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강제병합100년> ⑫북한은 어떻게 보나
송고시간2010-08-17 07:05
(서울=연합뉴스) 우리 민족에게 치욕의 상처로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북한의 역사인식은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오히려 일본과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에서 종종 우리보다 훨씬 강한 반일 정서가 느껴진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사진은 지난 2008년 평양시 중구역 승리거리에서 평양시민들이 '새로 발굴된 일제의 만행 사진자료'란 제목의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2010.8.17 << 연합뉴스 DB >>
2010.8.17 << 연합뉴스 DB >>
불법성 비난하면서 속내는 `배상금' 관심
간 나오토 담화에 실망감 표시하며 북일관계 개선 촉구
간 나오토 담화에 실망감 표시하며 북일관계 개선 촉구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우리 민족에게 치욕의 상처로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 북한의 역사인식은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오히려 일본과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에서 종종 우리보다 훨씬 강한 반일 정서가 느껴진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일례로 북한 매체들은 해마다 8월 하순이면 한일병합을 비판하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며 특히 한일병합 조약의 불법성과 강제성을 부각시키는데 열을 올리곤 한다.
북한의 간판 매체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한일합병 조약 95주년이던 2005년 8월 한 사설에서 "일제에 의해 조작된 한일합병 조약은 조약 체결의 일반적 요구와 절차를 무시하고 강압적이고 음모적인 방법으로 체결된 철두철미한 불법문서였다"고 지적했다.
일본 헌병과 경찰이 왕궁을 포위해 살벌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가운데 조약의 조인이 이뤄줘 일종의 `협박에 의한 문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학계는 1910년 8월22일 조약이 조인되고 나서 `7일' 후에야 공포됐다는 사실도 불법성의 근거로 부각시키고 있다.
북한 사회과학원의 정혁 연구사는 작년 8월 조선중앙방송에 출연, "일제는 자신들의 범죄적인 정체가 드러날 경우 격분한 조선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 두려워 이 사실을 극비에 부쳤다가 한 주일이 지난 8월29일에야 세상에 공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작년 8월 `천추만대를 두고 잊지 못할 피의 교훈'이란 논평에서 "한일합병 문서의 공포를 알리는 조칙 공포 문제가 제기되자 일제는 저들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조칙문에 순종 황제의 수결도 받지 않고 탈취한 어새만 찍어 공포하는 날강도적 행위를 거리낌 없이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한일합병 조약의 부당함을 공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제 통치로 우리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정신적.물적 피해를 부각시키는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동신문은 2008년 8월 `일본은 과거 죄악의 책임을 절대로 회피할 수 없다'는 제목의 논설에서 "일제의 파쇼 악법에 의해 840만명에 달하는 조선 사람들이 강제연행.납치.유괴돼 전쟁터와 노예적 고역장에서 혹사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며 20만명의 조선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고 지적했다.
북한 매체들은 이밖에도 합병 이후 일제의 문화재와 자원 약탈, 일본어 강제사용 등을 통한 문화적 말살 정책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한일합병과 일제 강점 통치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보여오던 북한은 1990년 9월 가네마루 신(金丸信) 당시 일본 자민당 부총재의 방북을 계기로 북일 수교 교섭이 시작되자 일본 측에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고 나섰으며, 양국간 수교 얘기가 완전히 수면 아래로 잠복한 최근년에도 그같은 배상 요구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평양방송은 작년 8월 "지난날 일제에 의해 너무나도 큰 고통과 재난, 불행을 강요당한 우리 인민은 일본이 저지른 과거 범죄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은 이것을 똑바로 알고 하루 빨리 범죄의 과거에 대해 사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노동신문은 2004년 논설에서 "세계적인 정세변화 속에서도 조일(북일) 간의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 과거 청산을 하지 않고, 그로 인해 두 나라 인민들 사이의 뿌리깊은 불신이 가셔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과거 청산은 조일관계 개선의 근본 열쇠로 조일 평양선언에는 일본의 과거 청산 문제가 명확히 밝혀져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노동신문의 이 같은 지적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체결한 `평양선언'을 거론한 것인데, 평양선언 제2조에는 "일본측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해 조선 인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 속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고 명시돼 있다.
이 선언은 또 "일본 측이 국교정상화 후 쌍방이 적절하다고 간주하는 기간에 걸쳐 조선 측에 무상자금 협력, 저이자 장기차관 제공,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민간경제활동을 지원하는 경지에서 일본 국제협력은행 등에 의한 융자, 신용대부 등이 이 선언의 정신에 부합된다는 기본 인식 아래 국교정상화 회담에서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규모와 내용을 성실히 협의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결국 북한은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의 불법성과 그로 인한 피해의 참상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과의 수교 협상 과정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려는 이중성을 드러낸 셈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지난 10일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한국에 대해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는 언급에 대한 북한의 반응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담당 대사는 13일 교도통신과 인터뷰에서 "간 총리의 담화에는 사죄해야할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아 모든 조선 인민에게 실망감을 안겼다"고 지적하면서도 "민주당 정권은 새로운 (대북)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자민당 시대의 갖가지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관계개선의 제1보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북일 관계정상화와 이 과정에서 얻을 반대급부에 대한 북한 당국의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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