가늠하기 쉽도록 목차의 장, 절을 간단히 소개하면, '제3부 냉전 종식과 위안부 문제' 안에, '제 3장 한국 지원운동의 모순'이 있고, 그 안에 '1. 서울 정대협 운동의 공과'라는 소제목 하에 <'위안부'가 없는 '위안부 소녀상'>이라는 단락의 글이 있다.

거기에는 위안부들의 평균 연령이 25세였음을 근거로, 소녀상이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 나온다. 구체적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혹은 앞에서 살펴본 위안부의 평균 연령이 25세였다는 자료를 참고한다면, 실제로 존재한 대다수의 성인 위안부가 아니라 예외적인 존재였던 위안부만을 대표하는 상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대사관 앞 소녀상이 실제 위안부를 상징하는 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소녀상은 마치 '위안부'의 대부분이 소녀였던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들고, '소녀 위안부'의 기억을 강화시켜 나간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뿌리와이파리, 2017,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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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이 박유하의 글을 도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일부 생각이 겹치는 내용도 있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근원과 배경에는 이 책의 영향이 있었기에 그 점을 밝혀두어야 할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


박유하의 글과 나의 글은 물론 서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이니 만큼, 세부적인 부분과 글의 맥락은 차이가 있다. 페친 분들 중에는 박유하의 글을 읽지 않았을 사람이 많이 있으므로, 조금 길더라도, 그 글을 좀 더 인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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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하자면 소녀상은 '저항하는 위안부'일 뿐 일본군과의 또 다른 관계는 드러내지 않는다. 혹은 그 분노가 '일본군' 이외의 존재를 향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205쪽)
(2) 소녀상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저항하고 싸우는 소녀'의 모습이야말로 한국인이 자신과 오버랩시키고 싶어하는 아이덴티티로 이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소녀상이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은 실상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리얼리티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위안부'를 바람직한 '민족의 딸'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205쪽)
(3) 그러다 보니 소녀상은, 그녀가 때로 가족을 위해 나섰던 희생정신도, 아들이 아닌 딸이 팔려가기 쉬웠던 가부장제하의 피해자성도, 그녀들을 '강제로 끌고 간' 우리 안의 가해자들도 보여주지 않는다. (205쪽)
(4) 소녀상이 저항하는 모습만 표현하는 이상, 일본옷을 입었던 일본이름의 '조선인 위안부'의 기억이 등장할 여지는 없다. 그들의 또 다른 생활과 기억, 일본 군인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놀며 웃었던 기억을 가진 '위안부'는 그곳에는 존재할 수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군인을 자신과 같은 운명에 떨어진 가엾은 존재로 간주하고 동정했던 위안부도 물론 없다. (205~205쪽)
(5) 그녀들이 해방 후 돌아오지 못했던 것은 일본뿐 아니라 우리 자신 때문이기도 했다. 즉 '더럽혀진' 여성을 배척하는 순결주의와 가부장적 인식도 오랫동안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 원인이었다. (206쪽)
(6) 그래서 대사관 앞 소녀상은 협력과 오욕의 기억을 당사자도 보는 이도 함께 소거해버린 '민족의 피해자'로서의 상일 뿐이다. (206쪽)
(7) 소녀가 '성처녀'로서의 '순결'과 '저항'의 이미지만 담고 있는 것은 그래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녀상은 부끄러운 기억을 망각하거나 규탄하여 '우리' 밖으로 내몰아온 해방 후 60여 년의 세월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8) 위안부가 되기 전에 그렇게 어린 '소녀'를 내몬 '손' 또한 우리 안의 또 다른 손이기도 했다는 것은 잊은 채로. (207쪽)
(9)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207쪽)
(10) ooo (복자 처리) 하고 하나의 이미지,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미지만을 표현하는 '소녀'상은 협력해야 했던 '위안부'의 슬픔은 표현하지 못한다. '위안부'가 되기 전의 순수한 모습만을 기억하는 것은 '더럽혀지'기 전의 우리 자신을 상상하고 간직하는 일로 우리 자신을 위안할 수 있지만, 그것은 식민지가 무엇이었는지를 보는 것을 여전히 외면하는 일이다. 따라서 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조선인 위안부'도 아니고 우리 자신일 수도 없다. (207쪽)
(11) 소녀상으로 대표되는 '위안부'에게 종용한 것은 실제로는 우리 자신은 일상 속에서는 잊어버리고 무관심하게 지내는 일, 즉 '민족의 딸'로 존재해주는 일이다. (208쪽)
(12) 그런 의미에서는, 소녀상은 위안부 자신이라기보다는 정대협의 이상을 대변하는 상이다. 다시 말해 소녀상은 '그때의 조선인 위안부'라기보다는 '20여 년의 데모'와 운동가가 된 위안부이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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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글을 자주 읽었던 분들이 아니라면, 글이 조금 이해하시기 어려우실 수 있겠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 글의 저자가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인가를 쉽게 이해하시기 어려우실 수도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이 글의 내용을 내 나름대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자면,

1) 위안부 소녀상에는 '저항하고 싸우는 소녀' 이미지, '순결'과 '저항'의 이미지, '성처녀' 이미지가 있다.  → 위의 글에서 (1), (2), (7)의 내용
2) '민족의 피해자', '민족의 딸'로 형상화된 위안부 소녀상의 이미지는 실제 위안부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 위의 글에서 (2), (6)의 내용
3) 그렇다면 위안부 소녀상은 왜 '성처녀', '저항하고 싸우는 소녀', '민족의 피해자', '민족의 딸'의 형상이 되어야 했을까? (이것은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한 질문임) 
그것을 박유하는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하나는 우리가 위안부를 그렇게 보기를 원했기 때문이고(→위의 글에서 (2), (6), (7), (10)의 내용), 다른 하나는 정대협 운동이 소녀상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위의 글에서 (12)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4) 이건 좀 더 쉽게 설명을 해야 이해가 될 듯한데, 우리가 위안부를 그렇게 보기를 원했다는 말은

ㅡ만약 어떤 사람이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일본에 위안부로 갔다고 해볼게요(정말 그런 사례가 있는지는 제가 위안부 증언집 등의 사료를 안 봐서 정확히 모릅니다. 따라서 이것은 논의를 위한 '가정'입니다. 물론 실제 그런 사례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학술적으로,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인지 아닌지는 제가 잘 모릅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가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위안부로 간 어린 아이가 있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의식과 마음이 이걸 쉽게 받아들이실 수 있을까요? 우리의 '기억'에서 위안부는 몹시 불쌍하고, 강제적으로 끌려간 피해자여야 하는데, '저는 집안이 가난해서 업자가 와서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돈을 쉽게 벌 수 있게 해준다고 해서 위안부로 갔습니다. 그런데 위안부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몰랐습니다'라고 말하는 위안부가 있다면 이것을 받아들이실 수 있느냐는 의미입니다. 이런 위안부가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돈 벌러 일본군 위안부를 하다니', '이런 환향x' 등과 같은 비판을 하겠지요. 즉 한국인들의 가부장적 면모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위안부 상이 '순결'한 이미지, '성처녀 이미지'로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위안부 소녀상은 그러한 인식 하에 세워진 것이고요.
ㅡ더 설명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만약 어떤 위안부가 '나는 위안부이기는 했는데, 몇 십 년 지난 지금 일본과 싸우기는 싫어. 보상금 받고 그냥 끝내고 내 인생 살고 싶어', '순결을 잃은 것은 맞지만 일본과 싸우지 않을래. 가족들이랑 일본 여행도 가고 남은 인생 편안히 살고 싶어'라고 말을 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이걸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일본에 의해 순결을 잃었는데, 일본이 준 돈을 받는다고?', '그럼 결국 돈을 밝히는 사람 아니야?' 이렇게 생각할 사람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위안부 소녀상은 '저항의 이미지'를 담게 되었고, '저항하고 싸우는 소녀'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ㅡ또 일반 대중 분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쉽게 설명을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소녀가 아닌 위안부, 처녀가 아닌 위안부도 있을 수 있습니다. 30세 정도 된 나이의 결혼한 경험이 있는 위안부도 있을 수 있습니다(진짜 이런 위안부가 있었는지 정확한 건 사료를 봐야 압니다. 제가 거기까지는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건 그냥 가정일 뿐입니다. 그러나 위안부들이 다 '소녀'인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30세인 '처녀가 아닌 여자'가 위안부가 되었다고 하면, '소녀'가 위안부였던 것만큼 동정하고, 공감하고, 그 일이 부당하다고 생각을 할까요? 즉 한국인들의 가부장적 의식에서는 '소녀 위안부'는 불쌍하고 보호해주고 싶은 존재이지만, 나이가 많고 처녀가 아닌 위안부에 대해서는 동정과 보호, 관심의 정도가 덜한 사람들도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안부 소녀상은 '소녀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위안부 사건은 전쟁 범죄인 것이고, 소녀였든, 아주머니였든, 할머니였든, 처녀였든, 부녀자였든 다 똑같이 문제가 되는 사안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의식 구조에서는 '처녀'인 '소녀'가 위안부로 끌려가야지만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받아들이는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안부는 소녀, 처녀 이미지로만 남게 된 면이 있는 것입니다. 
ㅡ정대협 운동에 대해서는 제가 과문하므로 더 쓰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운동의 성과를 위해서 소녀 이미지, 처녀 이미지, 투쟁하는 이미지의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4)에서 제가 경어체로 쓴 내용들은 박유하의 책 내용을 제가 이해하기 쉽게 페북의 대중 독자들을 위해서 풀어서 쓴 것이므로, 책 내용 및 저자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5) 이 책에는 이렇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우리 안의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 (5), (8))
그런데 우리가 위안부를 내몰았을 수도 있다는 (8)의 내용은 사실 관계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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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썼으니, 이 책과 관련한 소송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써두려고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 생각일 뿐이라는 전제를 달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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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해 민형사상 소송을 치루고 있는데, 그 소송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 :  2015년 2월 17일, 재판부는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하여, 원고 측에서 수정 신청한 53곳 가운데 34곳을 “삭제하지 아니하고는 출판…해서는 아니 된다”고 결정 (나무위키 '박유하' 참조) → 34곳 삭제판 출간됨.
2) 손해배상청구소송 : 2016년 1월 13일 민사재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께 한분당 1000만원씩 총 9000만원의 배상을 하라는 판결  (나무위키 '박유하' 참조)
3) 명예훼손 소송 : 형사소송이고 1심 무죄, 2심 벌금 1000만원의 유죄 판결, 3심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 (나무위키 '박유하' 참조)
소송은 워낙 복잡한 사안을 다루고 있어서 페북에 쓰기에는 적절치 않은 점이 있다. 그러나 내가 위에 인용한 글 (4), (9)를 한 번 다시 보자.
(4) 소녀상이 저항하는 모습만 표현하는 이상, 일본옷을 입었던 일본이름의 '조선인 위안부'의 기억이 등장할 여지는 없다. 그들의 또 다른 생활과 기억, 일본 군인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놀며 웃었던 기억을 가진 '위안부'는 그곳에는 존재할 수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군인을 자신과 같은 운명에 떨어진 가엾은 존재로 간주하고 동정했던 위안부도 물론 없다. (205~205쪽)


(9)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일본'이 주체가 된 전쟁에 '끌려'갔을 뿐 아니라 군이 가는 곳마다 '끌려'다녀야 했던 '노예'임에 분명했지만, 동시에 성을 제공해주고 간호해주며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그들은, '한복'을 입은 댕기머리 조선인이기도 했지만, 일본옷을 입고 일본머리를 한 청초한 '야마토 나데시코'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 (207쪽)
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소녀상'과 관련한 부분을 요약하며, 일부러 이 부분을 인용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도 이 책의 일부분이나마 보시며, 책에 대해 직접 생각해보시길 바라서였다. 비록 페북 독자 분들이 판사는 아니지만, 대중의 상식에 근거하여 이러한 내용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독자에게도, 이 사안을 균형있게 생각해보고자 하는 사람들(법조인, 출판인, 시민단체 운동가, 학술계 종사자)께도 필요해 보여서이다.
(4)의 "일본 군인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놀며 웃었던 기억을 가진 '위안부'는 그곳에는 존재할 수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군인을 자신과 같은 운명에 떨어진 가엾은 존재로 간주하고 동정했던 위안부도 물론 없다.", (9)의 "병사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고 말했던 동지이기도 했다."
: 이 부분만을 떼어 놓고 보면, 위안부를 "일본 군인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놀며 웃었던 기억을 가진" 존재,  일본군의 "동지"라고 말한 것으로, 위안부 입장에서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생각임)
그러나 (9)에서 "'조선인 위안부'란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저항했으나 굴복하고 협력했던 식민지의 슬픔과 굴욕을 한 몸에 경험한 존재다.", "말하자면 조선인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의 모순'을 가장 처절하게 살아낸 존재였다."를 보면, 위안부가 식민지의 모순을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라는 주장 역시 박유하의 책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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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안타까운 점을 다루자면, 글이 좀 더 정확한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쓰였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동지'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목적이나 뜻이 서로 같음.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나오는데, 위안부가 일본군의 '동지'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일본 병사에게, 혹은 조선인 병사에게(지금도 그렇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대개 신분이 한미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에게 위안부도 비슷한 계급적 처지에서 동정과 연민을 느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전쟁 중에 인간적인 연민에 의해 '살아 돌아오라'라는 말을 한 위안부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을 곧 위안부와 일본군이 '동지'였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또 박유하의 서술대로, 위안부 중에는 개중에 일본군과 사랑을 나누었던 위안부가 있었을 수 있다(이 점도 역시 역사적 사료를 검증해야 정확함. 이 부분에 대해서 역사적 사료를 보지 않은 나는 확증할 수는 없음. 이것은 이 책 내용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내가 다룰 수 없는 영역을 밝힌 것임.).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위안부가 일본군과 사랑을 했는지, 안했는지가 아니다. 알다시피 사랑이란 워낙 복잡한 감정이어서, 외로워서 누구를 사랑할 수도 있고, 잘 생겨서 사랑할 수도 있고,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또 전쟁 중에 조금 인간미가 있는 일본군을 만났을 때, 이역만리 타국에서 젊은 남녀가 설레는 감정이 있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것은 죄가 아니다. 즉 조선인 위안부가 일본군을 사랑했다고 해도, 간호했다고 해도, 그들에게 따스한 말을 건넸다 해도, 그것은 부끄러운 일도, 죄도 아니다. 즉 이 책의 서술대로, "일본옷을 입었던 위안부", "일본 군인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놀며 웃었던 기억을 가진 위안부", "군인을 자신과 같은 운명에 떨어진 가엾은 존재로 간주하고 동정했던 위안부"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그리고 그것을 책에 기술한다고 해도, 그것은 잘못도 아니고, 위안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도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이런 문장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무엇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역사적 사료를 검증했을 때, 일본군을 사랑한 위안부가 지금까지의 증언이나 자료에 단 한 명도 없다면, 학술적으로 틀린 사실일 수는 있어도, 이것이 감정적으로 기분 나쁘거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훼손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일본군을 동정했고, 사랑했어도 그건 아무 죄도 아니고, 그게 사실이라 해도 위안부의 명예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사랑한 게 어때서 그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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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대중적 판단, 학술적 판단, 법률적 판단 중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도 섣부르게 단정하여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을 밝히자면, 우선 나는 복자 처리 된 부분(000으로 삭제된 부분)을 보지 않았으므로, 원본에 얼마나 심각한 내용이 있었는지는 다 알지 못한다. 또 삭제된 부분에 정말 심각한 내용이 있었다면, 그 점이 중요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34곳 삭제판을 읽은 뒤, 남아 있는 내용만을 보았을 때, '동지', '매춘' 등의 '부분'만을 강조해 읽는 것이 올바른 독법인지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그 '부분'이 법리적으로 명예훼손이 되는지는 법률가가 아닌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나는 책을 읽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전체적인 맥락 등을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책은 2년 넘게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법의 판단은 상식의 판단과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상식 선에서 봤을 때는 이 책에 대한 비난은 좀 과도해 보인다. 또한 학술적인 논의는 역사학자들, 여성학자들, 문화 연구자들에 의해 그와 별도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몇몇 언어적 표현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소녀상 문제 등을 앞서서 제기한 책으로서 나름의 의의 역시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을 읽은 지 2년 이상 지났고, 그 당시 북콘서트 때문에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와 함께 읽어서 이제 책을 들추어 보지 않는 한, 그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정리하여 글을 적어보았다.
즉 약간의 결례가 될지 모르지만 내 생각을 솔직히 밝히면, 부분적으로 오독을 하게 만들 여지가 있지만, 책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대중적 공격을 받을 만한 내용인지는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리적 판단은 이와 별개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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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무슨 말을 하는 게 혹여 재판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조심스럽지만, 내가 책에서 읽거나 저자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 교수가 문제 제기하려고 했던 것은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고, '운동 단체'였다고 한다(그 '운동단체'가 정대협이었는지, 나눔의 집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내용은 이번 정의연과 관련한 문제 제기가 나오기 몇 해 전에 이미 내가 책에서 읽거나, 저자에게 들은 내용이다. 또 소송을 당하게 된 것도 그러한 운동 단체의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저자에게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의 참, 거짓 여부는 운동단체, 위안부 할머니, 저자 등 세 주체의 확인을 거치지 않고서는 내가 알거나 확신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운동 단체를 지적했던 것은 분명히 맞다('제3부 냉전 종식과 위안부 문제' 안에 '제3장 한국 지원운동의 모순'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소송이 제기되었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명예훼손은 형사 소송이라 검사가 소송을 대리하는데, 지원단체가 고소, 고발을 해서 일어난 일인지, 검사가 자발적으로 한 일인지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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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너무 긴 글이 되어 버렸는데, 내가 애초에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내가 5월 17일에 쓴 글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읽은 경험, 그 책에 나오는 소녀상 비판에 일부 동의했던 점 등이 작용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여기에서 '일부'라고 쓴 것은 박유하 교수의 지적대로, 위안부 문제에서 우리 안의 책임을 묻는 것, 혹은 일본의 책임을 묻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앞서야 하는 것인지 내가 확실히 입장을 정리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일본의 책임이 훨씬 크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제국의 위안부』를 완전히 그대로 동어 반복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위안부 소녀상이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여성 차별일 수도 있다"라고 썼다. 박유하 교수는 이 비슷한 내용을 "'더럽혀진' 여성을 배척하는 순결주의와 가부장적 인식" 등과 같이 언급했다. '가부장적 인식', '순결주의'와 '피해자다움'은 조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언어이므로, 내 글과 박유하 선생의 글이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몇 해 전에 읽은 그 분의 글에서 영향을 받은 면은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피해자다움'이라는 말은 『제국의 위안부』에는 나오지 않지만, 순결주의, 가부장적 인식 등도 읽기에 따라 비슷해보일 수 있음) 그 점을 밝혀두어야, 먼저 이런 내용을 제기하신 분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서 이런 긴 글을 쓴 것이다. (누구의 요청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내 스스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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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교수님이나 페친 분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그리고 덧붙여, 이 기회에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라서 이렇게 길게 썼어요.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실제 저랑 아는 분은 전화 거셔도 됩니다.). 어느 분께도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저는 단지 '생각해보자'라는 취지임을 밝힙니다. 또, '생각해보자'라는 말을 꺼내기 위해 제 생각도 부분적으로 밝혔으나, 제 생각이 다 옳다고 확언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생각일 뿐이에요... 민감한 주제이고, 아는 분과 관련이 있는지라 좀 조심스럽네요... 문제가 될 시에는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기자 분들은 이 글 인용해서 기사 쓰시면 안 되고, 직접 저자와 연락하셔서 확인하시고, 기사 쓰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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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한동석
동지적 관계라고 쓰기는 했는데 1부를 보면 평등한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적당한 단어를 골라쓰기 어려워 순화된 표현을 쓴 것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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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곤
Sook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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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룡
좋은 글이네요 차제에 위안부 운동단체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고 문제가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제에 이어 우리 운동단체에게도 이용당한 것이라면 경악스럽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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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
핵심은 빠져있는 책이네요. 일본군 성노예가 무슨 양공주나 원조교제하던 여성으로 설정해놓은 다음 쓴 글이네요. 위의 글을 읽고 있으면 성노예 그 까이꺼 대충 다리나 벌려주고 같이 재미본것 밖에 없는 사건인데 그걸 두고 사람들이 순결하지 않은 년이라고 수근거리는게 옳은일이냐? 위안부 당사자의 순결관념과 대중들의 혐오 관념을 어찌 생각해야하는가? 순결에 관한 사람들의 개념풀이. 철학적이나 관념적으로 어떻게 따져야하는가?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 남자는 그곳에 없었다"라는 영화를 보면 특정 문제에 대해서 세밀하게 관찰할수록 모르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제를 다른 곳으로 두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게임을 계속하다보면 위안부의 실상은 사라져버리고 대충 다리나 벌려주고 편하게 돈번 여성이라는 이미지만 남네요. 당사자의 피해규모나 고통. 고통의 정도. 내가 당했을 경우 고통의 정도를 가늠해보는 일. 그런거는 빠져있고 원조교제로 돈 잘벌던 여성이 해방 이후 순결을 많이 따지는 조선으로 돌아갈까 말까 그런 고민이나 한다? 소녀상에 대한 주제이겠지만 그 주제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그 아픔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을 단순 기계화 데이터화하려는 습성은 버리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평균 나이 25살 정도가 되려면 나이가 어린 애의 경우는 몇살이 되야 할까요? 12세. 13세. 14세. 15세. 그런 애들도 많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몇 퍼센트냐? 10대가 몇 퍼센트냐? 그런거 따지는건 학자들이 할일이지만 인권을 말하는 학자가 따질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돼지새끼 피해조사 하는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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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애
김인철 그러면 대체 핵심이 뭔데 빠졌다고 합니까? 저 글 어디에 일본군 성노예가 양공주나 원조교제하던 여성으로 설정해놓은 겁니까? 다시 차분하게 읽고 반론하시는 편이........( 대충 다리나 벌려주고 편하기 돈 번? ___>>>> 어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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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u Bae
성실한 정리 무척 참고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몇 가지 보태고 싶네요.
1.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유하 교수가 문제 제기하려고 했던 것은 '위안부 할머니'가 아니고, '운동 단체'였다고 한다(그 '운동단체'가 정대협이었는지, 나눔의 집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 이 부분은 정대협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지 싶네요. "제3부 3장 한국 지원운동의 모습, 제 1절 서울 정대협의 공과, 제 2부분, "정대협의 힘과 민족권력" pp.210-216", Sejin Pak 님 담에서 참고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정대협이 전면에 나서진 않았고 정작 소송의 주체는 '나눔의 집'이었지요.
2. '동지적' 관계
페북에서 박유하 교수의 글을 읽은 제 기억 (4,5년 전이라 선명하진 않지만)에 의존해 씁니다. 저자는 책을 쓰기 전 (아마도 '화해를 위해서'와 '제국의 위안부' 사이) 나눔의 집에서 어떤 할머니 (돌아가신 배춘희 할머니일 가능성, 박교수가 명시하진 않음)를 만납니다.
전장에서 일본군과 나누었던 애틋한 감정을 잊지 않고 있는 분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또는 그 감정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없어 무덤까지 숨기게 하는 것이 그 이의 행복을 위하는 걸까, 하는 의문에 자문자답하는 과정에서 나름 찾아낸 이유가 '동지적 관계'였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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