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청산리 영웅’ 홍범도가 쓴 회고록
홍범도 장군
반병률 지음
한울·2만5000원
허미경기자수정 2019-10-19 11:23
등록 2014-07-13 19:58

홍범도(1868~1943)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독보적 존재다. 1920년대 항일무장투쟁의 두 봉우리라 할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청산리 전투의 또다른 주인공 김좌진에 견줘 남한에서 덜 조명된 것은 사회주의 계열이란 이유에서였다. 평양에서 나서 1908년 일본군에 쫓겨 압록강 건너 망명한 뒤 1943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숨지기까지 많은 세월을 옛소련 땅에서 보냈기에 그의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다. 그가 이끈 부대가 청산리 전투에서도 주력군의 하나였다는 ‘팩트’도 1990년대 들어서야 남한에 알려졌다.
<홍범도 장군>은 홍범도의 육성을 남한 독자에게 들려주는 책이다. 홍범도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홍범도 일지’의 여러 필사본을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사학과)가 고증하고 해제와 주석을 붙여 수록했다.
일지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홍범도 일지’는 나날의 일기라기보다는 자전적 약전이다. 말년에 이르러 지난날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적어도 1938년 7월 말 이후에 홍범도가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에서 작성한 것”으로 반 교수는 본다. 여러 필사본(김세일본, 이인섭본, 이함덕본) 가운데 반 교수가 저본 혹은 정본으로 판단한 것은 이함덕본이다. 연극 <홍범도>를 무대에 올렸던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당책임비서 김진의 지시에 따라 이 극장 배우 이함덕이 1958년 4월16일 ‘홍범도 일지’의 원본을 필사한 것이다. 한국에 처음 ‘홍범도 일지’의 존재를 알린 김세일본과 이인섭본은 이를 다시 옮겨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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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일지’는 출생부터 무장독립투쟁, 중앙아시아에서 보낸 말년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을 “가식 없이 덤덤하게 기술”하고 있다. 항일운동뿐 아니라 일본군의 동향과 만주, 연해주, 중앙아시아 한인들의 언어나 풍습 같은 일상생활의 단면도 기록해 놓았다.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만 아니라 처절하게 당한 것도 그대로 썼다. 1920년 말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한 뒤의 일을 쓴 대목에서 홍범도는 이렇게 적는다. “청산리전투를 치르고 도피하다 오도양창에서 추운 밤을 지새는 도중 일본군과 홍호적의 공격을 받아 우등불 앞에서 불쪼이던 군사는 씨도 없이 다 죽고 그 나머지는 사방으로 일패도주하였다.”
<홍범도 장군>에는 이밖에도 홍범도가 직접 쓴 ‘리력서’(이력서), 소련공산당에 입당할 당시에 쓴 문답 형식의 자기소개서 ‘앙케이트’, 사망하기 이태 전인 1941년 11월 카자흐스탄의 한글 신문 <레닌기치>에 쓴 격문 ‘원쑤를 갚다’도 수록됐다. ‘홍범도 일지’는 20세기 초 조선말로 씌어 있는데다 평안·함경도 사투리에 조선식 러시아어로 된 사회주의체제 용어들이 왕왕 들어 있어 일반 독자들이 읽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홍범도 장군>은 여기에 각주를 달아 이해를 돕는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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