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4

독립운동 열전 1 - 잊힌 사건을 찾아서 | 임경석

독립운동 열전 1 : 알라딘
독립운동 열전 1 - 잊힌 사건을 찾아서 | 독립운동 열전 1
임경석 (지은이)푸른역사202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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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00자평(4)리뷰(6)


380쪽이 책이 포함된 세트


책소개
독립과 해방을 위해 온힘을 기울인 인물들, 개인의 일신을 위해 그들을 배신했던 이름들,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진 갖가지 사건들을 찾아 떠난다.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 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검토하는 연구에 힘을 기울여온 저자 임경석 교수는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 중 기억되어야 함에도 잊힌 사건들을 34꼭지에 담아 펼쳐 보인다.

저자는 특히 한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주목한다. 지도적 지위에 있던 사람이나 영웅적 업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발굴한다. 또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게 주된 지위를 부여한다. 독립운동에 몸 바친 사람들 중 다수가 사회주의자였음에도 오랜 시간 그들이 공식적인 독립운동 역사서에서 배제되어왔음을 지적하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제외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저자의 이 같은 노력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독립운동 사건과 무명 독립운동가의 헌신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목차


《독립운동 열전》을 펴내면서

1장 망명
01_《소년》 잡지 권두시의 비밀
02_《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망명길
03_상하이 망명객들의 삶―심훈의 소설 《동방의 애인》

2장 김립 암살 사건
04_누가 독립운동가를 쏘았는가―김립 암살 사건 1
05_동지가 동지를 쐈다―김립 암살 사건 2
06_모스크바 지원금의 진실―김립 암살 사건 3
07_독립군 부대를 107개나 더 만들 수 있었다―김립 암살 사건 4

3장 15만 원 사건
08_일제의 돈을 갖고 튀어라!―‘15만 원 사건’ 1
09_밀고로 스러진 무기 마련 꿈―‘15만 원 사건’ 2
10_의병투쟁의 거목 엄인섭의 두 얼굴―‘15만 원 사건’ 3

4장 의열투쟁
11_경성 천지를 뒤흔든 김상옥의 총격전
12_의열단 사건이 경이로운 이유
13_불발에 그친 의열단의 황포탄 의거
14_다나카 저격범 오성륜의 탈옥
15_혁명가로 키우려던 김익상의 딸은 어디로 갔는가

5장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16_독립지사 정순만과 개척리 살인 사건
17_개척리 살인 사건의 여파, 이상설․안창호 등돌리다
18_독립운동가 찍어낸 일본 비밀경찰, 기토 가쓰미
19_첫 번째 독립 정부 계획―대한광복군 정부와 권업회

6장 배신
20_역사에 정의는 있는가, 밀고자 오현주
21_임시정부 파괴공작에 나선 김달하
22_3․1운동 학생대표 김대우의 변절
23_젊은 여성 동지를 팔아넘긴 독고전
24_밀정이 된 독립운동가 김성근

7장 비밀결사
25_조직 살리려 안간힘 쓴 책임비서 김재봉
26_조선공산당 제2대 책임비서 강달영의 하루
27_비밀결사를 다시 일으킨 수배자, 권오설
28_‘혁명의 별’을 새긴 강철관에 잠든 채그리고리
29_공과 엇갈리는 제4대 책임비서 안광천

8장 옥중투쟁
30_법정에서도 당당히 항변했던 박헌영
31_고문에 희생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길양
32_예방구금에 맞서 105일 단식투쟁으로 옥사한 이한빈

9장 국제주의
33_코민테른 특사 존 페퍼의 조선 여행
34_12월테제 조선어 필기본의 발견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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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 이 책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이지요.
P. 20 《소년》 잡지 권두시는 바로 신민회 망명자들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었다. …… 기약 없이 망명길에 오르는 동지들을 바라보는 젊은 최남선의 가슴 속에서는 격정과 비애감이 끓어올랐다. 그는 망명자들을 축복하는 두 편의 시를 썼다. 〈나라를 떠나는 슬픔〉과 〈태백의 님을 이별함〉이 그것이다.
P. 29 이미륵은 …… 유럽 유학길에 올라 독일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 그는 일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헌신했다. 대지주의 후손이자 의사라는 전문직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위한 싸움에 투신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은 그의 희생과 헌신에 빚지고 있다. 공공선을 위해 기꺼이 소중한 가족과의 생이별까지 감수했던 이미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접기
P. 37 작가 심훈은 1920~1921년 상하이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다. 심훈 자신이 상하이 망명객이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녹여 이 소설(《동방의 애인》)을 썼다. 상하이의 거리 풍경에 관한 묘사라든가, 상하이에서 막 발아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 및 단체 활동 양상에 관한 서술 등을 보라. 어떤 사료보다도 생생하게 역사적 진실을 전해준다. …… 이렇게 《동방의 애인》은 1920년 상하이 한인 망명자 사회의 내면, 특히 사회주의가 처음으로 수용되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형상화한다. 접기
P. 51 김립에게 방아쇠를 당긴 사람들은 …… 바로 오면직과 노종균이었다. 그들은 임시정부에 소속된 ‘경호원’이었다. …… 당시 상하이에서는 …… 경호원은 임시정부 내무부 소속 직원으로서 경무국장의 지휘를 받아 공공업무에 종사하는 사람, 다름 아닌 경찰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P. 53 왜, 무엇 때문에 그랬는가? 경무국장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모스크바 자금 40만 루블은 소비에트러시아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지급한 것인데,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와 비서장 김립이 공모하여 횡령했다고 한다. 이동휘와 김립은 임시정부 ‘공금 횡령범’들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립은 그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혐의가 있었다. 김구에 따르면, 김립은 비리를 저질렀다. 김구는 김립이 “북간도 자기 식구들을 위하여 토지를 매입”했고, “상해에 비밀리에 잠복하여 광동 여자를 첩으로 삼아 향락했”다고 비난했다. 접기
P. 79 김립은 내부의 적에게 목숨을 빼앗겼다. 그의 죽음은 독립운동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왔다. 상하이 망명자들 사이에 존재했던 동지적 유대감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정견과 조직이 다르면 한때 동료였던 사람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위구심을 만연케 했다. …… 그뿐인가. …… 김립의 죽음은 모스크바 자금의 추가 수령을 불가능하게 했다. 김립 암살 사건을 계기로 모스크바 자금 집행에 관한 의혹이 제기됐고, 이 의혹을 중시한 코민테른은 자체 감찰을 실시했다. 그 결과 약속된 총 지원금 가운데 잔여액의 지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접기
P. 80 김립 암살 사건은 일종의 국가폭력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내각의 결정에 의거하여 경무국이 집행한 이 사건은 한국 독립운동에 큰 위해를 가져온 불행이었다. …… 김립은 오늘날에도‘공금 횡령범’이라는 불명예 속에 갇혀 있다. 사후 근 백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범한 정책적 과오의 그늘 속에 놓여 있다. …… 그를 억누르고 있는 허위의 낙인을 지워내고, 그 자리에 그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꽃을 한 다발 놓아야 할 때이다. 접기
P. 93 15만 원 사건의 네 주역이 김하석과 더불어 중국-러시아 국경을 넘은 것은 사건 발생 후 3일째 되던 날이었다. …… 기선에 탑승한 네 청년은 안도감을 느꼈다. 일본은행의 현금 수송대를 습격하여 얻은 자금으로 조선 독립군을 무장시킨다는,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였던 계획이 성공한 것만 같았다.
P. 107 엄인섭嚴仁燮이었다. 15만 원 사건 주인공들의 거처를 일본 총영사관에게 알려준 사람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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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임경석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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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한국근대사 전공.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 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검토하는 연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2003), 《이정 박헌영 일대기》(2004),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2008), 《모스크바 밀사》(2012), 《독립운동 열전》(전2권, 2022) 등이 있다.

최근작 : <역사논문 작성법>,<동아시아 전환기 정치적 갈등과 사상적 모색>,<[단한권]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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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지금부터 조선 젠더사>,<불량한 책들의 문화사>,<문화적 기억과 초기 문명>등 총 319종
대표분야 : 역사 5위 (브랜드 지수 597,78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그러나 잊힌
34꼭지에 담긴 독립운동 사건들

《독립운동 열전 1―잊힌 사건을 찾아서》는 독립과 해방을 위해 온힘을 기울인 인물들, 개인의 일신을 위해 그들을 배신했던 이름들,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진 갖가지 사건들을 찾아 떠난 책이다.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 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검토하는 연구에 힘을 기울여온 저자 임경석 교수(성균관대 사학과)는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5쪽) 중 기억되어야 함에도 잊힌 사건들을 34꼭지에 담아 펼쳐 보인다.
저자는 특히 한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주목한다. “지도적 지위에 있던 사람이나 영웅적 업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발굴”(7쪽)한다. 또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게 주된 지위를 부여한다. 독립운동에 몸 바친 사람들 중 다수가 사회주의자였음에도 오랜 시간 그들이 공식적인 독립운동 역사서에서 배제되어왔음을 지적하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제외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저자의 이 같은 노력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독립운동 사건과 무명 독립운동가의 헌신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잊힌 독립운동 사건들을 찾아 떠나다
저자는 심훈의 소설 《동방의 애인》을 통해 독립운동을 위해 고국을 떠나 상하이로 망명한 망명객들의 지난했던 삶을 살피고, 동지가 동지를 쐈던 불행한 사태 ‘김립 암살 사건’과 일제의 돈으로 무장투쟁을 꿈꾸다가 밀고로 무산된 ‘15만 원 사건’의 실상을 들춰본다.
경성 천지를 뒤흔든 김상옥의 총격전과 다나카 육군대장을 저격하려 했던 의열단의 황포탄 의거를 통해 의열투쟁의 면면을 둘러보고, 법정에서도 당당히 항변했던 박헌영과 고문에 희생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길양, 예방구금에 맞서 105일 단식투쟁으로 옥사한 이한빈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했던 옥중투쟁을 들여다본다.
임시정부 파괴공작에 나섰던 김달하, 비밀활동 정보를 넘기고 신변 안전을 보장받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초대 회장 오현주, 젊은 여성 동지 김명시를 일제에 팔아넘긴 조선 사회주의운동 1세대 독고전 등 독립운동가들을 배신했던 밀정들의 진상도 파헤친다.

박제화와 영웅 서사 경계 … 무명의 헌신에 주목하다
저자가 특히 주의를 기울인 것은 “무명의 헌신”(8쪽)이다. 저자는 오늘날 독립운동사 저서와 논문 대다수가 “독립운동가 개인이나 독립운동 단체를 돋보이게 하려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도드라지게 부각”하는 “박제화와 영웅 서사”(8쪽)에 힘써왔다고 지적하면서 그러한 작업은 지루하고 권태롭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정의에 헌신했으되 잊혀져버린 이름 없는 투사들”(7쪽)에게 눈길을 준다.
일본은행의 현금 수송대를 습격하여 얻은 자금으로 조선 독립군을 무장하려 했던 ‘15만 원 사건’을 살필 때는 사건의 주역은 아니었지만 현금 수송 정보를 제공하여 결국 무기징역형을 받았던 조선은행 용정출장소 사무원 전홍섭의 활약상을 언급하고, 일본 경찰의 체포 작전을 피해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건의 주역 최봉설에게 블라디보스토크 애국부인회 회장 채계복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묘사한다. 모스크바 유학까지 다녀온, 장래가 촉망되는 간부급 인물로 비밀결사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예방구금(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관헌의 심증만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의 전력을 가진 사람을 수감할 수 있는 행정처분)에 맞서 무려 105일간 단식투쟁을 감행하고 결국 옥사한 이한빈처럼 낯선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기도 한다.

독립운동가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저자는 개인적 이해관계를 돌보지 않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가 고초를 겪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 즉 아버지 없이 자라야 했던 어린 자식들, 남편 없이 홀로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아내들, 자식을 잃은 고통에 애타하던 노부모에게도 주목한다.
‘15만 원 사건’을 살필 때는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밀정 엄인섭의 밀고로 붙잡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의 주역 임국정의 어머니 ‘임뵈뵈’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다나카 일본군 대장을 저격하려 했던 의열단의 ‘황포탄 의거’를 들여다볼 때는 의거에 가담한 김익상의 남은 가족들이 겪은 비참한 삶을 조명한다. 일제의 고문으로 한창 나이였던 서른네 살에 옥사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길양의 처절했던 삶을 둘러볼 때는 그의 장례식이 반일운동의 상징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갖가지 방해공작을 일삼던 일본 경찰에 맞서 장례 관련 요구사항을 분명하게 전했던 박길양의 부인 김씨의 용감한 행적도 아울러 언급한다.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제자리 찾기
저자는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를 배제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그러기는커녕 정면으로 배치”(7쪽)된다고 강조한다.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은 마땅히 독립운동사에 포함되어야 할 뿐 아니라 역사적 기여만큼 온당한 지위와 비중을 인정받아야 한다”(7쪽)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 아래 저자는 조선공산당의 역대 책임비서들, 사회주의운동에 매진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꼼꼼하게 훑는다. 조선공산당 조직을 살리려 안간힘을 썼던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 소련 총영사관을 통해 국제공산당과의 교신을 유지하고 업무 인계를 위해 ‘암호일기’를 남겼으나 체포된 후 일본 경찰이 암호를 해독하자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정신이상자가 되고 만 제2대 책임비서 강달영, 당대회에서 선출된 강력한 책임비서로 사회주의 진영 통합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으나 영남친목회 참여 등으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고 스스로 사임했던 제4대 책임비서 안광천, 비밀결사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일본 경찰의 검거 확산에도 코민테른과의 연락선을 복구하여 별다른 위축 없이 신속하게 고려공청의 역량을 회복하는 데 성공한 권오설, 비주류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로 ‘혁명의 별’을 새긴 강철 관에 잠든 고려인 3세 채그리고리 등의 삶은 그동안 외면받았던, 그러나 잊혀서는 안 되는 독립운동사의 또 다른 측면이다.

배신과 변절, 역사에 정의는 있는가
저자는 독립운동가의 삶 반대편에서 배신과 변절을 일삼은 밀정과 밀고자의 삶에도 준엄한 눈길을 던진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나 남편 강낙원의 제의를 받아들여 자기 부부와 언니 오현관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애국부인회의 비밀 문건을 양도하기로 합의하고 김마리아를 포함하여 70명의 애국부인회 회원들을 체포되도록 만든, 그 대가로 요즘 돈 3억 원을 받아 챙기고 반민특위 처벌도 피하고 천수를 누린 오현주,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고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했으나 일본의 밀정이 되어 임시정부 파괴공작에 나섰다가 결국 비밀결사 다물단원들에게 처형된 김달하, 3․1운동 학생대표였으나 친일파이자 대지주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변절하고 만 김대우, 조선 사회주의운동 제1세대 멤버로 1928년 조선공산당 사건 때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으나 국경 연락 책임자로 있으면서 비밀접선에 관한 정보를 일본 형사에게 넘겨 젊은 여성 동지 김명시가 체포되게 만든 독고전, ‘급진 독립운동’에 뛰어들 정도로 뜨거운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일본 경찰의 밀정 노릇을 했던, 그럼에도 문책은커녕 서훈을 받고 독립유공자가 된 김성근의 생애는 역사에 정의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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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수많은 사료(史料) 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관적인 견해를 배제하고, 오직 사료를 통해 입증될 수 있는 객관적 사실만으로 구성된 역사상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쎄인트saint 2022-11-30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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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역사학의 핵심은 디테일에 있다. 매회 영화처럼 흥미진진했다. 독립운동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사상적 범위가 넓고 국제적이고 급진적이었다. 어떻게 그시대 독립운동을 안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어떻게 독립운동같은 걸 할 수 있었을까. 짧고 빠르고 정확한 임경석선생님의 문체도 좋았다.
초록비 2023-02-07 공감 (2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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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하나씩 엮은 책. 젊은 목숨을 독립에 바친 본인과 가족들의 사연들이 기가 막힌다.
돌맨 2022-10-28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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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에 대해 우린 아직 잘 모른다. 그 이유야 어쨌든 이런 연구와 저작이 아직 모르는 우리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게 해줘서 다행이다
알퐁소 2023-03-1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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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사건들

『독립운동 열전(1)』 - 잊힌 사건을 찾아서_임경석 / 푸른역사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_함석헌.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 받는 격으로 해방을 맞이했다.”_박헌영. 과연 그런가? 도둑같이, 찰시루떡처럼 왔는가, 해방은? 이 두 가지 발언은 생각할 여지가 많다. 이해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나, 해방을 위해 우리가 한 일은 별로 아니 거의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긴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정에서 해방 된 것은 미군과 원자폭탄 덕이라고 하는 자조적 표현을 ... + 더보기
쎄인트saint 2022-11-30 공감(3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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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디데일이 살아있는 책



한국의 독립운동! 얼마나 가슴 뛰는 주제인가! 그러나, 대중을 위해서 씌여진 독립운동 관련 서적은 많지 않다. 더욱이 믿을 수 있는 학자가 대중을 위해서 재미있게 풀어쓴 독립운동 서적은 더욱 적다. 성균관 대학교 사학과에 재직 중인 임경석 교수는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 검토하여 독립운동의 생생한 역사를 파헤쳤다. 그 결실이 '독립운동 열전'이다. 딱딱한 논문투의 글이 아니라, 일반 독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도록 구성에 신경을 썼다. 한장 한장 책을 넘기며 박진감 넘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빨려들어 갔다. 저자는 흥미를 끌어올리는데 치우친 나머지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 들어 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흥미와 역사적 사실의 균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 결실을 들여다보자.



1. 모스크바 자금의 비밀

레닌이 금화 200만 루블을 우리 독립운동에 지원하기로 약속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는 이러한 사실을 1급 정교사 연수 때 처음들었다. 친일 독재 세력은 독립운동연구를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중에서도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 연구는 터부시되었다. 우리 독립운동사 연구의 반쪽을 제대로 연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명 ‘모스크바 자금 지원’에 대해서 대학에서 배울 수 없었다. 1급 정교사 연수 때 강사는 레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200만 루블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으나, 김립이 이를 유용하는 바람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내용의 설명만했다. 그후, '여운영 평전', '백범일지'를 통해서 모스크바 자금에 대해서 탐구하면서 이 자금이 임시정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책에는 모스크바 자금에 대해서 충격적인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임경석 교수는 얀손 보고서를 근거로 이 자금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급된 것이 아니라,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출석한 한인사회당 대표이자 코민테른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된 박진순에게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만 루블 중에서 우선 제공된 40만 루블(한화 510억원)은 한인 사회당에 준 것임에도 임시정부 요인은 김립을 자금 횡령혐의로 암살했다.

김립 암살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독립운동가 사이에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모스크바 자금 200만 루블 중에서 잔여금 140만 루블(한화 2085억원)을 우리 독립운동 세력에게 지원되지 않았다. 임시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북로 군정서 107개를 조직할 돈이 날라간 것이다.

비극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사이에 불신을 키우고 독립운동 자금을 날려버린 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소중한 독립운동가 한명을 잃었다. 김립은 '이동휘의 책사'로 알려져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임경석 교수는 이동휘의 책사 김립이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했다. 그는 탁월한 정세 판단과 실천력으로 독립운동을 추진한 영웅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공산당 내의 젊은이들은 보복을 주장했다. 잘못하면 독립운동을 하기도 전에 일제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는 순간이다. 다행히도 김철수를 비롯한 당 간부들의 만류로 동족을 죽이는 비극으로 사건이 번지지 않았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내분으로 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친일파들이 이익 앞에서 단결할 때,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의 노선을 두고 분열했다. 노선투쟁이 서로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비극으로 발전한 경우가 많았다. 김립 암살사건도 자칫 잘못했으면 임시정부가 스스로 붕괴하는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노선은 달라도 목표는 '독립'이 아니던가! 불의 앞에서 분열하는 진보진영을 보면서 김립 암살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시간이 지났어도 우리의 어리석음이 변하지 않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2. 임경석 교수가 들려준 공산주의자의 독립운동

임경석 교수는 독립운동사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공산주의자들의 독립운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의열단에서 1923년에 추진한 제2차 암살 파괴 계획이다. 교과서를 비롯해서 수많은 책에서 의열단이 주도한 의열단의 독립운동이라고 소개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임경석 교수는 피고인 18인 중에서 황옥을 비롯한 4인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간부이거나 주요 당원이라는 점을 근거로 의열단과 공산당이 공동 주도세력이라고 주장한다. 황옥은 영화 '밀정'의 이정출의 모델이 된 사람이다. 영화와 역사책에는 그를 의열단원으로 그리고 있다. 약산 김원봉이 그를 직접 만나서 독립운동 세력으로 포섭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임경석 교수는 그를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황옥이 공산당에 가입한 증거가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듯하다. 암튼, 임경석 교수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은 우리 독립운동사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두번째는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려했던 강달영이라는 인물이다. 진주 3.1운동 유공자이자 조선 노동운동의 지도자이면서, 조선공산당 2차 집행부 책임비서였던 강달영은 조직과 동료,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 일제가 방심한 틈을 타서 자살을 시도했다. 어떠한 고문에도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비서부 일기'가 일제에 의해서 해독되자,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이 책에는 한때 독립운동가였다가 친일파가 된 많은 변절자들이 소개되어있다. 그들과 대비되는 삶을 살아간 강달영의 모습을 보면서 숙연해진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한 임경석 교수의 글을 읽으며 그가 독립운동사 연구에 바친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오성륜의 의거와 탈출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낸 부분을 읽으며 아쉬운 생각이들었다. 황포탄 의거와 탈출의 드라마틱한 장면은 영화화해도 좋을 장면이다. 그런데, 오성륜이 탈출 이후 공산주의자가 되어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으며, 일제에 포섭되어 동지를 밀고하는 친일파가 되었다는 사실은 서술하고 있지 않았다. 의열단원에서 공산주의자로, 상하이에서 만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서 치열한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일제에 포섭되어 친일파가 된 그의 삶이 고단해 보였다. 그가, 만주에서 일제의 총탄에 맞아 순국했다면 우리는 영웅 한명을 우리 마음속에서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3. 역사의 정의는 있는가!

광복 이후의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의 삶을 살펴보면 가슴이 아프다. 조선총독부 폭탄투척과 황포탄 의거의 주인공 김익상의 딸 점석이를 우리는 돌보지 못했다. 김익상은 약산 김원봉에게 "딸을 공부시켜 여성 혁명가가 되도록 교도하기를 부탁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김원봉이 광복후에 김익상 의사의 가족을 찾았으나 딸 점석을 찾지 못했다.

광복이 되었으나, 제대로된 독립 국가를 만들지 못했다. 조국은 분단되었으며 이승만과 친일파가 권력을 잡았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되고 나서 독립운동가들은 숨죽여야 했다. 어느 독립운동가 가족은 성씨마져 바꾸어야했다. 독립운동 세력이 친일파에 의해서 청산당하고 그 가족은 박해를 받아야하는 어쳐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반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의 밀정이 된 김성근은 지금도 독립유공자로 등재되어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운동인명사전',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김성근은 "일제강점기 구국모험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적혀있다. 임경석 교수의 이러한 지적에 인터넷에서 김성근을 검색했다. 사실이었다. 그는 내가 이 책을 읽는 지금도 독립운동가로 기록되어있다.

어디 김성근뿐이랴! 대전의 '00 건설'의 경우, 건설사 대표가 자신의 아버지를 3.1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로 포장했다. 대전 유림공원에 그의 비석이 세워져 시민단체의 지탄을 받았다.(독립투사의 공적비가 변조된 사연 (daum.net)) 심지어, 대가 끊긴 독립운동가를 자신의 아버지라고 속여서 독립 유공자가 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마다, '과연 역사의 정의는 존재가하는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나의 심연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정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울림이 들여왔다. 불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를 짓밟을 때, 우리가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불의가 정의의 탈을 쓰고 군림하는 세상이 된다.








이책 34쪽에는 박헌영, 김단야, 주세죽의 사진이 나란히 실려있다. 사진을 본 순간, 이 3인의 러브 스토리가 소개될 것을 내심 기대했다. 사회주의자들의 붉은 연애는 뜨겁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임경석 교수는 그들의 붉은 연애를 소개하지 않았다. 주세죽은 박헌영과의 사이에서 박비비안나를, 김단야와의 사이에서 김비탈리를 두었다. 파란만장한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 '독립운동 열전' 2권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더 기대해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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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23-04-30 공감(3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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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ung heroes!!!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도 일제시대 독립 운동 관련된 책 <제국의 암살자들>을 읽었는데, 이번에도 일제시대 독립 운동에 관한 책을 읽었단다. 우연히 이 책도 최근에 알게 되어 읽었단다. 책의 내용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 사건과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는 데 더 관심을 갖게 했단다. 예전에도 아빠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학창 시절 배웠던 독립 운동 역사는 반쪽 짜리 역사였단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해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이들, 또는 해방 이후 북한에서 생활했던 이들의 독립 운동은 배우지 않았단다. 하지만 당시 사회주의는 시대의 한 흐름으로 독립운동가들 중에도 사회주의자가 많았단다. 그들과 그들의 독립 운동 사건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이 책을 알게 되고 나서 곧바로 읽어보고 싶었단다. 이런, 이번에 읽은 책 제목 조차 아직 알려주지 않았구나.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님이 쓰신 <독립운동 열전>이라는 책이 그것이며 이 책은 총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늘은 그 중에 1권, 부제로 <잊힌 사건을 찾아서>라는 책을 소개해 줄게. 자, 그럼 부지런히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1.

한반도를 떠나 외국으로 독립운동가들의 망명은 1910년 경술국치 전후와 1919년 3.1운동 이후 두 차례 많이 있었단다. 경성의학전문학교 학생 이미륵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단다. 경성의학전문학교면 오늘로 치면 서울대학교 의대인데, 그냥 자신의 위치에 순응하면 편히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미륵은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경찰에 쫓기고 있었단다. 어머니의 권유로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어. 후에 독일로 유학을 갔다가 끝내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망명 이후 어머니와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독일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하는구나. 이미륵 님은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을 통해 망명객의 삶을 이야기했는데, 아빠도 그 책을 읽어보겠다고 오래 전에 사두고 아직 읽지 못했단다. 그 책뿐만 아니라 이미륵이라는 분의 삶 자체를 더 자세히 알고 싶더구나.

...

망명객의 삶을 소설로 쓴 이는 이미륵 이외에 <상록수>로 유명한 심훈이라는 이가 있단다. 예전에 <상록수>를 재미있게 읽어서 아빠도 심훈이라는 작가에 호감을 갖고 있었단다. 심훈이 1920년대 상해의 망명객들을 소설로 그린 <동방의 애인>을 발표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제목은 알고 있단 책이란다. <상록수>를 재미있게 읽고 심훈의 다른 소설을 알아보다가 알게 된 책이지. 그런데 책 값이 너무 비싼 판본 밖에 없어서 좀 저렴한 판본이 나오길 기다라고 있던 책이었단다. 그런데 이 <동방의 애인>이 바로 1920년대 상해의 망명객들을 그린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박헌영을 모델로 하고 있고, 아빠가 좋아하는 여성 독립운동가 주세죽을 모델로 한 인물도 나온다고 하는구나. 지은이 임경석 님이 <동방의 애인>에 대한 소개글을 읽어보니 이 책도 꼭 읽어보고 싶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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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작가 심훈은 1920~1921년 상하이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다. 심훈 자신이 상하이 망명객이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녹여 이 소설을 썼다. 상하이의 거리 풍경에 관한 묘사라든가, 상하이에서 막 발아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 및 단체 활동 양상에 관한 서술 등을 보라. 어떤 사료보다도 생생하게 역사적 진실을 전해준다. 국경도시 신의주를 통해 열차 편으로 잠입하는 비밀 활동 참가자의 행동과 심리 묘사도 압권이다. 그를 색출, 체포하려고 노력하는 경찰, 헌병, 세관 관리 등의 언행도 흥미롭다. 이렇게 <동방의 애인>은 1920년 상하이 한인 망명자 사회의 내면, 특히 사회주의가 처음으로 수용되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형상화한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서술들이 역사학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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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2월 8일 상하이에서 김립 암살 사건이 일어났단다. 처음에는 범인이나 배후가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범인은 조선인 양춘산이라는 사람이었고, 배후는 임시정부 국무국 경호원 오면직, 노종균이었어. 그들은 김구 휘하에 있던 사람이었단다. 그들은 왜 김립을 죽였는가? 김립이 러시아로부터 받은 40만루블을 횡령했기 때문이라고 했어. 40만 루블은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약 500억이라는 엄청난 돈이었단다. 임시정부 국무국 의견은 김립이 횡령을 했다고 했지만 김립 측 의견을 달랐단다. 그 돈은 소비에트 러시아 정부와 코민테른이 임시정부가 아닌 한인사회당에 지원한 돈이었다는 거야. 그래서 한인사회당 소속이었던 김립이 그 돈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여기서 김립이라는 사람을 잠깐 알아보자꾸나. 김립의 본명은 김익용이야. 김립은 1910년 북간도로 망명을 갔고, 그곳에서 광성중학과 나자구무관학교를 창립했단다. 최초 사회주의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창립멤버이고 소련의 소비에트와 교류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받아오는데 성공했단다. 한인사회당 또 다른 멤버인 박진순은 레닌을 직접 만나 200만 루블 지원을 약속 받았고, 그 중 40만 루블을 1차로 받았던 것이었단다. 하지만 김립이 죽고 나서 소비에트의 지원을 끊기고 말았단다. 임시정부의 김립 암살 사건은 섣부른 판단이었던 것 같구나. 그의 횡령이 의심되었다면 재판을 통해 죄를 판단했어야 했어. 지은이 또한 이 사건을 국가 폭력이라고 판단했는데, 지금이라도 김립이라는 사람을 재평가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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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김립 암살 사건은 일종의 국가폭력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내각의 결정에 의거하여 경무국이 집행한 이 사건은 한국 독립운동에 큰 위해를 가져온 불행이었다. 임시정부는 두 가지 점에서 명백한 과오를 범했다. 첫째,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입각해 있었다. 모스크바 자금 40만 금화 루블의 집행권은 임시정부가 아니라 한인사회당에 속해 있었다. 둘째, 설혹 유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형벌의 집행 과정이 적법하거나 적절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계의 폭넓은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졌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 진상이 규명되어야 하고, 망자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사과를 해야 한다. 또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기념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을 자임하는 한국 정보의 마땅한 태도라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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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0년 일제의 돈 15만원을 탈취하는 사건이 있었단다. 이런 사건은 정말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구나. 당시 일제의 돈 15만원은 오늘날 150억 원 상당의 거금이었어. 이 일을 주도한 사람들은 철혈광복단원 여섯 명이었다고 하는구나. 임국정, 윤준희, 최이붕, 최봉설, 한상호, 김준. 이들 중 4명 윤준희, 임국정, 최봉설, 한상호는 이 돈을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단다.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무기를 밀매하고 군관학교를 세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 블라디보스토크에 정착해 있던 독립운동가들과도 만나 일을 착착 진행해 나갔어. 그런데 어느 새벽 일본 헌병대의 습격을 받았단다. 최봉설만 간신히 도망가고 나머지 세 사람을 체포되고 말았어.

아, 그들은 왜 잡혔는가. 누군가 그들의 계획을 밀고했던 것이란다. 배신자 엄인섭. 그는 한때 안중군과 의병대를 이끌고 반일활동을 했던 거목이란다. 무려 14년간 의병 활동을 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어. 그런데 그가 왜... 그는 이미 오래 전, 그러니까 1908년 11월부터 밀정활동을 했다는구나. 당시에는 몰랐는데 최근 자료에 의해 그 행적이 밝혀졌다고 하는구나. 참 나쁜 사람이구나. 그때 잡힌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대문형무소까지 끌려와서 결국 모두 사형을 당했다고 하는구나.

...

다음 사건은 아빠가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과 <경성을 쏘다>라는 책에서 이야기했던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이란다.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하하고 경찰과 쫓고 쫓기면서 총격전 끝에 사살되고 말았단다. 아빠가 이전에 읽은 책에서는 마지막 총알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근거로 일본 경찰에 의해 죽었다고 하는구나. 그의 마지막이 무엇이든 그의 위대한 죽음은 꼭 기억해야겠구나. 김상옥님은 이전에 자세히 이야기해서 오늘은 간단히 마친다.

....

잊힌 사건 중에 그나마 알려진 것이 김원봉의 의열단 투쟁이란다. 아빠가 김원봉에 관한 책을 두어 권 읽고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 줄 때도 이야기했지만, 의열단 투쟁은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단다. 그 중에 한 사건만 소개해 줄게. 황포탄에서 다나카 육군 대장 저격 시도를 했던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 오성륜과 김익상이 체포되었다가 오성륜은 탈옥에 성공하고 김익상은 사형 선거를 받았단다. 김익상은 나중에 감형되어 13년형을 받았단다.

김익상이 감옥에 있는 동안 집안은 몰락했어. 김익상이 없는 동안 동생은 집을 이끌다가 힘에 부쳐 자살을 했고 부인과 딸의 행적도 알려지지 않았대. 김익상 본인도 출소 후 혼자 지내다가 한강에 투신 자살을 했다고 하는구나.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의 마지막이 안타까운 경우가 많아 가슴이 아프구나.



이번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독립 운동 일화를 이야기해줄게. 블라디보스토크에 개척리라는 곳이 있었단다. 망명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어. 나중에 콜레라 때문에 신한촌으로 이전하기 전에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곳이야. 그곳에서 1910년 정순만이라는 사람이 양성춘이라는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양성춘은 안창호 측 사람이고, 정순만은 헤이그 특사로 유명한 이상설의 동지였대. 당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독립운동의 여러 계파가 있었고 알력 다툼이 있었나 봐. 그래서 알력 다툼을 중재하는 회의가 있었는데, 안 좋게 끝나고 그 회의가 있던 밤에 정순만이 양성춘을 찾아가 죽인 사건이었어. 양쪽 모두 독립 운동을 한다고 애썼는데 이렇게 살인까지 일어나다니 안타깝구나.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한 양측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과실치사로 정순만은 1년형을 받았단다. 1년 뒤 정순만이 출소하고 죽은 양성춘의 형 양덕춘과 양성춘의 아내가 정순만을 찾아가 도끼로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어. 이건 그야말로 개인적 원한에 의한 복수 사건이었단다. 하지만 이상설 측에서는 이 사건의 배후로 안창호를 지목하고 안창호 등 4명을 기소했단다. 안창호는 이 일이 있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미국으로 떠났고, 블라디보스토크의 독립운동은 쇠퇴했단다.

...

이후 연해주의 각 세력들은 다시 하나로 뭉치기 위한 노력을 했고,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했어. 러일전쟁 패배 이후 일본에 복수하고픈 러시아도 대한광복군 정부를 적극 지지했단다. 그러던 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러시아와 일본이 모두 연합군 진영이었어. 그러니까 갑자기 한 편이 된 거지. 일본은 러시아에 항일 운동에 제재를 요청했고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였어. 그래서 해도(연해주와 간도)에서의 독립운동은 다시 위축되고 말았단다.






3.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들이 엄청 많이 있단다. 그 중에 잘 안 알려진 변절 친일파들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서 해주고 있단다. 오현주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인텔리 여성으로 3.1운동 후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도 했었어. 남편 강낙원의 선배가 친일 경찰이었는데, 이 사람이 회유를 했고 이에 넘어가 애국부인회에 대한 모든 정보를 넘겼어. 그래서 1919년 11월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간부 및 비밀요원들이 대거 검거되었단다. 잡혀간 애국부인회 회원들은 온갖 잔인한 고문을 받았단다. 그에 비해 오현주 부부는 광복 후에도 큰 처벌 없이 천수를 누리다가 오현주는 1989년 98살에 눈을 감았다고 하는구나. 하늘은 정의를 모르는가. 이런 사람들이 처벌도 없이 호의호식하면서 천수를 누리는 것을 보고만 있다니...



유학자 김달하라는 사람이 있단다. 유학자이면서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김창숙의 측근이었어. 그런데 그는 친일로 유명한 김활란의 형부 되는 사람이었단다. 김활란의 형부라니 좀 냄새가 나는구나. 김달하는 상하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했지만 후에 변절하고 김창숙에게 귀국을 회유하였다고 하는구나. 김창숙에 이에 크게 분노하고 다른 이들에게 김달하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어. 얼마 후 다물단이라는 조직이 김달하를 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어. 김창숙이 김달하를 안 좋게 이야기했지만 당시 김달하가 진짜 밀정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나중에 다른 밀정이 잡히면서 그가 나눈 편지를 통해 김달하가 진짜 밀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하는구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밀정이 된 이들이 도처에 있었나 보구나. 그들 때문에 더 독립운동이 힘들었겠구나.



경성공업전문학교 학생 대표로 3.1운동을 주도했다가 체포된 김대우라는 사람이 있어. 그의 아버지는 친일파이자 대지주였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회유하고 경찰에 탄원서를 넣고 해서 일찍 풀려났단다. 감옥 생활이 힘들어 그랬는데 그는 쉽게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단다. 유학까지 다녀온 후 도지사까지 했다고 하는구나. 욕이 절로 나오는구나.



고려공산당 초창기 멤버 중에 독고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도 배신을 하고 동지들을 밀고하고 김명시라는 여성 동지가 투옥되었대. 처음에는 독고전이 밀정이라는 것도 몰랐대. 나중에 김단야가 폭로해서 그가 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구나. 그의 나중 행적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구나.



독립운동가인 줄 알았던 김성근이라는 사람도 밀정임이 밝혀져서 상해에 있다가 국내로 도망 오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그는 광복 이후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것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고 하니, 아직 우리나라 과거사는 정리가 안 된 것이 참 많구나.






4.

101인 사건이란 것이 있단다. 105인 사건은 좀 유명해서 알고 있는데 101인 사건은 처음 들어봤단다. 당시에는 3대 독립운동 탄압 재판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101인 사건이 조선공산당과 연루되어 그 이후 잊혀진 사건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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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305)

101인 사건이란 식민지 시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3개 독립운동 탄압 재판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3대 독립운동 탄압 재판 중 첫 번째는 ‘105인 사건’ 재판으로, 식민지 시대 초기를 대표하는 비밀결사 신민회 탄압 재판이었다. 두 번째는 ‘48일 사건’ 재판으로, 3.1 운동 때 민족대표를 비롯하여 독립선언 사전 모의에 가담한 인사들에 대한 탄압 재판이었다. 이어서 바통을 넘겨 잡은 것이 바로 ‘101인 사건’ 재판으로, 3.1 운동 이후 들불처럼 타오르던 사회주의운동 대표 단체 조선공산당 재판이었다. 세 재판은 피고인 숫자가 각각 105인, 48인, 101인이었다고 해서 그런 명칭을 갖게 됐다. 당대 언론매체들은 이 세 재판을 “식민지 조선 통치 20년래의 대표적 중대 사건”으로 지목했다. 항일운동의 역사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신민회, 3.1 운동, 조선공산당이 나란히 손꼽히고 있음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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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사건이라고도 부르는 101인 사건은 1927년 9월 13일 재판이 시작되었고, 이때 고문치사로 죽은 사람이 있었는데 박헌영은 재판소에서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명연설을 했다는구나. 하지만 이후에도 고문으로 죽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고 하는구나. 박순병, 박길양, 백광흠, 권오상이 그렇게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이한빈이라는 분은 105일 동안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가 돌아가셨대. 박헌영도 고문 후유증으로 출소한 이후에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하는구나. 출소 당시 사진을 보면 초점 잃은 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게 했단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해두고 그를 바탕으로 정신 없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메모의 부정확성 때문에 일부 틀린 내용도 있을 거야. 감안하렴. 오늘 편지의 뒷부분에서 변절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런 변절자 말고 진짜 나라를 사랑하신 분들이 더 많았단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채그리고리의 마지막까지 숭고함을 지켰던 가슴 아픈 이야기로 오늘 편지는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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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숨을 거두기 하루 전이었다. 채그리고리는 임종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속에 담아둔 얘기를 꺼냈다.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죽으면 유해를 의학 연구 재료로 사용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사후라 할지라도 신체를 훼손하는 일은 불효가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시신 기증 캠페인이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된 게 수십 년 뒤의 일임을 감안하면, 공공선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선각자다운 풍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또 하나는 동지들을 만나고 싶으니 다음 날 오실 있는 분들은 모두 모여 달라는 부탁이었다. 국경에서 체포되지만 않았다면 의기투합하여 혁명사업을 함께 도모했을 동지들의 면면이 그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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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태백아 우리 님아 나 간다고 슬퍼마라.

책의 끝 문장: 후보자들이 작성한 자필 문서의 필적을 대조한다거나, 12월테제 채택 전후 각 개인의 행적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립이라는 이름은 혁명에의 헌신을 결단하는, 마음속 깃발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청년기에 마음 맞는 동향 출신 동료 허헌과 함께 망국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원하는 데 한평생을 바치기로 맹세했다. 대한제국 시절, 두 사람은 ‘입헌’이라는 글자를 하나씩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위기에 처한 공동체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전체군주제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익용은 ‘설 립’자를 취하고, 허헌은 자신의 본명에 포함된 ‘법 헌’자에 그 의미를 부여했다. 두 사람은 전제군주가 가지고 있는 국가 주권을 국민의 품으로 옮겨오는 시민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김립의 막역한 친구 허헌은 훗날 인권변호사가 되는 바로 그 사람이다. 허헌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3.1운동 피고인들과 조선공산당 사건 피고인들을 변호했으며, 민족통일전선 단체 신간회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른다. - P70



사형선고를 받은 김익상이 일본 황태자 결혼, 천황 즉위 등을 계기로 하여 세 차례 감형을 받았고, 결국 13년 감옥살이를 마치고 1936년에 출옥했다는 이야기, 출옥 이후에도 예비검속과 요시찰 감시 등으로 고통을 겼었다는 이야기, 1941년 8월에 노량진에서 용산경찰서 경찰과 조우하여 격투를 벌이다가 다시 수감되느니 차라리 자결하겠다고 한강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 등을 전해주었다. 김익상의 최후는 아마도 사상전향 및 예방구금제도의 시행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1941년 2월에 공포된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에 따르면, 만기 출옥한 시국 범죄자로서 사상전향에 응하지 않는 자는 언제라도 다시 감옥에 수감되어야만 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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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3-05-30 공감(2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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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열전 - 잊힌 사건을 찾아서


태백아 우리 님아,
나 간다고 슬퍼마라.
나는 간다.
가기는 간다마는,
나의 가슴에 품긴 이상의 광명은 영겁무궁까지도 네가 그의 표상이로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봄은 오느니라.
제왕의 권력과 재화의 세력 밖에 있는 동군東君(태양신)은 때만 되면 오느니라.
무궁화 다시 피건 또 다시나 만나자.


1910년 소년 잡지 4월호에는 이런 시가 실렸다. 최남선이 신민회 망명자들의 심정을 노래하며 그들을 축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여기서 태백은 조국을 가리킨다. 다시 만나자는 그의 말이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들리지만 조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망했고 일제의 압박 속에 35년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이 책은 몇 십년전 조선 땅과 해외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서 한국 근대사이자 독립운동사를 살펴본다. 사건의 상황을 설명하고, 관련 인물을 이야기하며 사건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고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사건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1운동, 광주학생운동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임이 눈에 띈다. 게다가 관련 인물도 김상옥, 이상설, 안창호, 이동휘 등 유명한 독립운동가들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으로 그동안 외면하거나 놓쳤던 독립운동가들이다. 때문에 책의 부제는 <잊힌 사건을 찾아서>다.


먼저 1910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의 갈등을 살펴보자. 이상설과 정순만을 비롯한 망명자들은 '해도 거점 임시정부 수립론'을 구상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러시아 당국과의 교섭이 반드시 필요했다. 사건 당일 낮에 이미 한인 거류민회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재정 문제로 충돌하여 갈등을 드러냈다. 정순만은 권총을 소지한 상태로 피살자인 양성춘의 집을 방문했다. 양성춘은 당시 한인 거류민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유력자로 신망이 두터웠고 영향력이 있는 자였다. 러시아 사법기관은 정순만에게 3개월 금고형을 언도한다. 정순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적극적 방어로 고의 살해가 아닌 과실 치사를 인정한 것이다. 정순만 출감 후 한인 사회는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또 발생한다. 1911년 정순만이 양성춘의 아내인 전소사에게 도끼로 가격당해 사망한 것이다. 이상설은 분노했고 살인 사건 배후 조종 혐의로 러시아 관청에 안창호, 정재관, 이강, 김성무를 고발하는데 네 명은 모두 국민회 운동의 지도자들이었다. 이 일로 이상설과 안창호는 서로 등을 돌리게 된다.


3.1운동은 조선의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일로 동료를 밀고하거나 변절한 자도 적지 않았다.
이미륵은 3.1운동 후 고문과 투옥의 위기를 피해 망명길에 오를 때의 경험을 복기하여 후에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한다. 북간도 용정의 철혈광복단도 3.1 운동이 시작이었다. 의열 투쟁을 벌인 김익상도 3.1운동의 체험이 그의 이후 활동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공산당 2대 책임비서였던 강달영도 진주에서 3.1운동을 벌이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박길양은 강화도 3.1운동에 참여한 인물인데 강화도 시위는 전국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박길양은 시위에 참여하고 다행히 체포되지는 않았으나 시위가 사그라들자 무장투쟁 노선으로 전환한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초대 회장이었던 오현주는 비밀 활동 정보를 넘기고 동료를 밀고한 대가로 요즘 돈으로 3억원을 받아 챙겼다. 김대우는 3.1운동 학생단 지도부의 일원이었다. 학생단 지도부는 '민족대표 33인'과 함께 3.1운동을 기획한 양대 비밀결사 가운데 하나였고 그는 경성시내에 소재하는 6개 전문학교 학생대표들 중 하나였다. 경찰에 체포된 뒤 초기에는 혐의사실을 인정했으나 향후 입장을 바꾸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시위를 벌였음을 인정했다. 그의 아비는 친일파이자 대지주였고 가계에 로비를 펼친 모양이다. 그는 "지금은 독립을 희망하지 않는다" 발언으로 징역 7개월만 받고 풀려나온 뒤 변절하여 도지사까지 되는 행보를 보였다. 김성근은 3.1운동에 가담한 후 상하이와 국내를 오가면서 비밀 연락과 독립자금 모금에도 참여한 혁명가였다. 하지만 어느 날 상하이 주재 일본영사관 경찰부에 체포되었음에도 무사히 석방됐고 아무 일 없는 듯 상하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밀정임을 의심받는다. 임정 경무국도 그에 대한 조사를 명했고 이를 눈치챈 그는 영사관을 통해서 은신처와 조선 귀국의 편의를 제공 받으며 경성으로 간다. 무사히 도착한 뒤에 그는 독립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이따금 조선총독부에 출입한다는 근황이 언론에 보도될 뿐이었다. 그는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수여받았고 여전히 독립유공자로 등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의 노선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와중에 갈등은 더욱 불거졌다. 김립은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사회 안에서, 독립운동 계에서 적이 많았다. 그는 독립을 위해 싸우는 세력이라면 부르주아라도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이었다. 반면 이시파 공산당 세력은 부르주아와의 결탁은 결코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러시아 혁명에 기반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다. 모스크바에서 1차로 전달한 40만 루블의 관할권은 박진순이 속한 한인사회당과 그 후속 단체인 고려공산당에 있었으나 임시정부는 김립 등이 이 자금을 횡령했다고 오해해 암살했다.
'15만 원 사건'은 이 책을 통해서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독립운동가로 알려졌던 엄인섭이 동료들을 밀고하면서 사건의 관련자들이었던 철혈광복단의 희망을 꺾어버린 것은 너무나 뼈아프다. 그는 무려 14년간 밀정 활동을 했다고 하니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다.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의거 후 경성 총격전은 이제 영화로도 알려지고 많은 이야기가 있다. 1923년 3월에 발각된 폭발물 비밀반입 사건은 '제2차 대암살 파괴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흔히 의열단이 주도하여 사건이 전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의열단 단독 주도론은 사건 발발 당시 일본 경찰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찰 당국은 이 사건을 "김원봉을 단장으로 한 의열단이 러시아 공산당에게서 자금을 받아서 대관을 암살하고 관공서를 파괴함으로써 조선을 적화하고 독립운동을 일으키려고 계획한 음모"로 간주했다. 경찰과 정반대 입장에서 작성된 기록인 《약산과 의열단》도 시종일관 김원봉 단장의 다각적인 노력의 결과로 이뤄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 의열단 사건의 피고인 숫자는 18인이었는데 이 중 몇몇은 의열단과 달리 독자적인 정치 단체의 구성원이었다. 황옥은 이시당(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내지부의 위원이었고, 장건상은 이시당의 최고 간부인 중앙위원이었다. 김시현과 권정필은 이시당의 국내 활동을 위해 1922년 3~5월 시기에 잠입한 당원이었다. 김한도 조선공산당(내지당, 중립당)의 간부였다.


이전에 조선공산당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공부했던 것이 책의 재미와 감동을 더 느끼게 했다. 7장 비밀결사를 통해서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를 지낸 인물들의 활동을 확인할 수가 있다. 2대 책임비서였던 강달영이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암호를 만들어 문서를 작성했다는 것에 놀랐고 이를 일제가 풀어내자 정신을 놓았다는 것에 통탄했다. 사실 그가 옥중에서 정신이상이 되고 풀려나서도 온전한 정신을 찾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3대 책임비서인 권오설도 마찬가지로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강달영과 마찬가지로 당이 가장 어려울 때 책임비서를 맡게 된 그는 자신이 수배된 위치에 있었음에도 당 재건을 위해 부단히 애쓴다. 나는 4대 책임비서인 안광천이 오히려 낯설었다. 안광천 책임비서 시기는 조선 사회주의운동사의 전성기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의 재임과 동시에 사회주의운동 진영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하지만 안광천은 주목할 만한 인물임에도 사진 한장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아쉬운 점을 하나 꼽으라면 부제와 목차의 불일치다. '잊힌 사건을 찾아서'의 부제인 만큼 '사건'의 제목으로 목차를 구성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2, 3장의 경우는 <김립 암살 사건>, <15 만원 사건>처럼 부제에 들어맞으나 나머지 챕터는 그렇다고 말하기에 애매함이 있다. <망명>,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배신>, <비밀결사>, <옥중투쟁>, <국제주의> 어떤 것은 장소이고 어떤 것은 일반적 용어라서 묶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잊혀졌거나 외면받았던 다양한 사건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사건 관련자들의 모든 일대기를 알 수 있지 못하여 이후가 궁금한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판결/수감 기록 등 외부를 통해 바라본 기록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고 본인의 마지막도 불명확하여 후손이 있더라도 그들의 종적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웠다. 향후 이들의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서 전 생애를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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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25 공감(19)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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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독립운동 열전 1

105일 단식 끝에 돌아가신 이한빈이 죽기 3일 전 수감 동료에게 남긴 유언. “나는 더 살 수 없으니 나의 뒷일을 동무들이 계승하여 조선 독립을 완성하기를 바라며, 만일 동무가 살아 나가거든 동무들에게 일제가 이 같이 나를 죽인 것을 전하여 달라!” 333기억해야 한다. 독립에 좌우가 어딨나기억해야 한다.수많은 숭고도 배신(6장)도.술술 읽힌다. 뛰어난 문장이다.
dalgial 2023-08-17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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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북결산

벌써 11월 마지막날이 되다니... 새삼스럽지만 시간이 너무 빠르다.급작스레 추워져서 아까 낮에 산책하다 귀 떨어져나가는줄^^;;;이번달 총 11권 완독했다.쉽지 않았던 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몰입하면서 읽으려 노력했다. 뛰어들어 읽어내려갔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750~1870》는 근대를 여는 19세기를 표면적인 100년 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관찰하면서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 사회사로 나누어 분석했다. 19세기는 근대의 시작이자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산물이... + 더보기
거리의화가 2022-11-30 공감 (34)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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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석] <독립운동 열전 1> 중에서...














































(37)

작가 심훈은 1920~1921년 상하이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다. 심훈 자신이 상하이 망명객이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녹여 이 소설을 썼다. 상하이의 거리 풍경에 관한 묘사라든가, 상하이에서 막 발아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 및 단체 활동 양상에 관한 서술 등을 보라. 어떤 사료보다도 생생하게 역사적 진실을 전해준다. 국경도시 신의주를 통해 열차 편으로 잠입하는 비밀 활동 참가자의 행동과 심리 묘사도 압권이다. 그를 색출, 체포하려고 노력하는 경찰, 헌병, 세관 관리 등의 언행도 흥미롭다. 이렇게 <동방의 애인>은 1920년 상하이 한인 망명자 사회의 내면, 특히 사회주의가 처음으로 수용되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형상화한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서술들이 역사학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70)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립이라는 이름은 혁명에의 헌신을 결단하는, 마음속 깃발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청년기에 마음 맞는 동향 출신 동료 허헌과 함께 망국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원하는 데 한평생을 바치기로 맹세했다. 대한제국 시절, 두 사람은 ‘입헌’이라는 글자를 하나씩 나눠 갖기로 합의했다. 위기에 처한 공동체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전체군주제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김익용은 ‘설 립’자를 취하고, 허헌은 자신의 본명에 포함된 ‘법 헌’자에 그 의미를 부여했다. 두 사람은 전제군주가 가지고 있는 국가 주권을 국민의 품으로 옮겨오는 시민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김립의 막역한 친구 허헌은 훗날 인권변호사가 되는 바로 그 사람이다. 허헌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3.1운동 피고인들과 조선공산당 사건 피고인들을 변호했으며, 민족통일전선 단체 신간회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른다.






(80)

김립 암살 사건은 일종의 국가폭력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내각의 결정에 의거하여 경무국이 집행한 이 사건은 한국 독립운동에 큰 위해를 가져온 불행이었다. 임시정부는 두 가지 점에서 명백한 과오를 범했다. 첫째,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입각해 있었다. 모스크바 자금 40만 금화 루블의 집행권은 임시정부가 아니라 한인사회당에 속해 있었다. 둘째, 설혹 유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형벌의 집행 과정이 적법하거나 적절하지 않았다. 독립운동계의 폭넓은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졌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 진상이 규명되어야 하고, 망자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사과를 해야 한다. 또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기념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을 자임하는 한국 정보의 마땅한 태도라도 생각한다.






(163)

사형선고를 받은 김익상이 일본 황태자 결혼, 천황 즉위 등을 계기로 하여 세 차례 감형을 받았고, 결국 13년 감옥살이를 마치고 1936년에 출옥했다는 이야기, 출옥 이후에도 예비검속과 요시찰 감시 등으로 고통을 겼었다는 이야기, 1941년 8월에 노량진에서 용산경찰서 경찰과 조우하여 격투를 벌이다가 다시 수감되느니 차라리 자결하겠다고 한강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 등을 전해주었다. 김익상의 최후는 아마도 사상전향 및 예방구금제도의 시행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1941년 2월에 공포된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에 따르면, 만기 출옥한 시국 범죄자로서 사상전향에 응하지 않는 자는 언제라도 다시 감옥에 수감되어야만 했다.






(289)

숨을 거두기 하루 전이었다. 채그리고리는 임종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속에 담아둔 얘기를 꺼냈다.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자신이 죽으면 유해를 의학 연구 재료로 사용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사후라 할지라도 신체를 훼손하는 일은 불효가 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시신 기증 캠페인이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된 게 수십 년 뒤의 일임을 감안하면, 공공선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선각자다운 풍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또 하나는 동지들을 만나고 싶으니 다음 날 오실 있는 분들은 모두 모여 달라는 부탁이었다. 국경에서 체포되지만 않았다면 의기투합하여 혁명사업을 함께 도모했을 동지들의 면면이 그리웠던 것이다.






(303-305)

101인 사건이란 식민지 시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3개 독립운동 탄압 재판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3대 독립운동 탄압 재판 중 첫 번째는 ‘105인 사건’ 재판으로, 식민지 시대 초기를 대표하는 비밀결사 신민회 탄압 재판이었다. 두 번째는 ‘48일 사건’ 재판으로, 3.1 운동 때 민족대표를 비롯하여 독립선언 사전 모의에 가담한 인사들에 대한 탄압 재판이었다. 이어서 바통을 넘겨 잡은 것이 바로 ‘101인 사건’ 재판으로, 3.1 운동 이후 들불처럼 타오르던 사회주의운동 대표 단체 조선공산당 재판이었다. 세 재판은 피고인 숫자가 각각 105인, 48인, 101인이었다고 해서 그런 명칭을 갖게 됐다. 당대 언론매체들은 이 세 재판을 “식민지 조선 통치 20년래의 대표적 중대 사건”으로 지목했다. 항일운동의 역사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신민회, 3.1 운동, 조선공산당이 나란히 손꼽히고 있음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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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3-04-03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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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열전] 사건과 인물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다보면 늘 놀랍다.

어쩌면 이토록 파도 파도 모르는 인물과 사건이 숨어 있는지 말이다.




이는 해방 후 좌우 분열 후 이념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큰 전쟁을 겪은 후 남북이 분단된 탓이 컸을 것이다. 많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가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은폐되었다.

오랜 세월 남한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를 논하면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다.

때문에 여전히 발굴해야 할 인물과 사건들이 많음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느끼고 있다.




1권은 사건 중심으로 독립운동사를 다루었다면 2권은 인물 중심으로 다룬다.

나오는 인물 중 2/3 정도를 모르는 것 같다. 이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에 투신한 독립운동을 많이 다루어서인 듯 싶다.

놀라운 것은 이 인물들의 모든 일대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 판결/수감 기록 등 외부를 통해 바라본 기록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또 본인의 마지막도 불명확하며 후손이 있었는 경우에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사국과 김한은 조선공산당(익히 우리가 아는 1925년의 조선공산당 아님. 1922년 조직된 중립당)의 핵심 지도자들이었다. 해외에는 상해파, 이르쿠츠파가 있었으나 중립당은 이들과 노선을 달리 하여 노동자 중심의 성격을 중요시했다. 물론 둘은 얼마 안가서 화요파와 서울파로 결별하게 된다.




박진순은 한국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정당이라고 불리는 한인사회당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이동휘와 함께 소비에트파로 활동을 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이동휘가 러시아가 독일과의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자 독일 스파이 혐의를 받게 되었을 때 박진순은 이동휘를 위해 모스크바에서 구명 운동을 벌인다. 그는 외교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들 뿐 아니라 빨치산 운동을 한 이들, 여성 운동가들 등 다양한 범위의 독립운동가들을 다루고 있다.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다. 역사는 역시 인물과 사건이 중심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연표를 달달 외우는 것만으로는 역사 공부의 재미를 찾기 어렵다.







관련 책들도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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