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 Hoon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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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논문 마치고, 첫 주말의 단상
감사의 말도 마쳤고, 이제 지도교수님 한 번 읽고 나시면, 복사집 맡길 계획. 제본 찾아 학교에 다음 주중에 내면 끝. 내 연구와, 연구와 연결된 주제 말고는 모든 게 시큰둥하거나, 집중이 안 된 채로 1년 정도는 보낸 것 같다. 이제 내 주제 논문 말고도 뭔가 읽으면 세세하게 잘 읽히고, 누구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또렷하게 들어온다. 어쩌다 빼면 잠이 늦게 드는 경우는 잘 없는데, 깊은 잠을 꽤 오랫동안 못 자다가, 이제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아직 올빼미에서 아침형 인간 전환은 어렵지만, 방학 중에 당기면 다시 당겨질 것 같다. 새벽 5시 달리기를 해야 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영은 3월에 마지막으로 하고 4개월째 작파하고 있다. 철인3종은 수영을 연습 못 해 올해는 또 포기. 물론 내년에 하면 된다.
어젯 밤에는 잠도 안 오고 맨송맨송하여 논문에 등장하는, '민짜' 경험연구에 스타일리시한 이론의 옷을 입혀준, 해외의 과학기술학(STS), 경제지리학, 혁신연구 대가 몇 분에게 영어연습차 학위논문을 보내봤다. 물병에 편지를 넣고 강물에 띄우는 심정으로. 언젠가 학회에서 뵐 수 있으리라. 분야가 넓으니 학회도 갈 곳이 많을 텐데, 연구비를 벌어와야 한다. (지금은 못 받는 신분) 사회학, 과학기술학, 혁신연구, 조직연구, 지역학... 인접한 학문의 논문들을 그래도 한번 일별해야 했으므로 낯익은 이름들이 늘었다. 물론 나 같은 중고 신인은, 진짜 반짝반짝한 루키 신인들의 작업도 잘 알아야 하는데, 아직은 대가들과 딱 fit에 맞는 주제의 연구자들만 아는 상태. 이젠 바다를 건너야 한다.
논문을 쓰면서 1) 조선업의 디지털 전환과 AI 전환, 2) 다양한 슈퍼을과 슈퍼갑으로 구성된 해외 이해당사자와 협업하고, 표준도 없고 엔지니어링 방법론도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전공, 전혀 다른 제품군, 다른 원리로 공학을 바라보는 엔지니어가 손발을 못 맞출 경우에 벌어지는 참사(해양플랜트), 3) 엔지니어 노동시장과 공간분업을 다뤘다.
기술혁신과 엔지니어 조직에 대해 다루는 내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차 있지만, 사실 가장 고민하는 것은 연구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다. 지역적 불균형은 산업에서 이뤄지는 공간분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1세기 이후 한국 제조업의 공간분업은 엔지니어의 배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공간분업의 기반은 한 편에서는 구상(R&D, 엔지니어링)과 실행(제조)으로 구상되지만, 다른 한 편에서 '산업 가부장제'라 하는 지역적인 성별화된 분업 구조와 상호작용한다. 1970~1990년대 생산직 노동자의 동남권 이주가 동남권의 '남성 생계 부양자 경제'를 안정화 했다면, 1990년대 이후 벌어진 공간분업으로 인한 엔지니어링의 수도권+충청권으로의 이주는 '남성 생계 부양자 경제'의 불균등한 해소로 인한 '가족 재생산 모델'의 위기와 비수도권의 인구유출를 빚어, 저출생 고령화라는 국가 재생산의 문제를 야기했다.
한국 제조업 클러스터의 초기 입지는 국가가 주도하고 결정하고 이에 발맞춰, 당시의 벤처 사업가인 재벌들이 참여해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제 입지에 대한 의사결정은 모든 의사결정은 제조대기업들이 하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 경쟁을 국가와 지자체가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한다. 국가적 불균등 발전의 문제가 그나마 제조업이 시정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간다면, 다른 산업에서의 고부가가치 부문은 국가가 설계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공기관만 분산해서 움직여 왔던 균형발전의 어려움이 이러한 측면과 포개진다.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성별화된 양상과 상호작용하고 서로를 구속한다. 가부장제가 문제고 여성들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름으로 살기 어려운 문제와, 제조업의 분업구조를 재편하는 문제는 전혀 떨어져 있지 않다. 여성들을 가사와 육아의 주체, 즉 재생산의 주체로 만들었던 1970~1990년대 산업화의 잔재와, 수도권에 가야만 제조업이든 IT이든 서비스업이든 고부가가치 직군을 얻을 수 있게 되고 또한 고학력화(대학 입학률 70% 이상)와 여성의 고등교육 진출이라는 맥락까지 포갰을 때 수도권 집중이 기능적으로도 합리화되는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맥락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한국의 젠더 정치를 구속한다.
산업도시의 '잔재' 속에서 남성 생계부양자의 "퇴근하면 반갑게 맞아주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낭만주의'가 나오는 것이고(러스트 벨트를 보라), 고부가가치 산업이 집결된 수도권에서 성별 상관 없이 '경쟁게임'에서 소진된 자들의 성별 불균형 따위는 없다고 외치는 '시험 능력주의' 선호와 이준석 지지가 나오는 것이다. 여성주의가 싸워온 모든 문제를 민주적인 절차로 풀기 위해서도, 이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병역과 연금 문제가 그런 것처럼. 아직 새로운 가족 형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낭만적인 주체들과, '시험 능력주의' 선호하는 주체와의 싸움 만큼이나, 그들의 생각이 만들어지는 그 기반을 재구성 해야 한다. 단순히 경제결정론이 아닌, 사회적 결절점에 얽힌 것들을 언급해 보는 것이다. 세계적 흐름에 맞춰 '파시즘'과 '극우'가 이들을 조직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나. 파시즘과 극우의 공격에 맞서야 겠지만, 공격의 기반을 해체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파시즘과 극우는 '증상'이고, 그 기저에 있는 '실재'이자 '원인'들을 지속적을 포착하고 개입하는 게 연구자의 할 일일 것이다. <광장 너머>의 내 글은, 제조업과 엔지니어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그렇게 연결 되어 있다.
더 민주적이고 여러모로 진보적인 사회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은 많고, 나는 내 방식으로 해보려 하고, 내 논문은 한국의 산업 혁신이라는 목표 외에도, 그런 비판적 사회과학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현장에서 악전고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려 한다. 내 은사님 중 한 분은 "공략하느니 낙후시켜라"고 하시며 대안적 움직임들에 주목하셨지만, 나는 "낙후된" 다수 인간조차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복판에서 샅바싸움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또 읽고 쓰고, 듣고 말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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