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가오 옌 (그림),김난주 (옮긴이)비채2020-10-26
원제 : 猫を棄てる 父親について語ると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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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양장본
102쪽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편집장의 선택
"무라카미 하루키, 아버지를 이야기하다"
전쟁의 상흔이 남은 1950년대 후반의 어느 여름날 오후, 아버지와 소년은 해변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갔다. 고양이를 담은 상자를 방품림에 내려놓은 뒤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찌된 일인지 고양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소년 하루키의 어린 시절 회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오랜 시간 저자 스스로 꺼내기 힘들었던 가장 사적인 이야기,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에 관한 것이다.
하루키는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한 평범한 아들로서 아버지 개인의 역사와, 세월에 잊힌 것과 세월이 불러일으킨 것을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조심스럽게 기록했다. 1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내용이나 문장의 결이 다른 글과 같이 엮기 어려워 독립된 작은 책으로 출간했다는 점을 후기에서 언급한다. 아버지와 이십 년 이상 절연 상태로 지내다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어렵게 화해했던 그에게 아버지를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겪은 참혹한 전쟁의 기억, 그 기억으로 하루키에게도 남겨진 트라우마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으로 남기게 된 이유이자 이 책의 의미를 분명히 밝힌다. 잊고 싶은 역사라 할지라도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 에세이 MD 송진경 (2020.10.23)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책소개
그간 일본 문학 특유의 사소설풍 서사와는 다소 거리를 두어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적인 테마 즉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간 회상으로 시작하는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개인의 역사를 되짚는 논픽션이다.
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존재론적 근간을 성찰하고 작가로서의 문학적 근간을 직시한다. 작가는 시종 아무리 잊고 싶은 역사라도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버지의 역사를 논픽션이라는 이야기의 형태로 용기내어 전한다. 글 쓰는 사람의 책무로서.
번역을 맡은 김난주가 "곳곳에서 작가의 머뭇거림이 느껴졌습니다. 쉼표도 많았고, 접속사 '아무튼'이 몇 번이고 등장했죠"라고 작업 소감을 밝혔듯, 무수한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길지 않은 책으로 완성되었지만 이야기의 중량감과 여운은 결코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
<문예춘추>(2019년 6월호)에 처음 공개되어 그해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기사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했고, 수정·가필을 거쳐 삽화와 함께 단행본으로 출간, 아마존 재팬, 기노쿠니야, 오리콘 등 각종 도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묘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13컷의 삽화는 타이완 출신 신예 아티스트 가오 옌의 작품이다.
목차
고양이를 버리다 9
작가 후기 96
책속에서
첫문장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 물론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많다.
P. 96~98오래전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언젠가는 문장으로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시작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갔다. 가족에 대해 쓴다는 것은(적어도 내게는)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고,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쓰면 좋을지 그 포인트가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 짐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해변에 갔던 기억이 떠올라, 그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했더니 의외로 문장이 술술 자연스럽게 나왔다.
내가 이 글에서 쓰고 싶었던 한 가지는, 전쟁이 한 인간?아주 평범한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다 ?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내가 이렇게 여기에 있다. 아버지의 운명이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경로를 밟았다면, 나라는 인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라는 건 그런 것이다?무수한 가설 중에서 생겨난 단 하나의 냉엄한 현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주 미소한 일부지만 그래도 한 조각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말을 ‘메시지’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역사의 한 모퉁이에 있는 이름 없는 한 이야기로서, 가능한 한 원래 형태 그대로를 제시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과거 내 옆에 있었던 몇 마리 고양이들이 그 이야기의 흐름을 뒤에서 조용히 떠받쳐주었다. 접기
P. 51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접기
P. 34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 삐죽
P. 31마지막으로 작은 아버지가 - 특공대에서 살아 돌아온 - 돌아가신 것은 바로 몇 년 전 일이다. 교토의 거리에서 우익의 가두 선전차를 보면 ˝전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니 저렇게 멋대로들지껄이는 게지……˝ 하고 젊은이들을 훈계하는 사람이었다. - chika
P. 34나는 그런 체험이 없다. 나는 아주 평범한 가정의 외동아들로 비교적 애지중지 자랐다. 그래서 부모에게 ‘버려진다‘는 일시적인 체험이 아이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주는지, 구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머리로 이런 것일 테지‘ 하고 상상하는 수밖에없다. 그러나 그런 유의 기억은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그 깊이와 형상이 달라지는 일은 있어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지 않을까?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전기를 읽고, 트뤼포 역시 유소년 시절에 부모와 떨어져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거의 방치되어) 다른 집에 맡겨진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트뤼포는 평생 작품을 통해 ‘버려진다‘는 한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사람은 누구나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잏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접기
- ch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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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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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가, 영미문학 번역가.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 제1문학부 연극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 결혼하여 1974년부터 7년여 동안 아내와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 서른 살을 앞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1981년부터 전업 작가로서 활동했고, 1987년에 발표한 《노르웨이의 숲》으로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운다. 이는 일본 문화계에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이리는 용어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후 《양을 둘러싼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태엽 감는 새》,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 화제작을 차례차례 발표했다.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비롯한 미국, 유럽, 러시아까지 총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그의 책들은 각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수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미문학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레이먼드 카버, 트루먼 커포티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일본어로 옮겨 재조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접기
수상 : 2010년 일본 서점대상, 2006년 프란츠 카프카상, 1994년 요미우리 문학상, 1985년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1982년 노마문예신인상, 1979년 군조신인문학상, 1944년 요미우리 문학상
최근작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어느 작가의 오후> … 총 981종 (모두보기)
가오 옌 (高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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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타이완 예술대학 시각전달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오키나와 현립예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현재 타이완, 일본을 오가며 일러스트, 만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난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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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7년 쇼와 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오오쓰마 여자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반짝반짝 빛나는』, 『낙하하는 저녁』, 『홀리 가든』, 『좌안 1·2』, 『제비꽃 설탕 절임』,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아저씨 우산> … 총 621종 (모두보기)
인터뷰 : 그의 이름으로 책을 선택한다 - 2002.10.26
역자후기
“옛일을 잊고 싶은 거겠지. 잠재적으로 그런 거겠지.”_ 《중국행 슬로보트》에서
잊고 싶은 옛일이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끝끝내 붙들고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평생의 짐으로, 무거운 어깨와 함께.
작가 자신은 한 번은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가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얘기부터 쓰기 시작했더니 의외로 술술 나왔다고 하지만, 도입부의 쉼표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일말의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튼’이라는 접속사가 몇 번이나 등장하는 점에서도.
‘전쟁’이 한 인간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도 소설적으로 다루어졌지만,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개인의 영역에서 다뤄진다.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모진 역사에 새겨진 무수한 ‘조각’의 기록으로.
출판사 소개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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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정의가 잠든 사이에>,<거짓과 정전>,<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등 총 341종
대표분야 : 동물만화 7위 (브랜드 지수 21,768점), 추리/미스터리소설 7위 (브랜드 지수 355,017점), 반려동물 7위 (브랜드 지수 22,05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처음으로 털어놓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들
아버지의 시간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단 하나의 서사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_무라카미 하루키
그간 일본 문학 특유의 사소설풍 서사와는 다소 거리를 두어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적인 테마 즉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간 회상으로 시작하는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개인의 역사를 되짚는 논픽션이다. 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존재론적 근간을 성찰하고 작가로서의 문학적 근간을 직시한다. 작가는 시종 아무리 잊고 싶은 역사라도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버지의 역사를 논픽션이라는 이야기의 형태로 용기내어 전한다. 글 쓰는 사람의 책무로서.
번역을 맡은 김난주가 “곳곳에서 작가의 머뭇거림이 느껴졌습니다. 쉼표도 많았고, 접속사 ‘아무튼’이 몇 번이고 등장했죠”라고 작업 소감을 밝혔듯, 무수한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길지 않은 책으로 완성되었지만 이야기의 중량감과 여운은 결코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문예춘추>(2019년 6월호)에 처음 공개되어 그해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기사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했고, 수정·가필을 거쳐 삽화와 함께 단행본으로 출간, 아마존 재팬, 기노쿠니야, 오리콘 등 각종 도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묘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13컷의 삽화는 타이완 출신 신예 아티스트 가오 옌의 작품이다.
★출간 즉시 아마존 재팬, 오리콘, 기노쿠니야 베스트 1위★
★<문예춘추> 선정 2019 ‘문예춘추독자상’ 수상작★
세월에 잊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세월에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 있다
1917년 교토 어느 절집의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야만적인 전쟁의 나날을 견딘 후 효고 현 니시노미야 시에서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 생활을 하다 2008년 고인이 된 무라카미 지아키. 작가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아버지 지아키는 소년 하루키에게 끔찍한 전장의 기억을 공유한다. 그중 중국군 포로를 군도로 척살해버린 무도한 기억의 조각은 현재까지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그 일은 대학살이 일어났던 악명 높은 난징전에 아버지가 참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발전했지만 작가는 어쩐지 아버지에게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채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고부터는 절연에 가까운 부자 관계가 된 탓에 작가는 끝내 그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사별하고 만다. 그러던 칠십대의 어느 날, 작가는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아버지의 삶의 풍경들을 글로 써 정리해보자고 결심한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출발했다. 독자가 직접 뽑아 그해 최고의 글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하는 등 열렬한 박수를 받는 한편, 일부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작가로서, 역사 속 개인으로서 ‘1949년생 무라카미 하루키’
그 시원과 궤적을 좇는 유일무의한 글쓰기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읽으면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첫머리에 등장하여 일 년 가까이 행방불명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고양이 와타야 노보루는 물론, 산 사람 가죽 벗기기 등 소설 속 잔인한 풍경들이 작가의 삶의 조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중국행 슬로보트》라는 작품의 출발점도 《후와후와》의 보드라운 회상이나 《기사단장 죽이기》 속 난징전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일 것이다.
작가 인터뷰에서
Q1- 충격적인 에세이였습니다, 아무래도 70세를 맞아 써야겠다고 생각하셨을까요.
무라카미- 지금 써서 남기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가족에 대해서는 그다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써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썼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하나의 책무로서.
Q2- 그것은 아버지가 세 번이나 소집된 전쟁, 특히 일본에 의한 중국 침략에 관한 일이어서일까요.
무라카미- 그것이 꽤 컸을 겁니다. 그런 일은 없던 것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으니 일어난 일은 써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수정주의가 만연하고 있는데 큰일이지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아무래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만 (2008년에) 돌아가시고 시간을 조금 둔 뒤 쓴 것입니다.
Q3- 학살이 일어난 난징 공략전에 아버지가 참전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좀처럼 기록을 뒤적여보지도 못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결국 난징전에는 아버지가 참전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셨죠.
무라카미- 그런 내용도 있어서 좀처럼 손을 데지 못했습니다만, 이제는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조사해보니 아버지의 부대는 우한 부근까지 진군했더군요. (코로나 뉴스에서) 우한(영상)을 봤을 때도 떠올랐습니다.
Q4- 중국은 초기 작품부터 여러 형태로 다뤄졌습니다. 중대한 문제인 만큼 계속 등장하는 것이겠지요.
무라카미- 그렇습니다. 확실히 하나의 테마랄까,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Q5- 아버지의 부대가 포로인 중국 병사를 처형한 일 등 직접 들은 이야기가 컸을까요?
무라카미- 아무래도 어린 시절이었으니 충격이랄까, 지울 수 없죠.
Q6- 과거 오랜 시간 ‘절연’ 관계였다는 부자에 대한 묘사에서 독자들이 많이 놀랐습니다.
무라카미- 그 문장은 쓰기 꽤 힘들었습니다. 나에 대한 사실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니까요. 어떻게 써야 할까 스탠스를 정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요.
_출간 기념 인터뷰에서┃마이니치 신문(2019.7.11)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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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캡틴스타 2023-09-24조회수 (119)공감 (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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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 book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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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긴 글
오송을 지나고 있다. 전철 첫차를 타고 광명역에서 출발해 진주로 가는 ktx를 타고. 지금 이 동선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애써도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오산의 진외가. 바람부는 율포. 겨울날 무슨 일로 단둘이 간 백양사. 하루키도 부친 당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투사해 겪은 갈등을 얘기한다. 비슷한 경우로 다른 내용을 나... 더보기
dalgial 2024-03-04 공감 (15) 댓글 (2)
하루키 작품, ‘마음의 눈’으로 읽기 《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비채] | (2020)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서 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일 수 있지만 작가는 아니다. 작가가 바라본 자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가 경험하고 파악했던 인물들이 새롭게(때론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 인물이... 더보기
초란공 2024-01-14 공감 (25) 댓글 (0)

하루키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짧은 글이었지만 무척이나 좋았다. 하루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에세이. 더보기
고양이라디오 2023-02-19 공감 (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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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하루키의 에세이라도 그렇지 1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13500원에 판매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심지어 650여 쪽에 달하는 1q84의 가격과 1000원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hi,keiss 2020-10-27 공감 (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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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IQ84의 하루키라서 선택했는데 95p짜리 미니북(?)... 폭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걱이 사악해서 뭐지 했어요 그것도 수수한 일러까지 끼워넣어서..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허무하달까 책 사고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

포레 2020-10-20 공감 (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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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아쉽지만 여느 때와 다른 느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이리도 오랜 세월이 걸렸구나 하는 생각. 그나저나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제 70대가 되었으니...

transient-guest 2020-11-21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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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이 겉돈다. 얇은데 비싸다. 여러 단점 속에서도 생각할 거리는 있다. 우연 속에 잉태된 필연 혹은 운명. 아버지를 부정하면서 헤매고 성장하는 아들의 숙명? 역사 속에서 성찰하고 성장해야 하는 인간... 만약, 나의 아버지를 추억한다면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송도둘리 2020-11-23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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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기 좋다. 문고집이나 단편집에 실렸더라면 잔잔하게 읽기 좋을 만한 분량이다.
그런데 이 아주 작은 판형의 100페이지 남짓한 책이 이 가격인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하루키라지만..

- 2020-10-20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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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으면서, 내가 하루키의 소설 이상으로 그의 에세이에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권 한권 그의 책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가의 한 켠이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고양이를 버리다 >을 서가에 꽂으며 살펴보니 소설 보다 에세이가 생각 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사실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는 출간 소식을 접하자 마자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결정했다. 그 이유는 내가 삶과 일상에 대한 빛나는 통찰 등이 담겨 있는 하루키 에세이 특유의 매력에 빠져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키의 팬 이전에 애묘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루키가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의 전작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으며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루키가 애묘인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고양이를 키워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는 이러한 애묘인으로서의 하루키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와 정을 나눠왔던 수많은 고양이들 중에서 그의 곁에서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장수 고양이 '뮤즈'와의 일화들이 에세이에 담겨 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고, 응분의 생각이 있고, 기쁨과 괴로움이 있지만, 하루키는 인간과 고양이라는 종의 구분을 넘어서 고양이의 생각과 행동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느끼며 마음을 교류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해준 그의 반려묘 '장수고양이'와의 추억에 대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뮤즈는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다.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다. 우리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고,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p. 145)
<장수 고양이의 비밀>의 온기 어린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때에 <고양이를 버리다>의 출간 소식을 들었으니 어찌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했던 나는 책을 받아보고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놀랐던 건 생각보다 얇고 가벼운 분량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책의 내용과 하루키가 남긴 작가 후기를 보며 이렇게 출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짧은 글이라서 어떤 형태로 출판하면 좋을지 꽤나 고민했는데, 결국 일러스트와 함꼐 독립된 조그만 책 하나로 꾸미기로 결정했다. 내용이나 문장의 결로 봐서, 내가 쓴 다른 글과 같이 엮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p. 98, 작가 후기 중에서)
내가 책을 읽으며 당황했던 건 책의 분량 보다도 그 내용에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을 보고 예전 <장수 고양이의 비밀> 등에서 느꼈던 애묘인으로서의 하루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책을 구매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러한 내용 전개를 기대하고 예상하면서 애묘인으로서 하루키와 어울리지 않는 '고양이를 버리는' 행위가 어떤 반전을 머금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서둘러 책을 읽어 나갔는데, 책의 내용 전개가 내 예상과는 좀 달랐던 것이다.
물론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처럼 에세이에서는 하루키가 고양이에 얽힌 두가지 추억을 언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에서 고양이와의 추억은 그와 추억을 공유했던 다른 누군가의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하는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그때 비로소 책의 표지를 다시 살펴보니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 밑에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그의 아버지의 역사와 그와 함께한 추억들을 반추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p. 87)
"그 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품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p. 87)
내가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행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걸친 취향 그리고 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졌던 소소한 에피소드와 엮어서 독자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하루키 특유의 낙천적이고 밝은 분위기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하루키 또한 마냥 즐겁고 유쾌한 에피소드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일정 경지에 올라선 작가 답게 이야기를 쓰는 일은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며, 이는 모두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피가 흐르기도 하는 비정한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또 그에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작가로서의 숙명을 언급하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마치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며,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가 않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필리핀이나 버마 전선으로 보내졌다면… 만약 음악 교사였다는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정말 그랬다면, 나라는 인간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p. 89)
하루키는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그의 아버지의 역사에 대해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했을 때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의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더듬어 간다. 그 역사 속에는 그가 아버지와 공유했던 추억 중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이자 본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를 버리러 간 날에 대한 기억도 있다. 그 역사들은 아버지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가족의 역사이며 또한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것은 좀 더 다른 것 아닐까? 하루키가 말했듯이 어쨌든 영원히 이기기만 하는 인간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고 나서 하루키의 에세이의 매력은 읽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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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와일드 2020-11-30 공감(4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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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포개어지는 기억과 시간
나는 하루키의 소설이나 산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기회가 되면 그냥 읽는 사람이다. 손꼽아 그의 작품을 기다리지 않는다. 『고양이를 버리다』도 아무런 기대 없이 읽었다. 얇고 작은 책이었다. 첫 페이지를 읽고 끝나는 순간까지 복잡한 마음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러니까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존재와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할까.
책은 하루키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분명 해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인데,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고양이라는 하나의 풍경처럼 담아낸다. 이상한 건 집에 돌아오니 그 고양이가 먼저 도착한 것이다. 산책을 다녀온 것처럼. 운명처럼 받아들였을까. 고양이는 하루키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책을 읽는 나도 무척 신기한데 당사자인 아버지와 하루키는 어땠을까.
놀라운 기억을 시작으로 하루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 아침 불단에서 오랫동안 경을 읽었다는 그의 아버지. 하루를 여는 습관이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독경이냐고 묻는 하루키의 물음에 아버지는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루키의 아버지는 전쟁을 아는 사람,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삶에서 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은 삶을 지배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들려준 전쟁의 기억은 하루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은 글을 읽는 나에게도 너무나 무섭고도 두렵게 전해진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리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의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51쪽)
얼핏 이런 기억과 추억은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가 친밀했나 싶을 착각을 불러온다. 정작 하루키가 고백하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반대였다. 아버지와 그는 거의 이십 년 이상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 모든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상과는 다른 길로 가는 아들과의 갈등은 컸다. 두 사람이 화해를 한 것도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순간이었다. 나와 형제들도 그랬다. 아버지와 우리는 극심하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좋은 것도 아니어서 그냥 데면데면 한 사이였다. 중환자실에서 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눈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순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 짧은 대화가 지금 나를 위로한다. 무기력하고 책임감이 없다고 여겼던 아버지. 그가 살아온 생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럽고 부끄럽다. 하루키의 아버지가 경험한 전쟁과 그것의 기억을 견디며 살아왔을 삶은 나의 아버지의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간과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다르지 않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에 공기를 숨 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62쪽)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해 문장으로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책으로 나올 때까지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찾아보고 그를 아는 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흐릿한 기억으로 아버지를 말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군 이력을 조사하면서 그의 삶을 관통하는 전쟁이라는 역사가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죽을 수도 있었던 군대, 전쟁에서 그의 아버지는 살아왔다 어쩌면 그는 죽은 이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빚을 갚는 게 매일매일 그들을 위해 경을 읽는 것일지라도.
하루키는 아버지에 대해 아픔과 상처만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야구 경기를 보러 가고 영화를 자주 보러 간 기억도 선명하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한 일이 없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낡은 자전거가 떠오른다. 자전거를 타고 일을 하러 간 아버지.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그 자전거는 정말 골치거리였다. 누군가 그 자전거를 가지고 와야 했으니까. 나와는 다른 기억으로 남은 하루키의 자전거가 조금은 다정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87쪽)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이전의 많은 소설과 산문 가운데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는 다르게 남을 것 같다. 내가 읽은 하루키의 책 가운데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화해라 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생에 대해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 아버지의 생과 자신의 생이 결국엔 하나로 포개어진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건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 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 있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니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의 책무가 있다. (93쪽)
하루키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평범한 인간이다. 평범하지만 고유한 존재. 그래서 소중하고 귀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부모 세대와 그 이전의 세대도 그러한 존재였다. 하루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들 개개인의 역사가 내게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애틋하고 경이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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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0-11-30 공감(2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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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내게는 힘이 센 책

가족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잘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다. 하루키는 어떠한가? 돌이켜 보면 나는 그의 수많은 에세이와 소설을 종종 읽었어도 그 안에서 가족의 흔적을 느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그 많은 에세이에서 그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 적이 있던가? 그렇지 않다. 소설만 봐도 부모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때문에 하루키가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니,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라……. 하루키도 이제 꽤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인상 깊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느 여름 오후, 소년 하루키는 아버지와 함께 해변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간다. 지금으로서야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유기한다면 온갖 비난에 시달릴 테지만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하루키가 아버지와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을 묘사할 때, 내 머릿속에도 유년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을 읽다가, 이 고양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그 오래전,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노랑 눈에 온몸이 새까만 고양이었다. 할머니는 녀석이 마당에 있는 쥐를 잘 잡는다면서 밥도 주면서 챙겨주기 시작했다. 아주 흔한 ‘나비’라는 이름도 당신이 몸소 붙여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마당 장독대나 지붕 위에서 가르랑 거리는 녀석을 피해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마당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나비’를 예뻐하던 막냇동생에게 물어보니 할머니가 가방에 담아서 버린다고 데리고 나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순한 녀석이다. 지금 키우는 내 고양이들은 병원에 가려고 케이지에 넣으려고 하면 몇 시간을 씨름해야 하는데, 할머니 혼자 그 검은 고양이를 가방에 넣었다니, 참으로 순한 녀석이 아닌가. 아니면 이 집에서 더는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걸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일까. ‘나비’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지 않았던 나는 그렇구나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동생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린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방 안에서 놀다 지겨워진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는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붕 위에서 ‘나비’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제 온몸을 핥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천연덕스럽고 느긋해 보였다.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딜 가냐는 듯 참으로 당당했다. 한참 뒤에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시침 뚝 떼고 “할머니 어디 갔다 와?” 하니, “나비가 하도 시끄럽게 해서 저기 내다 버리고 왔다” 하신다. 동생들과 나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지붕 위를 가리켰다. 지붕 위를 쳐다 본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런, 저런 요물! 아주 멀리 내다버렸는데!”하시고는 당신이 졌다는 듯 꾸부정한 허리를 매만지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나비’는 할머니보다 훨씬 빨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역시 고양이는 남다른 데가 있구나, 무서운 존재야,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무렵 하필이면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도 아버지와 함께 해변에 고양이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그들보다 먼저 고양이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하루키는 아버지의 얼굴에 스치는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엿본다. 처음에는 둘 다 어리둥절해 하다가 아버지는 이내 감탄하고 마지막에는 다소 안도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고양이를 계속 키우게 된다. 하루키는 이 일화와 아버지의 표정에서 아버지의 과거, 그가 살아온 생애를 더듬는다. 아버지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장남이 아니었던 그는 그 옛날 형편이 어렵던 시절, 입 하나라도 줄이고자 하는 마음에 남의 집에 양자로 갔다가 파양되어 돌아온 경험이 있다. 하루키는 버려졌으나 집으로 다시 돌아온 고양이를 보며 안도하는 아버지 얼굴에서 이런 아버지의 삶을 유추해낸 것이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경을 외운다. 어째서일까. 수수께끼 같은 이 행동 또한 아버지의 삶과 관계가 있다. 승려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용히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전쟁터에 끌려가 참혹한 경험을 한다. 그때 죽은 동료들을 위해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경을 외우는 아버지를 알게 되기까지 하루키에게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속했던 부대를 후쿠치야마 보병 제 20연대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군 이력을 자세히 조사하기까지,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버지가 속했다고 생각했던 보병 제20연대는 난징 함락 당시 가장 먼저 공격한 것으로 이름을 날린 부대였고, 이 부대의 행동에는 유난히 피비린내 나는 평판이 따라다녔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이 부대의 일원으로 난장 공략전에 참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오래도록 품었던 탓에 그의 종군 기록을 조사해보려는 결심을 좀처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양이를 버리러 간 기억, 돌아와 안도하는 표정, 불단 앞에서 매일 아침 불경을 외우던 아버지의 모습…….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 하루키는 아버지의 중요한 상처 두 가지, 버림받은 기억과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은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상처와 아픔을 헤아리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아버지와 성격이 달랐던 하루키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불화하고, 이십 년이 넘도록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지경까지 간다. 마침내 그가 아버지와 어렵사리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된 것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아버지의 나이 아흔 살, 하루키가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87쪽)
이 작은 책은 나에게 온갖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이십 년 이상 대화하지 않은 아버지, 그가 죽기 직전에야 화해한 아들……. 내게도 이십 년 이상 대화는커녕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아버지가 있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하루키처럼 대화를 나누며 화해할 생각도 들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그럼에도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뭐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좋은 아버지는 아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가정에 알맞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하루키가 아버지를 추억하듯이 내게도 아버지와 얽힌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내 인생 첫 자전거를 사준 사람도, 기타가 갖고 싶다는 말에 고등학생 때 선뜻 통기타를 선물한 사람도, 대학 입학 기념으로 모토로라 타키온을 사온 사람도 모두 아버지였다.
책장을 넘기다 작은 그림 하나에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나란히 있는 이 그림.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 모습 같기도 하고, 나와 내 아버지 모습 같기도 하다. 피를 나눈 사이이지만 언젠가는 서로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 존재들. 때로는 불화하기도 하는 존재들. 하루키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그 나이에 내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에 아버지와의 화해가 과연 가능할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은 책은 아버지, 그리고 그를 낳은 할머니와 고양이에 얽힌 이런저런 상념을 깊은 밤에 불러일으킨다. 하루키가 아버지의 사소한 몸짓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상처나 아픔을 헤아렸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계기가 될 일이 과연 있을까. 내 아버지의 인생이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면 나 또한 지금 이렇게 나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를 곰곰 생각해 본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 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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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1-24 공감(27)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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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무라카미 하루키, 가오 옌
처음에, 이 책의 가제본을 읽었을때는 하루키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나 그의 생각들을 다 드러내지 않아 답답한 면이 컸다. 그의 글에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했음을, 말을 아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종종 이러한 불편한 관계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가 아버지와의 갈등을 이기고 비로소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 컸다고 볼 수 있는데 어쩐지 미진한 면이 없잖았다. 책을 다시 읽으니 비로소 알겠다. 그가 그간 꾹꾹 눌어왔을 감정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토해낸 것임을. 우리 또한 사적인 감정들을 다 내비치지는 않지 않는가. 감춰두고 싶은 것을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일본의 난징대학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사건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하루키는 아버지가 그 기간에 복무하였던 것을 큰 마음의 짐으로 생각하였던 듯하다.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시간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아버지가 세 번의 참전으로 같은 시기에 있었던 난징 대학살 사건에 참여했을 거라는 기억에 일부러 관련 서류를 찾아보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비로소 찾아 보았고, 같은 부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그의 안도감이 조금쯤은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와의 생각이 달라 오랜 시간을 보지 않고 살았던 하루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글을 남기기로 했다. 아주 개인적인 일들을 이야기해야 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나니 그가 왜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들을 줄곧 썼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하루키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는 절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어려운 시절이라 어느 절에 동자승으로 보내져 그 집의 양자가 되기로 하였지만 그곳에 적응을 못하였던지 다시 교토로 돌아왔다. 불교 학습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에 다니다가 전쟁이 터져 참전을 세 번 하였다. 돌아와서는 교토 대학 문학부에 들어가 나중에 교사 생활을 하였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아버지가 참전하게 된 상황을 그렸다. 그리고 초병들을 군인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포로인 중국 병사를 죽이게 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직접 가담했는지, 지켜보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고백을 들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이 이야기를 듣고 작가는 충격이 컸었던 것 같다. 진로때문에 아버지와 소원해졌고 굳이 관련서류를 찾아보지 않았던 것 또한 역사적 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점이 컸을 것 같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야 할테지만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고 했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고양이를 박스에 넣어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해변으로 달려가 고양이를 버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그 고양이가 그들보다 더빨리 집으로 돌아와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었다. 비교적 가까운 장소라 바람같이 달려왔을 고양이를 생각하니 애틋한 면이 없잖았다. 그에 대한 일화는 우리 시부모님에게도 일어난 일이 있다. 새끼를 하도 많이 나아 성가셔진 들고양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30분을 가 먼 곳에 버리고 왔더니 한 달만에 다시 집에 찾아와 할 수 없이 밥을 주었다는 말씀이셨다. 노란색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는 우리가 그 집을 방문했을때 얼굴을 비추지 않다가 한밤중이면 담 사이를 걸어다니곤 했다. 이처럼 고양이에 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작가는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듯하다.
그 자신 또한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이 그의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그마나 어린 시절의 고양이를 떠올려서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십 년쯤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면 어릴적의 다정한 기억들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을테니.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93~95 페이지)
꽤 짧은 글이다. 아버지에 관한 개인적인 일들이므로 굳이 다른 책과 엮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타이완의 일러스트레이터 가오 옌의 일러스트와 함께 얇지만 묵직한 책 한권이 되었다. 많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쓴 글이었다. 번역자 김난주는 이 글에서 머뭇거림을 보았다고 했다. 나 또한 그가 많이 머뭇거렸음을, 말을 아꼈다는 것을 느꼈다. 머뭇거림에서 깊게 배어있는 묵직한 감정들이 느껴지는 글이다. 다 담아내지 못해 애써 갈무리한 글이다.
더불어 가오 옌의 일러스트는 하루키가 가졌을 그 모든 마음들을 어루만져주는 듯 하다.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위안(慰安)의 그림이다.
#고양이를버리다 #무라카미하루키 #가오옌 #김난주 #비채 #하루키 #하루키에세이 #책 #책추천 #책리뷰 #에세이 #에세이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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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20-10-26 공감(2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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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을 위한 책무 - 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를 버리다』
하루키 작품에서 내가 봐온 '아버지' 캐릭터들의 이미지는, 성실하지만 그 시스템밖에 모르는 NHK 수금원이나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남성들이었다. 하루키의 아버지뿐 아니라 주위를 돌아봐도 전쟁 세대들은 원하는 대로 살기는커녕 생계가 아니라 생사를 고민해야 했고 그 고됨과 상처들을 삭이느라 과묵해지고 가족과도 잘 소통하지 못했던 거 같다. 하루키는 아버지와의 세대차로 연을 끊다시피 하며, 혈연의 관계 개선보다 창작과 자신의 가정에 더 노력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하루키 작품에서 부모의 자리는 매우 적다. 그러나 하루키도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내내 고민했을 것이다. 『1Q84』에서 덴고가 요양원에 있던 아버지를 향해 독백하던 장면도 소설을 통한 일종의 살풀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친아들이 아닌데도 자신을 키워줬지만 그 양육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덴고는 아버지를 마냥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다. 그는 적어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실마리가 풀려야 자신의 삶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와 아버지 두 사람만 공유하는 추억이 두 가지 나온다. 가장 애틋한 기억 하나와 잊을 수 없는 강력한 폭력에 대한 얘기 하나다.
아버지는 고양이 식구가 늘자 암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기로 하고 하루키와 함께 그 고양이를 버리고 집에 돌아오는데, 암고양이는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낯선 길에서 자전거보다 빠르게 고양이가 돌아온 것도 놀라웠지만, 이 사건은 아버지가 어렸을 때 절에 동자승으로 보내졌다가 집으로 돌아온 기억을 환기시켰다. 버려지는 상처를 알면서도 그는 똑같은 행동을 했다. 고양이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고양이가 돌아왔기 때문에 삶은 같은 듯 달라진다. 아니 전혀 다른 궤도이다. 아버지가 절에서 집으로 돌아왔기에 살게 된 삶처럼. 스님이 되었다면 겪지 않았을 전쟁의 소용돌이,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로 강제 동원되어 타국까지 가야 했던 고된 여정과 각종 전쟁 트라우마, 전쟁에서 연인이 사망해 하루키의 아버지와 결혼하게 된 어머니, 하루키의 탄생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하루키와 아버지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지만, 자신을 위무하고 표현하는 데 글을 쓰는 건 같았다. 아버지는 하이쿠로, 하루키는 소설로. 아버지가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듯 전쟁에 대한 참회도 그와 유사했다. 아침마다 조그만 불상 앞에서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행위는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키가 작가로 쓴 소설이 결코 자기 충족만의 결과물이 아니듯. 전쟁에 대해서 일절 함구하던 아버지가 하루키에게 들려준 유일한 이야기였던 중국인 처형은 ‘역사’로 전달된다.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버지는 전쟁터에서의 체험에 관해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당신 자신이 직접 손을 댄 일이든 또는 그저 목격한 일이든, 아마 기억도 하고 싶지 않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큼은, 가령 서로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해도, 피를 나눈 아들인 내게 말해서 전하고 어떤 형태로 남겨야만 한다고 느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이는 나의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이야기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재구성되었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난징대학살에 직접 참여한 군인이 아니었을지 내내 의구심을 가졌다. 진실을 감당하기 두려웠던 걸까, 아버지의 과거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하루키는 아버지가 2008년 사망하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말하고 싶은데도 어떤 것은 말이 되어 나오기까지 긴긴 시간이 걸린다. 나도 당신도.
마지막에 하루키는 마당에 있던 소나무 위로 올라간 어린 고양이의 실종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과가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하는 그런 일이었다. 하루키는 어린 고양이가 소나무 위로 올라가는 걸 무심히 봤고 고양이가 구조 요청의 울음을 울 때 아버지의 도움을 청하기도 했으나 고양이를 찾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린 고양이의 호기심 탓을 해야 할까. 어린 고양이를 막지 못한 어린 하루키 탓을 해야 할까. 어린 고양이를 더 열심히 찾지 못한 하루키 부자를 탓해야 할까. 삶은 원인과 결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달라질 수 없었다고 자조하며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 하루키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 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하루키 소설을 몇 번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소설에 ‘실종’ 이 잦다는 걸 안다. 그게 단순히 재밌는 작품을 위한 작법의 기능이 아니라 작가의 풀 수 없는 갈증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자주 느꼈다. 소나무 한 그루로 인해 영문을 모르게 된 고양이, 전쟁 때문에 삶과 정신이 깊게 바뀌어 버린 평범했던 한 시민, 이 우주의 우연 속에서 그들은 다르지 않다. 교환 가능한 것이라 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한 빗방울의 궤적은 유일무이하다. 우리가 그런 것을 살피지 않으면서 나라는 존재의 자리는 가능할까. 하루키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풀어놓은 이 글은 아주 개인적이면서 근본적인 거대한 이야기, 버려지고 상처받았으며 무거운 체험을 충분히 얘기하지도 치유하지도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도 내 부모의 삶과 이야기를 이해하고 듣고 싶었던 입장이어서 하루키 부자 이야기를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한 방울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위) 책에 수록된 가오 옌의 일러스트
(아래) 이 책의 내용이 처음 실린 <문예춘추> 2019. 6월 호에서의 하루키 부자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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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20-12-18 공감(22)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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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양장본
102쪽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편집장의 선택
"무라카미 하루키, 아버지를 이야기하다"
전쟁의 상흔이 남은 1950년대 후반의 어느 여름날 오후, 아버지와 소년은 해변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갔다. 고양이를 담은 상자를 방품림에 내려놓은 뒤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으나, 어찌된 일인지 고양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소년 하루키의 어린 시절 회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오랜 시간 저자 스스로 꺼내기 힘들었던 가장 사적인 이야기,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에 관한 것이다.
하루키는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한 평범한 아들로서 아버지 개인의 역사와, 세월에 잊힌 것과 세월이 불러일으킨 것을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조심스럽게 기록했다. 1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내용이나 문장의 결이 다른 글과 같이 엮기 어려워 독립된 작은 책으로 출간했다는 점을 후기에서 언급한다. 아버지와 이십 년 이상 절연 상태로 지내다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어렵게 화해했던 그에게 아버지를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겪은 참혹한 전쟁의 기억, 그 기억으로 하루키에게도 남겨진 트라우마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으로 남기게 된 이유이자 이 책의 의미를 분명히 밝힌다. 잊고 싶은 역사라 할지라도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 에세이 MD 송진경 (2020.10.23)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책소개
그간 일본 문학 특유의 사소설풍 서사와는 다소 거리를 두어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적인 테마 즉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간 회상으로 시작하는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개인의 역사를 되짚는 논픽션이다.
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존재론적 근간을 성찰하고 작가로서의 문학적 근간을 직시한다. 작가는 시종 아무리 잊고 싶은 역사라도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버지의 역사를 논픽션이라는 이야기의 형태로 용기내어 전한다. 글 쓰는 사람의 책무로서.
번역을 맡은 김난주가 "곳곳에서 작가의 머뭇거림이 느껴졌습니다. 쉼표도 많았고, 접속사 '아무튼'이 몇 번이고 등장했죠"라고 작업 소감을 밝혔듯, 무수한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길지 않은 책으로 완성되었지만 이야기의 중량감과 여운은 결코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
<문예춘추>(2019년 6월호)에 처음 공개되어 그해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기사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했고, 수정·가필을 거쳐 삽화와 함께 단행본으로 출간, 아마존 재팬, 기노쿠니야, 오리콘 등 각종 도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묘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13컷의 삽화는 타이완 출신 신예 아티스트 가오 옌의 작품이다.
목차
고양이를 버리다 9
작가 후기 96
책속에서
첫문장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 물론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많다.
P. 96~98오래전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언젠가는 문장으로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시작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갔다. 가족에 대해 쓴다는 것은(적어도 내게는)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고,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쓰면 좋을지 그 포인트가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 짐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해변에 갔던 기억이 떠올라, 그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했더니 의외로 문장이 술술 자연스럽게 나왔다.
내가 이 글에서 쓰고 싶었던 한 가지는, 전쟁이 한 인간?아주 평범한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다 ?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내가 이렇게 여기에 있다. 아버지의 운명이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경로를 밟았다면, 나라는 인간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라는 건 그런 것이다?무수한 가설 중에서 생겨난 단 하나의 냉엄한 현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주 미소한 일부지만 그래도 한 조각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말을 ‘메시지’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역사의 한 모퉁이에 있는 이름 없는 한 이야기로서, 가능한 한 원래 형태 그대로를 제시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과거 내 옆에 있었던 몇 마리 고양이들이 그 이야기의 흐름을 뒤에서 조용히 떠받쳐주었다. 접기
P. 51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접기
P. 34사람은 누구나 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있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 삐죽
P. 31마지막으로 작은 아버지가 - 특공대에서 살아 돌아온 - 돌아가신 것은 바로 몇 년 전 일이다. 교토의 거리에서 우익의 가두 선전차를 보면 ˝전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니 저렇게 멋대로들지껄이는 게지……˝ 하고 젊은이들을 훈계하는 사람이었다. - chika
P. 34나는 그런 체험이 없다. 나는 아주 평범한 가정의 외동아들로 비교적 애지중지 자랐다. 그래서 부모에게 ‘버려진다‘는 일시적인 체험이 아이에게 어떤 마음의 상처를 주는지, 구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머리로 이런 것일 테지‘ 하고 상상하는 수밖에없다. 그러나 그런 유의 기억은 반드시 눈에 보이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그 깊이와 형상이 달라지는 일은 있어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지 않을까?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전기를 읽고, 트뤼포 역시 유소년 시절에 부모와 떨어져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거의 방치되어) 다른 집에 맡겨진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트뤼포는 평생 작품을 통해 ‘버려진다‘는 한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사람은 누구나많든 적든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실태를 말로는 타인에게 잘 전할 수 없는 무거운 체험이 잏고, 그걸 충분히 얘기하지 못한채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리라.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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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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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가, 영미문학 번역가.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 제1문학부 연극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에 결혼하여 1974년부터 7년여 동안 아내와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 서른 살을 앞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1981년부터 전업 작가로서 활동했고, 1987년에 발표한 《노르웨이의 숲》으로 경이로운 판매 기록을 세운다. 이는 일본 문화계에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롬’이리는 용어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후 《양을 둘러싼 모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태엽 감는 새》,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 화제작을 차례차례 발표했다.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비롯한 미국, 유럽, 러시아까지 총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그의 책들은 각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수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미문학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레이먼드 카버, 트루먼 커포티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일본어로 옮겨 재조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접기
수상 : 2010년 일본 서점대상, 2006년 프란츠 카프카상, 1994년 요미우리 문학상, 1985년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1982년 노마문예신인상, 1979년 군조신인문학상, 1944년 요미우리 문학상
최근작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어느 작가의 오후> … 총 981종 (모두보기)
가오 옌 (高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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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타이완 예술대학 시각전달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오키나와 현립예술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현재 타이완, 일본을 오가며 일러스트, 만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난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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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7년 쇼와 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오오쓰마 여자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반짝반짝 빛나는』, 『낙하하는 저녁』, 『홀리 가든』, 『좌안 1·2』, 『제비꽃 설탕 절임』,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저물 듯 저물지 않는』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아저씨 우산> … 총 621종 (모두보기)
인터뷰 : 그의 이름으로 책을 선택한다 - 2002.10.26
역자후기
“옛일을 잊고 싶은 거겠지. 잠재적으로 그런 거겠지.”_ 《중국행 슬로보트》에서
잊고 싶은 옛일이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끝끝내 붙들고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평생의 짐으로, 무거운 어깨와 함께.
작가 자신은 한 번은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가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얘기부터 쓰기 시작했더니 의외로 술술 나왔다고 하지만, 도입부의 쉼표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일말의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튼’이라는 접속사가 몇 번이나 등장하는 점에서도.
‘전쟁’이 한 인간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도 소설적으로 다루어졌지만,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개인의 영역에서 다뤄진다.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모진 역사에 새겨진 무수한 ‘조각’의 기록으로.
출판사 소개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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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정의가 잠든 사이에>,<거짓과 정전>,<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등 총 341종
대표분야 : 동물만화 7위 (브랜드 지수 21,768점), 추리/미스터리소설 7위 (브랜드 지수 355,017점), 반려동물 7위 (브랜드 지수 22,05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처음으로 털어놓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들
아버지의 시간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단 하나의 서사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_무라카미 하루키
그간 일본 문학 특유의 사소설풍 서사와는 다소 거리를 두어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적인 테마 즉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간 회상으로 시작하는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개인의 역사를 되짚는 논픽션이다. 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존재론적 근간을 성찰하고 작가로서의 문학적 근간을 직시한다. 작가는 시종 아무리 잊고 싶은 역사라도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버지의 역사를 논픽션이라는 이야기의 형태로 용기내어 전한다. 글 쓰는 사람의 책무로서.
번역을 맡은 김난주가 “곳곳에서 작가의 머뭇거림이 느껴졌습니다. 쉼표도 많았고, 접속사 ‘아무튼’이 몇 번이고 등장했죠”라고 작업 소감을 밝혔듯, 무수한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이다. 100페이지 남짓한 길지 않은 책으로 완성되었지만 이야기의 중량감과 여운은 결코 가볍지도 짧지도 않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문예춘추>(2019년 6월호)에 처음 공개되어 그해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기사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했고, 수정·가필을 거쳐 삽화와 함께 단행본으로 출간, 아마존 재팬, 기노쿠니야, 오리콘 등 각종 도서 차트 1위를 석권했다. 묘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13컷의 삽화는 타이완 출신 신예 아티스트 가오 옌의 작품이다.
★출간 즉시 아마존 재팬, 오리콘, 기노쿠니야 베스트 1위★
★<문예춘추> 선정 2019 ‘문예춘추독자상’ 수상작★
세월에 잊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세월에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 있다
1917년 교토 어느 절집의 6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야만적인 전쟁의 나날을 견딘 후 효고 현 니시노미야 시에서 중고등학교 국어 교사 생활을 하다 2008년 고인이 된 무라카미 지아키. 작가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아버지 지아키는 소년 하루키에게 끔찍한 전장의 기억을 공유한다. 그중 중국군 포로를 군도로 척살해버린 무도한 기억의 조각은 현재까지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그 일은 대학살이 일어났던 악명 높은 난징전에 아버지가 참전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발전했지만 작가는 어쩐지 아버지에게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채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고부터는 절연에 가까운 부자 관계가 된 탓에 작가는 끝내 그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사별하고 만다. 그러던 칠십대의 어느 날, 작가는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아버지의 삶의 풍경들을 글로 써 정리해보자고 결심한다.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출발했다. 독자가 직접 뽑아 그해 최고의 글에 수여하는 ‘문예춘추독자상’을 수상하는 등 열렬한 박수를 받는 한편, 일부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작가로서, 역사 속 개인으로서 ‘1949년생 무라카미 하루키’
그 시원과 궤적을 좇는 유일무의한 글쓰기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읽으면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첫머리에 등장하여 일 년 가까이 행방불명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고양이 와타야 노보루는 물론, 산 사람 가죽 벗기기 등 소설 속 잔인한 풍경들이 작가의 삶의 조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중국행 슬로보트》라는 작품의 출발점도 《후와후와》의 보드라운 회상이나 《기사단장 죽이기》 속 난징전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일 것이다.
작가 인터뷰에서
Q1- 충격적인 에세이였습니다, 아무래도 70세를 맞아 써야겠다고 생각하셨을까요.
무라카미- 지금 써서 남기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가족에 대해서는 그다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써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썼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하나의 책무로서.
Q2- 그것은 아버지가 세 번이나 소집된 전쟁, 특히 일본에 의한 중국 침략에 관한 일이어서일까요.
무라카미- 그것이 꽤 컸을 겁니다. 그런 일은 없던 것으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으니 일어난 일은 써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수정주의가 만연하고 있는데 큰일이지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아무래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만 (2008년에) 돌아가시고 시간을 조금 둔 뒤 쓴 것입니다.
Q3- 학살이 일어난 난징 공략전에 아버지가 참전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좀처럼 기록을 뒤적여보지도 못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결국 난징전에는 아버지가 참전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셨죠.
무라카미- 그런 내용도 있어서 좀처럼 손을 데지 못했습니다만, 이제는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조사해보니 아버지의 부대는 우한 부근까지 진군했더군요. (코로나 뉴스에서) 우한(영상)을 봤을 때도 떠올랐습니다.
Q4- 중국은 초기 작품부터 여러 형태로 다뤄졌습니다. 중대한 문제인 만큼 계속 등장하는 것이겠지요.
무라카미- 그렇습니다. 확실히 하나의 테마랄까,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Q5- 아버지의 부대가 포로인 중국 병사를 처형한 일 등 직접 들은 이야기가 컸을까요?
무라카미- 아무래도 어린 시절이었으니 충격이랄까, 지울 수 없죠.
Q6- 과거 오랜 시간 ‘절연’ 관계였다는 부자에 대한 묘사에서 독자들이 많이 놀랐습니다.
무라카미- 그 문장은 쓰기 꽤 힘들었습니다. 나에 대한 사실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니까요. 어떻게 써야 할까 스탠스를 정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요.
_출간 기념 인터뷰에서┃마이니치 신문(2019.7.11)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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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캡틴스타 2023-09-24조회수 (119)공감 (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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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을 지나고 있다. 전철 첫차를 타고 광명역에서 출발해 진주로 가는 ktx를 타고. 지금 이 동선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애써도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오산의 진외가. 바람부는 율포. 겨울날 무슨 일로 단둘이 간 백양사. 하루키도 부친 당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식에게 투사해 겪은 갈등을 얘기한다. 비슷한 경우로 다른 내용을 나... 더보기
dalgial 2024-03-04 공감 (15) 댓글 (2)
하루키 작품, ‘마음의 눈’으로 읽기 《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비채] | (2020)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서 작가가 만들어 낸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일 수 있지만 작가는 아니다. 작가가 바라본 자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가 경험하고 파악했던 인물들이 새롭게(때론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 인물이... 더보기
초란공 2024-01-14 공감 (25) 댓글 (0)

하루키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짧은 글이었지만 무척이나 좋았다. 하루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에세이. 더보기
고양이라디오 2023-02-19 공감 (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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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하루키의 에세이라도 그렇지 1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13500원에 판매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심지어 650여 쪽에 달하는 1q84의 가격과 1000원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hi,keiss 2020-10-27 공감 (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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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IQ84의 하루키라서 선택했는데 95p짜리 미니북(?)... 폭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걱이 사악해서 뭐지 했어요 그것도 수수한 일러까지 끼워넣어서..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허무하달까 책 사고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
포레 2020-10-20 공감 (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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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아쉽지만 여느 때와 다른 느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기까지 이리도 오랜 세월이 걸렸구나 하는 생각. 그나저나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제 70대가 되었으니...
transient-guest 2020-11-21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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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이 겉돈다. 얇은데 비싸다. 여러 단점 속에서도 생각할 거리는 있다. 우연 속에 잉태된 필연 혹은 운명. 아버지를 부정하면서 헤매고 성장하는 아들의 숙명? 역사 속에서 성찰하고 성장해야 하는 인간... 만약, 나의 아버지를 추억한다면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송도둘리 2020-11-23 공감 (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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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기 좋다. 문고집이나 단편집에 실렸더라면 잔잔하게 읽기 좋을 만한 분량이다.
그런데 이 아주 작은 판형의 100페이지 남짓한 책이 이 가격인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하루키라지만..
- 2020-10-20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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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
오랜만에 출간된 하루키의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으면서, 내가 하루키의 소설 이상으로 그의 에세이에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한권 한권 그의 책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가의 한 켠이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이번에 <고양이를 버리다 >을 서가에 꽂으며 살펴보니 소설 보다 에세이가 생각 보다 훨씬 많았던 것이다.
사실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는 출간 소식을 접하자 마자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결정했다. 그 이유는 내가 삶과 일상에 대한 빛나는 통찰 등이 담겨 있는 하루키 에세이 특유의 매력에 빠져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나는 하루키의 팬 이전에 애묘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하루키가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의 전작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읽으며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루키가 애묘인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고양이를 키워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는 이러한 애묘인으로서의 하루키가 잘 표현되어 있다. 그와 정을 나눠왔던 수많은 고양이들 중에서 그의 곁에서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장수 고양이 '뮤즈'와의 일화들이 에세이에 담겨 있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고, 응분의 생각이 있고, 기쁨과 괴로움이 있지만, 하루키는 인간과 고양이라는 종의 구분을 넘어서 고양이의 생각과 행동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느끼며 마음을 교류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해준 그의 반려묘 '장수고양이'와의 추억에 대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뮤즈는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다. 예쁘고, 영리하고, 튼튼하고, 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다. 우리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고, 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 p. 145)
<장수 고양이의 비밀>의 온기 어린 기억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때에 <고양이를 버리다>의 출간 소식을 들었으니 어찌 구매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구매를 했던 나는 책을 받아보고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놀랐던 건 생각보다 얇고 가벼운 분량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책의 내용과 하루키가 남긴 작가 후기를 보며 이렇게 출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짧은 글이라서 어떤 형태로 출판하면 좋을지 꽤나 고민했는데, 결국 일러스트와 함꼐 독립된 조그만 책 하나로 꾸미기로 결정했다. 내용이나 문장의 결로 봐서, 내가 쓴 다른 글과 같이 엮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p. 98, 작가 후기 중에서)
내가 책을 읽으며 당황했던 건 책의 분량 보다도 그 내용에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을 보고 예전 <장수 고양이의 비밀> 등에서 느꼈던 애묘인으로서의 하루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책을 구매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러한 내용 전개를 기대하고 예상하면서 애묘인으로서 하루키와 어울리지 않는 '고양이를 버리는' 행위가 어떤 반전을 머금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서둘러 책을 읽어 나갔는데, 책의 내용 전개가 내 예상과는 좀 달랐던 것이다.
물론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처럼 에세이에서는 하루키가 고양이에 얽힌 두가지 추억을 언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에서 고양이와의 추억은 그와 추억을 공유했던 다른 누군가의 추억의 한 켠을 차지하는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그때 비로소 책의 표지를 다시 살펴보니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제목 밑에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그의 아버지의 역사와 그와 함께한 추억들을 반추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p. 87)
"그 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품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p. 87)
내가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행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걸친 취향 그리고 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졌던 소소한 에피소드와 엮어서 독자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하루키 특유의 낙천적이고 밝은 분위기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하루키 또한 마냥 즐겁고 유쾌한 에피소드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일정 경지에 올라선 작가 답게 이야기를 쓰는 일은 제로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며, 이는 모두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피가 흐르기도 하는 비정한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또 그에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작가로서의 숙명을 언급하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마치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며,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가 않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필리핀이나 버마 전선으로 보내졌다면… 만약 음악 교사였다는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정말 그랬다면, 나라는 인간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p. 89)
하루키는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그의 아버지의 역사에 대해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했을 때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의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더듬어 간다. 그 역사 속에는 그가 아버지와 공유했던 추억 중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이자 본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를 버리러 간 날에 대한 기억도 있다. 그 역사들은 아버지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가족의 역사이며 또한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것은 좀 더 다른 것 아닐까? 하루키가 말했듯이 어쨌든 영원히 이기기만 하는 인간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까...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고 나서 하루키의 에세이의 매력은 읽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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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와일드 2020-11-30 공감(4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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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포개어지는 기억과 시간
나는 하루키의 소설이나 산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기회가 되면 그냥 읽는 사람이다. 손꼽아 그의 작품을 기다리지 않는다. 『고양이를 버리다』도 아무런 기대 없이 읽었다. 얇고 작은 책이었다. 첫 페이지를 읽고 끝나는 순간까지 복잡한 마음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러니까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존재와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할까.
책은 하루키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분명 해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인데,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고양이라는 하나의 풍경처럼 담아낸다. 이상한 건 집에 돌아오니 그 고양이가 먼저 도착한 것이다. 산책을 다녀온 것처럼. 운명처럼 받아들였을까. 고양이는 하루키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책을 읽는 나도 무척 신기한데 당사자인 아버지와 하루키는 어땠을까.
놀라운 기억을 시작으로 하루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매일 아침 불단에서 오랫동안 경을 읽었다는 그의 아버지. 하루를 여는 습관이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독경이냐고 묻는 하루키의 물음에 아버지는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하루키의 아버지는 전쟁을 아는 사람,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삶에서 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은 삶을 지배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들려준 전쟁의 기억은 하루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를테면 이런 부분은 글을 읽는 나에게도 너무나 무섭고도 두렵게 전해진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리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의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51쪽)
얼핏 이런 기억과 추억은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가 친밀했나 싶을 착각을 불러온다. 정작 하루키가 고백하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반대였다. 아버지와 그는 거의 이십 년 이상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하지 않았다. 모든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상과는 다른 길로 가는 아들과의 갈등은 컸다. 두 사람이 화해를 한 것도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순간이었다. 나와 형제들도 그랬다. 아버지와 우리는 극심하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좋은 것도 아니어서 그냥 데면데면 한 사이였다. 중환자실에서 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눈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순간.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 짧은 대화가 지금 나를 위로한다. 무기력하고 책임감이 없다고 여겼던 아버지. 그가 살아온 생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던 내가 원망스럽고 부끄럽다. 하루키의 아버지가 경험한 전쟁과 그것의 기억을 견디며 살아왔을 삶은 나의 아버지의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간과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다르지 않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에 공기를 숨 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62쪽)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해 문장으로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책으로 나올 때까지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찾아보고 그를 아는 이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흐릿한 기억으로 아버지를 말하는 어머니, 아버지의 군 이력을 조사하면서 그의 삶을 관통하는 전쟁이라는 역사가 너무도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죽을 수도 있었던 군대, 전쟁에서 그의 아버지는 살아왔다 어쩌면 그는 죽은 이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빚을 갚는 게 매일매일 그들을 위해 경을 읽는 것일지라도.
하루키는 아버지에 대해 아픔과 상처만 기억하는 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야구 경기를 보러 가고 영화를 자주 보러 간 기억도 선명하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한 일이 없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낡은 자전거가 떠오른다. 자전거를 타고 일을 하러 간 아버지.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그 자전거는 정말 골치거리였다. 누군가 그 자전거를 가지고 와야 했으니까. 나와는 다른 기억으로 남은 하루키의 자전거가 조금은 다정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 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87쪽)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이전의 많은 소설과 산문 가운데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는 다르게 남을 것 같다. 내가 읽은 하루키의 책 가운데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화해라 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의 생에 대해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 아버지의 생과 자신의 생이 결국엔 하나로 포개어진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건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 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 있을 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니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의 책무가 있다. (93쪽)
하루키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평범한 인간이다. 평범하지만 고유한 존재. 그래서 소중하고 귀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부모 세대와 그 이전의 세대도 그러한 존재였다. 하루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모두 그런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들 개개인의 역사가 내게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애틋하고 경이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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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0-11-30 공감(2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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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내게는 힘이 센 책
가족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잘 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다. 하루키는 어떠한가? 돌이켜 보면 나는 그의 수많은 에세이와 소설을 종종 읽었어도 그 안에서 가족의 흔적을 느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특히 그 많은 에세이에서 그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 적이 있던가? 그렇지 않다. 소설만 봐도 부모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때문에 하루키가 <고양이를 버리다>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니,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라……. 하루키도 이제 꽤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인상 깊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느 여름 오후, 소년 하루키는 아버지와 함께 해변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간다. 지금으로서야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유기한다면 온갖 비난에 시달릴 테지만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하루키가 아버지와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을 묘사할 때, 내 머릿속에도 유년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장면을 읽다가, 이 고양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조금은 예상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그 오래전,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노랑 눈에 온몸이 새까만 고양이었다. 할머니는 녀석이 마당에 있는 쥐를 잘 잡는다면서 밥도 주면서 챙겨주기 시작했다. 아주 흔한 ‘나비’라는 이름도 당신이 몸소 붙여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마당 장독대나 지붕 위에서 가르랑 거리는 녀석을 피해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마당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나비’를 예뻐하던 막냇동생에게 물어보니 할머니가 가방에 담아서 버린다고 데리고 나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순한 녀석이다. 지금 키우는 내 고양이들은 병원에 가려고 케이지에 넣으려고 하면 몇 시간을 씨름해야 하는데, 할머니 혼자 그 검은 고양이를 가방에 넣었다니, 참으로 순한 녀석이 아닌가. 아니면 이 집에서 더는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걸 눈치 채기라도 한 것일까. ‘나비’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지 않았던 나는 그렇구나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동생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린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방 안에서 놀다 지겨워진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는데,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붕 위에서 ‘나비’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제 온몸을 핥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천연덕스럽고 느긋해 보였다. 여기가 내 집인데 어딜 가냐는 듯 참으로 당당했다. 한참 뒤에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시침 뚝 떼고 “할머니 어디 갔다 와?” 하니, “나비가 하도 시끄럽게 해서 저기 내다 버리고 왔다” 하신다. 동생들과 나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지붕 위를 가리켰다. 지붕 위를 쳐다 본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런, 저런 요물! 아주 멀리 내다버렸는데!”하시고는 당신이 졌다는 듯 꾸부정한 허리를 매만지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나비’는 할머니보다 훨씬 빨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역시 고양이는 남다른 데가 있구나, 무서운 존재야,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무렵 하필이면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도 아버지와 함께 해변에 고양이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랍게도(?) 그들보다 먼저 고양이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이때 하루키는 아버지의 얼굴에 스치는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엿본다. 처음에는 둘 다 어리둥절해 하다가 아버지는 이내 감탄하고 마지막에는 다소 안도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고양이를 계속 키우게 된다. 하루키는 이 일화와 아버지의 표정에서 아버지의 과거, 그가 살아온 생애를 더듬는다. 아버지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장남이 아니었던 그는 그 옛날 형편이 어렵던 시절, 입 하나라도 줄이고자 하는 마음에 남의 집에 양자로 갔다가 파양되어 돌아온 경험이 있다. 하루키는 버려졌으나 집으로 다시 돌아온 고양이를 보며 안도하는 아버지 얼굴에서 이런 아버지의 삶을 유추해낸 것이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경을 외운다. 어째서일까. 수수께끼 같은 이 행동 또한 아버지의 삶과 관계가 있다. 승려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용히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느닷없이 전쟁터에 끌려가 참혹한 경험을 한다. 그때 죽은 동료들을 위해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경을 외우는 아버지를 알게 되기까지 하루키에게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속했던 부대를 후쿠치야마 보병 제 20연대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군 이력을 자세히 조사하기까지,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아버지가 속했다고 생각했던 보병 제20연대는 난징 함락 당시 가장 먼저 공격한 것으로 이름을 날린 부대였고, 이 부대의 행동에는 유난히 피비린내 나는 평판이 따라다녔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이 부대의 일원으로 난장 공략전에 참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오래도록 품었던 탓에 그의 종군 기록을 조사해보려는 결심을 좀처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양이를 버리러 간 기억, 돌아와 안도하는 표정, 불단 앞에서 매일 아침 불경을 외우던 아버지의 모습…….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 하루키는 아버지의 중요한 상처 두 가지, 버림받은 기억과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은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자기의 아버지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상처와 아픔을 헤아리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아버지와 성격이 달랐던 하루키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불화하고, 이십 년이 넘도록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지경까지 간다. 마침내 그가 아버지와 어렵사리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된 것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아버지의 나이 아흔 살, 하루키가 예순에 가까운 나이였다.
우리는 그 여름날, 같이 자전거를 타고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뭐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 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87쪽)
이 작은 책은 나에게 온갖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이십 년 이상 대화하지 않은 아버지, 그가 죽기 직전에야 화해한 아들……. 내게도 이십 년 이상 대화는커녕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아버지가 있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가 죽는다 하더라도 하루키처럼 대화를 나누며 화해할 생각도 들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그럼에도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뭐가 어찌되었던,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것 같다. 내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좋은 아버지는 아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가정에 알맞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하루키가 아버지를 추억하듯이 내게도 아버지와 얽힌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고, 내 인생 첫 자전거를 사준 사람도, 기타가 갖고 싶다는 말에 고등학생 때 선뜻 통기타를 선물한 사람도, 대학 입학 기념으로 모토로라 타키온을 사온 사람도 모두 아버지였다.
책장을 넘기다 작은 그림 하나에 시선이 오랫동안 머문다.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나란히 있는 이 그림. 하루키와 그의 아버지 모습 같기도 하고, 나와 내 아버지 모습 같기도 하다. 피를 나눈 사이이지만 언젠가는 서로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 존재들. 때로는 불화하기도 하는 존재들. 하루키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그 나이에 내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에 아버지와의 화해가 과연 가능할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작은 책은 아버지, 그리고 그를 낳은 할머니와 고양이에 얽힌 이런저런 상념을 깊은 밤에 불러일으킨다. 하루키가 아버지의 사소한 몸짓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상처나 아픔을 헤아렸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계기가 될 일이 과연 있을까. 내 아버지의 인생이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면 나 또한 지금 이렇게 나로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를 곰곰 생각해 본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 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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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1-24 공감(27)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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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무라카미 하루키, 가오 옌
처음에, 이 책의 가제본을 읽었을때는 하루키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나 그의 생각들을 다 드러내지 않아 답답한 면이 컸다. 그의 글에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했음을, 말을 아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종종 이러한 불편한 관계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가 아버지와의 갈등을 이기고 비로소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 컸다고 볼 수 있는데 어쩐지 미진한 면이 없잖았다. 책을 다시 읽으니 비로소 알겠다. 그가 그간 꾹꾹 눌어왔을 감정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토해낸 것임을. 우리 또한 사적인 감정들을 다 내비치지는 않지 않는가. 감춰두고 싶은 것을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일본의 난징대학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사건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하루키는 아버지가 그 기간에 복무하였던 것을 큰 마음의 짐으로 생각하였던 듯하다.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시간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아버지가 세 번의 참전으로 같은 시기에 있었던 난징 대학살 사건에 참여했을 거라는 기억에 일부러 관련 서류를 찾아보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뒤 비로소 찾아 보았고, 같은 부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그의 안도감이 조금쯤은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와의 생각이 달라 오랜 시간을 보지 않고 살았던 하루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글을 남기기로 했다. 아주 개인적인 일들을 이야기해야 하므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나니 그가 왜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들을 줄곧 썼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하루키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는 절집의 차남으로 태어났다.어려운 시절이라 어느 절에 동자승으로 보내져 그 집의 양자가 되기로 하였지만 그곳에 적응을 못하였던지 다시 교토로 돌아왔다. 불교 학습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에 다니다가 전쟁이 터져 참전을 세 번 하였다. 돌아와서는 교토 대학 문학부에 들어가 나중에 교사 생활을 하였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아버지가 참전하게 된 상황을 그렸다. 그리고 초병들을 군인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포로인 중국 병사를 죽이게 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직접 가담했는지, 지켜보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고백을 들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이 이야기를 듣고 작가는 충격이 컸었던 것 같다. 진로때문에 아버지와 소원해졌고 굳이 관련서류를 찾아보지 않았던 것 또한 역사적 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점이 컸을 것 같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해야 할테지만 쉽게 글이 써지지 않았다고 했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함께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고양이를 박스에 넣어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해변으로 달려가 고양이를 버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그 고양이가 그들보다 더빨리 집으로 돌아와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었다. 비교적 가까운 장소라 바람같이 달려왔을 고양이를 생각하니 애틋한 면이 없잖았다. 그에 대한 일화는 우리 시부모님에게도 일어난 일이 있다. 새끼를 하도 많이 나아 성가셔진 들고양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30분을 가 먼 곳에 버리고 왔더니 한 달만에 다시 집에 찾아와 할 수 없이 밥을 주었다는 말씀이셨다. 노란색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는 우리가 그 집을 방문했을때 얼굴을 비추지 않다가 한밤중이면 담 사이를 걸어다니곤 했다. 이처럼 고양이에 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작가는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듯하다.
그 자신 또한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이 그의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그마나 어린 시절의 고양이를 떠올려서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십 년쯤 아버지를 보지 않았다면 어릴적의 다정한 기억들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을테니.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93~95 페이지)
꽤 짧은 글이다. 아버지에 관한 개인적인 일들이므로 굳이 다른 책과 엮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타이완의 일러스트레이터 가오 옌의 일러스트와 함께 얇지만 묵직한 책 한권이 되었다. 많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쓴 글이었다. 번역자 김난주는 이 글에서 머뭇거림을 보았다고 했다. 나 또한 그가 많이 머뭇거렸음을, 말을 아꼈다는 것을 느꼈다. 머뭇거림에서 깊게 배어있는 묵직한 감정들이 느껴지는 글이다. 다 담아내지 못해 애써 갈무리한 글이다.
더불어 가오 옌의 일러스트는 하루키가 가졌을 그 모든 마음들을 어루만져주는 듯 하다. 아련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위안(慰安)의 그림이다.
#고양이를버리다 #무라카미하루키 #가오옌 #김난주 #비채 #하루키 #하루키에세이 #책 #책추천 #책리뷰 #에세이 #에세이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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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20-10-26 공감(2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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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을 위한 책무 - 무라카미 하루키 『고양이를 버리다』
하루키 작품에서 내가 봐온 '아버지' 캐릭터들의 이미지는, 성실하지만 그 시스템밖에 모르는 NHK 수금원이나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남성들이었다. 하루키의 아버지뿐 아니라 주위를 돌아봐도 전쟁 세대들은 원하는 대로 살기는커녕 생계가 아니라 생사를 고민해야 했고 그 고됨과 상처들을 삭이느라 과묵해지고 가족과도 잘 소통하지 못했던 거 같다. 하루키는 아버지와의 세대차로 연을 끊다시피 하며, 혈연의 관계 개선보다 창작과 자신의 가정에 더 노력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하루키 작품에서 부모의 자리는 매우 적다. 그러나 하루키도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내내 고민했을 것이다. 『1Q84』에서 덴고가 요양원에 있던 아버지를 향해 독백하던 장면도 소설을 통한 일종의 살풀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친아들이 아닌데도 자신을 키워줬지만 그 양육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던 덴고는 아버지를 마냥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었다. 그는 적어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실마리가 풀려야 자신의 삶도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와 아버지 두 사람만 공유하는 추억이 두 가지 나온다. 가장 애틋한 기억 하나와 잊을 수 없는 강력한 폭력에 대한 얘기 하나다.
아버지는 고양이 식구가 늘자 암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기로 하고 하루키와 함께 그 고양이를 버리고 집에 돌아오는데, 암고양이는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낯선 길에서 자전거보다 빠르게 고양이가 돌아온 것도 놀라웠지만, 이 사건은 아버지가 어렸을 때 절에 동자승으로 보내졌다가 집으로 돌아온 기억을 환기시켰다. 버려지는 상처를 알면서도 그는 똑같은 행동을 했다. 고양이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고양이가 돌아왔기 때문에 삶은 같은 듯 달라진다. 아니 전혀 다른 궤도이다. 아버지가 절에서 집으로 돌아왔기에 살게 된 삶처럼. 스님이 되었다면 겪지 않았을 전쟁의 소용돌이, 동사무소 직원의 실수로 강제 동원되어 타국까지 가야 했던 고된 여정과 각종 전쟁 트라우마, 전쟁에서 연인이 사망해 하루키의 아버지와 결혼하게 된 어머니, 하루키의 탄생 등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하루키와 아버지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지만, 자신을 위무하고 표현하는 데 글을 쓰는 건 같았다. 아버지는 하이쿠로, 하루키는 소설로. 아버지가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듯 전쟁에 대한 참회도 그와 유사했다. 아침마다 조그만 불상 앞에서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행위는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루키가 작가로 쓴 소설이 결코 자기 충족만의 결과물이 아니듯. 전쟁에 대해서 일절 함구하던 아버지가 하루키에게 들려준 유일한 이야기였던 중국인 처형은 ‘역사’로 전달된다.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아버지는 전쟁터에서의 체험에 관해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당신 자신이 직접 손을 댄 일이든 또는 그저 목격한 일이든, 아마 기억도 하고 싶지 않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큼은, 가령 서로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해도, 피를 나눈 아들인 내게 말해서 전하고 어떤 형태로 남겨야만 한다고 느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이는 나의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이야기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재구성되었다. 하루키는 아버지가 난징대학살에 직접 참여한 군인이 아니었을지 내내 의구심을 가졌다. 진실을 감당하기 두려웠던 걸까, 아버지의 과거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하루키는 아버지가 2008년 사망하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말하고 싶은데도 어떤 것은 말이 되어 나오기까지 긴긴 시간이 걸린다. 나도 당신도.
마지막에 하루키는 마당에 있던 소나무 위로 올라간 어린 고양이의 실종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과가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하는 그런 일이었다. 하루키는 어린 고양이가 소나무 위로 올라가는 걸 무심히 봤고 고양이가 구조 요청의 울음을 울 때 아버지의 도움을 청하기도 했으나 고양이를 찾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린 고양이의 호기심 탓을 해야 할까. 어린 고양이를 막지 못한 어린 하루키 탓을 해야 할까. 어린 고양이를 더 열심히 찾지 못한 하루키 부자를 탓해야 할까. 삶은 원인과 결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달라질 수 없었다고 자조하며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할까. 하루키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 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 해도.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하루키 소설을 몇 번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소설에 ‘실종’ 이 잦다는 걸 안다. 그게 단순히 재밌는 작품을 위한 작법의 기능이 아니라 작가의 풀 수 없는 갈증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자주 느꼈다. 소나무 한 그루로 인해 영문을 모르게 된 고양이, 전쟁 때문에 삶과 정신이 깊게 바뀌어 버린 평범했던 한 시민, 이 우주의 우연 속에서 그들은 다르지 않다. 교환 가능한 것이라 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라 해도 한 빗방울의 궤적은 유일무이하다. 우리가 그런 것을 살피지 않으면서 나라는 존재의 자리는 가능할까. 하루키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풀어놓은 이 글은 아주 개인적이면서 근본적인 거대한 이야기, 버려지고 상처받았으며 무거운 체험을 충분히 얘기하지도 치유하지도 못한 채 살다가 죽어가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도 내 부모의 삶과 이야기를 이해하고 듣고 싶었던 입장이어서 하루키 부자 이야기를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한 방울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위) 책에 수록된 가오 옌의 일러스트
(아래) 이 책의 내용이 처음 실린 <문예춘추> 2019. 6월 호에서의 하루키 부자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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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20-12-18 공감(22)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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