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31

Park Yuha 이은선 감성으로 쓰인 이런 ‘학술적’ 비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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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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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료의 나에 대한 비판 논문을 보내달라는 분이 계셔서 그 김에 어쩔 수 없이 읽었다. 내가 일일이 대응하는데 대한 피로를 느끼는 분도 계신 듯 하지만 가끔은 나자신의 피로감도 상상해 주시면 많이 위로가 될 듯 하다.

내가 논문심사위원이었다면 이하에 대해 지적했을 것이다.
 
1)맥락을 알지 못하는 개념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구체적 근거없이 누군가를 그 틀에 집어넣는 이중 만용

2)”한국형 (민족주의)페미니즘”을 주창하는데, 민족주의란 구조적으로 반페미니즘적이기도 하다는 걸 알지 못하는데서 기인한 치명적 논리 모순

3) (사소한 지적으로) 박유하가 한일협정을 “법적정의”라 했다고 쓴, 명백한 허위기술등 엉성하거나 악의적인 독해

나에 대한 지적이 길지는 않으니 나도 간단히 쓴다.

아무튼 덕분에 ‘관련자료를 하나도 읽지 않고 남의 글만 읽고 쓴 추상적인 글’이 그 분야에선 무려 ‘논문’으로 통과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얼마전엔 박정애씨라는 연구자 책을 읽다가 역시 내가 하지 않은 말이 쓰여 있기에 한숨을 내 쉰 적이 있다.
 
사실 내가 궁금한 건 감성으로 쓰인 이런 ‘학술적’ 비판들이 나를 법정에 가둬두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걸 이들이 알고 있는지다.
 
한동안 과거 30년을 돌아보면서 알게 된 건 “역사의 사법화”와 “법지상주의”가 얼마나 사태를 꼬이게 만들었는지다. 그런 내가 졸지에 법을 ‘숭앙’하는 국가주의자/서구논리에 빠진 가련한 식민지 지식인이 되고 말았다. 일제논리라고 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20년 이상 징용문제등 관여해 온 일본의 ‘양심적’변호사는 물론 한국의 대표격 변호사인 최봉태변호사조차 법적해결이 아닌 기금조성방식으로 만들어 해결하라고 지금은 주장 중이다. 

위안부문제에 대한 나의 비판은 법적해결이라는 그들의 ‘방식’에 대해서였고, 이들의 그런 주장은 나의 인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이 더운 날 이런 글을 다시 쓰려니 서글프지만, 페친중에 이 교수 글에 동조하신 분이 계신 것 같아 써 둔다.














61이소, Chee-Kwan Kim and 5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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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입장 소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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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信연구소 오늘, 21.07.31>
어제 호주거주의 페친 박세진 선생님을 통해서 다시 나의 일본관 내지는 나의 동료였던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입장 소환되었다.
2017년 여신협이 주관했던 한국재일일본여성신학포럼에서 발표했던 글뿐아니라 2019년 페북에 썼던 나의 글까지 다시 올라왔다. 놀랍고 한편 반갑기도 하다. 이 글에 대한 박유하 교수의 거친 언급이 댓글에 실렸지만 나는 별로 응대하고싶지 않고, 단지 2019년8월에 썼던 글을다시 공유하고자 한다. 곧다시 8월이다. 지금 청주 엄마에게로 가고있다. 엄마의 삶을 한편으로 고스란히 그늘지웠던 일본식민지 시절! 다시 그 기억을 가져오고 그러나 단지 미움과 회한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지금과 여기에서의 삶을 더 창조적이고 인간답게 하는 토대로 삼고싶다. 박유하 교수도같이 했으면 좋겠다.
<한국 信연구소 오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제국의 위안부'
1. 광복절도 다가오고, 얼마전 영화 <주전장>과 <김복동>도 보고하여서 다시 한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한 글은 이미 여러번 썼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심리적, 개인적, 학술적 요인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난 2017년 2월 강정마을 <한국재일일본여성신학포럼>에서 발표했던 글,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이슈-'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에서 나름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러 차원의 중첩적인 성찰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한 것이 있어서 오늘 다시 그것을 가져와 본다.
2. 사실 거기서 초반에 다룬 <제국의 위안부>의 박유하 교수와는 세종대에서 연구실을 나란히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인문대의 몇 안되는 또래 여교수들과 한때 모임도 같이 하면서 친밀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그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이 점점 더 공적으로 드러나면서 개인적인 논쟁도 있었고, 관계가 소원해지다가 급기야는 아주 멀어졌다. 그런데 그녀와 내가 항상 다른 길을 갔던 것만은 아니다. 요사이 한일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독도문제 등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세종대에서 소속과 임용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일문과의 그녀와 내가 함께 그 일의 해결를 위해서 나섰었다.
3. 요사이 한국의 '근대' 이해로 많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한국에 근대가 있느냐 없느냐, 동아시아에서의 근대를 어느 시기부터로 보느냐, 서양식 근대가 아닌 '한국적' 근대, '토착적'근대가 나름대로 있었다는 등의 논의 등이다. 여기서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또 다른 차원의 논의가 들어가야 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박유하 등의 입장을 한 마디로 서구 근대주의, 또는 서구 근대주의적 페미니즘의 덫에 걸린 모습이라고 보고자 한다.
4. 이들에게는 주체의 자유, 또는 개인적 자유가 최고의 가치가 되어서 자신들 위에 어떤 다른 권위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러나 참으로 이해할 수 없게도 그녀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의 법은 범할 수 없는 권위로 인정하는 모습이다. 이들에게 민족이란 단지 허구적인 상상의 공동체일 뿐이고, 그래서 오늘 반일하는 한국의 모습을 주로 생명을 다한 민족주의의 한계로 보면서 세차게 비난한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러한 입장에서 어떻게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특별히 '일본'이라는 국가의 문제이거나 또는 일본 '군대'의 문제가 아닌, 당시 세계 강대국들이 보편적으로 빠져있던 '제국주의'의 문제이던가, 또는 남성 '가부장주의'의 문제라고 희석시키고자 한다.
5. 그녀는 놀랍게도 1910년의 한일병합을 '합법적'이었다고 보고, 1965년의 한일조약의 '법적' 효력과 법적 정의를 강조한다. 이 두 조약에 대한 합법성과 적법성을 의심치 않는 것이 그녀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근거인데, 그래서 그녀는 한국인들의 피해에 대한 요구가 "적법"한 것이 아니라거나, 일본은 단지 "도의적" 책임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러한 시각은 '민족'이나 '민족감정', '도의' 등의 의식은 전근대적 미숙으로 돌리면서도 자신은 서구 근대의 '법'이나 제국의 '헌법' 등을 절대적인 가치로 숭앙하는 모습이고, 그것은 서구 근대의 국가주의적 절대주의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그녀는 주체성을 강조하는 서구 근대적 페미니즘으로 '개인'과 '주체'로서의 위안부 피해자의 회복을 말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다시 그 서구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동아시아 식민지 지식인의 한 가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이은선,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이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신학> 2017 여름 제 85호, pp.23)
6. 재일한국인 3세인 정영환 교수는 그러한 <제국의 위안부>의 시각을 "피해자나 지원단체가 양보함으로써 '해결'로 이끌자고"하는, 일본 사회가 바라는 이미지와 잘 합치되는 역사수정주의의 대표적 예라고 일갈한다. 거기에는 "두 개의 역사수정주의"가 들어 있다고 한다. 즉 먼저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서구 열강들이 했던 제국주의의 연장선 상에서 보면서 그것을 불법이지 않은 행위로 보게 하려는 식민지 시대에 대한 면죄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후 일본 사회가 전쟁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잘 수행해 온 것으로 미화하려는 전후 일본 시대를 위한 역사수정주의라고 한다.
7. <제국의 위안부>는 오늘도 과거 일본 국가의 패악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여전히 실재하고, 또한 다시 그 국가주의의 위험성이 고개를 들고있는 때이지만 그 행위를 인류 가부장주의의 지나간 보편적인 실행으로 일반화시키고자한다. 또한 더불어서 서구적 근대주의로 더 이상의 어떤 '초월'이나 '숭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그 '(일본)헌법'을 들어서 그 최고의 헌법이 요구하는 국가의 일을 한 것이니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호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인간 삶에서 몸과 마음, 개인과 공동체, 민족과 국가, 인간과 초월, 俗과 聖 등이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不二的으로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서 서구 근대주주의 희생자가 되어있다. 서구 근대와 그 딸인 페미니즘을 열심히 배워서 인식의 주체로 서고자 했지만, 자신의 과거와 토대와 전래를 철저히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서구 근대의 '(準)식민지'가 된 모습이다. 우리가 서구 페미니즘이 아닌 한국적 페미니즘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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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 이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Historical Revisionism in Northeast Asia and the Issues of Peace

이은선(세종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여성신학

한국여성신학 제85호
2017.06    12 - 36(25 pages)





2021-07-30

[동북아 평화와 성성성의 여성신학 [동연]]

[동북아 평화와 성성성의 여성신학 [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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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명:
동북아 평화와 성성성의 여성신학 [동연]
정가:
18,000원
판매가:
16,200원
적립금:
900원
출간일:
20200713
출판사:
이은선
저자:
동연
쪽수/판형:
344쪽 | 152 * 225 mm
동북아 평화와 聖 ㆍ 性 ㆍ 誠의 여성신학을 펴내면서…





“강해지는 법을 모르는 이상 약자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말은 3.1운동을 불과 한 달 앞둔 시기에 윤치호가 일기에 적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의 말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겉으로 드러나는 힘이 약하다 하더라도, 힘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힘센 자가 억누르려고 할 때, 그 누르는 힘을 이겨내는 항거가 일어나고, 또 그 저항과 분노가 현실을 전혀 다르게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실망을 넘어 희망을 품는 소망이 인간의 궁극적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믿음(信)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믿음의 눈으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저자가 그러한 믿음을 중시하는 까닭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실이 3.1운동이 전개되었던 100년 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적으로 대단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작금의 한반도 현실을 직시할 때 미국의 준식민지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는 멈추지 않고 추진되어야 하는 주제요 과제이다. 이 책 ?동북아 평화와 聖 ㆍ 性 ㆍ 誠의 여성신학?에 수록된 논문 6편과 에세이 5편은 모두 믿음의 눈으로 주시하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저자: 이은선

머리말 / 5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 이슈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I. 일종의 분단체제 아래 있는 동아시아


II. 근대 이후 한 ㆍ 재일 ㆍ 일본인의 아이덴티티 형성 조건들


III.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의 첨예한 대상으로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IV. 정영환의 반격,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와 일본 진보주의 지식인들의 역사수정주의


V. 한국 ㆍ 재일 ㆍ 일본의 여성에게 있어서의 민족(국가)의 문제와 동아시아의 화해


VI.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자이니치 트라우마로부터 진실 건져내기


VII.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을 위해서 자이니치 주체성으로부터 건져낸 세 가지 관건


VIII. 마무리하는 말: ‘기독인’으로서의 우리와 ‘문명’으로서의 동아시아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와 4.27 판문점 선언 - 여성통합학문연구의 시각에서


I. 삶은 이야기이고, 분단 고통의 이야기는 온 반도에 널려 있다


II. 한반도 분단 고통의 구체성과 개별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계 강대국 남성주의자들의 시선과 문재인 대통령


III. 한반도에서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드는 역량이 있음을 천명하는 자주의식


IV. 평화 그 자체를 남북 관계의 목적으로 삼는 일


V. 평화통일의 길은 결국 우리 믿음과 신뢰(信)를 실험하는 또 하나의 실험장이다


VI. 약자와 여성의 인식론적 강점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인류 화합의 사회를 위해서 더욱 허락하라


VII. 마무리하는 말: 동북아 평화와 인류의 큰 화합(大同)의 길을 위해서





유교 문명사회에서의 한국교회와 종교개혁 그리고 동북아 평화 이슈


I. 신 냉전체제 아래서의 위기의 한반도


II. 聖, 초월(神)의 새 이름과 ‘통합성’의 영성 -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의 재해석


III. 性, 참된 인간성(身)의 근거와 ‘타자성’의 영성 - ‘오직 은총으로’(sola gratia)의 참 의미


IV. 誠, 우리 신앙(信)의 참된 열매와 ‘지속성’의 영성 -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의 재구성


V. 마무리하는 말: 한국 사회와 교회를 통한 제2의 종교개혁과 독일교회





3.1운동정신에서의 유교(대종교)와 기독교 - 21세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의미와 시사


I. 시작하는 말


II. 서학(西學, 기독교)과 만나는 유교


III. 동학(東學 ㆍ 天道敎)을 불러일으킨 기독교(개신교)


IV. 민족(기독교)과 세계(유교)를 품고 중흥한 대종교


V. 3.1운동 정신과 오늘의 우리


VI. 마무리하는 말: 3.1정신의 정리로서의 독립선언서와 21세기 동북아 평화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 ㆍ 性 ㆍ 誠의 여성신학


I. 시작하는 말: 박순경 통일신학의 삼위일체적 구조


II. 박순경 통일신학의 하나님, 하나님 나라 이해와 ‘민족’


III. 박순경 통일신학의 그리스도 이해와 민중


IV. 박순경 통일신학의 靈 이해와 여성(세계)


V. 聖 ㆍ 性 ㆍ 誠의 여성신학 관점에서 본 박순경 통일신학과 세계(진실)


VI. 聖 ㆍ 性 ㆍ 誠 여성신학의 다원론적 부활이해와 민족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세계평화


VII. 마무리하는 말: 새로운 의병운동으로서의 여성 통일운동





한말(韓末)의 저항적 유학자 해학 이기(海鶴 李沂)의 신인(神人/眞君) 의식과 동북아 평화


I. 시작하는 말


II. 개신(改新) 유학자 해학의 천주(天主) 논변과 구국(救國)


III. 해학 개혁유교 ‘구원론’으로서의 급진적인 사회혁신 운동과 구국


IV. 민족의 참된 자주와 독립을 위한 민족종교운동: 해학의 신인(神人/眞君)의식과 세계


V. 해학 신인(神人/眞君)사상과 한반도 통일 그리고 동북아 평화


VI. 마무리하는 말: 또 다른 인류 보편문명과 종교의 탄생을 위한 유교 묵시문학가 해학 이기를 기리며





덧붙임글





? 왜 여신협은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가


? 2014년 8.15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회를 다녀와서


? 정의와 시간 그리고 인간적 시간


?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두 힘


?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참된 발선(發善)의 신학이 되기 위해 한국교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





참고문헌

3.1운동 정신의 통합학문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의 미래 1 - 에큐메니안

3.1운동 정신의 통합학문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의 미래 1 - 에큐메니안

3.1운동 정신의 통합학문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의 미래 1오늘 우리 시대의 독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명예교수) | 승인 2019.01.12 19:25
본 연구는 3.1운동백주년을 앞두고서 2017년 결성된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천주교, 불교, 유교, 천도교, 개신교)의 학술 포럼에서 기독교측 발제의 하나로 처음 발표되었다(‘3.1운동 백주년의 성찰과 과제, 2018년 12월 20일,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12호). 에큐메니언의 연재를 위해서 약간의 보완과 수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독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3.1운동비사三․一運動秘史』는 1919년 3월 1일 당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할 때 그 진행 상황을 기록하는 한편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 및 시민과의 연락을 담당했던 천도교인 이병헌(李炳憲, 1896-1976)이 쓴 책이다. 그는 자신의 그러한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3.1운동 40주기(1959년)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당시 선언서 서명자 33인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관계했던 17인 중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운동 전후의 사정과 진행과정을 정확히 알리기 원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에 따르면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을 이룬 후 각종 사회단체는 물론 학술단체까지 모조리 해산시켜서 남은 것은 불교, 기독교, 천도교 등 종교단체만 간신히 잔명을 유지했고, 그래서 그때 “우리민족이 오직 의지할 곳은 종교 신앙밖에 없었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전한다.(1)

1876년 조일조규(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의 개방과 더불어 일본은 점점 더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 군대는 벌써 해산시켰고, 동양척식주식회사(1908년)를 설립하여 국유지를 먹고 민간소유 토지를 침범하였다. 그 이전부터 조선의 토지를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매매하지 못하도록 금하면서 고리대금으로 사들이고, 제일 먼저 국유지를 정비한다고 하면서 “역둔토를 모두 개인소유로 하고”, 지방의 ‘공유재산’을 친일단체인 일진회의 재산으로 편입하는 등 땅을 먼저 장악해 갔다고 한다.(2) 이에 더해서 참으로 인상적인 서술은 “도시마다 유곽제도를 만들어 매춘부를 두어서 젊은 청년을 미혹케” 했다는 것인데, 당시 일본여자들이 많이 건너와서 ‘매음’을 하게 되었고, “이것을 본받아 시골서 순진한 처녀들이 이 유곽으로 몸을 팔기 시작하여 도시마다 공창제도”가 생겨서 사람들이 망국한을 모르게 하고 풍기를 극도로 문란케 했다는 것이다.(3) 나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에서는 법적으로 공창과 유곽제도가 허용되어 있어서 ‘일본군 위안부’ 모집도 그 일환이었다는 변명을 하게 하는 근거를 여기서 본다.(4)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더욱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당시 이완용(李完用, 1858-1926), 송병준(宋秉畯, 1857-1925) 등 나라를 팔아넘긴 어용 지도자들이 어떤 논리를 가지고 그와 같은 불의와 불법, 죄악을 저질렀는지 하는 것이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저격으로 피살되기(1909년 10월 26일) 전에 송병준은 한일합병에 대한 의견을 이토에게 제출하면서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지 않으면 동양평화는 어려울 줄 아오니” 하면서 “하늘이 주는 이때”를 놓치지 말라고 합병을 서둘러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이어서 이완용은 합병의 가능성을 묻는 일본에 대해서 “단결이 못된 국민이라 그리 큰 난관은 없을 줄 아오”라고 했고,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관렴이 없고 단지 각자가 자신보호에 급급하고 ... 불교는 산간에서 절을 지킬 따름이라 신도가 없고, 유도는 차차 글 읽는 사람이 줄고 ... 예수교와 성교 천주교는 불란서 계통과 미영계통이 남한을 차지하고 독일계통이 북한을 차지하였는데 ... 한국 사람으로는 그 지도급에 있는 사람이 그리 큰 인물이 없으며, 천도교는 동학의 후신인데 ... 이 종교 역시 정부의 탄압으로 힘을 못 쓸 것이요 더욱이 무력으로 진압한다면 평온할 것이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完全) 또는 영구(永久)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이라는 문구를 제1조문으로 하는 조약이 맺어진 것이다.(5) 이렇게 나라를 판 사람들은 작위를 받고 ‘은사금’(恩謝金)도 받았지만 그 양의 많고 적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일었고, 그러나 일본은 오히려 그들을 한국 대신들로 있을 때보다 멸시하면서 ‘너는 너의 나라를 팔아먹었으니 백작도 과분하고 돈 백만 원이면 족하다’는 식으로 대우했다고 『3.1운동비사』는 전한다.(6)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언술이다. 지금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 해보려는 노력 대신에 그것을 넘기는 명목으로 매국인사들은 “동양평화”라는 큰 담론을 끌어들였고, 우리 국민들은 “단결”을 잘 하지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각기 자기보호에만 급급하니 괜찮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종교에서의 자립과 자존도 먼 이야기이고, 힘과 “무력” 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하니 염려할 것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서술은 오늘 분단 70년 이상의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어 보인다. 즉 오늘 우리의 정치인들이 전시작전통수권도 가지지 못한 자국 군대를 보면서도 한반도의 전쟁방지와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전히 그 환수를 반대하고, 그래서 성조기와 이스라엘 기까지 들고서 시위하는 한국 개신교 신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변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굴종적이고 비굴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한국 교회와 종교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책임감을 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당시는 그래도 ‘우리가 의지할 곳은 종교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오늘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오히려 우리 삶과 사회의 문젯거리가 되었고,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3.1운동은 ‘종교운동’이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종교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서 그 일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오늘 우리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묻게 된다. 우리에게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지난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3월까지 총 23차에 걸쳐서 촛불시위를 이끌어왔던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그것으로써 “촛불혁명”을 이룩했고, 세계가 놀라는 방식으로 정권을 바꾸고 이후 한국 사회와 역사의 나아감에 대해 다시금 희망과 신뢰를 가지게 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아서 우리 삶과 미래를 위한 신뢰의 그루터기가 되는 것은 종교나 교회가 아니고 우리의 시민이 아닌가? 촛불혁명을 치르고 사람들은 이제 사람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나름의 주인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자주 말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시민 촛불의 새 정권이 들어선지 2년이 채 안 되는 시점에서 다시 느끼는 것은 그 처음 희망과 소망이 많이 빛바래간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한 군데 편안한 곳이 없고, 종교는 오늘의 부패한 길에서 돌아설 줄을 모르고 우리 사회의 각종 갈등과 소외는 깊어만 간다. 2018년 남북 정상의 4.27판문점 선언 이후 급물살을 타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특히 미국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패권주의적 개입으로 한반도 운전자론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모두 자주와 자립, 민주와 평화, 평등 공동체 의식의 퇴행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곧 3.1 독립선언 백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우리 삶의 정황 앞에서 앞서 서술한 대로 한일병합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10여년의 혹독했던 일제 무단정치가 있었지만 그 쇠사슬을 끊고서 폭발한 3.1운동이 어떠한 정신에서 이룩된 것이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새롭게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 일은 오늘 우리 시대의 독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묻는 일이 될 터인데, 특히 이 과제를 당시 큰 역할을 수행했던 제 종교들의 핵심 사고에 주목하면서 수행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서 특별히 한국 개신교가 3.1운동 정신의 형성과 진행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려는 것이다. 오늘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한국 개신교의 현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 신앙의 미래가 그로부터 어떠한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겠는지를 탐색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본 연구는 그러나 단지 좁은 의미의 기독교 신학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특히 3.1운동이라는 한민족의 “성업”(聖業)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이해가 보다 다원적이고 통합학문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면서 3.1운동이 가지고 있는 여러 중층의 다원성에 주목하고자 한다. 3.1운동 정신으로부터 우리가 핵심적으로 배울 것이 있다면 바로 그 다원성의 통합과 화합에서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와 맥락에서 본다면 3.1운동 정신을 살펴보는 일이란 단지 기독교 신앙의 미래를 위한 일만이 아니라 우리 종교 자체의 나아갈 길을 전망해 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한반도 3.1운동 정신 안에 지금까지 이 지구 생명체가 꽃피어왔던 인류의 핵심 종교의식(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 동학, 천도교, 대종교 등)이 두루 녹아있기 때문이다.

3.1운동은 한민족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개항 이후 계속 이어져온 여러 구국운동과 그 속에서 표명된 독립과 자주, 민주와 평화, 평등의 사상이 하나로 집결되어 터져 나온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순한 정치적 시위나 표피적인 사회운동이 아니라 오랜 문명사적 전개 가운데서 종교 사상사적 뿌리를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해한다.

3.1운동 발발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 1920』로 밝혀주는 박은식(朴殷植, 1859-1925)에 따르면, 1919년 우리 민족의 3.1 독립운동은 “세계의 혁명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신기원”이 된 사건이다. 그 운동은 그러나 단지 그날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특히 일본이 러일전쟁의 수행을 위해서 1904년 대한제국의 국토와 물자, 인력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해 맺은 한일의정서 이후 “하루도 그친 적이 없었고”, 3.1독립운동 이후부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나라의 안팎이나 원근의 구별도 없이 전체가 활동하고, 일치하여 약동하며, 끓는 물에도 뛰어들고, 불속을 밟으면서도 만 번의 죽음을 불사”한 경우라고 밝힌다. 그에 따르면 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쏜 사람이 안중근(1879-1910) 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몇 백만 명에 달하는 안중근이 생겨난 것이고, 이완용을 칼로 찌를 이가 이재명(李在明, 1886-1910) 한 사람이었지만 이후로는 몇 천 명의 이재명이 나온 것이어서 세계의 민족들이 한국 민족을 “인식”하게 되었고, “독립의 자격이 있다”고 하면서 서로 이구동성으로 ‘한국’을 거론했다고 한다.(7)

나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촛불혁명의 사상적 모태로 인정하는 이러한 3.1운동이 어떤  종교 사상사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가를 살피는 일에서 크게 세 단계의 동서문명적 만남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17세기 후반까지 동아시아 유교 문명권 속에 있던 조선이 서구 근대문명과 만나면서 몇 차례의 사상사적 개혁과 개벽, 창발이 이루어졌고, 나는 3.1운동은 그러한 흐름과 전개 속에서 가능해진 것이라고 여긴다. 그 개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8)

미주

(미주 1) 이병헌, 『三․一運動秘史』, 시사사보사출판국, 1959, 42.
(미주 2) 같은 책, 23.
(미주 3) 같은 책, 35.
(미주 4) 이은선,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 이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신학」 2017 여름 제85호, 한국여신학자협의회, 17 이하.
(미주 5) 이병헌, 같은 책, 25-31.
(미주 6) 같은 책, 33.
(미주 7) 박은식, 『韓國獨立運動之血史』, in 동아일보사, 『日政하의 禁書33卷』, 신동아 1977년1월호별책부록, 150.
(미주 8) 이 단원은 지난 11월 한국종교교육학회에서 발표한 본인의 논문 “3.1운동정신에서의 유교(대종교)와 기독교-21세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의미와 시사”를 기반으로 정리한 것이다. 2018년도 한국종교교육학회/생명문화연구소 주최 국제추계학술대회 <동아시아의 평화와 종교> 2018.11.23, 서강대학교 김대건관101호, 107-133.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명예교수)  leeus@sejong.ac.kr

US Needs to Step up and Crush China in Global Influence Game

US Needs to Step up and Crush China in Global Influence Game
The US needs to use its vast cultural resources to crush China in the global influence game
Brett Bruen ,
Opinion Columnist
Apr 10, 2021, 9:36 PM



President Joe Biden speaks at the White House on March 6, 2021. Samuel Corum/Getty Images

  • As we did with the Soviet Union, the US needs to pioneer the global conversation against China.
  • China's attempts to gain international influence have largely failed.
  • The US needs to establish cultural centers across the globe to inspire American values and ideals.
  • This is an opinion column. The thoughts expressed are those of the author.
  • 10 Things in Politics: Get the latest political & economic news.

Why is the US doing such a poor job of addressing the China challenge?

Right now, the American strategy seems to amount to tariffs, sanctions, demonstrations of military force, and an unending stream of strongly-worded statements. In short, the US is still playing on China's terms and turf. That approach will only go so far and too often allows Chinese leaders to portray the West as the aggressor.

But America already has many of the tools to win a battle for international influence. Yes, China has made major advances in economic development and defense. Yet, there is one notable area where Beijing still struggles mightily: public diplomacy.
The US would be wise to focus on this weakness.

Just like when the US confronted the Soviet Union, it is critical to change the context of the conversation. Louis Armstrong and the jazz ambassadors were part of a massive cultural and information assault against the Soviet Union that helped amplify American influence and help bring people and their leaders to the West's side. It's time the government dusts off that old playbook to restore America's tarnished international image and turn the tide of Beijing's global ascendency.

China is still losing the messaging war

As it stands, the Chinese government's attempts to win the global influence battle are hamfisted at best and downright bizarre at worst.

Beijing's efforts at engaging on social media are only slightly better than your grandparents. The often shamelessly self-promotional tweets include polls asking readers to vote for what "impressed them the most" in the Chinese government's response to COVID-19. Their diplomats and embassies have recently taken to trolling, which is pretty weird and often poorly worded.

Even on the news platforms designed for consumption by foreign audiences, Beijing often misses the mark. Much of the international media they fund — from CGTV to the China Times — sound like a memo straight from the Politburo. Even the Iranians do a better job of adapting the message to their audience abroad.

The Confucius Centers they established on university campuses around the world have had greater success. Institutions of higher education, including quite prestigious ones, often welcomed them with open arms. But, subtlety was again not their speciality and drew scrutiny and scorn for their attempts to keep critics like the Dali Lama from speaking at the schools and engaging in espionage. The Trump Administration, in one of its smarter moves, designated the Centers as foreign influence entities, severely limiting their operations and appeal.


There is little evidence that their propaganda or even cultural programs are having much impact to expand Beijing's influence internationally. But China's expanding economy and the weight it affords the government's words partially obscures the shortcomings of their public diplomacy programs.

A cultural counterweight

This is where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should really direct their focus, as well as funding. America needs to establish more cultural, library, and tech centers overseas. Unlike their Chinese counterparts, these institutions should serve as a hub for the free exploration and exchange of ideas. They can bring American innovation and inspiration directly into critical communities around the globe.

I found in my diplomatic career that such spaces effectively bring America's values and ideals to life, while helping to draw a stark contrast with adversaries. Indeed, they provided those of us in the diplomatic corps with a prominent platform for programs and in the past were central to efforts to combat Soviet propaganda.

 Unfortunately, most were shuttered after the Cold War.

Music moves people. It embodies the sense of hope and indeed freedom that Beijing so appears to fear. Bring back the jazz ambassadors, add in an array of other diverse musicians, and send them out to the places they don't normally tour. Apart from the concerts, the artists can collaborate with local artists, as well as helping to open up connections and conversations that are more problematic for policy people.

After COVID-19, it's going to be even more important to get personal. The US needs to work hard to overcome the international isolation imposed by the pandemic and the polarizing policies of the Trump Administration. Expanding the number of short-term exchanges to the United States can help ensure America does not lose direct contact with a generation of emerging leaders. These exchanges enable the US to fully deploy its most powerful asset — the American people — in rebuilding relations with the world, person by person.

China may have a lot going for its global expansion goals. But, the country faces a significant challenge. Its influence still largely perched precariously on the pillars of fear and the search for short-term profits. Long-term, it is largely failing to generate much goodwill or genuine support. That represents a worrisome weakness for Beijing and a major opportunity for Washington, if we can literally and figuratively get the ol' band back together again.

Read the original article on Opinion Columnist. Copyright 2021.

알라딘: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알라딘: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이은선 (지은이)동연출판사2020-07-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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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북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는 멈추지 않고 추진되어야 하는 주제요 과제이다. 이 책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에 수록된 논문 6편과 에세이 5편은 모두 믿음의 눈으로 주시하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목차


머리말 / 5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 이슈 ―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I. 일종의 분단체제 아래 있는 동아시아
II. 근대 이후 한 ․ 재일 ․ 일본인의 아이덴티티 형성 조건들
III.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의 첨예한 대상으로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IV. 정영환의 반격,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와 일본 진보주의 지식인들의 역사수정주의
V. 한국 ․ 재일 ․ 일본의 여성에게 있어서의 민족(국가)의 문제와 동아시아의 화해
VI.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자이니치 트라우마로부터 진실 건져내기
VII. 동아시아의 평화 구축을 위해서 자이니치 주체성으로부터 건져낸 세 가지 관건
VIII. 마무리하는 말: ‘기독인’으로서의 우리와 ‘문명’으로서의 동아시아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와 4.27 판문점 선언 ― 여성통합학문연구의 시각에서
I. 삶은 이야기이고, 분단 고통의 이야기는 온 반도에 널려 있다
II. 한반도 분단 고통의 구체성과 개별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계 강대국 남성주의자들의 시선과 문재인 대통령
III. 한반도에서 우리 스스로 평화를 만드는 역량이 있음을 천명하는 자주의식
IV. 평화 그 자체를 남북 관계의 목적으로 삼는 일
V. 평화통일의 길은 결국 우리 믿음과 신뢰(信)를 실험하는 또 하나의 실험장이다
VI. 약자와 여성의 인식론적 강점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인류 화합의 사회를 위해서 더욱 허락하라
VII. 마무리하는 말: 동북아 평화와 인류의 큰 화합(大同)의 길을 위해서

유교 문명사회에서의 한국교회와 종교개혁 그리고 동북아 평화 이슈

I. 신 냉전체제 아래서의 위기의 한반도
II. 聖, 초월(神)의 새 이름과 ‘통합성’의 영성 ―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의 재해석
III. 性, 참된 인간성(身)의 근거와 ‘타자성’의 영성 ― ‘오직 은총으로’(sola gratia)의 참 의미
IV. 誠, 우리 신앙(信)의 참된 열매와 ‘지속성’의 영성 ―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의 재구성
V. 마무리하는 말: 한국 사회와 교회를 통한 제2의 종교개혁과 독일교회

3.1운동정신에서의 유교(대종교)와 기독교 ― 21세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의미와 시사

I. 시작하는 말
II. 서학(西學, 기독교)과 만나는 유교
III. 동학(東學 ‧ 天道敎)을 불러일으킨 기독교(개신교)
IV. 민족(기독교)과 세계(유교)를 품고 중흥한 대종교
V. 3.1운동 정신과 오늘의 우리
VI. 마무리하는 말: 3.1정신의 정리로서의 독립선언서와 21세기 동북아 평화

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 ․ 性 ․ 誠의 여성신학

I. 시작하는 말: 박순경 통일신학의 삼위일체적 구조
II. 박순경 통일신학의 하나님, 하나님 나라 이해와 ‘민족’
III. 박순경 통일신학의 그리스도 이해와 민중
IV. 박순경 통일신학의 靈 이해와 여성(세계)
V. 聖 ․ 性 ․ 誠의 여성신학 관점에서 본 박순경 통일신학과 세계(진실)
VI. 聖 ․ 性 ․ 誠 여성신학의 다원론적 부활이해와 민족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세계평화
VII. 마무리하는 말: 새로운 의병운동으로서의 여성 통일운동

한말(韓末)의 저항적 유학자 해학 이기(海鶴 李沂)의 신인(神人/眞君) 의식과 동북아 평화

I. 시작하는 말
II. 개신(改新) 유학자 해학의 천주(天主) 논변과 구국(救國)
III. 해학 개혁유교 ‘구원론’으로서의 급진적인 사회혁신 운동과 구국
IV. 민족의 참된 자주와 독립을 위한 민족종교운동: 해학의 신인(神人/眞君)의식과 세계
V. 해학 신인(神人/眞君)사상과 한반도 통일 그리고 동북아 평화
VI. 마무리하는 말: 또 다른 인류 보편문명과 종교의 탄생을 위한 유교 묵시문학가 해학 이기를 기리며

덧붙임글

▮ 왜 여신협은 한국재일일본 여성신학포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가
▮ 2014년 8.15 평화통일 남북공동기도회를 다녀와서
▮ 정의와 시간 그리고 인간적 시간
▮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두 힘
▮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참된 발선(發善)의 신학이 되기 위해 한국교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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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한중일 삼국의 역사문제와 과거사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어떤 ‘팩트’(fact)의 문제로만 풀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역사를 사실의 문제로만 환원해버리고, 거기에 현재적 당사자들의 구체적 삶과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전쟁과 갈등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 뿐이다. 자이니치 도상태가 제시한 두 번째 원점, ‘평화를 염원할 것’이 나는 그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경우든 다시 이웃을 침략하는 침략전쟁이나 “바깥의 ‘해방자’”를 끌어들여서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동아시아의 우리들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지시라고 여긴다.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 이슈> 중에서 접기

대종교는 이렇게 삼신일체적인 신관뿐 아니라 인간관과 그 구원관(수양론)에서도 삼일론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전래의 유가나 불가, 도가 어느 하나와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고, 그것을 고유한 시각에서 회통한(“會三經”)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종교의 이러한 삼신일체적 초월 이해와 기독교 삼위일체 사이의 영향사에 대한 논란이 많이 있지만, 나는 대종교의 삼신일체적 초월 이해는 서구 유대기독교적 전통에만 가능하다고 강조되는 ‘인격적’ 신에 대한 이해가 한국 대종교에서도 독자적으로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의미로 해석하고자 한다. 즉 앞에서 함석헌이 인격 개념을 가지고 기독교의 고유성과 그와 연결된 실천적 역동성을 설명한 그 특성이 나는 한국의 대종교에도 나름으로 체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전통 유가나 동학에서보다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인상적이게도 대종교의 『신사기神事紀』에는 태초의 인간사에서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이라는 두 남녀가 천하(송화강의 동과 서에 살다가 결합하여 ‘오색 민족’(황, 흑, 백, 람, 적)을 퍼트린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그것을 지적하고 싶다.

<3.1운동 정신에서의 유교(대종교)와 기독교>에서 접기

박순경의 통일신학은 참으로 통전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1946년 감리교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느꼈다고 하는 민족, 사회주의 민족운동, 기독교의 관계를 깊이 천착하고자 했고, 그래서 유럽에서 돌아와서 민족사 연구를 심화시켰고,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연구를 밀고 나갔으며, 기독교 구원사의 의미를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경험과 ‘계약’에 집중하면서 한민족의 역사와 운명, 미래의 나아갈 길에 적용하며 매우 통합학문적으로 진척시켰다. 그녀 공부의 양과 폭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어서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 노고와 수고에 감사와 찬탄이 저절로 나왔다. 이 모든 추구와 노력은 20세기 민족 식민화와 분단의 현실에 직면해서 “한국신학에로의 전환기회”를 거쳐서 ‘민족신학’, ‘통일신학’을 수립하고자 하는 행보였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그녀는 ‘여성신학’이라는 이름 아래서 새롭게 이 모든 민족과 민중, 사회주의와 통일의 물음들을 통전적으로 연결시켜서 박순경의 ‘한국적 여성신학’의 틀을 보여주었다. 지난 2014년 이제 중년여성들이 된 제자들로부터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춤과 노래로 맘껏 축하를 받은 그녀의 저술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 제1권 구약편』은 다시 한 번 그녀 신학이 무엇을 추구하고, 그 추구의 길에서 어떻게 항상 다시 ‘원초’(原初)를 중시하면서 근본과 기초를 추구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의 저서인 이 책에서 박순경 통일신학은 특히 구약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관련해서 한민족(동이족)의 원류 이해를 더욱 긴밀히 연결하면서 그녀의 민족신학과 통일신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전진하고 전개되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 · 性 · 誠의 여성신학>에서 접기

왜 오늘 한민족은 70여 년 전 인류 전쟁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민간인 희생을 치르며 전쟁을 겪었는데도, 여전히 그와 연결된 분쟁과 싸움을 그치지 못하고 있고, 거기서 원수와 적이 된 형제와 자매를 해치기 위해서 계속 무기를 사고 외국 군대를 주둔시키며, 그 외국 군대의 요구에 휘둘리면서 주권국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왜 독립국이고 주권국이라고 하면서도 오랜 분단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일에서 스스로의 결단과 판단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그처럼 적으며, 그 사이 내부 갈등은 점점 깊어져서 자신들이 함께 세운 대통령을 그렇게 모독하고 무시하는 일이 횡횡하는 것일까? … 본 논문은 이상과 같은 상황을 목도하면서 구한말 저항적 유학자 해학 이기(海鶴 李沂, 1848-1909) 선생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조선말 봉건체제가 크게 흔들리던 때 … 특히 농촌 현실의 비참과 모순에서 깊은 각인을 받고서 어떻게든 그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고 사대주의와 부패에 젖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구학(舊學)의 유학을 혁신하고자 적극적으로 신학(新學)을 찾아 나섰다. 그 가운데서 10년간 영호남 각처를 주유하며 대구의 천주교 선교사 로베르(A.P. Robert, 金保祿, 1863-1922)를 찾아 천주교 서적을 빌려 읽으면서 충격을 받아 「천주육변天主六辯」을 저술하기도 하고, 이후 1894년 갑오농민전쟁도 경험하고, 러일전쟁, 을사늑약 등을 겪으면서 정부의 부패한 토지정책에 대안을 제시하는 경세 개혁가로서, 또는 무능한 정부의 외교에 탄핵소를 쓰면서 직접 몸으로 도미하고 도일하여 외세의 탐욕을 저지하려고 했다. 그것도 실패하자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한 비밀결사조직을 결성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노력과 시도가 물거품이 되자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개혁 이상을 1909년 생애 마지막 해에 나인영(羅寅永, 홍암 나철, 1863-1916) 등과 더불어 민족시조 단군 정신을 다시 ‘중광’하는 단군교(대종교)를 창립하는 민족종교운동으로 표현하고, 이때 그의 고성 이씨 가계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오던 한민족 고기(桓檀古記)의 가르침을 밝힌 『진교태백경眞敎太白經』을 저술한다. 본 논문은 이상의 생애 이력을 가진 해학 사상 중에서 특히 구습에 빠진 당시의 유교 구학(舊學)을 혁신하기 위해서 어떻게 천주교 등의 신학(新學)과 대화하였고, 그 과정에서 그가 결론적으로 내세운 민족종교 ‘대종교’(大倧敎) 내지는 “진교”(眞敎)의 어떤 뜻이 참된 구국의 의미로 여겨졌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한말의 저항적 유학자 해학 이기의 신인 의식과 동북아 평화>에서 접기

이처럼 여전히 동아시아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옥죄고 있는 서구 근대 제국주의는 그 사상적 뿌리로서 유대-기독교 가부장주의적 신론을 그 극점에 가지고 있다. 우리 세 주체가 공통으로 기반으로 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가부장성과 전통적 배타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대안과 보완을 우리가 동아시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다른 이웃 종교 전통들에서 찾을 수 있는지, 한국과 일본에서 절대적 실체론으로 굳어져 있는 쇼비니즘적 민족주의와 천황제 시스템은 어떻게 해체해나갈 수 있는지 등이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일관계뿐 아니라 이제는 전세계로 퍼져 나가서 전쟁과 군사 대신에 인류 삶의 새로운 차원을 열기 위한 긴요한 ‘방법론’이 되어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우리가 다시 잡고서 신앙인의 시각에서 새롭게 살펴보는 것이 아주 긴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 삶에서의 ‘개(個)와 공(公)’의 관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맺을 수 있는가, 우리 모두가 철저히 노예화되어 있는 경제제일주의, 그와 더불어 생존을 찾아 떠도는 세계 무국적자의 문제, 우리 곁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정의의 문제 등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더불어 핵에너지 문제와 생태위기는 우리의 전통적인 국적과 민족의 문제를 무색하게 하면서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을 사실적으로 촉구한다.

<왜 여신협은 한국 · 재일 · 일본 여성신학포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가>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은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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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학교를 명예퇴직하고 지금은 현장(顯藏)아카데미 '한국信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21세기 인류 문명의 전환을 위해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지속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스스로는 물론이려니와 나라와 지역이 그리고 온 세계가 참된 자유와 자주, 정의와 덕(德)의 현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것을 특히 종교(聖)와 정치(性), 교육(誠)의 통합학문적 시각에서 수행하고, 이런 모든 일을 믿음(信), 인간성, 언어, 상상, 몸화의 일이라고 여기면서 날마다 살아간다. 서울과 횡성을 오가며 매일 자신과 주변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지기를 희망한다. 지은 책으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 여성신학』(1997),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2004), 『잃어버린 초월을 찾아서』(2009), 『한국 生物여성영성의 신학』(2011), 『생물권 정치학 시대에서의 정치와 교육 ― 한나 아렌트와 유교와의 대화 속에서』(2013), 『다른 유교, 다른 기독교』(2016), 『21세기 보편영성으로서의 誠과 孝』(2016, 공저), 『종교개혁 500년, ‘以後’ 신학』(2017, 공저), 『세월호와 한국여성신학』(2018), 『환상과 저항의 신학』(2018, 공저), 『3.1운동 백주년과 한국종교개혁』(2019, 공저), Dao Companion to Korean Confucian philosopy(2019, 공저)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동북아 평화와 聖.性.誠의 여성신학>,<사유하는 집사람의 논어읽기>,<3.1운동 백주년과 한국 종교개혁> … 총 2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동북아 평화와 聖 ‧ 性 ‧ 誠의 여성신학을 펴내면서…

“강해지는 법을 모르는 이상 약자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말은 3.1운동을 불과 한 달 앞둔 시기에 윤치호가 일기에 적었던 것이라고 한다. 그의 말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겉으로 드러나는 힘이 약하다 하더라도, 힘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힘센 자가 억누르려고 할 때, 그 누르는 힘을 이겨내는 항거가 일어나고, 또 그 저항과 분노가 현실을 전혀 다르게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실망을 넘어 희망을 품는 소망이 인간의 궁극적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믿음(信)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믿음의 눈으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저자가 그러한 믿음을 중시하는 까닭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실이 3.1운동이 전개되었던 100년 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적으로 대단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작금의 한반도 현실을 직시할 때 미국의 준식민지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는 멈추지 않고 추진되어야 하는 주제요 과제이다. 이 책 󰡔동북아 평화와 聖 ‧ 性 ‧ 誠의 여성신학󰡕에 수록된 논문 6편과 에세이 5편은 모두 믿음의 눈으로 주시하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접기

이은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제국의 위안부'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이슈-'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2) Facebook

<한국 信연구소 오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제국의 위안부'
1. 광복절도 다가오고, 얼마전 영화 <주전장>과 <김복동>도 보고하여서 다시 한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한 글은 이미 여러번 썼어야 하는데 여러가지 심리적, 개인적, 학술적 요인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난 2017년 2월 강정마을 <한국재일일본여성신학포럼>에서 발표했던 글,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이슈-'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에서 나름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러 차원의 중첩적인 성찰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한 것이 있어서 오늘 다시 그것을 가져와 본다.

2. 사실 거기서 초반에 다룬 <제국의 위안부>의 박유하 교수와는 세종대에서 연구실을 나란히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인문대의 몇 안되는 또래 여교수들과 한때 모임도 같이 하면서 친밀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그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이 점점 더 공적으로 드러나면서 개인적인 논쟁도 있었고, 관계가 소원해지다가 급기야는 아주 멀어졌다. 그런데 그녀와 내가 항상 다른 길을 갔던 것만은 아니다. 요사이 한일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독도문제 등에서 더욱 큰 역할을 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세종대에서 소속과 임용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일문과의 그녀와 내가 함께 그 일의 해결를 위해서 나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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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사이 한국의 '근대' 이해로 많은 논의들이 오가고 있다.한국에 근대가 있느냐 없느냐, 동아시아에서의 근대를 어느 시기부터로 보느냐, 서양식 근대가 아닌 '한국적' 근대, '토착적'근대가 나름대로 있었다는 등의 논의 등이다. 여기서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또 다른 차원의 논의가 들어가야 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박유하 등의 입장을 한 마디로 서구 근대주의, 또는 서구 근대주의적 페미니즘의 덫에 걸린 [?] 모습이라고 보고자 한다.
 
4. 이들에게는 주체의 자유, 또는 개인적 자유가 최고의 가치가 되어서 자신들 위에 어떤 다른 권위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러나 참으로 이해할 수 없게도 그녀는 근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의 법은 범할 수 없는 권위로 인정하는 [?]  모습이다. 이들에게 민족이란 단지 허구적인 상상의 공동체일 뿐이고, 그래서 오늘 반일하는 한국의 모습을 주로 생명을 다한 민족주의의 한계로 보면서 세차게 비난한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러한 입장에서 
어떻게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 특별히 '일본'이라는 국가의 문제이거나 또는 일본 '군대'의 문제가 아닌, 
  • 당시 세계 강대국들이 보편적으로 빠져있던 '제국주의'의 문제 [?] 이던가, 
  • 또는 남성 '가부장주의'의 문제라고 희석시키고자 한다.
 
5. 그녀는 놀랍게도 1910년의 한일병합을 '합법적'이었다고 보고, 1965년의 한일조약의 '법적' 효력과 법적 정의를 강조한다. 이 두 조약에 대한 합법성과 적법성을 의심치 않는 [?]  것이 그녀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근거인데, 그래서 그녀는 한국인들의 피해에 대한 요구가 "적법"한 것이 아니라거나, 일본은 단지 "도의적" 책임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러한 시각은 
  • '민족'이나 '민족감정', '도의' 등의 의식은 전근대적 미숙으로 돌리면서도 
  • 자신은 서구 근대의 '법'이나 제국의 '헌법' 등을 절대적인 가치로 숭앙하는 [?] 모습이고, 
  • 그것은 서구 근대의 국가주의적 절대주의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그녀는 주체성을 강조하는 서구 근대적 페미니즘으로 '개인'과 '주체'로서의 위안부 피해자의 회복을 말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다시 서구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동아시아 식민지 지식인의 한 가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은선,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이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신학> 2017 여름 제 85호, pp.23)

6. 재일한국인 3세인 정영환 교수는 그러한 <제국의 위안부>의 시각을 "피해자나 지원단체가 양보함으로써 '해결'로 이끌자고"하는, 일본 사회가 바라는 이미지와 잘 합치되는 역사수정주의의 대표적 예라고 일갈한다. 거기에는 "두 개의 역사수정주의"가 들어 있다고 한다. 즉 먼저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서구 열강들이 했던 제국주의의 연장선 상에서 보면서 그것을 불법이지 않은 행위로 보게 하려는 식민지 시대에 대한 면죄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후 일본 사회가 전쟁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잘 수행해 온 것으로 미화하려는 전후 일본 시대를 위한 역사수정주의라고 한다.

7. <제국의 위안부>는 오늘도 과거 일본 국가의 패악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여전히 실재하고, 또한 다시 그 국가주의의 위험성이 고개를 들고있는 때이지만 그 행위를 인류 가부장주의의 지나간 보편적인 실행으로 일반화시키고자한다. 또한 더불어서 서구적 근대주의로 더 이상의 어떤 '초월'이나 '숭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그
'(일본)헌법'을 들어서 그 최고의 헌법이 요구하는 국가의 일을 한 것이니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호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인간 삶에서 몸과 마음, 개인과 공동체, 민족과 국가, 인간과 초월, 俗과 聖 등이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不二的으로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서 서구 근대주주의 희생자가 되어있다. 서구 근대와 그 딸인 페미니즘을 열심히 배워서 인식의 주체로 서고자 했지만, 자신의 과거와 토대와 전래를 철저히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서구 근대의 '(準)식민지'가 된 모습이다. 우리가 서구 페미니즘이 아닌 한국적 페미니즘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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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신학 2017 여름 2- 85호
동아시아 역사수정주의와 평화 이슈 이은선











102Chung Hyun Kyung and 101 others
14 comments

25 shares

Keun-joo Christine Pae

쓰신 논문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데 온라인 버전으로 가능한가요?

이은선

배근주 예 선생님 반갑습니다. <한국여성신학>이 도서관 전자저널 체계 안에 들어가 있어서 들어가셔서 호수를 찾아보시면 됩니다.


Hyunsil Han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여...
이해하기가 쉬워요.
고맙습니다.


이은선

예 선생님 반갑습니다. 나름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희경

그런 거였어요?
저는 그냥 열불만 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글로 설명해주시니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고맙습니다!!


이은선

지희경 ^^

노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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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고맙습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잘 알지 못한 데다 글을 쓰려니 책을 다시 꼼꼼히 읽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너무 괴로워서 미루고 있었네요. 이 글로 대신하겠씁니다.


이은선

노혜경 아 예! 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석준복

이교수님 감사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제국의 위안부 문제를 이해 하는데 큰도움이 되었습니다

신창호

어린 시절 제 집 아래채에 사셨던 가까운 친척 분이 <위안부>였습니다. 이 말만 들어도 마음이 아주 무겁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