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3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 이영호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 : 알라딘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 
이영호
(지은이)푸른역사2020-07-22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
20,700원 (10%, 2,300원 할인)

412쪽

책소개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불교의 시대, 유학의 시대를 지나고, 1860년 동학의 창도에서부터 1919년 3.1운동에 이르기까지 60년은 근대전환기 종교지형의 변동이 격심하게 일어난 시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자주독립과 근대화의 과제를 놓고, 민족종교=신흥종교와 외래종교=서양종교의 한판 승부가 벌어진 시기였다.

이쯤에서 3.1운동과 관련한 가장 소박한 질문이 제기된다. 동학과 '서학'이란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는 천도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독립운동의 축으로 기능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동학과 농민전쟁>(2004)을 내는 등 민중운동사에 큰 관심을 기울여온 지은이는 이 책에서 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1919년 3.1운동 사이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파고들었다.

기포드학당 등에 붙은 기독교 비판 격문, 영문잡지에 실린 캐나다 선교사 매켄지의 체험담 등 다양하고도 귀한 사료와 통계를 이용해 3.1운동에서의 연대는 갑자기 민족독립을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 아니라 15년에 걸친 모방과 경쟁 위에서 가능했던 것임을 논증했다.

이 과정에서 동학농민전쟁 이후 영학당 등 동학여당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동학의 남접 변혁세력과 결별한 천도교의 창건과 기독교 '따라잡기', 두 종교 간 연대의 한계 등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주장을 선명히 드러낸다.


목차


머리말

1부 동학 세력의 변혁운동과 기독교와의 갈등

1장 동학과 서학의 대립
동학의 서학 비판
동학 세력의 신원운동과 외세 비판
동학과 천주교의 충돌

2장 동학 세력의 반기독교 격문
격문에 등장한 기독교
격문 발신자의 정체
상호 이해의 가능성

3장 매켄지 선교사와 황해도 동학군
황해도 동학군의 봉기와 기독교 선교사
매켄지의 선교 활동과 동학군
동학과 기독교의 소통

4장 영학당의 결성과 기독교
영학당의 봉기와 주도 세력
종교적 외피로서의 ‘영학’
영학과 기독교의 관계

2부 근대종교 천도교와 기독교의 경쟁과 연대

5장 천도교의 창건과 기독교 모델
변혁운동의 해소
서북 지방 포덕과 천도교 창건
천도교의 근대 종교화와 기독교 모델

6장 천도교와 기독교의 경쟁
연원제에서 교구제로
기독교의 선교 시스템
현장의 경쟁

7장 천도교와 기독교의 교세 비교
교세의 양적 성장
평안남북도 지방의 교세
평안북도 군 단위 지역적 분포

8장 천도교와 기독교의 3?1운동 연대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대
중심 지역 평양의 3?1운동과 연대
경쟁 지역 의주의 3?1운동과 연대
경계 지역 선천-정주의 3?1운동과 연대
연대의 한계

결론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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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는 중국 중심의 화이華夷체제가 이완되는 틈을 꿇고 동아시아로 침략해 들어오는 서양 세력의 위력을 목격하면서 그 위기를 벗어날 종교적 · 사상적 대안으로 동학을 창조했다.



P. 28 저 경신년(1860) 4월에 천하가 분란하고 민심이 어지럽고 각박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할 지경인데 또한 괴상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소문이 있어 세간에 떠들썩했다. 서양인이 도를 이루고 덕을 세워 그 조화에 미쳐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고 무기로 공격하되 당할 자가 없으니 중국이 소멸하면 어찌 입술이 없어지는 환란이 없겠는가라는 것이다. 접기
P. 32 교조는 서학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는데 그 서학은 선교의 자유를 얻었고, 반면 동학은 불법화되어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에 동학 지도자들은 분노했다. 1892년 여름 서장옥徐璋玉과 서병학徐丙鶴이 충청도 공주에서 최초로 교조의 신원伸冤을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P. 35 동학교단이 교조신원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고 농성하고 있을 즈음 인근의 정동 지역에서 외세를 배격하는 격문선전운동이 일어난다. 이를 주도한 것은 남접의 진보 세력일 것으로 추정된다.
P. 41 1860년 동학의 창도 이후 1890년대에 이르는 30여 년 동안 동학교도와 천주교인 사이에 직접적 접촉이나 물리적 충돌은 거의 없었다. 모두 사교로 지목당해 산속에서 피신생활을 했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P. 52 이때(1893) 즉 음력 2월 14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기포드Daniel L. Gifford 학당의 출입문에 기독교 교육을 비난하며 학생들에게 경고하는 격문이 붙었다. 나흘 뒤인 2월 18일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존스George J. Jones(趙元時)의 숙소에도 기독교의 종교 교육을 비난하며 선교사들에게 경고하는 격문이 붙었다. 접기
P. 55 격문은 기포드학당에 다니는 조선인 학생들을 겨냥한 것이다. 기독교의 교리를 패천적인悖天賊人이라 비난하고 천당지옥설을 황당한 주장이라고 비웃는다. 기독교의 미혹한 음사를 버리고,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기독교의 서책을 불태우라고 학생들을 선동한다.
P. 84 존스는 동학을 한국의 여러 종교의 장점을 종합해 성립된 신흥 민족종교로 파악했다. 여러 장점을 종합하는 성향이 천도교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교리까지 흡수한 것으로 이해했다. 전체적으로는 기독교를 배척하고 상극에 있는 것 같지만,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천도교가 어설픈 일신론을 수용하고 이웃 사랑의 교리도 지니고 있다고 두 종교의 친연성을 강조했다. 접기
P. 96 캐나다 출신의 매켄지William John McKenzie 선교사가 쓴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황해도 장연에서 1894년 양력 10월 10일부터 1895년 7월 23일까지 머물 때 동학군과 직접 접촉했다. …… 황해도 동학군과 매켄지의 접촉은 동학과 기독교, 두 종교 간 소통의 첫 출발이자 대표적인 사례다.
P. 125 기독교를 수용한 사람 중에는 대문에 ‘Worshipper of God’이라는 패를 달았다. 그것이 당시 한문으로 어떻게 표현되었을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경신가敬神家’ 또는 ‘경천가敬天家’라는 번역은 받아들일 만하다. 그렇다면 이는 경천애인, 시천주의 동학과 상통한다. 소래마을 동학군 두목이 기독교인과 동학도인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평가한 것은 이러한 유일신관의 표출이다. 접기
P. 135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 이후 …… 봉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동학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서양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운 영학당英學黨이나 불교를 활용한 남학당南學黨과 같은 새로운 조직을 결성한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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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영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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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 근대 사회경제사, 민중운동사, 지역사라는 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사회경제사 중에서는 지세 및 토지제도를 연구하여 《한국근대 지세제도와 농민운동》(2001), 《근대전환기 토지정책과 토지조사》(2018), 《토지소유의 장기변동》(2018)을 저술했다. 민중운동사 중에서는 농민운동, 동학운동, 변혁운동에 관심을 갖고 《동학과 농민전쟁》(2004)을 간행했다. 근대전환기 신흥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역사 연구는 《개항도시 제물포》(2017) 출간으로 결실을 맺었다. 해양과 관련된 변경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접기

최근작 :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토지소유의 장기변동>,<근대전환기 토지정책과 토지조사> … 총 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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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인 15명, 기독교인 16명
천도교와 기독교는 어떻게 손을 잡았나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불교의 시대, 유학의 시대를 지나고, 1860년 동학의 창도에서부터 1919년 3.1운동에 이르기까지 60년은 근대전환기 종교지형의 변동이 격심하게 일어난 시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자주독립과 근대화의 과제를 놓고, 민족종교=신흥종교와 외래종교=서양종교의 한판 승부가 벌어진 시기였다.
이쯤에서 3.1운동과 관련한 가장 소박한 질문이 제기된다. 동학과 ‘서학’이란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는 천도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독립운동의 축으로 기능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동학과 농민전쟁》(2004)을 내는 등 민중운동사에 큰 관심을 기울여온 지은이는 이 책에서 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1919년 3.1운동 사이 동학.천도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파고들었다. 기포드학당 등에 붙은 기독교 비판 격문, 영문잡지에 실린 캐나다 선교사 매켄지의 체험담 등 다양하고도 귀한 사료와 통계를 이용해 3.1운동에서의 연대는 갑자기 민족독립을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 아니라 15년에 걸친 모방과 경쟁 위에서 가능했던 것임을 논증했다. 이 과정에서 동학농민전쟁 이후 영학당 등 동학여당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동학의 남접 변혁세력과 결별한 천도교의 창건과 기독교 ‘따라잡기’, 두 종교 간 연대의 한계 등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주장을 선명히 드러낸다.

갈등 속에서도 존재한 두 종교 간의 소통 통로 규명
제1부 ‘동학 세력의 변혁운동과 기독교와의 갈등’에서는 두 종교 간의 갈등과 소통에 초점을 두고 몇 가지 사례를 분석했다. 동학은 서학(천주교)에 반대하여 창도 되었으나 실제로 서로 간에 큰 충돌은 없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 전라도 일대에서 동학농민군이 천주교 성당과 교우촌을 공격한 적은 있으나 이후 서로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41쪽). 1885년 처음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도 서학의 범주에 속하므로 동학과는 본래적으로 적대적이었으나 동학은 기독교와도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서로 배척하면서도 동학농민전쟁 이후 동학의 남접세력이 기독교란 외피를 쓰고 변혁운동을 전개한 영학당 사례나 황해도 동학군 봉기를 지켜본 매켄지 선교사 이야기를 통해 소통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존스와 매켄지 사례를 통해 한울님, 하나님이란 신관神觀의 유사성을 통해 두 종교의 소통 통로가 상존했음을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

천도교의 기독교 따라잡기 배경과 의미를 짚다
제2부 ‘근대종교 천도교와 기독교의 경쟁과 연대’에서는 3.1운동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선도적으로 촉발한 천도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파헤쳤다. 1905년 12월 창건된 천도교는 기독교를 모델로 삼아 근대종교로의 개편을 꾀했다. 서울에 천도교 중앙대교당, 지방의 각 교구에 교회당을 건립해 나갔다. 제사 형식의 의례를 일요일의 공중예배 형식으로 바꾸었다. 중앙집권적 교구제를 통해 포덕을 공개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교회당 설립, 예배형식, 포덕방식에 있어서 천도교는 기독교를 모방하고(211~216쪽) 또 경쟁하면서 교세를 급격히 확대했다. 천도교인 40만, 기독교인 20만을 일컬을 정도로 천도교세가 기독교의 2배에 달했다(266쪽). 민족적 의제에 의기투합하여 천도교와 기독교가 3.1운동에서 연대하게 된 배경에 기독교를 모델로 한 천도교의 근대종교화, 천도교와 기독교의 경쟁을 통한 상호 교세의 확장 등이 자리 잡고 있었던 점을 의주.선천 등 서북지방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논증했다.

동학과 천도교의 노선 전환과 단절을 조명
동학농민전쟁의 정신을 계승한 변혁운동은 1904년경에 이르면 소진된다. 이미 동학의 남접 변혁세력은 동학의 북접교단과는 결별하여 노선을 달리해왔다. 북접교단도 남접 변혁세력을 배척하면서 교단의 재건과 포덕의 확장에 매진했다.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는 문명개화로의 노선 전환을 선택했다. 서북지방에서의 포덕 성공을 바탕으로 교단 재건에 매진했다. 일본으로 망명했던 손병희의 지시에 의해 일어난 1904년 진보회운동은 문명개화노선의 기조하에 전개되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을 지원하는 한편 대한제국의 친러파 광무정권을 비판하는 정치운동이었다. 교세의 확장, 진보회운동 등을 기반으로 1905년 12월 손병희는 천도교를 창건했다. 천도교는 동학의 남접세력이 주도한 동학농민전쟁의 역사를 교단사에서 완전히 삭제하여 완전한 결별을 선언했다. 책에 따르면 1905년 12월 1일 신문에 실린 천도교 창건 광고문에는 동학에 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을 정도였다(194쪽). 이렇게 천도교가 문명개화노선으로 전환함으로써 그 계통에 속한 기독교와도 연대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은이는 이 과정에서 서북지방에서 벌어졌던 두 종교의 교세 확장 경쟁 등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식민지가 되면서 민족종교와 외래종교의 각축은 오랫동안 지속 되었다. 근대화의 과제가 부각되는 추세 속에서 민족종교의 역할은 위축되어 갔다. 그렇지만 적어도 1919년까지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고 근대화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민족종교=신흥종교와 외래종교의 연대가 빛을 발했다. 흔히 종교 문제를 정치사회와는 무관하게 종교사, 교단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국근대 전환기는 정치사회적 혼란과 동요가 종교에도 그대로 반영된 시기이고, 종교가 정치사회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간 시기이기도 하다.
3.1운동은 초기에 천도교와 기독교가 연대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촉발했지만, 후기에는 민중의 역동성이 아래로부터 분출했다. 동학농민전쟁에서 3.1운동에 이르는 이러한 민중운동의 계보가 충실히 규명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바로 이 점에서, 동학의 변혁세력과 기독교, 그리고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의미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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