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5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유영수 2021

알라딘: [전자책]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eBook]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유영수 (지은이)휴머니스트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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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제공 파일 : ePub(27.29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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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296쪽,
책소개
일본을 막연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의 편견이며, 어째서 일본이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수년 동안 일본 특파원으로 활약하며 3.11 동일본대지진과 한류 붐을 지켜본 유영수 기자는 전후(戰後) 일본의 성장 동인이 오늘날에는 족쇄가 되고, 메이지유신 시대의 질서가 제대로 쇄신되지 못하면서 지금의 일본이 갈수록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다양하고 생생한 사례와 치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도입했고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지만, 권위주의 문화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산업의 쇠퇴와 주변국의 부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라 일본. 이 책은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나라로 생각했던 일본이 어떻게 해서 ‘어제’에 갇혀버렸는지 살펴봄으로써, ‘선진국’ 일본의 맨얼굴을 직시하고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일본의 그림자를 깊이 성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목차


들어가며_일본이 ‘선진국’이라는 믿음이 흔들리다

Part 1. 일본은 ‘선진 법치 국가’일까

Chapter 01. 왜 닛산 회장은 ‘인질 사법’이라고 비난할까
Chapter 02. 일본에 헌법재판소가 없는 이유는
Chapter 03. 왜 일본에서는 미투 운동이 활발하지 않았을까
Chapter 04. 왜 총리는 성폭력 피해자를 비하한 의원을 감쌌을까

Part 2. 개인이 보이지 않는 사회, 일본

Chapter 05. 일본인은 집단주의적일까, 개인주의적일까
Chapter 06. 왜 일본에서는 기부가 활발하지 못할까
Chapter 07. 일본이 ‘약한 시민사회’로 불리는 이유는
Chapter 08. 왜 한국 정부는 731부대원에게 훈장을 줬을까

Part 3. 일본 정치는 왜 정체되고 있을까

Chapter 09. 심은경은 어떻게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나
Chapter 10. 왜 관료는 ‘발전의 견인차’에서 ‘개혁의 걸림돌’로 전락했을까
Chapter 11. 같은 칸 영화제 대상인데 한일 반응이 다른 이유는
Chapter 12. 일본에만 있는 자숙경찰, 왜 활개 칠까

Part 4. 뒤처지고 있는 ‘일본주식회사’

Chapter 13.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Chapter 14. 전문가들이 경산성의 대한수출규제 주도를 우려한 이유는
Chapter 15. 왜 일본의 경영자는 CEO보다 사장으로 불리기를 선호할까
Chapter 16. ‘회사사회’ 일본의 붕괴

Part 5. 일본은 ‘문화 선진국’일까

Chapter 17. 왜 일본에서는 창작 영화가 드물까
Chapter 18. 나이키 광고가 일본에서 논란을 일으킨 이유는
Chapter 19. 초대 문부대신이 ‘언어적 매국노’라고?

나가며_‘어제’에 갇힌 일본을 생각한다

주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나는) 이제 유죄가 전제되고 차별이 만연하며,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정의롭지 못한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아니다."




P. 20~21 ‘99.9%의 유죄율’은 양면성이 있다. 일본 검찰은 이 수치를 자랑스러워하고, 신화로 여긴다. 철저한 ‘정밀精密 사법’을 통해 유죄라고 확신이 드는 사건만 기소하기 때문에 재판에서 높은 유죄 판결을 끌어낸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피의자 처지에서는 너무 절망스러운 수치다. ‘기소=유죄’, 즉 기소되면 재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무죄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야기다. 웬만하면 구속되고 자백하지 않으면 장기간 구금되는데, 기소되면 거의 유죄라니. 기소되면 말 그대로 끝장인 셈이다. 상당수 일본 변호사와 법학자가 ‘99.9’라는 수치를 일본 사법 체계를 비판할 때 쓰는 이유다.
_ Chapter 01. 왜 닛산 회장은 ‘인질 사법’이라고 비판할까 접기
P. 45 왜 일본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하지 못했을까? 언론들은 이토 시오리 사례에서 보듯이 폭로 자체가 어렵고, 폭로해도 처벌을 기대할 수 없으며, 폭로 이후 부는 역풍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본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독자의 88.9%는 미투 운동에 공감한다면서도, 92.9%가 “일본 사회는 추행 등 성폭력 피해의 목소리를 내기에 좋은 사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더욱이 성차별 의식을 내면화한 여성이 적지 않은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같은 여성이지만 피해자를 지원하기보다 오히려 비난하거나 방조한 셈이다.
_ Chapter 03. 왜 일본에서는 미투 운동이 활발하지 않았을까 접기
P. 94~95 그럼 일본에서 ‘관 우위’의 관점은 근대화 초기에만 있던 인식일까? 적지 않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흘러갔던 사상적 배경에는 개인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한 일본 특유의 공사公私 개념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公’은 국가, 더 나아가 천황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슬로건인 멸사봉공滅私奉公은 원래의 좋은 뜻과는 거리가 먼 ‘천황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뜻했다. 따라서 ‘公’은 우선시해야 하는 큰일인 반면, ‘私’는 ‘사사로운 일’ 또는 ‘사리사욕’에 가까운 말로, 억제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고 지적한다. ‘公私’에 해당하는 영어 ‘public’과 ‘private’라는 단어가 상하관계의 뉘앙스가 없는 대등한 개념인 데 비해, 일본은 항상 ‘公’이 ‘私’보다 위였고 이는 군국주의라는 불행을 불러왔다고 단언한다.
_ Chapter 06. 왜 일본에서는 기부가 활발하지 못할까 접기
P. 114 가토가 훈장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한국 신문을 찾아보니, 그가 제주도와 경남 등지에서 기생충 퇴치 봉사를 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는 기사가 짧게 실려 있었다. 일본 신문에도 “가토 씨가 저개발국 한국의 기생충 조사를 위해 훈장을 받기 전까지 한국을 여섯 차례 다녀갔다.”고 나와 있었다. 또 다른 일본 신문에는 그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여러 차례 방문해 ‘의학 봉사’를 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731부대 희생자 대부분은 중국인과 한국인이었다. 가토는 어떤 마음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의학 봉사를 했을까? 731부대 시절 자신이 가담했던 만행에 대한 나름의 속죄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평생 합리화하며 살았을까? 취재하면서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그리고 어쩌면 적지 않은 일본인이 가토 방식의 ‘반성’과 ‘자기 위안’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_ Chaper 08. 왜 한국 정부는 731부대원에게 훈장을 줬을까 접기
P. 143~144 언론의 정권 견제 능력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언론 감시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20 언론자유도’에서 일본은 66위였다. 2011년 같은 발표에서는 11위였다. 9년 가까운 아베 전 총리의 장기 집권 기간에 계속 뒷걸음질 친 셈이다. 언론의 큰 기능인 정보 전달과 견제?비판 중 후자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42위였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여전히 자랑스럽지는 않은 수준이다. 일본 정치부 기자들이 자국 정치인들을 비판할 때 종종 쓰는 표현이 ‘위로부터의 시선上から目線’이다. 아직도 정치를 베푸는 걸로, 국민을 그저 ‘통치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국민의 수준을 가리키는 ‘민도民度’나 ‘분수에 맞게’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사적인 자리에서는 ‘백성’이란 단어를 쓰는 정치인이 아직까지 있다니 말 다했다.
_ Chapter 09. 심은경은 어떻게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나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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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유영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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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SBS 기자로 27년 동안 일하면서 경제부, 사회부, 문화부, 국제부를 두루 거쳤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을 지냈고, 2010년부터 3년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3.11 동일본대지진과 한류 붐을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현대 일본인의 심리를 분석한 《일본인 심리 상자》를 썼으며,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일본인 진짜 속마음〉 시리즈 강의를 하는 등 자타공인 ‘일본통’이다. 우리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타자인 일본 바로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작 :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일본인 심리 상자>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언제나 앞서간다고 생각했던 나라, 일본
어제에 갇힌 일본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다

‘일본통’ 유영수 기자의 일본 선진국론 해체!
그들의 문제에서 우리 문제의 뿌리를 찾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던 2020년 2월, 일본에서 출항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항해 도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크루즈선은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일본 정부의 늑장 대응과 적절하지 못한 후속 조치로 2월 28일까지 705명이 확진되고 6명이 사망했다. 의료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한 일본의 미흡한 대처에 의문이 들었지만 그저 일회적인 문제에 그친 줄 알았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일본 국내에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에서 한국, 대만 등 인접국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차이가 드러났다. “선진국 일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순간이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은 일본을 막연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의 편견이며, 어째서 일본이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수년 동안 일본 특파원으로 활약하며 3.11 동일본대지진과 한류 붐을 지켜본 유영수 기자는 전후(戰後) 일본의 성장 동인이 오늘날에는 족쇄가 되고, 메이지유신 시대의 질서가 제대로 쇄신되지 못하면서 지금의 일본이 갈수록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다양하고 생생한 사례와 치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도입했고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지만, 권위주의 문화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산업의 쇠퇴와 주변국의 부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라 일본. 이 책은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나라로 생각했던 일본이 어떻게 해서 ‘어제’에 갇혀버렸는지 살펴봄으로써, ‘선진국’ 일본의 맨얼굴을 직시하고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일본의 그림자를 깊이 성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1. 일본은 ‘자유로운 선진 법치 국가’라는 착각
― 시민 개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저자는 〈Part 1. 일본은 ‘선진 법치 국가’일까〉와 〈Part 2. 개인이 보이지 않는 사회, 일본〉에서 그동안 ‘선진 법치 국가’라고 생각했던 일본의 사법제도와 사회 분위기를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갈수록 집단주의적인 분위기에 함몰되는 일본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일본은 근대 초 서구 국가들과 같은 선에 서기 위해 근대적인 사법제도를 도입했지만, 어디까지나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고 제도는 철저하게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어도 전근대적인 악습은 단단했다.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한 결과, 일본의 시민사회는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2019년 12월 말 카를로스 곤 전(前) 르노·닛산자동차 회장의 ‘악기 상자 일본 탈출극’이다. 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된 그는 극적인 탈출 끝에 자신이 “정의롭지 못한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본 검찰의 ‘유죄율 99.9%’는 유죄라고 확신하는 사건만 처리한다는 일본 검찰의 자부심을 상징하지만, 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피의자로 지목되면 인권이 없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일본 사법의 강력한 권위주의는 국가의 이익을 중시하는 일본 사법부의 판결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9년 8월 〈국기(國旗)와 국가(國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자 국가가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강제할 것이라는 진보진영의 우려가 나왔다. 이를 증명하듯 “군국주의 교육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국기 게양을 거부한 교사들을 학교 측이 업무 명령 위반으로 처벌했다. 일본 사법부는 한 번도 교사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법이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는 모습은 일본의 미투 운동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19년 3월 각지의 지방법원이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이에 항의하고자 여성들이 ‘플라워 시위’를 벌였다.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뿌리가 깊다.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에 여러 민주화 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천황 원수, 재군비, 기본적인 인권의 제한, 가족제도 부활’을 내세우며 제국 시대의 가부장적 질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베 정부에 들어서서는 여성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머노믹스’를 내세웠으나 사실상 파트타임 노동자를 양산하는 정책을 끌고 갔을 뿐이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는 이렇게 시민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개인보다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라는 말은 현대 일본인을 생각한다면 어딘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타인의 시선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몰두하는 일본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 정반대편에는 서로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것을 제일 덕목으로 생각하고 혼자만의 시간과 취향을 마음껏 누리는 데 인색하지 않는 일본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저자는 여러 일본인론(論)을 살펴보면서 일본 사회가 추구하는 일본인이 ‘단단한 개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주목한다. 이는 근대 초 일본이 ‘개인’의 번역에 애를 먹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가/천황=공(公)’이라는 도식 속에서 집단을 개인보다 앞세운 근대 일본은 기부에 부정적이고 국가주의 교육을 강조하는 지금의 일본으로 이어진다.

이는 일본의 ‘약한 시민사회’와도 직결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민주화운동과 연결되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시민사회는 1995년 한신대지진을 계기로 활성화되어 시민의 생활을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치 참여에 대단히 부정적인 여론도 여기에 한몫한다. 전공투를 비롯한 1960년대 학생운동의 실패, 아래로부터의 개혁에 성공해본 적 없는 역사적 경험이 맞물리며 집단의 규범에 순응하는 문화가 일반화된 것이다. 일본 우익의 역사 공세는 그와 같은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힘입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미카제 공격으로 사망한 일본군 소년병을 애도하며 역사 기념관으로 개조된 ‘전함 미주리호 기념관’은 전쟁의 비극을 되새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 우익은 이를 ‘애국의 헌신’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고 있다. 전쟁 책임을 일부 군인에게 돌려버리고 피해자 의식만 키우는 일본 사회는 민주주의의 쇠퇴와 떼려야 뗄 수 없다.

2. 일본은 ‘정치적·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라는 착각
― 건전한 비판이 무력해지고 산업의 활력도 떨어져가는 사회

〈Part 3. 일본 정치는 왜 정체되고 있을까〉와 〈Part 4. 뒤처지고 있는 ‘일본주식회사’〉는 우리가 선망해온 ‘민주국가’이자 ‘경제대국’ 일본의 쇠퇴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군부 독재가 지속되고 빈곤을 서둘러 극복하는 데 급급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1945년 이후 민주화되어 아시아 주변국에 비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받았고 경제적으로 월등히 성장해 ‘1억 총 중류사회’를 표방하며 풍요를 누려왔다. 저자는 그랬던 일본이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경제가 정체 상태에 들어선 이유를 세심하게 짚어본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폐색감’이 짙어지는 일본 사회가 보다 민주적인 방향으로 쇄신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정치·경제 상황은 더욱 주목을 요한다.

한국 배우 심은경은 아베 전 총리의 학원 스캔들을 다룬 영화 〈신문기자〉로 2020년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아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한 가지 씁쓸한 사실은 일본에서 아무도 작품을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배우에게까지 배역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일은 정부 비판이 너무나 어려워진 지금 상황을 잘 보여준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의 임명을 거부한 일로 총리를 집요하게 추궁한 공영방송 간판 앵커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보도를 이어가던 민영방송 앵커들도 줄줄이 경질되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의회를 도입했고 패전 후에 본격적으로 민주화되었지만, 자민당 독주 체제가 지속되면서 ‘선출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되어가는 총리와 너무나 오래 지속되는 세습 정치, 언론의 기능장애 등 온갖 병폐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사회 비판에 부정적인 정치권의 분위기는 또 다른 영화와 관련해서도 잘 드러난다.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아베 당시 총리로부터 축사 하나 받지 못했고 우익에게서는 맹비난을 받았다. ‘연금사기’ 사건 같이 ‘아름다운 나라’ 일본의 그림자를 드러냈다는 이유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의료보험을 도입했고 전후 경제성장과 맞물려 의료보장을 확대한 일본은 그야말로 ‘의료복지 선진국’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와 같은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우왕좌왕했고 검사 키트와 선별 진료소가 부족해 의료 체계에 구멍이 나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 의료보장비와 사회보장비가 크게 삭감되면서 재정적으로는 ‘건전’해졌지만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이들이 바로 ‘자숙경찰’이다. 자숙경찰은 정부의 방역수칙에 따르지 않는다고 간주된 사람들을 위협하는 일종의 자경단이다. 이와 같은 자경단은 억압적인 전시체제의 산물이다. 정부의 의료 공백을 비판하고 오류를 고치려고 하기보다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어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행태가 부활한 것은 매우 큰 위험 신호다.

일본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관용이 쇠퇴하는 것은 갈수록 정체되는 경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92년까지 세계경쟁력 평가에서 연속 1위를 차지했던 일본은 이제 34위까지 떨어졌다.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가 일본을 벤치마킹하며 고도성장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일본이 후발 국가보다 점점 뒤처지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산업화에서 앞서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도쿄는 19세기에 이미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했고, 일본 전역에서 관광업이 발달했으며, 일본의 기업은 산업화 초기부터 영국 등 선진 산업국가의 기술을 빠르게 소화했다. 또한 1950~60년대 일본은 경제 관료의 활약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해 국가 재건을 완수했다. ‘만주사변의 주모자’ 이시와라 간지의 ‘전시 총력전 체제’ 구상을 이어받아 전쟁 대신 경제성장에 매진한 경제 관료는 한국전쟁 특수를 활용하며 일본을 부유하게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래서 일본 경제가 쇠퇴한 지금, 고도성장 시기의 경제정책을 ‘1940년 체제’로 분석하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성장이 전시체제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주장은 일본 내외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1940년 체제론은 안정적인 생산에 방점을 두고 경쟁을 최소화하는 기업 시스템을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관료와 기업, 국민 모두가 경제성장을 향해 돌진했던 일본은 ‘일본주식회사’라 불리며 서구 국가의 감탄을 자아냈다. 패전 이전의 경제체제가 열악한 노동조건과 단기성과에 급급한 경영 행태를 보여준 것과 달리, 평생직장을 보장하는 전후의 고용 관행은 노동자 출신 전문경영자를 낳았고 사원 모두가 똘똘 뭉쳐 회사의 운명에 함께하는 집단의식이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강력한 ‘회사사회’ 일본에도 그늘이 있었다. 영어 보통명사가 될 정도로 악명 높은 ‘과로사(Karoshi)’가 대표적이다. 게다가 이제는 고도성장 시기의 고용 관행도 약해지면서 청년 노동자를 심각하게 수탈하고 버리는 ‘블랙 기업’까지 등장하고 있다. 점점 정치적인 자유가 줄어들고 산업의 활력이 떨어지는 일본을 보며 남 일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일본식 경제체제를 적극 도입하며 일본 따라잡기에 골몰했던 우리도 같은 문제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일본은 ‘문화적으로 앞서 있는 나라’라는 착각
― ‘갈라파고스화’되며 다양성을 잃어가는 사회

저자는 〈Part 5. 일본은 ‘문화 선진국’일까〉를 통해 앞서 이야기했던 일본의 집단주의적인 심성과 답보 상태에 놓인 경제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적인 거장을 배출하며 명성을 날리던 일본 영화계는 위축된 지 오래이고, 1990년대 문화를 선도했던 일본 드라마 또한 과거의 성공 법칙에 머물러 있다. 서점가에는 혐한(嫌韓)·혐중(嫌中) 서적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고 혐한 특집 코너까지 마련되어 있는 데서 일본의 문화적 다양성이 크게 떨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깥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온 일본에서 문화적 감수성의 쇠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일본의 박스오피스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대부분 ‘극장판’ 영화와 애니메이션이다. 인기 드라마와 TV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재생산한 극장판은 제작자 입장에서 안정적인 수입원이지만, 창작의 활력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일본의 문화산업을 잠식해왔다. 1990년대 거품경제의 붕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활성화된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일본 드라마(일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신선한 감각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아시아권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던 일드는 지나친 내수·고령층 위주의 기획으로 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K팝의 성공을 의식하며 “K팝의 뿌리는 쟈니스(일본의 유명 기획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방어적인 일본 음악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문화에 대한 방어적인 심리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유튜브 광고에 대한 반응에서도 잘 나타난다. 소수자들이 차별과 따돌림을 이겨내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응원하는 내용의 나이키 광고에 9만 5000건의 ‘좋아요’가 달렸지만, ‘싫어요’도 7만 3000건에 달했다. “그런 일본은 없다.”는 대중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반응은 서점가에 넘쳐나는 혐한·혐중 서적의 인기에도 반영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서구 국가와 같은 반열에 올랐음을 자부했지만, 언제나 서구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의식하며 서구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왔다. 파리 만국박람회의 인종차별적인 인간 전시를 그대로 본따 오사카 박람회에 조선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의 생활을 전시한 사례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일본의 계몽사상가로 알려진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일본은 스스로를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 즉 ‘문명국’의 위치에 자리매김해왔다. 사회적 소수자를 받아들이는 감성의 부족은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문화 수용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일본의 문화적 다양성이 쇠퇴하는 이유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일본어를 폐지하고 영어를 국어로 채택하자는 과격한 주장이 나올 정도로 근대 초의 일본은 서구화에 매달렸다. 특히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것을 계기로 일본의 지배층은 앞다투어 서양 배우기에 나섰다. 번역 사업이 크게 성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번역의 시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근대기 일본에서 적극적이고 충실한 번역은 일본을 ‘근대화의 우등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필요한 것을 알맹이만 쏙 빼먹겠다는 ‘선택적 수용’의 태도가 오히려 일본의 문화적 다양성이 확대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분석한다. 일본의 근대화 구호인 ‘화혼양재(和魂洋才)’는 자기화의 과정만 강조될 뿐, 이질적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되었다고 해서 ‘갈라파고스화(化)’라 불리는 현재의 일본 문화가 문화적 다양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바뀌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4. ‘잃어버린 시대’에 갇힌 일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선진국 일본’이라는 환상을 넘어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을 지냈고, 2010년부터 3년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3.11 동일본대지진과 한류 붐을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도했던 유영수 기자는 이 책을 통해 ‘어제에 갇힌 일본’의 현재를 진단한다. 일본을 선진국으로 알고 추격하는 데 바빴던 우리는 어느새 정치적·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 사이 일본은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리만 쇼크’), 2011년 3.11 대지진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쇠퇴일로를 걷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점점 위기의 징후가 커지고 있다 해도 일본은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다. 출판·만화 왕국답게 양질의 콘텐츠를 가득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의 드라마와 만화, 애니메이션은 우리 독자와 시청자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제조업 시대의 성과에 집착함으로써 몰락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일본은 거품경제의 붕괴를 계기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결과가 검증된 성공 방식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폐색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져간다. 1980년대까지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느낌이 출구 없는 세계에 대한 절망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웃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식민이라는 역사적 경험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긴밀하게 얽혀 있는 우리에게 일본은 늘 발전의 모델이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같은 굴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성장과 진보가 아니라 쇠퇴와 정체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은 ‘선진국 일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일본을 우리나라와 동등한 이웃나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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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수의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2021)에 대한 요약 및 평론

1. 개요 및 핵심 논지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은 저널리스트 유영수가 2021년에 출간한 도서로,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수십 년간 침체된 일본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를 다각도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과거 '경제 대국'으로 불리며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이 어떻게 '갈라파고스화'되고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되었는지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현상을 통해 조명한다. 이 책의 핵심 논지는 단순하다. 한국인이 흔히 가지는 '일본은 무조건적인 선진국'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깨고, 변화에 저항하며 시스템 고착화에 빠진 현대 일본의 실상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주요 요약 내용

① 아날로그에 갇힌 디지털 후진국

저자는 일본 사회 전반에 깔린 디지털 전환의 지연을 집중적으로 지적한다. 세계 3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행정 절차나 기업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도장 문화, 팩스 사용, 종이 서류가 전면을 차지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일본 정부의 느린 지원금 지급 프로세스와 감염자 집계 과정에서 드러난 아날로그식 대응은 일본이 자랑하던 행정 효율성의 실체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② 정치적 무관심과 자민당 장기 집권

일본의 정치 구조는 '변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자민당 일당 독주 체제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정치권의 세습 관행이 고착화되었고, 젊은 층의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은 시스템의 자정 작용을 마비시켰다.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정책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관료주의적 관성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③ 관료주의와 메뉴얼 사회의 폐해

매뉴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문화는 유연한 대처 능력을 떨어뜨린다. 정해진 규정과 절차를 엄격히 지키는 것은 안전과 정돈을 가져다주었지만, 예측 불가능한 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는 심각한 병목 현상을 초래한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도전 정신과 혁신 동력이 현저히 감소했다.

④ 갈라파고스화와 경제적 정체

일본은 거대한 내수 시장에 안주한 결과, 글로벌 표준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갈라파고스 현상'을 겪었다. IT, 플랫폼, 신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잃었고, 실질 임금은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악재까지 더해지면서 과거의 성장 동력을 상실한 상태다.

3. 비평 및 평론

긍정적 평가: 직관적 시각과 시의성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장감과 접근성이다. 저자는 복잡한 경제 통계나 학술적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상들을 통해 일본 사회의 단면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드러난 일본 시스템의 난맥상을 적시에 포착하여, '선진국 일본'이라는 공고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민낯을 시원하게 파헤쳤다. 한국 사회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경각심을 준다는 점에서 타당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계 및 아쉬운 점

그러나 책 전체를 관통하는 단선적인 비판 구도는 아쉬움을 남긴다.

  1. 상대화의 부재: 일본의 시스템적 결함에 집중한 나머지, 여전히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기초과학 역량, 사회적 신뢰 자본, 견고한 기초 제조업 및 소재·부품 기술력 등의 저력을 다소 저평가한 경향이 있다.

  2. 이분법적 구도: '선진국 대 후진국'이라는 프레임에 치중하여, 한 국가의 복잡다단한 사회 구조를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해부한 감이 있다.

  3. 대안 모색의 부족: 현상 분석과 비판에 비해, 이러한 상황이 한일 관계 및 글로벌 경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나 한국이 취해야 할 구체적인 발전 전략에 대한 깊이 있는 제언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4. 총평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은 무비판적인 일본 찬양이나 타성적인 통념에 경종을 울리는 유용한 보고서다. 일본이라는 거울을 통해 국가 시스템의 유연성과 혁신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게 만든다.

다만, 일본 사회의 한계에만 몰두하기보다는 그들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고령화, 정치적 갈등, 성장 동력 고갈 등)를 해결할 혜안을 모색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함께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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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수,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휴머니스트, 2021) — 1,000단어 요약·평론

유영수의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은 제목만 보면 <일본은 사실 선진국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일본 비판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의 실제 문제의식은 그보다 미묘하다. 저자가 묻는 것은 “일본이 선진국인가 아닌가”라는 단순한 서열 문제가 아니라, <한때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든 제도와 관행이 왜 오늘날에는 오히려 일본의 변화와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가>이다. 책은 법치와 인권, 시민사회, 정치, 경제와 기업, 대중문화라는 다섯 영역을 통해 이 문제를 살핀다. 전체 296쪽이며 19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유영수는 SBS 기자로 오래 활동했고 게이오대 방문연구원과 2010~2013년 도쿄 특파원을 지냈다.

1. 출발점―“선진국 일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저자가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코로나19였다. 2020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태에서 시작하여 일본의 검사·행정·의료 대응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갖고 있던 <일본은 적어도 행정과 의료에서는 한국보다 앞선 나라>라는 믿음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코로나 확진자를 팩스로 집계하는 모습, 검사 능력 부족, 보건소 축소 등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일본 사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라고 저자는 본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어는 <후진성>이 아니라 <경로의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성공한 체제 때문에 새로운 체제로 옮겨가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2. 법치국가 일본의 그늘―개인보다 조직과 국가

첫째 부분은 일본의 법치주의를 문제 삼는다. 대표적 사례가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사건이다. 일본 검찰의 유죄율 99% 이상이라는 기록은 검찰 입장에서는 철저한 수사의 증거지만, 반대로 피의자 입장에서는 일단 기소되면 사실상 유죄라는 <인질사법>의 위험을 보여준다. 장기간 구금과 자백 중심 수사 역시 저자가 비판하는 대상이다.

여성 문제도 같은 틀에서 분석한다. 일본에서 미투 운동이 한국이나 미국만큼 확산되지 못한 이유를 단순히 일본 여성의 소극성에서 찾지 않고, 성폭력 사실을 공개했을 때 피해자가 받게 되는 사회적 불이익과 사법제도의 미흡한 보호에서 찾는다. 결국 문제는 <한 개인이 조직과 사회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저자는 이를 더 오래된 일본의 <公과 私> 개념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한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논의를 빌려, 근대 일본에서 ‘公’은 국가와 천황에 가까웠고 ‘私’는 희생되어야 할 사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고 본다. 패전과 민주헌법 이후에도 이러한 심층적인 위계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3. 약한 시민사회와 강한 순응

두 번째 주제는 일본인이 흔히 개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립적인 시민적 개인>이 약하다는 역설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 행동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서구적 의미의 개인주의와 동일하지 않다. 사회적 규범에 이의를 제기하고 공공문제에 참여하는 시민의식은 오히려 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 시민사회의 차이에도 주목한다. 한국 시민사회는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국가권력에 맞서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경험을 축적한 반면, 일본에서는 1960년대 학생운동의 실패 이후 정치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졌고, 1995년 한신대지진 이후 발전한 시민운동도 정치적 제도 변화보다는 자원봉사와 생활지원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한다.

이 분석에서 특히 흥미로운 현상이 코로나 시기의 <자숙경찰>이다. 정부가 강제하지 않은 행동까지 시민들이 서로 감시하면서 영업하는 가게나 외출하는 사람에게 압력을 가했다. 저자는 이것을 이지메와 연결하여 <국가의 명령이 없어도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를 규율하는 사회>의 특징으로 본다.

4. 일본 민주주의의 정체

정치 영역에서 저자가 가장 문제 삼는 것은 자민당 장기집권, 세습정치, 관료권력, 그리고 언론의 자기검열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 배우 심은경이 영화 『신문기자』로 2020년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일이다. 이 영화가 아베 정권의 정치 스캔들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일본 배우들이 출연을 꺼렸다는 사정을 저자는 일본 사회의 정치적 위축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에 대한 보수 정치권의 냉담한 태도도 같은 맥락에서 다룬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쇠퇴는 독재화라는 의미가 아니다. 일본에는 선거도 있고 야당도 있고 표현의 자유도 있다. 문제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존재하는데 정권교체와 권력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역동성이 약해진 상태>이다.

5. 일본주식회사―성공의 공식이 실패의 공식으로

이 책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은 경제와 기업에 관한 분석이다. 저자는 일본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관료주도 산업정책과 기업 중심 사회를 <1940년 체제> 논의와 연결한다.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형성된 국가·관료·기업의 긴밀한 협력 관계가 전후에는 군사력 대신 경제성장을 목표로 작동하면서 일본의 기적적인 성장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종신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노조, 사원들의 강한 회사 충성심은 안정적인 대량생산 시대에는 엄청난 장점이었다. 그러나 정보화·세계화·서비스경제로 환경이 변한 뒤에도 일본 기업은 성공했던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역설이다.

<일본은 잘못된 제도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너무 성공했던 제도를 바꾸지 못해서 정체되었다.>

회사에 평생 충성하라는 요구는 종신고용이 무너지면서도 남았다. 그 결과 과로사, 서비스 잔업, 블랙기업 같은 현상이 생긴다. 기업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생활보장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에게는 과거와 같은 헌신을 요구한다.

6. 문화에서도 나타나는 ‘과거 성공의 함정’

마지막 부분은 영화·드라마·음악을 다룬다. 저자는 한때 아시아 대중문화를 압도했던 일본이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약해졌다고 본다. 영화에서는 안정적인 수익을 노리는 제작위원회 방식과 인기 만화·TV 프로그램의 극장판 의존, 드라마에서는 국내 고령 시청자 중심의 제작 관행을 문제 삼는다.

K-pop의 성공에 대해 “K-pop의 뿌리는 쟈니스”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태도 역시 저자에게는 일본 문화산업의 자신감보다는 과거의 영광을 통해 현재를 설명하려는 심리로 보인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는 외부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배우고 번역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갈라파고스화>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평론―제목보다 훨씬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일본 때리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일본이 여전히 강력한 산업기반과 의회민주주의, 방대한 문화자산을 가진 나라임을 인정한다. 실제로 책의 결론도 일본을 후진국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무조건적인 <모범 선진국>으로 보는 한국인의 오래된 사고습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일본의 문제를 한국과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 역시 일본의 관료제, 기업조직, 교육제도와 경제발전 방식을 상당 부분 참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현재는 한국의 미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조직에 대한 개인의 복종, 관료주의, 연공서열, 대기업 중심 경제, 성공한 기존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문화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다만 책에는 뚜렷한 약점도 있다. 가장 큰 것은 <일본의 여러 문제를 지나치게 하나의 문화적 성격으로 연결하는 경향>이다. 사법제도, 여성차별, 시민사회, 자민당 장기집권, 기업지배구조, 영화산업의 침체를 모두 ‘개인의 부재’, ‘집단주의’, ‘과거 지향성’이라는 하나의 설명으로 묶으면 이해하기는 쉬워지지만 인과관계가 너무 단순해질 수 있다. 정치제도에는 정치제도 나름의 원인이 있고, 경제침체에는 인구구조·금융·거시경제적 요인이 있으며, 영화산업의 문제는 콘텐츠 산업의 시장구조와도 관계가 있다. 이것을 모두 일본인의 심리적·문화적 특성으로 환원해서는 곤란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비교에서 한국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기준점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가 일본보다 역동적인 것은 상당 부분 사실이겠지만, 강한 정치적 동원이 반드시 성숙한 시민사회를 의미하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일본의 낮은 정치적 동원과 한국의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선진적’이라고 단순히 말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장 좋은 질문은 남는다.

<선진국이란 이미 도달한 지위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제도를 고쳐나가는 능력인가?>

유영수에게 진정한 선진성은 GDP나 첨단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권리, 시민사회의 자율성, 권력에 대한 비판, 조직의 자기혁신, 외부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일본의 핵심 문제는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성공한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조금 바꾼다면 오히려 <『일본은 왜 성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가 내용을 더 정확히 표현한다고 본다. 메이지유신에서 전후 고도성장까지 일본의 최대 장점은 놀라운 학습능력과 제도적 적응력이었다. 그런데 성공하여 선진국이 된 뒤에는 바로 그 성공이 새로운 학습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영수가 말하는 <어제에 갇힌 일본>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책을 한국인이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을 내려다보며 “이제 우리가 일본을 이겼다”고 만족한다면 이 책을 가장 잘못 읽은 것이다. 저자의 진짜 경고는 반대쪽에 있다.

<일본이 걸린 병은 한때 일본을 열심히 따라간 한국에도 이미 상당 부분 들어와 있다.>

그래서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은 일본 쇠퇴론이라기보다 <성공한 사회가 어떻게 자기 성공의 포로가 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읽을 때 가장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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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이 너무 오래 집권해서 일본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
니체 2021-08-14 공감 (5) 댓글 (0)





1998년 일본문화 개방으로 시끄러웠던 것을 기억한다. 일본문화를 즐겨 누려왔던 시기를 지나 지금의 일본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막연한 느낌을 좀 더 분명하게 알게 해주는 책.
oneitherside 2021-06-3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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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왜 현재와 같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가에 관한, 기자 출신 “일본통”의 통찰. 아는 내용도 있고 모르는 내용도 있는데, 아무리 봐도 현재 시점 기준 경제 규모나 자산 규모 여하와 무관하게 우리는 일본을 이미 앞서 있는 것 같다. 일본 영화와 전자제품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으로서 사뭇 감개무량하다.
아라 2021-09-22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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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갇힌 일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휴머니스트에서 출판한 유영수 SBS 기자님의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은 도발적인 제목과 함께 충격이지만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되는 일본의 현재 모습을 소개한다.

 

유영수 기자님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SBS 기자로 27년 동안 일하면서 경제부, 사회부, 문화부, 국제부를 두루 거쳤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을 지냈고, 2010년부터 3년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3.11 동일본대지진과 한류 붐을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일본인 진짜 속마음〉 시리즈 강의를 하는 등 자타공인 ‘일본통’이다.

[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책날개 중 ]

 

기자님은 일본을 정치, 경제, 사회, 사법, 문화 분야에서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함께 자신이 분석한 바를 냉철하게 소개한다. 상당 부분 공감하였고, 한국 정부가 731부대원에서 훈장을 수여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이 2020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대단한 자부심과 해외에서 인정받은 한국 작품이라는 점에서 감동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의 대표 감독이고, 그의 작품은 현대 사회가 놓치고 있는 가족과 주변인의 사랑과 정을 강조하는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감독이다.

 

2019년 칸의 황금종려상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 돌아갔을 때, 일본 현지 반응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일본의 가지고 있는 숨기고 싶은 치부를 국제적으로 드러냈다는 사실에 몇몇 일본인이 고레에다 감독과 작품에 욕을 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20세기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했던 일본의 저력이 플라자 합의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넘어 이제 30년이 넘었고,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과거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라는 모습보다 뭔가 정체된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간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은 “일본의 코로나 대처가 왜 저렇게 엉망이냐?”를 질문하게 한다.

유영수 기자는 카를로스 곤의 전 르노·닛산자동차 회장의 체포과정을 보고 일본이 사법 체계가 지나치게 후진적이라 지적한다.

피의자의 자백의 받기 위해 장기간 구속은 기본이고, 구속과 석방을 이어가며 다시 구속한다. 변호사의 입회 없이 검찰 수사를 받았고, 가족을 체포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으며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이런 관행으로 피의자가 자백한 비율은 85%가 넘고, 일본의 형사사건 유죄율은 99.9%라는 상징적인 숫자의 드라마가 있을 정도다.

 

 

2017년 이토 사오리는 2년 전 TBS 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용기 있게 폭로했다. 일본에서 성폭력 피해자 중 최초로 신분을 공개한 사례지만 피해자 이토는 오히려 각종 협박에 시달리고, 가해자를 유혹한 ‘꽃뱀’ 취급을 당했다.

 

일본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폭로 자체도 어렵고, 폭로해도 처벌을 기대할 수 없으며, 폭로 이후 부는 역풍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본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아사히신문>은 지적한다.

일본이 여성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모습을 확인한 저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아무리 원망스러운 국가였어도 경제 대국이라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수치상으로 1950년과 1990년 사이 일본 경제는 약 152배나 성장했다. 1987년에는 일본의 1인당 GNP가 미국을 넘어섰다. 일본 경제의 규모는 아시아 GNP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헤이세이 원년인 1989년 1위로 자부하던 일본 경제가 30년이 지나 34위까지 추락했다. 1989년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에 일본 기업 14개가 포함됐는데, 2020년에는 하나도 포함되지 못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에서 돌아보는 일본의 모습을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봐야 할 분야가 대부분이다.

 

우리 또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금 우리가 처한 시점이 미래를 향한 도약을 이룰 중요한 순간이라 생각한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믿음, 다른 성별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그녀를 받아들이고 같은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가 관행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이를 바로잡고 시정해서 고쳐나가면 된다. 무조건 발견될 때까지 숨기고 있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선진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전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선진국을 ‘사람이 자유롭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고 단순명료하게 정의했다.

 

우리나라의 성숙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일본을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일본이선진국이라는착각 #유영수 #휴머니스트 #일본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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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aeho2000 2021-07-1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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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유영수 著, 휴머니스트) 새창으로 보기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유영수 著, 휴머니스트)”를 읽었습니다. 과거의 선진국이었던 일본은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라는 취지의 글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인 유영수님은 SBS 기자로 다년간의 일본 특파원 생활과 함께 일본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탐구를 많이 한 ‘일본통’으로 불리우는 분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일본의 근현대사를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최근 COVID-19에 대한 대처와 같은 일본의 모습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저자는 일본은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진국이라는 정의는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정의중 하나는 UN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닌이 말하는 ‘사람이 자유롭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라’라는 정의를 저자는 준용하고 있습니다. 이 정의를 준용할 경우 ‘현재의’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기는 하지만 선진국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 책,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을 통해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몇 년 전 인질 사법이라는 단어를 널리 알린 카를로스 곤 前 닛산 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일본이 법치주의 국가일까라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본의 경우 구속영장 기각율이 매우 낮고 (1990년 0.2%, 2018년 5.89%) 구속기간도 무제한이라고 합니다. 또한 기소될 경우 유죄율이 무려 99.4% (이마저 10여년 전 99.9%에 비해 떨어진 수치라고 합니다)에 이르기 때문에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유죄율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만 구속영장 기각율, 구속기간 등을 고려할 때 근대 형사법적 체계와 사상이나 법치주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인권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일본의 형사사법 현실을 이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是枝裕和, 1962~) 감독의 ‘어느 가족’이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오히려 일본 내 비난을 불러왔다고 합니다. 바로 일본의 아름다운 부분이 아닌 일본의 어두운 현실을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다음 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우리나라의 반응과는 사뭇 다른 일본의 반응이었습니다. 과거만을 추억하며 반성하지 않고 현재를 직시하기를 두려워하며 관용이 사라진 국가가 과연 선진국의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 강하게 드는 대목입니다. 





일본은 선진국일까? 21세기 초만 해도 이런 질문 자체가 우문이었을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선진국의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단순히 경제만이 아니라 문화, 세계 각국에 미치는 영향력, 국제 정치에서의 리더십 등을 고려할 때 일본은 더이상 선진국이 아닐 것 같다는 의심 말입니다.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의심의 상당수는 근거가 있으며 우리의 의심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만 많고 잘 버는 나라가 선진국은 아닐 것입니다. 국가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고 운용되어  ‘사람이 자유롭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일본은 그렇지 못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선진국이라는착각,  #유영수, #휴머니스트, #책과콩나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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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ca.Kim 2021-07-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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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새창으로 보기
저자는 SBS기자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방문연구원으로 또 특파원으로 일본에서 살며 일본을 연구한 일본통이다. 그러한 사람이 '일본은 선진국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선진국이란 사람이 자유롭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라다. 코로나19를 지나오며 선진국에 대한 환상이 깨졌고, 현재의 일본은 확실히 선진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두 나라를 여행하거나 살아본 사람들은 우리의 많은 부분이 일본의 것과 상당히 닮아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저자는 이 원인이 우리가 일제강점기와 해방후 1990년대 초까지 일본의 시스템을 모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과 경제구조 등의 분야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저 모방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바꾸다보니 일본보다 나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여성 인권을 보호하는 법에 있어서 일본의 법이 우리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최협의설'을 유지하며 후진적이다. 

​

일본의 여성인권이 낮다라는 것은 일본에 관심이 있다면 알고 있을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일본은 여자의 재혼금지기간이 있고, 매년 부부별성제도가 좌절되고 있으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모성애를 가진 엄마가 주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법과 사회 속에 만연하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패전후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일본의 민주화개혁에 중점을 두고 특히 여성의 인권을 고양하기 위해 교육을 비롯한 많은 제도를 수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극우보수파들이 가족제도를 부활시키며 내조하는 여성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여성인권이 낮으니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위안부 문제 해결도 쉽지 않아 보인다. 

​

이제 더이상 일본은 우리가 보고 배울만한 나라가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 일본의 국가경쟁력은 34위를 차지했다. 우리가 우리가 23위, 대만이 29위인데 이보다 낮은 순위다(2020년 세계경쟁력 보고서). 충격적이다. 그 원인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버블경제의 추억에 젖어있어 더 이상 변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 트렌드에 올라타야하는데 전통적 제조업의 영광 속에 머물러 있다. 현실에 안주하면 결국은 뒤처진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 외에도 소소하게 몰랐던 사실도 일러주는데 재미있다.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를 보면서 빌딩 꼭대기에 왜 신사가 있는지 의아해했었는데, '회사의 신'을 모시는 신사란다. 정기적으로 임직원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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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왜 선진국이 아닌지에 대해 일본의 법,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현상과 원인을 분석한다. '왜'라는 물음에 답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각 분야 모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일본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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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댁 2021-07-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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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 어제에 갇힌 일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새창으로 보기








버블 경제가 무너진 후 거품처럼 와르르 무너진 일본. 한때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 대국이었지만 스마트폰 시장 이후 반도체 산업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하더니 낡은 시스템이 발목을 잡아 그들의 답답한 민낯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현재 올림픽 개최 이후 일본을 보면 선진국이라기 보다 후진국으로 전락한 모습이다. 골판지 침대는 그렇다 쳐도 여전히 방사능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걸 홍보하기 위함인지 외국인 선수들에게 후쿠시마산 음식을 제공하려고 해 논란이 되었다. 약 30여 년 전에도 일본이라는 민족의 간교함에 혀를 내둘렀지만 갈수록 도가 지나쳐서 망국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일본은 과연 선진국이 맞나?



일본이 지닌 후진성을 파헤치는 이 책은 습기 찬 더위만큼이나 답답한 일본이 어떤 사회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초반부터 충격이었다. 일본의 사법 시스템은 오로지 검사가 99.9% 유죄율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큼 기소된 이후 무조건 유죄를 받게 되어있다. 용의자는 곧 범죄자로 단정하고 수사를 진행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통용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유명무실한 지 오래돼서 사법부가 행정부의 눈치를 볼 정도니 만약 외국인이라도 이렇게 덜미를 잡히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개인보다는 집단의 가치가 우선인 집단주의라 입바른 소리를 내기 어렵다. 전체가 정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배제될 뿐이다.



사실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라 뭐든 면에서 뒤처지고 있다. IT 사회가 보편화되었고 스마트폰은 웬만한 사람은 다 있는데도 일본은 백신 접종 신청을 우편으로 쿠폰 받아 전화예약을 한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7~80년대 시스템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00년대 초기에 그들이 자랑하던 판타지는 끝나버렸다. 아시아 최첨단을 달리고 모든 면에서 앞서가던 일본이었지만 이 책을 읽을수록 도저히 숨 막혀서 일본에선 살고 싶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고 이면이 다른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 신문지 상에 오르내리는 일본의 추태를 보며 우리도 그들처럼 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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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지기 2021-07-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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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몰락의 역사적, 사회적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자. 새창으로 보기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 일본 몰락의 역사적, 사회적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자.
 
 
워크맨.
 
일본이라는 나라의 존재감은 이 단어 하나로 완성되던 시절이 있다.
우리나라의 쾌거를 보도하는 뉴스에는 공식이 있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격차를 10년 이내로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패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태평양 전쟁.
진주만 습격으로 자신감을 얻었던 태양의 군대가 미드웨이의 판단착오와 지독한 불행이 엮이지 않았다면 미국을 압도하여 세계의 반을 독일과 나누어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다음 주면 2020 도쿄 올림픽이 화려한 개막을 하게 된다.
역대 최초로 무관중 경기라는 진기록을 세울 그들 앞에 놓인 천문학적 빛더미는 깨소금맛.
잔인하게 아시아의 국가들에 폭거하던 일본의 본격적인 몰락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국뽕 가득찬 유튜브의 동영상들을 보면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한 국가의 몰락을 그려내고 있지만 좀 더 체계적이고 냉정한 분석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일본 사정을 잘 아는 SBS 특파원 출신의 저자가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는 책이 등장했으니 도대체 이 친구들은 왜 이렇게 패착의 길만 골라서 가게 되었는지 한번 알아보자.
 
법률 / 사회 / 정치 / 경제 / 문화
일본이라는 국가를 구성하는 5가지 영역.
 
메이지 유신이후 제국주의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쇠락의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서양식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단계를 밟지 않은 채 급격하고 외부적인 동인에 의한 변화가 과거에는 약이었지만 21세기에 독이 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은 부국강병이라는 목표로 급격한 근대화를 진행한 탓에 위로부터, 밖으로부터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전쟁과 패전의 후유증으로 멸망 직전이었지만 한국전쟁으로 위기를 벗어난 후, 냉전시대 아시아의 저지선으로 인정받은 미국의 도움으로 세계 경제대국으로 위상을 높였지만 장기불황과 신자유주의 물결이라는 위기에서 대처하는 데 실패한다.
직접 피를 묻히며 얻어낸 사회의 변혁이 아닌 탓에 변화된 세상에 대처하고 능동적인 동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상황에 빠진 셈이다.
자존심만 높았고 과거의 부유했던 기억만 머리에 남아있지 실제 세상의 트랜드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채 30년 동안 플라자합의 탓만 해왔다.
 
세상 일이라는 게 술술 풀려나갈 때는 장점으로 빛을 발하던 특성이 어느 한순간 치명적인 독이 되어 발목을 잡게 되는 경우는 흔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현대 국가의 속성을 잠시 뒤로 돌려 두고 속도전에 임했지만, 시간이 오래 흘러버려 국민들도 국가도 중요성을 망각하게 된 상황 일본인의 현재모습이 좋은 예라고 할까?
 
경영의 성공 교과서로 자주 회자되던 닛산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 세기의 탈주극을 연출하게 된 이면에 숨어있는 일본 검찰의 인질사법이라는 잘못된 관행을 보면 국민의 이익과는 동떨어진 검사만을 위한 권력체계가 낳은 사법체계의 고착과 불합리성이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전체주의 적인 성격이 짙으면서도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혼재된 사회 모습도 일본의 변화와 활력에 한계를 주는 이유다.
자신과 집단을 동일시 헤야 하고, 개인의 일탈만이 일부분 허용되는 사회, 얼마나 피곤한가?
이 녀석들이 우리에게 뿌려 놓았던 억압의 씨앗을 군부가 악용했던 한국의 20세기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그 상태로 2021년을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오늘에 사회의 역동성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 오후 6시가 되면 볼 일 급해 화장실로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태극기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리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위대한 국가에 충성을 다짐해야 했던 대한민국을 지금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국회의원을 세습으로 물려받는 쉽게 이해가지 않는 정치 구조가 사실 일본이라는 선진국이 몰락해가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려 8년이라는 장기집권을 달성하며 아베노믹스라는 경제부흥을 만들어냈다고 자부하던 수상의 여러가지 비리가 아직도 조용히 묻히는 사회. 현직 대통령을 탄핵해내는 국민적인 저력이 있던 우리와는 다른 모습의 사회가 가지는 한계성은 변화에 도태될 수밖에 없는 DNA로 세습된다.
현직 수상의 비리를 파헤치는 주제의 실화 영화 주인공을 모두가 고사해 시나라오까지 바꾸여가며 한국 여배우가 출연하는 사회의 심약함은 우리에게는 고맙기만 하다.
 
일본이 자랑하던 강점인 경제와 문화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회사 옥상에 신사가 차려져 있고, 직원들을 위한 회사묘까지 마련해가며 회사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직원들을 보살피고, 직원들은 회사에 충성을 다한다는 “같이 간다”는 일본식 기업문화는 불황의 늪에 들어서서야 허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더이상 밤새워 일하며 노동법 따위는 내다버린 근로자들이 이제서야 개인의 삶이라는 데 눈을 뜨기 시작한다. 결국 극악한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갈아 넣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더 이상 강요할 수 없는 기업구조 변화는 경쟁력 약화와 창의력 부족이라는 늪에 물거품이 되었다.
 
오리지널이 없는 문화.
헐리우드 명감독들이 오마주하던 일본 거장 감독들의 명성이 반세기가 흘러 대한민국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는 현실은 가슴 벅찬 일이기도 하고, 나름 일본영화의 독창성을 좋아하던 내게는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천국에 매몰되어 흥행성 있는 작품이 아니면 시작도 못하는 일본 영화판의 몰락은 그나마 자유와 창의성이 넘치던 영역까지 경직이 일어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본이 망국의 길로 걸어간다고 박수치고 좋아할 일은 아니다.
미운 건 미운거고 저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 문화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우리도 팔아먹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적자무역을 역전시킬 상황인데 망해버리면 어떡하나?
그리고, 우리가 우습게 생각하더라도 저들은 아직 세계경제대국 3위라는 사실까지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역사적 사회적 배경이 변화에서 도태되는 상황이 연출되었고, 여기에 고령화와 갈라파고스화의 단점들이 결합하여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고 있지만 근현대사에서 세계를 호령하던 승리의 경험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한 일본의 숨어있는 힘이다. 핵폭탄 두 방에 나가 떨어졌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항공모함을 100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가지고 있던 나라라는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
 
체계적이고 역사적 관점을 통해 일본이라는 국가과 사회, 그리고 국민들이 한계에 부딪히는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해낸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만의 위기를 키우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찰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순신 장군이 저들의 간악함을 잊지 말라고 했 듯, 우리의 힘을 키우고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수백 년 동안 육지로의 진출을 갈망했고, 다시 도전할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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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aksae 2021-07-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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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일본을 본다 새창으로 보기
'우리 안의 일본'을 알기 위해 저자는 근현대 일본을 파헤친다. 현재 일본은 선진국이 아니며, '압축 근대화의 후유증'은 일본 시스템을 답습해온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SBS 기자로 일본의 한 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했고, 전공인 심리학을 기반 삼아 일본인의 심리를 분석한 책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법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이 폭넓게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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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수사기관을 검증하는 공적 독립기관이나 인권 보호를 위한 전문 기관이 없다. 1920년대 특정한 검찰 인맥인 '검벌'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이래, 현재 일본의 검찰권은 검사를 위한 권력일 뿐이다. 헌법재판소가 없는 일본은 개인 인권보다 국가 이익을 중시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관치주의가 강하다. 일본의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 낮은 젠더 감수성은 '미투'로 피해 사실을 폭로한 당사자가 오히려 협박과 비난에 시달리는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일본의 여성정책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며, 우리의 그것도 겹쳐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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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특성을 여러 맥락에서 접근해볼 수 있는데, 저자는 일본 사회가 추구하는 일본인이란 집단에 무난하게 녹아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고립된 개인을 허용하되 집단질서를 깨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은 배척된다. 교육기본법에도 국가주의 색채가 강하고, 자발적인 사회운동이 국가 주도의 흐름으로 흡수되는 식이다. 저자는 일본이 '종전 기념일'에 피해자 일본만 되씹고 젊은 세대는 '사죄 피로감'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한다. 우리 현대사와 얽힌 문제를 풀어가려면, 일본에 대해 제대로 알아갈 필요가 있겠다.

​

일본 영화 <어느 가족>이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당시, 아베 전 총리는 냉담했고 우익은 비난 일색이었다. 그 이유는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일본을 그려서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보여주었듯, 현재 일본의 공공의료체계는 취약, 붕괴 수준이다. 일본 경제도 세계경쟁력에서 점차 밀려나는 추세다. 이 책에서는 지난 30년에 걸친 일본 경제 현황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새로운 시도보다 안전한 흥행이 확보된 일본 영화계의 선택, '일드'의 쇠퇴, 일본 서점가의 혐한, 혐중 서적 코너 등을 소개한다. 특히 이 책을 통해 그 정서의 뿌리인 일본의 인종주의와 차별의 역사를 살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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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제대로 알고 우리 안의 잔재, 털어낼 부분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책이다. 일본 근현대 모습을 조망하며, 동시에 우리 사회를 성찰하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본이 번역한 서구를 다시 번역했다는 저자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좋든 싫든 '우리 안의 일본'을 탐색하는 일은 필수 과제일 터이고, 이 책이 하나의 가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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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가 제공한 책으로, 개인의 주관대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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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dbdi 2021-07-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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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새창으로 보기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유영수, 휴머니스트

자칭 타칭 일본통이었던 기자출신의 저자가 바라보는 일본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정말 일본에 대해 공부를 많이했고 애정을 가지고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일방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일본 사회에 대한 조언이자 많은 사회구조의 기반에서 일본과 닮아 있는 우리 스스로에게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그 애정과 우려에는 우리와 닮은 꼴인 사회여서도 있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나라로서 가지는 걱정과 위험도 포함되어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오랜동안 일본과 일본의 문화,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많은 저작과 길지 않지만 여러번 일본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부분들이 책속에 녹아 있다. 같이 책을 읽는 독서모임이나 영화모임에서도 일본에 대해서는 유독 관심을 배제하는 경우를 본다. 일본영화라서 일본이라서 그저 이상한 나라나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살고있는 곳 내지는 감정적 심정적 거부감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저자는 일본에 가장 고질적인 문제를 크게 5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경직된 사법제도, 집단주의적인 사회, 정치적 한계성, 일본을 성장시켰던 일본주식회사라는 일본경제의 신화, 문화적 경직성을 이야기한다.

무엇하나 내가 느꼈던 그리고 일본을 오래 바라보며 문제점이라고 인식했던 부분들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많이 반가웠다. 일본은 아직 메이지시대에서 크게 발전한 나라가 아니었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은 분명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제도적인 민주화를 이룬나라였지만 세계대전을 거치고 전후복구를 거치면서 일본은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정체된 나라가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졌고 많은 나라와 교류하고 있지만 일본은 언제나 메이지 시대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일본과 관련된 커뮤니티에서 일본의 개인주의가 너무 좋고 예의바른 사람들이라서 좋다고 하는 경우를 본다. 일본의 집단주의적인 속성은 무시하고 개인대 개인에서 오는 느낌만 강조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일본의 모순에 대해 많은 연구를 소개하면서 한국은 가족형 집단주의이고 일본은 조직형 집단주의라고 정의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일본이 개인주의처럼 보이는 것은 서구적인 관점의 리버럴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고립 허용주의'라는 용어를 소개한다.일본은 개인의 일탈을 허용하더라도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때문에 정말 딱 맞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서 소개된 여러가지 내용 중에 특히 기억되었던 내용은 2007년 일본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마루야마 마사오를 때리고 싶다. 31세 프리터, 희망은 전쟁>이라는 칼럼에 대한 소개였다. 월 10만엔을 벌며 살아가는 프리터인 젊은이가 쓴 칼럼으로 일본 사회는 빈부가 공고해진 격차사회로 많은 젊은이가 희망없이 살고 있다며, 자신은 차라리 '전쟁이라는 공통의 재앙'을 갈망한다고 주장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사실 이 칼럼의 내용을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일본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점이 바로 전쟁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나에겐 정말 내가 가진 우려가 맞았다는 기분이 들게하는 사례였다. 임진왜란이나 식민지 침략의 배경을 보면 일본이 가지는 특성이 보이는데 개인적으로 지금 일본은 그 시기의 모습과 닮은 점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보고있다.

통상갈등으로 촉발된 반일운동이지만 그 과정과 정치적 사회적 매락에서 보면 그 배경을 떠나서 많은 우려를 가지게되고 반일보다는 지일을 외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길 바란다.

사실 선진국이라는 용어는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로 부유한 나라는 있어도 사실 선진국이라는 개념은 존재하기 어렵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보다 잘살고 시스템이 잘되어있다고 믿었던 나라들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어떤 나라가 되어야하는지 다시 고민해보게 된다.

옆집이 무너지거나 불이나면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집도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일본은 그저 무시하기엔 너무 가까운 이웃나라다.

현재 일본이 가지는 한계와 문제를 들여다 보고싶다면 이 책 한권정도는 읽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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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2021-07-2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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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한 십년 전 만해도 일본과 한국은 대략 16년 정도 격차가 난다고 알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10년 20년도 아니고 16년은 무슨 수치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기억의 오차에서 나온 숫자일 수도 있지만 중년을 바라보는 내 세대 정도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또한 마이마이 세대인 내가 청소년 시절 선망의 대상이었던 아이와와 소니보다 지금의 삼성이 세계적으로 더 먹어 준다는 걸 깨닫은 건 얼마돼지 않았으니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의 제목 [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은 곧 나의 착각일 수 도 있다. 반면 돌아보면 2016년 정도부터 간간히 나오기 시작한 단어들 일본 중산층의 붕괴, 잃어버린 20년, 노후 파산, 사토리 세대 등의 주제가 담긴 책들이 국내에도 발간되기 시작하며 일본의 선진국이라는 견고함에 금이 간 시점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2011년 동 일본 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비한 대책과 연임하는 극우 성향의 아베정권, 결정적으로 코로나 사태를 지켜보며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뇌리에 잠재되어 있는 식민지 트라우마는 이제 좀 벗어던질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를 지나오며 헬조선에 분개하던 시절이라 인지하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돌아보니 일본 사회의 균열은 이미 일어나고 있던 현상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잡으려 애를 썼던 일본의 맨 얼굴을 밝혀주는 책이다. 저자는 전쟁 패전이후 연합군과 미국의 주도로 강제로 주입된 아시아 최초의 선진적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며 효율적인 관료주의와 한국전쟁 특수와 일본 특유의 근면함을 바탕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이었지만 이젠 더이상 과거의 일등국가도 선진국도 아니라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전근대적인 사법체계, 허술한 복지, 약한 시민사회, 권위적인 관료주의, 회사사회의 붕괴, 안전하고 흥행히 보장된 같은 컨텐츠만을 반복 생산하는 문화등 일본 사회를 전방위에 걸쳐 진단하며 소위 갈라파고스 신드롬을 앓고 있는 일본을 진단한다. 챕터 마다 현재의 일본의 여러 현상을 진단하며 드러나는 현상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근현대사의 기원에 대한 꼼꼼한 자료를 함께 싣고 있어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을 쓴 저자 유 영수는 일본을 고발하는 한국인의 감정적 우월감이 아닌 도쿄 특파원으로서 경험한 일본 사회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심층적 취재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책 말미에 실린 방대한 참고 자료가 이를 방증한다.

이 책 [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을 읽으면 일본의 현 시점만이 아닌 우리의 수준도 함께 감지할 수 있다. 일본의 현상을 읽으며 끊임없이 묻게 되는 우리의 현실과 자기 성찰은 그 만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한일 관계의 면모를 알수 있는 지점이다. 이제 우리는 한일전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색을 걷어들이고 이제 더 큰 미래와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본 사회의 오류를 철저히 검증해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 일본의 실패가 곧 우리의 성공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은 일본이라는 잣대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인식하게 책이었다.




우리를 이해하려면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일본은 우리를 구성하는 커다란 조각 중 하나다. 기분 나쁘다고 무시하면 우리는 영영 '정체성의 퍼즐'을 제대로 맞출 수 없다. 여전히 우리 곳곳에 묻힌 유골과도 같은 진실을 캐어 드러내고 깨끗하게 털어내야 한다. 일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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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아줌마 2021-07-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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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새창으로 보기
이 책 제목을 보면서 의아했다. 지금까지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영수 저자는 일본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3년 동안은 특파원으로 근무했었다.일본을 바로 알리기 위해서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너무 냉랭해져 있는 원인을 책 속에서 좀 더 깊게 알 수 있었다. 위안부 사과문제, 징용 보상 문제, 독도 문제 등 일본이 가깝지만 너무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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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왜 그런 문제들이 한국과 일본 사이를 막고 있고 잘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일본은 관료주의인데 그 원인과 과정을 이책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준다. 그래서 일본과의 관계가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1980년대는 모두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1억 이상인 평등하며 부유한 사회에 가까운 나라로 여겼다. 지금은 사회보장제도가 열악하다 그 예를 단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어느 가족>이라고 한다. 흔히들 일본은 나라는 부자인데 개인은 가난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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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관료사회로 이루어진 정치는 민주주의를 역행하고 있다. 일본의 언론이 " 손 타쿠 문화" 기 지배적인 원인을 저자는 내각인 시국을 설치한 이후라고 평한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나 안으로는 철저한 관료주의가 일본 정치의 흐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일본 영화 한국배우 신은경이 주연으로 '신문기자' 영화의 내용에서도" 손타쿠 문화"를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을 알고도 밝힐 수 없는 일본의 권력 지배가 언론을 통제 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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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책 속에서 소개한 도널드 킨 교수 저서 <메이지라는 시대>를 읽어봐야겠다. 실은 지금껏 일본 정치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일본의 정치현상을 알게 되니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왜그렇게 우기는 것인지 알 것 같다. 민주주의는 겉으로만 보일 뿐으로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가 일본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임을 책은 잘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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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인맥을 중시하나 일본은 사적인 것보다는 공적인 조직에서 인정받는 집단을 통해 이루어져 있다.한국과 일본이 사적인 면과 공적인 면 들을 서로 보완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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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일본은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한 저자는 도쿄 특파원으로 3년 동안 활동하면서 일본 정치, 경제, 문화 등을 경험했던 것들을 바로 알려주고 일본을 바로 알수 있고 왜 선진국이 아닌지를 이 책을 읽으면 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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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리 2021-07-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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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일본은 무엇인가

장서가로서 읽어볼만한 일본사 서적을 틈틈이 정리하는 나는 한 가지 불만이 있다.

바로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일본에 대한 서적들이 한국에 출판된 일본사 서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본의 근대란 메이지유신부터 일본국 헌법의 제정으로 제국 일본 체제가 무너진 1947년까지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겠다.




에도 시대, 전국시대, 고대 일본에 대한 서적은 매우 적다.

사실 한국에 일본근대사 서적이 많은 이유를 추측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근대'는 단순히 하나의 시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근대는 역사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하나의 가치 척도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근대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식민지 경험에 대한 기억까지 합해져, '근대화'에 실패하고 근대적 개혁을 이루지 못한 조선은 '열등'하다는 식의 논리가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사에서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일본은 애증의 대상이다. 한편으로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폭력적인 지배를 행사한 악의 축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짧은 시간 안에 근대화에 성공하여 강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일본에 대해 선망의 정서가 공유되고 있다. 이처럼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특별하다.

왜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했고, 일본은 성공했을까. 이 문제야말로 일본 근대에 대한 한국의 비상한 관심의 근원이다.







이런 점에서 박훈의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제목에서부터 한국인의 관심을 끄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자 박훈 선생은 '근대'를 절대적 가치로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각해볼 문제는 이런 제목의 저변에는 어떠한 배경과 인식이 깔려 있는지다.

일본의 근대는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관심은, 메이지유신으로 시작하여 근대 일본의 체제와 문화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진다. 이는 구체적으로 번역과 근대 천황제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관심사는 일본의 침략주의적 행보이다.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기본적으로 침략주의자로 규정짓고, 그러한 관점에서 후쿠자와를 맹비난하고 일본의 역사관, 나아가 마루야마 마사오 같은 이들도 비판한다. 정일성도 책은 그러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저작들이다.

대개 이런 책들은 근대 이후 일본의 역사를 '침략'과 '제국주의'로 특징짓는데, 이 역시도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이 투영되었다 할 수 있다.




참고로 야스카와와 정일성의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너무 편향적이기도 하며, 너무 '침략'이라는 결론을 강하게 내린 상태에서 책을 썼기에 다양한 논의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기 때문이다.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러일.청일전쟁>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는 읽을만하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일본이 노골적인 침략 행보를 보였기에 그 시작점인 청일전쟁과 경복궁 점령은 정리해볼 역사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시기부터는 일본 자체보다는 일본의 한국 지배 양상과 총독부의 정책을 다룬 책이 더 많다. 혹은 일본은 어떻게 패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책.






















일본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몰려 있다 보니,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고대 일본이나 19세기 이전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을 뿐더러, 실제로 서적도 얼마 없다. 특히 한국에서 그렇게 이름이 많이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는 각각 전기가 한 종씩 있을 뿐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아예 소설 <대망>을 제외하고는 신뢰할 수 있는 책을 볼 수 없다. 심지어 전국시대 전체에 대한 서적은 거의 찾아볼 수도 없어, 그나마 몇 년 전에 이계황 선생 덕분에 지적 공백이 채워질 정도였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더 특이한 현상이 하나 더 있다. 바로 1947년 이후의 일본 현대사를 다룬 책은 근대와 대조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근현대사 통사 책을 제외하고, 몇 권 나열해보자. 근대와 대비하여 현대에 대한 이러한 상대적 무관심은 무엇이 원인인 것일까.
















이를 생각해보기 전에, 근대 이전 일본의 역사에 대한 한국의 대략적인 인식부터 봐보려 한다.

19세기 이전, 조선과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교류를 했다. 흥미로운 그 통신사에 대한 한국의 인식이다.








"지난 3년에 걸쳐 우리는 조선통신사의 행로를 더듬어 가며 뱃길이 머무르던 곳, 발길이 닿았던 곳마다 오롯이 남아 있는 당신들의 긍지와 애국심을 하나씩 수습했다. 그때마다 목이 메어오는 감격을 누를 수가 없었다. 조선통신사가 중첩되는 어려움을 견디며 평화의 터를 다지고 문화의 향기를 흩뿌리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역사는 얼마나 단선적이었을까를 생각하자 숙연해지는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 3> 표지글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간 열두 차례 파견되었던 조선의 문화 사절단입니다. (....) 아이들은 조선통신사의 여정을 통해 세계 속 우리나라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사/문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배우게 됩니다." <조선통신사 - 평화를 전하는 발걸음>




이상의 두 인용문에서 보이는 인식은 시사적이다. 두 책은 조선통신사를 일종의 문화사절단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조선이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린 인식이다.




한국이 비록 근대화 이후에는 일본에 밀리고 지배까지 당했지만, 원래는 일본보다 더 강국이었다, 백제와 가야가 일본의 문명을 발달시켜주고, 조선도 문화사절단을 보내 일본을 발달시키려 했다, 그럴 정도로 뒤쳐졌던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한국과 중국을 제치고 유일하게 자체적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러한 발상이 은연 중에 있는 것은 아닐지..




여담으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조선과 한국만의 생각이다. 애초에 어쩌다 한번 가던 통신사로 일본 사회에 변화가 생겼을리가 없다. 같은 시기에 일본은 조선의 문약을 비웃었으며, 조선의 유학에 대해서도 일본이 더 낫다는 미묘한 대결심리를 보여주었다.
















중국과 대비한다면, 이러한 경향이 한층 뚜렷하게 보인다. 중국 근대사 관련 서적이 적은 편인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한국인의 관심사는 중국 고대사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공맹, 노장, 묵자, 한비자 등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 사상가들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고, 또 사마천의 <사기>나 나관중 <삼국지>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 우리는 고대 중국의 선각자들에게서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지혜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이들의 책을 읽음으로써 그 지혜를 배우려 한다.






















































반대로 일본에 대해서는 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당장 일본 사상가 중에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물도 (후쿠자와 유키치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거니와, 근대 일본에 대한 관심도 실용적 수준에서 머물지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자 하겠다는 모습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류는 아니다.









일본 현대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이런 심리가 아닐까? 한국이 한때는 일본에 뒤쳐지기는 했지만, 원래부터 지금까지 그렇듯이 한국인 일본보다는 더 우월한 국가이다, 그러니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일본에게서 배울 것은 없다.




우스갯소리 중에 '전 세계에서 일본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라는 말도 이런 배경하에서 나온 말로 생각할 수 있겠다. 예전에는 일본을 선진국으로 보기도 했지만, 2010년대, 특히 2019년 이후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제 일본은 한국인에게, 한국은 일본처럼 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이자 새로운 군국주의로 나아가려는 도상 위에 있는 과거부터 이어져온 원수이다.










책이 어떤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 먹고 살려고 책을 만드는 출판 자본은, 책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관심 가질 법한 책을 만든다.

즉, 일본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출판시장을 보며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 분석 없이 편견 가득한 인상론과 책 목록만 보고 한 영양가 없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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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1-06-24 공감 (2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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