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작살', 그리고 미생...
위대항 일상 2021년 9월 24일
by위대한 일상을 그리는 시지프Oct 04. 2021
'이재명' 하면 내게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2015년 김어준의 파파이스 #43회에 출연한 자리. 방송시간 46분 54초다.
(관련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o5bxxqTojms )
사정은 이러했다.
성남시장으로 '모라토리엄', 그러니까 '파산 선언'으로 주목을 끌었던 이재명 당시 시장은,
각종 사업으로 재정을 '흑자'로 전환시키고 '무상 산후 조리원'으로 다시 한번 화재의 중심에 섰다.
당시 이 시장은, 자신이 '작은 무기'라고 표현했던,
sns를 통해 무수한 적들과 싸워가며 성남시를 바꾸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했던 것인데,
이재명 당시 시장의 코너가 끝나갈 무렵, 패널 중 하나였던 김용민 평론가가 질문을 던진다.
"그럼, 대통령이 되시면, 전국적인 무상 산후조리원 하실 겁니까?"
그러자 이재명 당시 시장이 답하기를
"산후조리원뿐만이 아니고요."
라고 말하고, 바로 이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전에 , 작살을 좀 내야죠"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에 한 여성 관객의 탄성이 나오고 정적이 깨지며 박수갈채로 이어진다.
순간의 정적을 불러온 그 '작살'이라는 말에서 나는 그의 '분노'의 깊이를 본것 같았다.
진행자는 "자 여기까지만 하고.."라며 상황을 정리했고,
좌중을 긴장시킨 것을 깨달았던 이재명 당시 시장 본인은
"그래서 안될 것 같기는 해요"라고 겸연쩍게 웃으며 함께 코너를 마무리했다.
이재명을 보면 나는 늘 이 순간이 떠오른다.
'작살'이라...
'분노'와 '한'은 사실을 모르면 쌓이지 않는다.
당시 이명박근혜 정권이 어떤 패악질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을 한 이후에 친일파들이 나라의 골수에 똬리를 틀고,
전쟁으로 두 동강 이난 뒤에도, 어떻게 나라를 망가뜨려 왔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도 '미움'도 '분노'도 '절망'도 쌓이지 않는 법이다.
하나의 물리적 공간이라고 하지만,
사시를 9번이나 치를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집안의 학생과
손이 프레스에 눌려가며 맞아가며 살아야 했던 노동자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도 집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만 부르면 되고,
퇴직할 때 50억 정도 돈을 이유도 모른 채,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분노가 쌓일 틈이 한이 쌓일 자리가 있기나 하겠는가?
나 역시도, 편하게 살아온 삶이었다.
뉴스를 보며 분노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재명의 그 '작살'이라는 살기 어린 분노의 표현을 들으며,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이제 시간이 흘렀다.
손가락으로, sns라는 작은 칼로 싸우던 이재명은
큰 장검은 족히 될 경기지사를 거쳐,
이제 청룡언월도를 능가하는,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정말 '작살'을 낼 수 있는
'권력'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어진 수많은 공격들과
앞으로도 적지않이 소란스러울 이 대권의 가도에서
그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신이 작살을 이야기하며 "그것 때문에 안될 것 같다"며 사족을 달았던 것은
어쩌면, '작살'을 당하게 될 소위 '적폐' 아니 '부패한 기득권층'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재명 자신도 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 두렵기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두려움, 맞다.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현대의 정치가, '우아한 전쟁터'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내가 바라본 한국의 정치판은 실제로 '죽음'이 난무하는
피가 튀는 전쟁터였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이나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영화'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역시도, '실재의 일'이었다.
'합법'의 올가미로 감옥에 가있는 김경수 도지사도 현실이 아니던가?
그러니 어쩌면, 이재명이 자신이 성남시와 경기도민을 위해 시정과 도정에 나섰듯이
이제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국정에 나섰다면,
이제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그가 죽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다른 후보들은 후보직에서 사퇴하더라도 집에 가서 애국가를 부르거나,
아니면 고향에 내려가 우아하게 탁주나 마시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그렇지가 않다.
'작살'을 당할지 모를 세력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적폐와의 전쟁 역시, 지쳤다고 끝내자고 하지만
어쩌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부패세력'이 엄연히 존재해 왔는데,
언론은 마치 새로운 일인 양 '적폐'라고 이름 짓고,
그렇게 몇 년을 꽹과리를 치며 소란을 떨더니,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저 '적폐 청산'이라고 소리 내어 말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을 하기에 180석이나 쥐어주었지만,
결국 해낸 것은 없지 않은가?
이재명은 아직 '미생'이다.
그가 '완생'으로 갈 수 있을지, 아니면 '미완의 꿈', '미생'으로 남을지,
이재명의 운명은 이재명 자신이 아닌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이재명의 분투를 바라보며 미생의 장그래에 대한 오 차장의 말이 생각났다.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요..
어린 친구가
취해있지 않더라고요.."
사업을 하겠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온 선배에게 오 차장 한 말이었다.
물론, 이재명 지사는 어리지 않고, 더더욱이 취헤있지도 않다.
다만, 이대목이 무언가 의미가 있을 듯 보였다.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적적인데 무리가 없다...
지금 일촉즉발의 모든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 자신이 직접 강한 어조로 날을 새우는 것은
캠프의 사기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지 모르겠으나,
지지도에서 수위를 달리는 후보답지 않아 보인다.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인재로 둘러싸여 있어야 할 대권의 후보가 '혼자'인 듯 보이는 것이다.
열정적이라는 것 역시 '무리'로 비치게 되면,
보는 사람은 다시 '불안'을 느끼게 되고 본인도 지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지성과 더 많은 실력자들이 고수들이 그를 도와야 한다.
사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 성숙한 이재명을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인간으로 버텨내기엔 무거운 여정과 일들이다...
부디 이겨내시기를...
ps
모든 국가의 대선 레이스는 거칠고 힘들다. 1년 내내 전국을 도는 미국은 물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대권후보들이 이런 혹독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그렇게 단련되어 있어야,
국제무대에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선 '깜냥'이 되지 않는 '인사'들은 그대로 드러난다.
따라서 대권 후보들은 최선은 다하되 80%라고 생각해야 한다.
선거는 선거일뿐 그 뒤에 산처럼 쌓인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46분 54-55초
https://www.youtube.com/watch?v=o5bxxqToj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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