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들과 한국 제조업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은이)부키2024
종이책 페이지수 : 432쪽
대표적 산업도시 울산에 관한 종합 보고서이자
제조업의 현실과 성장 동력을 잃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한 날카로운 고찰!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 지역내총생산 전국 1위의 부자 도시, 중산층 노동자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는 도시. 지난 60여 년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도시가 바로 울산이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제조업 위기론 속 울산이 직면한 딜레마에서 출발해 4차 산업혁명과 기후 위기라는 퍼펙트 스톰을 마주한 주식회사 대한민국호의 앞날을 논쟁적으로 살펴보는 대담한 기획이다.
2019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로 ‘조선소 출신 산업사회학자’로 주목받으며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한 양승훈의 5년 만의 신작. 화두는 울산-제조업-대한민국으로 확장되었고, 이로써 치열한 논쟁의 장이 열리길 희망한다.
목차
차례
프롤로그: 산업도시 울산, 어디로 가는가
1부 울산은 어떻게 산업 수도가 되었나
1장 산업도시 울산, 기로에 서다
2장 미라클 울산, 울산 산업 60년 약사
2부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 박동이 꺼져 간다
3장 한국 경제의 특수성과 제조업
4장 제조업 발전의 중심에서 말단 생산기지로 추락하는 울산
5장 울산 노동자가 국민의 눈에서 사라진 이유
6장 정규직을 뽑지 않는 엔지니어의 공장
7장 생산성 동맹의 파열, 하청 구조로 연명하는 울산
3부 산업 가부장제의 그림자와 중산층의 꿈
8장 청년이 떠나는 생산도시
9장 생산 도시를 기피하는 여성
10장 노동자 중산층 사회의 꿈은 폐기해도 좋은가
4부 산업도시와 대한민국의 미래
11장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 두 도시 이야기
12장 RE100과 굴뚝 산업의 미래
13장 메가시티론, 무엇이 문제인가
14장 생산도시와 대한민국의 미래
에필로그: 다시, 산업도시 울산의 꿈을 위하여
부록: 연구조사 방법론 및 연구 참여자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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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9 울산을 향한 질문은 결국 1970년대 형성해 놓은 중화학공업 위주의 수출주도 산업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불안을 담고 있다. 혁신이나 기술경제학 연구자들은 습관처럼 ‘추격형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제조업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일본의 생산 하청기지로 출발해서 불하받은 부품과 완제품을 분해하고 결합하며 모방... 더보기
P. 20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의 부자 도시, 중산층 노동자 도시 등이 울산을 수식하는 말이다. 울산은 이른바 ‘3대 산업’으로 불리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며 각각의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또 동남권(부산·울산·경남) 제조업의 축이자 포항으로부터 동해안을 타고 내려가 남해안을 지나 여수까지 이어지는 남동임해공업지역의 중심 지역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몇 년 지나서 2030년이 된다면 울산의 모습은 어떻게 기록될까? 부자 도시, 노동자 도시, 산업 수도라는 말이 그때도 통할까? 접기
P. 45 정부의 공식 기록을 볼 때 산업도시 울산의 시작은 1962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산업화 이후 6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교역량을 자랑하는 ‘30-50 클럽 국가’*(일인당 GDP 3만 달러, 인구 수 5000만 명)에 도달하는 동안 울산은 6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P. 48 이처럼 울산은 이케다에 의해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위한 공업 도시이자 석유 비축기지로서 설계됐다. 울산은 ‘공업항, 어항, 연락항, 무역항, 공항’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분류됐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엮으면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울산의 역할이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P. 64 여기서 현대중공업의 성공을 보는 세 번째 시각이 도출된다. 즉 중공업 안팎의 여러 사람이 이루어 낸 성공이라는 견해다. 이역만리 스코틀랜드까지 찾아가서 선박 건조 기술을 익혀 오고, 일본에 건너가 도면 작성법과 설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일본인 엔지니어들에게 묻고 되묻고 다시 확인한 이들의 공로다. 유럽식과 일본식 선박 건조 기술을 혼합해서 그 나름의 현대중공업 스타일의 건조 기술로 창안해 낸 엔지니어들의 노고가 있었다는 뜻이다. 또 고소(높은 곳) 작업에 꼭 필요한 발판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현장에서 밧줄에 몸을 의지하여 작업했던 노동자들의 헌신도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일할 곳을 찾아야만 했던 1970~1990년대의 젊은이들이 현대중공업의 성공을 일궈 낸 또 하나의 힘이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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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양승훈 (지은이)
정치학, 문화인류학, 과학기술학을 공부했다. 현재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사회조사방법론, 사회조사통계, 과학기술학을 강의한다. 청년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을 갖고, 제조업, 혁신, 비수도권 산업도시, 여성 공학 인력 등을 연구해왔다. 지은 책으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등이 있다.
최근작 : <[북토크] <광장 이후> 출간 기념 저자 북토크>,<광장 이후>,<[북토크] <자살하는 대한민국> x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저자 북토크> … 총 2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도시를 보라”
대한민국호의 성장 엔진이 꺼져 가는 이유
울산, 한반도의 동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이 공업도시에는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 중산층 노동자 도시’라는 여러 수식어가 붙어 있다. 울산은 지난 60여 년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에 쇠락의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구 115만의 울산은 여전히 외형적으로는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의 부자 도시이고, 수출액 기준으로 경기도와 충청남도에 이어 전국 3위의 광역시이지만, 도시의 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울산은 청년층 신규 고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장년 노동자, 퇴직자 중심의 늙은 도시가 되었다. 지역 대학은 자동차, 조선, 중화학 등 울산 3대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 공급처 역할을 못 하고 힘을 잃고 있으며, 기술 혁신의 주역인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는 일찌감치 천안 이북의 수도권으로 떠났다. 또 청년과 여성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인구 감소에 직면했다. 4차 산업혁명, 기후 위기, 그린뉴딜이라는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는데, 전통 제조업을 가진 울산이 어떤 대책과 해법을 찾아야 할지 지자체, 지역 주민, 대기업, 하청과 부품 업체의 이해관계가 저마다 다르다.
기후 위기가 울산 3대 산업에 기회가 됐지만 산업 고도화와 신사업 진출의 전망을 열어 주지 않고 있다. 친환경 전기차와 수소경제는 현대자동차에 기회를 주지만 울산의 자동차 부품 생태계는 이에 대응하기에 취약한 상태이고 개선책도 뚜렷하지 않다. 자동차 부품 업계가 고용하는 5만 개의 일자리는 곧 위기에 노출될 공산이 크다. 탈탄소 전환을 요구하는 IMO의 규제는 조선 업계에 선박 수주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고착된 노동 시장 이중 구조로 인한 원하청 간 임금 격차와 불황기의 임금 하락 문제를 풀지 못하면서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자동차 생태계에 필요한 정밀화학의 전환 역시 정책 역량과 기존 석유화학 산업의 보수성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345쪽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대한민국 산업 수도’ 울산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며 미래를 모색하는 책이다. 울산의 산업 구조와 노동 시장, 사회적 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목적은 제조업과 수출을 기둥으로 성장해 온 한국 경제에 닥친 위기의 본질을 살피고 종합하여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울산이라는 대표적 산업도시에 관한 종합 보고서인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저물어 가는 산업’으로 치부되는 제조업의 현실과 성장 동력을 잃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한 고찰이다.
저자 양승훈은 2019년 조선소에서 5년간 일하며 관찰했던 경험을 토대로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 산업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내놓았다. 이 책으로 산업 현장의 경험을 겸비한 ‘조선소 출신 산업 사회학자’로 주목받았고, 이듬해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했다. 5년 만에 출간하는 이번 책은 거제에서 울산으로, 울산에서 대한민국으로 논의를 확장했다. 이는 단순히 공간 지리적인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제조업 국가 한국이 현재 직면한 곤혹스러운 질문을 에두르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다.
미라클 울산,
모두의 정성과 노력이 모인 ‘좋았던’ 시절
책의 1부는 울산이 그간 어떻게 산업 수도로 급부상했는지, 울산의 60년간 산업 역사를 돌아본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1962년 1월 13일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발표하고, 같은 달 27일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결정 공포했다. 2월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했다. 6월엔 울산군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리와 다운리, 농소면 송정리와 화봉리를 통합해 울산시 승격을 발표했다. 이후 뒤에서 다룰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진출하여 지금의 울산 3대 산업을 구성했다. 이러한 서사를 단순하게 이해하면 산업도시 울산의 형성이 박정희와 현대그룹이 이룬 성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근대적 산업도시 울산은 일제 강점기 혹은 그 이전부터 누적된 경로 의존과 다양한 우여곡절 속에서 탄생했다. 산업도시 울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케다 스케타다라는 인물과 제국주의 일본의 대단위 병참기지 건설 계획을 만나게 된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 산업도시 울산을 구상하도록 했던 선구자는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라는 사람이다. 이케다는 부산 지역에서 1920~1930년대 개발 사업을 했던 인물이다. 헌병 중사 출신이라는 특별하지 않은 이력에도 동양척식회사와 정군관政軍官계와의 인연으로 빠르게 사업의 규모를 확장했다. (…) 1942년 12월, 울산개발계획이 조선총독부로부터 최종적으로 허가받았다. 1943년 5월 11일, 지금의 학성공원에서 기공식이 거행됐다. 이처럼 울산은 이케다에 의해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위한 공업 도시이자 석유 비축기지로서 설계됐다. 울산은 ‘공업항, 어항, 연락항, 무역항, 공항’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분류됐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엮으면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울산의 역할이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 이케다 스케타다의 산업도시 계획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하면서 70퍼센트 완공 단계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일제가 구상했던 석유 비축기지이자 정유 공장의 흔적은 결국 산업도시 울산의 경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 48쪽
1962년 대한석유공사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울산 정유 공장의 복구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어 1970년대에는 현대중공업의 조선소 설립이 이루어지는데, 정주영 회장이 1970년 12월 그리스 리바노스사로부터 유조선 2척 선박 수주를 먼저 따내고, 부지 조성(1971년 4월), 조선소 기공식(1972년 3월)이 그 뒤에 진행된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 준공은 이보다 뒤인 1975년의 일이다. 수출주도 산업인 울산의 3대 산업은 1990년대에 들어 큰 호황을 맞는다. 조선 산업은 10년 초호황기 슈퍼사이클에 들어섰고 현대자동차는 2000년대에 오면서 ‘생산량 기준 글로벌 Top 5’로 올라섰다. 이후 2017년 서울에 1위를 빼앗기기 전까지 울산은 근 20년 동안 한국에서 일인당 GRDP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바로 울산의 호시절이었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울산의 역사를 미라클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연과 필연, 기획자와 실행자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석유 비축을 위한 기지로 출발해, 그 밑천으로 정유 공장을 짓기 위해 군사정부와 기업가들의 고려로 공업센터로 지정됐다. 눈이 밝은 정부의 기술관료가 중화학 요충지로 울산을 꼽았다. 그렇지만 그걸 실제로 실행했던 1970년대의 모험 자본가 정주영의 현대가 있었고, 잠을 설치면서 눈썰미를 가지고 도면과 기술을 베껴 오던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저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안전 요건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배를 짓고 자동차를 만들어 냈던 울산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만화 《드래곤볼》의 원기옥처럼 모두의 정성이 모여 노동자 도시이자 부자 동네 울산의 기적을 써낸 것이다. - 68쪽
지식 기반 경제 시대의 도래,
제조업 강국의 깃발은 내려도 좋은 것일까
울산의 위기가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호황의 한복판을 거치며 내부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국제 수급 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수익이 출렁였고, 자동차는 1998년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 충돌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분규에 휩싸였으며, 호황기가 끝난 조선 산업은 2010년대에 들어서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이를 전후로 제조업 전반에 대한 위기감이 우리 사회에 퍼져 나갔다.
이 책의 2부는 울산과 한국 경제가 처한 제조업 위기론의 심층 분석이다. ‘제조업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으니 지식 기반 경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진단은 과연 적절하고 타당한가? 이제 한국은 제조업 강국의 깃발을 내려도 괜찮은 시점일까? 울산과 같은 산업도시의 쇠퇴를 방치하고서도 한국은 기후 위기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퍼펙트 스톰’을 뚫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무거운 질문에 대해 우선 저자는 한국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부터 다시 환기시킨다. 한국은 제조업으로 지탱되는 국가다. 제조업 세계 5대 강국일 뿐 아니라 국민총생산의 27.1퍼센트를 제조업을 통해 번다(2020년 기준). GDP 중 제조업 비중이 한국보다 높은 국가는 아일랜드밖에 없다. 고용 관점에서 보아도 한국은 총 고용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25퍼센트로 OECD 국가 중 독일(27%)과 이탈리아(26%) 다음이다(2019년 기준).
서울이나 분당, 일산 같은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공장이 어디에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지천이 공업 지대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원, 평택으로 시작하는 산업 벨트가 나온다. 수도권의 상습 정체 구간으로 악명 높은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독산, 소하, 시흥, 안양 모두가 공단 지역이다. 4호선 도시철도를 타고 남쪽으로 평촌만 지나면 곧 군포산업단지나 안산의 반월국가산업단지까지 공단 지대가 펼쳐진다. 1호선 경인선을 탄다면? 서울만 빠져나가면 부천에 거대한 산단이 있고, 인천에 도착하면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길에 쏟아져 나오는 남동공단과 부평 GM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 74쪽
더 중요한 것은 기술 혁신이 산업 현장과 동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의 성장 동력이었던 제조업을 방치하고서 기술 혁신을 논하는 허망함을 경계한다. ‘제조업의 위기’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탈추격 혁신 담론’만 봐도 그렇다. 이 담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 초부터 당시의 제조 선진국인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도면을 베끼거나 완제품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원리를 익히는 역설계 방식으로 기술을 따라잡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런데 한국의 제조업이 기본설계 역량이나 원천 기술이 없다 보니 여전히 양산을 위한 사고나 소재·부품·장비(일명 소부장) 하도급 업체를 쥐어짜는 방식으로만 산업을 영위하여 혁신의 한계에 부딪힌다. 이대로라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조 선진국의 원천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중국을 위시한 개발도상국의 저렴한 원가 경쟁에 쫓기는 샌드위치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최초의 질문’을 갖고 기본설계를 해내면서 ‘빠른 추격자fast-follower’에서 ‘최초의 선도자first mover’로 변화해야 한다는 충고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하라’는 일견 공자님 말씀처럼 지당해 보이는 이 담론 역시 생각보다 현실성이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요컨대 경제지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이나 혁신 문제에서 생산 과정, 산업과 기업 간 연결망,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제조업의 중요성을 결합해서 사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의 제조 대기업은 ‘최초의 질문’과 함께 세계 시장에서 이미 ‘최초의 선도자’ 위치에 서 있다. 당연히 기본설계도 수행할 수 있다. 심지어 최초의 선도자 기업에 소부장을 제공하는 기업들 중 1차 협력 업체의 역량도 점차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연구개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도 세계 1등이다. 제조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에서 그들의 경쟁력 자체는 문제없으므로 문제제기의 방향이 틀릴 때가 많다. - 80쪽
R&D 투자율 1위 국가인 한국이 20년이 다 가도록 앵무새처럼 혁신과 선도 담론만 되뇌며 여전히 위기론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 문제를 내부 구조에서부터 파악해야 한다. 울산-제조업-대한민국은 세포-조직-인체처럼 상호 유기적 관계망 속에서 파악해야 비로소 총체적 진단이 가능하다. 이것이 울산을 제조업이나 한국 경제 전반과의 산업 연관관계 및 공간 지리적 분업 구조를 통해 살펴보는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울산의 딜레마,
공간 분업과 생산성 동맹의 와해
산업 현장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어 관찰하면 울산과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빠진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저자는 이를 크게 ‘노동의 공간 분업과 생산성 동맹의 와해’로 압축한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두 가지 층위에서 구상과 실행의 지리적 분리를 추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선 제조 대기업은 적대적 노사관계 때문에 파업이나 다양한 쟁의에서도 생산량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의 숙련에 의존하지 않는 체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5장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1987년 이후 노사관계가 적대적으로 흐르면서 기업은 노동자와 엔지니어가 현장에서 협업하기보다, 엔지니어가 현장에서 노동자와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 현대자동차는 점차 IT 기반 공정 관리 기술과 NC가공 기계 도입을 극대화하여 자동화를 촉진시키고 로봇 도입을 진행했다. 노동자가 반복 작업을 덜 맡아 개개인은 편했지만 현장에서 노동자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른바 ‘숙련 절약형 혁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 101쪽
‘공간 분업’은 산업혁명 중심지였던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 관찰된다. 일례로 근대 방직 산업과 기계 산업의 메카였던 영국 맨체스터 지역에는 원래 공장과 설계실이 함께 있었지만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본사와 설계실이 분리되어 금융과 정치의 중심인 런던으로 향했다. 1970~1980년대의 불황과 마거릿 대처 시절의 강경한 노조 정책을 거치며 맨체스터의 공장은 점차 쇠퇴했고 본사에서는 생산 거점을 인건비가 싼 아시아나 아프리카, 인도 등으로 옮겼다. 런던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는 전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오직 최적의 이윤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구상을 세웠으나 모공장인 맨체스터 공장은 그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와 유사한 일이 시차를 두고 울산에서도 재현되었다. 더구나 그 근저에는 노사의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이 자리 잡았다. 요컨대 미라클 울산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기업인, 관료, 엔지니어, 노동자, 지역민들 간 ‘생산성 동맹’이 와해된 것이다.
이에 비해 현대자동차, 좀 더 넓게는 한국의 제조 업체는 II 유형으로 생산방식이 구성됐다. 노사 간 극도의 불신이 생산직을 배제한 채 엔지니어링에 기반을 둔 혁신을 강제한 것이다. 요컨대 모듈화, 자동화, 정보통신기술의 도입 등이 노동자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다. 모듈화를 통해 싼 하청 업체의 노동력으로 인건비를 절감하고, 자동화를 통해 노동자의 숙련을 높이기보다는 단조로운 작업 커뮤니케이션만 높이는 방식으로 생산기술의 혁신이 주도된 것이다. - 161쪽
수 차례의 강도 높은 노사 대결은 양측에 커다란 트라우마를 안기며 결과적으로 담합적 노사관계를 형성했다. 이 담합으로 울산의 대기업 노조는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 고용 안정을 얻었지만 미래 자녀 세대의 신규 고용을 잃었고, 회사는 분규를 줄였지만 노동자를 생산성 향상 파트너에서 배제하는 기조를 본격화했다. 언제부터인가 대기업 노조가 국민의 신망을 잃기 시작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울산 노동자들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할 때나, 그 이후 1991년 골리앗 투쟁을 할 때만 해도 회사와 정부와 보수언론이 비난하더라도 노동자를 지지하는 우군이 사회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지나면서 현대자동차를 위시한 울산 대기업 노동자의 파업에 더 이상 연대의 시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 126쪽
결과적으로 2000년대 들어 울산의 노사는 각자의 입장에서 분주히 살길을 찾았으나 그 결과로 남은 것은 생산성 동맹의 와해와 치열한 각자도생의 싸움뿐이다. 영국 맨체스터가 겪었던 쇠락의 길을 울산이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피츠버그와 디트로이트,
기후 위기와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까지
그렇다면 울산과 한국 제조업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공간 분업과 생산성 동맹 와해, 인구 감소라는 삼중고 트릴레마 속에 영국의 맨체스터나 글래스고, 스웨덴 말뫼 등의 도시가 걸었던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해외의 여러 선발 사례들을 검토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 도시였던 디트로이트와 1970년대까지 철강 도시로 명성을 떨치던 도시 피츠버그의 사례는 흥미롭다.
GM(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까지 3개 자동차 회사가 있었던 디트로이트는 1950년대에 인구 15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1970년대부터 일본 자동차에 밀려 고전하다가 2009년 GM의 파산까지 겪으며 쇠락했다. 피츠버그는 철강 산업 패권을 일본(일본제철)과 한국(포스코)에게 차례로 넘겨주게 되자 1985년 기업, 시 정부, 대학 등이 함께 참여해 산업의 다각화를 위한 보고서 ‘전략 21’을 제출하고 기업의 본사와 금융, 보건 의료와 교육, 첨단 연구개발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채택했다. 덕택에 생산직 일자리 대신에 서비스 산업과 하이테크 부문의 일자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도시 재활성화를 40년가량 진행한 지금 피츠버그의 인구는 감소했고, 도시 전체 관점에서 인종 분리와 소득 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노동 계급 중산층’ 모델의 해체를 막지 못했다. 반면에 디트로이트는 지금도 생산직 비율이 20퍼센트를 넘길 정도로 노동자의 기존 일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세수 감소로 도시 재개발과 적절한 재구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도심이 슬럼화됐다.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의 사례가 울산에 주는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주력 제조업의 위기 상황을 전환의 관점에서 적극 대응하지 않을 경우 도시 자체가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생산기지로서의 입지가 약화되는 상황일 때 재정 문제를 겪으면서 적극적으로 도시 전환에 나서지 못하고 슬럼화와 인구 유출을 겪게 됐다. 다른 하나는 도시를 고도화하더라도 단단한 중산층을 육성할 수 있는 제조업 일자리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 3대 산업이 여전히 건재한 울산에서는 울산의 현 위치에서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즉 세계 1위 조선소, 세계 최대 규모의 양산이 가능한 자동차 공장, 여전히 견고한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만들어 내는 역동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 304쪽
저자는 해외 선발 산업도시의 과거 사례를 넘어 앞으로 다가올 RE100, 수소경제, 기후 위기 등 새로운 글로벌 환경 변화가 울산 3대 산업과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력을 폭넓게 검토한다. 국토 균형발전의 관점에서 부산, 울산, 경남의 3개 광역을 연결하고 통합하여 수도권 쏠림에 대응하자는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 역시 신중하게 필요성을 따져 본다. 이 책의 4부는 이처럼 한국의 산업도시들과 우리나라 제조업의 앞날, 대한민국호의 미래 비전까지 당면한 과제를 시공을 넘나들며 살펴본다.
맨체스터가 일방적 쇠락,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가 하나를 얻지만 다른 하나를 잃는 저진로 전략이라면 저자는 울산과 한국 산업도시들의 ‘고진로 전략high-road strategy’을 제안한다. 최근 진행되는 미국의 제조업 부활 정책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조업 고용 비중이 1979년 22퍼센트에서 2019년 9퍼센트까지 하락한 미국은 정리해고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숙련 노동자가 현장을 떠나면서 생산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기업은 그럴수록 노동자를 훈련시키기보다는 자동화 설비 등 생산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 해결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었고 산업도시가 모인 중서부 러스트 벨트는 노동자 정리해고와 공장 철수로 황폐화되었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은 제조업을 부활시키며 첨단 산업의 성과를 연계시키는 전략으로 기조를 바꾸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 및 학계는 ‘제조업 재활성화Remaking America, Revitalization of the US manufacturing’를 목표로 하는 다양한 정책을 진행했다. 해외로 나간 공장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국내로 복귀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도 시작했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가장 많은 이들에게 고임금을 제공할 수 있는 산업이고, 소수 민족과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사회적 계층 상승(이동성)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하는 안정적 산업이다. (…) 더불어 첨단 산업에 기대하는 혁신 역시 제조업의 연구개발과 생산 과정을 제외하고 이해할 수는 없다. - 373쪽
울산의 고진로 전략은 먼저 울산이 가진 현재의 산업, 기술적 역량을 면밀하게 재평가하여 지속 가능한 제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이 바탕이다. 고진로 전략은 생산성 동맹의 복원을 필수적으로 요청한다. 노동자는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을 보장받고, 기업은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보장받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산업 전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본과 노동 차원을 넘는 지역과 정부의 역할도 요구된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 연구와 생산의 분리라는 공간 분업의 문제를 국토 균형 발전 및 제조업 부흥의 관점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재검토하고 지원책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 이해관계를 넘어 정부와 지자체, 대자본과 노동조합 등 모든 주체가 국가의 미래와 산업 전망을 함께 논의하는 정치적 거버넌스의 형성이 필수이다.
21세기 기후 위기·4차 산업혁명이라는 글로벌 수준의 전환과 저출생 고령화 및 지역 소멸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 미증유의 재생산 위기 속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제조업·에너지·국토계획의 전환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이 펼쳐지길 희망한다. - 417쪽
노동자 중산층의 꿈과 산업 가부장제의 그늘,
청년이 희망을 잃는 도시 혹은 나라에 대한 진단
워낙 방대한 주제와 첨예한 논쟁거리를 가득 담은 책이기에 보도자료에서는 주로 산업사회학, 노동사회학적 논의에 초점을 두고 소개했지만,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젠더, 계층 이동 사다리, 지방 소멸 등 정통 사회학 고유의 주제를 중심으로 읽어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사회적 갈등은 구체적인 역사와 경로, 살아 숨쉬는 이해당사자들의 대립에서 발생하는데 이 구체성을 선명히 부각시킨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한 예로 책에서 울산 쇠퇴의 한 이유이자 지난 고도 성장 시대의 그늘로 지적하는 ‘산업 가부장제’의 문제를 살펴보자. 산업 가부장제는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의미한다. 울산은 생산직 노동자 외벌이로도 중산층 수준의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노동자 중산층’의 꿈을 실현한 도시이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 경로에서 울산은 산업 가부장인 아버지들의 일자리는 지켰지만 역설적으로 그 자녀들이 들어갈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최근 10년간 여성 고용률은 전국 최저 수준을 맴돌았다. 일반적인 가부장제의 기준으로 볼 때 보수 정서가 강하다는 대구 경북보다 여성의 노동 시장 진입에 더 냉담했던 도시가 울산이다. 많은 공단을 주축으로 짧은 역사 속에 고도성장을 이루며 가정과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산업 가부장제에 관한 저자의 논의는 젠더와 계급 계층 갈등에 대해 현실에 기반해 이해하도록 한다.
대학은 또 어떠한가. 세계적 수준의 3대 산업이 포진한 유리한 환경이지만, 산학연 협동의 모델이 될 수도 있었을 울산의 대학들은 정규직을 뽑지 않는 지역 노동 시장과 거의 대부분의 R&D 연구소가 천안 분계선 너머에 존재하는 현실에서 지방대학의 한계에 갇히고 만다. 대학을 바탕으로 주 정부의 지원과 벤처 캐피털이 결합해 첨단 산업의 성장을 선도한 실리콘밸리와 극명히 대조되는 사례이다. KTX로 두 시간이면 닿을 좁은 국토 안에서 지방 소멸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청년이 발을 붙이지 못하고 여성이 떠나는 도시는 좀 더 의미를 확장해 보면 오늘의 한국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각자는 열심히 달려왔는데 결과적으로 모두가 힘든 현실을 우리는 언제까지 그대로 두고 볼 것인가? 아버지가 젊은 시절 울산 용접공이었고 자신도 대학 졸업 후 조선소에서 일했던 저자는 “평범한 노동자도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회의 꿈을 포기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울산이라는 한 산업도시에서 출발해 각자도생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실과 과제를 묵직하게 파고드는 이 문제적 저작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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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ong88 2024-07-09 공감 (1) 댓글 (0)
중공업가족의 유토피아 재밌게 봤었는데 이번 책은 그에 못미치는듯... 내용도 사실 다른 책에서 봤던 것들이 너무 많고 구매
ahhah2865 2024-04-2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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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해 본 한국 제조업의 미래 새창으로 보기
한국은 제조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나라로 지금도 여전히 제조업 강국으로 통한다. 울산은 대표적인 제조업 도시인데 그런 울산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울산의 현재를 진단하고 과거는 어떠했으며 미래는 어떨 것인지 예측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사회 문제에 멀어지지 않기 위해 매일 신문을 챙겨 보고 주간지를 구독한다. 덕분에 한국 산업의 문제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균형성, 나아가 원청과 하청 근로자 간의 차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다.
만약 이 책이 울산의 현재를 바라보고 문제점만을 진단했다면 다른 책들과 별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가진 차별점은 울산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기까지의 역사와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 나름의 분석을 통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전개부터 흥미를 끌어들인다. 2030년 울산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그려보고 이후 울산의 역사를 훓은 뒤 울산의 현재를 여러 장에 걸쳐 진단하는 방식이다.
2030년 울산의 미래는 암담하다. 정년 퇴직을 한 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젊은이들은 정규 일자리가 없어서 비정규직을 전전한다. 여성 구직자의 문은 애시당초 좁은 문이라 말할 것도 없다.
철강, 자동차, 조선 3대 산업을 대표하는 울산의 시작은 과연 어떠했을까. 나는 당연하게도 1960년대 국가의 주도 하에 공공 프로젝트로 공단이 들어서면서 시작되어 현대 정주영 이하 인력에 의한 개발 노력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일제강점기가 시작이고 그것도 일본인의 주도 하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최근에는 지역사 연구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연구자를 제외하고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지역사는 잘 알기가 어렵다. 나조차도 그렇다. 아무튼 잡설이 길었는데 울산은 이케다라는 일본인에 의해 태평양전쟁을 위한 공업도시이자 석유 비축기지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저자는 공업도시 울산을 이해하려면 그 시작이 어떠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공감하는 바였다.
울산은 ‘공업항, 어항, 연락항, 무역항, 공항‘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분류됐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엮으면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울산의 역할이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이케다의 구상 아래 당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출발한 전투기의 급유지로 울산을 선택했다. 급유를 한 후 다시 전투기를 띄워 중국 또는 러시아와 교전 지역인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바로 출격할 수 있는 중간 기착지였던 셈이다. 물자는 배를 통해, 인력은 기차를 통해, 전투기는 바다를 통해 움직일 수 있는 울산. 모든 것을 병참기지로서의 기능에 최적화해 설계했다고 말할수 있다. - P50~51
울산이 왜 하필 선택되었는가에 대해서 여러 가설들이 존재한다. 앞서 보았던 입지적으로 유리했기에 선택되었다는 설 이외에 정유 공장을 준공하고 (멀리 가지 않고 가까이에 공급하는 것이 유리하므로) 석유화학단지 건설로 출발했다는 설, 그 외에 정주영을 비롯한 기업가들이 사업성을 보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정치적인 동맹을 맺어 진행했다는 설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결국 이 설들이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공업 센터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 주도적으로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부터 울산에서는 '공부 못하면 공장 가면 되지.'가 가능했다. 게다가 울산의 산업 노동자들은 IMF 이후 여러 번의 노조 투쟁을 거쳐 정규직 노동자들의 급여 수준은 많이 올라갔다(일부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이들을 '황금 노조'라 부르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짐작하겠지만 정규직 노동자에 한해서 그런 것이다. 그보다 훨씬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하청 노동자들의 급여 수준은 정규직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을 비롯한 국제적 요인, 국내 불경기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원자재값이 상승하고 투자나 소비 심리가 위축된 지금 제조업은 무사할까. 기업이 현재에 안주해 투자하지 않고 정규직도 신입이 아닌 경력직으로만 채운다면 과거 혁신을 주도해 성장할 수 있었던 결과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울산은 연구개발과 설계 조직이 수도권 등으로 다 옮겨 가고 생산 단지마저도 떠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거 생산 현장과 연구 개발이 한곳에 있어 실시간 협업이 가능했던 것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이다(실제로 한국조선해양은 판교에 연구소를 세움). 물론 요즘 세상에 단지가 따로 존재해도 협업은 가능하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면 몰라도 제조업은 실제 장비들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테스트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원격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울산에 필요한 전문 산업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세워진 울산과학기술대(UNIST)는 시민의 기대도, 산업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으면서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업은 신규 인력은 꺼려 하는 동안 일자리가 없는 우수한 엔지니어들은 수도권에 눈길을 돌리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는 형국이다.
남편을 따라 온 여성들도 일할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생산직 일자리에서 배제된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밀려나있거나 생산직이 아닌 서비스업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저자는 울산의 미래를 제시하며 스마트 주력 산업을 고도화시키거나 데이터 센터를 포괄하는 4차 산업 혁명을 이끄는 신산업의 육성을 꺼내든다. 이를 위해서 예시를 든 것이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의 두 산업도시였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두 도시는 대표적인 미국의 산업 도시로 쇠퇴를 겪었으나 한쪽은 살아나지 않았고 다른 한쪽은 제조업 대신 서비스업과 신산업을 통해 도시의 재구조화를 이루어냈다.
그렇다면 울산은 후자의 모델을 따라가야 하는가. 저자는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제조업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응책은 있어야 하지만 후기 산업 모델을 따르면서도 중산층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확보가 되어야 도시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좀 뻔한 책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가 읽을수록 꽤 잘 정리된 책이라 여겼다. 개인적으로 읽으려고 했다면 후순위에 밀릴 확률이 큰 책인데 함께 읽는 책이라 읽을 수 있었다. 올 초에 나온 책인데 이런 책은 시기가 지나면 시의성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덕분에 적절한 때에 읽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필 책 나눔 토론이 있는 날 외근이 잡혀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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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4-11-25 공감(18)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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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새창으로 보기 구매
- 제조업과 산업도시, 한국 노동자 중산층의 실현 가능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사회학자 양승훈의 책. 자연스레 전작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오월의봄)을 떠올리게 한다. <중공업 가족…>이 거제 조선소 재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제조업과 노동계급의 형성과 위기의 한 전형을 사회학‧인류학적 르포르타주 형식을 배합해 그려냈다면, <울산 디스토피아…>는 더욱 학술 보고서적인 접근을 통해 울산을 중심으로 산업도시, 노동계급의 한 전형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미래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기획이다.
- 생산성 동맹: 저자는 기본적으로 ‘코포라티즘’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책에서는 ‘생산성 동맹’이라고 자주 표현된다. 자본, 노동, 국가의 산업 발전을 위한 동맹을 뜻한다. ‘코포라티즘’의 장점은 계급투쟁의 시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산업자본주의 국가의 세부적이고 정책적인 발전 동학을 파악하는 동시에 노동대중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 관점을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점, 단점은 (보기에 따라) 자본의 이익을 ‘너무 존중’하는 관점을 견지(또는 자본주의 산업 국가의 발전을 사회의 ‘유일한 대안’으로 확정하고 있다는 점)한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은 ‘생산성 동맹’ 성립을 충실하게 지향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어찌 되었든 ‘생산’과 ‘제조업’에 천착하는 이 저자의 저술에는 항상 큰 관심이 간다.
- “한국에서 평범한 노동자 가족 3대를 꿈꿀 수 있을까?”, “노동자가 성실히 일해서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꿈”, “시험 경쟁을 통과하지 않고 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 집을 사고 살림을 일구고 아이를 키우며 제 나름의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며 중산층이 될 수 있다”(10장). 저자는 한국에서 1960년대 후반에 시작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200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현실에 근접했던 곳의 대표 도시로 ‘울산’을 지목한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이라는 한국의 수출형 제조산업 핵심들이 모여 조성된 이 도시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쇠락하는 현재의 상황은, 울산이라는 한 도시의 쇠락이 아닌 한국형 모델의 붕괴를 뜻한다는 것. 그러한 측면에서 ‘울산 디스토피아’는 곧 ‘한국 산업도시’의 자멸 과정을 뜻한다. 한국형 모델의 여러 한계지점들(특히 “산업 가부장제”적 양상)을 고려하더라도, 어쨌든 제조업이라는 실물을 통해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하고 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이 그 기여도를 인정받는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의 경험 모델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 구상과 실행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산업도시에서 말단 생산기지로 변모하는 울산의 현재에는 노, 사, 정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자본은 사회적 의의와 지속 가능성을 무시한 채 구상 기능의 분리와 노동의 생산 비중 저하(자본을 위한 기계화)에 매진하고, 노동계급은 생산성 향상과 발전을 위한 시야를 확보하기보다는 일부(노조가 확보된 대기업 원청 소속)의 ‘안정성’만을 추구했으며,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장기적 발전 계획에 대해 숙고하지 않거나 각 지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상황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양질의 일자리’는 소멸하고 있으며, N차 밴더와 사내하청의 이익은 일방적으로 희생되고 생산과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가 일상화되고 있다. 새 정규직 일자리는 희소하다. 불안정한 일자리는 많지만 청년과 여성은 대학 또는 취업을 계기로 지역을 떠나고, 이주노동자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대책만 고민되는 현 상황은 심각한 위기다. 울산의 인구는 줄고 있으며, 거주 인구 100만 명이라는 이른바 광역시 유지 기준을 6년쯤 후에는 충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노사정이 함께하는 경남권의 제조업 중심 메가시티를 주장한다. 서울-경기로 대표되는 (실행과 분리된) 구상, (실물과 유리된) 금융, (지역 전반을 하청화하는) 원청 ‘메가시티’의 대안으로 경남 권역(부울경+)을 묶어 내자는 주장인데, 맥락에 일부 수긍되면서도 일종의 ‘지역주의’ 느낌으로도 읽히긴 했다. 산업도시의 위기 극복이 지역의 문제를 넘어선 국가 전체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서울과 울산의 관계뿐만 아니라, 울산이 광주, 강원, 제주 등 ‘전국’과 맺는 관계도 함께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자립적 경제 구조 형성과 이 과정에서의 수많은 사회적 노동의 호혜적 창출이 이 점에 있어서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소멸하는 대한민국’의 대안 출발점이 제조업인 것은 적절하지만, 그것이 소수 수출 산업에만 얽매일 수는 없고, 노동은 더욱 그렇게만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저자가 지향하는 ‘전 노동자의 중산층화’와 ‘산업 가부장제 극복’이라는 “꿈”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분야 연구자들이 실현 방안을 찾아내야 할 중요한 목표지점인 것은 분명하다. 희소하고 중요한 문제의식을 지닌 저자의 차기 연구 과제와 저술 방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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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rgy flow 2024-08-28 공감(1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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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lbird 2024-04-0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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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도시 울산의 미래 새창으로 보기
경남대 사회학과 양승훈 교수의 신간입니다.
전통적이지만 마치 플랫폼과 디지털경제에 밀려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잘못 알려진 제조업 (製造業,manufacturing)과 그 제조업의 역사가 거의 100여년이 된 산업도시 울산(蔚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한 연구서입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제조업 강국으롯 GDP에서 한국과 비슷하게 제조업 비중을 보이는 나라는 독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중심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어서인지, 금융이나 IT기업들만큼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지나친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에 따른 결과이고 코로나 19이후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을 재편하며 해외에 있는 공장들을 특히 전략적인 반도체 공장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시작한 것만 봐도 경제의 근간이 제조업인건 분명합니다.
책이 나온 때가 2024년 3월이니 출간된지 2달밖에 안된 책으로 본문만 411쪽입니다.
저자가 분석한 울산의 현재의 문제점은 10장에 잘 정리되어 있고 다음과 같습니다.
1. 적대적 노사관계
2.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원청 정규직 -하청 비정규직)
3. 산업가부장제 (남성만 생산직에 고용하는 관행- 남성 가장이 가정을 부양하는 경제체제)
위의 사항과 함께 울산을 대표하는 3대 산업(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에 속한 대기업 생산직 위주로 체제가 공고히 이루어져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울산에 일제때 개발되다 해방과 함께 멈춰진 정유공장을 완성해서 시작된 산업도시 울산은 이후 현대의 대대적인 투자로 조선소와 자동차공장이 들어서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의 원형을 갖추었습니다.
조선소와 자동차공장에는 초기에 돈을 벌기 위해 울산으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짧은 기술훈련을 마치고 정규직 생산직으로 고용되었고,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들도 생산기술과 공정기술 적용을 위해 현장의 생산직 기술자들과 협업을 이루어 나름의 생산관리 노하우와 기술숙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가 대략 1970-1990년대까지 입니다. 해외 경쟁사의 완제품을 분해해 원리를 파악해 기술을 익히는 reverse engineering 을 통해 기술을 익혔는데 이 당시만 해도 한국은 후발개도국으로 선진국을 추격(follower)하는 실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998년 IMF국제금융위기 이후 현대자동차의 경우 처음 해고를 경험하면서 사측을 불신하기 시작하여 그 이후로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은 이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것이 노조활동의 중심이 됩니다.
1987년 이전 배운것 없고 가진 것 없던 공장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다 이후 1987년 6월 대항쟁이후 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처우가 개선되기 시작합니다.
해고가 트라우마로 남은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은 이후 사측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 전과 같이 회사와 협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노력울 하지 않게되고 기술 숙련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기술자가 생산현장에서 경험으로 축적하는 노하우인 숙련도에 무관심하게 되면 노동자 본인에게도 좋지 않지만 갑작스런 해고의 트라우마가 더 컸던 겁니다.
이렇게 적대적 노사관계는 1998년 대대적인 해고를 통해 형성되고 회사는 이후 더이상 정규직 생산직을 신규로 뽑지 않고 부족한 인력은 사내하청 비정규직과 모듈화를 통한 생산공정을 통해 원가를 하청기업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이렇게 노동시장이 원청 정규직과 하청 비정규직으로 나뉘면서 회사는 더이상 전투적인 생산직 노조와 갈등하지 않게되고 생산직 노조는 비정규직들이 자신들 대신 해고되는 상황을 용인하게 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됩니다.
이전에 경험이 풍부한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도에 기대어 향상된 공정기술과 품질은 이후 자동화공정으로 대체되게 됩니다. 서로 상생을 논의하기보다 경영진은 사실상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최소한으로 들어주면서 공장을 자동화해 노동자를 장기적으로 배제하기로 한 것입니다.
적대적 노사관계는 사실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특히 보수층의 문제입니다. 특히 보수정치인들 중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대화상대로 상대하지 않는 ‘오만’을 보여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난 자신은 후한 대접을 받아야 하고 못배운 노동자들은 자신보다 대접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애서 허우적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업가부장제는 울산에서 발견되는 고용관행으로 지난 50여년 동안 울산의 대공장 생산직은 남성이고 정규직으로 고용되어와서 사실상 여성들에게는 고용 자체가 봉쇄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처음 울산에 들어온 청년들이 못배운 체 공장에 들어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남성 가당 혼자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체제였다면 그 자녀들은 성별과 관련없이 모두 대학에 진학했고 울산은 한 때 대학진학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문제는 이 자녀들이 울산에 정착하려 할 때 마땅한 직업을 찿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기술연구소가 수도권으로 이동해서 기술연구와 생산이 이미 분리된 상태로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들이 울산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거기에 고소득 직종이 대부분 정규직 생산직이라 문과전공이나 여성 대학졸업생은 아예 진입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문과출신이 울산에 남으려면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거나 여성의 경우는 비서직 같은 사무보조직이나 어린이집 교사 같은 직종으로 가거나 아니면 전문직인 의사, 변호사가 되는 경우 뿐입니다.
기회가 없다고 판단되면 울산을 떠납니다.
즉 현재 울산의 노동시장구조는 1987년 이후 생긴 남성 정규직 생산직 위주로 견고히 구축되어 있고 회사에서 더이상 정규 생산직을 채용하지 않기 때문에 현 시스템의 수혜자들이 모두 은퇴하고 나면 무너지게 되어있는 체제입니다. 아버지가 보던 해택을 그 자녀들은 전혀 볼 수가 없고 따라서 울산을 떠날 요인이 될 뿐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실을 오직 한세대만 누리고 그 이후 세대가 전혀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울산을 디스토피아로 보는 이유이고, 이 사실을 대한민국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MZ세대가 연애도 결혼도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고 개인주의적인 건 울산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에 거의 모든 자원이 집중된 현실에다 대학졸업생들이 원하는 직업도 회사도 너무나 제한적입니다. 대기업 이외의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영세하고 수익이 좋지 않은 구조적 요인으로 처우가 대기업같지 않으니 말이죠.
따라서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주거비와 생활비가 높은 현상황을 그대로 둔채,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돈을 버는 젊은이들에게 결혼하면 출산을 지원한다는 캠페인하는데 돈을 쓰는 건 정부가 무책임하게 세금을 낭비하는 겁니다.
더구나 결혼과 출산를 아예 하지 않는데 다자녀부터만 혜택을 주는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언급을 소개할까 합니다.
저자는 제조업 생산직이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편안히 산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산업이 제조업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적당히 사는 보통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가 선진국이지 공부 많이 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만 잘사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이 산업의 근간이라는 건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고 화려해보이는 금융이나 플랫폼도 공장과 물류센터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지루해 보이는 제조업이 지난 50년동안 운영되어 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운영되는 게 중요합니다. 따라서 공장노동자들을 배제한채 생산성을 논의하거나 보수층에서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건 미래를 위해 부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적당히 일해 중산층이 되는 구조를 만들지 않고 방치한체 자동화 로봇으로만 이루어진 공장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건 무논리이자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AI와 자동화가 워낙 핫하니 마치 모든 것들이 사람없이 될 것처럼 과장되어 포장되어 있는데 일부 무인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전면적 무인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과문하지만 AI란 것이 결국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기계를 학습시키는 건데 컴퓨터과학자들이 알고리즘 논리는 잘알아도 산업이나 생산관리 그외 여러 고려사항을 모두 안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에 정보를 넣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모두 결과와 그에 기반한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합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한국에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엔지니어나 과학자가 매우 드물다고 보기 때문에 AI의 영향을 과장하는데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자동차 혼자 움직이는 자율주행 자동차(Autonomous Vehicle)가 초기 호들갑과 달리 비즈니스모델로서 사실상 실패된 체로 구현이 연기된 상황을 보면 무인공장 역시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공장노동자를 배제한 이런 논의는 이들 노동자들이 공장의 소비자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소비자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를 배제하는 이런 논의는 기본적으로 넌센스라고 봅니다. 번지르르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모르겠습니다.
효율적으로 제품을 만들어 창고에 쌓아놓는 것이 목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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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 2024-05-31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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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도시 울산의 지속가능성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기를 상징한다. 새창으로 보기
나는 울산에서 나고 자랐다. 울산이 고향이라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뻔하다. 그리고 울산 출신들의 대답도 대체로 뻔하다. “노잼도시”라는 자조와 “그래도 우리 GDP가 1등(1인당 GRDP)”이라는 자부심. 많은 청년들에게 ’울산은 노잼이지만 그래도 부자인 산업도시‘ 정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식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과연 청년들이 떠나는 노잼도시는 산업도시는 미래에도 굳건할 것인가.” , “우리는 2030년, 2050년에도 지역 GDP 1등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인가”.
신간 <울산 디스토피아>의 답변은 단호하다. 울산의 미래는 어둡다. 저자 양승훈은 대우조선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사회학자이다. (전작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는 도시사, 경제지리, 노동•산업사회학, 면접조사 등의 틀을 통해 산업도시 울산을 정밀하게 조망한다. 구성은 구조적이고 내용은 디테일하다. 문제 진단을 넘어 개선 방향에 대한 제언도 빼놓지 않았다.
산업도시 울산의 미래에 빨간 불이 켜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기업의 구상 기능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엔지니어와 노동자가 현장에서 밀착하며 노동이 혁신을 이끌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고학력 엔지니어의 비중이 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이런 이유로 기업의 구상 기능은 수도권으로 떠났고, 울산은 생산기지 이하로 전락하고 있다.
둘째, 적대적 노사관계가 빚어낸 생산방식과 노동 이중구조의 문제다. 노조를 불신한 기업은 노동자의 숙련을 중시하자 않는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정규직 중심의 노조는 울타리 바깥의 노동자와 연대하거나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데 무관심하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하청 노동이 확대되고, N차밴더 구조가 만들어졌다. 울산에선 과거와 같은 안정적인 생산적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셋째, ‘산업가부장제’로 정의되는 고용시장 문제다. 남초 산업도시인 울산에서 여성의 커리어는 매우 취약하다. 통계만 보아도 남녀 임금격차가 극심하며, 청년 대졸자가 갈 만한 사무직 일자리도 부족하다. 이런 세 가지 요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울산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큰‘ 위기감을 느끼진 않는다. 물론 모두가 ‘울산은 청년들이 떠날 만한 곳이고 언젠가 디트로이트처럼 될 것’이라 얘기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 일뿐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울산의 3대 주력 사업(자동차-조선업-석유화학)은 견고하며, 수출 제조업 대한민국은 그런대로 잘 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 ”울산은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서서히 질식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제대로 된 대안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은 부울경 메가시티나 전략적 산업정책 같은 구상에 힘을 못 쓰고, 그린벨트 풀어 산업단지 더 유치하겠다는 정도의 현상유지적 해법에 그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와 정책 생태계 전체가 위기를 돌파할 만한 해법을 찾는 데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 문제는 ‘저성장 - 제조업 위기- 지방소멸 - 노동 이중구조 - 초저출산’ 등으로 얽혀있는 대한민국의 구조적 위기와 맞닿아 있다.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는 울산 문제가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닌 산업화 이래 대한민국이 걸어온 제도적 경로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1등 산업도시인 울산조차 무너진다는 것은 지방/비수도권 권역의 몰락을 상징한다. ‘성실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노동계급 중산층의 약속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울산의 위기는 전환기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이다.
‘울산 디스토피아‘는 ’코리아 디스토피아‘의 첫 번째 에피소드다. 지금의 한국정치와 초저출산 그리고 K문화의 영광은 ‘디스토피아 시리즈의 프리퀄’ 격이다. 성장 동력은 떨어지고 양극화는 극심해지며 그 과정과 결과는 각자도생과 포퓰리즘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나라의 미래는 어디로 흐를 것인가?
‘그래서 어쩔 거냐’는 푸념을 넘어, 구조개혁과 사회적 합의를 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울산 지역사회를 넘어, 여기저기서 많이 읽히길 소망한다. ( 저자는 부울경 메가시티, 3대 제조업의 미래에 관한 얘기도 빼놓지 않고 있다. ) <울산 디스토피아>가 우리 모두의 미래에 관한 풍성한 논쟁을 만들어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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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omics 2024-03-2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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