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il Kim
16 May at 19:30 · Public
5/16 한일협정의 문제점과 정의기억연대
1.
1965년 박정희 정권이 맺은 ‘한일협정’은 현재 한일관계가 꼬여버린 근본적인 출발점이다. 대신 현재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당시 일본이 한일협정에 대가로 제공한 것은 무상 3억달러, 차관 2억달러(연리 3.5% 7년 거치 20년 상환), 상업차관 3억달러까지 해서 총 8억달러이다.
‘한일수교’의 조건으로 이승만 정권에서는 20억 달러, 장면 정권에서는 28억 달러를 요구했고 필리핀의 경우 일본과의 수교로 14억 달러를 받은 것에 비해 박정희가 합의한 3억 달러는 꽤 낮은 액수라고 할 수 있다.
2.
‘한일협정’의 내용은 모든 것이 총체적 난국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두 가지만 꼽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 일본의 조선 강제 합병을 명백한 불법행위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그 어떤 과거사들도 청산하지 못한 ‘굴욕적인 협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둘 ‘모든 과거사 문제는 한일협정 이후에는 따지지 않는다’는 지금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대표적 독소조항이 있다.
3.
이 두 가지 내용을 근거로 일본은 일제강점기 자신들에 만행에 대한 과거사에 대해 어떠한 반성도 없고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며 한국에서 제기하는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에 콧방귀를 끼는 것이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일본이 나쁜 놈들이긴 한데 그들은 나름의 근거와 이유를 만들어 나쁜 행동을 정당화 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의 위정자들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라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은 ‘제2의 을사조약’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하고, 그 협정에 동의한 박정희 정권도 을사5적처럼 '나라를 팔아 먹은 매국노 정권'이라고 생각한다.
3.
그렇다면 박정희는 왜 그렇게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안 좋은 조건으로 맺어야 했던 것일까? 그가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에 일본천왕에게 복종을 맹세한 ‘친일파’라서 그런 것일까? 그것도 관련이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근본적인 문제는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66년 3월 18일 미국 CIA 특별보고서에는 ‘한일관계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1961년에서 1965년 사이 일본 기업들은 박정희가 창당한 민주공화당 총 예산의 2/3를 제공했는데 각 개별기업의 지원 금액은 각각 1백만달러에서 2천만달러에 이르며 6개의 기업이 총 6천6백만달러를 지원했다”
4.
즉 박정희는 한일협정을 해주는 대가로 자신의 공화당 창당자금과 운영자금을 일본의 전범 기업들로부터 제공받은 것이다.
이 공화당은 훗날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을 거쳐 지금의 미래통합당이 되었다. 즉 미래통합당의 구성원들과 그들에게 부역하는 보수언론들이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의 이해관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들의 태생 자체가 일본의 전범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거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돕고 있는 이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상황이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이 겪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5.
이 한일협정을 성사시킨 일본의 핵심 인물은 ‘기시 노부스케’라는 사람이다. 일제 관료로 시작해서 만주국 산업 차관, 총무청 차관을 거치면서 만주국 경영의 실질적인 책임자였고, 태평양전쟁에서는 일본의 군수물자를 조달했고 조선인들을 강제동원 했던 사람이다. 그는 ‘A급 전범’으로 구속 기소되어 3년간 복역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출소하였고 복권까지 되었다.
그는 1954년 일본의 자유당 국회의원이 되었다가 1954년 제명이 되었는데 곧바로 일본 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1955년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되어 자유민주당 그 유명한 ‘자민당’이 되었다. 지금까지 유지가 되고 있는 일본의 정치 시스템인 ‘내각책임제’와 ‘보수합동체제’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기시 노부스케’이다.
6.
1957년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미일 안보조약’이 체결 되었다. 그리고 기시 노부스케는 이때부터 전쟁을 금지하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재검토 하자는 주장을 시작했다. 이 주장은 일본 우익의 핵심적인 이념이자 염원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시 노부스케의 동생은 ‘사토 에이사쿠’인데 형의 뒤를 이어 일본 총리가 되었고, 박정희와 한일협정을 체결한 인물이다. 기시 노부스케의 사위 ‘아베 신타로’는 그의 지역구를 물려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고 아베 신타로의 아들 ‘아베 신조’는 현재 일본 총리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아베 신조는 기시 노부스케의 소원이자 일본 우익의 염원인 평화헌법 개정에 올인하고 있다. (그것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의 과거 일본군의 만행이다. 지난 글 참조)
7.
여기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를 연결시켜 준 사람은 놀랍게도 해방 후 ‘반민족특위’에서 1호로 체포 대상자로 선정한 대표적인 친일 자본가였던 박흥식이다.
박흥식은 일제 때 화신백화점을 설립하고 소유했던 인물이자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후에는 일본에 전투기(제로기)를 제공할 비용을 모금했던 인물이다. 영화 <암살>에서 이경영이 맡았던 인물이 박흥식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박흥식은 자신의 화신그룹 일본지사에서 기시 노부스케가 전범으로 체포되고, 감옥에서 복역하고 다시 복권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인연으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를 연결시켜 주었다. 나중에 박정희의 친서를 직접 기시 노부스케에게 전달하는 밀사 역할까지 맡았다.
8.
이렇게 조선을 수탈하는데 앞장 선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대단히 친해졌다. 서로 친서를 주고 받는 것을 넘어 박정희는 수교도 되기 전에 일본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고 한일협정 체결 후에는 기시 노부스케에게 한국의 국권 신장과 양국 우호에 기여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명분으로 대한민국의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들은 아주 막역한 사이가 된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관계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와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 아베에게로 이어진다. 아베는 2013년 11월 한일협력위원회 합동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은 제 조부와 가까운 친구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에 가장 우호적인 대통령이었다”라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9.
한일협정의 대가로 제공받은 돈은 ‘청구권’이라고 명시가 되었다. 원래는 강제징용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등 일제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배상 받아야 할 돈인데 일본은 사과를 하기 싫었고, 박정희는 그 돈을 피해자인 국민들에게 주기 싫었다.
그래서 청구권이 되었고 차관의 명목으로 들여온 것이다. 피해자들은 그 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모르고 전혀 배상도 받지 못했다.
(그 차관 명목으로 들어온 돈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어떻게 다시 전범 기업들에게 되돌아가게 되었고, 그게 한일경제관계(대일무역적자가중 등)에 안 좋은 방향으로 고착화 되었는지도 할 이야기가 많지만 너무 길어지고 본문의 주제와도 다르니 이는 생략한다)
10.
자, 일본은 1965년에 맺은 한일협정을 근거로 자신들의 책임은 다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미가 없다. 당시에 협정은 일본이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고 배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수교의 조건으로 일본정부가 박정희 정부에게 제공한 것이지 과거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한일간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은 2015년 아베와 박근혜가 맺은 ‘한일위안부 협정’에서 또 한번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협정’이라고 주장했지만 1965년 한일협정과 마찬가지로 뒤집혔다. 나는 우리 정부와 일본과의 관계는 대립이든 협력이든 관계는 잘 해 나갈 것이라 믿기 때문에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11.
다만 일제의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한 배상금을 받아서 다른 용도로 쓴 위정자들과 그들에게 부역하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지금 정의연의 도덕성을 문제삼고, 해산을 요구하고, 윤미향의 국회의원 사퇴를 외치는 것에는 화가 난다.
인간의 추악함이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사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인 경찰보다 ‘조선인 순사가 더 악랄했다’고 한 것처럼 현 상황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정치적 스탠스가 미래통합당이 아닌데 중도라는 입장에서 혹은 진보라는 입장에서 문제 삼는 이들에게는 ‘선택적 정의’를 주장하기 보다 ‘무엇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좀 지겹기도 하다.
12.
위안부, 강제징용자 등 일제강점기의 피해자들은 이제 생존자들이 몇 남지 않았다. 그들이 사망한 후에는 사과와 법적 배상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법적으로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명백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데도 오리발을 내미는 일본이 대상이 없어진 이후에 사과나 배상을 할 가능성은 더욱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중요한 문제일까?
13.
나는 ‘정의기억연대’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의 잔혹한 만행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도록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독일이 나치 시대에 저지른 홀로코스트 같은 만행을 기억하고 반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의연과 윤미향은 그 일을 오랫동안 해 왔고 이미 국제사회에 충분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베와 일본 극우는 그 상황을 너무너무 싫어한다. 아베와 일본 극우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토착왜구들도 그렇다.
때문에 나는 정의연과 윤미향을 계속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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