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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개화기 주간 17위, 종합 top100 2주|
기본정보
시리즈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총 3권 모두보기)
- 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
이벤트
책소개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2권. 지은이 전우용은 케케묵은 사료더미나 뒤지는 책상물림 역사학자가 아니다. 일상과 주변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고, 현실 문제에 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오늘을 사는 역사가이다. 그는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첫 번째 책이었던 <우리 역사는 깊다> 등을 통해 '교과서'가 놓치고 있는 '오늘'의 뿌리를 찾아 성찰의 자료로 삼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에서도, 지금은 희미해진 연탄, 도장, 침모에서 무심코 넘겼던 현모양처론, 접대문화의 기원까지 파고들어 우리의 일상과 의식에 깃든 뜻밖의 역사를 들려준다.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결과물이며, 인간의 철학, 사상, 가치관뿐 아니라 개별 인간의 몸도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에서도, 지금은 희미해진 연탄, 도장, 침모에서 무심코 넘겼던 현모양처론, 접대문화의 기원까지 파고들어 우리의 일상과 의식에 깃든 뜻밖의 역사를 들려준다.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결과물이며, 인간의 철학, 사상, 가치관뿐 아니라 개별 인간의 몸도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믿기 때문이다.
책속에서
첫문장 |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등급을 나누는 신분제의 역사는 역사시대 전체보다 길지만, 몸에 특별한 표지를 달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
- P. 342 지식은 양심과 함께 있을 때에는 지혜가 되지만양심과 이별하면 교활校滑이 된다. 국민에게 좋은 국가는, 경찰이 양심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게 해 주는 국가다. - mullan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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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 최근작 : <지금부터 조선 젠더사>,<불량한 책들의 문화사>,<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등 총 319종
- 대표분야 : 역사 5위 (브랜드 지수 597,70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탁월한 한국사 파수꾼 전우용이 캐낸
당연한 것들의 뜻밖의 역사
지은이 전우용은 케케묵은 사료더미나 뒤지는 책상물림 역사학자가 아니다. 일상과 주변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고, 현실 문제에 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오늘을 사는 역사가이다. 그는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첫 번째 책이었던 《우리 역사는 깊다》 등을 통해 ‘교과서’가 놓치고 있는 ‘오늘’의 뿌리를 찾아 성찰의 자료로 삼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내 안의 역사―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에서도, 지금은 희미해진 연탄, 도장, 침모에서 무심코 넘겼던 현모양처론, 접대문화의 기원까지 파고들어 우리의 일상과 의식에 깃든 뜻밖의 역사를 들려준다.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결과물이며, 인간의 철학, 사상, 가치관뿐 아니라 개별 인간의 몸도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시간을 이기는 것은 없다. 세월이 흐르면 망가지고, 변하는 것이 비단 물질만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은 물론 미추美醜와 미덕의 기준마저 바뀌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리 몸을 보는 시선도 지금이야 날씬함과 구릿빛 피부를 이상형으로 치지만 뚱뚱한 몸, 햇볕에 그을지 않은 허여멀건 피부가 귀족의 표상인 적도 있었다.
한때 우리가 미덕으로 꼽았던 ‘현모양처론’이나 박력?추진력은 일제가 필요해 의해 주입한 것이었다. 현모양처론은 중세 유교의 덕목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창안된 천황제 국민국가의 여성관이다. 남성이 나라에만 충성할 수 있도록 뒤에서 가정을 맡아 꾸리며 자식을 충성스런 신민으로 키우는 것을 여성의 미덕으로 내세운 것이 ‘현모양처론’의 실체다(77쪽).
세월호 사고에서도 드러났듯 1970년대까지 모범생의 조건이었던 온순?착실과 이에 대비되는 박력?추진력도 일제가 남긴 의식 조작의 흔적이다. 남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게 온순, 천하의 대세나 인간의 도리 같은 ‘허황한’ 생각은 하지 않고 실용과 실리에만 집착하는 게 착실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1930년대 초반 명령에 따라 물불 안 가리고 진격해야 하는 졸병에게나 어울리는 박력迫力?추진력이 남성적 가치로 자리 잡은 것도 마찬가지다(362쪽).
우리 안에 새겨진 어제
우리 곁의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고, 우리가 겪는 모든 현상에는 까닭이 있기 마련이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 남성들의 통과의계처럼 되어버린 ‘포경수술’이 한국전쟁 당시 성병 예방과 미 군의관의 수련 필요성이 겹쳐 대거 시술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는지.
1968년 세종대왕과 충무공 동상이 동시에 완성되었을 때, 멸사봉공과 위국충정의 정신으로 무장한 군인이 나라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는 당시 집권자의 지론에 따라 뜬금없이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이 들어섰다. 세종대왕상은 덕수궁 한 구석으로 밀려나고(327쪽). 이는 훗날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지만 서울교육대학교 앞길에 사임당 당호가 새겨진 이유, 포은 정몽주 동상이 양화대교 북단에 세워진 까닭은 그저 춤추는 ‘공간정치’로 치부하기엔 아리송하다(331쪽).
종로에 최신 서양식 건축물과 전통 양식의 건조물들이 들어서는 등 제왕남면의 전통적 도성 조영 원칙에서 이탈하여 종로와 신문로를 잇는 동서축으로 서울이 근대적 도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과 망육순을 기념하는 칭경예식 준비가 계기였다는 사실은 얼마나 알려졌을까(275쪽).
달라진 시대, 낯선 풍경
시대에 따라 풍속도 바뀐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청춘남녀의 데이트, 부부가 대형 마트에서 나란히 쇼핑 카트를 끄는 모습도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사랑은 결혼의 전제도 아니었고, 결혼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필수 구성요소도 아니었다. 조선시대는 물론 개화기에조차도 기생들이나 사랑을 표현하고 순간이나마 실현할 수 있었다. 1913년 5월 13일, 《매일신보》에 소설 〈장한몽〉이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극적 행로를 그린 이 소설은 장안의 선풍적 인기를 모았지만 두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미혼 남녀는 거의 없었다.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할 나이가 된 사람들은 대개 기혼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사랑 없는 결혼은 비극’이요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소설, 연극, 영화, 대중가요들이 쏟아져 나왔고 혼인 연령도 차츰 높아졌다(69쪽).
여성들의 장보기 또한 낯설었다. 내외 구별이 엄격하던 시대, 집 바깥에 있던 장은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여성들이 모르는 남정네들과 말을 섞는 것은 남 입에 오르내릴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개항 이후 전차, 기차, 극장 등의 등장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을 지키기 어렵게 되면서, 1905년 이준 열사의 소실이 안국동에 연 ‘여인상점’과 1920년 종로에 문을 연 여성전용 상점 ‘동아부인상회’ 등을 거쳐 한국전쟁 이후엔 시장은 아예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시장에서 생선이나 콩나물을 팔아 자식 대학 보낸 여성들에 관한 신화가 널리 유포되는 사이에, 시장에서 물건 값 흥정하는 것은 남자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는 생각도 함께 퍼졌다(103쪽).
스러져가는 것들을 돌아보다
눈에 덜 띈다고 해서 그저 잊힐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 역시 우리 삶의 일부였고, 우리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연탄이나 식모가 대표적인데 이 또한 묻어두기만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인천상륙작전 일주일 뒤인 1950년 9월 22일, 부산에서 농림부 장관 윤영선은 난데없이 산림녹화를 위해 향후 신탄薪炭 채벌을 엄금하며, 그 대신 연탄을 공급할 터이니 집집마다 아궁이를 개량하라는 겨울철 연료대책을 발효했다. 인명조차 돌보기 어렵던 전시에, 뜬금없이 나무를 보호하자는 얘기가 나온 데에는 미군의 조언이 작용했던 듯하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치르면서, 미군은 한국의 야산에 나무가 없어 엄폐물이 없는 탓에 병사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고, 미군 3명 중 1명꼴로 정신과적 문제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 직후 연탄 화로를 넣었다 뺐다 하며 취사와 난방을 겸할 수 있도록 아궁이를 ‘개량’하는 사업이 전쟁 중에 시작되어 휴전 후까지 계속됐다(136쪽).
지금은 잊힌 이름 ‘식모’에 얽힌 역사도 애틋하다. 1970년대에는 공장 노동자, 버스 안내원과 식모를 묶어 ‘삼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각각을 구분해 부르는 이름은 공순이, 차순이, 식순이였다. 식모에게는 유년노동 금지도 최저임금도 해당되지 않았다. 먹이고 입히고 일 가르치고 부리다가 때맞춰 시집보내는 사람은 맘씨 좋은 주인이었다(206쪽). 1980년대 초, 5공 정부가 ‘귀천貴賤 의식’을 지운다는 취지로 직업 이름을 개조할 때, 식모는 ‘가사보조원’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가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도우미’라는 이름이 생긴 뒤에는 다시 ‘가사도우미’가 됐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 명칭 보다는 ‘파출부’라는 비공식 명칭이 훨씬 더 널리 쓰였다(207쪽).
전우용이 차린 ‘보통사람들을 위한 보통사람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의외로 흥미로운 이야기와 생생한 생각거리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글은 모두 52꼭지지만 주 소재 이외에도 ‘소매치기’나 ‘하마평’의 기원, 경성대(현재의 서울대) 입학시험에 한국어 과목을 넣자 교수들이 들고 일어난 일 등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덕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재미로만 읽기엔 아깝다. “현재의 자기 삶이 어떤 역사적 계기들에 의해 구성되었는지 알아야.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 어떤 계기들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지은이의 생각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접기
당연한 것들의 뜻밖의 역사
지은이 전우용은 케케묵은 사료더미나 뒤지는 책상물림 역사학자가 아니다. 일상과 주변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고, 현실 문제에 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오늘을 사는 역사가이다. 그는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첫 번째 책이었던 《우리 역사는 깊다》 등을 통해 ‘교과서’가 놓치고 있는 ‘오늘’의 뿌리를 찾아 성찰의 자료로 삼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내 안의 역사―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에서도, 지금은 희미해진 연탄, 도장, 침모에서 무심코 넘겼던 현모양처론, 접대문화의 기원까지 파고들어 우리의 일상과 의식에 깃든 뜻밖의 역사를 들려준다.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결과물이며, 인간의 철학, 사상, 가치관뿐 아니라 개별 인간의 몸도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시간을 이기는 것은 없다. 세월이 흐르면 망가지고, 변하는 것이 비단 물질만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은 물론 미추美醜와 미덕의 기준마저 바뀌기도 한다. 이를테면 우리 몸을 보는 시선도 지금이야 날씬함과 구릿빛 피부를 이상형으로 치지만 뚱뚱한 몸, 햇볕에 그을지 않은 허여멀건 피부가 귀족의 표상인 적도 있었다.
한때 우리가 미덕으로 꼽았던 ‘현모양처론’이나 박력?추진력은 일제가 필요해 의해 주입한 것이었다. 현모양처론은 중세 유교의 덕목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창안된 천황제 국민국가의 여성관이다. 남성이 나라에만 충성할 수 있도록 뒤에서 가정을 맡아 꾸리며 자식을 충성스런 신민으로 키우는 것을 여성의 미덕으로 내세운 것이 ‘현모양처론’의 실체다(77쪽).
세월호 사고에서도 드러났듯 1970년대까지 모범생의 조건이었던 온순?착실과 이에 대비되는 박력?추진력도 일제가 남긴 의식 조작의 흔적이다. 남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게 온순, 천하의 대세나 인간의 도리 같은 ‘허황한’ 생각은 하지 않고 실용과 실리에만 집착하는 게 착실이기 때문이다. 또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1930년대 초반 명령에 따라 물불 안 가리고 진격해야 하는 졸병에게나 어울리는 박력迫力?추진력이 남성적 가치로 자리 잡은 것도 마찬가지다(362쪽).
우리 안에 새겨진 어제
우리 곁의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고, 우리가 겪는 모든 현상에는 까닭이 있기 마련이다. 어제가 없는 오늘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 남성들의 통과의계처럼 되어버린 ‘포경수술’이 한국전쟁 당시 성병 예방과 미 군의관의 수련 필요성이 겹쳐 대거 시술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는지.
1968년 세종대왕과 충무공 동상이 동시에 완성되었을 때, 멸사봉공과 위국충정의 정신으로 무장한 군인이 나라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는 당시 집권자의 지론에 따라 뜬금없이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이 들어섰다. 세종대왕상은 덕수궁 한 구석으로 밀려나고(327쪽). 이는 훗날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지만 서울교육대학교 앞길에 사임당 당호가 새겨진 이유, 포은 정몽주 동상이 양화대교 북단에 세워진 까닭은 그저 춤추는 ‘공간정치’로 치부하기엔 아리송하다(331쪽).
종로에 최신 서양식 건축물과 전통 양식의 건조물들이 들어서는 등 제왕남면의 전통적 도성 조영 원칙에서 이탈하여 종로와 신문로를 잇는 동서축으로 서울이 근대적 도시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과 망육순을 기념하는 칭경예식 준비가 계기였다는 사실은 얼마나 알려졌을까(275쪽).
달라진 시대, 낯선 풍경
시대에 따라 풍속도 바뀐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청춘남녀의 데이트, 부부가 대형 마트에서 나란히 쇼핑 카트를 끄는 모습도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근대 이전의 사랑은 결혼의 전제도 아니었고, 결혼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필수 구성요소도 아니었다. 조선시대는 물론 개화기에조차도 기생들이나 사랑을 표현하고 순간이나마 실현할 수 있었다. 1913년 5월 13일, 《매일신보》에 소설 〈장한몽〉이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극적 행로를 그린 이 소설은 장안의 선풍적 인기를 모았지만 두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미혼 남녀는 거의 없었다.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할 나이가 된 사람들은 대개 기혼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사랑 없는 결혼은 비극’이요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소설, 연극, 영화, 대중가요들이 쏟아져 나왔고 혼인 연령도 차츰 높아졌다(69쪽).
여성들의 장보기 또한 낯설었다. 내외 구별이 엄격하던 시대, 집 바깥에 있던 장은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여성들이 모르는 남정네들과 말을 섞는 것은 남 입에 오르내릴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개항 이후 전차, 기차, 극장 등의 등장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을 지키기 어렵게 되면서, 1905년 이준 열사의 소실이 안국동에 연 ‘여인상점’과 1920년 종로에 문을 연 여성전용 상점 ‘동아부인상회’ 등을 거쳐 한국전쟁 이후엔 시장은 아예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시장에서 생선이나 콩나물을 팔아 자식 대학 보낸 여성들에 관한 신화가 널리 유포되는 사이에, 시장에서 물건 값 흥정하는 것은 남자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는 생각도 함께 퍼졌다(103쪽).
스러져가는 것들을 돌아보다
눈에 덜 띈다고 해서 그저 잊힐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것 역시 우리 삶의 일부였고, 우리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연탄이나 식모가 대표적인데 이 또한 묻어두기만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인천상륙작전 일주일 뒤인 1950년 9월 22일, 부산에서 농림부 장관 윤영선은 난데없이 산림녹화를 위해 향후 신탄薪炭 채벌을 엄금하며, 그 대신 연탄을 공급할 터이니 집집마다 아궁이를 개량하라는 겨울철 연료대책을 발효했다. 인명조차 돌보기 어렵던 전시에, 뜬금없이 나무를 보호하자는 얘기가 나온 데에는 미군의 조언이 작용했던 듯하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치르면서, 미군은 한국의 야산에 나무가 없어 엄폐물이 없는 탓에 병사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고, 미군 3명 중 1명꼴로 정신과적 문제를 겪었다는 것이다. 이 직후 연탄 화로를 넣었다 뺐다 하며 취사와 난방을 겸할 수 있도록 아궁이를 ‘개량’하는 사업이 전쟁 중에 시작되어 휴전 후까지 계속됐다(136쪽).
지금은 잊힌 이름 ‘식모’에 얽힌 역사도 애틋하다. 1970년대에는 공장 노동자, 버스 안내원과 식모를 묶어 ‘삼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각각을 구분해 부르는 이름은 공순이, 차순이, 식순이였다. 식모에게는 유년노동 금지도 최저임금도 해당되지 않았다. 먹이고 입히고 일 가르치고 부리다가 때맞춰 시집보내는 사람은 맘씨 좋은 주인이었다(206쪽). 1980년대 초, 5공 정부가 ‘귀천貴賤 의식’을 지운다는 취지로 직업 이름을 개조할 때, 식모는 ‘가사보조원’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가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도우미’라는 이름이 생긴 뒤에는 다시 ‘가사도우미’가 됐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 명칭 보다는 ‘파출부’라는 비공식 명칭이 훨씬 더 널리 쓰였다(207쪽).
전우용이 차린 ‘보통사람들을 위한 보통사람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의외로 흥미로운 이야기와 생생한 생각거리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글은 모두 52꼭지지만 주 소재 이외에도 ‘소매치기’나 ‘하마평’의 기원, 경성대(현재의 서울대) 입학시험에 한국어 과목을 넣자 교수들이 들고 일어난 일 등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덕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재미로만 읽기엔 아깝다. “현재의 자기 삶이 어떤 역사적 계기들에 의해 구성되었는지 알아야.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 어떤 계기들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지은이의 생각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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