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이혼을 결심했다, 초6인 나는 어떻게 하지?
소마이 신지 대표작 ‘이사’ 개봉
김은형기자수정 2025-07-22
영화 ‘이사’. 찬란 제공“‘이사’를 보고 난 뒤 소마이 신지는 내가 넘어서고 싶었던 단 한명의 감독이 되었다.”
이 말을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비롯해 구로사와 기요시, 하마구치 류스케 등 일본의 세계적 감독들이 격찬한 ‘감독들의 감독’ 소마이 신지의 대표작 ‘이사’가 23일 개봉한다. 1993년 일본과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지 32년 만에 국내 첫 개봉이다. 2023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4케이(K)로 복원되어 클래식 부문에 초청되면서 개봉 당시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모으며 한국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지난해 소마이 감독의 초기 대표작 ‘태풍클럽’(1985)이 4케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개봉돼 국내 영화팬들 사이에서 잔잔한 입소문을 일으킨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사’는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등에서 연기 경험 없는 아역 배우들에게서 놀라운 생동감을 뽑아내는 고레에다 감독의 연출력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가늠케 한다. 2시간 러닝타임을 줄곧 이끌어가는 주인공 렌코 역의 타바타 토모코는 12살 때 8000:1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어 많은 시상식에서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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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사’. 찬란 제공초등학교 6학년 렌코는 이혼을 결정하고 아빠가 이사를 가게 된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놀림받을까 걱정돼 반항도 해보고 엄마·아빠를 설득하려 애써보기도 하지만 쉽지 않다. 렌은 엄마한테 여행을 가자고 하고 그곳에서 아빠를 만나 어린 시절처럼 함께 여행하려는 계획을 꾸민다.
소마이 감독은 53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 전 연출했던 작품들에 주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들은 어른들의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한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수동적인 존재는 아니다. 렌코도 마찬가지다. 렌코는 자신보다 철없고 이기적으로 보이는 부모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여행지에서 호텔을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들어간 집에서 만난 노신사가 손자를 잃었다는 사실을 듣고 렌코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 노신사는 “간직해야 할 기억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영화 속 화목한 가족에 대한 렌코의 기억은 1980년대 버블 경제가 끝나면서 좋았던 시절과 작별해야 했던 90년대 초 일본의 사회 상황과도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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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에는 소마이 감독의 특징인 롱테이크의 아름다움이 잘 담겨있다. 한 예로, 욕실 안에 숨어버린 렌코를 달래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엄마와 집 나간 아빠, 아빠의 동료 부부까지 집에 모인 장면에서 부부 간의 육탄전과 그 다툼을 지켜보는 아이, 사각사각 마를 갈면서 파국으로 달려가는 세 가족을 지켜보는 커플이 하나의 긴 테이크에 담겨 큰 폭의 감정적 역동을 펼쳐낸다. 아빠가 찾던 낡은 기린 인형을 렌코가 집에 온 아빠에게 주다가 인형이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잡아낸 장면 역시 이별의 감정을 담담하게 건져내는, 요즘 영화에서는 만나기 힘든 영화적 순간이다.
영화 ‘이사’ 찬란 제공영화를 수입한 찬란은 소마이 감독의 또 다른 연출작 ‘여름 정원’(1994)을 다음달 6일 개봉한다. 죽음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 소년 3명이 동네 괴팍한 노인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김은형 선임기자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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