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il Kim
12 May at 18:10 · Public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세번째 글
(부제: Hot-button issue)
1.
“위안부 동상(소녀상) 철거하고, 수요집회 중단하라”
“위안부 수요집회는 전교조 선생들이 어린 학생들을 세뇌시켜 나오게 한 뒤에 반일교육을 시키는 곳이다”
“위안부는 우리나라가 부끄러워해야 할 역사인데 뭐 잘났다고 떠느냐? 입 다물어라”
“일본은 이미 충분히 사과하고 배상했다. 왜 좌파들이 반일 선동을 하느냐?”
이런 주장을 하는 단체 혹은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바보’ 아니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바보나 나쁜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아 보인다.
2.
지금 이용수 할머니 옆에 붙어 있는 사람들은 ‘반일동상 진실규명 공대위’라는 단체인데 그들은 놀랍게도 상기 내용의 주장을 했던 단체이다.
나는 이용수 할머니가 이들과 함께 하게 된 사연은 궁금하지 않다. 그리고 이용수 할머니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이 수상하고 과격한 단체는 그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난하고 일본을 옹호하는 것이 분명한 단체였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어떤 것이 되건 조금도 동의할 수 없다. 이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 성범죄 전과자가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겠다고 나서는 격이다.
3.
여전히 정의연의 회계부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 말한 내용이지만 한번 더 반복한다. 정의연은 법적절차에 따라 정기감사를 받고 국세청에 세금을 낸다. 이해 못하는 혹은 이해 못하는 척 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급하자면 재무제표가 공개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확인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조선일보야 애초에 왜곡을 목표로 쓴 기사이니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회계부정을 의심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개된 자료들을 찾아보고 검토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적어도 어떤 주장을 하려면 근거가 분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4.
“나는 조선일보가 어떤 왜곡을 하는지 관심도 없지만 일단 사실이라고 믿을 것이다. 설령 그들이 태생부터 현재까지 뼛속 깊은 친일 DNA가 흐르고 있어도 말이다”라면 모를까 아주 간단한 팩트체크 정도는 하는 것이 맞지 않나.
내 생각은 30년 된 시민단체가 이 정도로 운영했으면 꽤 투명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 기사 말고 횡령과 유용의 증거를 가져오기를 바란다.
5.
‘회계부정’이라는 주장이 통하지 않으니 이제는 ‘세부비용 항목을 모두 다 공개하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왔다. 이 주장은 “떳떳하다면 왜 공개를 못하겠냐”는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에 대한 내 답변은 이렇다.
“아니,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조선일보의 세부비용 이를테면 방씨들이 얼마를 가져가는지 법인카드 내역을 포함해서 회사의 각종 비용 특히 '접대비' 등이 무슨 명목으로 쓰이는지 다 공개하면 정의연의 세부비용을 '다 공개하라'는 주장에 수긍하겠다.
6.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상당수 대중들이 현재 그 프레임에 동조하고 있다.
동조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민주당이 싫어서 혹은 페미니즘이 싫어서이다.
이 프레임을 설계한 꼭대기에 있는 이들은 아베 및 극우일본과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보수언론과 미래통합당이지만 그 프레임에 부화뇌동하는 이들은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민주당이 싫거나 페미니즘이 싫기 때문에 정의연을 공격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7.
이는 일종의 정치현상이기 때문에 내 주장의 근거를 위해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겠다.
미국의 선거구는 한국과 달리 인구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주단위로 나눈다. 가령 상원의원은 주당 2명씩 뽑고, 대통령은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이기 때문에 전체 유권자의 지지율보다 각 지역별 이슈가 대단히 민감하다.
때문에 대도시보다 여러가지 발전이 더디고 소외 당하고 있는 시골지역의 공략이 선거 승패에 꽤 중요한데 이때 선거승리를 위해 주로 사용되는 방식이 바로 ‘Hot-button issue’이다.
‘핫버튼이슈’란 사람들의 강한 분노를 이끌어 내는 문제들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분노를 유발하는 투표'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핫버튼이슈를 교묘하게 활용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트럼프이다.
8.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등 미국을 대표하던 제조업 지역이 몰락하게 된 것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환경의 변화와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공장들은 인건비가 싼 남부로 혹은 해외로 이전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 문제를 이민자들의 탓 그리고 해외 제조업체들의 문제로 돌렸고 분노를 촉발시켰으며 표를 쓸어 왔다.
미국에서 가장 평균 소득이 낮은 지역인 캔사스주에서는 자신들의 정책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당 혹은 이익을 줄 수 있는 정치인과 전혀 무관한 동성애, 낙태, 페미니즘 등의 윤리적 이슈로 늘 공화당을 찍는다.
이는 이른바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현상인데 이는 공화당의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통한 핫버튼이슈의 활용을 효과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9.
이건 미국문제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다.
지난 코로나19 발생 초기로 돌아가보자. 이때 미래통합당과 모든 언론이 똘똘 뭉쳐 주장했던 내용은 ‘중국을 봉쇄하지 않아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코로나 방역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봉쇄해야 한다'고 정말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국(혹은 중국인)에 대한 혐오, 조선족에 대한 혐오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한중 통상 규모를 볼 때 문재인 정부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이슈로 공격한 것이기도 하다.
불과 3개월 전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게 얼마나 가당치 않은 주장인지 현재 확인했지만 당시 이 이슈가 얼마나 우리를 뜨겁게 달궜는지를 돌이켜 본다면 매우 효과적인 공격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10.
이태원 클럽의 방종으로 인해 지금까지 잘 해오던 코로나19 방역에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모처럼 방역당국에 위기감이 찾아왔다.
여기서 본질은 방역당국의 권고를 충실하게 따르지 않은 형태의 영업을 한 업주들과 마스크를 하지 않고, 좁은 공간에서 놀고, 그래서 코로나에 감염 되었고 또 타인에게 감염을 시킬 위험이 있음에도 잠수를 타고 있는 감염자들 혹은 감염의심 환자들이다.
이게 ‘게이’라는 핫버튼 한방으로 논쟁의 이슈가 완전 바뀌어 버렸다. 방역과 감염에 대한 위험성이 아닌 성소수자에 대한 증오로 말이다.
나는 최초 이 보도를 한 국민일보가 기독교 계열 신문이라 방역에 대한 문제보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는 것에 '더 적극적 이었다'고 의심하는 편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까지 이 문제의 관심과 논쟁의 방향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11.
다시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윤미향은 30년 동안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일본의 책임있는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해 왔으며 1,400번이 넘는 위안부 관련 집회를 주도했다.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윤미향과 정의연의 지난 30년 동안의 활동의 결과는 위안부 문제가 전 세계 여성인권의 문제로 크게 확대가 되도록 만들 정도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2차세계대전 패전 후에 만들어진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헌해서 주변국에 긴장을 주려는 아베정부의 극우방향의 국가전략에도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활동의 동기와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운 보기 드문 일이다.
이 대목에서 누가 윤미향과 정의연 활동에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얽혀있어 미워 할지는 이제 설명을 생략해도 될 정도로 대상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는 또 언급하겠다. 아베정부, 미래통합당, 조선일보, 중앙일보, 친일파의 후손 등등…
12.
그들은 진실이 어떤 것인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단지 윤미향과 정의연 활동에 흠집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아예 활동이 멈춰지면 베스트이고 큰 흠집이 나서 활동의 동력이 상실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목표는 충분하게 달성되는 것이다.
그 방법론으로 분노와 증오를 유발하는 ‘Hot-button issue’을 누른 것이다.
트럼프가 이민자와 여성, 유색인종의 혐오를 통해 표를 얻으려고 하듯 미래통합당이 '중국 봉쇄령'을 외치면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을 낮추려고 하듯 '감염자'가 아닌 '게이'를 강조해서 '방역'보다는 '동성애에 대한 비난'을 강조하려는 언론처럼 말이다.
13.
설령 그들의 요구처럼 정의연이 30년 동안의 영수증을 공개한다고 한들 그들이 믿고 물러날 수 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영수증 하나하나의 용처에 대해 검증을 하자고 할 것이다. 마침 우리는 똑같은 사례를 최근에 실시간 재판까지 통해서 본 적이 있다. 바로 동양대 표창장이다.
때문에 나는 그들을 공격하는 언론들에게 정의연이 어렵게 해명을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뉴스공장에 출연하고 알릴레오에 출연을 하는 것이 100배는 사실 전달에 효과적이다.
정의연에게 회계부정이나 유용, 횡령 등의 이슈가 있다면 이미 관련한 증거를 가지고 고발과 고소가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없다. 없으니까 변죽만 울리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공격들은 이제는 무시해도 된다.
14.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윤미향과 정의연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은 있다.
내 관점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에게서 돌아선 이유는 피해자의 관점과 사회활동가의 관점은 분명히 다른데 그 간극이 벌어지는 것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한 것은 윤미향과 정의연의 실수라고 보는 편이다. 내가 정의연에게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은 단지 이거 하나 뿐이다.
평생을 안고 온 상처를 입은 이용수 할머니의 마음은 설령 30년 동안의 혼신의 노력을 다한 ‘활동가’의 ‘대의’라는 마음이라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웠을 것 같다. (이건 내가 주제넘은 표현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언급을 하는 것이니…)
15.
지금 이 사단이 터진 후 윤미향은 이용수 할머니와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유지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끊어졌다면 최선을 다해 채널 복원을 하고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섭섭함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내가 듣기로는 이용수 할머니가 처음 정의연을 찾을 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다름아닌 윤미향이라고 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용수 할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했으면 좋겠다. 어렵겠지만 적어도 마지막까지 그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16.
다른 한 가지는 지금 정의연의 활동방향은 충분히 정당성이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았고, 세계여성인권의 문제로 확대가 된 만큼 할머니들과의 연대의 방향성도 새롭게 고려할 필요가 보인다.
평생 피해자로 사신 고령의 할머니들께서 활동가들의 대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현 단계에서 이미 충분히 지쳐 있어 힘들거나 혹은 이제는 은퇴를 바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17.
생존자가 몇 안 남은 할머니들이 모두 김복동 할머니처럼 왕성한 활동가처럼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정작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도 못 받고 눈을 감으셨는데 다른 할머니들에게 그 모습이 어떻게 보여졌을지에 대해서는 윤미향과 정의연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활동가가 판단하는 대의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 좀 더 세심하게 봐 달라는 부탁이다. 아니면 정의연이 아닌 다른 (연대를 한) 단체가 나서서 할머니들의 케어만을 주력으로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분리가 된다고 윤미향의 30년 동안의 노력과 정의연의 업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18.
여기까지 읽느라 고생했다. 이제 기나 긴 글의 결론이다. 내가 예상하는 혹은 바라는 이 문제의 해결방향은 이렇다.
“고생하는 사무국 직원들에게 제대로 급여 지불해 주세요”
:정의연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알려 지면서 후원자 급증
“아, 맞다. 우리는 일본불매 중이었지!”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일본불매운동은 계속 이어짐
“조선일보는 항상 거짓과 왜곡을 일삼으니 언론개혁법안을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 시켜야만 해”
: ‘180석을 만들어 줬으니 제대로 일해라 민주당!’을 외치고 압박한다.
너희들이 Hot-button을 누르면 우리도 누르면 된다.
#정의기억연대 #Hotbuttonissue #조선일보의왜곡프레임 #언론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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