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6

알라딘: [전자책]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알라딘: [전자책]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 epub
권명아 (지은이)책세상2018-01-22

종이책 페이지수 166쪽, 약 10.9만자, 약 2.7만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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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가족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담론 중 하나이다. 사회 구성의 기본 요소는 개별 가족이며 대부분의 사회 문제의 기원은 가족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 보통이다.<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우리 문학에서 가족 문제는 어떤 식으로 투영되고 그것은 근대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나타나는가를 살피고 있다.

예를 들어 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가족의 기원'을 문제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만연된 가족 관념, 가족의 가치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박완서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가족적 가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족 관념이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제기한다.

가족이 '혈연의 끈끈한 정'에 의해 가치를 지니는 것도 아니고, 삭막한 세상으로부터의 안식처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배타적 권리를 수행하기 위한 권력의 장이 되었다면, 과연 우리는 '가족적'이라는 것 속에 투영한 '따뜻함, 화목함, 우애, 포근함' 등의 감정을 어디서 회복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한국전쟁 직후의 작품들부터 박완서, 방현석, 신경숙, 배수아, 은희경 등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가족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목차
책을 쓰게 된 동기

제1장 근대적 관계의 상상적 준거, 가족
1. 왜 가족을 말하는가
2. '가족 문제'는 '여성문제'인가
3. 가족 모델에 입각한 근대적 관계

제2장 근대의 '무의식'으로서 파시즘과 가족 이데올로기
1. 위기는 가족을 부른다
2. 세계 상실의 체험과 '해체된 가족'의 표상
3. '상실된 전체'의 대리적 보상물, '모성의 집'
4. '모성의 집'에 대한 콤플렉스
5. '훼손된 누이'에 대한 콤플렉스
6. 모성 신화와 가족주의, 그파시즘적 형식

제3장 가족의 기원과 역사에 대한 소설적 탐구
1. '가족의 품'은 따뜻한가
2. home sweet home!
3.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다

제4장 '근대 극복'의 기획과 가족 로망스
1. '집단적 주체'로서 민중과 여성, 그리고 차이와 정치학
2. 소년과 소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3. '새로운' 권력 관계의 상상적 구조로서 가족
4. 오누이의 권력학
5. '성장'이라는 가족 로망스의 악몽
6. 불륜의 플롯과 가족 해체의 소문들

맺는말 - 가족을 역사적으로 사유하기 위하여

용어해설
이 책에서 다룬 작품들
더 읽어야 할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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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권명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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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회적 고립자들의 가족 회귀 신화, 그리고 파시즘 새창으로 보기
최근 몇 년간 케이비에스 9시뉴스 이전에 나오는 류의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드라마들의 화두는 가족이며, 주된 내용으로 두 남녀가 만나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고 결혼한 후에 두 집안(특히 시댁에서의 갈등)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이야기에 매혹되며 그들은 이를 통해 무언가를 보상받으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한나 아렌트의 용어로) '무사회적 고립자들'의 절망과 불안을 가족의 신화를 통해 보상받고자 함이다.

우리 착각하지 말자... 최근 이런 식의 가족에 대한 관심의 본질은 가족 자체에 대한 진지하고 반성적인 관심의 결과가 아니다. 이 책의 내용대로 이것은 각박해진 세상, 각박해졌지만 아무런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있지 못한 세상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가족 뿐일 것이라는 상상적 탈출구일 뿐이다. 이와 같은 가족에 대한 회귀 열기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의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일 뿐이다.

무사회적 고립자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혁명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파시즘적 혁명일지 공산주의혁명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만, 어떤 혁명이든지 간에 그런 사람들이 주동이 된 혁명은 결국 파시즘적 특성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뻔한 걸 왜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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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 2001-07-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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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에 대한 아쉬움 새창으로 보기
한 사람이 자기정체성을 형성해가는데 있어 가족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운명처럼 존재한다. 운명이기에 어떤 계기를 통해서도 벗어나기 힘들다. 그때 그는 ‘가족 로망스’로 자기를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난 원래는 고귀한 집안 출신인데 어쩌다 보니까 지금처럼 되었다”는 식의 얘기를 꾸며냄으로써 그는 환상적인 만족을 느낀다.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도 ‘가족 로망스’는 필수적이다.

사회가 정체성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가족은 다시 불려온다. 그 가족은 어떤 균열과 상처도 없는 원형의 공간, 모성의 공간으로 고난에 찬 이들의 혼란을 감싼다. 그때 그 과정은 가족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명명되고 비판된다. 그러나 가족은 비판되면서 동시에 수용된다. 가족으로 돌아가라! 거기서 당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라! 사회는 개인에게 그렇게 역설하고 상처입은 영혼은 알게 모르게 그곳으로 향하는 자신의 무의식을 발견하고 섬뜩함을 느낀다. 그렇다. 인간의 자궁을 빌어 태어난 그 누구에게도 가족은 끊임없이 자신의 발목을 물고 늘어지는 여귀의 집요한 손짓처럼 존재한다.

이 책은 가족을 둘러싼 서사의 기원과 생성, 그 효과의 메커니즘을 근현대 한국소설들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통념처럼 가족의 문제는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며, 모성신화와 가족주의는 일정 부분 파시즘적 형식으로 존재했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부르주아 여성 작가 전경린의 로맨스, 불륜은 근대 낭만주의 연애의 서사에 불과하다.

모두 맞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느껴지는 허전함은 무엇일까. 상상력의 부족이랄까. 현상을 분석할 때 분석의 틀에 정공법적으로 맞아떨어지는 현상만을 취사선택할 때 아귀가 맞아떨어진다는 흡족함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연관성이 없을 듯한 현상에 대해 본질의 잣대를 갖다댈 때의 난감함과의 부딪침을 애써 비껴갈 때 거기에는 균열을 은폐한 완벽함의 공허함만이 남는 건 아닐까. 방현석과 배수아, 신경숙의 텍스트가 일종의 취사선택의 결과라고 했을 때 그 무의식의 균열과 혼란마저도 드러냈으면 하는 것, 그것마저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유별난 독자의 욕망이다. 따라서 가장 무난한 선택이라는 인상은 저자의 상상력에 대한 아쉬움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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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ulemono 2002-04-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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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이름으로 새창으로 보기
나에게 있어서 가족주의란 혈연중심의 이기적 심정으로 타파해야할 유산으로 생각되었다. 내 가족 내 집의 울타리를 먼저 생각하다보면 타자에 대한 높은 울타리를 치게 되고 논리성이라든지 합리적인 사고의 틀을 무시하는 원초적 본능으로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 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이런 생각을 토대로 7,80년대를 거침없이 살아왔다. 매사에 가족보다는 이웃과 사회를 먼저 생각한다며 자식에 대하여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배운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사회에의 기여도가 전혀없이 곳곳에서 이기적인 집단들과 울타리들을 만나며 상처를 입고 자기 방어을 하기 시작한지 꽤 되었다. 하지만 가족의 울타리도 제대로 치지 못한 어줍잖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접기가 어려웠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오랫동안 괜찮다는 직장에서 맞벌이를 했으면서도 남들보다 십년은 더디게 집장만을 겨우 하였고, 자녀들을 위해서나 노후를 위한 적립을 제대로 못하여 늘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인생의 중반기에 들어서서 이런 나를 들여다 보면서 가족로망스를 부정하는 근대의 이야기나 서사를 생각한다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하는 회의를 많이 하였다. 내 가족만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가족을 향한 눈을 떼지않고 휴일이면 가족끼리 여행하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 내심부러워 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여러 작가들의 소설을 바탕으로 가족의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읽는 맛이 여러 가지로 났다. 소설 속에서 들여다 보는 가족이란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밝히고 실체에 접근해가는 저자의 관점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늦은 헌신과 충성(?)을 생각하는 중이다. 따뜻함이 필요할 때 돌아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것이 꼭 가족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의 오목이에게 내일을 여는 집의 가정을 주는 일이 여의치 않음은 부모된 자로서 내가 자기검증없이 가담한 가족이기주의 비판으로 내 자식에게 지운 짐의 무게 속에서 발견하게 될까 저으기 두렵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내일을 여는 집에서 발견되는 희망에 별로 긍정적인 것 같지도 않다만, 가족에 기대는 신화나 신비의 껍질을 죄다 벗기어 버린다 해도 기대고 싶은 언덕 하나쯤은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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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우 2004-02-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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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새창으로 보기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바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파시즘의 출현은 현실적 관계를 구성하는 소위 보수적 집단과 진보적 집단의 비전이 자신들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대중들의 불만, 위기감과 관련 있다. 역사적으로 근대 파시즘은 소위 부르주아나 프롤레타리아라는 현존하는 계급 관계로 포착되기 힘든 집단들-룸펜 지식인, 소외된 여성 집단, 인종적 소수 집단들, 프롤레타리아라는 범주로 설명하기 힘든 노동자 집단 등-이 나타난 시점과의 연관성에서 출현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현존하는 오래된 대안이 자신들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불만, 이에서 비롯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와 공포가 만연할 때 변화에 대한 이들 집단의 요구는 ‘제3의 길’로서의 파시즘과 불행한 조우를 하게 된다. 물론 이들 집단의 집단적 무의식과 현실적 요구가 파시즘을 산출하게 된 현실적 이데올로기적 토대라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이 강력한 정치 체제로서 대중적 기반을 획득하는 현실적 근거들이 이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
따라서 한 사회의 파시즘화를 경계한다면 보수 이데올로그의 준동에 격분하기 전에 그 사회의 집단적 원한의 수위를 살펴야 할 것이다. “남성을 적으로 돌린 여성 운동이 성취한 것이라고는 노후 대책 없는 사회에서 불행한 이혼녀나 가난한 독신 여성들을 양산한 것이 고작”이라는 식의 페미니즘에 대한, 또는 여성의 권리 주장에 대한 반동적 담론들이 보여주는 바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원한의 위험 수위이다. 불행한 이혼녀, 가난한 독신녀, 사회적 경제적 무능력자라는 자책감과 사회에 대한 환멸만을 키워가는 고학력 실업자들,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해도 남들이 하루에 버는 돈을 평생 만져보지도 못하는 사람들, 기성 정치를 불신하고 진보 진영에 대해서는 회의하는 사람들, ‘자기’를 주장하는 여권 운동가와 신세대들 사이에서 이도 저도 못하는 수많은 ‘아줌마들’, 거리로 내몰려 ‘삐끼’, 폭주족이 되거나 룸살롱과 단란주점에서 하루벌이로 오늘이 인생의 전부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 이들의 존재가 바로 우리 사회의 원한의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다. 낙관적인 혁명가들은 혹시 이들의 원한이 최대 수위에 도달하는 순간이 ‘혁명’의 순간이라고 은근히 기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면 이들의 원한은 파시즘이라는 혁명의 순간을 불러내기도 한다. 따뜻한 가족의 품이 안전 지대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 강제 덕분이다. 가족의 경계 바깥에 어떠한 안전지대도 마련하지 않는 사회, 이 사회가 수많은 사람들을 무사회적 고립자, 거리의 사람들로 만든다. 전후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러한 무사회적 고립자들의 원한이 그들로 하여금 따뜻한 가족의 품 외에는 어떠한 탈출구도 찾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 바로 그 현실이 위험 사회로 달려가는 지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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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프레스 2012-10-0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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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문제에 대한 참신한 접근 새창으로 보기 구매
가족을 비판할 때 쉽게 제기할 수 있는 것은 봉건적 잔재와 권위주의이다. 이런 틀을 가지고 가족문제를 접근할 때에 생기는 난점은 ‘근대의 완성을 통해 가족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이다.(21면) 한편, 맑시즘은 공사 영역의 분리 속에서 재생산의 영역으로 가족을 의미화한다. 소유관계가 폐지되면 남성 지배의 물질적 토대가 상실되고 그에 따라 현재와 같은 의미의 가족은 소멸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노동운동진영을 젠더중립적인 공간으로 설정함으로써 많은 것을 은폐한다.

저자 권명아는 이 책을 통해서 위의 두 관점이 간과하는 영역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가족이 근대인들의 정치적이고 개인적인 정체성 형성의 ‘상상적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개인과 사회를 재구성하는 혁명적 과정의 배후에 깔려있는 ‘가족의 상상력’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97면)

가족 이데올로기는 근대의 무의식이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자신을 아비 잃은 고아로 인식하였다. ‘소년’교육에의 몰두는 타협적이고 개량적인 노선을 지향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4.19세대는 ‘청년’으로 자신을 규정한다. 타율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은 ‘소년’세대와 달리 미래의 담지자로서 당당함이 있다. 반면 80년대의 ‘동지’는 소년, 청년과 같은 부르주아 개인주의적 표현을 거부한 집단적 자기규정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새로이 구성한 정치적․사회적 관계 모델에서도 여전히 권력의 중심이 ‘남성’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남성중심적 권력관계’가 본질적이고 초역사적인 실체는 아니다. 부녀에서 부부, 부부에서 동지로 그 관계는 변화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어디까지나 ‘가족적인 상상력’의 테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동지’라는 중성적이고 집단적인 주체조차 여성의 차이를 무화시키는 폭력 속에서 가능하다.(125면)

저자는 소설 속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성격 묘사, 대사, 의식의 흐름 등을 포착하면서 근대적인 주체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어떤 식으로 가족을 이미지화하는지 설득력있게 분석한다. 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전쟁 후 극한적인 상황에서 무사회적 고립자들이 선택하는 역설적인 자기구원 방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3장) 4장에서 다루는 방현석, 신경숙, 배수아의 작품은 민중문학과 여성문학이 갖는 공통분모와 갈등을 알게 한다.

혁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가족의 강화’가 삶의 절박함이란 토양 속에서 ‘無대안’이란 비료를 줄 때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둬야만 한다. 대중에게 현실적인 대안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운동은 현실로부터 일탈과 초월을 부추긴다. 절망적인 고립감, 도피처로서 가족 설정, 구원자로서 어머니 표상, 혈육의 수사와 낭만주의 미학. 그 식물이 맺는 열매는 파시즘이다. 전후부터 80년대까지 한국사회에 파시즘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의 집단적인 무의식과도 관련이 깊다. 삶의 절박함 속에서 자라는 식물이 해방이 될지, 파시즘이 될지는 ‘누가 어떤 비료를 주느냐’에 달려있다.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가족적 무의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 그것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와 공포, 파시즘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결국 가야할 길은 한 가지다. 가족의 배치를 넘어서는 것. 정서적인 유대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의 장을 생성하는 것. 해방을 가져오는 ‘새로운 상상력’은 그 속에서 배태된다. 물론 이는 ‘가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화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의 망. 혈연, 지연, 학연, 성별, 계급도 마찬가지다. 혁명은 외부에 있지 않다. 혁명은 자신에게 각인된 지배적 습속을 인식하고, 들어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은 낯섦, 차이를 즐거움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과 이질적인 장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이다. 저자의 말대로 가족의 기원을 묻는 것은 출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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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ㅎㅎ 2004-01-0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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