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1
이영훈 (지은이)백년동안2018-03-05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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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244쪽140*210mm389gISBN : 979118606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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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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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이영훈 교수의 역사 바로 보기 '환상의 나라' 시리즈 1권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1부 '한국사 제1의 위인', 2부 '세종과 노비제', 3부 '세종과 기생제', 4부 '세종과 사대주의', 5부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이다'로 구성되었다.
목차
머리말 - 004
1. 한국사 제1의 위인 - 015
2. 세종과 노비제
15~17세기 인구의 30~40%는 노비 · 024
양반의 노비 규모 · 026
입역立役과 납공納貢 · 028
노비는 주인의 재물 · 033
노비는 함부로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 · 036
노비 증식의 경로는 양천교혼良賤交婚 · 039
노비제는 기자箕子의 법 · 042
고려와 조선의 사회구성 · 045
고려 노비의 처지는 그리
열악하지 않았다 · 046
태종의 노비제 봉쇄정책 · 050
세종, 노비의 권리를 박탈하다 · 053
주자의 아름다운 말씀 · 057
병길丙吉은 시신에 대해 묻지 않았다 · 061
세종, 양천금혼의 빗장을 풀다 · 062
충노忠奴 미담 · 065
추노推奴 활극 · 069
성군이라면 영조 · 073
죽은 종을 위로하다 · 076
『흥부전』의 세상 · 079
3. 세종과 기생제
김치 종 · 084
낙동강 푸른 물에 · 087
슬픈 향복香卜 · 089
직비直婢 · 093
풍류비風流婢 · 096
기생의 기원 · 097
고려 기생의 신분 · 101
비천卑賤 관념의 심화 · 104
세종, 기생의 딸을 기생으로 삼다 · 107
기녀를 두어 사졸士卒을 접대하라 · 110
위안의 실태 · 114
대를 이어 위안하다 · 117
천산賤産과 천고賤姑 · 119
기생 머리 올리기 · 121
음녀淫女 속공屬公 · 124
19세기의 기생제 · 127
춘향의 꿈 · 132
4. 세종과 사대주의
대몽골 울루스 · 140
이씨 왕가의 내력 · 142
최초의 세계지도 · 145
기자箕子의 나라 · 147
세종, 하늘에 대한 제사를 폐하다 · 151
지성사대至誠事大 · 156
사라진 부월斧鉞 · 160
역월제易月制의 폐지 · 163
도덕국가로의 순화 · 169
백성에게 바른 한자음을
가르치다 · 171
학계라 해도 집단연고의 무리 · 175
최만리崔萬理의 반대 · 178
소중화의 주체성 · 180
5.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이다
요약 · 184
몇 가지 추가 · 187
현대 한국사학의 문제점 · 190
자유에 대한 상념 · 194
그대는 자유인인가 · 199
현대판 『소학小學』 · 201
문명사의 대전환 · 203
환상의 성립 ·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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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영훈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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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 한국경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성균관대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정년퇴직, 2020년 현재 이승만학당의 교장으로 활동 중이다. 『조선후기사회경제사』(한길사, 1988),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공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대한민국역사』(기파랑, 2013), 『한국경제사』 Ⅰ, Ⅱ(일조각, 2016), 『반일 종족주의』(공저, 미래사, 2019) 등의 저서가 있다.
최근작 :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반일 종족주의>,<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 총 21종 (모두보기)
이영훈(지은이)의 말
나는 한국의 근대문명은 일제가 이 땅을 지배한 기간에 제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친일파 또는 식민지근대화론이라고 손가락질하였다. 대학을 찾아와 나를 파면하라고 데모한 사람들, 연구실에 들어와 나를 훈계한 대학원생, 연구실 문에 계란을 던지고 도망친 학부생, 나를 공격한 여러 차례의 대자보,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었다. 그 모든 매도에도 불구하는 나는 내가 딛고 있는 실증의 토대가 허물어지는 아픔을 느낀 적이 없다. 나는 한국 근대문명의 역사적 경로를 달리 설명함에 성공한 어느 연구자도 알지 못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 「환상의 나라」시리즈를 시작하면서
“환상의 나라, 그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아주 좋다, 멋지다, fantastic하다, 그런 뜻의 환상이 아니다. 허상이다, 착각이다, illusory하다, 그런 뜻의 환상이다.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데, 따져보니 근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거짓말로 판명된다, 그런 것이 내가 말하는 환상이다.
환상은 인간들을 큰 신뢰와 협동으로 이끌 수 없다. 환상이 빚은 역사와 현실의 간격은 정신과 육체의 분열을 야기한다. 환상은 그 자체로 반과학이다. 환상은 직시되어야 하며, 적절한 대안과 더불어 극복되어야 한다. 신생 대한민국의 지식인이 감당할 시대적 과제였다. 지난 70년의 건국사를 돌아볼 때 대학을 비롯한 지식사회가 그에 제대로 부응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식사회는 환상을 조장하는 역할에 골몰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이 나라는 갖가지 환상의 굴레에 심하게 옥죄인 가운데 숨쉬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안으로는 한 국민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이념의 대립이 심한 가운데 밖으로는 우방과 공연한 마찰을 일삼고 있다.
2016년 5월부터 3개월간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 ‘환상의 나라’라는 제목의 강의를 한 것은 그 같은 위기감에서였다. 모두 12개 주제였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컸던 순서로 몇 개를 나열하면,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나라는 누가 팔았는가’ ‘우리 민족, 그 불길함’ ‘위안소의 여인들’ ‘환상의 통일론’ 등이다. 지금의 이 책은 제1강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의 강의노트를 학술서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분량과 형식으로 확장한 것이다. 나머지 강의에 대해서도 하나씩 같은 식으로 단행본을 출간할 계획이다.”
▶ 세종과 노비제
17세기 중엽 조선왕조의 인구는 대략 1,200만을 헤아렸다. 그중의 30~40%, 그러니까 360~480만의 인구가 노비 신분이었다. 노비가 그렇게나 많았던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김없는 사실이다. 1606년에 만들어진 경상도 산음현과 단성현의 호적이 전하고 있다. 현재 전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랜 호적이다. 산음현 호적에서는 인구의 42%가 노비 신분이다. 단성현 호적에서는 64%이다. 1609년에 만들어진 울산부 호적이 있다. 거기서 노비의 인구 비중은 47%이다. 이상이 17세기 초라면, 17세기 말에는 1690년에 만들어진 대구부 호적이 있다. 거기서는 인구의 43%가 노비이다. 이처럼 17세기 경상도의 경우, 호적에 등록된 인구의 42~64%가 노비였다.
경상도 외의 호적으로서는 1663년에 만들어진 한성부 호적을 들 수 있다. 오늘날의 서울 아현동, 가좌동, 합정동 일대의 호적이다. 호적에 등록된 인구는 총 2,374명인데, 그 가운데 1,729명, 곧 73%가 노비이다.
당시 한성부의 인구는 대략 20만이었다. 그중의 절반은 4대문 안의 성내에서, 나머지 절반은 4대문 밖의 성저城底에서 살았다. 위 호적은 17세기 중엽 성저 인구의 근 4분의 3이 노비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한성부, 곧 서울은 왕실을 비롯하여 귀족적 양반가문이 모여 사는 곳이다.
17세기 서울은 한 마디로 노비들이 바글바글하는 도시였다. 15, 16세기로 올라가면 전하는 호적이 없기 때문에 노비의 인구 비중을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17세기보다 많았음은 거의 확실하다.『왕조실록』에 나오는 여러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보면 15세기 말 총인구 900만 가운데 적어도 40%는 노비였다.
15~16세기 서울에 거주한 양반관료는 아무리 미관말직이라도 100명의 노비는 소유하였다. 관직이 높아지면 그 수가 더욱 많아져 수백 명쯤은 보통이었다. 현재 전하는 분재기分財記 가운데 노비를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은 정3품 관직의 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한 이맹현李孟賢이란 사람인데, 총 758명에 달하였다. 그보다 품계가 높은 판서나 정승 급의 고관대작이면 1천 명을 넘기기 어렵지 않았다. 왕족으로 올라가면 아마도 수천 명이었을 것이다. 알려진 최대 규모는 세종의 제5왕자인 광평대군廣平大君과 제8왕자인 영응대군永膺大君이다. 『왕조실록』은 이 두 왕자의 노비가 각각 1만 명을 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려왕조의 멸망과 조선왕조의 성립은 공동체사회에서 신분제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하였다. 조선왕조를 연 정치세력은 고려왕조의 전통을 이어 처음에는 노비인구의 확산을 억제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1401년 태종은 노비와 양인과의 결혼을 전면 금지하는 영을 내렸다. 노비는 노奴와 비婢의 결혼만으로 단순 재생될 뿐이라는 노비제 봉쇄정책을 폈다.
1418년 8월 세종의 시대가 열렸다. 1420년 9월 예조판서 허조許稠는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경우 이를 수리하지 말고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허조는 중국 당의 태종이 노가 주인을 고소할 경우 설령 그 내용이 반역에 관한 것이라도 이를 수리하지 않고 노를 참해버린 고사를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이 같은 허조의 주장에 세종은 동의하였다.
조선의 양반관료들은 노비의 주인 고소가 인륜의 명분에서 정당할 수도 있음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왕조실록』을 보면 노비의 고소를 일체 교형으로 다스리자는 신하들의 주장에 세종은 역시 순순히 동의하였다.
조선 노비제의 확립에 있어서 1422년의 노비고소금지법奴婢告訴禁止法 제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노예의 진정한 요건은 법 능력의 상실에 있다. 이를 가리켜 올란도 패터슨은 ‘사회적 죽음Social Death’이라 하였다. 노예는 살아 있지만 실은 죽은 자와 마찬가지이다. 타인의 불법 행위에 대해 맞설 권리가 없고 자신을 보호해줄 공동체를 상실한 상태가 노예의 본질이다.
조선왕조에 들어 노비 인구가 크게 팽창하게 된 데에는 세종의 역할이 컸다. 세종은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박탈하였다. 이후 노비는 주인의 완전한 사유재산으로 변하였다. 노비를 함부로 죽여도 큰 죄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에 따라 노비 가격이 고려시대에 비해 5배나 뛰었다. 태종은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한편, 비가 양인 남자와 결혼하여 낳은 자식을 양인 신분으로 삼았다. 세종은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방임했으며, 노비와 양인 남자의 소생을 노비 신분으로 돌렸다. 세종은 노비를 정상의 인류로 간주하지 않았다. 세종은 자주 남편을 바꾼다는 편견에서 비의 정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종이 비의 소생을 모두 노비로 잡은 것에는 이 같은 노비관이 작용하였다. 이후 노비 인구가 부쩍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사에서 노비제의 전성기가 열렸다.
▶ 세종과 기생제
1419년 세종 1년에 평안감사가 기생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를 건의하였다. 하나는 기생으로 인해 관리들의 풍기가 문란하니 관리의 기생 간음을 금하자는 것이다. 그는 한 기생을 여러 관리가 돌아가며 간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평안감사의 건의는 여러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에 의해 채택되었다.
다른 하나의 건의는 기생이 모자라니 확충하자는 것이다. 그에 대해 세종이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후 역사는 그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우선 각종 비로부터 기생을 보충하거나 그렇게 하자고 했으니 기생은 사실상 비와 동일한 신분으로 간주되었다. 이후 『경국대전』은 교방의 기생은 정원이 230명이며 각 군현의 관비를 3년간 뽑아올려 충당한다고 규정하였다.
흔히들 기생을 춤추고 노래하고 성 접대를 하는 직업인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조선의 기생은 그러한 역을 국가로부터 강요받은 관비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원 기생의 딸을 기생으로 삼자고 했으니 기생은 그 신분을 세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실제 세종 10년이면 고급 관료의 기첩이라도 그 자녀가 천역을 면치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1431년 1월이면 조선 기생제의 성립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조치가 내려졌다. 세종은 각 고을의 창기가 낳은 자식은 공사公私의 비가 남편을 자주 갈아치우는 예에 준하여 천인으로 삼자는 형조의 건의를 수락하였다. 여기서 기생의 딸을 기생으로, 기생의 아들을 관노로 삼는 신분세습의 율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뒤이어 1431년 11월 세종은 관비가 양인 남자와 낳은 자식도 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기생의 예에 준하여 모두 천인으로 돌리자는 건의에 찬성하였다.
1432년 3월 조선 노비제의 기틀을 놓은 종모법從母法의 성립은 1년 2개월 전 기생을 대상으로 한 종모법의 성립을 그 출발로 하였다. 따지고 보면 조선 기생제야말로 조선 노비제의 중핵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정부와 지방관아에는 춤추고 노래하고 성적 위안을 제공하는 기생 신분의 여인들이 있었다. 기생의 신분은 딸에게 세습되었다. 특정 여인에게 성 접대의 역을 강요하고 세습시킨 다른 나라의 예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기생제는 세계사에서 한국사가 지닌 개성적 특질을 상징하고 있다. 그 기생제를 사실상 창출한 군왕이 다름아닌 세종이었다. 기생의 딸은 기생이라는 법은 세종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기생은 관비의 신분으로 떨어졌다. 이전 고려시대만 해도 기생은 관비가 아니었다. 나아가 세종은 국경지대의 고을에 군사를 접대할 기생을 설치하였다. 이후 전국의 각 군현에 수십 명씩의 기생이 배치되었다. 세종이 창출한 기생제는 20세기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를 이루었다.
▶ 세종과 사대주의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천제天祭는 천자의 고유한 예로서 제후는 이를 행할 수 없다는 주장이 신하들로부터 제기되었다. 태조와 태종은 그에 구애되지 않고 천제를 거행하였다. 1419년 세종 1년에 가뭄이 심하였다. 변계량이 원구단에서 천제를 거행할 것을 청하였다. 세종은 “참람한 예는 행함이 불가하다.”고 답하였다. 천제를 지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계량이 수천 년 동안 행해온 예를 폐함은 부당하며, 더구나 조선은 강토가 수천 리로써 중국 내의 백리 제후와 비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에 대해 세종은 “어찌 강토가 수천 리라 하여 천자의 예를 분수없이 행하리오.” 하면서 다시 거절하였다. 이에 변계량은 심한 가뭄을 맞아 제후가 하늘에 제사를 드림이 무슨 잘못인가라는 예의 임시변통론을 내세웠다. 이에 세종은 그 주장을 받아들여 천제를 거행하였다. 막 등극한 22세의 청년 세종은 나이 50세의 중신 변계량을 이길 수 없었다.
세종은 참을성 있게 그의 시대를 기다렸다. 그렇게 성격이 온유하고, 중신을 예우하고, 서둘지 않음이 세종의 훌륭한 인품이다. 그가 치세 당대에 신하들로부터 성군으로 칭송을 받은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천제는 제후가 행할 수 없는 참람한 예라는 세종의 소신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실행을 보았다. 다음 해 1439년에 큰 가뭄이 들었다. 친히 원구단에 나가 천제를 거행하라는 상소가 있었지만 세종은 거절하였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왕조국가에 있어서 천제는 종묘와 함께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최고 수준의 의례였다. 천제는 하늘과의 관계에서, 종묘는 조상신과의 관계에서 국왕의 절대적 권위를 대변하였다. 1443년 천제가 최종 폐지됨으로써 조선왕조의 국가체제는 제후국의 그것으로 충실히 정비되었다.
만국공법 이전의 전근대 세계에서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에 굴종하는 것은 종묘와 사직을 보전하고 백성을 평안케 하는 고육지책이다. 사대는 하는 자나 받는 자나 모두에게 정략적 관계이다. 하는 자는 속마음을 숨기고 받는 자는 상대를 의심한다. 조선 태종조까지의 사대가 그러하였다. 양국 간에는 군사적 긴장이 잠재하였다. 오고가는 사신은 상대국의 정치를 염탐하였다. 세종조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바뀐다. 『세종실록』을 읽으면 그 점을 확실히 느낀다. 한마디로 세종은 지성으로 사대하였다.
고려왕조는 군사국가였다. 그 점에서 도덕국가인 조선왕조와 달랐다. 고려는 3만여 명의 중앙군을 보유하였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고 그로부터 세를 걷어 살았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니 직업 군인으로서 전투력이 강하였다. 군사국가로서 고려는 전쟁에 장수를 파견하는 출정의出征儀라는 군례를 행하였다. 출정이 결정되면 우선 사직단에 제사를 지내고 종묘에 이를 고한다. 이어서 대궐의 뜰에서 출정군의 원수에게 왕이 부월斧?을 내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 같은 출정의는 천자의 예에 속한다. 부월은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였다. 부월을 받은 장수는 대궐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출정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할 권한을 갖는다. 군령을 어긴 휘하 장수와 사졸을 재량으로 처결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제후국도 출정의를 행했는데, 부월을 내리는 의식은 없었다. 제후에게는 내릴 만한 부월이 없었다. 부월이 없으니 출정군의 대장이 휘하 장수와 사졸을 처결하는 권한에도 제약이 있었다.
1419년 세종 1년에 이종무李從茂가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하려 갈 때 세종은 한성부 두모포 백사장에서 이종무와 여러 장수를 전송하였을 뿐이다. 공식적인 군례는 없었다. 1433년 여진이 평안도 국경을 침범하여 최윤덕崔潤德이 도절제사都節制使가 되어 출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세종의 명에 따라 편찬된 오례五禮의 군례에서 출정의는 포함되지 않았다. 세종은 천자의 출정의는 고사하고, 제후의 출정의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군대가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군사에 대한 세종의 자애는 엉뚱하게 조선왕조의 군대를 허물고 있었는지 모른다.
▶ 나가면서
조선왕조시대의 양반 신하 들이 세종을 성군으로 칭송한 사실은 엄연한 객관적 사실이다. 치세 30년간 이룩한 업적은 조선왕조 500여년의 기틀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까지 그를 성군으로 받들어야 하는가?
노비제와 기생제, 그리고 사대주의 국가체제를 정비한 사실은 깡그리 생략하고, 21세기의 리더쉽을 세종에게서 찾으려는 환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내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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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직시하는 용기.
sumoverpath 2019-03-17 공감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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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도 학자가 증거 및 근거를 가지고 한 주장은 눈여겨 보아야함. 상반되는 주장은 논문이나 토론 등의 장에서 격렬히 이루어져야 올바른 역사를 가질 수 있다고 봄
stlouisbbq 2018-10-03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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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던 책이다.
저자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경제사 전공이라는 약력만 보고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경제학자가 섣불리 주류 학계의 이론을 논파하는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너무 재밌고 인상깊게 읽었다.
세종이 추구했던 정책의 역사적 의미라는 주제도 흥미롭지만, 뒷부분에 간략하게 나온 개인의 자유, 그리고 그 자유인이 세운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인상깊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나 역시 학교에서 한 번도 개인의 자유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서양은 개인주의가 만연해 이기주의로 흐르는 게 문제이고 우리는 그에 반대되는 집단주의 성향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재산권이라는 의미는 제대로 배웠던 기억이 없다.
막연하게 사유재산권은 도덕적이지 않다는 느낌마저 갖고 있었다.
사회주의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도, 개인이 사적으로 재산을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가가 모든 국민들이 잘 살 수 있게 돌봐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의 가장 핵심 요소가 바로 개인의 자유와 사적 재산권인데 그것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부족하니 21세기에도 여전히 전통사회의 영향력이 강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가 실려 있는데, 요즘 비난받고 있는 뉴라이트 학자인가 궁금해진다.
원래 대중은 어리석고 집단주의적 성향을 지니기 마련이니 책에 나온대로 창조적 소수가 전통문화와의 간극을 좁혀가며 선도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할 듯 하다.
세종은 과연 양반이 지배하는 예치주의 도덕주의 국가의 기틀을 만든 훌륭한 성군임은 분명하다.
저자의 평가대로 그런 국가 정책 덕분에 500년이라는 긴 세월을 왕조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을 오늘날의 정치적 관점에서 성군으로 평가하는 것은 오류임이 분명하다.
조선과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사회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교토의 1만년>이라는 책에서도 읽은 바지만,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한국 사회는 동족이라는 북한과는 매우 상이한 체제를 가졌고 오히려 식민 지배의 경험으로 적대시하는 일본과 훨씬 동질적일지 모른다.
저자가 계속 책을 낸다고 하니 관심을 갖고 읽어 볼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었던 점은, 과연 훈민정음의 창제가 단순히 중국어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기 위한 발음기호의 발명인지이다.
세종이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내면화 시키고 국가 정책으로 공고화 시킨 것은 분명하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관점에서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아닌 듯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어를 정확히 표기하겠다고 발음기호로 만들었다는 게 쉽게 수긍이 안 간다.
당시 중국어가 오늘날 영어만큼 일반에 널리 쓰인 것도 아니고, 학문이나 외교 문서 등에서 문자로써 통용됐을 뿐인데 굳이 새 문자를 만들어 발음기호까지 달아서 중국어를 표시할 필요성이 그렇게나 컸을까?
의도가 무엇이든 오늘날 한글의 발명이 끼친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훈민정음 하나만으로도 세종은 한국사 최고의 위인임은 분명하다.
<인상깊은 구절>
151p
고려는 고구려의 천하관을 계승하였다. 만주와 한반도의 패자로 군림했던 고구려는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으로 자부하였다. 그것은 어느 한 나라가 주도하는 천하가 아니라 병존하는 다원적인 천하였다. 그 같은 천하관은 삼한 고유의 종교적 전통과 결부되어 왕권의 신성을 보증하는 정치철학으로 역할을 하였다. 고려의 국왕은 중국 황제에 신속하였지만, 다원적 구조의 천하관에 상응하는 상대적 우열의 관계를 넘지 않았다. 후술하듯이 고려왕조는 독립국의 상징으로서 하늘에 대한 제사를 고수하였다.
조선왕조의 건립자들이 고려라는 국호를 폐하고 기자조선을 잇는 취지의 국호를 명에 자청한 것은 한국문명사에서 더없이 큰 단절을 의미하였다. 이후 한국사는 중국사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누가 뭐래도 그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 중국과의 사대관계는 정치군사적 명분을 넘어 인간, 사회, 국가, 세계를 포괄하는 형이상학의 질서로 내면화하기 시작하였다.
153p
변계량은 우리 동방의 시조는 단군으로서 원래 천자가 분봉한 나라가 아니며, 지난 1천 년에 걸쳐 천제를 지냈다고 한 다음, 비록 천제가 천자의 예이긴 하나 심한 가뭄을 당하여 제후도 임시변통으로 행할 수 있는 예라고 주장하였다. 태종은 변계량의 주장을 받아들여 천제를 복구하였다. ... 변계량이 수천 년 동안 행해온 예를 폐함은 부당하며, 더구나 조선은 강토가 수천 리로서 중국 내의 백리 제후와 비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에 대해 세종은 "어찌 강토가 수천 리라 하여 천자의 예를 분수없이 행하리오" 하면서 다시 거절하였다. ... 천제는 하늘과의 관계에서, 종묘는 조상신과의 관계에서 국왕의 절대적 권위를 대변하였다. ... 사대는 하는 자나 받는 자나 모두에서 정략적 관계이다. 조선 태종조까지의 사대가 그러하였다. 양국 간에는 군사적 긴장이 잠재하였다. 세종조에 들어오면 분위기가 바뀐다. 한마디로 세종은 지성으로 사대하였다.
160p
고려왕조는 군사국가였다. 그 점에서 도덕국가인 조선왕조와 달랐다. 고려는 3만여 명의 중앙군을 보유하였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고 그로부터 세를 걷어 살았다. ... 고려왕조는 이들 중앙군을 핵심으로 하는 군사공동체였다. 수많은 외침이 있었지만 고려는 자력으로 격퇴하거나 오랫동안 항쟁하였다.
168p
주자가례에 따른 3년상의 확산으로 인해 농촌 품관을 핵심 전력으로 하는 조선초기의 중앙군제가 약화되어 간 것만큼은 부정하기 힘들다. 조선왕조는 군국의 수준조차 흉례가 지배하는 나라로 되어갔다. ... 세종은 천년 이상을 이어온 천제의 거행을 중단하였다. 하늘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포기함으로써 천명의 대리인으로서 군왕의 권위는 중국 황제에 대한 사대를 통해 확보될 수밖에 없었다.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는 것은 하늘이 내린 도로서 인륜이다. 세종은 스스로 인륜의 지극한 모범을 보임으로써 그의 신료와 백성에 대한 군왕의 권위를 확보하였다. ... 조선의 국가체제는 제후 왕, 大夫 관료, 士 양반, 庶 상민, 賤 노비의 위계로 짜였다. 그 위에 중국의 천자가 놓임으로써 완성되는 위계였다. 이 나라는 점점 예의 질서로 유지되는 도덕국가로 순화되어갔다. 그럼에도 국가의 지배력은 강고하였다. 예의 질서가 천자를 정점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15~16세기의 천하는 명 제국을 중심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그런 가운데 조선왕조가 구축한 예의 국제질서로서 국가체제는 부동의 안정성을 구가하였다.
173p
세종이 독자의 문자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동시대 조선의 한자 발음과 중국의 그것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 세종은 동시대 북경어 중심의 한자 발음을 정확히 표기할 목적에서 발음기호를 창제하였다. 그것이 훈민정음이었다. 통설대로 훈민정음은 하층 서민이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개발된 문자가 아니었다. 한자를 사용하는 지배신분의 사람들이 동시대 중국의 기준에서 정확한 중국어를 구사하고 훌륭한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아름다운 시문을 지을 수 있도록 개발된 발음기호였다. ... 한문 밖의 일상의 조선어도 표기할 수 있음이 확인되자 훈민정음은 더 이상 발음기호가 아니라 표음문자로 바뀌어 보급되어갔는데, 그것을 가리켜서는 언문이라 하였다. ... 중화의 세계로 깊숙이 진입해가기 위해서는 언어, 문자 생활마저 중화의 기준으로 교정할 필요가 있으며, 그를 돕는 보조문자가 필요하였다. 다시 말해 세종의 한글 창제는 15세기적 국제질서에서 조선왕조가 소중화로서 추구한 개성적인, 그래서 역설적으로 민족주의적이기도 한, 문화정책이었다.
188p
조카를 몰아내고 쿠데타로 집권한 세조는 군왕의 절대 권력을 확립함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강력한 개혁 의지는 백성에 대한 양반관료의 특권적 지배체제를 겨냥하였다. 세조는 기존의 호적을 모조리 불사른 다음 백지 상태에서 전국의 인구조사를 강행하였다. ... 나아가 세조는 양반관료에 지급하는 토지의 규모와 권리를 대폭 제한하였다. 이 일로 인해 세조는 신하들로부터 폭군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세종은 결코 그런 무리를 범하지 않았다. 그의 통치는 주로 학술, 신분, 예제, 외교를 대상으로 했으며, 그 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다. 전술한 대로 그가 정비한 예의 국제질서로서 국가 체제는 이후 5세기를 뻗친 조선왕조의 기틀이 되었다.
191p
조선왕조의 성립과 더불어 농촌사회에 새로운 지배신분으로서 양반이 들어서고, 양반 지배 하의 노비 인구가 증가하고, 노비의 사회적 지위가 약화되고, 그 배경에 신분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유교 이념이 있었다. ... 14세기까지의 고려왕조는 공동체사회임에 비해 15세기 이후의 조선왕조는 양반-노비를 축으로 하는 신분제사회라는 설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사학의 주류는 조선왕조를 유교국가로 설정하고 그 국가체제의 근세적 합리성을 부각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조선왕조는 유교적 민본주의 이념에 입각한 일종의 민주주의 정치체제이며, 국왕과 신하의 권리는 상호견제의 균형을 이루었으며, 16세기 이후 중앙 정치에서 나타난 당쟁은 일종의 정당정치였으며, 농촌사회는 성리학의 보급에 따라 민권 의식의 고양을 보게 되었다는 것 등등이 한국사학의 주류를 점해온 담론이었다. 1980~1990년대 국사 교과서는 조선시대를 '근세 사회'로 시대 구분하였다. 한영우는 조선왕조를 '근세 관료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그 시대의 유교적 문민정치의 전통과 유산이 현대 한국사회의 역사적 바탕을 이룬다는 취지에서이다. ...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보급되 한국사 교과서에서 조선시대는 고려시대와 같은 시대로, 곧 '중세'로 구분되어 있다.
194p
1899년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은 만세불변의 전제정치라는 헌법을 제정하였다. 황제는 탐욕스럽게도 국가의 주권을 자기의 가산으로 움켜쥐었다. 불행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그 왕조는 망했으며, 2천만 생령을 다른 민족의 노예로 넘겨주고 말았다. ... 자유인이 자기 의지와 계산으로 노동하여 취득한 재산은 그 누구도 탈취하거나 처분할 수 없는 그의 절대적 권리이다. ... 먹고 살 만한 최소한의 재산은 인간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다. 근대 국가는 '소유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 자유의 원칙'에 입각한 민법을 제정하여 자유인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다. 민법은 인간을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의 주체로서 자기 문제를 자율로 처결하는 '사적 자치의 주체'로 상정하고 있다. ... 오늘날의 세계는 이 같은 애덤 스미스와 칸트의 가르침에 따라 영구평화와 영구번영의 길을 걷고 있다. 바로 그 길이 지난 18~20세기를 이끈 세계 지성의 주류였다. 1948년 대한민국이 성립하고 오늘날까지 그런대로 볼만한 성취를 이룩한 것은 그 세계사의 주류에 훌륭하게 올라탔기 때문이다. 누가 그 길을 인도하였는가. ... 이 나라의 건국헌법은 그의 국민을 자유인으로 선언하였다. 다소간의 흠결이 없지 않았지만 이후 이 나라의 국민은 자유인으로서 그의 삶을 영위하였다. 그 역사가 거의 70년이다. ... 나는 교과서들이 우리 조상이 소년기에 읽은 <동몽선습>이나 <소학>의 현대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세계사적으로 '근대'라고 부르는 문명의 기초 요소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 자치의 주체'로서 개인, 개인의 자유와 독립, 그 기초조건으로서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 자유인의 정치적 통합으로서 민주공화국, 자유인의 경제체제로서 시장경제, 자유인의 국제질서로서 자유통상 등은 어느 교과서 어디에도 그림자초자 비치지 않는다. ... 전통 성리학의 세계에서 '개인'은 없었다. ...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가 지난 40여 년간 왜적과 쉬지 않고 싸운 것은 개인의 자유활동과 자유판단권을 위해서였다고 강조하였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독립운동을 하였던가. 그저 "대한 독립 만세!"가 아니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더욱 아니었다. 다름 아닌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위해서였다. 자유인의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 그 '개인의 근본적 자유'는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전통 성리학의 세계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만이 아니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명권 전반에서 개인의 자유라는 정치철학의 범주는 결여되었다. 그것은 하늘이 달라져야 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었다. 서양도 종교개혁 이후에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선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문명으로 올라서기 시작하였다. ... 초대 대통령은 신생 대한민국의 기초가 되는 정치이념이 서양민주국에서 유래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후 지금까지 어느 정치가도 역사와 국민 앞에서 이렇게까지 정직해본 적은 없었다. 이 나라는 서양민주국을 모범으로 하여 1919년 3.1운동 이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꾸준하게 실천해온 결과로 세워진 나라이다. 이 나라는 앞으로 자유인의 공화국으로 발전해갈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갈 길이다. ... 이 나라는 미국과 같은 자유인의 공화국으로 발전해갈 것이다. 상이한 이해관계의 인간들을 신뢰와 통합으로 이끄는 삶의 원리에 있어서 더없이 큰 변화의 선언이었다. 2천 년을 이어온 한국 문명사의 대전환이었다. ... 그럼에도 건국의 주체가 선택한 자유통상의 경제체제는 이후 50년간 미국 헤게모니의 세계체제 속에서 엄청난 물질적 성취를 이룩하였다. 경제성장은 민족중흥의 깃발로 추진되었으며, 민족의 우수한 역량으로 설명되었다. 개인과 그의 자유는 천박하게 들리는 이기심에 대한 매도와 더불어 슬슬 위축되었다. "우리의 도덕적 개인은 서양의 이기적 개인보다 훌륭해." 앞서 소개한 유교국가론의 대두와 더불어 이런 이야기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덧 세종의 애민정치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원류로 선양되기 시작하였다.
<오류>
142p
"웃치긴은 칭기즈칸의 막내아들이다"
-> 웃치긴은 칭기즈칸의 막내 동생이다.
marine 2018-06-23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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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자들이 10년간 공격한걸로 알고있다. 읽어보기 전까진 알수 없는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누군가의 의도‘아래 읽어오고 공부해왔다. 그러나 정확한건 알고 가야한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성군은 맞지만 성역화되어왔다는 사실도 알아야한다. 구매
son2611 2018-03-25 공감 (3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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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기생제, 중국에 대한 사대질서 관련 시중의 많은 책들이 단편적인 사례소개 중심인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역사적, 제도적, 총체적으로 관련분야를 분석한다. 자료전개와 논리의 진행이 군더더기 없고 명쾌하므로 단숨에 읽는 맛이 있다. 5장은 많은 부분을 생각케한다. 역사서를 넘은 명저다. 구매
김현규 2018-03-18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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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직시하는 용기. 구매
sumoverpath 2019-03-17 공감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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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도 학자가 증거 및 근거를 가지고 한 주장은 눈여겨 보아야함. 상반되는 주장은 논문이나 토론 등의 장에서 격렬히 이루어져야 올바른 역사를 가질 수 있다고 봄 구매
stlouisbbq 2018-10-03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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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노예해방을 한것이 1865년.조선은 망할때까지 공식적으로 노예와 기생이 있었던 국가였다는 것.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신체적 자유인데 우리가 노예제도를 자체적으로 혁파하지 못하고 일제강점기에 와서야 이루어졌음을 지적하는 대목은 뼈아픈 것이다. 구매
알라딘탄압 절필 2018-08-28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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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공화국을 위하여 새창으로 보기
marine 2018-06-23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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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새창으로 보기
"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책으로여는길입니다"
이 책을 받고는 한동안 읽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역사는 팩트지만 어디를 조명하고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지니 가공 이상의 위험요소가 따른다.
내가 역사를 잘 알거나, 연구를 하는 입장이라면
아마 그 주장이 궁금해서 좀더 집중해서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표지 뒷날개의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시리즈의
제목 리스트를 본 순간
이 책을 집중해서 읽을 마음을 접어버렸다.
[세종은 과연 성군이가] 라는 책 제목의 질문에는
세종이 성군이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럼, 왜 그런 주장을 하는 지 그 관점에서 읽어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 책을 죽 훑어보면서 일단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책 정도의 활자크기와 180페이지 정도되는 분량의 글은
얼마 되지 않은 내용을 억지로 늘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이다'라는 챕터는 또 뭔가.
세종이 대한민국의 시각과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성군이 아니라는 얘긴가.
저자가 주장하는 성군의 개념과 기준은 또 뭔가.
조선시대의 정치 중심에 있던 세종이
현대의 사상과 관점에 맞지 않은 정치를 했다고 해서
성군이 아니라는 것인가.
그의 공과 업마저 없던 것이 되는 것인가.
세종의 잘한 점은 미리 공부를 하고 오란 것인가.
양쪽을 모두 균형있게 다뤄줘야 그나마
명군이었는지 악군이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성군이라는 모호한 용어에 정의도 기준점도
제시하지 않고 그간 너희들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과만(실은 그것도 정확한 근거인지 확실치 않고
이미 논란이 된 것도, 결론이 아직 나지 않은 것도 있다)
나열해놓고 독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세종도 사람이고, 과도 있을 수 있고,
그로 인해 후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역사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다른 자료를 비교해봐야 하기에
자세한 내용에 대한 비판과 반론은 하지 않겠다.
다만, 저자가 주장을 하면서도 단편적으로 접근한 점,
한 줄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극적인 예나 크게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예들로
분량을 채운 점 등은 읽는내내 인내를 필요로 했다.
실은 5장에 실린 4페이지 정도의 요약한 글이
이 책에서 주장한 내용의 전부다.
1. 15~17세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은 노비였다.
이렇게 노비가 팽창하게 된 데에는 세종의 역할이 컸다.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박탈했고,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방임했고,
비와 양인 남자의 소생을 노비 신분으로 돌려
노비제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2. 기생 신분을 세습시키고 기생제를
창출한 군왕이 세종이었다.
세종이 창출한 기생제는 20세기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를 이루었다.
3. 하늘에 대한 제사를 폐지하고 명의 황제를
섬김에 있어 성과 예를 다한 사대주의를 추종했고
25일상을 폐지하고, 3년상을 지냄으로써
중앙군제를 약화시켰다.
4. 훈민정음은 일반 백성이 아닌
조선의 지식인이 중국어를 보다 정확히
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 문자였다.
당대의 보편적 국제질서로서 중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문화정책이었다.
단편적인 근거만으로 주장하는 것도 회의적인데
역사가는 자료의 부족으로 많은 추측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더더욱 못미덥게 만든다.
무엇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의도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종의 한글 창제부터라고 칭송하였다. 과연 그러한가."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한글창제가 세종의 애민정치의 대표적인 산물이라는 것은
저자도 공감하듯 학계와 국민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굳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그자리에
끼워넣은 것은 무슨 의도인지.
아무리 이 책이 저자의 강연자료를 보강하여
출간했다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심히 거슬렸다.
이 책이 저자의 주장을 피력하는 논설문이가?
세종의 공과 오를 균형있게 객관적으로
좀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했다면,
'환상'이라는 이상한 철학을 들이밀거나
'건국헌법'과 같은 뉴라이트의 발언이나
사상을 끼워넣지 않았다면,
이 책을 좀더 진지한 시선으로
면밀히 따져보며 읽었을 것이다.
- 접기
책으로여는길 2018-05-13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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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의 역사 새창으로 보기
역사를 왜곡하거나 자신의 주장에 맞도록 억지로 끌어다붙이는 붙이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을 읽기 전 저자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이 책에 대한 비판글이 많으니 그것부터 찾아 읽어보길 권한다.
스카이 2018-08-08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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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새창으로 보기
<한주한책서평단 오디오클립 로사입니다.>
'세종대왕'이라면 대한민국의 위인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군이다.
각종 드라마와 소설을 통해서도 '세종대왕'은 업적을 떠나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모습의 완벽한 인간형으로 표현되어 왔다. 나 역시 그런 시각에 이견이 전혀 없었고, 의구심은 커녕 별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세종대왕'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노비와 기생의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제목을 보고는 위인전처럼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다루는 와중에 다만 공보다는 과실에 더 비중을 두는 책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막상 책을 펴보니 시작부터 '노비제'에 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짧은 1장에서 겨우 몇 페이지를 할애해 세종대왕이 우리 국민에게 어떤 의미이고 위치인지를 살짝 언급할 뿐, 이후 본격적인 내용은 모두 세계사 속 조선의 '노예 제도'로 흐르고 있다.
읽다보면 놀라게 된다. 내가 알던 세종의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정책과 당시 상황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 산산조각나는 기분이 든다. 또한 세종과 별개로 우리 역사 속 노비들의 삶을 설명한 부분은 정말로 기가막히다. 영조가 노비의 인권을 개선하기 전까지 노비들은 양반이 마음대로 죽여도 별반 죄라고 보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다고 한다. "우리 집에 온지 4년이나 되고 또 원래 죽을 죄도 아니었는데 의외로 죽고 말아 마음이 매우 편치 않음이 마치 똥을 사민 것 같아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었다."는 서울 양반 오희문의 일기. 발바닥 70대를 치는 벌에 부리던 노가 죽자, 살인과 다름없는 일을 저지른 그는 고작 마음이 편치않은 정도의 가책을 느낀다.
고려 노비의 처지는 그리 열악하지 않았으며 신분 세습의 굴레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방될 수 있는 존재였다고 한다. 조선에 들어와 고려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태종과 세종을 거치며 노비의 권리는 박탈당한다. 저자는 세종이 일반 백성의 권리를 민주적으로 신장했다는 통설적 이해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 1422년의 세종이 만든 노비고소금지법으로 조선의 노예들은 '사회적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 법이 제정된 이후 노비 살해는 빈번해졌고 세종 자신도 한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노비를 함부로 죽이는 일을 금하는 법을 제정하려고 하였으나 당대의 명신들이 정치에는 명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였고 세종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2장에서 자세하게 다뤄지는 세종과 노비제는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한데, 3장의 세종과 기생제, 4장의 세종과 사대주의 역시 다르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읽었다. - 지은이나 출판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좀 이상해서 지은이를 한번 보게 되었다. 이영훈. 저자 약력을 읽어보니 식민사관으로 유명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맞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분이 아마도 백분토론에서 위안부 공창론을 주장란 인물일거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내용이나 저자의 사관과 무관하게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쓴 책과는 차원이 다르게 빈틈이 많아서 묘하게 설득력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역사 전공자가 아닌 저자가 자기 입맛에 맞게 자료를 추려서 쓴 개인적인 글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나 사관은 제쳐두고 글 자체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다가도 '조선은 쓰레기다!'를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저자에 대해 한번쯤 찾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자유주의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선봉에 서는 모순을 가진 저자가 쓴 글이기에, 소재에 흥미를 갖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읽다보면 묘하게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편견과 고정관념 없이 책을 읽던 나도 글의 교묘한 뉘앙스에 여러 번 숨을 고르고 책을 읽었다.
- 접기
로사 2018-04-24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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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이야기 새창으로 보기
한주한책 서평단 이헌입니다.
왜 우리는 세종에 집착할까? 훈민정음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는 우리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세종이 기용한 인물만 해도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인재들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다. 그런 세종이 “과연 성군인가”라고 질문하는 도발적인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할 만 하다. 또 한 가지는 환상이다. 환상은 그 어휘 자체만으로도 신비롭다. 그런데 저자의 머릿말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닫힌 국가로 살았기 때문에 역사가 만들어낸 환상에 유달리 젖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환상은 그것에 집착한 집단끼리의 갈등을 만들어 내니 저자는 그것을 파헤쳐 실체를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세종 과연 성군인가』는 그 첫 도서이다.
책은 세종이 성군이 아닌 이유를 세 가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우선 노비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 둘째, 종모법과 함께 늘어난 노비의 신분 중에서 기생도 마찬가지로 늘어나 관료들을 위해 일했다는 것. 셋째, 과도한 사대는 세종의 정치가 도덕적이고 인륜을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특히 훈민정음은 세종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파스파 문자의 원리를 차용해 온 것이라는 것을 논자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온 국민이 숭배하는 세종에게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을까. 책의 후반부에 저자의 의도가 드러난다. 세종이 완성한 국가는 백성의 국가가 아니라 양반과 왕의 국가였다. 그래서, 철저하게 개인의 권리는 무시됐다는 거다. 저자는 자유의 조건으로 신체의 자유 그리고 재산권을 든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평화를 든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이 자유로운 국가에 산다는 것에 대해 냉소적인 이유가 개인의 자유를 가르치지 않은 12년간의 공교육에 책임을 묻고 있다. 그리고 건국 당시 이승만의 미국에 대한 감사와 찬사는 약소국이 강대국에 바치는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이승만의 평생에 걸친 독립운동과 건국투쟁을 관철한 자유와 정의에 대한 신종서약”(208쪽)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묻는다면 반반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종의 치세에 문제가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는 이미 여러 논자들이 조선은 사대부를 위한 정치를 했던 국가라는 것을 이야기 했으므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노비와 기생에 관한 것이라 특이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개인의 권리보다 양반의 권리를 우선했다는 면은 이미 누구나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세종만의 문제였는가는 아직 판단을 보류하고 싶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아직 세종에 대한 환상을 갖고 싶은 나일수도 있겠다. 내가 정통한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필자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쉽게 세종이 성군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다. 좀 더 다른 각도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자유권과 재산권을 논하면서 애덤스미스의 이론을 가져왔고, 이승만의 연설까지 가져와 근거를 드는 것은 이 책의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물론 그것이 아직까지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말하려고 한 의도인 것 같긴 하지만 책임을 공교육탓으로 돌리거나 개인이 자유롭게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는 찜찜한 면이 있다. 공교육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가치관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가에 우선 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분위기로 만든 것은 철저하게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 분위기와 이때문에 생긴 학부모의 공포, 그리고 갑질문화가 아니던가. 이런 것을 공교육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너무 쉬운 결론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권리 보호가 아직까지 잘 안되고 있다는 면에는 동의하지만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의 차원이 미국처럼 발달해야 한다는 것에도 반대한다. 그것이 미국이라서가 아니다. 좀 더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했다.
어쩌면 5장이 없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냥 역사에서 새로운 측면에서 세종을 평가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어쩐지 저자가 다른 장보다 5장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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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2018-04-0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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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오클립 한주 한책 서평단 ]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_ urbanengineering 새창으로 보기
[ 오디오클립 한주 한책 서평단 ]
세종대왕에 대한 인식으로 가장 큰 이미지는 한글창제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인식에 대하여(긍정적인 통념으로) 일반적인 관점과 반대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세종대왕을 향하여,
노비와 기생을 통해 현대의 일반인이 인권이라는 키워드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나의 독립된 국가의 자주성이라는 키워드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글을 통해 가장 확실하게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시대와 개인과 그 환경이라는 맥락의 이해, 그것을 위한 노력인 것 같다. 내가 세종대왕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이 글을 통해 제시되는 근거들이 모두 거짓이라고 해도 내가 지금 알고 있는 세종대왕의 모습은 허상일까, 바로 아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글을 100% 동조해도, 믿을 수 없다고 반대해도, 그 대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 책을 읽어본다는 취미차원에서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그 재미의 근거가 기존의 통념을 깨어가는 작가의 논거 때문인지, 시대적 맥락 안에서 세종대왕을 통한 이슈의 탐구 때문인지,
분명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빨리 잘 읽힌다.
전공이 같고 직업이 유사한 분야라면 깊이 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는 내용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정치적 견해라고 봐도 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상당히 정치주관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역사왜곡으로 사회적 재판이 진행 중인 탄행정부 주장인 건국 70년의 개념(현 정부의 건국 100년과 반대되는 개념)이 여러 차례(뒷표지부터 나타난다) 보이고 초대 대통령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흔히 보수와 진보로 나눈 정치체계에서 보수진영의 뉘앙스를 강하게 느꼈다.
5개의 장 중에 1~4장과 5장은 이러한 맥락에서 다소 동떨어지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내가 습득하고 있던 지식으로 역사에 과연 몇%가 진실에 가까울까.
어쩌면 이 책은 저자의 주장으로 모든 사람이 동감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에 동참하고 다양한 내용이 확산되는 기반조성으로 역할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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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YI 2018-04-0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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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칼을 차지 않았다 새창으로 보기
오디오클립 한주 한책 서평단 고전세입니다.
세종대왕.
만 원권 지폐, 세종대왕함,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로와 세종대왕 동상, 세종문화회관 등 그의 이름을 빼고는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수 없다. 지금 구글에서 '세종'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하니 35,400,000개의 문서가 검색된다.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은 명실공히 한국사 제1의 위인이다.
그런데 세종은 정말 이토록 대한민국 국민에게 칭송받을 인물인가? 책의 제목대로 그는 과연 성군인가? 저자인 이영훈 교수는 이에 대해 역사적인 실증 자료를 가지고 따져보자고 한다. 그는 조선 후기 사회 경제사와 노비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 연구를 통한 세종에 대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세종은 역사상 유례를 살펴보기 힘든 노비제를 공고히 했다. “15~17세기에 걸쳐 전체 인구의 적어도 3분의 1은 노비였다. 이전의 고려 시대만 해도 노비의 인구 비중은 10분의 1 미만이었다. 조선왕조에 들어 노비 인구가 크게 팽창하게 된 데에는 세종의 역할이 컸다. 세종은 노비가 주인을 고소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박탈하였다. 이후 노비는 주인의 완전한 사유재산으로 변하였다. 노비를 함부로 죽여도 큰 죄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에 따라 노비 가격이 고려 시대의 비해 5배나 뛰었다. 아버지 태종은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한편, 비가 양인 남자와 결혼하여 낳은 자식을 양인 신분으로 삼았다. 아들 세종은 노비와 양인의 결혼을 방임했으며, 비와 양인 남자의 소생을 노비 신분으로 돌렸다. 세종은 노비를 정상의 인류로 간주하지 않았다. 세종은 자주 남편을 바꾼다는 편견에서 비의 정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종이 비의 소생을 모두 노비로 잡은 것에는 이 같은 노비관이 작용하였다. 이후 노비 인구가 부쩍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사에서 노비제의 전성기가 열렸다.”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둘째, 세종은 기생제를 폐지하기는커녕 공고히 했다. 저자는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정부와 지방 관아에는 춤추고 노래하고 성적 위안을 제공하는 기생 신분의 여인들이 있었다. 기생의 신분은 딸에게 세습되었다. 특정 여인에게 성 접대의 역을 강요하고 세습시킨 다른 나라의 예가 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만큼 기생제는 세계사에서 한국사가 지닌 개성적 특징을 상징하고 있다. 그 기생제를 사실상 창출한 국왕이 다름 아닌 세종이었다. 기생의 딸은 기생이라는 법은 세종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기생은 관비의 신분으로 떨어졌다. 이전 고려 시대만 해도 기생은 관비가 아니었다. 나아가 세종은 국경지대의 고을에 군사를 접대할 기생을 설치하였다. 이후 전국 각 군현에 수십 명씩의 기생이 배치되었다. 세종이 창출한 기생제는 20세기 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원류를 이루었다.”라고 말한다.
셋째, 세종은 중국 명 나라에 대해 그야말로 지극정성으로 사대하였다. 저자는 “하늘에 대한 제사, 곧 천제는 역대 왕조가 천 년에 걸쳐 행한 최고 수준의 국가의례였다. 세종은 그 천제를 폐지하였다. 천제는 천자의 예로서 제후가 거행할 수 없다는 명분에서였다. 세종은 독립국의 군국 의지를 상징하는 출정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종은 명의 황제를 섬김에 있어서 성과 예를 다하였다. 세종은 부왕의 죽음을 맞이하여 역대 군왕이 행한 25일상을 폐지하고 3년 상을 지냄으로써 왕례를 가례화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선의 국가체제는 천자→제후→대부→사→서→천의 위계로 짜인 예의 국제질서로 재편성되었다. 고려왕조가 외적의 침입을 자력으로 방어한 군사국가였음에 비해, 조선왕조는 예의 국제질서에 부동의 안정성을 구가한 도덕국가였다.”라고 말한다.
더불어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종을 세종대왕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 즉 오늘날의 '한글'을 창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자신의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정광 교수의 <한글의 발명>이라는 책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종이 독자의 문자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동시대 조선의 한자 발음과 중국의 그것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동시대 조선의 한자 발음은 이 땅에 한자와 그 발음이 유입된 이래 오랜 세월을 거쳐 10세기경에 정착한 것으로서 대략 수당시대의 중국어와 일치하였다. 그런데 원명 시대에 걸쳐 중국어의 중심이 북경어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양국 간 문자와 언어의 소통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에 세종은 동시대 북경어 중심의 한자 발음을 정확히 표기할 목적에서 발음기호를 창제하였다. 그것이 훈민정음이었다. 글자의 뜻 그래도 백성에게 가르칠 바른 음을 표기한 기호였다. 바른 음 그것은 동시대 북경어의 한자 발음을 말하였다. 통설대로 훈민정음은 하층 서민이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개발한 문자가 아니었다. 한자를 사용하는 지배 신분의 사람들이 동시대 중국의 기준에서 정확한 중국어를 구사하고 훌륭한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아름다운 시문을 지을 수 있도록 개발된 발음기호였다.” 즉 세종은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의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중국에 대한 지극한 사대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세종에 대해 이렇게 무작정 비판만 하지는 않는다. 세종은 이미 당대의 양반들로부터 조선의 요순 임금과 같다는 최대의 칭송을 받았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의 국가체제는 <경국대전>의 편찬에 이르러 중국의 황제를 정점으로 하여 조선의 서민에게까지 이르는 차등적 신분과 예의 질서를 구조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독립군을 상징하는 군국의 의지는 출정의가 군례에서 배제됨에서 보듯이 현저하게 쇠퇴하였다. 이 나라는 점점 예의 질서로 부지되는 도덕국가로 순화되어갔다. 그럼에도 국가의 지배력은 강고하였다. 예의 질서가 천자를 정점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15~16세기의 천하는 명 제국을 중심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그런 가운데 조선왕조가 구축한 예의 국제질서로서 국가체제는 부동의 안전성을 구가하였다. 나는 이 같은 조선왕조의 국가체제가 당대의 세계관, 정치철학, 국제 환경과의 관련에서 구현하는 합리성을 높이 평가한다. 세종은 그러한 국가체제를 구축함에 큰 공적을 남겼다. 앞서 강조한 대로 세종은 역사가 그에게 요구하는 책무를 훌륭하게 감당하였다. 그 이유로 그는 치제 당대에 이미 성군으로 칭송을 받았다. 나는 그 점을 어느 역사가보다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즉 저자는 세종의 업적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잘못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고 말한다. 성리학에 입각한 중국에 대한 철저한 사대주의가 조선왕조 오백 년이라는 번영을 가져왔지만, 반대로 서양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는 인색했다. 반면 일본은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 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했다. 그 결과는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결국 36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세종의 지성 어린 사대가 이런 결과를 초래한 밑바탕이 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우리나라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어 간신히 독립했지만, 이후 북한은 소련에 의해 남한은 미국에 의해 분리되고 동족 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이후 대한민국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의지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내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기까지는 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금까지는 선진국들의 선례를 따라 그 길을 차곡차곡 걸어갔지만, 지금부터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즉 지금까지는 '따라 하기'가 통했지만, 이제부터는 직접 길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 시점에서 갈팡질팡하며 혼돈의 길을 걷고 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심지어 건국 세력이 한데 뒤엉켜 아직도 구 시대의 감각으로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격다짐하고 있는 꼴이다.
각성해야 한다. 각자의 세력이 자신을 뒤엎고, 각 개인이 자기를 죽이는 자기 살해를 통해 새로운 철학과 이념을 제시하고 국론이 통일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발전은 여기까지가 될 것이다. 중요하고도 어려운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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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cgos 2018-04-1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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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책 새창으로 보기
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꼴롬이 입니다.
우리가 세종대왕에 대하여 가장먼저 생각되는 단어가 훈민정음 창제와 애민정신이다.
성군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명확치 않긴 하지만 통념적으로 배워왔단 세종대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사뭇다른 설정이 시선을 끄는 책이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장. 한국사 제1의 위인
2장. 세종과 노비제
3장. 세종과 기생제
4장. 세종과 사대주의
5장.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이다.
저자가 세종이 성군이라는 의견에 회의를 갖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이다.
하나는 조선의 노비제와 기생제가 만들어 졌다는 사실이고,
마지막은 사대주의 국가체계가 정비된 시기라는 사실때문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 많은 사진과 자료와 구체적인 기록을 바탕으로하여
신뢰성을 높이고자하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 만큼 주류사학자의 의견과
사뭇다르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까도 이야기 하였지만 세종이 성군이 아니라는 두가지 이유를 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자 스스로가 책에 '15~16세기 조선의 군왕들은 양반관료의 강고한
노비 지배체제에 간섭할 능력이 없었다.'(본문 44쪽)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정황을 보아도 저자가 가지는 비주류적인 측면에서의 새로운 관점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신선함을 주는것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세종의 사대주의
정책은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고 이부분에 대하여서는 다시한번 역사적 평가를
내려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막 5장에서는 기존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요약하여 현재의 대한민국이 가지는 헌법적
가치, 즉 주권과 권력, 평등과 자유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는 상당부분 공감이 간다.
특히, 자유인으로써의 상념과 독립에 대한 생각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함께 고민해
봐야할 논제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비주류적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본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책 말미에
자유와 자유인, 그리고 대한민국의 독립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다양한 관점을 통하여 역사를 다시한번 되짚어보는 좋은 계기로 삼을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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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롬이 2018-04-1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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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성군이 아니라면 새창으로 보기
한주한책서평단
제목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지음
백년동안
보통 서평을 접하면 저자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진않지만 본서의 저자의 어느정도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게한다. 며칠전 4.3제주사건에 대한 재조명이 미디어에서 일어났다.70년동안 금기시되었던 제주에서 7년간 일어난 4.3사태말이다.본인도 기회가 되어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정보란 주어지지않으면 얻기어려운것인것처럼 시대가 시대인만큼 이제는 말하여지는 것들이 종종 일어난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마지막까지 정년퇴임하고 이승만학당의 교장을 하고 있다.정규재tv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단다. 이른바 보수내지 수구세력을 고집하고 있는 굳은 결의의 사람인듯하다. 그런한 이가 세종대왕에 대해서 우리가 잘 알지못하는 면을 기술해준다니 흥미진진했다. 이데올로기나 색깔론을 떠나 기존의 생각을 갖고 있는 객체에 대한 새로운 조명은 결과를 떠나 매우 신선한것아닌가. 그 시도가 왜곡되고 음모론적이라 하여도 사실에 입각한 연구는 그 노력은 가상하게 여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에 대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인기는 절정이다. 본서는 여기에 대한 세종대왕의 새로운 접근연구중 하나이다.사실 한글의 독창성에 대한 의문이나 폄하된 의견도 일각에서 들어본적있다. 한글 사용을 널리 전파사용하게 한것도 일본의 음모적 정치행위라는 것이다. 사실확인은 못하였지만 아무튼 왜 이런 생각까지 할까라는 흥미로움으로 읽기시작했다.
크게보자면 한국의 못된제도나 뿌리깊이 있는 폐습의 정착을 세종대왕의 시기와 맞물리게 지적했다. 노비제와 기생제도,그리고 사대주의이다.
먼저 노비제이다. 노비가 인구의 30-40%나 차지했었다.양반은 입역과 납공을 통해 대를 이어 군림해왔다. 애완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양천교혼을 통해 노비의 수를 증식시켜온 것이다.중국 은나라의 기자가 야만의 땅인 조선에 문명을 전수한 것으로 세종이 정착시킨것이고 주장한다.고려시대에도 노비제는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조선의 노비제를 보다 철옹성화되었다한다.후의 영조가 노비의 인권을 보호하고 노비에서 일부 해방되는 것을 정책하였다고 하며 세종대왕의 노비제도를 조명했다.
두 번째로 기생제도이다.노비제에 기초한 기생제도는 여자를 노비화시켜 남자들의 욕망을 충만시키는 제도이다. 이순신장군의 기생제도활용용례는 가히 놀랄만한 저자의 위험하고도 치졸한 졸필아닌가싶다. 누구나 시대의 큰흐름을 거슬를수는 없다. 자신의 생각이 현시대에 비추어 현격히 정의롭고 뛰어나기도 확률적으로 어렵지만 개인적인 힘은 시대흐름의 유속을 거스르기가 어려운 것이다.그러나 나의 생각또한 현시대로부터 영향받은 것으로 나아닌 것은 틀리고 나의 생각만 맞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다수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다.일부세력의 이익만을 위해 국민이 휘둘리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지만 정보를 차단하고 무력으로 탄압하지만 않는다면 안분지족하는 대다수의 사람이 있다면 그 역사적 평가는 후대에 맡기어 시간을 두고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이라 본인은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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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영 2018-04-0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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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 책 서평 새창으로 보기
오디오클립 한주 한책 서평단 주인공입니다
세종대왕은 매우 훌륭하고 위대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세종로 한가운데 동상이 있을 만큼 상징적이고 어질고 칭송받는 왕이다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 책은 노비의 수와 기생의 예를 들어 세종의 어두운 면을 알려준다
그동안 살면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자라서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는데 아니 당연하게 생각되어 왔는데 그 당연한 것이 매우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책을 보며 세종이 어떤 왕인가 보다 인간으로서
노비들과 기생들에게 연민의 정이 들고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참 잔인한 나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때부터 TV나 책이나 영화에서 양반과 머슴 이야기 기생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었기에
자연스럽게 생각을 했지 그것이 이상하다거나
불편하거나 어색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양반과 머슴이 있었구나 기생이 있구나 그 정도였다 요즘처럼 그냥 그 사람들의 직업처럼 느껴지는 정도였다 노비라는 직업 기생이라는 직업
하지만 책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다
후세에 성군이라 칭송받는 세종대왕 시절에
인구의 3분의 1 정도의 엄청냐 수의 노비들이 있었으며 기생들이 중앙 관청이나 지방 관청에 소속되었으며 기생들이 일본의 위안부처럼
국경지대에서 군사들을 접대해야 했다는 사실은 놀랍고 기이한 현상이다
노비들의 노동과 처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힘들게 산 것과 기생들의 불쌍한 인생이 느껴졌다
지금처럼 평등한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가 다르게 느껴졌다
제목처럼 세종이 성군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잔인하기까지 한 노비들과 기생들의 모습이 애처롭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나라의 부끄럽고 어두운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사극이나 역사 관련 드라마나 영상 책들에서 노비들과 기생들이 나오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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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2018-04-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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