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9

류석춘 역사강의 / 대한민국의 역사전쟁은 현재진행중

[자유대학 Live] 류석춘 교수님 역사강의 / 대한민국의 역사전쟁은 현재진행중
https://www.youtube.com/live/kD6jZNuXxr4?si=xMsDURrfrTGe5dXM

자유대학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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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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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반갑습니다.이 더운 날에 이런 현대사 공부를 위해서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제 소개를 먼저 하면은
연세대학 사회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33년 하고 2020년 지금부터 5년
전에 정년했고요. 정면 1년 전에 2019년 가을학교학기에
내가 맡은 사회학과 감옥 발전 사회학 수업에서 위한부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우리 학생들이 듣기 불편한 얘기를 했더니 녹음을 해 가지고
공론화하고 검찰에다가 그걸 제보를 해서 정의 기억현대 정신대 문제
대책에 그 녹음한 파일이 넘어가서 내가 강의실에서 한마 말 여러 가지를
문제 삼아서 검찰이 기소해 가지고 재판을 한 6년 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무죄가 나오고 일부 유죄가 나왔는데 지금은 그래서 형사 사건은 다 끝나고
이제 민사 사건이 좀 남아 있는데요. 인사 사건은 지금 정대업하고 그 위안부 그 인권 옹호 단체인
정대업하고 나하고 뭐 이제 서로 손해 배상을 얼마씩 해 달라라는
그 민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큰 위험은 넘어갔습니다. 

그러니까이
얘기를 원래 오늘 하려 그러는 건 아니지만 그냥 참고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이 좀 알아야 되니까
그 강의실에서 한 얘기는 핵심은 이겁니다. 

일제 시대가 
우리가 아는 것만큼 그 한국 사람들이 차별당하고 고생하고 
그래서 그런 것에 대표적인 사례로 뭐 징용을 당했다. 
한국사람들이 또 위안부를 일본 군인이 강제로 끌고 갔다. 
뭐 그런 식의 강의를 이제 역사 교육을 여러분이 받았는데
 그게 전부 사실과 다르다.라는 
오늘 이제 강의에 그 얘기도 좀 나올겁니다. 
그런 얘기를 하고. 근데 그래서 강의실에서 중요하게 한 얘기가
위한부분은 매춘의 일종이지. 그 강제로 끌려가서 어쩔 수 없이 성노예 같은 생활을 한 그런 것으로 알려진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었어요. 
근데 그게 이제 녹음이 돼 가지고
위안부가 매춘이다.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을 매춘이라고 표현해서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라는게 이제 검찰의 기소 한 요점이었고
나는 강제로 끌려가지 않았다. 강제로 끌려간 사람은 한 사람이라도 너네
있으면은 객관적인 사실로 증명을 해 봐라라고 법정에서 다투 가지고 내가
이겼어요. 
한 사람도 없어요. 강제로 끌려간 증거. 그러니까 실제 강제로 끌려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지만 그래도 한 사람 정도는 강제로 끌려간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지 그런 얘기를 하는 거 아니에요. 
대신 돈 벌러 간 사람, 부모가 팔아서 돈 벌러 간 사람들에 관한 증거는 수도 없이 많아요.

그리고 위안부가 뭐 4, 40만 명이다, 20만 명이다 하는게 지금 여성 가족부나 정의원이 정대이 주장하는 얘긴데 
그러니까 강제로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한 사람이 40만 명이 있다. 20만 명이 있다라는 얘기가 이제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갖고 있는 여성 가족부의 공식적인 입장인데 이게 이제 전부 엉터리다라는 얘기를 내가 강의실에서 했어요. 그래갖고 재판을 했는데 내가 이겼어요. 
무죄 나왔어요. 

그래서 그런 얘기들도 이제 오늘 내가 여러분한테 전할 얘기에 포함되있고 하여튼 그런 사건으로 정년 1년 전에 휘말려서 그 사 그 강의 문제가 된 강의가 있었던게 2019년 9월인데
2020년 8월이 정년이라서 2019년 가을학교학기하고 2022년
봄학기에 나는 강의를 못 했어요. 

연세대학이 문제가 되는 교수라고 해서 강의를 맞저 못 하게 하고 강의를 중단을 시키고
이제 1년 동안 그래서 굉장히 좀 뭐라고 얘기할까? 고생을 했죠. 고생을 하고 이제 학교에서 정년을 할
때 이제 교수로서는 그래도 정년하는게 일종에 그 몇십년 동안 이제 교수
생활한 것을 마무리하는 어떤 이제 의뢰도 거치고 하는 건데 

그런 때에 엄청난 저 언론의 문매를 맞으면서 엄청 고생을 했는데 재판 결과는 내가
이겼다. 5년 6년이 지나서 그래서 원래 2월 달에 재판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위안부 명예 훼손 무죄. 정대업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벌금 200만 원. 근데 정대업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나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정대업은 지킬 명예가 없는 집단이에요. 위안부들 도와주라고 사람들이 낸 후원금을 삥한 단체 아니에요. 그 단체에 명예가 있을 수가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하여튼 법원에서는 그
단체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했냐면은  
이 가장 중요한 발언은 위한부은 돈 벌러간 사람들이다라는 얘기를 했었고 
두 번째는 이제 학생이 질문한 거 중에 내 강의를 듣고
그 위안부들이 언론에 나와서 공개적으로 발언하지 않느냐? 
내가 강제로 끌려갔다고 그 증언이 그럼 어떻게 된 거냐? 
그 증언과 교수님 말은 완전히 반대돼 있는데 그래서 내가 위안부들의 증언이
과거에 한 것이랑 요즘 그 언론에 나오는 거랑 내용이 많이 바뀌지 않았느냐 바뀐 사실은 아느냐 그랬더니 안다 그러더라고요. 실제 옛날에는 다 사기당해서 돈 벌러 갔다라는 얘기를 하다가 정대이 끼어서 이제 증언이 바뀌게 됐다. 

그래서 내가 강의에서 표현을 이렇게 했어요. 이렇게 얘기했어요. 정대협이
위안부들을 교육해서 위안부들의 증언이 바뀌게 됐다라고 설명을 했더니
이제 재판에서 정대업의 명예를 훼손했다라고 이제 저를 기소를 했고 검찰이 내가 이제
그래서 검찰이 나보고 야 정대 위원부들 교육한 증거를 내놔라 그걸 내놓으면 너 무죄가 된다. 뭐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해서 여러 가지 정황 증거를 보여줬어요. 그러니까 정대업이
교육하기 전에는 이런 얘기를 하다가 교육하고 나서는 이런 얘기로 얘기가 바뀌었으니까 이거는 교육 때문에 그런 거라고 볼 수 있다. 

근데 이제 검찰에 법원에서는 판사들은
실제 그러면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어떤게 있고 그 강사나 수강생이 그런
교육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증거를 네가 제출을 해야 교육했다라는게 입증이 되는 건데 그걸 입증 못 하고 있지 않느냐. 이제 그런 식으로 재판이 진행이 되면서 정대업의 명예를 200만 원이 훼손했다. 그래서 200만 원 벌금을 내라라는게 판결이 났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정대협이 종북 단체다라는 얘기를 했어요. 
내가. 근데 그거는 무제. 그것도 역시 무죄가 나왔어요. 그래서 강의에서 한 얘기에 핵심 메시지가 세 개였는데 하나는 위안부들이 돈 벌러 간 거다. 무죄.
정대비 위한부를 교육해서 위안부들의 증언이 바뀌게 됐다. 요것은 네가 무죄인 것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해서 벌금 200만 원.
그다음에 정대협이 종북 단체다. 이석기나 뭐 저저 누굽니까? 그 윤미양의 남편 김삼석이라는 사람이 이제 종북 단체하고 연관이 많아서 종북 단체 성향이 있다라는 얘기를 내가 했는데 그것도 무죄.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강의에 큰 문제가 없고 
뭐 아까 얘기한 대로 이제 교육을 한 것을 내가 증명하기가 어려워서 못 했더니 증명을 이제 그 사람들이 원하는 식으로 증명을 못 해서 벌금 200만 원이 나왔는데 
그것 때문에 이제 민사 소송이 또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형사가 완전히
무죄가 나왔으면 민사가 아예 있을 수가 없는데 형사에서 벌금 200만 원이라는 꼬리가 붙어 있으니까 그것을 기초로 정대이 나한테 손해 배상해 달라고 이제 손해 배상 재판을 지금 하고 있어요. 근데 지금 그거는 뭐 민사 사건은 별거 아니니까 하여튼 그런 사건이 휘발리면서 교수 생활 만련이 엉망이 돼 버렸다. 

그 그러다가 재판을 끊을 마치고 이제
올해 2월 달에 재판이 끝나고 아까 얘기한 그런 결과가 나와서 여러분 하 이렇게 만날 기회도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이런 내가 겪은 사건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현대사 교육이 얼마나 엉터인가, 얼마나 잘못돼 있나를 좀 전체적으로 보여주고요. 그 전체적으로 보여지는 과정에서 몇 가지 대목은 좀 집중적으로 깊이 있게 좀 들어가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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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나라가 성공한 나라다. 그러니까 2차대전 이후에 독립한 새로 생긴 나라들 중에 굉장히 세계적으로 성공한 나라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에는 누구나 다 동의를 하는 거 같아요. 
대한민국에 성공했기 때문에.
근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이거 이런 걸 로드하는데.
예. 한국은 성장의 슈퍼스타다.라는 얘기를 대한민국 재경부가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리고이 얘기는 뭐 꼭 재경부가 이런
얘기를 안 해도 사실 우리가 다 경제적으로나 또 경제적인 성공에이어서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또 그 정치 경제적인 성공에 힘입어서
문화적으로도 뭐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다 몸으로 체험하면서 대한민국이 대단한 성공을 한 나라다라는 사실에는 별로 비를 안 걸죠. 당연한 얘기 하는 거 아니냐. 근데 그것이 그럼 어떻게 가능했느냐?

도대체 다른 나라 2차대전 이후에 태어난 여러 나라들 중에 거의 100개가 넘는 나라가 새로
태어나는데 그중에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이런 성공을 하고
또 다른 나라들은 그걸 왜 못 이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좀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되고 누구나 설득가 누구나 그 얘기를 들으면은 아
그 말이 맞다라는 어떤 합의가 있어야 되는데 이게 너무 다른 거 같아요

성공에 관한 이제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서 성공하게 됐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뭐 여러 가지 자료들이
있습니다. 이건 내가 방금 보여 준 거고
예 이거요. 그러니까 한국의 경제 발전을 뭐 만들어낸이 드라이빙 포스가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뭔가 이제 좀 합의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이 부분에 대해서 너무나 합의가 잘 안되고 있는게 현실이에요. 
그것을 좀 보여 줄 건데요.

이런 이제이 작업을 성공한 대한민국을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역사 인식이 필요하냐 하는 문제를 우리가 이제
풀어나 풀어 나갈 때 지금까지 그 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여러
가지 이벤트들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과 아주 과거에 있었던 일을
나눠서 내가 좀 보여 드릴 텐데요. 

우선 비교적 젊은 세대가 겪은 현대사회는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당선되면서 이회창이 떨어지죠. 근데 여러분 세대는 아마 이것도 굉장히
오래된 역사, 과거 역사로 생각할 텐데이 김대업이라는 사람이 이제
김대중과 이회창이 경쟁할 때 의인이라고 불리면서 이회창 아들의
병역비리를 증언을 합니다. 뭐 내가 뭐 그 병무청에 무슨 어떤 그 역책을
갖고 있었는데 이회창 후보의 아들 둘째 아들인가 아주 빼 많은 친구가
하나 있어요. 그 친구가 뭐 군대를 안 가기 위해서 뭐 엄청나게 작업을
했다. 뭐 그런 얘기들이 이제 대선 때 돌면서 이회창이 결국 떨어지고 김대중이 당선이 됐는데이
이런 겁니다. 이해창 아들 병역이 은폐 대책회를 열었다. 이제 이게 그
당시 오마이 뉴스에서 뭐 이런 모도를 한한 거로 기억하는데요. 근데 나중에는 김대업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됐냐면요. 김대업이 이제 사기꾼인게 거짓말적인게 들켜서 경찰이 이제 물론 선거 다 끝나고 선거는 김대중이 당선되고 이회창은 떨어졌고 이제 세월이 한참 간 다음에 야 김대이 한 마리 진짜냐 거짓말이냐는 걸 따져 가지고 경찰이 이제 조사를 했더니 김대이 필리핀으로 도망을 갔어요. 그래서 필리핀에서 검거가 됐습니다.이 이 사람이 필리핀이 먹으샤이고 그러니까 이제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통령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은 억울하게 떨어진 거예요. 

사실 이때 표가 얼마 안 났어요. 그러니까 만약에이 김대업이 얘기해서 이회창들의
병역비리가 완전히 조작된 엉터리 의혹이었다라는 것이 선거 과정 중에
명확하게 확인이 됐으면 이해창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선거 기관 중에는 조사 자체를 아예
안 하고 이제 김대업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떠들어 제키면서 이회창 이해창의 그 배우에 있는 사람들이
아들을 군대 한번에 대해서 이러 이러한 대체계의를 하면서 맞군대 안
보냈다라는 식으로 의혹을 제기해서 이제 선거 결과는 김대중의 당선으로
끝났고 그렇게 당선된 김대중이 그다음에 무슨 일을 했느냐?

음. 이제 김대중 때 북한핵을 개발할 그 크리티컬한 포인트였는데 
김대중이 한 말 중에 이런 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고 개발할 의사도 없다.
대북 지원금이 핵개발에 악영된다는 말은 터문이 없다. 북이 핵을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 이런 말을
2001년에 했어요. 
실제. 근데 지금 북한이 다 개발했잖아요. 그럼 어떻게 책임? 자기 다 죽 죽어
버렸고. 그러니까 이런 식의 이제이 현대사에서
나중에 돌아보면은 황당한 얘기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다음에 노무현이 어떤 말을 했냐면요.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라고 얘기했어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게 대한민국의 역사다.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는 인식과 그런 나라의 역사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는 거하고 양립이 불가능한 얘기예요. 

더구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사람이 대통령 입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사실 자기 누워서 침뱉는 거죠. 이런 말을 대통령일 때 이렇게 하는 나라예요. 지금 우리나라가.
그리고이 이때부터는 여러분이 좀 알 거예요.
이 이명박 대통령이 되자마자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은 광우병 걸린다
그래서 뭐 이런 식의 시위가 엄청났죠. 여러분들 이때는 뭔가 기억이 있죠? 이때도 기억이 없는 사람들인가?
2게 2년쯤 됐는데 그때는 뭐 초등학생쯤 되지 않았어요, 여러분들? 2002년이요? 2년
저희가 12년 세살 다섯살 아 그래요? 세 살, 다섯 살 아 그러면 유 유모차 타고 다녔겠네.
그때 유모차 끌고 나와서이 광어병 파동 때 자기 아들 딸을
유모차에 태워서 세고기 먹으면 안 되. 저 세고기 미국산 세고기
수입하지 말라는 시위대가 있었어요. 

유모차 시위대. 아기 엄마들이 자기 아기들을 데리고 나와서 미친 손은
엠비나 쳐 먹어라 그러면서 시위한 사람들 그때 아기들이네. 유모차에 있던 그
세대구나. 예. 알겠습니다. 그다음에 박근혜 대통령이 됐더니
세월호 때문에 이제 결국 탄핵을 당하잖아요. 

그때 이제이 이런 얘기들이 뭐 박근혜 대통령하고 정윤회라는 이제 최순실의 전 남편 나중에 나중에
다 밝혀진 겁니다. 처음에는 그러니까이 사건이 진행될 때는 막 온갖 추측만 있었는데
그러니까 최순실이라는 여자의 남편인 정윤회가 박근혜의 연인이다.
박근혜와 정윤회가 맞저 일곱 시간 동안 세월호 그 초동 단계에 7시간
동안 민례를 하느라고 이런 거 맞으면서 미래하고 있었다라는 식으로
선이 보도가 엄청나게 났어요. 그 이게 지금 이게 오마인 뉴스
보도입니다. 태반 주사 150개 맞았고 감처 주사 100억 주사 맞 이런 주사가 있는지이 보도를 보고
알았어요. 뭐 별게 다 했더라고요.

그다음에 문재인 때는 또 사드배 가지고 난리를 쳤습니다.
전자파 괴담이 있어서 전자파 이게 이게 성주 사드가 이제 성주라는데 우리나라 저 성주라는데
배최가 되는데 그 성주에 참여해 먹으면 뭐 이런 거 걸린다 그러면서
뭐 근데 뭐 지금 사드 배치에서 작동하고 있는데 아무런 문제 없죠. 마찬가지
후쿠시마 계담도 마찬가지죠. 

윤성열이 되고 나니까 이제 후쿠시마의
처리 말하자면 이건 사고로 지진 회의일 때문에 생긴 후크심마 발전서의
사고로 방송이 세는 것을 일본 정부가 온갖 예상과 기술을 들여서 처리를
해서 처리한 물을 보관하고 있다가 이제 세월이 한참 지나서 이걸 바다로
흘려 보내겠다. 그러니까 바다로 흘려보내면 그 바다에 들어간 방사능이
태평양을 돌아서 우리나라까지 와서 안 된다.라는게
이제 이때 얘기 이거예요.이 이 여기 후구시마가 있는데이 후구시마에서 생긴
오염수가 그러니까 처리가 오염이 됐기 때문에 태평양을 돌아서 삥 돌아서이
쿠루시어 해를 타고 한국 와서 이렇게 올라와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하면서 생 지랄를 떨었어요. 아 진짜 지랄를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실제 지금 북한에서 평산이라는 황해도 평산이라는 이승만
고향이에요. 평산이 그 평산에서 우라늄 무슨 최초하는 공장이 있나 봐요. 그 광산에서 우라늄이
함축 그 농축된 무슨 물질이 지금 예성강으로 흘러 내려와서 강화도
앞바다가 오염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입듯 안 하잖아요. 지금 그 얘기를
하면 뭐 가짜 뉴스라 그러면서 그러니까 뭔가 일관성이 너무 없죠.이
보세요. 그래서 여러분이 아는 거라고 내가 했지만이 잘못했네. 이거 다 옛날 얘기라고 했는데 아무튼 김대중 당선부터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성열 내내이
최근 대통령 대여섯 명이 집권하는 내내 언론과 상식이 계속 부딪히는
이런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근데 이게 그럼 요때만 이런 거냐? 그거 그렇지 않아요. 그 아예
여러분이 잘 모르는 이제 옛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종 고종은
여러분들이 배우는 세계사에서는 뭔가 우리나라를
조선 후기에 대명된 군주가 나타난 사람이 고종인데이 고종이 우리나라를
근대화시키고 독립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썼지만 일본이 그
고정을 그냥 두지 않고 침략해서 우리가 식민지가 돼서 나라가 망하게 됐다. 뭐 이런 식의 이제 평가를
여러분이 아마 듣고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데 실제 고정이 개명군주다 하는 얘기는이
이태진이라는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인데요. 이런 책에 이제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고정은 최선을 다했는데 고종을 둘러싼 간신들이 또 간신을
뒤에서 부축키는 일본과 가까운 친일파들이 이제 나라를 망가뜨렸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게 그동안 역사 교육의 기본 틀이었는데
최근에 조선일보에이 기자하는 박종인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박종인이 사람이 고정은 매국로다라는 책을 써요.
매국로 고정이 이게 여러분 한문으로 잘 여기 써 있네요. 한글로 매국로 고정. 그러서
갖고 있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책인데이 책이 맞는지 이태진 책이 맞는지 여러분이 좀 따져 봐야
되는데요.이 책에서는 뭐라고 하냐면요. 그니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종의 그 그 대명 군주로서의 역할은 다
거짓말이다. 고정 자체가 일본에 협력한 사람이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는데 앞장서서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이다. 그러고
실제 그걸 뒷받침은 또 하나의 책이이 책입니다. 이것도 안 되네.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왜 안 되지? 조선 왕공족
왕공족이란 말 들어봤어요?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합병이 되면서 우리나라 조선
왕조를 조선 왕족을 일본의 귀족 일본에는 여러분 천왕가가
있고 천왕이 있고 천왕이 속한 집안 천왕가가 있고 그다음에 그 천왕과 밑에 일본의 공후백자 남족들이 있고
이제 평민들이 있고 지금도 그래요. 기본이 근데 우리나라 왕을 천왕과이
귀족의 가운데 딱 천왕 아래 그 집안으로 가문으로 평가하는게
왕공적이란 말이에요. 조선 왕공족이란 말이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면서
예, 이런 책 그니까 이건 이제 조선 왕공족이라는게 일이 고종 우리나라의이
고종을 고종을 고종과 고종의 아들 뭐 손녀 손자 우리가 아는 무슨 저 무슨
그 조선 이시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들 또 그
후손들 비운의 뭐이 황태자라 그러면서 우리가 굉장히 좀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인데이 사람들이 얼마나 일제 시대에 호위 호식했는지 일본의 후원과
지원을 받으면서 일본이 제공하는 온갖 예산과 온갖 자리와 온갖 좋은 것을
다 본인들이 누리고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귀족 같은 생활을 하고
살았는지 만약에 일본 식민지 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착취당하고
억울하게 살았는데 살았다면은 그 우리 민족을 우리 국가를 대표하는 왕족들은
얼마나 호이호시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책이에요. 근데 일본
사람이 쓴 거고요.
이 조선 왕공은 어떤 대우를 받았나 그래서 뭐 예산 1년 예산이 얼마였고 뭐 이런 것들을
다 정리한 책인데 보면은 어이가 없어요. 그러니까 고정
고정이 이제이 보세요. 집권 기간이 1852년에서 1919년 약 60
70년을 68년을 지금 집권한 사람이에요. 얼마나 긴 세월인지 몰라요. 지금 대한민국 역사가
70년이에요. 겨우. 그리고 그 70년 세월 중에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 합해서 30년을
우리가 열심히 뭔가를 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시장 경제 체제를 가지고 열심히 해서 대한민국
선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라는 말까지 듣는게 지난 70년 역사예요. 근데
지난 70년 역사가 말하자면 대한민국 국군이 상승해서 피크까지 올라가 지금
피크는 지난 거 같고 이제 다운톤이 시작된 거 같은데 내려가고 있는데이
고정이 집권한 기간이 이렇게 길어요.이 70년 동안 뭘 했냐? 아
그니까 고정이 그 산게 70년이고 제한 것은 57년 약 60년인데이
60년 동안 뭘 했냐 하는 것을 따지면은 이승만이 한 거, 박정희가 한 거, 전도한이 한 거, 또 그
이후에 역대 대통령들이 한 거에 전혀 못 미치는 엉터리 군주인데

그래서 이제 박종인이 고정은 매공로다 이런 책도 써요.
그 실제 여기 보면 뭐 우리가 아는 고정 때 있었던 온갖 독립운동 고정이 몰래 뭐 돈대 줘서 뭐 뭐 해 그
평화회의에 뭐 누가 가서 뭘 했다는데 다 거짓말이다. 그거 실제 거짓말이에요. 다
그런 얘기들이 나오고 이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도 여러분이 배운
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말 여러분 많이 듣잖아요. 일제가 우리는 저항했는데
일제가 힘을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싫다는 걸 억지로 하게 했다. 근데 그게 아니다라는 거예요.
실제는 이거 보세요. 일본이 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 이것은 한국이 요청해서 조선이
요청해서 일본 제국의 일부가 되는 것은 일본이 승낙하는 용어예요. 

지금 이게 실제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그걸 보여 주는게 이건데
한일병합 조약 전문. 이거 여러분 한 번도 안 봤을 거예요.
읽어 볼게요. 대한제 이게 실제 조약문입니다. 지금 대한제국 황제와
일본극 황제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한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연구히 확보하고자
이게 이게 안중근이에게는
동양 평화론이에요. 동양의 평화를 연구에 확보하자고 하요. 안중근이 여러분 이또 히을 왜
써 주겠냐면요. 이또가 천왕의 연구 평화론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해서 이도를 쏘는 거예요. 안중군이. 근데 이러면 천왕의 연구 평화론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이 누구냐? 당시 안중구는 한국을 조선을 병합하는데 온건파고
일본의 군부가 강경파예요. 

우리나라를 강경한 방법으로 맞아. 먹자라는
사람들이 일본 천왕의 영구 평화론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인데 이돈은 그걸
제대로 못 한다. 그래서 안중군이 쏴요. 근데 그런 설명은 아무도 안 하죠, 지금. 그 다 거준 말이에요.
지금 여러분이 알고 있는 역사가. 그래서 하여튼이 문구를 보면은 동행의 평화를 연구히 확보하자고 하며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대한제국을 일본에 병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의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지금 두 나라가 국제 간의 조약을 맺은 거예요.
나라를 갖다 바치기로.이를 이를 위하여 대한제국 황제는 내각
정리 대신 이완용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 자작 사내정이 데라우치를 각각
그 정권 위원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에 정권위원들이 공동으로 협해 아래에 작은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대한제국 강제는 한국 전체에 관의 일제 일체를 통일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연구의 일본 황제에게 양효한다. 우리가 전쟁을
당해서 총칼에 붙잡혀서 막 포승질에 못겨 갖고 하기 싫은 놈을 야
이제부터 조선은 일본 땅이야 이게 아니에요. 그런 적이 없어요. 우리 이렇게 했어요. 지금 대한제국 황제는
한국 전체에는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연구인이 일본 황제에게 양효한다.
그냥 나라를 바치겠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 그렇게 합병이 된 거예요. 우리나라가 일본하고
일본 황제는 앞조항에 기재된 양해를 수락하고 나라를 바치는 걸 우리가 받아 주겠다.
완전히 대한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낙한다. 그래서 조선이란 나라하고 대한제국이란
나라하고 일본이 갓 한 나라가 되는 것을 승인하는 거예요. 우리가 해
달라고 사정해서 오케이 그러면 해 줄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이게 실제 조약문이에요. 이런게 끝도 없어요. 지금 여기
보세요. 일본 황제는 대한제국 황제 태제 태제라는 건 황제의 아버지예요. 태왕제 전화와 그들의 황우 황비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기 지위를 응하 지위를 응하여 적당한 존칭 위심과
명예를 누리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세비를 공급함을 약속함 이게 아까 얘기하는 완공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본 예산으로 조선 왕과 왕가와 왕선들이 잘 먹고
잘 살게 제도적으로 보장해지고 있어요. 지금 합병하면서.
근데 무슨 고정이 독립 수사예요. 나라를 팔아먹고 매국로예요. 그냥
그래서 이런 식의 조약문이 있는 것을 이게 실제 있었던 조약문이에요. 

근데 아무도 가르치지 않아요 이거는.
그래서 실제로는 병합이 된 건데 영어로 아넥세이션이라 그러죠. 병합.
일본이 강점했다고 계속 우기고 있어요.
근데이 일제 강정기란 용어는요. 우리가 만들어낸 말은 북한이 만들어낸 말이에요. 북한이 남만을 지금 미재 강정기라고 생각해요. 미국 군대가 남안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다. 미국
군대가 점령하기 전에는 일본 군대가 조선을 점령하고 있다. 그게 일제 시대에요. 
북한이 보는 맞자면
제국주의 국가 일본과 미국의 앞잡비 국가가 남남만이고 자기네는
제국주의하고 상관없는 그 독립된 그런 국가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만들어낸 말이죠. 

그래서 과거에는 우리가 일제 시대를 그냥 일제 시대라고만 불렀지 일제
강정기라는 용어를 안 썼어요. 
근데 2003년부터 2003년이 언제냐? 2002년 김대중 직권하고 나서요.
그런데이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도요. 지금 이제 여러분이 배운 거는이 차별과 억압의 시대였다라고 배웠을거예요. 
그래서 차별과 억압의 시대에 대해서 배운 것을이 풍암고에서 교사들이 그 학생들 가르킬 때 참고하는 교사용 자료를 내가 하나 스캔을 떴는데요
일제 식민지 지배와 민족동의 전개
이런 식으로 이제 그래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 3일운동과 임시정부
다양한 민족동의 전개 뭐 이런 식의 목차를 가지고 대부분 진행이 되면서

일제히 식민지시 지배정책이 어떻고 저쩌고 뭐 한글을 말설하고 뭐 뭐 조선 사람을 수탈하고 뭐 어쩌어쩌 그런 얘기들 많이 하죠. 그래서 그 당시 국제 정세를 쓰고 여기 보면 이제 무단 통치와 식민이 수탈 그래서 헌병 경찰을 앞서 무단 통치를 했다. 이게 이제 여러분이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익숙한 역사 교육의 내용일 거예요. 식민지 교육 강요 자유와 권리 제한 그래서 뭐 한글을 못 쓰게 하고 뭐 어쩌고 어쩌고 조선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법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빈틈을
이용해서 신고하도록 정해 놓고 신고를 못한 사람이 있으면은 그 신고 못한 사람의 소유한 땅을 조선 총독부가 자기 국가 소유로 바꿔 버렸다.

그래서 토지에 40%를 조선 사람이 뺏겼다. 뭐 그런 식의 이제 설명을 
하고 그다음에 뭐 쌀이나 뭐 온갖 그 수탈를 하고 뭐 진경하고
그러면서 뭐 이제 온갖 그 맞저면 일본이 우리를 수탈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실제
미국에서는요 외국에서는이 식민 시대를 이렇게 지금이 내용을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이 보면 콜로니모더니티인 코리아라 그래서 신기욱이라는 사람하고
마이클 로빈슨이라는 사람이 편집한 책인데 데이 그림만 봐도 아 일제 시대 뭔가 근대적인 어떤 모습의
국가로 나라가 바뀌고 있는 것을 그리고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책 표지죠. 

영어로 된 책들은 이런 책들이 
그니까 일제 시대에 찢어지게 가난하게 수탈당한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고 
막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자전거 타고 다니고
이 여자들은 이렇게 모든 그 감수성을 가진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고
이 다리가 놓여진 강을이 내다보는 맞으면 근대적인 어떤 발전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책인데 해외에서는 이런 책들이 많아요. 

근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만 일제 시대를 아주 아물한 시대로 그리고 있죠.

그래서 토지 조사 사업에 관해서도 아까 잠깐 말을 했지만 토지를 수탄한 거다.
그다음에 측량 소유권 세금. 그래서 날이 네이버에 착용한 사람이
블로그를 하나 운영하는데 이게 일조일가 얼마나 우리나라를
수탈했느냐 하는 것이 그런 교육을 하는 것이 얼마나 엉터인가를이 사람이
잘 정리를 해 놨더라고요.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경제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었다.
하락한 이유는 뭐 여러 가지 이제 이런 이런 문제들이 있었다. 바닥을 찍었는데
일제부터 이제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한 1900년경부터 생활 수준이
좀 나아지는 이유는 일제가 개발한 품종 개발한 새로운 품종의 쌀을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그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 사람들은 다 일본 사람들이고 그래서이 날씨가 추운 만주 또 시베리아까지도
맞자면 쌀농사의 상한선이 계속 올라가 가서 이제 쌀이 점점 늘어났고
그다음에 1차 세계 대전으로 일본이 어떤 국제적인 기회를 잡게 됐느냐 하는 설명 
뭐 이건 너무 자세한 얘긴데요. 그래서 생산량이 계속 이제이 보세요. 1911년부터 194년까지 생산량이 계속 늘어나고 국내에서 소비되는 것은 이 생산량보다 적게 증가하니까 
남은 쌀들은 이 간격의 쌀이 남는 것은 다 수출했다. 이게 일본으로 수출된 쌀이다. 
그 쌀을 수탈당한 거하고 완전히 반대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래서 산미 증상 계획을 통해서 쌀이 많이 생산이 늘어났고 이 생산이 늘어난 쌀을 군산 같은 한구에 모아서 수출을 했다. 쌀 수탈은 없어. 

그러니까 우리나라 농민이 지주와 소작인이
생산한 쌀을 우리가 배운 것은 우리가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운 것은 일본
순사가 와서 일본 경찰이 와서 막 돈 하나도 안 주고 야 저거 반은 싫어. 
그래갖고 실어서 군사왕 이게 한구루 가져가서 일본으로 날랐다라는 식으로 우리가 배웠는데 
그게 아니고 일본에 일본에도에서도 물론 쌀의 수확량이 늘어나지만 또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서 쌀의 맞으면 쌀의 수요 공급에서 일본에서는 쌀에 대한 수요가 더 빨리 늘어나고 공급은 적으니까 해외에서 쌀을 들어올 필요가 있는데 
조선 조선이 쌀을 굉장히 급격하게 생산하기 시작하니까 조선 쌀을 수입하는게 일본에서는 일본 상인들로서는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었어요. 
왜냐하면 쌀의 품질은 좋고 쌀의 생산은 남아두니까
우리나라에서 싼 값으로 쌀을 사서 일본 몬터에 가서 상인이 일본 상인이 그걸 팔면은 
차액을 많이 남기는 엄청난 그 장사가 잘되는 품목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목포, 군산
여러분이 아는지 모르잖 줄포 뭐 이래서 그 당시에 우리나라 그 만경강 뉴역 뭐 영상강뉴역 그 호남 쪽에 있는 한구에서 쌀을 이렇게 한구에 쌓아 놓고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돈 다 받고 팔고 있었다.
그 다음에 아까 얘기한이 토지 수타를 주장하는 사람이 신용화 교수인데 
이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법 절차를 잘 몰라서 그러니까 일본이 우리를 지배했는데
지배하면서 보니까 우리나라 국가의 시스템이 도대체 산업의 주요 생산물이 뭐가 있고 그것은 누구의 소유고 거기에 세금을 얼마나 먹여야 되고 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는게 없으니까 
토지조사 사를 해야겠다. 그래서 맞자면 조선 후기에도 뭐 광무양전이다 뭐 그래서 양전이라고 부르는 토지 조사 사업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어요. 근데 그 측량 기술이나 또
실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자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을 일본이 확인하고 일본이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조선에는
도대체 어 얼마 많은 산업 시설이 있고 그중에 농업은 어떤 기반이 있고
그 농업에 뭐 쌀은 생산량이 얼마나 되고 그게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경상북도의 지주들마다 집안마다 어떻게 소유하고 있고 거기에 한해 수양량은
얼마고 쌀값은 얼마고 하는 기초 자료가 있어야 국가를 운영하고 가장
중요한 국가에서 해야 될 일은 세금을 먹기는 건데 세금 매일 기초 자료가 안 되니까 없으니까 이제 그 자료를
확보하려고 토지 조사 사업을 한 것인데 신용아 교수라는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그런 이제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서
일본은 는 뭘 노렸느냐? 한국 사람들이 이제 토지 조사 사업을 한다. 그래서 안내를 다 하고 그
안내에 따라서 그러면 내가 농민 각자가 소유한 땅은 어느 어떤
땅이다. 거기에 소출은 얼마다 하는 것을 일일이 신고하게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법 절차를 잘
몰라서 신고를 안 하고 그래서 신고 안 한
토지는 조선 총독부가 미신고 토지로 분류를 해 가지고 그냥 국가소유로 확
바꿔 버렸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 토지에 40%를 조선
총독부한테 뺏기게 됐다라는 서을 썰을 푼 사람이이 사람인데 이게 전부
거짓말이다라는 얘기들이 요새 다 밝혀지고 있어요.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기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무리 국가의 신고 절차가 복잡하더라도
자기 땅의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절차를 지금부터 시행하는데 나는 신고
절차를 몰라서 신고를 못 해 가지고 땅을 뺏겼다 그러면 가만히 있을 땅주인이 어디 있어요? 난리를 치죠.
뭐 옆에 사람한테 물어보고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고 내 대신 네가
절차를 좀 밟아 주면 그러면 내가 너한테 돈을 얼마 줄게 네가 좀 해 달라 이런 식의 작업을 당연히 하는
거지. 그것을이 사람은 조선 사람들이 착하고
무식해서 무지해서 그냥 조선 총독부의 토지 전체이 40%를
뺏겼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한 것이 여러분한테 전해져서 지금까지 내려고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 지금 차경환이라는 사람이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자료를 가지고 그동안 배운 역사가 전부 엉터리다.
쌀은 수탈한게 아니고 이출한 거다. 그 당시 말로 이출해. 그러니까 식민지 우리나라하고 일본하고의 거래는
식민지 시절에는 그거를 수출이라고 국가대 국가가 아니고 일본의 일부잖아요, 우리가. 그래서
이출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래서 이제 그이 과정을 밝힌
사람이이 사람이에요.이 이 사람이 김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고
지금은 한국학 중앙 연구원 원장을 하는 사람인데이
문정복 경기 시흥갑 더불어민주당 재선의원이 여자 문정복이가
생 난리를 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일제시대의 쌀은 수탈이 아니고
수출이라고 김낭년이 얘기하니까 지금 문정보기가 너 재정신이냐 그러면서
국정 감사해서 난린 치근인데 맞으면 문정보기가 엄청 무식한 거예요. 사실이 김당년
교수가이 이런 말은 수출했다 이출했다라는 얘기를
학술문에 발표하고 그것이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거는 사실 한 2,
30년 전부터예요. 내가 그리고 그런 얘기를 연세대
사정부에서 한국학중앙 연구원에 임명이 됐어요.이 이 사람에 대한 인사
청문회에 하는 장면인데 이제이 사람은 옛날에 자기가 학교 다닐 때 배운
것만 가지고 그게 망고의 질린 줄 알고 지금 이제이 김낭년에 대해서 너
재정신이냐 이러면서 지금 난리를 치고 있는게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에요.
그리고 이제 노동력도 징용도 사실은 이게 전부 엉터인게요. 징용.
여러분이 징영 노동자 본 적 있어요?이 용산역 앞에도 있고 뭐
부산 초량 어디 가도 있고 한데이이
징영 노동자 이건 이제 위안부상이죠. 이게 초량에 가면 부산 초량에 가면
나란이 있어요. 얼마 거리가 안 떨어져서. 위안부역에 나중에 하고이 직경
도전상은 사실은요 갈비뼈가 이렇게 나오고 막 곡괭이 들고 한 건 이게 일본 신문에 보도된
일본인 도로공사하는 노동자의 모습이에요. 그리고 일본 신문에서 일본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면서 지금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종에 일본 신문이
사회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인데 이것을 한국 사람으로 그냥 오해를 해
가지고이 사람의 노동자 상까지 세워놨어요. 지금 민주노총이
이게 이제 일종에 이제 우상숭배의 대상에 대해서 절까지 하고 있잖아요, 지금.
그래서 이거를 이유 박사가 이현 박사가
이현 박사가 이제이이 징역 문제의 최고 전문가인데
UN 가서 강제 증용 없었다. 실제 여러분 일제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가서 노동을 많이 했는데이 사람들이 노동을 하는 과정과 실태가
어떠냐면요. 일본은 당시에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신흥 공업
국가였어요. 안주를 개발하고 이제 우리도 영국이나 프랑스나 미국 같은
잘 나가는 나라가 돼야 되겠다라는 일념에 차 있는게 일본이었고 그
일본이 전쟁을 해 가지고 1937년에
1900 20년인가 19 20 1930년에
만주 국가를 만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그러니까 1900 1900년에
대만을 먹어요. 일본이 1910년에 우리나라를 먹어요. 1930년에
만주국을 세워요. 1937년에 중일 전쟁을 일으켜요. 일본이 중국하고 전쟁하고 1941년에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요. 그래서 45년에 원자탄 맞고 이제 망하는게 일본의 근대사인데
일본이 이렇게 팽창 해외로 팽창하면서 사실은 태평양전쟁 초반에는 하와이 기습 공격하고 그러면서 일본이 동남아
전체 태평양 전체를 먹었잖아요. 여러분이 그거 아는지 모르겠는데 실제 그렇게 전왕이 전개된 것을 보면은
일본이 하와이를 기술 공격하면서 이제 미군이 필리핀이나과
같은데 지배하던 것을 다 일본한테 뺏기고 호주도 밀리고 그래서 일본이
이제 메가더가 완전히 저 캘리포니아 쪽으로 밀려갔다가 다시 복귀하면서
미드웨이 회전이 벌어지고 미드웨이 회전에서 반격의 실마리를 잡고 이제
옥기나를 를 재점령하고 필리핀을 재점하고 오기나와 제점하고 그러면서 이제 우리나 저 나가사격 히로심의
원저탄 터트리고 일본이 항복을 하는데 그 당시 일본이 어땠냐면요.
일본이 그 당시 인구가 한 최대 한 5천만
3천만에서 5천만 정도 됐을 거예요. 그리고 일본이 유지하던 병력의 숫자가 750만을
가진 군대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일본의 인구수에서
750만이라는 군인 숫자를 유지하면서 그 군인들이 만주, 중국, 동남아, 태평양이
전선에 다 나가고 그러니까 일본에는 남자들이 없는 거예요. 일본에는
맞저면 우리가 지금 뭐 군대 가는 나이인 뭐 18세에서 25세다 뭐 이런 나이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미 일본 군대에 갔고 그것을 늘려 가지고 15세부터 역데 뭐 40세까지는 군대에 가야 된다.
그래서 이제 일본의 본토에 있던 남자들은 다 전선에 가서 일본이 어떤 상황이냐면은 군수산업은 돌아가야지
전쟁에 필요한 무슨 무기나 뭐 군복이나 뭐 온갖 전쟁에 필요한
전전시 물자가 제공이 되는데 그 공장에서 일할 남자들이 없는 거예요.
다 전쟁터에 나갔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에 있는 여자들이 이제 어느 나라나 전쟁이 일어나면은 남자들은
전쟁로 가고 남자들이 전쟁이 없을 때 일하던 공장에 여자들이 가서 일을
합니다. 어느 나라 전쟁이 나면 그렇게 돼요. 근데 그거 갖고도 모자라니까 이제 조선에서 우리나라
조선 사람들은 일본이 군대에 맞아. 의무적으로 오라는 얘기를 안 했어요.
일본이 우리나라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은 군대에
너네가 오고 싶으면은 일본 군대에 조선 사람이 들어오고 싶으면은 너네가
지원을 해서 우리가 지원한 사람들을 평가 심사해서 자격이 갖춰진 사람만
뽑아 주겠다. 그게 육군 특별 지원병이라는 제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일본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은 학도병도 여러분 학도 지원병이에요. 대학생들이 군대에 가려면은 지원을
해서 조선 대학생이 군대에 일본 군대에 가려면은 지원을 해서 지원을
통과 지원 받은 사람들을 심사해서 통과해 갖고 그서 합격이 돼야 일본
군대에서 받아줬어요. 그리고 그 학도병은 장교로 가는
사람들이고 이제 일반 사람들은 특유군 특별 지원병이라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일본 군대에 가고 싶으면은 일본 군대에 들어가는게 엄청난 출세였어요. 그때는.
그래서 그 우리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육군 특별 지원병 제도를 시행한다.
응하고 싶은 사람은이 모집 절차에 응해라. 그래서 그 경쟁률이 50대
1, 100대 1 이랬어요. 엄청나게 경 맞좀 들어가기 어려운 그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경쟁을 거쳐서 이제 군 군인이 됐는데 이제 그런 사람들은 일본 군대에
들어가면은 일본 군대가 전쟁을 해야 되니까 아까 얘기한 대만 전선에 가나 중국 전선에 가거나 동남아 전선에
가거나 태평경 전선에 가거나 이렇게 배치가 되니까 여전히 노동력이 모자라.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일본의 군수공장을 움직이던 우리가 아는 일본의 재벌 기업들 미스비C, 미스이 뭐 스미도 뭐
여러분이 아는 요새 잘 나가는 일본 기업이 그때부터 이미 다 있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 그 회사들이 그
기업들이 우리나라 요새 현대중공협이 잠수함 만들잖아요. 그런 거 같이
미스비C라는이 철강 회사가 그때 항공 모함을
만들었어요. 그 항공 모함 만드는데 인력이 필요할 거 아니에요. 그 인력을 조선 사람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면 어떠냐? 그래서 조선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데려간게 아니고
미안부하고 똑같아요. 광고를 내요. 야, 미시라는 회사에 어떠어떠한
공장에서 이런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뽑는데 월급은 얼마다. 하고 싶은 사람 지원해라. 그래서 신문에
보면 광고가 수룩해요. 그 당시 신문에 보면 그렇게 해서 미시비c시로 가고 미스로 가고 뭐 온갖 일본의 그
군수 산업이 있는 그 공장에 가서 일하는게 징용이에요.
근데 그거를 하다가 그러니까 그건 징짜를 붙일 수 없는 일인데 마지막에 일본이
이제 그런 식으로 조선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응하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는 과정을 하다가 그래도 또 인력이 모절하니까 마지막에 전쟁이
끝나기 일본이 항복하기 9개월 전부터 징용을 실제해요. 징을 한다는 말은
강제로 징병이나 징용이라는 군대 가기 싫은 사람도 너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대 가야 된다라는게 징병제도 아니에요. 징영제도 아니에요. 그래서 9개월 정도 징용을 실시해요. 9개월
마지막 9개월 이전에는 징용이란는 말이 없었어요. 그때는 지원하는
거예요. 지원. 그래서 이제 이원이가 그 말을 하는 거예요.이
UN유엔에 가서 강제 중용은 없었다. 있었다면은 마지막 9개월만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고요. 여자들한테도 아까 얘기한 대로 이제 전선에
남자들이 나가면 그 공장을 누가 돌리려? 여자들이 돌려요. 그 여자들을
뭐라고 불렀냐? 그걸 정신대라고 불렀어요. 그러니까 정신대라는 것은 남자들이
일하는 공장에 여자들이 가서 뭐 간호사부터 무슨 방지공장 군복 군복을
만들려면 방직 공장이 돌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럼 방지공장에 가서 일하는게 정신된 거예요. 석탄 캐는데
가서 석탄 캐는 사람들 밥해 주는 아줌마 일을 하하잖아요. 우리나라도 무슨 한바 식당하잖아요. 무슨 건설
건설 현장에 가면 그 사람들이 이제 남자들이 다 싹 없으니까 여자들이 가서 건설 현장에 막노던동까지는
여자들이 하기 힘들면은 너는 그 사람들 반매이는 일 해라라고 데려가는
거예요. 그게 정신대예요. 그거를 무슨 위안부 위안부는 저
맞좀면 직업 여성들 남자들 상대로 그 일 하는 그거를 위안부라고 하는 것이
맞고 정신되는 그런 일이라고는 전혀 상관없는 맞으면 전쟁 시기의 군 전쟁 시기에
공장에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한데 남자들이 모자라니까 여자들이 과거에는
많이 하던 일이 아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여자 자도 남자들
같이 일을 해야 된다. 그래서 전문성이 있는 기술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모셔가고 근데 간호사
자격증이 사람은 당연히 모셔가죠. 병원이 부상병이 많으니까 병원이 막 엄청나게 넘치니까 그런 전문성이
없으면은 방직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면 너네 와서 일본 방지공장 가서 일을 해 가지고 군복을 만들어라.
이제 이런 사람들이 정신된 거예요. 그거를 우리나라 저 정대협의라 단체가 위안부랑 정신대 구별을 못 하면서
이름을 헷갈리게 쓰고이 생 난리를 친 건데.
그래서 이제 윤미양이 이제 정대의 대표였는데 이거 알이 사건을 알죠. 횡령해서
이제 최종적으로 징역 나는 그래서이이 얘기를 내가
강의에서 했다가 이제 결국 이렇게 해서 이심에서도 무죄, 대부분에서도 무죄 받았어요.
그래서이 위안부 얘기에 관해서 지금 아주 기가 막힌 자료가 있는데 이거
조금 이따가 얘기하고요. 그다음에 또 계속 예,
요거 요거까지만 하고 잠깐 쉬죠. 그럼 미안부 얘기만 마무리하고. 이게 2018년 2월 28일 날
SBS 뉴스로 나간 영상입니다. 이거를 보면은 야, 일본 놈들이 진짜 나쁜
놈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뉴스가 나가요. 한번 봐요. 일본군이 조선인부를 학살했음을
보여주는 1944년에 참혹한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학살과 관련한
많은 증언이 있었지만이를 증명하는 영상이 공개된 건 처음입니다. 노동교
기자입니다. 서울대 연구 팀이 미국 국립 문서
기록 관리청에서 차지하는 19초짜리 흑백 동영상입니다. 밝아벗겨진 여성 시신들이 널부러져 있고 중국 국민당
군복을 입은 남성이 시신 사이를 오가며 양말을 벗기기도 합니다.이 참혹한 영상은 미중연합군이 중국
텅충을 일본군으로부터 탈환한 다음날 찍은 겁니다. 소속은 164 통신
사진 종대 비파경대라고 돼 있습니다. 영상 카메라맨 골드인이 1944년
9월 15일 촬영했습니다.이 영상과 같은 곳을 찍은 걸로 보이는 사진에 희생자 대부분이 조선
여성들이란 기록도 나옵니다. 폐색이 짙어진 일본부는 끝까지 싸우다
죽는 이른바 옥수의 작전을 조선인 위안부한테도 강요했습니다.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위안부 학살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위안부는 특종 분석이었죠.
특종 분석 폐기라는 발상으로 위안부를 학살한 실제로 텅충환 직후 작성한
연합군 문서에 탈란 전날밤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지다 어째는가 찔러 죽이고 쏴 죽이고 다 이렇게 죽겠지. 먼저 죽은
사람들이 정말 불쌍하지요.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일제의 학살
범죄를 알고도 연합군이 그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았다는 사실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SBS 노동규입니다.
저런 영상의 뉴스로 나가면은 저걸 본 사람들은 야, 일본 놈 진짜 나쁜
놈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영상인데 저게 완전히 사기극입니다.
내가 그걸 보여 줄게요. 지금이 시체들의
양말 벗기고 하는 영상의 원본이 어디냐면요.이
나라라는 미국의 문서보관하는 그 정부 기관이 있어요. 나라의 전체 9분
34초 분량이고 그중에 1분 57초 분량 1분 57초에서 2분 20초쯤에
나오는 약 19초. 아까 뭐이 뉴스에서 19초짜리 영상이라 그러는데
한 20초가 좀 넘는이 영상을 보면요. 아 이게 또 왜 안 돼?
이게 나라의 그 겁니다. 더 배틀 오브 통충. 그래서
이제 텅통 아까 통충이라는건 뉴스의 위치가 나왔었죠. 그 중국 남서부에
그래서 여기 보면은 뭐 중국의 무슨 장군이 뭐 하고 해서요 영상이 전체가
9분 34초인데 1분 50초쯤에서 그 아까 그 양말 벗기는 영상이
나옵니다.
그래서 1분 지금 8초 지나는데요. 이런 식의 이제 이게 이게 롱샷입니다. 멀리서 찍은 거고 이것을
그래서 이제 이런 식의 이게 무음이에요. 음성은 없어요. 그래서 뭐 자기네가 이제 이게 아마
중국군이 뭐 연설하는 거 같고
예분 43초인데요. 지금 현재가 이제 곧 나올 겁니다. 관련된 영상이
미군하고 이제 중국군이 악수하면서 일본하고 같이 싸우는 거죠. 지금
중국 본토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이겁니다.이
영상을 잘 보면요.
이거 더 커지지 않나? 이게 이게 남자라는게 확인이 되는 거
보여요? 남자예요. 남자. 이이 물건이 보여요 그냥.
아니 실제 보이잖아요. 지금 이거 더 크게 할 수 없나? 어떻해?여
위하이여이
보세요.이이 아까 여기 그 뉴스에 보면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어요. 저거를 다 뉴스를 보 근데 실제 여기
이게 남자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게 지금이 시신을 통해서 보이는데 저 영상을 모자이크 처리하면서 일본
저 한국 위안부라고 지금 뉴스가 나간 거예요.
다시 한번요.
이걸 보고요. 이게 어느 나라 사람인 거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사실 이게
지금이 아까 그 뉴스에도 나오죠.이 장면이.이 이 부모는 그냥 남자인게
분명한 영상인데 저걸 가지고 이제 여자라고 지금 사기를 치고 있는 건데
그다음에는 뭐 다른 또 전쟁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담은 기록들이에요.
이제이 전체 구분 중에 위한 관련된 건 없는데 이것을 이렇게 해서
나라 영상 원본에 붙어 있는 문자 정보 이것이 더 중요한데요. 요걸 한번 볼게요. 여기 보면은
예.요 여 여기 보세요.이 이거 보면 여기 지금요
문서가 있습니다.이 이게 이건 나라 나라 홈페이지에서 지금 계속 우리가 다운받고 있는 건데 여기 PDF로 된
파일이 하나 있는데요 두 번째 문서인데요.
이것을
이거씨 이걸 내가 아 이거구나.
여기 보면은이 LS가요. 롱샷인 거 같아요. 롱샷
멀리서 찍은 샷이다. MS는 중간에서 찍은 거다. 뭐 그런 건데 여긴
차이니 솔저스트 오프 제니 솔저 이거 일본군
군인이라고 일본 군인의 양말을 중국 군인이 벗기고 벗겨서 갔다라는 말이
이렇게 설명이 돼 있어요. 뭐자면 저 사진에 캡션으로 이걸 다 봤어요,이
사람들이. 그리고 이제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지금. 그리고 여기 보면 데드스빌런 죽은
민간인들 남자, 여자. 여기 지금 남자가 우머니 차이니즈인지 코리안인지 뭐
그런 말이 없어. 여기 보면 차이니 솔저 루즈니스. 그러니까 중국 군인이 일본인 죽은
사람을 이렇게 뭐야? 양말 빼간다. 이런 식의 설명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까 봤던 그 영상은 분명히 중국 아니 그니까 죽은 일본군 남자
시신인게 분명해요. 지금 여기 이게 써 있잖아요.
스p of dead니 죽은 일본인 군인들 시에서 양말을
벗겼다라고 써 있어요. 지금이 캡션에이 영상의 캡션에
근데 아까 뉴스에서는 그게 조선인 위안부 시신이라고 뉴스가 나왔잖아요.
이게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요. 이렇게 뉴스를 가짜로 만들어도 되는
겁니까? 이게 정상적인 나랍입니까, 지금?
내가 그래서 요거를 다운받아데 이것도 또 안 되네. 아이 되는게 없어.
예, 여기 지금 내가 아까 그 LS 이런 것들의 의미가 뭔지를 찾아봤더니
이렇더라고요. 뭐 미디움,롱 피사체를 멀리서 보여주는 아까 그
촬영할 때 보면은 미군과 중국군이지도 무슨 장성들이 악수하고 하는 것을
멀리서 찍은 거 산 산 모양까지 나오는 거 그런 것을 설명하는게
캡션에 있었고요. 그다음에
예 나라 영상 업무에 붙는 문자 정보 요거를 봐야 되는데
아 요건가 보나 예
롱샷 아까 내가 설명한 거죠 이렇게 분명히
그 영상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그리고 뭐 어떤 문서군에 어떻게 있다라는 명확한
기록이 있는데 지금 아까 뉴스를 다시 한번 볼까요? 이거 얼마나 엉터인가?
이제 이걸 다시 한번 일본군이 조선인부를 학살했음을 보여주는 1944년에 참혹한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학살과 관련한 많은 증언이 있었지만이를 증명하는 영상이 공개된 건 처음입니다. 노동교
기자입니다. 서울대 연구 팀이 미국 국립 문서
기록 관리청에서 찾아낸 벗겨진 여성 시심들이 널부러져 있고
중국 국민당 군복을 입은 남성이 시신 사이를 오가며 양말을 벗기기도 합니다.이 참혹한 영상은 미중연합군이
중국 텅충을 일본군으로부터 탈환한 다음날 찍은 겁니다. 소속은 164 통신 사진 중대
비파견대라고 돼 있습니다. 영상 카메라맨 골드인이 1944년 9월
15일 촬영했습니다.이 영상과 같은 곳을 찍은 걸로 보이는 사진에 희생자 대부분이 조선
여성들이란 기록도 나옵니다. 요것도 내가 이따가 얘기할 거요. 폐색이 짙어진 일본부는 끝까지 싸우다
죽는 이른바 옥수의 작전을 조선인 위안부한테도 강요했습니다.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위안부 학살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위안부는 특종 분석이었죠.
특종 군수분 폐기라는 발상으로 위한부를 학살하는 실제로 텅충한 직후 작성한 연합군
문서에 탈란 전날밤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고 기록되
있습니다. 요것만 사실 아다 어째는가 찔러 죽이고 쏴 죽이고 다 이렇게 죽겠지 먼저 죽은 사람들
정말 불쌍하지요.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일제의 학살 범죄를 알고도 연합군이 그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았다는 사실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SBS 노동주입니다.
그러니까이 뉴스가 이렇게 엉터리예요.
그다음에 이제 요것까지 정진성이라는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정년 퇴직한 분이 있습니다. 여자입니다.이 여자 교수가 낸 보고서가 세 권짜리가
있고 그 세 권짜리 표지랑 저자의 소지상 요거를 우선 좀 보여 드릴게요. 이게 다 누르면은 그냥
탁탁 튀어나왔어야 되는데 하나도 안 돼. 지금
여기서 보고서 3권 전체 표지 예.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 관계 1 2 3 요게 한 세트입니다. 이게 서울시로부터
10억 원이 넘는 18억인가의 돈을 받고 만든 보고서인데요. 정진성이 책임자입니다.
그래서이 3권 1 2 3권 중에 3권이 일본군
위부 일본군 위안부 관계료 3 정진성편 2018년 출판된 선인이란
출판사 나온 보고서인데이
보고서에 보면은 이제 서지상이 있습니다. 정진성이 편저고 저자는 아까 뉴스에 나왔던
강성현 성공회대 문화학부가 뭐 공준환 곽기병 박정희 이민정 이정 여러
사람이 같이 했고요. 그다음에
편저자 소개를 보겠습니다.
경진성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미국 식고대학 박사 UN 인권소인의
위원 유권사의 자ond위원 한일 역사 공동 엄청난 경력을 가진 사람인데요.
정대협 공동대표 UN 인권 정책 센터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 소장 인권사 소장 현재는 사회학가 교수 2018년
현재는 재직 중이었고 그 사이에 2025년 사이에 어느 시점에서
퇴직을 해서 지금은 명예 교수고 뭐 이런 책을 냈다. 그다음에 그 밑에 강성현은 성공회대 국제문화
연구학과 아까 그 뉴스에 나온 사람이죠. 공준환 전부 서울대 박서정
뭐 이런 사람들이 이제 낸 책인데 여기 보면요 이게 이게 사진 속에
14이
아까 얘기한 그 미군자료 3권에 지금 66페이지입니다. 66페이지고이
여기에 보면요. 지금이 사진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사진 14번입니다. 아까 이것도 뉴스에
나온 이미지들이죠. 씨 어떻게 될 거야?
예. 나라가 제공하는 그 아까 내가 방문한 그 미국 문서보관소
나 내셔널 아카이브 뭐 어쩌고 하는 미국 국가 기구입니다. 갓 나라가
제공하는 카탈로그에는 영상 속 장면들에 관한 설명이 있다.이 카탈로그는 18초 자연속 여성들을
중국인 여성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카탈로그에서 미국 자료에서는이 여자들이 중국인
여성들이라고 설명했다라고 지금 썼어요. 그러나이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카탈로그 장면 목록의 요약 설명은 나라가이 영상을
분류하고 목록으로 정리하면서 작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계속
읽어 볼게요. 다시 말해이 카탈로그는 영상이 촬영된 전쟁터에 간 적이 없는
기록 관리자가 나중에 영상을 보면서 장면 유약을 기록 기술한 것이다. 그래서 차이니즈라는
중국 사람이라는 그 해설이 틀렸고 이거는 조선 사람으로 해석해야
된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이 영상 속 여성들은 중국인 여성들이
아니라 대부분 조선인 위안부들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지금 해석을 하고 있어요. 자기가 마대로.
아이 해석을 하는이 사람은 그러면 통증에 갔어요 지금.
아 너무 웃기는 사람들 서울대 교수가 연구 책임자가 돼서 박사 과정 여러 데리고 지금 연구해서 낸 책에 보면은
이런 사진 자료가 있는데이 사람들은 조선인 위안부어야 되는데 중국
사람이라고 써 있는게 잘못됐다라고 지금 나라의 기록을 부인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 맘대로 해석하고 그리고
그 결과를 뉴스에 지금 내보낸 거예요. 지금이 완전히 코미디 아니에요. 이게 말이
되는 일이에요.이 이 영상을 촬영한 영상 카메라 교차나
얼어죽을 전부 거짓말이야지. 그다음에 16번 사진 볼게요.
이게 이제 아까 그 사진이에요. 예.이 이거 여기 보면요. 7초 앞과뒤 장면은
중국금 매장 매장조 병사가 성박 구동에 여성 시체들 사. 이게 여성 시체가 아닌 거 눈으로 봤을 거
아니야. 지금 자기네들이. 아까 우리 다 봤잖아요. 여긴 보여요? 지금 자세히 확대해서 보면
이게 남잔인지 여잔인지 보이고 있어요, 지금. 근데 버젓이이 사진을 실어 놓고 지금
여성들 시체 사회를 오간다고 얘가 오 여성들 시체사회를 오간다고 써 있어요. 지금
이게 서울대 명예 교수라는 사람이 지금 보고서 낸 거예요. 지금 말이 되는 얘기 이게이
영성과 관련해 나라가 제공하는 설명 카드가 있다. 아까 내가 보여준 그 설명 카드 얘기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잘못됐다고 또 여기 쓰고
있어요. 설명 카드는 중국인 병사가 개방된 구덩이 속에 죽은 일본군들,
죽은 민간인들, 여성들, 아이들의 양마를 벗기고 있다. 이렇게 써 있지 않아요. 그냥 죽은 일본군들 양마를
벗겼다고 써 있어요.이 무슨 여성들, 아이들 얘기는 없어요. 지금 다 만들어 내고 있어요. 중국인 병사는
죽은 일본인으로부터 약탈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이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뭐 말이 안 되는 얘기를 써서 원사료가 기록한 사실을 부인하면서
자기네가 유리하게 사료를 해석해요. 그래서 보고서를 냈어. 서울시에서 18억을 받아 가지고 거짓말 보고서를
만들어 놓고이 보고서 출판을 가지고 언론서에다 제공해서 뉴스를 똥토리로
만들어서 모자이크 딱 처리해서 일본 병사 사진을 한국 여자 사진으로 바꿔
가지고 지금 뉴스가 나와서 여러분들 그 뉴스 아무것도 모르고 봤을 때 보면은 일본 놈들 진짜 나쁜
놈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심어 놓고 있어요. 지금 이것을 아무도 모르게 나 같은 사람이 이걸 따지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이게 쌓이고 쌓여서 지금 반일감정이 이지경이 된 거예요. 지금 이거
하나만이 아니에요.
진짜 어이 없어요. 어이 없어. 그래서 보고서 3권세트 미국제 이거
다 셋고 이거 사진과 해설 사진 16번 14번 했고 강성현이
2019년에 영어로 코리아 저널이라는 잡지에 지금 낸 논문이 있어요. 이것도 또 안 뜨?
이것도 안 뜨는데 이거는 어디 있을 거예요?
예. 영어로 뭐 또 이제 요새 교수들이
영어로 강성현이 쓴 논문이고 코리아 저널이라는 한국 유네스코가내는 잡재예요. 2019년 여름에 나온
건데 뭐 온갖 얘기 다 했는데요. 여기도 보면 아까 그 사진이 나와요.
그 사진에 그리고이 강성현은이 원자료를 봤던 인간이에요.이 이 강성인이 그
원자료도 안 내가 지금 여러분한테 보여 드린 나라의 원자료 그것을 보고선
있다오 논문을 써서 영어로 발표했다 그러면서 자기 연구업적으로 삼아서 버젓이 올려놓고 있는데 이거 다
사실은 뭐 김건희가 무슨 이상한 논문 써서 표절했다. 그러고 뭐 또 뭐 요번에 무슨 여성부 장관하겠다는 놈
표절한 거 나오고 그러는데 그거보다 더 악질이죠.
아까 그 사진이 조선인 여자라야 돼요. 지금 조선이란 말 없어요. 그러니까 일본 사람이나 조선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그냥 사진만 찍어 놓으면 구별을 못 하잖아요 우리가. 근데 기록에는 이렇게 돼 있고
차이니스 걸드라고 나오는데 이거를 이제 조선 위안부라고 지금 해석을 했고
이거 아까 똑같은 사진들이에다
예,
여기 나오죠. 여기 보면 아까 내가 얘기한 거 다
보이잖아요, 지금은. 여기 보면 17번 스틸 캡처스 프라머 19초
비디오 클립인데 킬링 오브 코리안 캄포트
코리안 캄포트 의머니라는 얘기가 아예 없 이게 이게 지금 일본군 일본군 병사 시체잖아요. 근데 이거를 지금
코리안 캄포트 의원이라 그러고 이렇게 해서 논문을 출판해 가지고
지금 자기 연구업적으로 만들고 있어요. 그러니까 서울시돈 박원순이 시장할 때 18억을 받아서 정진성이가
정진성이 자기가 데리고 있는 강성현을 비롯한 온갖 박사과장 학생들하고 보고서 세 권짜리를 내 가지고 그
보고서를 엉터리를 만든 다음에 자기들 입맛에 맞게 원사료를 다 맘대로 해석해서 만들어 놓고 그걸 다시
언론사에 뿌려서 뉴스를 만들어서 아까 여러분이 본
그 영상이 얼마나 많은
얼마나 많은이 이걸 내가 한번
널부러진 시신들이라고 해서 내가 검색을 한번 해 볼게요. 검색
창에
이거 왜 구글 검색창이 어디 나와?
유튜브나 아니 구 구 구글에서 그냥
보세요. 유튜브 S가 본 SBS죠. 다음에 올라가 있죠. SBS 또
나오죠. 무슨 뭐 이래 이래 가지고 이게이 이렇게 해서 퍼져요. 지금 나무키까지
들어가 있고 뭐 이게 지금 끝없이 계속되고 있어요. 이런 확대 재생선이
예. 티스토리 뭐 그래서 그러니까 지금이 널부러진 시들 위한부 학살
증거 영상 이거 뉴스 그러니까이이 지금 거짓말의 생성부터 지금 확산까지
지금 여러분이 다 내 기록을 통해서 보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역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여러분이 나를
만났기 때문에 알게 됐죠. 지금 어떻게 알겠어요? 일반 사람들이 이런 거를 그냥 일본 놈 나쁜 놈 하고
넘어가는 거죠. 근데 이게 지금 이거 하나만 그런게 아니야. 수도 없이 많아요. 수도 없이. 그리고 한번
만들어지면 이런 식으로 퍼져요. 이게 지금 구글에 끝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거 아니야? 지금 검색하면 한결에
사설도 나오고 뭐 온갖 얘기가 다 나오는 거야. 지금이
정도로 일단 얘기를 하고요. 좀 쉬었다가
쉬었다가 다시 조금 더 할 얘기가 있으니까 아, 좀 힘들어. 좀시 4시 35분까지
지금이 몇 시입니까? 27분인데 40분까지 쉬까요? 아니 아니 35분 35분까지 쉬고
강의 한 5시 한 20분까지 아니 5시 5시까지 예 알겠습니다.
아이고 예 고맙습니다. 예방 한시 아니 아니
너 네가 정배님하고 연락했었어. 누구 정
아 먹걸 연락 마이크 한번
그 아 연락 박정이한테 와가지고
가페이지 잘 놀았어
자리가 컸습니다 진짜 자리가 그래 아 메인 클리 해봤거든요
를 했다니까. 여러분 쉬는 쉬는 시간 동안 악법 반대 링크 달아 놨으니까요.
악법 반대 부탁드리겠습니다. 화면 나오면 나오나?
안 나오게 힘
알아서 안 나가게
저 다 꺼 저 아까
다 내려야 아 힘들어
어 이거 음파
좌파도 이런 거 안 들어 좌파 좌파 들으면은 뭐 바로 매국드라
이러지 그러면할 거예요. 들으면 무슨 위안불 어쩌고 모욕하고
아니 중국인이라고 중국인으로 잘못다고 뭐뭐하면
아니 근데 댓글에 자꾸 속아서 간들도 있는데 어쩌고 이렇게 하는데 일단 물어보려
반대 해 주세요. 나 찾았어. 음. 근데 오늘 한잔 일하신다고 뭐 2층이
아니라 1층에서 좀네 개 테이블 옆 테이블로 이렇게 하는
게임 마셨는데
저기 샤부 먹 그 와중에 또 이거 만든 거 박원승
만든 거 그 흥큼이 뭐 영상 아니이 아까 저 이거 자료를
아 세번을 만들었잖아. 근데 이걸 또 박원수 때 답원수 때
만들었잖아 다원수한테 받아가지고 진짜 투명하다 투명해진
분의게 듣고 계신가요? 신는데 아 정말 충격적이지 않나요?
아 마이크가 들리나? 방중감을 이용하 제가 한 2주 전쯤에 작교모
세미나에서 듣고 너무 흥미롭고 충격적으로 잘 들어가지고 오늘 자 학생들리고
강연을 한번 말하겠습니다. 애들한 한 20명 정도 가량 맞고 20명 안
되는 어 뭐야 송출이 안 나왔네 사람들은
약간 그래 되고
사람 저 사람 자체가
저희가 투중고등학교 역사교육 잘못 선동 당하고 교과서에 나온 대만
믿으면서 다 감정을 내서오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로잡는 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준님 뭐라는지 모르겠어요. 아 그래
형님 한 거 아니고 마이크 교수님이 너 마이크 없어
마이크 아 마이크로
네네 들리시나요?네 네. 그래서 아마 오늘은 처음으로
저희가 자유대학에서 강의실이랑 자리 준비해 가지고 교수님
모시고 초청 강연을 이제 시작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은 이제 한 일주일에 한 번 뭐 길면 2주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어 교수님이라든지 아니면 이런 교육을 해 줄 수 있는 분들을 모셔 가지고 이런 자리를 계속 마련할까 합니다.
오늘 강연이 저희 학생들뿐만 아니라 여기 구독자분들에게도 같이 좋은 강연
공부할 수 있는 기회 됐으면 좋겠어서 이렇게 라이브도 켰고요.
안 되는 그거 너무너무 충격적입니다.
그걸로 뭐 선생님 어 그걸로 통일해야 한 아시파하지 뭐냐
그라운드시 전환기 선생님 연락을 한번 넣어 보겠습니다. 이
정말 유능한 우파 강타님들이 대한민국에 많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강연자는 많지만 학생들을 모으는게 꽤 힘들고 이런 자리가 많이
없었어 가지고 뭐 전환계 아카데미도 있지만 이런 자리가 좀 더 많이 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예. 그리고 아직까지는 저희가 자유대학
학생들로만 뒤에는 다 전부 자유대학생들이거든요. 근데 조금 더 이게 체계가 잡히면은
어 구독자분들도 시간 되는 분들 오실 수 있게 이제 저희가 강의실을 한번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짜
오늘 배운이 가짜 뉴스 있죠? SBS 널부러진 시신들
이거 진짜 이거 정정보도는 했는지 모르겠네요.
유튜브에 잔뜩 있어요. 73년 만에 공개되는 한국인 위안부
영상들 하면서 그 가짜 논문들을 인용한 거예요.
보이시죠? 일본인의 조선부 위안부 학살 증거상
이렇게 그 교 그 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가짜수가 한번 보여지면은
정말이 확산이 어마무시하게 빠릅니다.
언론이 문제인 거 같아요. 트릭스 안 봤지?
안 봤어요.
자, 다시 네. 그럼 슬슬 이제 다시 강연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아 마이크 한번드리겠습니다.
저시계가 틀린식 저거 보고 잘 아 저 틀린식이 이거 보셔야 돼.
남은 얘기 빨리빨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습니다. 해도 되죠?
네. 네. 근데 지금 내가 여기 설명한이 엉터리
뉴스 이것을 이미 팬앤마이크 박순종 기자가 2021년에
보도를 세 번이나 했어요. 조선인 위안부 학살 증거라는 영상은 가짜였다.
서울대 인권센터 연구팀이 위안부 학설 증거로 발표한 각자 영상 서울시는
몰랐다라고 발했다. 일본금 병사 시진을 조선위원부로 갑시킨 서울대 서울시는 10억원
지급했다. 그래서 이런 뉴스 나왔는데 알려지지 않고 있어요.
엄청난 뉴스들인데 박순종 기자가 지금 김병원 소장이 나와서 이렇게 얘기를 다 하고
있는데도이 다 거짓말이라는 얘기가 이미 우리나라
언론에 이렇게 보도가 됐는데도 알려지지 않고 있고 강성현이
그다음에이 두 번째 얘기도 보도가 있는데 알려지지 않고 고
IT 강국 대한민국에 이렇게 인터넷이 이렇게 연결이 안 돼서 이거 어떻게
살아요? 스팟이라서 아니 장소가 좀 잘 안
되는 거 같
와이파이가 걸로 그래서 하여튼이 이미 알려지
알려져 있는 그 기사들인데
근데 뭐 정진성이 한 거는 전혀 문제를 안 삼고 있어요. 아까 이미
이렇게 팬앤 마이크라는 그래도 인터넷 언론 중에서는 굉장히
가장 영 영향력 있는 언론인데 이렇게 세 번이나 기사가 났는데도
2021년에 2022년이랑 그다음에 이제 해방 전국에 관한
역사는
여운영입니다.이 이 사람이 여운영, 김규식, 하지이 사람들이 다 좌우 합장론자들이에요.이
하지도 북한하고 남만이 미군정하고 소련
소련군정이 합쳐서 뭔가 해보자.이 이이 중도좌파, 중도 중도 우파,
중도좌파이 사람들 다 말자면 좌우 합장을 좀 해서 어떻게
우리나라를 뭐 통일된 나라로 만들어 보자라는 명분은 그럴 듯한데 실제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을 주정 했죠.
그다음에 방공을 주장한 사람은 이제 이승만과 트루만이고 이제이 스탈린의
맞으면 세계 전략을 내다본 사람들이죠. 그래서이 스탈린과 이승만
트루마는 서로 이렇게 갈등하는 사이였고 그 사람들 중간에 아까 세 사람 앞에 세 사람이 말하자면 좌우
합작을 해 보자 그랬는데 결국 이승만 트르만의 뜻에 따라서 이제 UN으로
가서 남북이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나만 단독
정부라도 만들자라고 해서 이제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건설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와중에 이제 김군은 엄청나게 뭐 애국자로 통일를 열망한
저면 민족의 지도자로 부각이 됐지만 결국 요새 정환기 박사가 김구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려서 김구가 얼마나 사기꾼인지 엉터인지
지금 잘 밝혀지고 있습니다. 킬구 킬구 예.
그리고 킬그 킬그가 그 킬의 첫 번째인 그 치아포에서
여러분 대충 그건 알죠? 치아포에서 일본군 대위 국모를 시한 일본 육군
대위를 자기가 만나서 식당에서 뭐 그 사람을 때려 죽여 가지고 피를
갈아마셨다라고 하면서 엄청난 애국 활동을 한 것으로 이제 자기 자기 자서전에 이광수가
윤색해 준 자서전에 썼는데 사실 사람을 죽이고 그게 아무리
웬수라도 그 사람 피를 갈아마셨다라는 것을 우리가 가 위인전에서 읽으면은
그게 위인이 되는 건지 나는 이해가 안 돼요. 이해가 안 되는데 여러분
그거 그냥 김구에 관한 얘기 나오면 아 일본이 얼마나 미웠으면 일본
육군 대위의 피를 갈아마셨을까고 여러분이 그냥 무신고 넘어가는
일이었는데 말이 안 되는 거죠. 이승만이야말로 건국의 아버지고요 책 두 권을 내가
지금 썼고 1, 2, 3권도 곧 나올 건데요. 내가 책을 여러분한테 한 곳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거
맡길 맡길테니까 여러분들이 뭐 하여튼 알아서 잘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예. 그리고 제주
43 사건도 이게 뭐 인민유격대 투쟁 보고서라는게 있어요. 이게 이제
제주도에 그 제주 사건의 반란의 1인자는
김달삼이라고 그
예이 사람이 생긴 건 굉장히 곱사게 생겼는데이 김달삼은 북한의 혁명사능에
이렇게 비석이서 있는 엄청난 북조선에서 찬양하는 사람이고 당연히 이제 우리 요새 말로 하면 종북
인사죠.이 이 김달삼이가 주동에서 제주에서 43이라는게 벌어졌고이
김달삼장 투쟁을 주도한 사람이 이덕구입니다. 이덕구는 잡혀서
예 공개 처행당했어요.이 이 이덕구가 지금이
길거리에서 공개 처행당한 장면인데이 이덕구가 무장 투쟁을
제주에서 실제 주도한 사람이고이 이덕구가 작성한게 인민유격대 투쟁
보고서라는 보고서가 있어요. 이걸 국군이 노액을 합니다. 유이 위격대랑
총격전을 하다가 이제이 총격을 받은 사람이 갖고 있던 몸에서 이것을
우리가 노예을 국군이 노액을 해서이 인민대 투쟁 보고서라는 것이 이것이
반란이라는 것을 너무도 명백히 보여주는 물증이 있는데 이것을 지금
뭐 43 뭐 인권 탄압이라고 해서
43에 43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이 많다라는 것까지는 동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국군과 유격대가 싸우면서 민간인들이 그 와중에 본이
아니게 국군이 뭐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전쟁을 전투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희생되는 민간인들이 있고 그런 민간인들이 많아서 그 민간인들한테
보상해 주는 것까지는 동의할 수 있는데 제주도 43 사건 자체가 이게 무슨
인권 운동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지금 우리나라에서선 그게 이루어졌죠 이미.
그리고 이제 아까 얘기한 대로 이승만 시대를 북한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라고 보고 있고 그 견해 때문에 일제
강점기와 미재 강정기가 짝으로 등장한 말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언론이나
학교에서는 이런 배경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일제 시대는 일본이
우리를 강제로 병합한 거구나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아까 여러분한테 좀 짧게나마
설명했지만 만 강제병합이 아니에요. 우리를 일본의 일부로 만들어
주세요라는 사람들이 조선 왕이 그걸 주도했고 대신들이 주도했고 그래서
일본이 아 그래 너네가 그렇게 하 원하면은 우리가 그렇게 해 줄게 해서 우리가 일본의 일부가 된 거예요.
식민지가 된 거예요. 그다음에 그다음에 있었던 여수천
반란. 625 이전에 이미 시작된 이게 여수 순천 반란은 1948년 11월입니다. 10월 11월.
그 장면 중에 하나가 이거예요. 여순반란 때 찍은 사진이에요. 밤에
이거 지금 우리나라 여순반란 사건 같은 느낌을 안 주고 마치 무슨
중동에 지금 이스라엘하고 무슨 저 하마스하고 싸우는 장면 같지 않아요?
옛날에 이랬어요. 나라가 서서자마자 48년 8월에
나라가 섰고 그에 10월에 지금요 반란이 벌어진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
국가 보안법이 만들어지고 그 그다음에 6월 달에 미군이 철투하고 1902년
후에 북한이 남침을 해서 62 전쟁이 벌어지죠.
그리고 이승만이 육성으로 한강 서울 시민 여러분 뭐 나는 뭡니까?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라는 방송을 했다. 그러면 또 한강 인도교에서 민간인이 희생이 많이
됐다라는 시계 해석을 통해서이 승만은 런 승만이다. 자기는 도망가 놓고
국민들은 죽거나 말거나 상관도 안 했고 실제 그래서 희생된 한강다리에서 희생된 민간인이 뭐 몇 천 명이다라는
식으로 했는데 이것도 여러분이 오늘 같이 이렇게 모이면은 내가 특강을
하나 할 자료가 다 있어요. PPT로 한 50장 되는 자리가 있는데 자세한
건 넘어가겠습니다. 하여튼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 인도교 폭발을 해서 민간이
희생됐다. 거짓말이에요. 한강 인도교 북단에서 용산 쪽 입구에서 한강인도교
들어가는데 경찰과 헌병에 검문서가 있었고 그 검문서에서 민간인을 맡고
있었습니다. 군인과 경찰만 통과시켰어요. 그래서 민간인 희생 없습니다.
그다음에 이승만 대통령이 그날 한강다리 폭파 전날 방송했다는 육성
방송도 내용이 굉장히 완벽합니다. 지금 한강 이북에서 북한군의 남침을
맞이해서 우리 국군 장병들이 열심히 싸우고 경찰이 열심히 싸우는데 지금
의정부까지 합락이 돼서 굉장히 위험합니다. 여러분들이 피난갈 수 있는 가는 것은 나를이 여러분이 피난
가는 것을 나는 이해합니다. 다만 국군이 열심히 싸우니까 여러분들도
흔들리지 말고 자기 자신의 위치해 최선을 다해서 남침을 막고 우리가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힘을 합쳐 주기 바랍니다. 취지에 전쟁
지도자로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아주 완벽한 연설을 했는데 그것을 엉터리로 해석을
해서 이승만은 런승만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고 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뭐 일본 이런 이상한 합성 사진을 만들어 가지고 닭깎기 마사오라
그러면서 뭐 비난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고이요
부분에 대해서도 좀 자세한 얘기를 할 겁니다. 지금 노동자를 박정희 대통령 때 착취했냐
아니면 그렇지 않냐 하는 거에 관해서 내가 책을 하나 썼어요. 예. 이런 책을 썼는데이 책의
중심적인 것은 1970년대 중화학공파 방위 산업이 발전하면서 우리나라의
그 철강 산업이 굉장히 발전하게 됐고 그 철강 기계 산업 그것이 이제 오늘날에 막 그 탱크를 수출하고 뭐
무슨 항공기를 수출하고 지금 잠수을 수출하고 하는 우리 방산의
맞좀 출발이고 그때 만들어진 기능이라고 불리는 그
숙련을 가진 그 인력들이 한 30년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민주노총의 금성노조 소속의 민주노총을 만든 주력이 됐고 그 사람들이 다
30년 후에는 귀적 노조가 돼서 억대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로 성장했다.
그래서 중산층을 형성한 주인공이 박정희 대통령이지 노동자를 착취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내가 한 책인데이
책의 첫 장은 60년대에 관한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60년대에는 이런 방해 산업이 없었고
이제 봉제 산업이라고 해서 재봉틀 재봉틀 할 때 봉자 보제라는게 재봉로
만드는 산업 그래서 옷을 제봉 박검질해서 만드는 산업이 이제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었는데 경공업이죠.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청개천과 구로공단 두 군데에서 이제
굉장히 발전을 했는데이 청개천에서 있었던 그
봉제 산업의 이제 핵심 인물이 전태일이죠. 그래서 전를 여러분들은
굉장히 착취당한 노동자로 그 착취를 견제다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끄는 사람, 분신한 사람으로
알고 있을 텐데 엉터리다.라는 얘기를 내가 하고요. 이게 내 책의
내용을 그 첫 번째 챕터의 내용을 가장 압축한 표인데요. 전태일이
약 6년 반 동안 청개천에서 일을 합니다. 전태일이 1964년에
3일사라는데 들어가서시다 생활을 하고 시다를 1년 한 다음에 미싱 보조를
하고 미싱 보조받할 때 월급이 3,원 그다음에 1년 후에는 미싱사로
올라가서 이제 아니 그니까 미싱 보조가 될 때는 3일사라는 회사에 갔고 미싱사는 통일사라는데 갔고 이게
1966년 가을이고 미싱사가 돼서는 7,000원을 받았다. 근데 이제 미싱이시다
미싱보조 미싱사는 완전 봉제 산업에서 가장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단계가 올라가는 그 숙련의 정도가 올라가는이 숙련이 없는 사람
반숙년 숙련 이렇게 되는 이제 그 루트인데이 재단사와 재단 보조는 디자이너입니다.
옷을 어떻게 디자인하느냐, 어떻게 옷을 만드느냐 올 가을에는 이런
기성복을 만들어서 팔아보자. 저런 기성복을 만들어서 팔아보자. 예. 근데 양쪽 주머니를 달자. 뭐 팔
뒤꿈치에다가이 달아도 되는 뭐 이런 걸 하나 덧붙이자. 뒷주머니를 어떻게 하자.
뭐 이런 식의 이제 그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의 길로 루트가 바뀝니다.
그래서 재단 보조는이 사람이 미생사를 하면서 7,000원을 받다가
66년 가을에 통일사에서 7,000원을 받다가 미생사로 일하면서 재단 보조가 되면서
3,000원을 받습니다. 그거 한미사라는 대로 옮겼고이 3,000원
받던 재단 보조가 돼서 6개월 만에 재단사가 돼서 재단사 생활을 2년 반
동안 하는데 재단사가 돼서는 1 15,000원을 받다가 2년 2년 반
후에는 23,000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은 전테일의이
루트가 경력이 64년 봄에 청개천 봉제산업에 들어와서 가장 바닥에 있는
시사이를 하면서 1,500원 받다가 6년 반 후 64년부터
64년 봄부터 70년 11월이면 딱 6년 반입니다. 6년 반 걸려서
23,000원을 받는데 이게 1,500원에서 23,000원이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화폐 기준으로는 1,500원이나 23,000원이나 그게 뭐 대수냐
그러지만 따져 보면요. 이게 15배쯤 됩니다. 15배.
임금이 15배 오은 거예요. 6년 반만에. 지금 여러분 아무런 스킬 없는 편의점
알바생이 월 200만 원쯤 받게 되죠. 알바 하면은 그죠. 최저
임금으로 해서이 뭐 일주일에 뭐 뭐 5일하고 뭐 어쩌고 하면
500만 원 받는 사람이 임금이 6.5배 아니 15배 오르면요? 아니
월 200만 원 받는 사람 월 3천만 원 받게 되는 거예요. 월 월 200만 원 받는 알바생이 6.5년
5년 후에는 월 3천만 원 3천만 원 받는 사람으로 월급이 올라간게
전태일이에요. 근데 이런 사실을 아무도 따지지 않고
전태일은 그냥 착취받았다고 생각하는데 23,000원이라는게 월
1970년에 1인당 GDP가 8만7,000원입니다. 월 7,250원이 월 7,250원
벌면은 1970년에 평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받는 돈의
평균값을 받은는데 전테일은 그거보다 지금네 배쯤 더 받았어요. 3.5배.
그러니까 굉장히 고수 입자였어요. 선택일이. 근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리고이 숫자는 내가 그냥 막막 만들어 놓은게
아니라 이제 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 조영래라는
전태일이 쓴 일기를 전태일이 자살을 한 사람인데 자살한
것도 이제 자살이 아니라는 얘기를 내가 할 건데 하여튼 자살을 하고 남긴 일기장을
조용내 변호사가 구해서 조조래라는 변호사가 전태일의 일기를 보면서
전테일의 삶을 복원해서 쓴게 전태일 평전이에요.
그 평전에 나온 거 그대로 제가 여기 정리를 한 겁니다.
그 전태일 평전이 두 개가 있는데요.
1983년에 나온 전태일 평전이 있고 그다음에 2009년에 나온는데 내용은
같아요. 근데 조금 내용이 바뀌었는데 이것도 또 안 되네. 아이.
네. 1983년에 나온 책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삼가지금 전태일 평전 전태일 기념감 건립위원회 이게
이소선이라는 전테일 어머니예요.이 표지 사진이고 이게 전태일이고 표지가
이렇게 있고 이제인 분신할 때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이
83년 책에. 그다음에 요거 말고
2009년
예 2009년에 다시 새로 나온 전태일 평전이 있습니다. 전테일
평정이는 책이고 요걸 스캔한 건데 여기 보면 이제
새롭게 평전을 내면서 뭐 그러면서 어쩌고 저쩌고 해서 이제이 평전이라는게 어떻게 기록이 됐나를 쭉
설명하는게 뒤에 나옵니다. 뭐 그래서 여기 보면은 관련된
관련된 사람들이 뭐 장기표나 뭐
또 뭐 편집부에서 뭐이 이런게 있는데이 두 가지 버전이 당연히 똑같은 책이어야 되는데 내용이
달라요. 다른 거를 내가 찾아내게 됐습니다.
그래서 아까 얘기한 대로 전 아 그다음에 아까 그 표로 가면요.이
표를 이제 전테일은 아까 얘기대로 1,500원에서 23,000원으로
임금이 수직 상승하죠. 6 6년 반만에. 근데 여기 내가 가로 속에
쓴 거는 뭐냐면요. 전태일 평전에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일한 여자들은 빠르면 3년에서 늦으면 4년 만에 미싱 보조가
된다라고 기록이 나와요. 명확하게 나옵니다. 그다음에 미싱 보조에서 미싱사는
1.5년에서 2년이 걸린다. 이건 전테일 얘기가 아니고 평화 시장에
들어온 여공들이 이제 말하자면 짧으면은 시다에서 3년이라고
미싱보조가 되고 미싱보조에서 1.5년이라면 미생사가 된다. 그러면 시다에서 미생사가 되면
1,500원에서 7,000원의 월급으로 올라가는데 짧게는 4.5년
만에 그러니까 4년 반만에 1,5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라가요. 그러면은 4.5년 만에
임금이 4.5배가 되는 거예요. 세배 이상 올라오는 거예요. 월 200만 원 최저 임금자가 4.5년이라면은 월
800만 원 임금 받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길게 늦으면은 승진이 늦으면은 최대
6년 걸려요. 6년 만에 1,00원에서 7,000원으로 200만 원에서
800만 원으로 6년 만에. 지금 6년 만에 200만 원 받는 최저
임금자가 6년 만에 800만 원을 받게 되면 그 사람 보고 착취당했다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없습니다. 대박 나는 거죠. 전태 같이 열
17배가 15배가 오르면 뭐 아까 얘기한 대로 200만 원 받다가 지금 3천만 월
3천만 원 받게 되는 거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지금
착취당한 노동자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라는 얘기를 하는
거고요. 그다음에 이제 전태일이 분신 자살라는 장면에 대해서 83년 판하고 아까
내가 두 가지 버전의 책을 보여줬는데 2009년 판이 달라요. 2009년판부터 볼까요? 아 또 안
나오네.
예, 여기 있네요.
이게 2009년 아까 내가 보여 준 두 번째 책에 300페이지에서 301페이지에 나오는
얘긴데요.이 전일이 분신하는 청개천에서 분신하는 과정을 지금 그리고 있는 겁니다.
친구들은 다소 의해하게 생각했지만 어쩌고 저쩌고 해서 먼저 내려 회원들은 전태일에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담배가게 옆에서 있었다. 약 10분 후에 전태일이 근로 기준법
책을 가슴에 품고 내려왔다. 전태일이 몇 발자국을 내지었을까? 갑자기
전태일의 오디로 불길이 확치솟았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쌌다. 불타는 몸미로 그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서성거리고 있는 국민의
악길로 뛰어나갔다. 근로 기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시계하라.
노동자들은 혹사지 말라. 이렇게 해서 전태일이 죽었다고 하는데 사실은이
2009년에 전태일 평정 기록을 보면은 전태인한테 왜 불이 붙었는지를
안 그리 숨기고 있어요. 지금 누군가 불을 붙였거나 자기가 불을 붙여야 지금 분신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근데
그 과정을 여기는 안 보여 줍니다. 2009년에는 왜냐하면
1983년 판에 보면요. 이렇게 나와 있어요.요
부분은 앞하고 똑같습니다. 먼저 내려온 회원들이 전태이 내려를 기다리며 단백에서 있었다. 그리고요
부분이요 부분이 지금 2009년판에는 싹 빠져 있어요. 그리고 이제 이게
나오는데 여기 보면 아까 여기까지 나오죠. 약 10분의 전태일이 내려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김개남. 김계남이라는게 가명입니다. 노동운동하는 사람인데
전태일기에 가명으로 나오는 사람이에요. 김개남이. 긴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눈짓을 하여 그는 사람
그를 사람이 좀 덜 다니는 옆골목으로 끌고 갔다. 아무래도 누가 한 사람 죽어야 될
모양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김계남에게 성냥불을 켜서 자신의 몸에 갖다 대어 달라고 부탁했다. 말하자면
전태일이 김개남이라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이제 성냥불을 붙여서
휘발류를 뒤집어쓴 몸에다가 성양불을 붙여서 이제 분신이 하게 되는 과정을 여기 그리고 있어요. 그 전날 저녁에
김계남은 전태일이 내일 누구 한 사람 죽는 것처럼 쇼를 한 판 벌려서
저놈들 정신을 번쩍들게 하자고 하는 말을들은 일이 있었다. 성양불을 켜서
갖다대 달라는 전태일의 부담이 부탁이 심각했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긴 했으나 설마 하는 생각에 그는 성냥불을 켜서 전태일의 옷에 갔다 되었다.
순간 전태일의 오디로 불길이 확치솟았다. 친구를 보고 내가 먼저
내려가라고 한 뒤 그는 미리 준비해뒀던 한대 가량의 석유를 온몸에 게고 내려왔던 것이다. 불길은
순식간에 전태일의 전신을 휩다. 불타는 몸으로 그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서거리고 있는 국민은행합 길로
뛰어나갔다. 마 김계남이 전태일의 자살을 방조내지
도와준 거예요. 방조도 아니 이건 완전히 협조한 거죠.이 이이 사실이 사실은 이게
살인을 공모한 거니까
문제가 될 거 같으니까 이제 83년에는 문제를 모르고 이런 내용을 넣어
놨다가 2009년판에서는요 부분을 싹 뺀 거예요.이
이 전테일이 이런 식의 자살를 하게 되는 과정과 동기가 그럼 무엇이냐
하는 부분이 궁금하죠. 여러분들은 전태일 본인은 돈을 많이 벌었지만
전태일은 여공들의 생활을 안타까워서 착취당하는 여공들의 생활을 안타까워해서 여공들을
위해서 죽었다라고 전태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라고 알고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서이
전태일의 동기를 살펴보면 운동권이 붙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사실은 그 당시도 운동권이 막 자살을 강요하는게 지금 뭐 지금도 뭐 우리
대통령 되신 분이 자살시킨 사람이 많잖아요. 근데이 사람들 그니까 전투를 자살
당한 거예요, 지금. 뭐
그것을 한번 검색해 볼게요, 내가.
에 조선일보의 문갑식이 2009년에 쓴 기사입니다. 입니다.
학생 운동권 대부에서 분쟁 지역 돕기 나선 양국주의 탈레반 인생이라는 제목을 붙여온 기사인데 이게 주말판에
굉장히 제법 긴 기사예요. 한 두 페이지에 걸쳐서
그래서 양국주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설명부터 양국주는 뭐 49년에 전북
정업에서 태어났고 뭐 연세대 철학가를 나왔고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운동권들을 왜 전방해
보냈냐 그래서 이제 여기부터 나옵니다. 당시 운동권은 지금 같은 종북 반미가
아니었다. 교련 반대했으나 고생 좀 해 보라는 것이었다. 정보가 셀 수 있는 행정 같은 보직은 안 좋다.
심지현, 최재현 이런 사람들이 같이 군대 생활을 했다. 당시 운동권은
어땠냐고 물으니까 솔 알렌스키가 지역 사회 이론이라는 책을 했는데 아냐
마틴 루터킹 목사의 최측근이 알렌스키다. 지역사의 이론의 여체는
잠자는 민정을 깨워 리더를 양성시킨 뒤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라는 철학을 가진 책이다. 예를 들면 전태일 같은 인물이다. 그까
문갑식이 놀래서 물어봅니다. 전태일을 아냐? 분신할 때 곁에 있었다.
양국주가 지금 내가 전태일이 분신할 때 옆에 있었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양국주가 양국주가 서울대 아니 순실
들어갔다가 연세대 신과대학 아 연세대 영문관인가? 국문관인가? 연세대 문과대학 출신입니다.
분신할 때 옆에 있었다. 전태인은 지금 미국 샌디에 있는 이승 목사가 교육시켰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자발적인 전태일이 여공들을 위해서 죽은게 아니고 운동권이 붙어서 의식허을 시켜 가지고 너 죽기라도
해라. 그래서 문제를 던져라. 사회에 잠자는 민족을 깨워야 되지 않느냐. 알린스키가 그렇게 해야는데 우리도
그거 한번 해 보자. 이렇게 해서 전태이 지금 분신을 한 것을 양국주가 설명하고 있어요.
분신할 때 옆에 있었다. 전태일은 지금 미국 샌디에고 있는 이승 목사가 교육시켰다. 고조
박정철이나 이한일이 열사가 된 것처럼 조영내는 재형 양참사의 친구다.
나중에 인견 변호사가 됐지만 대학 시절엔 정식이 강했다. 한명의 국회원으로 출마하겠다며 열심히
저했다. 그래서 뭐 최열 환경 운동하는 석영서 목사님,
박원순, 마광수 뭐 이렇게 이런 사람들이 다 그때 기독 학생회를 다니면서 운동권 생활을 했다.
그래서 이런 기록들을 종합하면은 전태일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여공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던지고 스스로 불을 붙인게 아니고
김개남이라는 운동권 친구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김개남한테 자기가 서유를 뒤집어쓰고 김개남한테 성냥불을 붙여 달라고
부탁을 해서 김개남미가 성냥불을 붙여서 죽을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성양불을 붙여서 태워 죽인 거예요.
이것은 기독교적인 가치나 무슨이 생명 기준으로 보면은 아무리 문제가 있는
사람의 생명도 이렇게 죽일 수는 없는 거죠. 거기다가 지금 양국주의 증언에
따르면은 알린스키 빈민운동의 철학을 공부한 우리들이
전태일을 교육시켜서 자살하게 만들었다라는 얘기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 사람을 지금 우리가 엄청난 민주 투사로 그리고 있는게 잘하는 건지
나는 의심스러워요. 난 김문수도 이런 면에서 김문수 후보한테 내가 사실은
내가 쓴이 책을 전하고 그 전태일 너무 빨지 마라.
그 무슨 대단한 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기당해서 운동권하 사기당해서 자기 목숨까지 끄는 바보 멍충이다.
그 사람을 기릴 일이 뭐가 있냐라는 얘기를 개인적으로 하기도 했는데 김문수도이 부분에 관해서는 전혀이
어릴 때 대학생 때 자기가 그 굉장히 높이 평가한 전태일에 대한 생각을 못
바꾸더라고요. 아무튼 그래서 뭐 지금 하여튼 이런 기록들이
다 나와서 그다음에 이제 5.18
5.18 때 핵심은 이겁니다. 경상도 군인이 광주 여고생 적가섭을 칼로 찍고 간관했다.이 유원비어가
당시 대학생인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자극했어요. 엄청난 자극을 했어요.
근데 세월이 가서 이런 사 이런게 하나라도 리포트 된게 있냐? 없어요.
그냥 유원비어로은 그냥 그 당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희감으면서 야 이게 정말 문제구나.
군사 정권이 문제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 줬지만 실제 나중에 광주에 대한
정산이 계속 이루어져서 지금도 뭐 유공자를 늘려야 되느니 줄여야 되느니 얘는 빼야 되느니 넣어야 되느니
난리를 치고 있지만 그 유공자가 되는 사람들의 기록을 보면 이렇게 경상도
군인이 광주 여호생 적가성을 칼로 찍고 강간했다라는 기록이 나오는 거는
아무도 없어요. 완전히 유원예요. 이런 유원비어가 그 당시 광주에 요새
우리가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광주 사태를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다 사실하고 상관없이 그까 그냥 막 막 사람들 자극하는 거죠.
최근에는 이런 여러분들하고 뭐 같은 생각인데 이제이
내 민주당은 계속 윤성열이 내란죄라고 하고 지금 뭐 구속도 하고 뭐 난리를
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 하는 얘기를 하는 거고 지금 그라운드 C가
만든 포스터 같은데 그다음에 MBC가 이번 과정에서 폐악질 한 거
가장 대표적인요 이게 이제 실제 한 것은 끝까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라는 말을
했어요. 윤성열 대통령이. 근데 이거를 국민과 함께를 빼고 국민 여러분과 싸우겠다라고
이제 조작을 하는 거예요.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렇게까지 순간적으로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국민과 싸우겠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잖아요. 국민을 적으로 만들겠다는 거. 여긴 국민 편에서 싸우겠다는
건데이 이보도 보신 사람 본 사람 있어요?
아 봤습니다. 시신수 가방 3,000개 준비했다.
말이 되는 얘기예요 이게 도대체 아까 봤죠. 일본군 남자 시신을 위안부 시신으로
바꿔서 보도하고 이것도 완전히 없던 얘기 없는 얘기
만들어서 하고이 언론이 이래 갖고 되겠습니까? 대학 교육이
또 중고등학교 교육이 초등학교 교육이 이래서 되겠습니까? 이것을 바로잡지
않는 한 우리나라가 선진국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전선에 저는
와 있고 그 싸움을 하는데 여러분도 같이 힘을 보태서 우리 나라를 좀
제대로 만들어 봅시다. 질문 받겠습니다. 예.
일단 일단은 감사
너무 많이 떠들었죠 내가 너무 재밌게 들었어요네 재미 재밌다 그러나 뭐 하여튼 엄청
신기 신기하다 그러나 문제가 많죠 우리나라가 만
이제 질문 이제 교수님께 두시간 동안서 들으는 거 구체적인 내용이나 뭐뭐 전체적인
문제나 어떤 거든지 좋습니다. 네.
그 아까 처음에 교수님께서 위안부들은 이제 돈을 벌러 자발적으로 혹은 이제 가족들에 의해서 돈을 벌기 위해
이렇게 갔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 일부에서는 당시 위안부들이
건실하게 일을 하는 건 줄 알고 갔다가 속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는 말도 있어 가지고 당시 그렇게
속아서 그런 걸 당하게 된 경우도 있었을까요? 아니 그니까 이제 그 비율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모르겠. 우선 우선 첫 번째 중요한 것은 일본 국가나
일본 총독부나 일본 군대나 일본 경찰이 강제로 가기
싫다는 사람을 끌고 가서 위안부 생활을 시킨 것은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내가 재판하면서 검찰에다가 얘기했어요. 한 사람이라도 실명을
내면서 그렇게 끌려간 사람이 있으면 얘기를 해 봐라. 못 해요. 왜냐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그 사람들이 쓰는 거는 이런 얘기를 하더라요. 구조적 강제다. 그러니까 가난해서 가난한 배경을
가지고 지금 얘기대로 본인이 돈을 벌러 가거나 가족들이 그렇게 딸을
팔아먹는 경우는 좁은 의미의 강제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일본 제국주의가 만들어놓은 구조적 강제가 그런 일을 만들었으니까
이거는 구조적인 이유를 찾아야지 개인적인 동기는 중요한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이제 검찰은 피해 가고
정대업도 피해 가는데 개소린게 완전 개소리에요. 그게 뭐냐면
자본주의 사회의 가난 때문에 지금 매춘업이 있잖아요. 지금도 매춘업이 있잖아. 매춘업에 들어간 사람이
매춘업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가난 때문에 가는 거예요. 가난한
여자들이이 가난을 피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매춘을 하는 거잖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라는게 내 강의의 핵심 이제 메시지였고 그랬을 때 그러면 가난 때문에 매춘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본인이 가난 때문에 내가 이거라도 해야겠다라고 결정해서 가는 건지
부모가 그냥 딸을 팔아먹는데 희생된 건지의 비율은 명확히 알 수가 없다.
근데 두 가지가 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확인한 온갖 자료들을 보면은 두 가지가 섞여 있고요.
이것을 확인할 때 가장 중요한 자료가요. 1991년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 중반까지 여덟 권의 위안부 증언집이라는 책이
나옵니다. 위안부 증언집 1권 2권 3권 그래서
여덟 권의 책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은 다 본인이
원했거나 아니면 저 가족들한테 속아서 내가 그 일을 하게 됐다라는 기록이
써 있어요. 이용수를 포함해서 이용수는 유명하잖아요, 여러분. 이용수라는 위안부 할머니 알아요?
윤미의 문제를 제기해서 한 5년 전에 생 난리를 치면서 윤명이 제가 나쁜
애다라고 해서 이용수랑 윤명이랑 싸움에 붙어 가지고 결국 윤명이가 아까 얘기한 징역 1년 6개월에
위 집행의 3년을 실령을 받게 된게 만든 사람이 이용수라는 위안부인데 그
이용하는 위안부 여러분 검색해 보세요. 이용수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데 누군지
그 이용에 아니 그니까 자기 책이 아니라 정대이
낸 책에 처음에 끌려갔던 상황을 설명을 하면서 일본 군복을 입은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한테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들을 보여 주면서
너 나랑 같이 가면 이걸 준다 그래서 자기는 뭔지도 모르고 좋아서 따라갔다라고
써 있어요. 그 그런 식으로 간게 대부분이고 이제 그렇게 얘기하던
이용수가 나중에는 미국 의회에 가서 군인이 내 뒤에다가
뾰족한 걸 들게 되면서 날를 끌고 갔다라고 증언을 해요. 그러니까 증언이 바뀌는 거죠.
네. 질문에 답을 한 거죠? 네. 예. 정확한 비율은 모르겠다. 예.
네. 얘기하세요. 예. 좀요. 그 우선은
일단은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 자체가 반일 감정에 기관한 여사 이해를 가장
기록을 하고 있기 때문에 뭐 예를 들어 최근에 김수 후보가 말했던 것처럼 일제 금융기 시대 때 우기의
국정은 일본이 맞았다 이렇게 얘기했을 때이 7일이라는 프레임이 어쩔 수
없이 쉬어지게 마련이잖아요. 어 저도 근데 일본 일제 강등기
시작시기 때 우리나라에 많은 부분에서 개방이 일어나고 개발이 많이 되고
발전이 많이 됐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근데 그런 개 개발 과정 중에 어 분명히 많은 비리가 있었을
것이고 또 그 상치들 그니까 개발을 주던 층들은 웬만하면 대부분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일본인들이 대부분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그 개발 과정 중에서 발생했던
수익들은 거의 여러분 일본 쪽에서 많이 가져갔을 텐데 또 추가로
거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수익들은 대부은 일본에 계속됐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근데 그거는 기술의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이 일제 전기
자체가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일본의 책임이 없을 수 없다라고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 부분에서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지 조금 더 큰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네. 아니, 그 문제는 사실 나도 굉장히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고 답이
뭔가를 아직도 모색하고 있는 중인데요. 우선 이런 거 같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개발한게 그러면 우리나라를
위해서 개발한 거냐, 조선을 위해서 개발한 거냐 하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을 해야 될 거 같고 일본이 필요해서 조선도 개발 조선을
개발시키는게 일본에도 덕이 되고 도움이 돼서 조선을 개발시켰다라고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결과가 그러면 일본에만 가고 조선 사람에는 하나도 안 떨어졌냐? 오히려 일본에 가지 못하고
조선에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가장 대표적인게 지금 일본이 우리를
개발해서 예를 건데 쌀을 증산하고 도로를 깔고
철도를 깔고 새로운 뭐 신기술을 도입하고 해서 뭐 공장을 세우고 온갖
거를 해서 일본이 그로부터 이익을 남겨서 자기네 본토로 가져간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개발을 할 때 일부 우리나라에서
거듭 모든 세금만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개발 자금을 충당을 했느냐
모자라서 일본 본토의 예산이 우리나라에 투입이 됐어요. 그니까 조선 조선에서거든 예산만 가지고
조선을 개발하는데 쓰면은 조선을 개발 실제 일본이 개발했던 에컨데 뭐
경부선 철도를 놓는다든가 경의선 철도를 놓는다든가 무슨 뭐 뭐 한구를
개발한다든가 하는 무슨 또 관계 시설을 개발한다든가 하는 비용을 조선에서 걷은 세금만 가지고 했느냐
모자라서 일본 본토이 왔다. 근데 그 목적은 한국을 개발하는게 일본의
이익에 도움이 되니까 장기적인 투자를 한 거 아니냐? 거기까지 동의할 수 있어요. 근데 실제 일본이 그걸
우리나라를 개발 조선을 개발한 결과를 일본을 위해서 가져간 적이 있느냐? 가지가려고 계획은 세웠을지 몰라도
실제 가져가지 못하고 그냥 망했어요. 일본이 45년에 전쟁이지면서
실제 우리나라를 개발해서 한국에서 온갖 그 개발의 결과가 이루어진 것은
일본에서 그럼 아 이제 드디어 우리가 투자한 것을 걷어갈 수 있는 때가 됐구나라고 할 수 없게 일본은
계속해서 전쟁으로 갔고 전쟁에 필요한 자금이 필요해서 일본 몬터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물론 다 그 돈을 가지고
전쟁을 하는데 썼다가 전쟁에 망하고 전쟁에지고 망해서 에서 결과적으로는
회수를 못 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이어는 지인데요.
어찌됐든간에 저희가 보수진영에서 지지하고 그쪽에서 이해를 하는 사람들로서
어이 단일 감정에 초한 역사적 이해를 배척하는게 어쩔 수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근데 그러다
보면은 1분에서의 한반도 지배가를 정당화하는 프레임이 어쩔 수밖 없이
없이 쓰여질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저는 이런 프레임을 일본은 실패한 제국주를 꿈꿨다라고
이어져야지만 우리가 정당화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 아, 그니까 일본의
제국주는 실패했다라는 것은 맞는 얘기고
그거 그니까 우리가 근데 일본 제국주의에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 조선반도 근대화에 우리가
호응했다라는게 친일파가 돼서 잘못된 거다라고 얘기할 필요는 난 없다고 생각해요.
아, 그게 미국 식으로 가면은 옳은 거고 일본식으로 가면 틀린 건지는 미국하고 일본하고 전쟁에서 미국이
이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런 판단이 나오는 거지. 만약에 일본이 이기고 미국이 졌으면은 일본식 근대화를
우리가 빨리 받아들인 사람이 훨씬 더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르는 거죠. 근데 역사는 미국식
근대화가이긴 거고 미국이이긴 거고 일본이 진 거예요. 그래서 야, 일본 따라가는 거는 이제 좀 자재하자라는
인식이 지금 이제 많이 넓혀지게 됐죠. 근데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근대화건
미국의 근대화원 근대화가 완전히 다른 거냐? 그렇지 않잖아요. 공통점이 많아요. 그 근대라는 것은 처양에서
시작해 가지고 뭐 영국이나 뭐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들이 먼저 시작하고 미국은 영국이랑 독립 전쟁
가면서 또 미국도 근대를 시작하고 그것이 일본에도 오고 우리나라도 그 근대를 받아들이고 선교사들이 오고
온갖 여러 지구상의 여러 국가에서 근대라는게 뭐 시차는 있지만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이 되면서 가다가 일본이 우리보다 근대화에 있어서 훨씬 앞섰어요. 그
앞선 결과로 제국주의 팽창을 우리도 해야겠다는게 일본의 판단이었고 우리는 그 첫 희생물이 된 것까지는 맞는
건데 그 일본의 근대화 일본 제국주의 근대화에 우리가 협력했다고 창피할게
뭐가 있냐라는게 내 생각이에요. 어차피 그것도 근대화인데 근대화에 앞장선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창피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나는 요새 하고 있고 일본 그러면 근대화가 전부 좋은 거냐
하는데 나는 그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우리를 차별한 것에 두 가지 구체적 일본이
우리나라의 온갖 정치적인 근대적인 제도를 다 도입했지만
일본이 근대하면서 제국 의회라는 걸 만들었어요. 미국 일본의 국회조
그것이 우리나라나 대망 같은 데서는 세금은 걷어가면서 세금 내면 세금낸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 의원이 나와야 되는게 근대적인 시스템이잖아. 영국이 만든 의회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이
세금내는 사람들한테 의회의 대표권을 줘야 된다는 거 아니에요. 그게 의회 제도의 가장 핵심인데 정부를 견제하는
의회를 만든 거고 일본이 그걸 허용을 안 했어요. 우리한테 차별한 거예요. 일본이 우리
차별한 것은 좀 세금은 걷어가면서 제국 의회의 조선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한 사람도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거 잘못한 거 아니냐.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해요. 그거 단계적으로 너네한테 인정해 주려고 하는데 전쟁에서 우리가 져서 못했다.
실제 그랬어요. 그러니까 조선에서도 야 그러면 조선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를
하자. 경기도에서 두 명 뽑고 뭐 경상도 다섯 명 뽑고 지역구를 만들어서 그럼 제국 의회에다가 조선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낼 수 있게 해 달라라는 요구를 했었고 그것을 일본이 받아들일까 말까 이걸
단계적으로 받아들이자라는 검토를 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 전쟁을 하다가
전쟁에서지면서 시현을 못 하고 그냥 끝났어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일본이 한국을 조선을 차별했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에 근거로 삼는 거는 난 가능하고 실제 차별한 거니까
그 부분에서 그다음에 두 번째는 일본이 제국주의를 가면서이 궁국주의
제국주의의 가장 핵심은 군대잖아요. 군사력인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나라 조선
사람들은 일본 군대에서 받아 주지 않았어요. 세금 다내면서 우리나라 사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군대에 가고 싶어 했어요. 일본이 육군이나 뭐 해군이나 그때
공군은 별로였으니까 이런 그 엄청난 군제 제국 군대를 만들어서 해외로
나가면서 일본이 막 막 엄청난
데에 일본 사람만 썼어요. 일본 본토 사람만. 그러니까 식민지 조선
출신이나 식민지 대만 출신은 군대에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아까 얘기한 대로 전쟁이 전선이 넓어지면서
이제 병력이 계속 병력 자원이 늘어나야 되는데 일본 본토만 갖고는 안 된다. 그러면 조선 사람들 중에서
지원병을 지원병 제도를 만들어서 지원한 사람 중에 심사해서 일본 군대에서 복무할 수 있는 능력을
자격을 갖춘 사람은 복무시키자 하는게 조선인 특별 지원 제도라는게 있었고
또 대만에서도 그런 걸 하려 그랬었고 그렇게 하다가 마지막에는 이제 저기
대학생들한테는 학병 학도 지원병을 받자 그래서 학도 지원병도 받고 그
사람들이 그래서 일본군 군대에 가서 뭐 태평양 전선이나 뭐 중국 전선에 가서 저 일본 군대로 활약을 하다가
활동을 하다가 전쟁에지고 나서 우리나라에 돌아온 사람들이 625
전쟁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그 사람들이 전전투 경험이 있으니까
일본 군대에서 3년 4년을 근무하고 나중에 이제 해방이 돼서 남안에
왔어요.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도 군대를 만들어야 되는데 그 군대 만드는 거에 꼭대기 층에서는
광복군이나 뭐 미군에 근무한 적이 있는 그런 사람 이승만 쪽에서 추천한
OS에서 특공대 일을 하던 사람들 또 뭐 광복군 그 장석 군대에 가서 뭐
그 중국군에 가서 같이 일 하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이제 육사에 꼭대기 일을 그 육사 1기 2기부터
뭐 초창기 육사입 입교생들이 되고 그 사람들이 지금 그중에 6세 2기가 박정희 아니에요. 박정희는 만주
군간학교 일본 군대에서 장교로 임관을 해서 그 군대 경험이 박정희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배경으로까지 작용을 하는 거고 그럼 박정희 말고
일본의 아까 얘기한 특군 육불 육군 지원병이라는 제도는 일본의 하사관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하사,
중사, 상사, 상사, 중사, 하사 이런 계급을 달고 일본 군대에 가서 전쟁을 하다가 우리나라에 와서 이제
해방된 조국에서 그럼 난 뭘 해야 되느냐 하는 생각을 할 때 해방되자 조국 대한민국이 건설되자마자 2년
만에 62 전쟁이 나잖아요. 갈 수 있는 사람은 다 끌어와서 군대를 가는데이 일본 군대에 가서 전투
경험에 있는 사람들이 군대에 많이 들어가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625 때 공산군이 내려오는 것을 지키
막는데 협한 공을 세워요. 예. 근데 춘천 대첩이라 그래서 춘천 쪽으로
내려오는 그 인민군을 막은 그 임부혁이라는 장군이 있는데이 사람이
학두 저 육군 특별 지원병 출신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그러니까 역사가 되게
아이러니컬한게 일본 군대 왜 안 보내 주느냐? 우리도 일본 군대 너네가
정말 차별없이 조선을 일본의 내 뭐라 내선이 일체한다. 조선 일본 본토와
조선반도가 일체한 나라다. 합방한 나라다라고 하면은
조선 사람도 일본 사람 같이 일본 군대에 보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게 당연한 거고 그 주장을
했는데 일본에서 안 받아 주다가 병력이 모자라니까 그러면 조선 사람도 군대에 와라. 그래서 이제 군대에
갔는데 일본이 전쟁에서 졌어요. 전쟁에서 전대 일본 군대에서의 3년
2년 3년 4년의 경험이 이제 축적이 된 사람들이 조국 해방된 조국에 와서
지금부터는 뭘 해야 되느냐 하다가 뭐 경찰에도 들어가고 군대에도 들어가고 뭐 뭐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농사지는 사람 여러 사람들이 있었겠죠. 그러고 있는데 62 전쟁이 나서이 사람들이 딱 군대로
들어가면서이 사람들 중에 군대 경험이 있었던 일본군의 복무였던 경험 있는 사람들이 수적으로 제일 많아요.이
사람들이 엄청난 전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625 때 가장 공을 많이
세워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역설적인 거죠. 일본 군대에서 일부
열어줬어요. 모든 사람을 징집한 건 아니지만 지원하고 싶은 사람은 지원해라. 심사해서 뽑아 주겠다. 뽑았어요.
전쟁에 내보냈는데 일본이 졌어.이 사람들이 이제 묻히나 그랬어. 근데 공산당이 내려오는데 공산당을
무찌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게이 사람들이에요. 그니까 이런 역사적인 과정을 보면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했다고. 일본 제국주의가대 조선반도를 근대화시키는데 우리가 그
근대화가 맞는 거다라고 생각해서 그걸 협조했다고 우리가 7파한 욕을 들어야 되느냐 하는 질문이 이제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오는 거고 나는 그 질문에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 일본 제국주의도
근대화 하는 세력이었고 미국 뭐 제국주의는 아니라고 얘기하는데
북한에서는 미국을 제국주의라 그러죠. 미국 제국주의 근대화 세력인 선교사들 하고도 우리가 협력해서 일한 것도
우리 근대화의 일환이고 일본과도 근대화한 거고 그렇게 이해하면은 일본
친일파라는 욕에 그렇게 우리가 뭐라 그럴까 컴플렉스를 가질 필요가 없지 않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친파하는
여분들 그동안의 교육 때문에 일본은 무조건 나쁜 거라서 우리가 일본하고 가까이 지내온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뭔가 더 티한 사람, 비겁하 비굴한 사람으로 생각하는게 인식이 깊이
바뀌서 그런데 지금 얘기한 대로 일본이나 영국이나 독일이나 미국이나
다 근대를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이고 그 근대를 앞서간 사람들이 만들어 놓는 제도에 우리가 들어가서 근대를
배우고 학습하고 퍼트리는데 역할을 한 걸로 생각하면은
친일파한 것을 그렇게까지 무슨 가문의 수치로 생각할 일이 있나 하는 생각 나도 이익을 담당한 열심히 일한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왜 일본하고 협력한 것은 친파라고 욕을하고 미국하고 협력한
것은 괜찮다고 얘기하는지도 그것도 되게 웃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국 미국의 근대와 선교사들이 앞장섰어요. 그 우리나라에 와서 병원 세우고 학교 세우고 거기
연세대학 세우고 거기 나니고 여기 다니고 뭐 다니 사람 많잖아요. 딱 미국 제국주 협력한 거야. 미의
앞잡이야. 북한에서 그러잖아요. 근데 그거는 우리나라는 굉장히 미압재비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일본의 앞재비가 되면은 엄청난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잘못된 프레임이에요.
다 근대 근대적인 것을 확산시키는 어떤 제도적인 선구자들이에요.
일본의 미스비C라는 일본 회사가 지금도 잘 나가는 회사고 일본 1910년대 20년대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회사예요. B 씨가 일본을 발전시 우리나라 현대 중공업 같은 회사고 우리 현대 중공업보다
50년 100년이 빠른 회사예요. 그 회사에서 일한게 왜 그게 무슨 친일파
일을 한 거예요?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 거죠. 그걸
그러니까 너무 그 친일파는 나쁜 거다라는 프레임에 지금 짐들려
있어요. 우리가 나는 좀 벗어난 거 같은데 아직도 짓들려 있어요. 많은 거 같아.
벗어나세요. 벗어나세요. 질문 5시 50분까지 받을게요. 네.
이거 이제 시청하시는 내피진 분들이 시청자분들이 질문 두 가지 주셨어요.
하나는 진 하나는 진실을 파괴되신 계기가 무엇입니까가 하나의 질문이었거요. 두
번째는 한국 교서 다시 한국사 교가서 다시 회복이 가능한가?
혹은 가능하다면 그럴 계획이 있으신가? 두 가지 질문
진실에 이제 집착하게 된 것은요. 그 굉장히 누적된
경험이 쌓여서 그런 건데 이제 연대에서 교수가 되는
과정까지는이 지금 내가 오늘 여러분한테 얘기한 이런 문제 의식까지는 없었어요. 아마
그 미국 가서 박사하기를 얻기 위해서 공부할 때만 해도 이제
그때는 내가 70년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80년대에 미국에서 유학을
했는데 그때는 종속 이론이라는게 굉장히 유행하고 있었어요. 종소
기론이 뭐냐면은 선진국의 그 자본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선진국 자본이 투자를 하면은 그 투자된 후진국에서는
그 더 많은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듯이 그 선진국 자본이 와서 여기서 많은
잉여를 만들어서 그 잉여의 결과물을 본국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계속
여기서는 죽어라고 일만하게 되는 착취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선진국과
단절하고 자력 갱생하는 경제로 가야 된다라는게 이제 종소론의 핵심
주장인데 그 당시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70년대 그때 이제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을 많이 하고 뭐 그럴 때죠.이 이제 우리나라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하는 단계인데
비판적인 사람들은 종속론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한국 경제가 그렇게 겉으로는
마치 무슨 저 병원 가서 무슨 저 임시 처방 주사
맞으면은 갑자기 원기가 생기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늙어서 그냥 힘이 없어지는 그런 식의 이게 그
일종에 마약 같은 것을 지금 먹게 되는 상황이라 한국 경제 발전은 는
오래 가지 못한다라는 식의 얘기를 하고 있었고 이게 김대중류의 생각이었는데
나는 나대로 야 근데 옛날보다 계속해서 잘 살고 앞으로도 잘 살 거 같은데 우리 우리랑 비슷한 경험을 한
대만이나 싱가폴이나 그 당시 홍콩 이런 나라들은 일본이 그렇고 다
일본도 완전히 2차대 때 쫄 딱 망한 나라였잖아요. 폭격당하고 뭐 완전 완전히 근데 금방 회복해서 일본이
그때는 세계 최고 경제 재니에서 남부관이라는 책도 나올 정도로
그러면은 일본이나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싱가이나 홍콩 같은 나라가 남미 같이
50년대 60년대 잘 살다가 70년대 되면 망할 거다. 망했다. 우리나라도
그 길을 갈 거다라는게 맞는 얘긴지 틀린 얘긴지를 따져보자라는게 내가 이제 미국 가서 공부하던 박사하게 할
때의 주제였고 공부를 해 보니까 안 망할 것 같다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그래서 이제 한국에 와서 그런 식으로 해외의 시장을 개척해서 우리가 막
해외에다가 수출하는 물건을 팔고 또 해외에서 우리나라에 투자도 하고 뭐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생산된 그 서구 회사의 제품을 사고하는 것이 이게 상호 이익이 돼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지 이게 종속이 돼 가지고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가는게 아니다라는 얘기까지는 내가 이제 박사
과정을 하면서 생각을 그렇게 하면서 이제 교수가 됐는데 교수가 되고 나서는 이제 그런
얘기까지는 했지만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 하는 문제에 좀 깊이 있게
공부를 못 하다가 근본을 따지는 계기가 자꾸 생겼어요. 왜냐면 수업을
하다 보면 이제 오늘 같은 여러분들 한 2, 30명, 3, 40명 듣는 수업에 이제 내가 이런 그동안에 내
연구 결과에 관한 얘기를 하면은 질문을 하면서 이제 딴 직으로는 학생들이 꼭 있습니다. 그 친구들하고
이제 논쟁을 하다 보면 아 이거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 대한민국이라
나라의 정통성에 대해서 뭔가 근본적인 가치관이서 있지 않으면 이거 중간에
계속 흔들리면서 제대로 뭐가 이게 똑바로 나가는 길을 만들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교수생활 후반부 그니까 내가 나이로 치면 한 50대 지금부터 한 20년
전 내가 지금 70이거든요. 50 초반에 들면서부터는
이승만과 박정희 두 분의 역할과 그 해방 전국의 혼란 이런 것들을
그동안 우리가 알던 내가 그냥 중고등학교 때 배우던 역사만 가지고 지금 대학 교수로서 내가 얘기하는데
박정희 대통령 수출주도 산업화는 잘한 거다라는 얘기하고 학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박정희의 무슨 저 뭐 종속적인 어떤 행태는 이건 매판
자본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거다라는게 양립이 불가능한 관이냐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더
저 사람들 얘기로는 그구적인 프레임으로 가게 됐어요. 지금 뭐 누가 봐도 꼴통 그구죠. 완전히 그데
그게 창피한게 아니라 성찰의 결과라고라는 생각해요. 창피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날 보고 그거라 그러는게 정치적인 욕 그 친구들의 정치적 그
수사고 나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말이지. 그 말 들었다고 요새 내가 뭐 열 받아서 내가 왜 그구냐고
싸우지도 않아요. 나 그구다 그래요. 그냥 나 친일파 맞다. 창피하지 않아요. 친일 일본이 근대
사회로 가는데 앞장서 있었고 그 근대 사회로 가는 길에 내가 나의 조상이
같이 내가 깨어서 나도 근대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사람이에요. 그게 그거를 막 일본의
길은 안 되고 미국의 길로만 가야 된다. 웃기는 거죠. 일본의 근대원, 미국의 근대건 모더니티는 같은
겁니다. 합리적인 거예요. 일본이라고 뭐 달라요. 아, 그렇게 치면 뭐
독일의 근대하고 뭐 프랑스의 근대는 서로 싸워야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독일의 근대와 프랑스의
근대는 다 근대예요. 아까 질문 하던 사람
네. 하나 맞아. 이게 한국사 예를 다시 정상화시킬 수 있겠느냐?
한국서를 정상화시키려면요. 우선 정치 지도자가 우파 정치 지도자가 지금
오늘 내가 던진 이런 문제에 좀 생각을 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돼요. 근데 내가 겪은 최근에 우파
대통령들은 가까이는 윤성열 대통령 또 그 앞에는 박근혜 대통령 그 앞에는
이명박 또 그 앞에는 뭐 전두한 그런데 전두한 대통령까지는 관성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문제에 고민을 안 해도 그 어떤 흘러내려오던게 문제가
없었는데 중간에 이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하면서 좌파들의 시각이 들어와서
이걸 막흔 흔들어 놓으니까 최근에 우파 대통령들은이 문제에 대해서 철학적 깊이가 없어요. 그냥
좀 깊이 없는 표피적인 이해만 하고 있는 분들이라서
윤성열 대통령이 자유에 대해서 엄청나게 여러분 연설할 때마다 말하면서 자유를 지키려면 좌파들하고
어떻게 싸워야 되는지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거기에 비해서 지금 이재명은 대통령
대자마자 윤성열이 엄청 조지잖아요. 사실은 그 윤성열이 대통령 되잖을 조졌어야 되는
거예요. 그걸 안 한 거야. 그걸 안 하고 그냥 계속 어 하다
보니까 자기가 당한 거예요. 그냥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대자마자 제일
먼저 한게 뭔지 아세요? 전두한 조진 거예요. 조질 사람이 아니 그니까 전두안하고 자기가 개인적인 그 악연이
있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대통령에 대해서 처음으로 해야 될 일이 전두한
조진거 여러분 기억해요. 박근혜 대통령이 전두한 가문을 아주 작를 해서 세금 추진하고 박살 낸 거
모르죠. 여러분들 28만 원이 나온 거 아닙니까? 그거보다 더 그거는 더 일찍 나온
거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은 우파 대통령으로
노무현까 이명박이 실패하고 나서 이제 팔을 해드는게 전두한 전재영이 전두한 아들
그 무슨 출판사 있잖아요. 시공 시공사 거기를 완전히 세무 조사해
갖고 작사를 했어요. 여러분 아마 기억을 잘 못 왜냐면 정치적으로 그렇게 크게 비중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해서 사회에서 공론화를 많이 안 했는데 난 그거 잘못한 거라고 보는 게요. 박근혜
대통령은 누가 봐도 김대중 노무현하고 싸워야 되는 사람이에요. 이명박이
그걸 하려다가 못 하고 청와대 뒷상 가서 반성했잖아요. 무슨 저 무슨
소고기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성 구멍탁 된다고 하니까 그게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서이 광어병 선동이라게 완전히
엉터리 선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반성하는 척 하면서 청와대 뒷상 가서
무슨 아침을 부르면서 나 반성했다고 하다가 이제 반심 불소가 된 거 아니야. 그래서 중도 실용하겠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못 하고 무슨 전국의 강보는 만들었나?
그거 몇 개 만들다가 뭐 환경론자고 뭐 록조라 뭐 뭐 뭡니까? 하여튼
MB 정권이 좌파들이랑 싸워서 좌파들을 제압하고 너네 역사관이 잘못된 거다라는 얘기를 제대로 했어야
되는데 그걸 못 하고 흐지부지하다가 다행히 다음번 정권이 박근혜로 개승이
됐어요. 우파 정권이. 그러면 박근혜 정부는 좌파랑 싸워야 되는데 전도안이랑
싸우고 있더라고요. 되자마자. 그다음에 좌파랑 제대로 못 싸우고 또 세월로 터지니까 뭐 세월로 잘못을 뭐
해경을 해체해 버리고 그랬잖아. 사실 해경 잘못한 거 없어요. 그때 해경이 할만큼 한 건데 좌파들이 생 난리를
친 거 아니에요. 그냥 무조건 거기에 그냥 넘어가서 해경 해체하고 뭐 해경 그러다가 그냥 저 탄핵 당하고
윤성열이 그다음에 우파를 개정한 대통령을 좌파랑 싸워야 돼요.
문재인이랑 싸워야 되고 지금 이재명이랑 싸워야 되는데 그
싸움 안 하고 뭐 이상한 자유량만 하다가 그냥 싸움을 제대로 안 하다 허지부지 끝난 거 아니야. 지금 거꾸로 다한 거예요. 자기가 이재명
되자마자 지금 조지잖아요. 우리 편지잖아. 지금 우리는 그걸 못
했어요. 그래서 역사 교육을 정상할 수
있느냐로 돌아가면은 그러니까 정치
지도자들이 그리고 최고 통치자가 권력을 잡은 최고 통치자가 이런 문제에 감수성이 이걸 모든 문제의
디테일까지 알 수가 없죠. 저만 해도 내가 아는이 현대사 외곡 부분을 아는
거지. 어떻게 현대사의 모든 부분의 외곡인지를 내가 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일정한 감수성은 있어요.
내가 정치 지도자가 되면은 국정의 모든 분야의 디테일을 다 알 수는 없어요.
다만 역사 문제에 우리나라이 현대사를 보면은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 또 미국과 일본과 우리나라 뭐 이런 나라들 사이의 역한 관계가
그 한반도에서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대한 역사적 감수성이 있어서 그것을
계승할 수 있는 어떤 기본 입지를 갖고 그 지도자가 전문가를 잘
발탁해서 야 교육부 장관은 네가 하는데 너는 요번에 교육부 장관 하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중등 교육의 역사 문제를 좀 바로 잡아라. 어떻게 62월을 북침이라
그러냐? 남침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예. 근데 무슨 광우병이 무슨 미국산
소고이 먹으면 광어병 걸리는 거 아니지 않는 거 다 알지 않느냐. 근데 왜 그 시위대가 광화문을 점령하고 그 생 난리를 치게
만드느냐? 이런 거 좀 바로 잡아라 하는 정도의 판단을 할 수 있어야죠.
그래야 정치 지도자고 그런 사람이 집권을 하면은 역세 교육을 좀 바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MBC 4장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해야 돼요. KBS 4장.
아니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어야 바로 잡을 거 아니에요. 아 그니까 언론 기관과 교육 기관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이 역사관에서는. 근데이 역사관이 잘못돼 있거나 역사관의 사명
의식이 없으면 사명감이 없으면은 개 아까 봤잖아요. 그 교묘하게 비틀어서
일본군 남자 시신을 조선인 여자 위안부 시신으로 바꿔치게 하면서 보도하는 거 이걸 그냥 방치게 되는
거 아니에요. 감소성이 있어야 돼요. 디테일까지는 몰라도.
예. 예. 그 소위 말하는 빨갱이들은 막 아까 보여주신 자료 거짓으로
조작한 것처럼 거짓말까지 섞어서 일본이랑 사이를 나쁘게 해서 본인의
정치적을 다지잖아요. 근데 막 수나라 명나라 해서 해서부터
막 원나라 만주도 그 일본의 몇십배를 훨씬 지배를 당했고 그리고 최근에 아
최근이 아니라 그 일본이랑 일본 근대화랑 미국 근대화가 미국의 승리로 인해서 미국 근대화가 옳았다고 이렇게
판단했다 했잖아요. 역사적으로. 그래서 예전에 양무운동이랑 메이지 유심 보면 메이지 유심이 성공함으로써
일본이 옳았다고 볼 수 있잖아요. 데 그래서 저는 인간이 보통 더 편하고
자기가 이득되는 길로 가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앞에 역사를 보면
얼마 안 되는 그 40년도 안 되는 일제 시제보다 관중으로 가는 더 선동을 하는게 사람들의 그 관심을
사기 쉽다고 생각했는데 왜 굳이 1분만 건드려서 일본으로만 선동을
하는지 저도 똑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생각을 해 봤는데요. 일본이 우리를
35년밖에 짧게 지배해서 중국은 5,년 지배를 했잖아요.
우리를. 그 우리 DNA의 중국의 집에는 그냥 당연한 걸로 각인이 돼 있어요. DNA에 들어가 있어요.
일본은 DNA에 집어넣으려 그러는데 우리가 몸에서 저항을 하다가 일본이
전쟁에서지면서 우리가 그 일본이 심으라 그러던 DNA에
받아들이지 않고 일본은 미워하고 중국의 지배는 당연한 걸로 그냥 역사
5천년이 누적이 되면서 아 중국은 원래 우리를 지배하는 나라야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그 관성이 그냥 자리를 잡게 된 거 같아요. 일본이
우리를 500년쯤 지배했으면은 좀 달라졌을 거예요. 35년밖에 지배를 안 해서 안타깝게도
실제로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를 몇 년 집배하는지 아세요? 400년
500년 집이에요. 콜롬부스가 1392년인가? 천 언제죠? 저 신대륙이 있는 걸
발견하고 나서 스페인하고 포르투갈이라틴 아메리카를 다 먹잖아요.
그러고 나서부터 계속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는게 400년 500년 됐거든요. 그 정도 식민 지배를
받으면요. 우리같이 식민 모국을 미워할 방법이 없어요. 우리가 중국을
미워하지 않듯이 400년 500년 식민 지배를 받으면은 그 나라를
추정하게 돼요. 일본이 너무 짧게 지배했어. 우리를 안타깝게도.
어 마지막으로 이제 질문 제가 마지막으로 질문하겠습니다. 네.
이따가 축사 아 빠르게 할 아 먼저 아 내가 마지막으로
형 먼저 어떻게 그 일단 지금 이렇게 당하게 된게
미디어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보는데 그중에서이 저 서점을 갔다 왔는데 전부 정치 사회 분야가 전부이
민주당을 우호하고 그런 평등을 주장하는 그런 좌파들의 책이 베스트셀에 장악이 되어 있었어요.
전테일 평등도 마찬가지로 검색가 한 52 정도 남았는데 그런 것들을 조금 바로 그런 것들에 대한 원인이 조금
교수님의 시각이 궁금하고 해결 방안이 궁금하고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으로는 이제 이런 진실들을 알리는
공부들을 학생들이 좀 스스로 할 수 있는이 방법과 노하우를 좀 마지막으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문화
전쟁에서 왜지게 됐냐 하면요. 정말 세계적으로 위대한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건국 대통령으로
발전시킨 대통령으로 역사에 있으면서 우파들은 그분들한테 너무 의지를 많이
하고 그분들 같은 사람들이 계속 우리의 정치 지도자가 될 걸로
의무 양으로 그냥 당연한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리 대통령일 거야라고 생각하는
어떤 습속이 벤 거 같아요. 그래서 자
그 대중 각자가 우파적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가 각성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싸워서 얻어내야 된다라는 것을 체질화시키지를
못하고 그냥 너무나 훌륭한 사실 이승과 박정희 같은 사람은 5천년
역사에 한 번 나타나기가 어려운 사람들인데 연달라 12년 18년을
우리나라를의 최고 지도자가 되면서 우리가 30년을 너무 쉽게 어려운 시기를 그분들
덕분에 너무 쉽게 나라를 지키고 그 가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분들이
워낙 역설적으로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우파들은 스스로 각성해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나 또 뭐 평등도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죠. 자유나 평등 혹은 뭐 우리가 지켜야
될 것을 우리 힘으로 지켜야 된다라는 이런 바닥에서의 자생적 어떤 능력이
우파는 없었고 좌파는 그거에 싸웠잖아요. 이승 박정희 12년
18년 30년 동안 절치 무심 싸우면서 북한에서 물 밑으로 도와주는 것까지 받아들이면서 온갖
악당짓을 다 해 가지고 그 우파들을 때려엎고 지금 정권을 간신히 잡았는데 뭐
우파는 너무 위대한 지도자를 너무 쉽게 만났어. 아무 희생 없이.
그냥 가만히 있는데 이승만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야 이렇게 해 이렇게 이렇게 박정현서 이렇게 이렇게
그랬더니 나라가 막 세계 12권 국가가 됐어. 고마운줄도 모르고 있는 거야. 그
좌파들이 막 난리를 치니까 아 그 두 분이 훌륭한 분이었구나. 이제서야 깨닫고 있어요.
앞으로. 그래서 좀 그런 각성을 해야 되고 그런 각성의
흐름이 시작은 됐다고 봐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예컨데 이런 자리에 모여서 나 같은 사람을 불러서 이렇게 이런
기회를 갖는 거 자체가 이제 과거 운동권이 지하에서 막 그 하는 거랑
똑같은 약간 그 버전은 다르지만 똑같은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활동이
앞으로 이런 게릴라식 강의나 이런게 이제 요새 또이 시대가 바뀌서 매체가
유튜브 같은 것도 있고 뭐 하니까 앞으로 이제 각성한 우파들이 좀 그
열심히 공부를 하고 또 공부한 것을 실천하고 하는 흐름이 이어지면은 바뀔 것
같고요. 문화 전쟁이 그래서 다시 예컨데 우파 책이라면 없는 돈이지만
한 번씩 사 주고 내용을 공유하고 좌파들은 책도 안
읽으면서 무슨 자기네 편이 책 내면은 그냥 뭐 심 읽을게 있겠어요. 그게
뭐 몇십씩 몇십만 원 것씩 팔린다니까. 그니까 그런 문화
산업에서의 그 뭐라 그러죠?이 이 노적기 그런게 좌익은 막 체질화 돼
있고 우파는 그런게 좀 안 돼 있는데 그래도 옛날보다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좋아지고 있어요.
그럼 질문은 여기서 마치겠고 좋은 강연 진짜 너무 강연 덕분에 많이
깨어난 거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예 감사합니다.
얘기 나눠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아, 이거 책수님이 다섯 권 선물해
주셨는데 아, 어, 일단 한 두 권 정도는 사무실이랑
둘 거고 한 세 권 정도는 어, 먼저 이제
어필을 잘 해 가지고 이제 제가 드리겠습니다. 개한데
일단 사무실에 갈 거 제 가방에다가 넣어 주시면 챙겨 가겠습니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요. 오케습니다.
지이요? 차 차는 넣고가
이동합시 예 나랑도 10분
어 방간 한 거 아니 어 됐어 자우 관장 자 나 책 두 개 챙긴다니까
여러분 같이 강의 잘 들으셨나요?네 예, 지금 오늘 자유대학 학생들과
이제 어, 뉴스 교수 저희 저희 학교 명예 교수님 정말
진실된 말씀을 가르치시는 그런 정말 뛰어난 교수님인데 저희 연세대학교에서는 되게 명예가 좀
더럽혀지셔 가지고 다시 명예를 되찾고자 이제 이런 강연을 열심히 다니십니다. 정말 학생들이 오늘
계기로 진짜 위한부 문제 또 그리고 전테일 노동자 사건 되게 왜곡된
역사와 진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귀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아 전테일 쪽은 제대로 못 들었고 어
들어왔나요? 목이 잘렸었습니다. 아 예 이거 목 잘라갔어요. 어제 저 목만주
샤시 어떠셨네요? 오늘 강의 강 네 저 오늘 강의 너무 좋았습니다.
어제 뭐 먹고 자습니까? 부었나요?네 네. 또 각도 조절을
네. 내용탕요. 감사합니다. 진짜 몰랐던 사실 많이 알게 되었고
진짜 조작 아니 너무 저런 뉴스에서 대놓고 조작을 하는게 지금 MBC,
JTBC만의 문제가 아니라 옛날부터 다 그래 왔고 언론사 상관없이 다
똑같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그리고 진짜 우리나라가 발전을
아니다. 좀 논란이 있을 수 있어서이 정도에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아, 좋습니다.
네. 그래서 지금 저희가 계속 학생들 20대뿐만 아니라
10대, 30대 오늘은 자유대학 학생들끼리만 했는데 계속 이런 강연들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애국 시민들이
더 들어가지고 자파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지식을 갖춰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
열심히 아스팔트에서 화요일, 금요일마다 행진을 할 거고 오늘 월 아마 월요일이나 시간 남는 때 강연
시간을 따로 잡아 가지고 이런 강연 계속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같이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또 다음 강연
공지해 가지고 아 내일 집회는 명동 먼저 알래? 네. 내일 집회 요거 드리기 전에
기사가 하나 또 떴는데요. 짱증서 떴습니다.
단독 중국 다이빙 주한대사 강한 불쾌감 다이빙 강한 불쾌감이라고 하네요.
더할게. 어 더할 강화 우리도 증언합시다. 여러분 같이 증언해 주세요.
네. 원하 울고 있는 거야. 원하시는 대로 시위 넓게
원하시는 대로 다음 주에 이제 다이빙 주한 중국 대사만 찢어 드리겠습니다.
이거 다이빙 대사가 한 마리니까 네. 네. 다이빙이 말했으니까 다이빙. 다음 주에는 다이빙만 단독으로 찢어
드릴게요. 네. 여러분 무조건 오늘 같은  이 지식 싸움 역사 싸움 역사 강연 좌파들과의 싸움에서 이렇게 공부도까지 잘하면서 이제 내일 집회까지 계속 같이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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