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3

제30화 러시아의 팽창(2): 몽골의 러시아 지배

제30화 러시아의 팽창(2): 몽골의 러시아 지배 : 네이버 블로그

제30화 러시아의 팽창(2): 몽골의 러시아 지배
현경병 // 세계사.근대 // ・ 2018. 6. 16.

몽골의 지배
킵차크 한국(1243~1502, 러시아 지배 1240~1480)은 주치에서 바투로 이어진 치세까지 포함하면
역사가 훨씬 길어지며, 후신 국가들까지 합치면 상당히 오래 동안 존속한 대제국이다. 비록 몽골 제
국 5한국의 하나였지만 가장 강력한 국세와 군사력을 자랑했다. 특히 바투는 그의 통치 중에 러시
아 전역을 장악하여 체제의 안정화를 확립했다.

킵차크는 러시아에 일부의 자치권을 주었지만, 반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러시아인은
몽골의 손이 닿지 않는 서방과 북방 지대로 옮겨가기 시작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결집했고, 모스
크바 공국을 세워 힘을 키워갔다(러시아는 대국 지향성이 강해서인지 노브고로드 공을 노브고로
드 대공, 모스크바 공국을 모스크바 대공국이라 높여 부른다).

그러다가 티무르 제국(1370~1507)이 몽골의 방계 계승국 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킵차
크 한국의 13대 칸인 토크타미시(1380~95)는 한때 서로 협력했지만 오랜 경쟁 끝에 결국은 패권 전
쟁을 벌였다.
1395년에 킵차크는 수도인 사라이 베르케가 함락당해 초토화되면서 급격히 몰락했다. 이후 칸은
형식상의 군주로 존속했지만 티무르의 허수아비 신세가 되었다. 그즈음 티무르는 모스크바 일대까
지 진격해 모스크바 공국을 휩쓸며 정복활동을 벌였으나,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않아 이내 철군하
여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원정했다.

킵차크는 전란 속에 결정타를 입은 상태에서 권력다툼으로 인한 내분과 러시아 제후들의 이탈로
지배력이 차츰 느슨해졌다. 반면에 몽골의 통제가 느슨해진 상태에서 착실하게 힘을 기른 모스크
바 공국은 상대적으로 강해져 갔다.

1480년. 이반 3세(1462~1505)는 크렘린궁을 중심으로 전제군주제를 확립하면서 기력이 다한 몽골
로부터 우그라강 전투에서 승리하며 완전히 독립했다. 최초로 차르를 자칭하면서 모스크바 공국
을 대공국으로 격상하고, 노브고로드·트베르 공국 등을 통합해 초기 러시아 민족국가의 모습을 형
성했다(차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해 황제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는데, 그 러시
아어로 동로마 황제에 한해 사용한 칭호였다. 물론 주변 유럽국에서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반 4세(1533~84)가 공포 철권정치를 휘두르며 1547년에 다시 차르를 칭하면서 ‘모스크바 러시
아’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방의 후진적인 국가로 여겨져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러시아
에 대한 진정한 인정은 표트르 대제(1682~1725, 국왕 1682~1721, 황제 1721~25)가 1721년에 ‘러
시아 제국’을 천명하면서 이루어졌다.

몽골의 지배 이후 진정한 러시아 역사 출발의 토대

몽골 제국은 통치방식에서 느슨한 통치로 일정한 자치권을 인정했다. 그러다보니 영토가 없은 러
시아에서는 여러 공국(제후국)들이 생겨났다. 모스크바 공국 역시 몽골의 지배 아래에서 볼가 강의
영지를 봉분 받아 성립한 작은 공국이 시초였다. 러시아인에 의한 진정한 러시아 역사의 시초로서
산재했던 수많은 군소 도시국가들의 하나에서 출발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몽골 제국(1189~1635)
의 5한국의 하나인 킵차크 한국의 지배를 받다가 그 쇠퇴를 틈타 세력을 확대하며 발전해 갔다.
모스크바 공국은 몽골의 지배가 끝이 난 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을 거쳐 모스크바 러시아와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모스크바 공국은 정복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주변으로 세력
을 확장하면서 대국화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다보니 킵차크 한국에 의한 오랜 지배를 받으면서 몽골의 전반적인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
다. 무엇보다 몽골 제국을 통해 난립하던 작은 공국들이 합병되면서 방대한 영토가 하나의 영역으
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또한 몽골을 통해 제국의 형성과 경영, 통치 방법과 관리술, 강력한 군사
력 확충과 군대 운용, 정복전에 필요한 전략전술의 현란한 활용, 동진과 남진의 진격로 파악 등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러시아는 유럽으로는 흑해까지, 아시아로는 우랄 산맥을 넘어 중앙
아시아, 시베리아, 극동의 오호츠크 연안까지 진출하여 오늘날 세계 최대의 영토를 보유하게 되었
다.
여기에서 ‘문명의 역설(2법칙)’이 나온다. 대국일수록 작은 소국에서 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란 사
실이다(문명의 역설 1법칙은 거주지와 주변환경이 좋은 곳에서 살면 사람들이 게을러지고 사회와
문명의 낙후화 속에 느린 진전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류문명사의 주역으로 활약한 고대 그리
스, 로마, 몽골, 오스만, 스페인,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이 작은 도시국가이거나 부족국가에서
출발하여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대제국을 일으켰다. 현재 세계 최대의 영토대국인 러시아도 예외
가 아니다.
물론 지도자와 주도 세력의 시대정신과 치열한 대외진출이 현실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
서 다른 외부 국가·세력의 지배를 받다가 역경 끝에 독립한 후 그 비법을 체득하면서 전수받듯이 활
용하여 대제국을 세운 것이다.
사실 한국이 현대사에서 세계인이 주목하는 성공을 이룬 것도 일본이라는 반면교사와 막강한 경쟁
대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주변국이 존재한다는 사
실을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인구 14억명과 1억2600만명의 거대 시장이 바로 옆에 있어 우리가 하
기에 따라 번영의 역사를 일구어가며 인류문명의 선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7억명에 육박하는 동
남아시아까지 포함하면 동아시아 전체로는 훨씬 더 어마어마해진다).
이런 점에서 인구 5억명의 유럽대륙을 끼고 있는 독일, 프랑스, 영국을 부러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
다. 4억8000명으로 멕시코까지 포함한 북미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강대한 주변국이 존재하는
사실을 걱정한다. 하지만 유럽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고, 독일·프랑스·영국도 주변 강대국
을 의식하면서 강국화를 이루어왔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최강대국 미국과 접경하면서 G7의 일원
이 되거나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어 어디든 사정이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서로 강대한 세력끼리 모여 있어야 더욱 발전한다는 ‘문명의 역설(3법칙)’이 적용되어 이들
세계 3대 주축 지역이 21세기를 이끌고 있다고 봐야 한다(참고로 우리의 정세를 말할 때 주변 4강
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미국은 우리와 지구 반대편 가장 멀리 있어 낮과 밤이 다른 곳이다. 한국
중심적 사고에 입각하여 주변 3국, 굳이 주변국을 강조하려면 주변 3강이라 해야 하며, 우리의 북쪽
에 러시아, 동쪽에 일본, 남쪽에 동남아시아, 서쪽에 중국이 있는 것이다).

<타타르의 멍에>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가 끝이 나자 자신의 역사에서 몽골의 지배 사실은 물론이고 흔적마저 지웠
다. 킵차크 한국에 의한 지배기를 러시아의 없애고 싶은 불편한 역사로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일반
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에서는 킵차크 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며, 바투라면 아예 모르는 존재이
거나 알더라도 두려운 침략자에 무자비한 정복자로 인식되는 정도다.

다만 아예 도려내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는 듯 도무지 알 수 없는
용어로 대충 넘어가고 있다.

‘타타르의 멍에(1240~1480).’
‘지배기.’

심지어 몽골의 명칭마저 타타르라 하여 그 흔적조차 알기 어려운 용어로 대체시킨 채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 뒤로는 러시아의 도약·발전기로서 근대라 하여 모스크바 공국, 모스크바 러시아(루스 차
르국), 러시아 제국으로 정리하여 러시아의 영토 확장을 통한 대국화를 전개했다.
현대 러시아를 두고서는 러시아 공화국(1917), 소비에트 러시아(1917~22), 소련(소비에트 연방.
1922~91), 러시아 연방 공화국(1992~지금)으로 정리하여 러시아사를 완비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소련까지 포함해 소비에트 러시아(1917~91)로 구분하기도 한다).

모스크바 공국의 건국: 강자의 지배 아래 살아남으면 그만큼 강해진다
러시아 일대는 몽골 제국이 대대적인 정복에 나서 점령하면서 지배하게 되었다. 그 시기를 두고
1240~1480년대로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칭기즈칸의 명을 받은 주치가 1220년경에 러시아
일대를 정복하고, 오고타이의 명을 받은 바투가 1240년경에 러시아 전역을 완전히 정복하여 이 일
대를 기반으로 1243년에 킵차크 한국을 성립했는데, 공세기를 1220~40년대로 보고, 점령기를
1240~1480년대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특히 바투가 50만 대군을 원정군으로 편성하여 이끌고 1237년에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러시아를
침공했다. 1240년에 키예프 공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그 일대를 점령한 이후 볼가강 하류 지역인
사라이에 본거지를 마련한 뒤 무려 240여년 동안 러시아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러시아
는 유럽과 단절되었다.

다만 몽골 제국의 관심이 거의 없었고 지배력이 제대로 닿지 않았던 북방 지대를 기반으로 한 모스
크바 공국이 일어나 점차 영토를 확장하여 모스크바 대공국 시대(1340~1547)를 열기도 했다. 원래
모스크바 공국은 류리크의 지배를 받은 이후 키예프 공국의 일부였다가 몽골의 지배 때 러시아인
들이 모여들자 13세기부터 성장하다가 공국을 세워 영토 확장을 시작하며 기틀을 다져 오늘날 러
시아의 시초이자 기초가 되었다.
모스크바 공국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공(1252~63) 시절 바투 칸의 아들로 2대 칸이 되는 사르
타크(1255~56)와 의형제를 맺는 한편 바투 칸의 딸과 결혼해 처참하게 몰락한 채 정복당한 소국들
과 달리 몽골의 핵심 인물이 되어 몽골로부터 지배를 받되 나름의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그의 막내아들인 다닐 알렉산드로비치(다니엘, 1283~1303)는 선대를 계승하며 모스크바 공국을
건국하여 류리크 왕조의 혈통으로서 러시아의 초대 군주로 즉위했다. 이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북방 지역의 영토를 넓혀갔다. 몽골로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던 지역에다 지배 하의 공국이 영
토를 확장하는 것을 반대할 까닭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 몽골의 압제와 전쟁으로 찌든 러시아 백성들이 모스크바로 몰려들자, 다닐 알렉산드
로비치의 2째아들이자 블라디미르 대공인 이반 1세(1328~40) 때 모스크바가 공국의 확장된 영토
의 수도가 되었다.
1380년에 모스크바 공국은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지휘 아래 벌인 쿨리코보 전투에서 40만 몽골대
군을 격전 끝에 물리쳐 역사상 처음으로 몽골군에 승리하는 전과를 올려 기세를 올리기도 하여 지
금도 러시아인의 영웅으로 여겨진다(모스크바에 크렘린을 축성하여 러시아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
는 터전을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1382년에는 토크타미시 칸의 공격으로 모스크바가 함락되며 곧바로 다시 몽골의 지배 아
래 들어갔다. 뒤이어 1395년이 되어 토크타미시와 경쟁하던 티무르가 몽골 제국의 후신이자 몽골
의 일부 지역을 차지한 계승국으로서 서로 간의 패권 전쟁을 벌여 테레크 강변에서 크게 격파하고
모스크바를 휩쓸었다(일부에서는 모스크바로 들어오지 못하고 부근까지 진군했다고 주장한다).

<러시아의 동장군>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1941년 히틀러의 소련(현 러시아) 침공은 겨울이 되면 전쟁 수
행 자체가 어려워지는 현실을 알기에 모두 6월에 시작했다. 대군을 출정시켜 압도적인 우위 속에
속전속결로 끝내려 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동장군이라 불릴 정도로 유별난 러시아의 겨울을
두려워했다. 나폴레옹은 50일치 군량을 준비하도록 명령했고, 히틀러는 전쟁을 4달 안에 마무리하
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추운 겨울을 최대한 활용했다. 나폴레옹에게 수도 모스크바까지 내주면서도 멀
리 대피해 버티면서 겨울을 기다렸고, 결국 나폴레옹이 12월 영하 39도의 강추위가 덮친 가운데 물
러나자 대대적인 추격전을 전개하며 뒤쫓아가 궤멸시키거나 포로로 붙잡았다.
러시아는 2차대전에서도 겨울 덕을 톡톡히 봤다. 우크라이나의 평야가 10월에 15일 동안 비가 내
려 진창이 되어 나치독일의 전차가 멈춰 섰고 이내 맹추위가 덮쳐 부동액이 얼어 고장나면서 여름
군복을 입었던 독일군들은 동사했다(우크라이나 평원은 가을 우기가 끝나면 ‘라스푸티차’라 하여
눈이나 비가 내린 뒤에는 거대한 진창 즉 온통 진흙밭으로 변해, 나폴레옹 군대는 물론 히틀러 군대
까지 말은 물론이고 포·전차·차량 등 바퀴가 달린 장비들을 움직일 수조차 없어진 상태에서 떼죽음
을 당할 정도로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고 물러나야 했다. 방어에는 극히 유리하지만 공격에는 너무
나도 불리해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야심도 여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유럽 동부 전선의 승패를 가른 독일군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 역시
1941.9~1944.1월까지 이어갔지만 결국 영하 40도의 강추위에 버틸 재간이 없자 남쪽으로 후퇴했
다. 이 전투는 역사상 가장 길고 파괴적인 봉쇄전으로 가장 많은 400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1942.8~1943.2월 간 벌어진 전투로 2차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
라드) 전투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됐다. 독일 제6군과 가세한 추축국군이 포위 작전을 펼쳤지
만 소련군의 반격 속에 이번에도 겨울이 닥쳐오자 전투력을 잃어버린 독일군이 패퇴하며 굶어 죽
거나 얼어 죽었다. 이 전투는 200만명이 죽은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지만 몽골 전사들은 겨울을 전혀 두려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았다. 막강한 기마 군단들을
앞세워 모스크바를 거쳐 발트해까지 러시아 전역을 휩쓸며 승리를 이어갔고, 마침내 그 지배 아래
로 두었다(1939.11~1940.3월 간 소련-핀란드 1차전쟁, 즉 겨울 전쟁에서는 소련이 핀란드를 침략
해 영토 10%를 할양받는 등 일정한 성과를 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와 유럽인이 가진 4가지 잘못된 인식>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를 ‘타타르의 지배’ 정도로 언급하여 몽골에 대한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인식
을 최대한 반영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유럽인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서는 전반적인 역사 인식의 오
류를 초래했다.
1째 러시아의 몽골 지배를 아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대국일수록 소국에서 출발하고 승리
와 패배 속에 이겨내며 성장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이고 상식인 것을 되새겨 원래의 역사를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기껏 알고 있는 정도라고 해도 대충 스쳐지나가듯 살펴보는 정도로 설명하여 망
각 또는 경시의 풍토를 만들었다.
2째 몽골의 지배를 ‘타타르의 멍에’라고 하듯이 애매모호한 말로 건너뜀과 아울러 러시아에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몽골인을 ‘타타르(Tatar)’로 부르고 있어 이 말은 몽골 동쪽에 웅거하던 대초원 민족
으로 몽골에 의해 멸망하며 합병되었던 부족의 이름인 만큼 다분히 모욕적인 호칭인데 북방사의
오류와 혼선을 불러왔다.
3째 러시아의 군주를 차르(짜르)로 부르면서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계승
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 황제의 호칭인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유럽
적 어원에 더해 몽골이 러시아를 지배하면서 그 지역의 통치자를 몽골어로 ‘자이안칸’이라 불렀는
데,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4째 몽골의 과오 만을 지적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공과를 같이 다뤄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몽골을
쫓아내 모스크바 공국이 성공적인 발전이 가능했고 러시아가 정교회 국가로 남게 되었다고도 강조
한다. 몽골이 지배하는 가운데 모스크바 공국을 성립하도록 승인했고, 피지배민족의 종교에 대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거의 관여하지 않아 정교회가 위협받은 바는 없었으며, 러시
아인이 시달린 것도 맞지만 몽골의 영향을 받아 남하와 동진에 나서 영토대국 러시아가 가능해진
측면도 분명한 사실이다.

 * 2016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크림 반도의 타타르족 우크라이나 가수 자말라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인 ’1944‘를 불러 러시아 가수를 누르고 우승하며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
으로 국지전까지 벌여야 했던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녀의 증
조할머니가 겪은 참극을 다루면서 타타르족의 존재가 새삼 거론된 바 있다.

1937년 일본 제국과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연해주의 우
리 한국계(고려인, 카레이스키)처럼 1944년 소련 지도자 스탈린에 의해 나치독일에 협력했다며 3
일 만에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크림 반도에 살고 있던 타타르족 25만여명이 중앙아시아
로 쫓겨났고, 크림자치공화국은 폐지당했다.

그 과정에서 8000여명이 죽어야 했고, 생존자들은 낯선 땅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했으
며, 1967년 그 혐의를 벗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지내다가 소련이 해체된 1990년 크림 반도
로 귀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동족들이 중앙아시아와 터키에 흩어진 채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다.

이들은 원래 북방민족의 한 갈래인 몽골족이다. 러시아가 오랜 몽골의 지배를 거치면서 독립한 이
후 극도의 부정적인 인식 아래 이들을 타타르족(타타르인, 타타르계)으로 불렀다. 기나긴 세월 동
안 현지화와 혼혈을 거치면서 지금은 몽골인과 한민족 등의 북방계와 모습, 언어, 문화 등에서 이질
화 되어 있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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