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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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글입니다
남편이 변했어요
위탁 아동을 돌보면서 저와 제 주변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바뀐 게 남편입니다.
우선 남편 흉을 보자면 결혼할 때만 해도 학생운동권 출신인 데다 온통 고민하는 건 북한과 주한미군, 탈북자 인권, 일본군위안부처럼 거창한 문제뿐이었죠. 집에서는? 단적으로 말해서 '유교보이'에다 '가부장제의 화신'이었습니다. 장손이거든요.
남편은 농반진반으로 "나는 독립운동을 할 테니 부인은 가정을 지키시오"라고 할 정도였고, 전업주부인 제가 육아를 포함해 가사를 모두 도맡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출근길에 묶어서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한번 버리고는 스스로 '가정일도 도울 줄 아는 훌륭한 남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육아라곤 애 둘을 낳아 키울 동안 똥 기저귀는 한 번도 갈아 본 적이 없고요. 기저귀를 갈아본 게 다 합쳐서 열 번이나 될까요.
처음에 제가 입양 전 위탁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별 고민도 없이 흔쾌히 동의하더군요. 나중에 물어보니 역시나 본인 생활에 별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 오케이 했다고 실토합니다.
이랬던 남편이 아기가 오고 나서부터 '육아'와 '엄마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페미니즘 책까지 찾아서 읽는가 하면, 급기야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저야 집안에서 아이와 툭탁거릴 뿐인데요. 기자 남편은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독립투사'에서 '육아투사'로 변신했네요. 얼마 전부터는 "문제의 근원에는 민법이 있는 것 같아. 민법을 바꿔야 해"라는 소리를 하는 등 스케일이 예전보다 더 커졌습니다. “알고보니 조선이 제사 때문에 망했다”는 얘기도 하고요.
전에는 퇴직하면 남편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든지 유학을 가거나, 사전 편찬을 하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저는 저대로 제 생활을 하자고 암묵적으로 합의까지 했었는데요. 이제는 '함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동네마다 아기를 함께 키우는 시민의 모임'을 만들자나요, 뭐라나요. '부부는 서로를 보는 게 아니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아기 덕분에 부부의 행복한 노년을 그리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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