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ra Kim
9 hrs ·

시(詩)의 거처는 어디인가?
『살아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는 경상남도 함안에 사는 여든다섯 김상순 씨의 말을 아들 홍정욱 씨가 추리고 엮어 펴낸 책이다.
1937년생인 김상순 씨는 무학이다.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아버지는 그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스무살에 결혼해 다섯 아이를 낳고 키웠다. 평생을 산과 논과 들에 기대어 살았다. 문자를 배운 적이 없는 그이는 산에 가면 산의 말을 들었고, 논에 가면 논의 말을 들었다. 밭고랑에 심은 마늘쫑의 말을 들었고, 흙의 말을 들었고, 닭장 안의 닭과 밭고랑에 심은 콩을 쪼아 먹는 까마귀의 말을 들었다. 자연만물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대로 김상순 씨의 언어가 됐다. 상순 씨는 평생을 몸으로 체득한 언어를 겨울밤의 흰눈처럼 쏟아냈고, 어머니의 남다른 언어를 일찌감치 알고 있던 아들이 소중하게 받아썼다.
『살아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는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만든 한 권의 아름다운 시집이다.
그중 <무말랭이>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편의 시(詩)이면서, 시의 거처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시론이다.
똑 눈 온 거 겉제?
달밤에 살짝 나와서 보면
누가 디라서 뿌려 놓은 눈이라.
달밤에는 냄새도 희미해져서
누가 봐도 소복소복 눈이라.
허, 엄마가 시를 읊소.
시가 뭐꼬?
엄마가 방금 읊은, 그런 게 시요.
내사 그런 건 모르고,
소복소복 눈이 쌓이모
너그가 강생이매로 구불다가
낮이 빨개가 들어오면
눈에 묻어 온 산 냄새가
온 방에 퍼지더라.
엄마 진짜 잘 한다.
그러면 이 시 좀 갖고 가라이.
김치매로 치대서 삭혀서 묵든지
더 말리서 물 낋일 때 넣어 무라.
구술 김상순, 홍정욱 옮겨씀 『살아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 중 <무말랭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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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밤, 시골 촌부는 촌집 마당에서 몸을 말리고 있는 무말랭이를 보며 눈이 내린 것 같다고 말한다. 소쿠리에 담겨 있는 무말랭이가 어둠 속에서 하얗게 돋아났으리라. 김상순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간다.
‘달밤에는 냄새도 희미해져서/누가 봐도 소복소복 눈이라’
무를 말릴 때 나는 아린 냄새는 무말랭이를 눈으로 환치하는데 방해가 된다. 그러나 마침 때는 달밤이다. 김상순 씨는 달밤을 슬쩍 끌어온다. 달밤이라는 마법적 시공간은 무말랭이를 소복소복 눈으로 바꾼다. 문제는 환치의 방식이다. 냄새를 완전히 없애지 않고 그저 희미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놀라운 시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김상순은 어떠한 과장과 수식도 없이 사물의 본질을 뚫고 들어간 후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달밤에는 냄새도 희미해진다’는 어떠한 겉치레도 없는 한 줄의 문장만으로 무말랭이가 말라가고 있는 겨울밤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상순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녀의 감각은 더 먼 곳까지 뻗어간다.
소복소복 눈이 쌓이모/너그가 강생이매로 구불다가/낮이 빨개가 들어오면/눈에 묻어 온 산 냄새가/온 방에 퍼지더라.
무말랭이-눈-산으로 확장되는 예민한 감각과 상상력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김상순의 탁월함은 예민한 감각에만 머물지 않는다. 섬세한 감각을 키우는 근원 혹은 시원을 김상순의 언어는 드러낸다. <무말랭이>는 김상순이 서있는 탄탄한 근원을 또한 드러낸다.
시골의 밤은 어둡고 깊다. 달빛이 요란하지 않게 흩뿌려지는 겨울 밤, 촌집 마당에는 하얗게 몸을 말리고 있는 무말랭이가 있다. 달빛은 신비롭다. 무말랭이의 냄새를 희미하게 지운다. 어둠 속에서 몸을 뒤척이는 무말랭이는 소복하게 내린 눈같다. 그이의 눈(目)에 마당에 소복하게 채운 눈은 내리는 눈이 아니라 누군가 ‘뿌려놓은’ 눈이다. 자연현상으로 내리는 눈과 ‘뿌려놓은’ 눈은 다르다. 내리는 눈일 때는 되풀이되는 자연현상일 뿐이지만 ‘뿌려놓은’ 눈은 누군가의 행위이며 누군가의 수고와 노동으로 가능하다. 그 누군가를 인식하는 찰나에 김상순 씨의 언어가 탄생한다. 이 누군가는 누구일까.
힘을 쓴다고 다 되는 기 아니야. 일마다 힘 쓰는 요령이 다 다른 기다. (중략) 요래조래 흙이 힘쓰는 걸 봐 가며 거기에 맞게 힘을 써야제. / 흙이 힘을 써요? / 그라모? 지 살이 째지는데 가만 있는가? / 허 참.
<힘> 부분.
니는 일해서 묵고 사는 사람이 아니니까 땅이 그걸 알고 부러 까탈을 부리는 기다. /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소? / 배우긴 어디서 배워? 날마다 뭘 해봐라. 일머리가 보이고 길이 보이지. 손이 일을 하면 머리는 또 지대로 일을 찾는다 아이가. 그기 일머리다.
<일머리> 부분.
김상순 씨에게 땅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살아있으므로 아픔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일머리는 단순한 요령이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과 가장 평화롭게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흙뿐 아니다. 그이에게는 세상만물이 모두 그러하다. 산, 바다, 들, 나무, 꽃, 새, 벌레같은 생명은 물론이고 하찮은 물건 하나에도 그에 맞는 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참! 사람이 춥지, 호스가 춥소? / 와 안 추버. 아침엔 빳빳한데/ 그기 얼어서 글치, 추워서 글소? / 추웠으니 얼었제. / 허 참, 호스가 왜 추워요? / 와 안 추버. 말을 못 해서 글체.
<호스> 부분.
마당을 굴러다니는 호스 하나에도 애틋한 눈길을 보내는 김상순 씨가 땅을 바라보는 눈길이 어떠할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자식 욕 듣게 한다는 이유로 힘든 농삿일을 그만두라는 아들의 청에 보내는 그이의 대답이다.
니는 밭에 지심(풀)만 항거 있으모 맘이 편컸나? / (중략) / 나도 밭이 말갛게 보이는데 우째 안보노.
<맘 대로 안돼> 부분.
이런 김상순 씨에게 눈은 그저 내리는 눈이 아니라, 누군가가 뿌려주는 눈이다. 그 수고는 미쁘고 감사한 일이다. 수고의 주체는 ‘모든 누군가’이다. 밭고랑을 예쁘게 다듬는 그이 자신이면서, 그이가 깃들어 살고 있는 시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이다. 세상 모든 존재는 ‘꿩 새끼 제 길 간다고, 제 길이 다 있’다. 왜곡된 자본주의와 그로 인한 극단적인 상품화는 제 길을 왜곡하는 것이다. 김상순 씨가 ‘먹방’과 ‘스포츠중계’에서 보여주는 날카로운 대중문화 비판은 이같은 토대 위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책 제목이기도 한『살아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는 말의 뿌리는 여기에 닿아 있다.
『살아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는 책 제목은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다. 상순 씨가 들려준 말은 괜찮다거나 괜찮지 않다거나 하는 가치 판단 너머에 있다.
상순 씨의 말은 상순 씨가 온 생을 다해 귀를 쫑긋 세워 들은 세상의 말이었다. 무학의 김상순 씨는 문자가 아닌 온 몸과 온 생으로 세상의 말을 들었다. 그이의 말은 세상의 말이며, 우뚝한 산의 말이며 깊은 골짜기의 노래이며, 날카로운 호미 끝에 생살이 찢기는 아픔을 견디며 감자의 싹을 틔운 후 부르는 대지의 노래였다. 아들의 힘을 빌려 세상에 나온 그이의 언어는 삶의 지혜라는 두루뭉수리하고 위선적인 개념으로 정리할 수 없는 이유다. 김상순 씨의 말은 시(詩)의 거처가 어디이며, 시는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질박하게 보여준다.
이 시 좀 갖고 가라이.
김치매로 치대서 삭혀서 묵든지
더 말리서 물 낋일 때 넣어 무라.
시(詩)는 움직이는 것이고 나아가는 것이며 먹는 것이다!
김상순 씨의 시론이다. 오늘 밤에도 한 편의 시(詩)가 쓰여지는 이유는 이토록 명확하다. 여든다섯 촌부가 온 생으로 써온 시(詩)로 빛나는 한 권의 책이다.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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