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31

[전자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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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  | 질문의 책 22
양승훈 (지은이)오월의봄201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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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16년 화제의 영화 <땐뽀걸즈>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거제도 ‘중공업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낸 최초의 책.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조선산업 전반의 문제에 대해 활발히 글을 써온 저자가 조선소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산업, 그리고 그 근거지인 거제도와 조선소 사람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20년 가까이 호황을 구가하던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 2015년 대우조선의 경영난을 기점으로 고초를 겪은 바 있다. 조선업이 지금의 위기를 계기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관점하에,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과 문화를 상세히 조명했다.

위기의 원인을 1960년대부터 시작된 조선산업의 역사 속에서 상세히 분석하면서도, 조선소 근무 경험을 살려 실제 현장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위기를 체감하고 있는지를 생생히 전달하고자 했다. 조선소의 상징과도 같은 ‘귀족 노조’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중공업 가족’ 이외에도 하청업체 노동자, 사무보조직 여성, 조선소 취업을 앞둔 여고생, 조선소의 오랜 관습에 반기를 든 젊은 엔지니어, 여성 엔지니어 등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러 사람들의 입장을 두루 살핌으로써 위기의 본질을 고민한다. 위기 이후 거제도와 조선산업이 추구할 만한 방향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땐뽀걸즈>의 곳곳에 드리운 ‘가족의 위기’가 궁금한 독자들, 나아가 ‘땐뽀걸즈’들의 그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조선소로 가는 길 7

1부 조선소, 가족을 만들어내다 37
1. 옥포만의 기적 39
2. ‘중공업 가족’의 탄생 55

2부 오래된 습관, 복잡해진 세계 115
1. 중공업 엔지니어의 배움과 성장 117
2. ‘하면 된다’ 시절의 딜레마 167

3부 떠나는 사람들 217
1. 옥포만의 눈물 219
2. 갈림길에서 278

에필로그 산업도시 거제의 ‘그다음’을 그리며 311

감사의 말 323


책속에서


첫문장
거제도는 한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P. 26 그러나 2010년대를 거치며 산업도시 사람들은 ‘상위 10% 귀족노조’로 표상되었다. 부러움은 곧바로 지탄으로 변했다. ‘돈도 많이 버는데 고용도 보장받으려 하고, 심지어 자식들에게까지 일자리를 세습하려는 사람들’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적자금을 받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가서 회사가 도산할 지경이 됐는데도 양보하지 않는 노동조... 더보기
P. 27 이제 조선산업이 예전 같지 않고, 바깥의 시선도 부드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산업과 결속되어 있는 산업도시 거제의 사람들은 고된 시간 끝에 지금까지 익숙했던 모든 것을 다시 질문해야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 조선소의 건실했던 노동자들 중 상당수는 희망퇴직을 하거나 해고당한 후 다음 진로를 찾아야 할 상황에 놓였다. 가족의 벌이는 줄었고 ‘집사람’이었던 아내들은 지금까지 누렸던 소비를 줄이고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일터를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조선산업의 위기가 산업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셈이다. 접기
P. 58 거제의 중공업 가족은 오랜 시간에 걸쳐 끊임없이 변해왔다. 사무직 위주로 정규직을 공개 채용해왔던 2000년대 이후부터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도전받기 시작했다. 다수의 가족들이 4~5인 내외의 핵가족 형태를 이루고 살아가지만 최근에는 주말 부부는 물론 조직문화와 지역문화 모두에 편입되지 않으려고 하는 청년들이 대거 등장했다. 주말에는 ‘서울 사람’으로 지내면서 학원에 다니거나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는 청년, 또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과 소개팅 등을 통해 끊임없이 결혼을 타진하면서도 거제에서의 ‘외벌이’는 기피하는 사무직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접기
P. 72~73 남성과 여성의 일이 칼같이 분리되고, 노동자 공동체가 조직되고, 회사가 직원들을 결속력 있게 엮어내는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산업도시 거제의 중공업 가족이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하나의 정체성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산업이 호황을 누려 대다수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고, 질적으로 향상된 소비 생활을 향유하면서 겪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수도권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거제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세계가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사람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점차 ‘낯설게’ 드러나고 있다. 지속적인 호황으로 덮여 있던 문화적인 ‘낯섦’이라는 모순은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하자 그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모순은 사실 내부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다. 접기
P. 113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는 애초에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거제로 이주한 정규직들이 회사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족을 형성함으로써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결혼과 출산을 통해 직계가족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공업 가족은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여성들과 딸들의 공간을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 지었다. 무엇보다도 중공업 가족은 그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그 약점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접기
P. 114 딸들은 거제를 떠나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아빠들의 믿음을 저버렸다. 노동자들의 ‘단순한 삶’은 나름대로 예찬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나, 가족 안에 머무르기를 꺼리는 이들에게 그것은 한낱 보수적인 삶의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중공업 가족은 빈축을 샀다. 조선산업의 경기가 위축되면서 중공업 가족 내부의 모순과 긴장들이 본... 더보기
P. 125~126 주니어 엔지니어들이 시니어 엔지니어들에게 이따금 듣게 되는 이야기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종이배를 지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작업장 엔지니어들이 만들어놓은 ‘현장 중심의 기풍’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곧 작업장 엔지니어들이 현장 관리자와 현장 노동자들의 눈을 통해 자신의 도면을 바라본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좀 더... 더보기
P. 129 작업장 엔지니어들이 제도 용구를 가지고 도면을 그렸다면, 이 새로운 세대는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우스와 키보드 사용에 익숙해지면 3D 화면 구현이 가능하기에 선체 곳곳을 탐색하면서 입체적으로 도면을 그릴 수 있었다. 이런 작업 방식은 ‘컴맹’으로 살던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방식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엔지니어링의 주도권이 맥가이버 세대에서 빌게이츠의 세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접기
P. 152 이제는 배움과 성장의 양식이 달라졌다. 산업 보국을 위해 뛰었던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방식이 ‘현장 중심’ 기풍과 이른바 ‘쟁이 근성’에 기초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우수한 랩실 엔지니어들은 오픈소스판에서 뛰노는 해커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 일을 해내려고 한다. 분산화된 방식으로 자기 구역을 온라인상에서 코딩하듯 해결하려 하고, 실시간 온라인 피드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접기
P. 206 고되고 정신 없는 노동에 지친 사람들은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거나, 의자든 바닥이든 어디든 누워서 쉬고 싶어 한다. 사무직들은 자기 자리가 있어 점심을 먹고 나면 한숨을 돌릴 여유가 있지만, 많은 인원이 밀집된 해양플랜트 공정 현장에는 휴게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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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양승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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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문화인류학, 과학기술학을 공부했다.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사회조사방법론, 사회조사통계, 과학기술학을 강의한다. 청년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을 갖고, 제조업, 혁신, 비수도권 산업도시, 여성 공학 인력 등을 연구해왔다. 지은 책으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등이 있다.

최근작 : <[북토크] <광장 이후> 출간 기념 저자 북토크>,<광장 이후>,<[북토크] <자살하는 대한민국> x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저자 북토크> … 총 2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찬란한 황금기를 뒤로한 채 저물어가는 거제 중공업,
누가 떠나고 누가 남았나?

<땐뽀걸즈>에 미처 담기지 못한‘중공업 가족’의 진짜 이야기!

? ‘땐뽀걸즈’의 가족은 왜 뿔뿔이 흩어졌을까?
? 조선소의 젊은 사무직과 엔지니어는 왜 거제를 떠나 서울로 향할까?
? 산업도시 거제의 ‘그다음’은 가능할까?


2016년 화제의 영화 <땐뽀걸즈>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거제도 ‘중공업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낸 최초의 책.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조선산업 전반의 문제에 대해 활발히 글을 써온 저자가 조선소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산업, 그리고 그 근거지인 거제도와 조선소 사람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20년 가까이 호황을 구가하던 한국 조선업계는 지난 2015년 대우조선의 경영난을 기점으로 고초를 겪은 바 있다. 조선업이 지금의 위기를 계기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관점하에,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과 문화를 상세히 조명했다.
위기의 원인을 1960년대부터 시작된 조선산업의 역사 속에서 상세히 분석하면서도, 조선소 근무 경험을 살려 실제 현장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위기를 체감하고 있는지를 생생히 전달하고자 했다. 조선소의 상징과도 같은 ‘귀족 노조’ 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중공업 가족’ 이외에도 하청업체 노동자, 사무보조직 여성, 조선소 취업을 앞둔 여고생, 조선소의 오랜 관습에 반기를 든 젊은 엔지니어, 여성 엔지니어 등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러 사람들의 입장을 두루 살핌으로써 위기의 본질을 고민한다. 위기 이후 거제도와 조선산업이 추구할 만한 방향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땐뽀걸즈>의 곳곳에 드리운 ‘가족의 위기’가 궁금한 독자들, 나아가 ‘땐뽀걸즈’들의 그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공업 가족’의 안과 밖: 아빠, 엄마, 딸 그리고……
영화 <땐뽀걸즈>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중공업 가족’은 바로 그 황금기의 산물이다. 물론 거제 조선업이 처음부터 전성기를 누렸던 것은 아니다. 세계를 제패하고 눈부신 활약을 만들어내기까지 조선업 내부에는 여러 부침들이 있었다. 초창기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그 부침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이다.
거제는 토박이들의 도시가 아니라 이주자들의 도시이다. 옥포조선소를 비롯해 여러 조선소들이 거제에 세워지고 일감이 늘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거제로 몰려들어 터를 잡았다. 조선소에 노동자들이 모여들자 주택과 위락 시설들이 생겨났고, 그 후 노동자들이 결혼해 가족을 꾸리기 시작하자 이주가 다양한 문화 시설과 교육기관이 활성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중공업 가족’이다. 그러나 ‘중공업 가족’에서 ‘가족’이란 단순히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족’이란 노동자의 진짜 가족보다 노동자 공동체와 직원 공동체를 더 강하게 지시한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지속된 노동조합의 전통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가 직원들을 하나로 엮기 위해 ‘기업문화’ 차원에서 사용한 가족이라는 이름을 통해 노동자들끼리의 ‘회사-가족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회사는 ‘대우 가족’ 또는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라는 말로 직원들을 부르곤 했다.
‘중공업 가족’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것은 결국 남성이 임금노동을 전담하고 여성이 가사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리는 가정, 즉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다. 이 가족 혹은 공동체는 여성들의 영역을 ‘집안’, 즉 ‘중공업 가족의 재생산’에 한정지음으로써 성립되었다. 아빠의 요구에 따라 괜찮은 조선소의 사무보조직으로 취직해 그럭저럭 일하다가 아빠가 소개해주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케어’하며 적당히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거제도에 사는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소위 가장 ‘괜찮은’ 선택지이다. 거제도를 벗어나 외지인이 되지 않는 한, ‘땐뽀걸즈’와 같은 미혼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진로는 많지 않다. 상당수의 여성들이 직업을 중심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서울 및 수도권과는 괴리가 큰 삶이다. 이런 남성 노동자들 중심의 가족문화는 거제도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자 자랑거리이지만, 외부인들에게는 그저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될 뿐이다.
‘가부장 질서’를 고집한 ‘중공업 가족’의 문화는 여성뿐 아니라 중공업의 또 다른 구성원들을 배제했다. 하청업체 노동자, 이주 노동자 같은 이방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조선업의 산업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향상하기 전, 초창기 조선소의 노동자들 역시 모두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안정적인 임금으로 가족의 풍요로운 ‘소비 생활’을 뒷받침하는 가부장이 될 수 없다. 하청 노동자가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는 것 자체가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선이나 미팅 자리에서 ‘하청 노동자’의 신분이 탄로나면, 분위기는 곧바로 냉랭해진다. 미리 밝힐 경우 진즉에 거절당하기 일쑤다. 일터에서도 눈에 띄는 차별 대우를 받는다. 2000년대 조선업의 강력한 먹거리로 등장한 해양플랜트 작업의 상당 부분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이들은 언제나 조선소 내 ‘카스트’의 맨 밑자리를 차지한다. 조선소에 자기 자리를 갖고 있지 못한 이 하청 노동자들은 식사조차 바닥에서 해결할 때가 많고, 작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공구조차 마음 편히 쓰지 못한다. 조선소 현장은 언제나 직영 정규직 노동자들 중심으로 돌아간다. 노동조합조차 하청 노동자들의 문제를 ‘메인 이슈’로 다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 시절
2015년의 위기가 터져나오기 전만 해도, 거제도를 중심으로 한 조선업은 명백히 최고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해 수출을 장려한 박정희 정권기, 대우조선 옥포조선소가 완공된 이래로 거제는 용접빛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조선소들이 들어선 이후 거제는 별반 존재감 없는 도시에서 조선업(중공업)을 위시한 국내 최고의 조선업 도시로 탈바꿈했다. ‘맨 땅에 헤딩’하던 시절을 지나 한국 조선업을 세계 1위 수준으로 일궈낸 것이다. 그렇게 거제도 사람들은 소위 ‘옥포만의 기적’ ‘조선소 드림’을 이룩해냈다. 초고속 성장의 쾌거를 달성하며 1990년대 후반에는 세계 1위의 자리에 등극하고, 그 힘을 이어받아 2000년대에는 그야말로 황금기가 맞이하게 된다.
거제 조선업이 1990년대 세계시장의 패권을 획득하기 전, 조선산업의 패권국은 유럽과 일본이었다. 영국이 세계 경영을 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인프라를 토대로 강선 건조로 1950년까지 조선산업을 주도하고, 북유럽의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스칸디나비아 3국)가 저임금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일본이 ‘용접’을 통해 강판을 조립하는 방식과 크레인을 활용한 탑재 방식 등 혁신을 이뤄내면서, 조선산업의 패권이 아시아로 넘어왔다.
거제도를 필두로 한 한국 조선업이 일본을 밀어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 당시 한국은 일본의 공법을 향상해 블록의 대형화와 모듈화는 물론 여러 공정들에서 자동화와 기계화를 달성했고, 옥외 작업장에서 이루어지던 선행 작업들을 실내 공장으로 옮겨왔다. 야드를 많이 잡아먹는 블록들을 외부 블록 공장에서 조립을 마쳐 운송해 최종 공정을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생산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마침 일본에서는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대학생들이 조선소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인력난으로 인해 선박 설계가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이렇듯 기술 혁신, 일본 조선업의 쇠퇴라는 결정적인 기회들을 손에 넣으면서 한국 조선업과 거제의 노동자들은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을 실직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IMF 시기에.

위기 속 뿔뿔이 흩어진 ‘중공업 가족’들
그러나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도 조선소에 찾아온 위기와 함께 막을 내리게 된다. 1990년대에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LNG 운반선 기술을 독점해 ‘고부가가치선’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빅 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들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2008년 경제 위기로 인해 해운 물동량이 줄고 수주량이 급감하자 조선소들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인건비’ 사이에 끼어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 대형 조선소들은 찾은 ‘해양플랜트라는 기회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으나, 이 새로운 사업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해양플랜트는 더 큰 위기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 책은 조선업을 휩쓴 침체와 위기를 직면하면서, 성장의 국면에서 견고하게 구축된 ‘중공업 가족’이라는 공동체 형식을 의심하고 질문할 것을 제안한다. 보장된 정년과 높은 연봉으로 대표되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유연성과 저성장의 세계에서 화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성장가도를 달릴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균열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 조선업과 산업도시 거제의 도약과 성장을 돌이켜보는 작업이 절실한 시점이다.
몇 차례에 걸친 위기 속에서 조선산업 내부에서 들끓던 모순들이 터져나오는 중이다. ‘중공업 가족’에 합류하지 못한 존재들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현장’ ‘여성 엔지니어들을 잘 기용하지 않는 업계’, 나아가 ‘여성들의 일을 가사 노동 혹은 사무직 보조의 영역에 국한하는 ‘남초’ 지역’이라는 혹독한 현실은 이른바 ‘황금기’에는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들이다. ‘조선소 드림’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특정한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 모든 현실이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땐뽀걸즈>에 언뜻 언뜻 출몰하는 ‘위기에 빠진 가족’은 어쩌면 ‘조선소 드림’이 풀지 못한 중대한 숙제를 암시하는지도 모르겠다.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중공업 가족에게서 우리는 거제 조선업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된다. 부재하는 엄마, 불안정 노동과 자영업으로 내몰린 아빠, 진로를 고민할 시기에 직접 생계 전선에 나선 딸…… 이 모든 광경이 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또 다른 이방인: 서울로 향하는 엔지니어들
다른 한편, ‘중공업 가족’에 편입되기를 스스로 거부한 이들도 있다. 한국 조선업의 주춧돌을 세운 ‘작업장 엔지니어’의 방식에 반기를 든 ‘랩실 엔지니어’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중공업 가족’과 ‘사내 공동체’의 보수적인 문화에 반감을 표하며 대도시에서의 자유분방한 네트워크를 찾아 떠나고 있다. 위기 국면에서 회사를 가장 먼저 떠난 것도 바로 이들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조선소의 설계 엔지니어를 세대별로 추적하며 현장 중심의 기풍을 중시한 1960~1970년대의 공고 출신 ‘작업장 엔지니어’와 최첨단의 공학 지식으로 무장한 공대 출신의 젊은 ‘랩실 엔지니어’의 갈등을 들여다본다. ‘작업장 엔지니어’는 대략 1960년대 후반에 조선소에 입사해 현장 노동자들과 몸으로 부딫히며 설계를 익힌 맥가이버 세대라면, 뉴페이스인 ‘랩실 엔지니어’는 학교 랩실에서 수많은 공학 실험들을 경험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활용해 도면을 그리는 빌 게이츠 세대에 해당한다. 회사 내 직급으로 따지면 선후배 혹은 사수-부사수 관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너무도 다른 관점으로 설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갈등은 해양플랜트 작업이 조선산업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랩실 엔지니어들이 자재 구매 요청부터 도면 그리기까지 모든 것을 자리에 앉아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데 비해, 선배인 작업장 엔지니어들은 모든 피드백을 ‘오프라인’의 면 대 면으로, 즉 ‘페이퍼워크’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배만 제대로 설계하면 열 척이 넘는 배들도 순탄하게 제작할 수 있는 선박 건조와 달리 해양플랜트는 플랜트가 놓이게 될 바다의 상황에 맞는 딱 한 기만을 제작해야 한다. 말하자면 모든 해양플랜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북해에 놓이는 원유 시추 설비와 멕시코만에 놓이는 원유 정제 설비 간에는 해양플랜트라는 이름 말고는 특별한 공통점이 없다. 이처럼 대량생산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 탓에 해양플랜트에서는 작업 과정의 모든 시행착오가 순수하게 비용이 된다. 랩실 엔지니어들은 맨 땅에 헤딩하는 방법으로 해양플랜트 설계를 익히면서도, 하나의 프로젝트를 마칠 때 획득한 ‘공학 지식’을 하나의 ‘히스토리’로 구축하고 싶어 했지만, 실제 작업은 녹록치 않았다. 대표하는 현장 중심의 문화, 즉 ‘오프라인’과 ‘페이퍼워크’로 주도되는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문화가 끝내 이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한 젊은 랩실 엔지니어들이 ‘중공업 가족’이 되기를 거부하고 서울로 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이들은 거제도에 평생 주저앉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주말마다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들이 서울로 향한 이유는 다양한 배움과 네트워크 때문이다. 초창기의 작업장 엔지니어들이 현장에서의 체험과 ‘쟁이 근성’을 성장과 배움의 양식으로 삼았지만, 지금의 랩실 엔지니어들은 전혀 다른 자양분을 필요로 한다. 이들은 첨단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외부 세미나나 밋업, 온라인 커뮤니티, 벤처 프로젝트 같은 훨씬 더 캐주얼하고 열린 활동들을 지향한다. 이처럼 다양한 원천들을 통해 최신 지식을 획득하고 설계 능력을 보강하면서 점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도 이들은 핵심 인력이다.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대우조선으로 대표되는 조선 3사 모두가 젊고 똑똑한 엔지니어들을 영입하기 위해 직접 나서 서울 및 수도권에 연구개발 센터를 짓고 설계 엔지니어들을 서울로 대거 발령했을 정도다.

거제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거제의 미래를 어떤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을까? 2015~2017년을 들쑤신 위기가 잦아든 지금, 조선업은 그간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을 얼마나 풀어냈을까? 절박한 위기는 넘겼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는 게 이 책의 진단이다. 7년만에 ‘선박 수주 1위’ 타이틀을 중국으로부터 탈환하고, 거제의 양대 조선소(대우조선, 삼성중공업)가 2017~2018년에 대부분 흑자를 기록하는 등 고무적인 성과들이 있었지만, 시장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늘어난 선박 수주로 일감을 확보한다고 해도 그 선박들이 예전처럼 10%에 달하는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매출 관점에서 보더라도 매년 10조 원 이상의 선박을 수주하고 건조하는 일은 거대 호황이 찾아오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어떻게 더 성장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잘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위기가 곧 기회’이던 시절은 기대하기 어려워졌지만, 적어도 위기를 ‘계기’ 삼아 실현 가능한 대안을 모색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현대자동차가 고안해낸 ‘기민한 생산 방식’, 즉 생산기술 혁신을 통해 작은 부품들을 표준화된 모듈로 만들어 외주로 생산하고 최종 완성 공정을 단순화해 비숙련 노동자들도 작업할 수 있게 만든 방식 등을 참조해볼 만하다. 현대자동차는 이를 통해 생산성과 수익률의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물론 용접 노동자의 숙련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품질과 생산성 차이를 내는 조선산업에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하청 노동자들로 하여금 어떠한 비전을 갖고 작업에 임하게 할 것인지를 숙고하지 않는 한, 산업을 잘 지탱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중공업 내부의 다양한 인력들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고려해야만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업이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거제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하려면,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다른 삶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실직하거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난 아빠를 보면서 댄스 스포츠 경연을 학창 시절 마지막 추억으로 간직하려 한 ‘땐뽀걸즈’가 조선소의 사무보조직 외에도 다양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도시 혹은 좀 더 높은 연봉과 수도권 삶을 찾아 떠났던 젊은 엔지니어들과 사무직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도시 말이다. 접기


평점
분포

8.9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의 발전과 흥망 그리고 그 산업이 엮여 있는 도시의 이야기.
로리! 2019-02-16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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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제조업만의 문제일까. 여러 문제를 생각해보게 한다.
중공업에 대해 몰라도 거제도에 대해 몰라도 흥미진진.
참 좋은 사회과학 서적이다.
푸른 2022-05-14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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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을 위한 사회과학 서적의 모범.
미송구 2024-08-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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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의 등뼈를 조명하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제목에서 풍기는 무거움과는 다르게 대단히 재미있는 책이다. 사회학 학술서처럼 보이고 내용도 그게 맞기는 하지만 서술 방식이 에세이같아 가독성이 매우 뛰어나다. 제공하는 통계들은 저자가 자신의 주장에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한 시도일뿐 반드시 독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토록 술술 읽히는 사회학 책이 언제 또 있었는가를 돌이켜보면, 글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거의 독보적인 책이다.




저자는 대우조선해양이라는 회사에 5년간 근무하며 경험한 일들을 토대로 산업도시 거제와 대한민국의 조선업을 분석하고 그 미래를 조망한다. 나는 이 시도가 사실상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조선업의 시작과 함께 탄생한 거제의 중산층이, 조선업의 몰락으로 인해 해체될 위기를 그리지만 이를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업 종사자들로만 한정해 해석할 이유는 없다.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부의 대부분은 제조업으로부터 축적된 것이며 우리가 중산층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이 산업의 절정과 함께 탄생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차지하는 경제 비중은 매년 감소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30%에 달한다. 이는 OECD 가입국 중 최고이며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보다도(29%) 높은 수치이다. 혹자는 이것이 한국 경제의 문제라 지목하며 여타의 선진국들과 달리 제때에 서비스업으로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자기가 익숙히 접하는 현상과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파악하기 때문에 그 현상을 지탱하는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둔감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마트나 롯데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지 그 제품을 생산한 공장에서 사지 않는다. 미디어는 연일 4차 산업 혁명을 부르짖고 AI, IoT, 스마트 산업 혁명을 쏟아내며 새롭게 탄생한 유니콘을 조명할뿐 어느 시골 구석에 쳐박힌 알짜 중소기업의 공장에 눈을 돌리진 않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가장 강한 건 아니다. 세상은 마치 이들의 주도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조업이 탄생시킨 중산층과 높은 그들의 소득으로 인한 욕망의 발전이 없었다면 그들이 설 무대는 결코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느 대학을 나오든, 무슨 전공을 했든, 근면과 성실만 있으면 누구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시절 말이다. 이제 그런 유토피아는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 있다. 가장 흔한 분석은 이렇다. 기술로는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가격으로는 개발도상국과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어땠을까? 세계 조선업의 패권은 영국에서 스웨덴, 스웨덴에서 일본 그리고 한국으로 넘어왔다. 이들은 단물이 빠진 제조업을 버리고 제때에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부자 나라가 된걸까? 그 말이 맞다면 제조업은 단순히 미래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할 것이다.




공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머리 속에 무엇이 떠오르는지 생각해보자. 쉼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음, 먼지, 재해, 기름에 쩐 작업복,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가는 곳. 산업과 직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기업 제조 공장을 한번이라도 찾아본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큰 편견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제조업이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부의 평등'을 고려하는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제조업에서 눈을 돌려선 안된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구석에서 시작한 조선업은 수십만 명의 사무직과 생산직을 고용하며 그들에게 크고 안정적인 소득을 안겨줬다. 그들은 용접 기술이나, 지게차 운전 면허증이나, 도색 기술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그런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5조 5천억이 넘는 매출에 20%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내는 우리나라 최고의 IT 기업 네이버는 9천 명 정도의 인원을 고용하지만 고작 2~3%의 영업이익을 내는 한심한 LG전자는 7만 명이 넘는 사람을 고용한다. 최저시급이나 받는 생산직들이 많은 탓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인터넷에 대기업 생산직 평균 연봉을 검색해 보기 바란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수백개의 IT 유니콘 기업이 탄생한다 하더라도 제조업 절정기만큼 두터운 중산층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고용 창출 능력과 다양성 측면에서 제조업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한민국도 올라올 만큼 올라왔으니 이제 공단으로 대표되는 제조업은 전부 개발도상국에 맡기고 제약, 반도체 같은 최첨단 공장과 금융, 관광, IT 서비스를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해야 할까? 아니. 문제가 있으면 고치면 되지 버릴 필요는 없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정확히 이런 의견을 견지하며 세계 1등의 조선업을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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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깨짱 2019-05-26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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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3부작’을 통해 본 갈림길에 선 조선산업




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51호(2019년3월)



책담(冊談)



‘조선소 3부작’을 통해 본 갈림길에 선 조선산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오월의봄/2019년1월/16,900원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후마니타스/2016년5월/15,000원



《누운 배》/이혁진/한겨레출판/2016년7월/13,000원



















양솔규(편집위원장)










조선산업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2018년 3분기 조선업 일자리는 2017년과 비교해 1만5천개나 감소했다. 경남 지역으로 보면, 성동조선은 860여명 중 700명이 무급휴직을 진행 중이며, STX조선은 500명이 무급휴직 중이다. 또한 RG(선수금지급보증·Refund Guarantee) 발급이 미뤄지고 있다. 이에 더해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이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지역경제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조선산업은 IMF 구제금융 당시 수출에 있어 일익을 담당하면서 경제위기의 충격을 극복하게 해준 효자산업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산업은 고용지수가 매우 높은 조립산업으로서 실업에 빠진 국민경제의 충격을 완충지대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경제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최대 호황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지나갔고 침체는 지속되고 있다.


조선산업 위기는 한국 제조업,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수언론, 그리고 수도권의 젊은 연령대를 중심으로 조선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산업은 동남권 경제, 더 나아가 수출의존적인 한국 경제에 여전히 중요한 산업이다.

어떤 산업이든 좋은 날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예측이 가능해야 하고,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한다.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잘 하라고 경영진이 있는 것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선업 구조조정은 반대의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산업폐기물 취급”하며 공장에서, 시장에서, 지역에서 내몰고 있다.



통계청이 2018년 8월에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특별시, 광역시 제외조사) 결과를 보면 경남 거제가 7%로 가장 높고, 경남 통영이 6.2%(2013년 하반기엔 1.2%였다.)로 2위를 기록했다. 군산도 4.1%에 달했다. 2018년 4월 울산의 실업률은 5.9%로 전년 동월에 비해 2.3% 증가했다. 고용위기가 닥치면서 지역을 떠난 인구를 감안한다면 조사된 실업률도 현실에 비해선 그나마 양호한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고용위기, 산업위기가 가져온 고통을 노동자들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사무관리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고, 생산직의 경우 주로 공정 지연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투입되는 ‘돌관 작업’(돌파해 관철)을 맡았던 이른바 ‘물량팀’이 제일 먼저 제거되고, 본공(사내하청 정규직)이 그 다음이다. 원청은 일종의 공사대금인 일명 ‘기성금’을 후려치기 하고, 적자에 시달리는 하청업체 사장은 야반도주하기도 하고, 체불임금으로 줄소송 당하기도 한다. 중소조선소의 경우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급휴직의 터널 속에 놓여 있다. 중소조선소의 몰락은 하청업체, 선박설계업체, 선박기자재 업체 등 조선업 생태계의 동반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빅3 더 나아가 빅2(현대, 삼성)로의 집중이 정답인 양 몰아가고 있지만, 지역경제와 조선산업의 다변화를 생각한다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만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연착륙’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입체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2016년에 나온 《현대조선 잔혹사》(허환주)와 2019년에 발간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은 조선산업에 대한 냉철한 관찰기이다. 그런데 관찰대상과 방향성이 약간 다르다. 프레시안 기자인 허환주는 2012년 창원의 작은 조선소에 위장 취업해 12일을 버텼다. 노가다와는 차원이 다른, ‘생명을 위협’하는 조선소를 경험한 기자는 6년여 간의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취재의 결과를 자신의 경험과 버무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냈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조선소의 위험한 작업환경, 산재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과 가족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깨지는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또다른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양승훈은 대우조선에서 5년간 사무관리직으로 근무하고 지금은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산업에 대한 거시적 관찰과 전망, 조선산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중공업 가족’의 형성과 해체, ‘중공업 가족’의 외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2001년 사상 최초 수주량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 조선산업. 2008년에는 전 세계 상위 10대 조선소 중 7개가 한국 회사였다. 호시절은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끝이 났다. 무역물동량이 줄어들었고, 수주량이 급감했다. 더군다나 2000년대는 한국 조선소들이 호황기를 맞아 대거 설비를 늘려갔고, 중국 조선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 조선소들도 조선산업에 대한 기존의 회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재생을 추진하고 있었다.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당연했다. 조선산업 설비투자 과잉은 선박공급 과잉을 낳았다. 중국경제 등으로 인한 선박 수요와 물동량의 증가보다 더 많은 생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신원철, 2017)











2010년대 조선소들은 해양플랜트를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자 했다. 유가가 상승하면서 엑슨 모빌 등 초국적 에너지 회사들이 심해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시추선 등 해양플랜트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현대, 대우, 삼성 Big 3는 무작정 해양플랜트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조선과는 다르게 해양플랜트의 80%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자연히 사내하청 비율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숙련도가 떨어지는 사내하청 노동자, 그리고 일천한 경험, 높은 외국자재 비중, 낮은 마진의 조건 속에 도전한 해양플랜트 제조는 쉽지 않았다. 내부를 ‘잘 비우는’ 것이 중요한 조선과 내부를 ‘잘 채우는’ 해양플랜트는 성격이 매우 다른 공정이었다. 공기는 길어지고, 그만큼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은 늘어났다. 계약금 20%를 먼저 받고, 나머지 80%를 마지막 인도 시에 한꺼번에 받는 해양플랜트의 헤비테일(heavytail) 결제 방식과 럼섬-턴키(Lump sum-turn key, 일괄도급 계약) 방식도 위기를 부추겼다. 유가의 급락으로 인한 고객사들의 인수 연기는 엎질러진 기름에 불을 댕기는 격이었다. ‘배움’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해양플랜트의 실패는 조선업 전체의 구조조정의 도화선이 되었고, 크나큰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업의 실패에는 노사의 암묵적인 담합이 존재한다. 두 책 모두 언급하듯이, 2000년대 이후 원청 정규직들의 암묵적인 또는 공식적인 묵인 하에 사내하청과 물량팀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현장 대의원들과 현장 생산관리팀 사이에서…(이루어진) 사내하청의 확대는 정규직 노조에서 나타난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노사담합’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이다. 조선산업을 이끌었던 직접생산을 담당하던 정규직들은 생산 지원 업무로 많이 빠지기를 원했다. 산재 이후 현장복귀 시 조합원은 생산 지원 업무를 택했고, 노조는 이를 도왔다. 자연히 위험하고 힘든 일은 하청 노동자들이 맡게 되었다. 회사 역시 노무관리상의 이유로 쉽게 통제하고 쉽게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사내하청을 활용하고자 했다. 한진중공업을 보자면, 2008년 정규직 노동자 1,385명, 사내하청 노동자 3,652명 이었다. 2010년 정규직 1,093명, 사내하청 2036명으로 –1,616명이 사라졌다. 2011년 말 정규직 770명, 비정규직 501명, 2012년 말 비정규직 0명이 된다. 희망버스운동이 벌어졌던 2011년 전후로 비정규직 규모는 계속 꾸준히 줄어들고 있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읽다보면 저자의 의견에 갸우뚱 하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만약 생산직과 엔지니어 둘 중 한쪽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질문하는데 후자에 기울어진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동의의 정도는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사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대우조선노조가 금속노조와 전노협 창립을 주도했다는 언급 등)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강점은 조선산업의 위기를 입체적으로 살핀다는 데 있다. 노동자 숙련문제와 인력배치의 문제, 임금체계의 문제, 기자재업체, 설계 업체 등 조선업종 생태계 전반에 대한 관찰이 녹아 있다. 무엇보다 조선산업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새겨들어야 할 거 같다.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결국 위기를 반복하게 할 뿐이다. 해양플랜트 수주 과정에서 드러난 실책들은 한국 조선산업이 반복해서 곱씹어야 할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



《현대조선 잔혹사》는 2016년에 나온 책이다. 더구나 2012년에 저자가 12일간 위장취업을 한 경험을 생각한다면 꽤 시간이 지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조선산업 노동자들이 마주했던 암울한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비인간적 처우와 폭력적인 갑질을 보다 보면 매일매일 ‘PD수첩’을 찍고 있는 조선노동자들의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전체 산업의 미래를 보더라도 이러한 ‘아래로의 경주’가 조선산업의 토대를 갉아먹고 있다. 물량팀과 사내하청의 활용은 결국 노동자 숙련의 결핍을 가져왔고,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당장 ‘인력 유출’을 야기하고 있다. 지금 현재는 LNG 선박 제조에 있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있다고 하지만, 중소조선소가 대거 정리되면서 설계 등을 담당했던 핵심 엔지니어들의 중국 기업으로의 취업이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2015년 이후 가장 먼저 이탈한 사람들은 “구조조정이 목표물로 삼은 근속 20년 이상의 사무직 시니어들이 아니라, 근속 10년 이내의 대리, 과장 이하 직급의 사무직 주니어층”이었다. 특히 수도권 출신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이직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조선산업의 ‘핵심인력’을 잘 지켜내고, 새로운 인력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숙고하지 않으면 설사 호황기가 오더라도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운 배》는 이혁진 작가가 써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중국으로 이전한 한국의 중형조선소이다. 소설의 도입은 진수식을 마친 배가 누우면서 시작한다. 이후 회사는 원칙이 무너지고, 편법과 무사안일이 지배한다. 그러다 신임 황철주 사장이 부임하면서 조선소의 분위기는 180도 바귄다. 나머지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생략한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희망을 잃었다고 해서 반드시 절망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근거없는 낙관주의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삶이 지속되는 한 자포자기할 수만은 없다. 최근 빅3의 수주량이 조금 늘어난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만은 없다. 양승훈 저자의 논지를 빌리자면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깨져 버렸다. ‘대우가족’, ‘또하나의 가족’에서 배제된 생산직 노동자들, 사냥이 끝나자 버려진 사냥개가 되어버린 사무관리직 노동자들, 호황이 끝나자 끊어진 원하청 관계는 조선산업 내 ‘신뢰’를 무너뜨렸다. 결국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조선산업 내 사회적 주체 간에 새로운 규율과 신뢰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장, 일방적으로 한쪽에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공평하게 분담하는 관행, 장기적 전망을 담보할 수 있는 당사자들간의 진지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KBS 추적60분 1236회 <무너지는 조선업, 한국판 러스트벨트의 경고>(2017년2월15일)

-다큐멘터리 <땐뽀걸즈>, 2017년, 이승문 감독

-“해운 및 조선산업의 금융화와 과잉투자”, 신원철,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017년 상반기(통권 31호)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흥청망청‘ 서사는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도시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기도 전에 비하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선은 도시와 시민들을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좀비‘로 만들 따름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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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선 2019-03-25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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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사회와 조선산업에 대한 기록과 고민



세계 1위 조선산업은 한국의 자랑거리다. 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성과다. 특히 2000년대 중반에 중국이 고속성장하면서 전세계 원자재를 빨아들이고, 또 세계의 공장으로써 물건들을 쏟아내고 세계화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에 한국의 조선산업은 엄청난 호황을 맞었다.



조선산업은 귀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거제도에는 특히 조선소가 밀집해 있는데, 평균적으로 서울보다 소득수준이 높았다.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정규직 제조업 노동자로서 중산층을 이루며 살 수 있는 시기였다.



책의 초반부에는 사회학자로서 거제라는 특수한 사회환경에 대한 조사가 돋보인다. 거제도에서는 퇴근 전후에도 부서와 이름이 쓰여진 작업복을 입고 다니고, 심지어 소개팅 같은 자리에도 입고 나간다고 한다. 자부심도 있었고 고소득을 올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공장옆에서 식당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도 활기가 남쳤고 아파트나 원룸으로 세를 받는 사람들도 고수익을 만끽했다.



남자와 여자의 일이 칼같이 구별되는 상황에서 딸같은 젊은 여성들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로 유출되기 일쑤였다. 거제에서 사무직이나 간단한 일을 비정규직으로 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남성과 결혼으로 안정적인 '중공업 가족'을 만드는 걸 기대받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게 계속 좋기는 어렵다. 한국이 영국과 일본으로 부터 조선산업의 왕좌를 물려받았던 것처럼 환경이 바뀌면서 순풍은 사리지고 역풍들이 생겨난다. 생산성 향상이 더뎌지고, 적절한 투자를 하지 못하게 되고, 인건비는 높아진다. 유럽은 설계쪽으로 집중하고 엔지니어링을 극대화한다. 고부가가치 선박만 만드는 쪽으로 옮겨간다. 기자재업체들을 끌어올려 수많은 강소기업들을 만들어냈다.



현재 한국 조선산업 모습으로는 중국이나 동남아 조선사와 경쟁하기 힘들어보인다. 조선산업 전체를 포기하지 않고 변신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고용이 걸려있있고 정치쟁점화 되기 십상이다. 그러면서 자생적이고 경제적인 해결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까 좀 걱정스럽긴하다. 이 책에서도 뚜렷한 대안제시는 없다.



조직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대졸이상의 설계인력을 많이 뽑았다고 한다. 그들이 기존 거제도 생활문화나 현장과 암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에 녹아들기 어려워 하는 모습을 보면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굳어질때 이를 변화시키기 얼마나 어려운가 생각하게 한다.



또하나 중요하게 언급되는 건 하청 문제다.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과 거제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일종의 계급문제가 발생한다. 이것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을거다. 기업에서는 해고가 어려운 마당에 고정비를 줄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다. 그런데 새로운 해양플랜트같은 고난이도 작업에 하청이 대거 투입되면서 작업은 진흙탕을 전진하는 듯한 모양새가 나타난다.



책은 크게 보면 3가지 주제를 다룬다. 거제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조직원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분석과 조선산업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찰이다. 작은 분량이지만 다양한 관점의 내용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내부자로서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관점에서 드문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중하게 읽었다.



교훈이라고 한다면 좋을 때 좋은것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대체로 좋을때 나빠질 걸 생각하지 않고 엉뚱한 투자를 하고 굳어진걸 풀어줄 생각은 못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서 대부분 좋을때 굳어진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짐으로 작용한다. 오래가는 산업과 기업은 변화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계속 구성원들과 이런 변화를 만들어나간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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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azy 2019-04-0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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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오월의봄, 2019)


#1.
책 내용과 크게 유기적 연관은 없지만 우선 내 경험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시작을. 내가 중학생 때 진학 관련 체험 행사로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舊 북공고, 서태지가 다녔던 그 학교)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전반적으로는 특성화고(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어떤 걸 하는지 알기 위해서 당시 담임 선생님이 기획했던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교실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 끝에는 고등학교 교장이 학생 유치를 위해 잠시 동영상과 같이 홍보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북공고가 이제 쇄신하여 이름도 바꾸었고 주목받는 신진 산업인 해양플랜트 특성화 고등학교로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운운. 나는 플랜트라 하면 게임 플랜트 vs. 좀비밖에 몰랐었고, 그리고 이것은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해양플랜트가 뭔지에 대한 설명도 뒤따라왔다. 들으면서 음 이런 산업도 있구나. 그때는 신문도 안 보고 그랬으니까 뭐 누군가는 바다에서 원유 시추하는 그런 기계를 만들어야 하겠지 그런데 왜 이름이 플랜트일까 심는다고 해서 플랜트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이 고등학교는 해양플랜트 전문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된다.


이번에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양승훈, 오월의봄, 2019)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해양플랜트’라는 단어를 다시 접하게 되었다. 해양플랜트 산업은 책의 전반적 내용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다. 2008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선박 수주가 감소하고 한국의 조선업 기업들은 위기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해양플랜트 수주를 시도했다(168-9쪽).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우선 아주 미시적으로는 현장 노동자들이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이 어느 정도 쓸모없어지게 되는 문제를 낳았고(145-6쪽), 그 이외에도 생산관리, 엔지니어-현장의 관계 문제, 그리고 세계 경제의 구조 변동과 긴밀하게 엮여 있는 비정규직·하청 문제와 유럽 업체들과의 기술력 격차(3부 참고)까지 조선소 안과 밖의 맥락을 모두 아우르게 되는 복잡한 문제를 낳게 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조선업의 위기에 대해서는 자주 듣고는 했지만, 이상하게 플랜트에 대해서는 듣거나 신문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읽고 나니, 그저 신문 헤드라인으로만 접했던 조선소 위기에 대해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하고 이제야. 그리고 중학생 때의 잊었던 기억이 소환되며, 사실 친구들 중에 도시과학기술고 간 친구는 없지만, 그때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해양플랜트산업의 미래를 홍보했던 그 학교 교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2.
책의 프롤로그를 읽고 조금은 반가웠다. 저자 양승훈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는데, 대학원 다니는 중에 우석훈의 『조직의 재발견』을 읽으며 전통적인 사회과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지만 “기업의 이런저런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직”과 “자본주의의 주요 배역 중 하나인 기업”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28쪽).(그리고 또 조주은의 『현대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산업 도시 가족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고 했는데, 조주은의 같은 책은 아니지만 『기획된 가족』을 읽으며 중산층 가족들의 생존 전략이랄지 그런 ‘실제적인’, 꼼꼼한 인터뷰와 민속지로 드러날 수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관심이 생겼던 사람으로서도 반가웠다.) 나는 정치학도 문화인류학도 전공하지 않았지만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아닌 이상 비슷한가 보다.(경제학도 그런가?) 어쨌든 적어도 학부 수준에서 가르쳐지는 사회학은 기업이나 산업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 뭐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고 조직, 산업 얘기를 꼭 사회학이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급되어야 할 부분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인상은 있었다. 조직사회학이나 복지사회학 수업이 갈증을 좀 채워주기는 했는데… 현대 사회의 주요 행위자인 ‘기업’의 행태와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테마를 다루는 수업은 별로 없었고 그리고 사실 주변에 정치경제학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도 좌파 이론 같은 거나 공부하고 그랬다.(불평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산업의 흥망성쇠를 세계적 맥락과 한국 내부의 특수했던 역사적 맥락과 함께 포괄적으로 다루고 그에 덧붙여 기업 내부의 조직 문화와 숙련의 문제, 산업 도시의 가족들의 생활세계 등의 미시적인 측면까지 조망한 이 책은 참 반가웠고 도움이 많이 됐다. 아쉬운 점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인사이트가 참 많은 책이었다. 트위터에서 약간 화제가 되어 읽었는데 읽기 참 잘한 것 같다.


#3.
아쉬운 점. 저자 분도 자주 지적받았겠지 싶지만 사실 책에서 ‘가족’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부분이 많지는 않다. 가족 이야기는 1부 2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그런데 95쪽에서 107쪽까지의 절 ‘직영과 외주: 외주 도입의 계보’는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될 듯하게 조선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다룬다. 이는 2부 2장 193쪽 이후 ‘벼랑으로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분과 내용상의 연속이 있다. 아쉬운 것은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가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인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중공업 가족들이 어떻게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했을까 그 구체적 과정에 대한 내용의 부족이다(113쪽). 단순히 젊은 노동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거제에 뿌리내린 삶보다는 보다 유동적인 삶을 선호한다는 묘사로만은 부족해 보인다. 숙련 없이 하청의 신분으로 거제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존의 중산층 가족을 전제로 짜여진 거제의 생활양식과 도시 인프라에 어떻게 적응하거나 불화할까? 결혼은 어떻고? 등등의 의문이 남는다. 물론 이것에 대해 말하려면 분량 상으로는 책 하나가 더 필요할 것이고 거제 뿐만이 아닌 다른 도시의, 또 다른 산업의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비교도 필요할 것이다. 사실 연구자 한 사람의 역량으로 모두 다루기는 부족한, 거대한 주제긴 하다. 거제를 비롯해 울산 등 도시의 청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사회적 차원에서 더 많은 관심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4.
책에서 다뤄지는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재교육, 성장의 문제. “하지만 이제는 배움과 성장의 양식이 달라졌다. 산업 보국을 위해 뛰었던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방식이 ‘현장 중심’ 기풍과 이른바 ‘쟁이 근성’에 기초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우수한 랩실 엔지니어들은 오픈소스판에서 뛰노는 해커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 일을 해내려고 한다”(152쪽; 이러한 맥락에서 해커 문화도 다뤄진다). 엔지니어들이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뒷받침과 문화의 변화가 필요할까? 조선업의 문제는 단순히 구세대의 학습 문화와 신세대의 학습 문화가 충돌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지리적 문제, 서울-지방의 격차까지 포괄한다(153-5쪽). 뿐만 아니라 IT 산업은 ‘현장’이 필요하지 않은데(160쪽) 제조업 분야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점도 있다.


이런 설명을 읽어 보고 의문 두 가지.
(1) 조선소 이외 산업—특히 제조업—에서는 엔지니어의 교육을 어떻게 도모할까? “사실 젊은 엔지니어들은 자비를 들여서라도 외부 세미나나 밋업 등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154쪽). 다른 산업에서라고 해봤자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질문은 아니고, 내가 너무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라 그저 궁금하다. 자기들끼리 깃헙(github) 같은 플랫폼이나 세미나 등의 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쌓는 IT 분야의 문화는 익숙하다. 그런데 그런 문화의 전형이 IT 산업에 국한되어 있으니 그것은 IT 쪽에만 특유한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게 되는 것 같은데… 다른 제조업 부문에서는 어떨지 궁금하다는 지극히 순수한 궁금증.
(2) 앞의 것과 연결되는 의문? 지금은 안 하지만 중학생 때 프로그래밍도 배우며 서울 지역에서 이른바 ‘코딩’하고 ‘개발’한다는 동년배 친구들(90년대 후반생)과 짧게나마 교류했던 적이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다들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로든 연결이 되어 있었고 스타트업 창업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고등학교 생활이 바빠도 많은 이들은 자기가 짜 놓은 코드도 종종 공유하고(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github이 대중화가 안 되어 있어서 알아서 페북 그룹이나 개인 웹사이트에 올려 놓았던 기억) 뭐 그랬다. 그러다가 Seoul Bus 같은 앱 만들면 언론에도 나와서 대박 치고… 뭐 그런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중고등학생 나이대 청소년들이 (물질적 보수 없이) 직접 기술을 배우고 커뮤니티도 이루고 직접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만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참 별난 것이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코딩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것도 아니다. 이 원동력은 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이런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Kevin F. Steinmetz, Hacked: A Radical Approach to Hacker Culture and Crime. https://www.amazon.com/Hacked-Radical-Approach-Alternative-Criminology/dp/1479869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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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nin 2019-03-31 공감(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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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거제의 미래에도조선업의 미래에도여성 노동력의 가치를 일깨워야 한다고힘줘 강조하는 저자의 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글 곳곳에 배인거제에 대한, 조선업에 대한 애정은 덤이다.
토끼자 2022-11-1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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