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4

독립운동 열전 2 - 잊힌 인물을 찾아서 | 임경석

독립운동 열전 2 : 알라딘


독립운동 열전 2 - 잊힌 인물을 찾아서  | 독립운동 열전 2
임경석 (지은이)푸른역사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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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쪽
책소개
독립과 해방을 위해 온힘을 기울인 인물들, 개인의 일신을 위해 그들을 배신했던 이름들,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진 갖가지 사건들을 찾아 떠난 책이다.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 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검토하는 연구에 힘을 기울여온 저자 임경석 교수(성균관대 사학과)는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5쪽) 중 기억되어야 함에도 잊힌 인물들을 38꼭지에 담아 펼쳐 보인다.

저자는 특히 한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주목한다. “지도적 지위에 있던 사람이나 영웅적 업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발굴”(7쪽)한다. 또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게 주된 지위를 부여한다.

독립운동에 몸 바친 사람들 중 다수가 사회주의자였음에도 오랜 시간 그들이 공식적인 독립운동 역사서에서 배제되어왔음을 지적하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제외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저자의 이 같은 노력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독립운동 사건과 무명 독립운동가의 헌신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목차


《독립운동 열전》을 펴내면서

1장 김사국과 가족
01_‘혁명’에 몸 바친 김사국․사민 형제
02_혁명과 사랑의 불꽃, 박원희

2장 김한
03_체포된 혁명가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04_동지 손에 꺾인 비운의 혁명가 김한

3장 김단야
05_3․1운동의 숨은 공로자, 김단야
06_민완 기자 김단야가 상하이에 특파된 까닭
07_경성 하늘에 적기가 나부끼다
08_스탈린 광기에 희생된 혁명가 김단야

4장 홍범도
09_귀순 공작에 맞선 홍범도 장군의 아내, 이씨 부인
10_양반 의병장에 꺾인 ‘평민’ 홍범도의 큰 뜻

5장 김창숙과 두 아들
11_김창숙의 편지로 본 망명객 심정
12_김창숙의 둘째, 민족해방의 제물이 되다
13_총을 든 유학자 김창숙

6장 박진순
14_‘동양의 레닌’ 박진순의 소년 시절
15_청년은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는가―박진순의 청년시대

7장 조훈
16_러시아 벌목장, 막일하는 사관생도들
17_조훈의 두 차례 국내 잠입 이유

8장 빨치산 대장들
18_아버지가 남긴 사진 4장
19_박종근의 빨치산 활동
20_피살 51년 만에 발견된 빨치산 비밀 아지트의 주인공
21_박영발, 빨치산이 되기까지
22_방준표의 청년시대
23_방준표, 입산하기 전에 무엇을 했나

9장 여성
24_한국의 ‘로자’, 박헌영의 연인 주세죽
25_3․1운동기 여성의 투쟁과 수난의 상징, 김마리아
26_사회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 여의사 이덕요
27_종로 네거리가 좁았던 근우회의 책사, 박신우
28_‘여학생 만세 사건’ 주인공, 송계월

10장 대중 속 지도자
29_이름 없는 이들도 쇠갈고리에 찢겼다―강용흘의 《초당》에 묘사된 3․1운동 풍경
30_인정받지 못한 독립유공자 장재성
31_광주학생운동 전국 확산의 불쏘시개, 장석천
32_형무소에서도 세 개의 이름을 가졌던 농민운동가, 허성택
33_우물 속 주검을 둘러싼 교활한 각본―송하 살인 사건의 진실

11장 사회주의 개척자
34_레닌에게 면박당했다는 이동휘의 진실
35_상해파 공산당 쇠락엔 그의 죽음이 있었다, 최팔용
36_사생을 같이할 수 있는 동지, 홍도
37_공자와 레닌을 사랑한 조선 청년 김규열
38_소련에서 스파이로 몰려 처형된 천황 모해범, 김중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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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 이 책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이지요.
P. 18 김사국과 김사민은 초창기 한국 사회주의운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들의 활동은 한국 사회주의운동이 피억압 민족의 해방운동 속에서 배태된 것임을 잘 보여준다.
P. 21 아우 김사민의 삶을 파괴한 것이 식민지 통치기관의 폭력이라면, 형 김사국의 삶을 파괴한 것은 질병이었다.
P. 29 박원희는 혁명가의 아내이자 그녀 자신이 견결한 혁명가였다. 출산한 지 얼마 안 지나 운동 일선에 복귀했다. 그해 5월에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 여성 단체인 여성동우회 창립에 참여했다.
P. 35 1923년 1월 17일 삼판통(후암동)과 1월 22일 효제동에서 총격전이 발발한 뒤 일본 경찰은 연루자 체포에 혈안이 됐다. 총격전의 주인공 김상옥이 이미 사망했는데도 그랬다. …… 김상옥과 조금이라도 접촉했거나 관련된 사람이면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김한金翰도 그 속에 있었다. 한때 상해임시정부 법무부 비서국장을 지냈고 합법적 사상 단체인 무산자동맹회 상임위원으로 재임 중이던 그는 37세의 팔팔한 장년이었다. 접기
P. 55~57 망명한 지 2년이 지난 1932년, 김한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 망명지 체류가 장기화될 것을 예상하고 좀 더 장기적이고 유의미한 계획을 세웠던 듯하다. ……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렀다. 모스크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벅찬 미래가 아니라 참담한 현실이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밀정’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았다. …… 김한은 끝내 밀정 혐의를 벗지 못했다.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1932~1934년 어느 때에 그는 내무인민위원부 관료들의 손에 사형당했다. 접기
P. 70 3․1운동은 김단야에게는 혁명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첫걸음이었다. 비밀결사 참여, 해외 망명, 사회주의 수용, 귀국 도중 체포 및 형무소 수감, 고려공산청년회와 조선공산당 결성 등으로 숨 가쁘게 이어지는 그의 혁명운동사의 첫 페이지에는 3․1운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P. 78 김단야는 1924년 12월 말부터 이듬해 1월 하순까지 상하이 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의 상대는 국제당 원동국 책임자 보이틴스키였다. 두 사람은 국제당 지부로서 조선공산당 창립 문제가 최대 현안이라는 점에 동의했고, 이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김단야와 보이틴스키는 행동 골자를 입안하는 데 성공했다. 4개 대회를 한꺼번에 준비한다는 복잡하고도 거창한 복안이었다. 비밀 영역에서 당과 공청의 창립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합법 공개 영역에서 전국 규모의 두 종류 대중 집회를 소집한다는 계획안이었다. 접기
P. 87 경성 주재 소련 총영사관의 설립은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다면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언론의 역사에 부침을 초래했고, 사회주의운동사의 진행 과정에도 족적을 남겼다. 특히 국내 사회주의운동과 해외 국제기구 사이에 또 하나의 은밀한 연락 체계가 구축됐음이 주목된다. 이 체계를 개척한 사람은 《조선일보》 기자 김단야였다. 비밀결사 고려공청의 간부이기도 했던 그는 그 뒤로도 국제공산당과 밀접한 연계를 설정하는 데 남다른 성과를 올렸다. 접기
P. 98 김단야는 1937년 11월 5일 내무인민위원부 경찰의 손에 체포됐다. ‘반혁명 스파이, 테러 단체 결성’ 혐의였다. 스탈린 대숙청의 다른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고문, 자백, 재판, 처형의 길을 걸었다.
P. 108~110 임재덕과 김원흥이 이끄는 토벌대 200여 명은 용문동 더덩 장거리 전투에서 홍범도 부대의 매복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 결과 토벌대 지휘부를 포함하여 209명의 군경이 포로로 잡혔다. …… 두 사람은 깎아 세운 두 개의 나무 기둥에 각각 묶였다. 홍범도가 명령을 내렸다. “석유통의 윗 딱지를 떼어 저놈들 목욕시키고, 불 달아 놓아라... 더보기
P. 119 홍범도 의병부대가 쇠락하게 된 이유가 양반 의병장의 독단 탓이었음이 명백했다. 의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했던 함경도 부대를 패퇴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 출신 의병장이었다. 오히려 적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P. 130 김환기는 혹독한 고문의 희생자가 됐다. 1927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출옥했다. 열아홉 살 청년의 신체는 손쓸 여지도 없이 훼손되어 있었다. 그는 치료 도중에 1927년 12월 20일 사망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김창숙의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P. 138~139 김찬기는 “1942년 12월 27일에 집을 떠나 대구에서 동지들과 규합하여 준비를 마치고 1943년 1월 13일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 그러나 …… 그는 해방 직후에 죽어서 돌아왔다. …… 1944년에 충칭에 도착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몹쓸 병이 들어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P. 142 김창숙이 죽음을 무릅쓰고 비밀리에 조선으로 되돌아온 까닭은,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결사입국의 뜻’을 품은 이유는, 바로 독립운동자금 모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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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임경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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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한국근대사 전공.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 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검토하는 연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2003), 《이정 박헌영 일대기》(2004),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2008), 《모스크바 밀사》(2012), 《독립운동 열전》(전2권, 2022) 등이 있다.

최근작 : <역사논문 작성법>,<동아시아 전환기 정치적 갈등과 사상적 모색>,<[단한권]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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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지금부터 조선 젠더사>,<불량한 책들의 문화사>,<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등 총 319종
대표분야 : 역사 5위 (브랜드 지수 597,78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그러나 잊힌
38꼭지에 담긴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 열전 2―잊힌 인물을 찾아서》는 독립과 해방을 위해 온힘을 기울인 인물들, 개인의 일신을 위해 그들을 배신했던 이름들,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진 갖가지 사건들을 찾아 떠난 책이다.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 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검토하는 연구에 힘을 기울여온 저자 임경석 교수(성균관대 사학과)는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5쪽) 중 기억되어야 함에도 잊힌 인물들을 38꼭지에 담아 펼쳐 보인다.
저자는 특히 한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주목한다. “지도적 지위에 있던 사람이나 영웅적 업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발굴”(7쪽)한다. 또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게 주된 지위를 부여한다. 독립운동에 몸 바친 사람들 중 다수가 사회주의자였음에도 오랜 시간 그들이 공식적인 독립운동 역사서에서 배제되어왔음을 지적하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제외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저자의 이 같은 노력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독립운동 사건과 무명 독립운동가의 헌신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잊힌 독립운동 인물들을 찾아 떠나다
저자는 민족독립운동의 투사였을 뿐 아니라 사회주의운동의 개척자였던 김사국과 김사민 형제, 남편 김사국과 망명 중에도 사회주의운동 기지 구축 활동을 전개한 박원희를 통해 초기 사회주의운동을 살피고, ‘김상옥 의거’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음에도 비밀결사 내지당(조선공산당) 존재를 발설하지 않아 동료들을 보호하는 데 성공했으나 출옥 후 일본의 밀정 혐의로 소련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결국 사형당하고 만 비운의 혁명가 김한의 지난했던 삶을 들춰본다.
3·1운동의 숨은 공로자, 기자 신분으로 세포 단체 연락책 역할을 수행했던 혁명가, 그러나 스탈린의 광기에 휘말려 일본의 밀정 혐의를 받고 체포된 지 3개월 만에 총살당한 김단야의 치열했던 생애를 둘러보고, ‘평민’ 의병장으로서 지방 거점 도시 공략에 성공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리다가 양반 의병장의 무성의와 독단으로 인해 의병부대의 쇠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홍범도의 울분을 들여다본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총을 든 유학자 김창숙과 두 아들 김환기, 김찬기의 처절했던 생애를 살피고, 시베리아 3대 재사才士라 불리던 초창기 사회주의운동의 걸출한 투사 ‘동양의 레닌’ 박진순의 삶을 돌아보고, ‘이르쿠츠쿠파’의 중추 멤버로 성장한 후 국내 공산청년운동 통합에 나섰으나 끝내 실패하고 만 조훈의 격렬했던 생애를 살펴본다.
박헌영의 연인이었던 한국의 ‘로자’ 주세죽, 3·1운동기 여성의 투쟁과 수난의 상징이었던 김마리아, 사회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여의사 이덕요, 종로 네거리를 누볐던 근우회의 책사 박신우, ‘여학생 만세 사건’ 주인공 송계월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둘러보고, 박종근, 박영발, 방준표 등 빨치산 대장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들춰본다. 강용흘의 《초당》을 통해 이름 없는 이들도 쇠갈고리에 찢겼던 3·1운동의 참혹한 실상을 돌아보고, 송하 살인 사건을 통해 우물 속 주검을 둘러싼 일본 경찰의 교활한 각본을 파헤친다.

박제화와 영웅 서사 경계 … 무명의 헌신에 주목하다
저자가 특히 주의를 기울인 것은 “무명의 헌신”(8쪽)이다. 저자는 오늘날 독립운동사 저서와 논문 대다수가 “독립운동가 개인이나 독립운동 단체를 돋보이게 하려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도드라지게 부각”하는 “박제화와 영웅 서사”(8쪽)에 힘써왔다고 지적하면서 그러한 작업은 지루하고 권태롭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정의에 헌신했으되 잊혀져버린 이름 없는 투사들”(7쪽)에게 눈길을 준다.
저자는 창창한 33세의 나이에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광주학생운동 전국 확산의 불쏘시개 장석천, 형무소에서도 세 개의 이름을 가졌던 농민운동가 허성택, 소련에서 스파이로 몰려 처형된 천황 모해범 김중한 등 낯선 독립운동가의 삶에 빛을 비춘다. 총을 든 유학자 김창숙을 살필 때는 ‘유림단 독립운동 모금 사건’에 휘말려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에 희생당한 그의 첫째아들 김환기와 ‘왜관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회주의 비밀결사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출옥 후 중국 망명길에 나섰으나 유골로 귀국하게 된 둘째아들 김찬기의 생애를 돌아본다.

독립운동가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저자는 개인적 이해관계를 돌보지 않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가 고초를 겪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 즉 아버지 없이 자라야 했던 어린 자식들, 남편 없이 홀로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아내들, 자식을 잃은 고통에 애타하던 노부모에게도 주목한다.
홍범도를 살필 때는 산중에 웅거한 남편 앞으로 투항을 권하는 편지를 쓰라는 일본 경찰의 귀순 공작을 거부했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결국 그 후유증으로 숨을 거둔 이씨 부인의 결기에 시선을 돌린다. 혁명에 몸 바친 김사국과 김사민 형제를 둘러볼 때는 두 아들을 잃고 탁발로 궁핍한 만년을 보내면서 맏아들의 기일이 돌아올 때마다 “사국이 제사나 한번 지냈으면……”이라 탄식하던 어머니 안국당의 무거운 마음을 애달파한다.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제자리 찾기
저자는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를 배제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그러기는커녕 정면으로 배치”(7쪽)된다고 강조한다.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은 마땅히 독립운동사에 포함되어야 할 뿐 아니라 역사적 기여만큼 온당한 지위와 비중을 인정받아야 한다”(7쪽)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 아래 저자는 사회주의 개척자들의 활동을 꼼꼼하게 훑는다. 한국 최초로 사회주의 정당을 창설한 이동휘가 조선 실정에 무지하여 레닌에게서 책망을 받았다는 유학생 출신 2030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비난을 둘러싸고 진실이 무엇인지 살피고, 2·8독립선언 작성과 선포를 주도했던 최팔용이 32세에 신병으로 요절한 것이 상해파 공산당의 쇠락을 불러왔다는 점을 밝힌다. 20세 되던 1914년 서울에서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비밀 결사에 가담한 것을 시작으로, 1928년 러시아로 망명할 때까지 쉼 없이 혁명운동에 참여했다가 반혁명 활동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소식이 끊긴 홍도의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보고, 옥중생활과 해외 유학을 거친 후 사회주의자가 된, 공자와 레닌을 사랑했던 김규열의 생애를 훑는다. 이들의 삶은 그동안 외면받았던, 그러나 잊혀서는 안 되는 독립운동사의 또 다른 측면이다. 접기

북플 bookple

사랑하는 딸과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지난번에 이어서 <독립운동 열전>2권을 이야기해줄게. 지난 1권의 부제는 <잊힌 사건을 찾아서>였는데, 이번 2권의 부제는 <잊힌인물을 찾아서>란다. 1권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했듯이 <독립운동 열전>은 잘 모르고 있던 독립운동,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벌였던 독립운동에 관해... 더보기
bookholic 2023-06-02 공감 (25) 댓글 (0)



어둠속에서 빛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독립운동이다. 가느다란 빛줄기를 향해서 오늘의 고통을 인내하며 가시밭길을 맨발로 전진한다. 그러한 존재가 독립운동가이다. 임경석 교수의 '독립운동열전2'를 읽으며 저 멀리 시베리아 벌판에서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를 휘저으면서 조국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청춘을 던졌던 선열들의 뜨거운 열정과 마주했다. 그 ... 더보기
강나루 2023-05-10 공감 (36) 댓글 (4)



(44) 김한은 총독정치가 얼마나 조선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교육과 산업은 물론이오 그 밖의 어느 방면을 보더라도 조선 사람은 ‘불평’과 ‘원한’을 품지 않을수 없다, 조선인에게 남겨진 것은 총독부 법령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 김상옥 사건도 이 같은 총독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걸음더 나아가 혁명을... 더보기
bookholic 2023-04-05 공감 (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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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여성 운동가들의 미모에 대한 평가와 성고문에 대한 묘사 등은 뺏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상적 지향이 미묘하게 다른 운동가들을 “여성”이라는 카테고리로 따로 묶은 것도 구시대의 유습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게 그저 남자들세상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초록비 2023-02-09 공감 (3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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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한다면 이 책을 통해 지나온 길을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너무나 재미있게 읽힌다는 최고의 미덕을 지닌 책.
workersplaytime 2022-09-0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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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들 사이의 계파 갈등, 양반 상놈의 구별, 밀정들의 활약 등등으로 안타까운 순간들이 많다. 독립운동가 중 사회주의 계열이 소외되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알퐁소 2023-03-1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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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며...

일제강점기는 투쟁과 부역의 역사다. <독립운동 열전>의 저자 임경석은 아직 청산되지 못한 이 어두운 시절을 조망하고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잊힌 사건과 인물을 찾아서'라는 책의 부제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했음에도 이념 등의 이유로 주목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과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독립운동의 진정한 주역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민중들이었다. 이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힘은 민중에게 있으며, 이는 핍박과 분열, 갈등이 빚어낸 시대의 소음 속에서 일순간에 타오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독립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다.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그림 속에서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 중앙에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테메레르호는 운수업자에게 넘겨져 해체되는 운명을 맞는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 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역사의 페이지에 그들의 몫도 있을까?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그들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정신과 투쟁, 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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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와일드 2022-11-30 공감(4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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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픈 사연과 마주하기



어둠속에서 빛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독립운동이다. 가느다란 빛줄기를 향해서 오늘의 고통을 인내하며 가시밭길을 맨발로 전진한다. 그러한 존재가 독립운동가이다. 임경석 교수의 '독립운동열전2'를 읽으며 저 멀리 시베리아 벌판에서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를 휘저으면서 조국 독립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청춘을 던졌던 선열들의 뜨거운 열정과 마주했다. 그 과정은 가슴 벅찬 감동이었지만, 가슴시린 아픔이기도했다.

나의 가슴을 시리게 만든 첫번째 이유는 그들이 일제에게 당한 고문의 고통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의해서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있다. 그러나, 일제가 행한 잔혹한 고문은 독립운동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훈방조치하는 소년도 고문의 대상이었다. 민형사상의 통상적인 범죄 피의자에게도 고문은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일제 강점기의 한반도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고문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잔혹했다. 김마리아 여사는 애국부인회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었다가 일제에 의해 검거되었다. 고문은 야만적이었고, 살인적이었다.




"일본 심문관들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그녀를 발가벗긴 채 손과 발을 결박했다. 곁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로가 놓여 있었고, 인두와 쇠꼬챙이가 그 속에서 벌겋게 타올랐다. 짐승 같은 자들은 끝내 그 도구를 사용하고 말핬다. 화롯불에 달궈진 쇠꼬챙이로 여성 생식기에 화침질을 놓았다."-261쪽




일본 경찰에게 끌려간 여성 독립운동가들 중에 상당수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광복후, 한국 경찰에 의해서 자행된 성고문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 일제 경찰에게서 연원을 찾을 수 있었다. 노덕술과 같은 친일 경찰이 광복 후, 한국의 경찰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군에게 배운 야만적 고문기술을 민주화 운동가에게 사용했다. 독립 운동가의 고통은 친일 경찰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졌다.

나의 가슴이 시린 두번째 이유는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스파이 혐의로 숙청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포위망을 뚫고 소련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중에서 상당수는 돌아오지 못했다. 홍도, 김중한, 김단야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스탈린의 광기에 희생되었다. 그들에게 덧씌워진 죄명은 반혁명분자, 일제의 스파이였다. 다른 동지들은 일제에게 체포되었는데 어찌하여 너는 체포되지 않았느냐? 조선과 만주를 어떻게 자주 들락거릴 수 있느냐? 등등의 질문을 던지며 그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기민하게 움직여 일제의 포위망을 뚫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이 그들에게는 일제의 스파이라는 증거였다.


어찌 스탈리만 그랬는가! 님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도 중국 공산당에 의해서 일제의 밀정이라는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독재의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서,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독립운동의 영웅을 반혁명분자로 몰아갔다. 일제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면 이렇게 씁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가슴이 시린 세번째 이유는 일제의 추적을 피해서 치열하게 투쟁하며 광복을 맞이한 독립운동가들이 해방공간 속에서 벌어진 이념투쟁에서 쓰러져갔기 때문이다. 박종근, 박영발, 방준표 등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좌우 이념투쟁의 전쟁터였다. 독립만 된다면 행복한 세상이 펼쳐질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새로운 투쟁의 장소가 펼쳐졌다. 일제 강점기에도 살아남았던 그들이 광복후에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죽어갔다. 이러려고 광복을 했단 말인가? 이념의 노예가 되어 동족을 죽고 죽이는 비극이 너무도 진절머리난다.




책장을 덮었다. '독립운동 열전2'는 나의 가슴을 너무도 시리게했다. 헐리우드 영화의 성공 공식이 있다. 반드시 해피엔딩을 해야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독립된 조국은 이념투쟁의 전쟁터가 되었다. 조국은 두동강이났고, 친일파가 권력을 잡았다. 어제의 독립운동가는 친일파에게 제거당하거나, 이념투쟁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제 슬픈 영화는 그만보고 싶다. 친일파는 토착왜구가 되었고, 독립운동가는 깨시민(깨어있는 시민)이 되었다. 깨어있는 시민이 토착왜구를 물리치고 해피엔딩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나도 그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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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23-05-10 공감(36)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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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열전 - 잊힌 인물을 찾아서


앞선 《독립운동 열전》 1권에서 사건을 중심으로 잊힌 독립운동사와 한국근대사를 살펴보았다면 2권은 인물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그래서 2권의 부제는 <잊힌 인물을 찾아서>이다. 1권은 목차가 부제와 착 들어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던 반면 2권은 부제에 맞게 목차도 잘 구성되어 있는 편이다.


책의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김단야, 홍범도, 김창숙, 주세죽, 김마리아, 이동휘 정도를 제외하고 이 곳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낯설었다. 여전히 우리는 임시정부, 한인애국단 등 알려진 독립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때문에 앞으로도 찾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많다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22년 조선공산당(내지당 또는 중립당)에 가담한 두 명의 인물이 있다. 김사국과 김한이다. 둘은 모두 당에서 손꼽히는 지도자였다. 김사국의 경우 동생인 김사민도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어 놀라웠다(김사민은 신생활사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1924년 7월 만기출옥했으나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로 평생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 김한은 김상옥 사건에 연루되어 김원봉과 비밀 교신을 하고 다량의 폭탄 국내 반입하려한 혐의로 형량 5년을 언도받는다. 그는 법정에서 총독정치가 얼마나 조선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교육과 산업은 물론이오 그 밖의 어느 방면을 보더라도 조선 사람은 '불평'과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에게 남겨진 것은 총독부 법령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 김상옥 사건도 이 같은 총독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을 언급했다. 그는 헤겔과 다윈을 인용하면서 혁명을 위험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 만물이 살아가는 자연법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선 사람이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P45) 김한의 진술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가 또 하나 있다. 끝내 비밀결사 내지당(조선공산당)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한은 시종일관 해외 망명자들과 비밀리에 연락하고 폭탄 반입을 모의한 것이 자신의 개인적 판단이었다고 진술했다. 덕분에 내지당은 삼엄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노출되지 않을 수 있었다. 김한은 일본 관헌들의 야수적인 취조 속에서도 비밀결사의 동료들을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P46)


유림 독립운동계의 거목인 김창숙 선생에 대한 일화는 감동적이었다. 조선총독부가 경북 경찰부를 통해 망명자 김창숙에게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에 들어와 귀순한다면, 과거 '범행'을 모두 불문에 부치고 후대하겠다는 말이었다. 가옥을 새롭게 단장하고 논밭을 새로 사줘서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희 숙씨는 경상북도 경찰부의 내용을 받아들여 전향 권유 편지를 베이징의 김창숙에게 발송했다. 총독부 당국이 이처럼 관대한 처분을 내렸으니 이제 가정의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권면하기까지 했다. 김창숙은 가까운 친족으로서 유교 고전학에 대한 담론을 나누고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던 사이였기에 실망감에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김창숙은 바로 붓을 들고서 답장을 썼다. 절교 선언이었다. 그는 아들 환기에게도 사정을 전했다. 문중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김황에게 편지를 써서 자초지종을 알리고, 내희 숙씨가 더 이상 일족의 일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P126~127) 자신의 일족의 잘못을 덮는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내치는 모습이 참으로 멋있었다. 이 일화야말로 대쪽 같은 선비의 꼿꼿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빨치산 대장들 박종근, 박영발, 방준표들이 있다.
박종근에게 주어진 보직은 경북도당 위원장 직이었다. 29세였다. 열일곱 살부터 반일운동에 참가했던 만큼 혁명운동 경력이 벌써 13년째였다. 사상범으로 투옥된 기간만 3년 7개월이나 됐다. 대중운동의 현장 경험도 갖추고 있었다. (...) 그뿐이랴. 해외유학도 나녀왔다. 모스크바 조선당학교 2년간의 유학을 통해 견문을 넓혔고,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도 배웠다. 실천과 이론,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잘 준비된 간부였다.(P199~200)
박영발은 해방 이후 정국에서 당과 노동조합 양 부문에서, 그리고 총파업 투쟁의 지휘 방면에서 없어서는 안될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장래 당조직을 이끌 중견 지도자로 지목받았다. 최고위 간부교육을 이수할 자격이 있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1948년 7월 그는 모스크바 유학길에 올랐다. 다소 늦은 나이였지만, 모스크바 조선노동당 간부학교 입학대상자로 추천된 것이다.(P221~222)
9월총파업은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투쟁을 가리킨다. 1946년 9월 23일 부산 지역 철도노동자 7,000여 명의 파업이 첫 출발점이었다. 경남도당 노동부장인 방준표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맞섰던 대상은 대한노총, 무장경찰, 미군 헌병 '3자의 합작적 공세'였다. 9~10월에 걸쳐 "장렬한 피투성이 반항투쟁에 직접 참가 지도하였다"고 기록했다.(P237)
놀라운 것은 그들 모두 해방 이후 모스크바 유학을 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들의 노동 투쟁 이력이 유학에 도움이 된 것 같다. 박종근은 12개의 과목 모두 5점 만점에 5점을 받을 정도였고 박영발도 그에 못지 않은 최상 레벨의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세 사람 모두 박헌영의 좋은 평가까지 받은 것을 보면 실력자들이었음에 분명했던 것 같다.


여성 독립운동가 파트도 눈에 띄었다. 그 중 이덕요와 박신우, 송계월에 대해 말해보겠다.
이덕요는 사회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였다. 그는 함흥 자혜의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다 의학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졸업 후 조선으로 돌아와 의사의 길을 걸었고 해마다 신년에 신문사들이 개최하는 '여류 명사 초청 가정문제 좌담회'에 초대되어 여성 문제와 가정 문제에 대해 발언할 정도로 명사였다. 문필과 단체 활동 등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사회주의 운동에도 가담했다. 우리가 잘 아는 여성 최대 독립운동단체인 <근우회> 정치문화부에도 속해 있었다. 이덕요는 여성운동의 의의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사명과 연관시켜 이해했다. 일간신문에 실은 한 기고문을 보자. 기고문에서 그는 오늘날 조선이 요구하는 여성은 "오랫동안 남성에게 유린되어 온 조선 여성의 해방운동"을 실행함과 동시에, 한걸음 더 나아가 "역사적 사명을 다하려는 대중운동과 악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론 지면의 표현상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을 연관 지어 포착하고 있음이 뚜렷이 드러난다.(P275)
박신우는 <근우회>의 선전 조직부에 있으면서 책사 노릇을 했는데 기획력, 실행력 모두 출중했다고 한다. 남편 김규열과 박신우 모두 코민테른 제공 고등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회주의 엘리트였는데 1928년 초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근거지로 조선공산당의 해외 부문 사업을 맡게 되어 갔다. P-3759 사건은 바로 '소련 국가폭력에 의한 조선공산당 서상파 망명자 그룹 탄압 사건'이었다. 소련 정치보위부는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위해 투쟁한 혁명가들에게 '일본제국주의의 스파이'라는 모욕적인 범죄의 낙인을 찍었다. 체포 6개월 뒤 사건 관련자 가운데 김규열, 김영만, 김중한에게 총살형이 집행됐다. 1934년 5월 21일이었다. 다른 두 사람은 한두 등급 아래 처분을 받았다. 윤자영은 노동수용소 8년 징역형, 박신우는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노동수용소 이후 박신우의 운명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한다. 관심을 갖고 주시한다면 언젠가 드러날 때가 있을 것이다. 이 탄압 사건의 피해자들은 뒷날 소련의 국운이 저물어가던 1989년에 비로소 소련 정부로부터 복권됐다. 55년이 지난 뒤였다. 너무나 뒤늦게 찾아온 정의였다.(P286)
송계월은 1930년 1월 제2차 경성 연합시위 사건을 주도적으로 모의한 혐의를 받았다. 글 실력이 출중해 문단에도 데뷔했고(<가두 연락의 첫날>) 잡지사 개벽의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1933년 폐결핵으로 23살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래도 그녀의 전집이 두 권 남아 있어 다행이다.(<송계월 전집>) 그녀는 사상과 이론 문제에 관해서는 비타협적인 투사가 되곤 했다. 그녀와 교유하던 남녀 문인들은 말했다. "계월이는 그렇게 얌전하다가도 이론 투쟁에만 들어서면 여로하가 솟아오르는 기개가 있어 건드리기가 어렵다." 한걸음도 사양하지 않는 조리 있는 언변과 불길을 일으키는 듯한 열정으로 인해 무리 가운데 우뚝 섰다고 한다.(P292)


1962년 3.1절 일산 신문에 이채로운 보도 기사가 실렸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기로 예정된 한 인물의 자격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였다. 문제의 인물은 장재성이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지도자로 손꼽히는 이였다. 그에게는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수여할 예정이었다. 단장이란 포상 등급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1등 중장, 2등 복장에 뒤이은 3등 훈장이다. 해방 후 처음 시행하는 독립유공자 서훈이었다.
왜 서훈을 취소했는가? '공산당에 관련된 혐의' 때문이었다. 독립운동에 커다란 공로가 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에 공감한 경우에는 유공자 서훈을 하지 않겠다는 지침이었다.(P307~308)


이 사례 뿐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의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기준에 거부되거나 선정되었다 취소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독립유공자는 말 그대로 독립운동 이력이 있는 운동가에게 전달하는 훈장이다. 그것에 정치적 이유나 이념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이 아무쪼록 개정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서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의 이력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 중 한 둘이라도 더욱 깊게 들여다보는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의 역할은 그 이상을 하는 셈이라 생각한다. 몰랐던 인물들을 알게 되었고 일대기 뒤에 숨겨진 뒷 이야기까지 만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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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26 공감(27)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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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리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지난번에 이어서 <독립운동 열전> 2권을 이야기해줄게. 지난 1권의 부제는 <잊힌 사건을 찾아서>였는데, 이번 2권의 부제는 <잊힌 인물을 찾아서>란다. 1권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했듯이 <독립운동 열전>은 잘 모르고 있던 독립운동,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벌였던 독립운동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했잖아. 이번 2권에서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소개해주고 있단다. 그런데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구나. 이들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그런 그분들의 희생이 기반이 되어 오늘날 발전된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데 사상이라는 이유로 너무 외면했던 것 같구나.

아빠의 기억력이 좋지 않아 그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면서 다시 한번 기억해보고자 노력해야겠구나. 2권의 앞 표지에는 멋진 사나이들이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단다. 독립운동을 하려면 외모도 받혀 주어야 한다는 듯한 외모들이구나. 하지만 그들의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립을 향한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싶구나. 사진 속의 인물은 한인사회당을 이끌었던 분들인데 사진은 임시정부 시절의 사진이라고 하는구나. 1권에서도 소개했던 김립, 박진순, 이동휘, 이극로, 김철수, 계봉우, 그리고 신원미상의 한 분. 사진 속 얼굴과 눈 속에서 그들의 의지와 열정을 보이더구나.

1.

첫 번째 소개해준 이는 김사국과 김사민 형제란다. 이름부터 나라를 생각하고(思國), 백성을 생각하라는(思民) 이름이니 그들은 애국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그들은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활동을 했어. 김사국과 김사민은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단다. 김사민은 체포되어 2년형을 받게 되는데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옥 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는구나.

형 김사국은 북간도로 망명을 했으나 그곳에서 폐병을 얻어 국내로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공산당 창립에 노력을 했어. 하지만 병을 회복하지 못하고 1926년 35살 어린 나이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김사국의 아내분도 대단하신 분이었단다. 김사국의 아내 박원희는 북간도 용정의 동양학원의 교사였는데, 남편과 함께 북간도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어. 역시 체포되었지. 하지만 임신 중이라서 가석방되었고, 서울로 돌아와서 아이를 낳았단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 박원희는 여성동우회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갔어. 하지만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병을 얻게 되어 1928년 31세로 남편의 뒤를 따랐단다. 어린 아이만 남았을 텐데 참 안타깝구나.



김한이라는 사회주의자 독립운동가가 있단다.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4년 3개월형을 받고 감옥에 갔는데 모진 고문 속에서도 동료들을 불지 않고 혼자 모든 책임을 안았단다. 출옥 후 다시 감시를 받고 다시 체포 당하고 출소하고… 이런 감시하에서 사회주의활동이든 독립운동이든 쉽지 않았지. 그럼에도 김한은 국내에서 비밀 결사 활동을 했단다. 국제선인 김단야와 함께 활동하며 조직을 확대하려고 했는데, 국제선이 대거 검거되면서 다시 쫓기게 되었고 김한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을 했고 후에 모스크바에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동지였던 이성해가 김한에게 누명을 씌어 밀고하였고, 허망하게도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는구나. 김한이 국내에서 일본 경찰에 잡혔을 때 그가 일본 경찰에게 일본의 부당함을 하나하나 꼬집어 이야기할 때 일본 경찰은 반박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모진 고문뿐이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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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김한은 총독정치가 얼마나 조선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교육과 산업은 물론이오 그 밖의 어느 방면을 보더라도 조선 사람은 ‘불평’과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에게 남겨진 것은 총독부 법령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 김상옥 사건도 이 같은 총독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을 언급했다. 그는 헤겔과 다윈을 인용하면서 혁명을 위험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 만물이 살아가는 자연법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선 사람이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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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야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김단야라는 사람은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쪼금이라도 알게 된 것은 조선희 님의 <세 여자>라는 책에서였단다. 이번 <독립운동 열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김단야는 3.1운동때 적극적으로 참가를 했고, 조선 공산당 창립 멤버로 몇 번의 투옥을 했다는구나.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나중에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기도 했어. 그런데 스칼린이라는 자가 정권을 잡은 이후 한인 공산주의자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단다. 일본 사람과 다를 게 없다면 말이야. 그 와중에 밀정을 의심받아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코민테른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구명활동을 했어. 그런데 앞서 김한에게 누명을 씌운 이성태란 사람이 김단야에게 불리한 진술을 해서 결국 김단야는 이국 땅에서 총살로 삶을 마감했다는구나.

당시 김단야가 모스크바에 있을 때 주세죽과 부부였어. 주세죽은 원래 박헌영과 부부였는데, 모스크바로 도망가면서 김단야와 주세죽이 부부행세를 하게 되었고, 이후 모스크바 정착 후 부부가 되었다고 앞서 이야기한 <세 여자>에서 읽은 것이 기억나는구나. 당시 주세죽은 박헌영이 죽은 줄 알고 있었고, 김단야는 박헌영이 살아 있는 것을 알았는데 주세죽에서 알려주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것도 <세 여자>에서 나온 이야기였어.

<독립운동 열전 2>에서도 여성 독립운동가들 챕터에서 주세죽을 아주 짧게 이야기해주었단다. 주세죽 님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이야기한 <세 여자>의 독서편지를 참고하길 바람. 그리고 주세죽 님에 대한 또 다른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 그 책도 꼭 읽어보고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줄게.

2.

그리고 제법 유명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홍범도 장군은 아빠가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해서 오늘을 생략할게. 아빠가 쓴 독서편지들을 조회해보니 <빨치산 대장 홍범도 대장>이라는 책을 비롯하여 여러 책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구나.



유학자이면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김창숙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김창숙의 두 아들들도 함께 독립운동 하다가 아들분들인 김환기와 김찬기는 김창숙보다 먼저 옥사와 병사로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자식들을 먼저 보면 김창숙은 마음이 찢어지셨겠구나. 오래 전에 <심산 김창숙 평전>을 읽고 쓴 리뷰가 있는데, 김창숙 님에 대한 이야기를 그때 쓴 리뷰로 대신할게. (아빠가 예전에 이야기한 것은 자꾸 생략하는데 이해해 주렴. 독서편지가 밀려서 부지런히 쓰려고 그러는 거니까. )



1권에서도 잠깐 소개한 박진순에 대해 2권에서는 한 챕터를 할애해서 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단다. 박진순은 동양의 레닌으로 불릴 정도로 철저한 사회주의 사상가였단다. 학창시절 연해주에서 공부해서 러시아어도 잘했어. 아버지의 의병활동에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힘쓰셨다고 하는구나.



조훈이라는 분은 연해주의 사관생도 출신이었어. 독립자금을 얻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중간 브로커에 속아서 돈은 못 벌고 러시아 벌목장에 노예처럼 갇혀서 탈출도 못하고 막노동만 하게 되었단다. 아빠가 2년 전에 김금숙 님의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란 책을 이야기해 준 적 있는데 김알렉산드라가 벌목장의 노동자들을 도와주어 빼내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때 그 벌목장의 노동자들 중에 조훈이라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란다.



“빨치산 대장들”이라는 챕터에서는 박종근, 박영발, 방준표라는 분들의 행적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독립운동보다 해방 후 빨치산 활동을 더 많이 해준 것 같았어. 그들이 어떤 독립운동을 했었다고 알려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구나. 그들에게 빨치산이란 가족보다 더 중요한 이상인 것 같았어. “여성”이라는 챕터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주세죽을 포함하여 애국부인회 결성회에 앞장섰던 김마리아, 간호원 출신으로 나중에 의과대학 진학하여 의사가 된 뒤 여성해방운동에 힘썼던 이덕요, 근우회 책사로 일하다가 나중에 조선공상당에서 활동했던 박신우, 여학생 문제 운동을 주독했던 송계월이라는 분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분들 중에 박신우라는 분은 모스크바에서 남편 김규열과 조선공산당 일원으로 활동을 했는데 김단야와 마찬가지로 일본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남편 김규열은 사형, 박신우는 징역 5년형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1989년에 와서야 그들의 누명이 벗겨지고 복권되었다고 하니, 박신우 님은 1979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복권이 안된 상태에서 돌아가셨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

그 외에도 이 책에 많은 분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책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으로...^^ <독립운동 열전>(총 2권)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독립운동 사건도 많았고, 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리고 중간중간 읽어볼 만한 책들을 소개해 준 것도 좋았단다. 오늘날 학교 역사책에 일제 시대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어떤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너희들 책을 한번 구경해 봐야겠구나. 이책에서 소개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교과서에 더 많이 실려 있으면 좋겠구나. 음, 그럼 시험 공부 양이 늘어나려나..^^

오늘은 여기서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김사국 씨의 출생지인 충남 연산에서 씨가 다섯 살 때 씨의 진 아우 사민 군과 24세 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가장 사랑해 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책의 끝 문장: 청년 시절에 그가 꿈꿨던 언어로 표현하자면, 해방을 위한 전투를 쉼 없이 계속했으나 도중에 스러지고 만 외로운 영훈이 지금도 거기에 묻혀 있다.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홍범도 의병부대가 쇠락하게 된 이유가 양반 의병장의 독단 탓이었음이 명백했다. 의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했던 함경도 부대를 패퇴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 출신 의병장이었다. 오히려 적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홍범도는 참았다. 지도자 간의 분쟁은 민족해방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추 주민들의 여론이 그에게 위안을 줬다. ‘이범윤 죽일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P119



<독일 스파이> 혐의란 무엇인가? 이동휘가 그 혐의를 받아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관헌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1917년 5~6월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으로서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시체제였다. <독일 스파이> 혐의는 교전 중이던 적대국가 독일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였다. 그해 4월의 레닌을 연상하게 한다. 2월혁명이 발발하자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독일의 지원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페프트로그라드에 귀환한 레닌은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하여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또 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노선을 천명했다. 그렇게 급진적인 반정부 운동을 지휘하던 레닌은 반대파에 의해 독일 스파이로 공격받았다. - P160



이데올로기적 외압 조항은 역사적 진실에 배치된다. 독립유공자 여부는 오직 순수하게 독립운동 공적 유무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1945년 8.15 이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적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도 사후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외압은 배제되어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가 애국지사다. 일제로 인해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이다. - P314



옥중에서 어떻게 지냈는가. 이 질문에 그(김중한)는 자신의 독서와 사유 체험에 관해 얘기했다. 심리, 윤리, 문학, 생물학 등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었는데, 특히 ‘원시 인류의 생활 상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가 한다. 그때를 억압과 차별, 계급, 착취가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의 시기로 상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에도 주목할 만한다. 인생의 본질, 해방, 삶의 가치, 자기 파멸, 비애, 전투 등의 어휘가 그의 내면의식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인생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해방을 위한 투쟁이되 승리를 기약할 없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비애감에 굴복되지 않고 계속 전투를 해나가겠다고. 이어서 "좀 더 사색을 하고 좀 더 연구를 하여, 이제부터는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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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북결산

벌써 11월 마지막날이 되다니... 새삼스럽지만 시간이 너무 빠르다.급작스레 추워져서 아까 낮에 산책하다 귀 떨어져나가는줄^^;;;이번달 총 11권 완독했다.쉽지 않았던 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몰입하면서 읽으려 노력했다. 뛰어들어 읽어내려갔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750~1870》는 근대를 여는 19세기를 표면적인 100년 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관찰하면서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 사회사로 나누어 분석했다. 19세기는 근대의 시작이자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산물이... + 더보기
거리의화가 2022-11-30 공감 (34)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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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석] <독립운동 열전 2> 중에서...


(44)

김한은 총독정치가 얼마나 조선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교육과 산업은 물론이오 그 밖의 어느 방면을 보더라도 조선 사람은 ‘불평’과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에게 남겨진 것은 총독부 법령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 김상옥 사건도 이 같은 총독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을 언급했다. 그는 헤겔과 다윈을 인용하면서 혁명을 위험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 만물이 살아가는 자연법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선 사람이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119)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홍범도 의병부대가 쇠락하게 된 이유가 양반 의병장의 독단 탓이었음이 명백했다. 의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했던 함경도 부대를 패퇴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 출신 의병장이었다. 오히려 적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홍범도는 참았다. 지도자 간의 분쟁은 민족해방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추 주민들의 여론이 그에게 위안을 줬다. ‘이범윤 죽일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160)

<독일 스파이> 혐의란 무엇인가? 이동휘가 그 혐의를 받아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관헌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1917년 5~6월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으로서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시체제였다. <독일 스파이> 혐의는 교전 중이던 적대국가 독일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였다. 그해 4월의 레닌을 연상하게 한다. 2월혁명이 발발하자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독일의 지원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페프트로그라드에 귀환한 레닌은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하여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또 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노선을 천명했다. 그렇게 급진적인 반정부 운동을 지휘하던 레닌은 반대파에 의해 독일 스파이로 공격받았다.

(245)

2017년 들어 더욱 이채로운 일이 일어났다. 주세죽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 연이어 출간되더니 나란히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봄에 <코레예바의 눈물>을 쓴 손석춘 작가가 제2회 이태준문학상을 수상했다. 코레예바는 주세죽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썼던 이름이다. 가을에도 수상작이 나왔다. 주세죽과 그녀의 두 벗의 삶을 문학적 상상력에 의거하여 형상화한 <세 여자>가 출간됐다. 이 책을 지은 조선희 작가는 요산김정한문학상 제34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놀랍다. 오랫동안 망각 속에 잠겨 있던 인물이 이처럼 급격히 부상하다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이미 문학작품의 소재가 된 바 있다. 1930년에 신문에 연재 소설 형식으로 발표된 심훈의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이 바로 그것이다. 주세죽을 모델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아마 첫 자리를 점할 것이다.

(314)

이데올로기적 외압 조항은 역사적 진실에 배치된다. 독립유공자 여부는 오직 순수하게 독립운동 공적 유무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1945년 8.15 이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적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도 사후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외압은 배제되어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가 애국지사다. 일제로 인해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이다.

(390-391)

옥중에서 어떻게 지냈는가. 이 질문에 그(김중한)는 자신의 독서와 사유 체험에 관해 얘기했다. 심리, 윤리, 문학, 생물학 등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었는데, 특히 ‘원시 인류의 생활 상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가 한다. 그때를 억압과 차별, 계급, 착취가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의 시기로 상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에도 주목할 만한다. 인생의 본질, 해방, 삶의 가치, 자기 파멸, 비애, 전투 등의 어휘가 그의 내면의식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인생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해방을 위한 투쟁이되 승리를 기약할 없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비애감에 굴복되지 않고 계속 전투를 해나가겠다고. 이어서 “좀 더 사색을 하고 좀 더 연구를 하여, 이제부터는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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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3-04-05 공감 (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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